'해고'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9.15 내가 열흘 만에 해고된 사연 by 파비 정부권 (28)
  2. 2009.08.03 신영철, 아직도 대법관 사무실에 출근한다 by 파비 정부권 (15)

해고됐다. 점심 늦게 먹고 왔다고. 재보니 35분에서 40분 정도 걸렸다. 식당 가는데 5분, 오는데 5분, 밥 기다리는데 5분 쓰면 벌써 15분이다. 나머지 20분으로 밥 먹고 담배 한 대 피고 양치 하고 그러면 대충 딱 맞는 시간이다. 하지만 나가라면 나가야하는 게 피고용자의 운명. 사장에게 물었다.

“시급을 얼마 계산해주실 겁니까?”

“4천원입니다.”

“법정최저임금이 4580원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봐라, 봐라, 이자 나오네. 이제 드러나는구먼. 나는 이런 사람들은 고대로 대접해줍니다. 내가 생각 좀 할라켔는데, 마음대로 하이소. 노동청에 가서 고발부터 하이소.”

“그럼 4천원 계산해서 얼마나 지급해주실 건가요?”

“아마 한 10만원 될 겁니다.”

작업하다 실수해서 물어내야 할 돈이 25만 원쯤 된단다. 가불금 5만원 빼면 10만원. 새벽 5시에 나가서 오후 6시까지 매일 12시간씩 열흘 동안 일한 보람이 10만원이다. 그러나 여기서 더 빼야 할 게 있다. 출퇴근 거리 20킬로, 리터당 8~10킬로 잡아도, 내 차는 노후돼서 6~7킬로밖에 안 나가지만, 5천원이다. 여기에 인근 식당에서 사먹는 점심값 6천원 빼면 마이너스 1만원 나온다. 결론은 보급대 열심히 했다는 것. 웃기는 얘기 하나.

“자, 사무실 냉장고에 보면 내가 음료수 꽉 사놨습니다이, 초코파이도 있고 빵도 있고 라면도 있습니다. 마음대로 드셔도 됩니다이.”

눈치 보여서 사무실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도 없지만 어쩌다 들어가서 냉장고 문을 열어보았다. 델몬트 포도주스 패트병이 1개, 사이다 패트병이 1개 그리고 기억 안나는 무슨 패트병이 1개 있었는데 내용물이 텅 비었다. 초코파이? 시커먼 것이 어디 컴컴한 구석에라도 숨었나? 신라면이 딱 1개 보였다. 내가 나중에 끓여먹으려고 따로 챙겨놨었는데, 사장 마누라가 그걸 찾다가 안 보인다고 투덜거리다 배고프다며 집으로 갔다. 나중에 양심에 찔려 사장에게 그 말을 했더니 순식간에 안색이 변하는 것이 보였다. 아마 이랬던 것 같다.

“이새끼 아주 나쁜 놈이잖아!”

아무튼 추석 쇠고 나면 노동청에 가게 생겼다. 이분들은 내 편 들어줄까?

ps; 참고로 이 업체 하루 매출이 8천에서 1억이다. 마진율이 그리 높지는 않다고 하지만 아무리 못해도 3%는 될 걸로 보면 3백만 원은 남지 않을까 싶은데... 시급은 4천원이란다. 물론 석 달 동안 장기근속한 젊은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에게 슬쩍 시급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4300원 받는다고 했다. 이 일 잘하는 젊은 친구는 다음 달에 군대에 간다. 아무튼 란닝구가 홀딱 젖을 정도로 하루 종일 후닥딱 후닥딱 뛰어다니면서 전쟁처럼 일하는 이곳에서 짤리고 나니 섭섭하면서도 기분 좋다. 가만 생각하니 어떤 날은 새벽부터 퇴근할 때까지 밥을 한끼도 못먹고 일한 적도 있다. 열흘이 마치 몇 달은 지난 듯 까마득하다. 한때 노동운동을 했고 개중에서도 제일 과격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인간이 신세가 참으로 처량하게 됐다. 그저 늙은 게 죄다. ^^

ps2; 위 글은 그냥 페이스북에 끄적거린 내용인데, 앞으로 시간을 내 좀 구체적으로 열흘간의 노가다 일지를 작성할 계획이다. 좀 쪽팔리는 얘기긴 하지만 사람들에게 참고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적을 생각이다. 아마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을 것이다. 기상천외한 혹은 상식적으로 도무지 납득이 안 되는 이야기들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이야기를 적다가 경찰서에 가서 확인을 해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독자들께서는 무슨 소리일까 궁금하실 수도 있겠지만 기다려 보시라.  

