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5.07.29 합천ATV의 진실, 그것이 알고 싶다 by 파비 정부권
  2. 2015.07.27 합천서바이벌, 살떨리는 쾌감 이유는? by 파비 정부권 (1)
  3. 2011.10.30 내가 모산재를 버리고 합천박물관을 택한 까닭 by 파비 정부권 (9)
  4. 2011.10.18 합천 홍류동 소리길은 왜 소리길일까? by 파비 정부권 (2)



Posted by 파비 정부권

survival, 서바이벌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생존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서바이벌 게임의 서바이벌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었습니다. 상대를 죽여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절박한 목표이며 살 떨리는 욕구였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요? 해봤으니까 알죠. 흐흐~


@사진. 실비단안개/ 단디뉴스 대표 권영란 기자. 폼은 멋지심.


모든 여행은 시작이 아름답습니다. 새로운 여정을 향한 출발은 언제나 가슴 부푼 기대로 시작하게 마련이죠. 어제도 그랬습니다. 합천 황강레포츠축제 팸투어. 경남도민일보 부설 협동조합 <해딴에>가 기획한 행삽니다. 물론 저도 참석했죠. 오래전부터 지기로서 잘 알고 있는 해딴에 단장님이신 김훤주 기자의 특별배려로 함께하게 됐던 것입니다.


수련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이사와 실비단안개

왼쪽은 경남도민일보 정성인 기자

 

역시 시작은 아름다웠습니다. 태풍 할롤라가 몰려온다고 해서 걱정했지만 다행히 날씨는 좋았고 우리는 충분히 들떠 있었습니다. 합천에 진입하기 전 들른 대의휴게소에는 예쁜 연꽃들이 한껏 단장하고 사람들을 반겼습니다. 블로거 본능은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요? 살아있네~ ㅎㅎ

 

하지만 잠시 후 맞이하게 될 살인경기를 그 아름다운 마음들은 생각이나 했을까요? 이번 팸투어에 참여한 14명 중에 서바이벌을 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답니다. 실비단안개님과 저만 빼고 모두들 해보겠다고 의욕을 보이더군요. 그때 생각했습니다. 역시 사람에겐 숨겨진 거시기본능이 있는 거야. ㅠㅠ



@사진. 실비단안개

 

실비단안개님은 여자고 나이도 있으시니까 빠졌다 치고 저는 왜 빠졌냐고요? 공식적으로 내세운 이유는 반전평화주의자인데다 실비단님이 빠지면 제가 빠져야 66으로 짝이 맞는다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겁이 나서 빠졌어요. ㅠㅠ 군대까지 갔다온 놈이 왜 그러냐고요? 저 사실 군대 가서 험한 훈련 안 받아봤거든요.


@사진. 실비단안개/ 전쟁 시작 전 안전교육. 쓰레빠 신고 있는 자가 나


대신 저와 실비단님은 전쟁터가(서바이벌 게임장이) 내려다보이는 둑 위에 서서 사진을 찍었죠. 경기는, 아니 전쟁은 싱겁게 끝났답니다. 겨우 10분 정도? 한쪽 병력이 전멸하고 말았으니. 세상에 무슨 놈에 전쟁이 이렇게 싱겁담?



경블공 합천 팸투어, 서바이벌 게임
 

@사진. 실비단안개/ 전쟁 투입

@사진. 실비단안개/ 은폐엄폐물을 찾아 전투준비

@사진. 실비단안개/ 전투자세

@사진. 실비단안개/ 왼쪽 한명 죽었음

@사진. 실비단안개/ 전사자는 이렇게 손들고 나와야 함

@사진. 실비단안개/ 나 죽었어요. 쏘지 마세요.

 

하지만 모두들 정말 너무너무 만족한 표정이었어요. 죽인 자도 죽은 자도 신이 나서 막 떠들어댔죠.