ps3; <아래 댓글을 보고 페북에 오늘(9/16) 달았던 이야기를 다시 여기에 첨부합니다>

제가 페북에 올렸던 "열흘만에 해고된 사연"을 블로그에도 그대로 올렸더니 대부분의 공감과 분노의 댓글들 말고도 "님께서도 분명히 잘못한 것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니겠냐. 그렇게 큰 업체의 사장 사모가 컵라면 한 개 가지고 툴툴거린다는 게 이해가 안된다"는 식으로 댓글을 쓰신 분도 한분 계셨습니다. 해서 밝히자면...

물론 제가 처음 하는 일이었던 만큼 숙련도가 떨어졌을 수도 있으나...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게 일을 잘한다고 칭찬을 했던 점, 서른서넛 된 업주의 어떤 욕설이나 훈계에도 토 하나 안 달고 꼬박꼬박 예, 예, 하며 순응했던 점(심지어 함께 일하는 20살짜리 한테도 반드시 존대하며 선배 대접 했음), 거의 2, 30대처럼 후닥딱 후닥딱 뛰어다니며 일을 했던 점, 새벽 5시면 꼬박꼬박 일어나 지각 한번 안하고 열심히 다녔던 점, 사모 아버지가 체어맨600을 끌고 와서 화장실 청소가 돼 있니 안 돼 있니, 직원교육 좀 제대로 시키라고 너거 사장한테 가서 말해라니 어쩌니 할 때도 비굴하게 한마디 말도 안 하고 네, 네 했던 점 등에 비추어 그렇게 점심 먹는데 좀 늦었다고-물론 내 계산으로는 가는데 5분 오는데 5분 먹는데 20분 담배피고 좀 쉬는데 5분 해서 딱 맞았지만-해고될 만한 사안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한마디로 질 잡자는 것이었죠. 몸에 배어 있더군요. 욕설도 질 잡기 위해 하는 것이란 걸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옛날 동방항공 한국지사장을 알고 있었는데 그이도 그러더군요. 자기는 절대 직원들하고 동석조차 하지 않는다고. 밥도 같이 안먹는다고. 욕설도 아마 그런 차원이었다고 이해를 합니다. 그래서 서른살 짜리가 환갑이 다가오는 노인 뺨도 때릴 수 있을 정도로 성격형성이 되었던 것일지도 모르지요. 제가 가기 전엔 60 노인이 9일 일하고 그만두었는데-잘린 게 아니고 스스로 걷어치웠다고 그러더군요. 20일 이상 일 안하고 스스로 나가면 급여 안준다고 그러던데 임금은 챙겨줬는지 모르겠네요-식당에서 밥값 누가 낼 거냐고 장부를 들고 오자 전화를 걸어 "니가 처먹은 건 니가 내야지 왜 여기 갖고 오게 만드냐"며 온갖 십원짜리 욕설을 다 하는데 그때 저도 이미 "아, 이거 여기 내가 오래 있을 곳이 못되는군나" 하고 생각은 했죠. 그래서 "집에 가라" 한마디에 "그래 집에 가께" 했던 것입니다. 진짜로 집에 간다며 일어서자 이 젊은 친구는 비겁하게 "형님, 왜 이러십니까? 내가 다 에이스를 만들어 드릴라 그랬던 거 아닙니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이소. 다시 열심히 하겠다 하시면 같이 일하입시다" 그랬는데 5분만 생각하라며 사무실에 혼자 남겨놓고 나간 사이에 이런 사정을 모르던 사모가 들어오더니 에어컨을 꺼버리고 나가더군요. 사무실에 아무도 없어도 하루 종일 틀어놓던 에어컨을. 그래서 혼자 속으로 웃고 말았죠.