 

, 너무 재밌다. 이렇게 신나는 놀인 줄은 미처 몰랐네. 별로 힘도 들지 않고.”

 

총에 맞은 곳이 아프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그러더군요.

 

글쎄 말예요. 맞긴 맞은 거 같은데 내가 총알에 맞은 건지 안 맞은 건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막 긴장되고 흥분돼 있으니까. 하하. 온몸이 짜릿하게 오그라드는 것 같은 긴장감이 정말 대단했어요.”


@사진. 실비단안개/ 전쟁 끝나고 아이스크림 먹으며 분을(즐거움을?) 삭이기


다음은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이사의 말입니다.

 

이게 장난이 아니더라고. 딱 시작하니까, 내가 안 죽어야 되겠다, 적을 죽여야 되겠다, 그런 마음자세가 팍 생기더라고. 적을 죽이고 내가 살려면 몸을 낮추고 정조준해서 맞춰야 되니까…… 사람에게 그런 게 있는 모양이라. 엔도르핀이 막 솟아나는 게 느껴지더라고.”

 

그런 것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전쟁본능? , 그보다는 생존본능이라고 해두죠. 이건 다른 동물에게도 예외 없이 존재하는 거예요. 모든 생명체는 살기 위해 적을 타격하도록 설계돼 있죠. 그런데 문제는요. 그게 단순한 설계가 아니라 즐겁다는 거예요. 인간들만이 그럴 수 있는 거죠. 살생을 유희로 만들 수 있는 능력.


하지만 여기서 골치 아픈 철학적 사유를 해보자는 건 아니에요. 그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죠. 여기선 다만 사람들이 얼마나 유쾌하고 즐거웠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정말 즐거운 놀이였어요. 사람들은 그 짜릿한 긴장과 전율, 쾌감, 욕구의 분출에 생전 한 번도 그런 것은 느껴본 적이 없다는 듯이 신기해하고 놀라워했어요.

 

시작이 너무 좋았던 거죠. 간단하게 군복만 겉에 입고 안전장구만 착용하면 되었으므로 크게 불편하거나 부담이 되는 것도 아니었어요. 게임 끝내고 지급된 옷과 장구만 벗어버리면 올 때의 상태로 원상회복되니까요. 그러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었어요. 너무 간단했죠.

 

단 몇 가지 지적할 내용은 있네요.

 

첫째, 서바이벌 게임은 혼자 할 수 있는 경기가 아니라는 문제가 있어요. 서너 명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최소한 열 명 이상은 돼야 할 수 있는 경기에요. 그러니까 단체로 해야 된다 이 말씀이죠. 하지만 이거야 뭐 문제라고 할 것도 아니네요. 애초에 이런 서바이벌 게임장에 갈 거라면 단체로 갈 생각이었을 테니까요.

 

둘째, 합천의 서바이벌 게임장은 규모가 그리 큰 편이 아니었어요. 자그마한데다 각개전투를 할 수 있는 산비탈이라든지 험한 지형을 갖추고 있지도 않았어요. 아마 서바이벌 전문동호회라면 좀 실망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반대로 그것이 장점일 수도 있어요. 서바이벌 전문동호회는 아닌데 적당한 단체놀이감이 없을까 고민하는 분들에겐 이 게임장이 적격이란 생각이 들었답니다. 규모가 작은 대신 전혀 위험하지 않고요. 힘도 들지 않고. 그저 간단하게 어릴 적 총싸움놀이 하듯이 놀면 되는 거거든요.


@사진. 실비단안개/ 산악오토바이 ATV


셋째, 이건 문제가 아니라 좋은 점인데요. 이 서바이벌 게임장엔 ATV 주행시설도 있다는 거지요. ATV가 뭐냐고요? 사륜오토바이라 생각하면 되는데요. 자세한 건 다음 포스팅 때 설명드리기로 하고요. 서바이벌 게임을 하기 전에 간단하게 몸을 푼다는 생각으로 사륜오토바이를 타고 신나게 트랙을 돌다보면 몸과 마음이 확 풀어진답니다.