하루 매출이 8천, 1억 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쪽 업계 마진율이 2~3%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매입원가, 관리비, 인건비 다 빼고난 순이익을 따지면 하루에 한 2백에서 3백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아마 대충 제 계산이 맞으리라 봅니다. 아무튼 곧 시간내서 일지 써서 올린 텐데 거기 상세하게 모두 이야기할 생각입니다. 월급날이 매달 10일이라서 다음달 10일에 열흘치 임금이 10만원이 들어올지 13만원이 들어올지 알 수 있으니까 그때 가야 정확한 일지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되고... 후기까지 포함해서... 시급이 4천원이라고 그랬는데 그것도 내가 법정최저임금 4580원이라 얘기했기 때문에 어떻게 판단하고 계산할지 문제도 있고... 뭐 그렇습니다. 아무튼 양쪽 입술 부르터가면서 일한 결과가 이거였습니다. 일 할 때는 몰랐는데 안 나가니 허리도 아프고 온 만신이 다 쑤시고 아프네요.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합니다. ^^

Posted by 파비 정부권
TAG 시급, 해고
엊그제 7월 31일은 대한민국 사법사상 가장 치욕스런 날로 기록된 날이었습니다. 사법부가 진보당 대표였던 조봉암 선생을 살해한 날이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살해했는가? 바로 법이라는 흉기를 사용해 한 나라의 지도자를 죽였습니다. 이처럼 법이란 것은 흉악한 권력자의 손에 들어가게 되면 무자비한 흉기가 되는 것입니다.

죽산 조봉암 선생 @레디앙


사법부의 살인, 진보당 사건
처음에 조봉암 선생이 사형에 처해질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이승만 정부가 첩자를 심어 조봉암 선생을 간첩으로 몰려는 흉계에도 불구하고 1심 재판부는 징역 5년에 그친 선고를 내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되자 재판부를 용공판사로 몰아붙이는 관제데모가 벌어지고 이승만의 유감 발언이 이어집니다.

결국 2심 재판부는 조봉암 선생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대법원도 그대로 사형선고를 유지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재심청구를 했지만 이마저도 기각됩니다. 대법원 주심이었던 김갑수가 재심재판의 주심판사를 맡는 상식 이하의 재판이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재심청구가 기각된 날은 7월 30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조봉암 선생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사형이 확정된 다음날 즉시 사형을 집행한 예는 또 있습니다. 바로 박정희 정권 때 인혁당 사건의 사형수들이 그렇습니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인혁당 사건은 날조된 것으로 판명 났으며 국가차원에서 배상도 결정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 죽여 놓고 배상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사람의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이처럼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시절에 사법부와 검찰은 반대파들을 제거하기 위한 흉악한 무기였으며 살인도구였습니다. 조봉암 선생을 법살한 사법부 판사들의 면면을 보면 조선총독부 판사 출신들이 대부분입니다. 조봉암 선생에게 사형 집행을 명령한 당시 법무부장관 홍진기(현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 부친) 역시 조선총독부 판사였습니다.

진보당과 인혁당 사건 판사들은 살인죄로 기소되어야
그럼 조봉암 선생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는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일본경찰에게 손톱을 빼는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서 동상에 시달리며 손가락 마디들이 절단되어 나가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는 삼일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1년을 복역한 것을 비롯해 만주사변 발발 다음해인 1932년에 검거되어 신의주형무소에서 7년을 복역하고 인천에서 지하운동을 하다 다시 검거되어 감옥에서 해방을 맞았습니다.