 

그리고 이건 제 생각인데요. 서바이벌 게임을 하고 나서요. 조금만 밑에 내려가면 래프팅장이 있어요. 거기서 래프팅을 하는 거예요. 지금 같은 여름철에 정말 딱인 운동이에요. 오전 10시나 11시쯤 도착해서 서바이벌 게임장에서 신나게 몸을 푼 다음 근처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오후에 래프팅으로 신나게 노는 거죠.


@사진. 실비단안개/ 영광의 래프팅 출발. 노를 치켜든 왼쪽 선두가 나. ㅎㅎ


참고로 래프팅 역시 코스가 아주 부드럽고 완만해서 가족단위로 가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놀이였답니다. 우리 일행들은 서바이벌 게임도 모두 처음이었지만 래프팅도 마찬가지였어요. 모두 처음이었죠. 하지만 너무 쉽고 편하고 즐거웠다는 것. 아무튼 이 래프팅에 관해서도 다음 포스팅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요.

 

마지막 한 가지. 숙박문제인데요. 여기 위치가 어디냐면요. 합천호 바로 옆이거든요. 그 주변에 팬션 등 숙박시설이 빽빽해요. 거의 모든 팬션들이 합천호를 전망으로 갖고 있으니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죠. 합천읍내가 가까우니 거기서 모텔 등에 숙박할 수도 있고요.

 

합천. 여름피서지로 정말 멋진 곳입니다. 오늘은 이 정도만 할게요. 사실 제가 지금 술이 약간 된 상태거든요. 합천 황강레포츠축제 팸투어 마치고 집에 와서 샤워한 간단하게 한잔 하고 있는 중이란 말씀이죠. 죄송하고요. ㅠㅠ 하지만 감동이 식기 전에 조금이라도 미리 알려드리고 싶어서.

 

충정으로 이해해주시길. ^^ 


/2015년 7월 26일 19시 

Posted by 파비 정부권

내가 황매산 모산재 코스를 버리고 합천박물관을 택한 것은 순전히 김훤주 기자 때문이었습니다. 경남도민일보 갱상도문화학교가 주최한 합천명소 블로거탐방 둘째 날(9/30). 해인사를 둘러본 뒤에 만난 홍류동 소리길에서 얻은 첫째 날의 감동이 채 가시기 전에 모산재의 절경을 만났더라면… 그야말로 이번 여행은 완벽했을 것입니다.

모산재는 내가 매우 좋아하는 곳이긴 합니다만 사실 한 번도 올라가본 적은 없습니다. 몇 차례 영암사지에서 바라보면서 감탄사만 흘리곤 했었는데 영암사지와 모산재가 하나의 절묘한 조합이 되어 둘 중 어느 하나가 없는 모양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 영암사지에서 바라본 모산재 @사진. 김천령의 바람흔적


영암사지를 처음 보았을 때 절터가 이토록 감동을 준다는 사실에 놀라고 병풍처럼 펼쳐진 모산재에 한 번 더 놀랐습니다. 영암사지와 모산재. 이번 코스는 황매산 쪽에서 버스를 내려 능선을 타고 모산재 정상을 거쳐 영암사지로 내려오는 길이었습니다. 오! 가장 바라던 길이 아니었겠습니까.

하지만 내가 이 환상적인 코스를 포기한 것은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순전히 김훤주 기자 때문이었습니다. 합천명소 탐방은 첫째 날에 해인사와 홍류동 소리길, 대장경 천년문화축전 축제장을 둘러보고 둘째 날에 합천영상테마파크를 보고 합천활로를 걷는 순서로 되어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삼간한우 시식으로 대미를 장식하게 되어있었죠.

그런데 합천활로는 하나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확실하지는 않지만 합천에 산재해있는 다양한 볼거리들에 길 개념을 혼합해 하나의 관광상품으로 묶어놓은 게 합천활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홍류동 소리길도 그 하나일 듯싶습니다.

둘째 날 영상테마파크를 둘러본 블로거탐방단은 네 갈래로 나뉘어 합천활로를 걷기로 되어있었습니다. 모산재와 영암사지, 선비길, 강정늪, 합천박물관 이렇게 네 곳이었습니다. 물론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모산재 그 다음이 선비길이었지만 이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여 내가 손을 들지 않으면 합천박물관은 아무도 가지 않는 불상사가 생길 게 뻔하게 보였던 것입니다. 내가 손을 들자 어디로 갈지 망설이던 선비님이 손을 들고 무릎이 안 좋으신 김용택 선생님이 손을 들어서 덕분에 합천박물관에도 세 사람이 배정됐습니다. 공치사는 이 정도로 하고.

우선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이후에 블로그 포스팅들을 통해 ‘모산재-영암사지’와 ‘선비길’ 코스를 다녀온 사람들의 환성이 너무나 대단해서 행사 운영자였던 친구의 사정을 고려한 알량한 우정이 원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아, 나는 늘 이래서 탈이야.

홍류동 소리길의 감동에 젖어 새벽까지 이어진 주류파들의 행진에 동참한 후과는 박물관에서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합천군에서 배려한 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따라가며 나는 내내 졸았던 것입니다. 세 명밖에 안 되는 박물관 탐방객을 태운 군청직원도 함께. 그러니 더욱 졸면 안 되었는데 아, 정말 죽을 지경.

만약 내가 이곳 박물관이 아니라 탁 트인 모산재에서 영암사지를 내려다보거나 황금빛으로 물든 들판과 정겨운 마을 사이로 난 선비길을 걸으며 시원스럽게 얼굴에 부딪히는 가을바람과 더불어 남명선생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어제 먹은 술기운이 확 달아나면서 생기가 돌았을 것입니다만, 박물관은 너무 고리타분하고 공기도 텁텁했습니다.

..... 합천박물관 전경. 분수대에 보이는 조형물이 용봉문양환두대도 @사진. 합천박물관


게다가 환갑이 훨씬 넘은 것으로 보이는 문화해설사님은 의욕이 너무 넘쳐나서 처음 들어보는 천오백 년 전의 역사에 대해 장황설을 늘어놓았습니다.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정형화된 콘크리트 건물을 보자마자 벌써 몰려드는 잠귀신은 몰려들고. 하지만 메모지를 들고 열심히 듣고 질문하고 하는 김용택 선생님 탓에 내놓고 졸지도 못하고.

보아하니 선비님도 졸리긴 마찬가지인 듯이 보이는데 역시 김용택 선생님 탓에 열심히 듣는 척 하는 걸 눈치 빠른 내 눈은 놓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그렇군요. “뭐야 이거. 그래서 합천박물관 가서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하고 힐난하실 분들이 많겠군요. 마치 일부러 ‘안티’하는 것으로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결코 그런 불순한 의도는 없었다는 점을 천지신명을 빌어 말씀드립니다. 그냥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는 것이 그리 되고 말았습니다. 나는 원래 블로그에 글을 쓸 때 미리 어떤 주제나 방향을 잡아놓고 시작하지 않습니다. 뭘 쓸지 소재만 정해지면 그냥 붓 가는대로 아니 키보드에 손가락 가는대로 쓴답니다.

그러니 글을 쓰면서도 이 글이 어떤 식으로 끝날지 저도 실은 모르는 거지요. 아무튼 한 시간 반에 걸친 박물관 탐방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박물관 탐방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박물관엔 제가 모르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고대의 역사가.