그는 일제시대에 조선공산당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해방 후에는 박헌영 노선을 비판하며 조선공산당을 탈퇴하고 대한민국 건국에 앞장 서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토지개혁을 주도했습니다. 그는 1959년 사법부에 의해 살해당하기 전에도 수차례 친일지주들의 모략에 시달렸습니다. 토지개혁을 통해 친일지주들의 땅을 소농들에게 분배한 그가 지주계급들에겐 원수 같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이승만과 김일성의 양대 독재정권을 모두 비판했던 그는 피해대중의 권익이 실현되는 평등한 국가건설을 과제로 삼았습니다. 이미 당시에 그는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를 심중에 두었을 것입니다. 조중동의 끈질긴 모략과 이명박 정부의 공격에 상처를 받고 죽음을 택한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가 마지막에 읽었던 책이 유러피안 드림이었다고 했습니다.

노무현은 그가 재임시절에 사회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진보진영으로부터 저항을 받았지만, 그도 역시 마음 한구석에는 진보에 대한 열망을 채워줄 무엇을 찾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아마도 그러한 희망을 리프킨의 책 유러피안 드림에서 찾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드림을 찾아 진보주의자로 변신하는 현실을 만들지 못하고 떠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무상한 세월은 흘러 조봉암 선생이 사법이란 흉기에 의해 살해당한지도 50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사법부는 조봉암 선생을 법살한 조선총독부 판사의 후예들이 기득권을 지키고 앉아 있습니다. 그들이 저지르는 행태도 과거의 선배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신영철 대법관입니다.

만약 신영철 대법관이 진보당 사건 판사였다면?
만약, 신영철 대법관이 당시처럼 진보당 사건의 주심판사로 재판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두 말할 것 없이 그가 정권의 뜻을 받들어 조봉암 선생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이란 사실을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다. 그가 삼성재판에서 이건희의 무죄판결에 손을 들 것이란 사실을 이미 재판이 열리기 전부터 모두들 알고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 신영철 대법관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지난 5월까지도 오늘내일 하며 목이 간달간달 하던 그가 노무현 대통령 서거정국, 천성관 검찰총장후보자 사퇴파문, 언론악법 불법통과파문 등으로 시끄러운 틈을 타서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 모양입니다. 갑자기 그의 근황이 궁금해져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더니 그는 조용히 대법관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진보당 사건으로 재판 받는 조봉암 @레디앙


검색창에 신영철을 쳤더니 진보신당 당원이라는 구형구라는 사람이 올린 글이 있었습니다. 제목이 특이했습니다. "재수 없게도 신영철이 내 인생에 끼어들다니…"였습니다. 그는 2년 전 이랜드 투쟁 때 집시법 위반으로 연행되어 이틀 동안 구류를 살고 벌금 50만원의 약식 판결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에 불복해 변호사를 선임해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2심에서는 방심하여 변호사도 없이 재판을 했고 야간집회라는 명목을 추가해 공소장을 변경한 검찰의 의도에 넘어가 다시 벌금 50만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에 다시 1심 변호사와 협의하여 상고를 하게 되었는데 이 재판의 대법관이 신영철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판부기피신청을 했다는 거였는데 그게 받아들여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아직 신영철이 대법관 사무실에 계속 출근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참 끈질긴 인간입니다. 저 같으면 창피해서라도 이렇게 세상이 시끄러워 남의 이목이 줄어들었을 때 조용히 사표내고 떠나겠습니다. 얼마나 기회가 좋습니까?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신영철은 하루 빨리 해고되어야
어쨌든 제가 가진 상식으로는 진보당이나 인혁당 사건에서 사형선고를 내린 판사들은 모두 살인죄로 기소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상식이 아닐까요? 그러나 그런 상식은 그저 관념에 불과합니다. 현실에서 그런 것들은 그저 거추장스러운 쓰레기일 뿐입니다. 신영철 같은 사람이 대법관 자리에 버티고 있는 대한민국은 아직 그렇게 양심적인 국가가 아닙니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 사법부에 남아있는 한 사법부가 권력의 꼭두각시가 되어 살인흉기가 되는 일은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진보당 사건과 인혁당 사건에서 사용한 법살의 무기는 국가보안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 신영철 같은 사람이 사법부에 존재하는 한 국가보안법이 없더라도 일반형법으로도 얼마든지 법살을 감행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대한민국의 양심적인 미래를 위해 살기 위해 투쟁하는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이 아니라 신영철 같은 사람을 하루 빨리 해고해야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