합천에 다라국이라는 고대국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다라국은 출토된 유물에 의하면 4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합천 지역에서 흥성했던 가야연맹체의 일원으로 보입니다. 그 이전 신석기, 청동기 유적도 있습니다만 이 시기에 가장 문명이 발달했을 것이라고 유물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유리잔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다라국 역시 신라와 마찬가지로 로마와 교역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신라와의 교역을 통해 로만글라스가 유입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외부와 교류가 활발했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인 듯합니다.

출토된 유물 중에는 귀고리 등 정교한 금제공예품뿐 아니라 옥으로 만든 반지, 목걸이, 귀걸이 같은 세공품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신라에 뒤지지 않는 뛰어난 세공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물들인 것입니다. 신라에만 있는 줄 알았던 금관도 있더군요.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용봉문양의 황금칼이었습니다. 고대 다라국의 지배자가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지녔을 이 칼은 손잡이의 문양이 화려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 정밀한 아름다움에 실로 넋을 잃을 지경입니다. 어떻게 저런 걸 만들었을까?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라국의 당시 위상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합천박물관이 지어진 곳은 바로 이러한 유물들이 출토된 옥전고분군 바로 밑입니다. 만약 전날 과음으로 인한 숙취만 아니었다면 현학적이길 좋아하는 나로서는 정말 좋은 공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옥전이란 이름도 혹시 옥 유물이 많이 나와서 그리 된 것은 아닐까요?

물론 짐작하시는 것처럼 졸면서 박물관을 도느라 그런 것은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박물관을 모두 돌아보고 나서 나오는데-사실은 이 순간 굉장히 행복했답니다. 드디어 차에 앉아 졸 수 있었으니까요-함께 온 군청직원이 바로 위에 고분군이 있다고 알려주더군요. 앗, 그럼 보고 가야지. 핵심을 안 보고 가면 되나.

옥전고분군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박물관 뒤편으로 난 오솔길을 조금 올라가니 그곳에 커다란 고분들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세어보지는 못했지만-역시 술 탓-상당히 많은 봉분들이 모여 있었는데 매우 평온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 모양을 바라보자니 술이 확 깨면서 정신이 맑아지더군요.

..... 옥전고분군. 휴대폰으로 찍었다. 좋은 가을날이다.


이런, 순서가 이게 아니었어.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고분군을 먼저 보고 박물관을 보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분군에서 고대의 사람들과 먼저 인사를 나눈 다음 그들이 사용하던 물건들을 살펴보았다면 훨씬 실감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박물관이라고 해서 입구를 꼭 박물관 현관문에 직렬로 세울 필요가 있겠습니까?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곧바로 오솔길로 통하도록 안내해서 고대의 사람들이 누워있는 고분군으로 가 그들을 먼저 만나보는 것이 예의에도 맞지 않을까 합니다만. 만약 그랬다면 나도 정신을 버쩍 차려서 박물관의 유물들을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건 약간 난센스이긴 합니다만, 엄밀히 말해서 박물관(혹은 그 안의 유물들)의 주인은 바로 고분에 누워있는 고대인들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그들에게 “자, 지금부터 우리가 이 박물관에 소장돼있는 당신들이 쓰던 물건을 둘러볼 참이니 너무 나무라지 마시오!” 하고 마음속으로 허락도 구하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인의가 땅에 떨어진 시대에 그깟 예의가 무엇이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반대로 해도 되겠습니다. 먼저 박물관의 유물들을 둘러본 다음 고분에 들러 “당신들이 쓰던 물건 잘 봤소. 참으로 뛰어난 유물들이 많이 있더이다!” 하고 인사를 한 다음 고분군 위에 떠있는 구름과 주변의 소나무들을 한번 둘러보고 돌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이날 우리를 승용차에 태워(다른 블로거들은 관광버스로 갔고 우리는 세 명밖에 안 되다보니 군청직원이 자기 차로 안내했습니다) 박물관에 모시고 온(?) 군청직원은 욕심 많은 김용택 선생님의 요청에 예정에 없이 우리를 일해공원과 전두환 전 대통령 생가까지 안내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나는 유유자적 흐르는 황강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황금빛 모래톱을 만들어가면서 구불구불 뱀처럼 기어가는 강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입니다. 만약 저 황강마저 일직선으로 곧게 만드는 작업을 한다면? 오 마이 갓!

합천. 다시 가고 싶은 곳입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다니. 해인사, 홍류동 계곡(정운형 선생의 표현에 의하면 금강산을 축소판으로 옮겨놓은 곳), 모산재, 영암사지, 황매산, 합천영상테마파크, 남명 조식 선생을 생각하며 걷는 선비길, 황강, 합천댐의 붕어찜 그리고 무엇보다 삼가한우.

삼가한우란 합천군 삼가면에서 나는 한우고기를 일컫는 말입니다. 합천군 삼가면이 한우가 그렇게 유명한 곳인지 이번에 또 알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마산과 창원에도 삼가한우식당이 있더군요. 합천에 다녀온 이후 거기에도 가보았습니다만 역시 부드러우면서도 풍부한 육즙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여기에 공무원들의 친절한 봉사정신까지.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합천군의 우수한 관광상품을 홍보하고자 하는 목적 때문인 것이겠지만. 이 글 보신다면 사람들이 박물관만 슬쩍 보고 가게 하지 마시고 뒤편 고분군을 더 많이 홍보해주시면 좋겠어요. 사실은 거기가 볼 것이 더 많다는 것. 눈에 보이는 것만 보지 말고 고대 사람들의 마음도 보고 가시라고.

그리고 내친 김에 하나 더 불평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창원, 마산이 경남의 중심도시이며 광역시를 빼고는 전국에서 가장 큰 도시라는데 합천 해인사로 가는 직통노선이 없답니다. 대구로 가거나 아니면 진주로 가서 합천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는군요.

이거 개선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대중교통만 편리하다면 굳이 환경을 오염시켜가면서까지 자가용 끌고 명승지 찾아다닐 이유가 없고요, 또 그리한다면 한적한 가야산 어느 골짜기 주막에서 마음 편하게 동동주를 거하게 마실 수 있는 자유도 누릴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나는 내일이나 모레쯤 단풍이 지기 전에 홍류동 소리길을 꼭 한번 다시 걸어볼 생각이에요. 가능하다면 그 길에 박물관을 다시 한 번 가보면 좋겠지만 혼자 가는 게 아니라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시골 박물관 하면 단박에 “에이”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다시금 합천군에 건의를 드리자면, 박물관만 보지 마시고 옥전고분군과 주변 환경을 잘 어우러지게 하는 어떤 콘셉트를 만들어보시는 게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박물관과 옥전고분군을 연결하는 고분길 혹은 다라길은 어떨까요? 나무벤치도 몇 개 만들어주시고요. 무슨 길 내는 게 능사가 아니긴 합니다만.

Posted by 파비 정부권

언제부터인가 무슨 길 무슨 길 하는 게 유행이 됐습니다. 제주 올레길이 히트를 치고 나서부터 너도나도 덩달아 올레길 만들기가 유행하더니 그게 조금 진화해서 둘레길도 생기고 이제는 지자체별로 특색에 맞게 이름을 따로 만들기도 합니다.

마산에도 그런 영향으로 길이 하나 생겼는데 구산면 저도에 가면 비치로드란 길이 있습니다. 풀어보면 바닷가길 정도가 되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비치로드란 이름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바다가 저 아래 까맣게 보이기는 하지만 바닷가를 밟을 수 있는 길이 사실은 없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비치로드란 생경한 외국말이 귀에 익숙하지 못한 탓도 있었을 테지만 길 이름과 실제 모양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 좋은 길을 걷고 난 보람에 비해 뭔가 개운치 않은 여운을 남깁니다. 명실상부란 말도 있지만 실제를 잘 드러내는 이름을 짓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에 비해 올레길이니 둘레길이니 하는 이름들은 얼마나 편안합니까? 대구 팔공산에 가면 누리길이란 이름도 있다는데 이 또한 잘 지은 이름인 듯합니다. 명실상부한 이름인지는 몰라도 최소한 비치로드란 버터 냄새나는 이름보단 훨씬 정겹지 않습니까? 아무튼 좋은 바람입니다.

△ 우리를 인솔하고 간 경남도민일보 부설 갱상도문화학교 추진단장 김훤주 기자의 사진을 잠시 빌려왔습니다. 홍류동 소리길은 적당한 간격을 두고 이런 절경들이 걷는 이들의 발목을 잡습니다.

합천에도 이런 바람을 타고 길이 하나 생겼는데 이름 하여 소리길입니다. 소리길. 어감이 참 좋습니다. 대체 어떤 길이기에 소리길일까요? 소리길은 유명한 홍류동 계곡에 생긴 길입니다. 홍류동 하면 그 유명세에 비해 사람들의 발길을 별로 타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한 곳이지요.

보통 사람들은 해인사 입구에 만들어진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해인사를 둘러본 다음 곧장 가야산을 정상을 정복하고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였던 것입니다. 물론 저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다보니 역시 저도 홍류동을 듣기만 했을 뿐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최치원이 그 경이로운 아름다움에 탄복해마지 않았다는 홍류동 계곡에 생긴 소리길이라니. 도대체 어떤 길이기에 소리길이라 이름 지었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소리길에 들어서자 벌써 가슴이 설레고 귀가 쫑긋거립니다. 어떤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물소리였습니다. 길을 걷는 내내 단 한시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물소리. 그래서 소리길이었나 봅니다. 인근 마을에 사는 어떤 이의 대답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계곡길을 걷는 내내 물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으니 그래서 소리길이지요.”

그러고 보니 그랬습니다. 얼마 전에도 경남도민일보 갱상도문화학교추진단을 따라갔던 문경새재 고갯길을 걸었던 적이 있었지만 이런 소리가 기억에 남아있지는 않았습니다. 문경새재 1관문에서부터 2관문까지 걸을 동안 계곡물이 단 한시도 곁을 떠난 적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그만큼 홍류동 계곡이 크고 우렁차다는 뜻일까요? 홍류동 계곡은 실로 크고 우렁찼습니다. 우선 계곡을 덮고 있는 바위들의 색깔에서부터 압도적인 느낌이 전해져왔습니다. 소리길을 적당한 사이를 두고 갈라 우뚝 서있는 거대한 암벽들이 걷는 이들의 발길을 사로잡습니다.

물론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 길이 여기만 있으란 법은 없습니다. 지리산 뱀사골에 단장된 길에도 물소리가 끊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뱀사골에선 듣는 물소리와 여기서 듣는 물소리는 뭔가 확실히 다른 느낌을 줍니다.

널찍하게 잘 단장된 뱀사골 탐방로에 비해 오솔길 같은 홍류동 소리길의 모양 때문일까요? 그렇습니다. 소리길은 오솔길이었습니다. 구불구불하고 적당히 오르내리는 오솔길. 가는 내내 울창한 숲속에선 상큼한 바람 냄새가 코를 자극합니다. 물소리와 바람 냄새의 절묘한 조합.

원래 소리길은 새로 만든 길이 아니고 오랜 옛날부터 있던 길이었습니다. 어쩌면 나무꾼이나 해인사에 불공을 드리러 가는 불자들이 다녔을 길입니다. 아마도 매우 힘든 길이었을 겁니다. 그 길을 살짝 손 보고 단장하여 사람들이 편하게 소리를 즐기며 걸을 수 있도록 한 것이 소리길이겠지요.

△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홍류동 계곡. 사진은 역시 김훤주 기자의 것입니다.

9월 29일 우리가 소리길을 걷던 날은 마침 비가 내렸습니다. 그런 탓인지 새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설령 한두 마리 새가 우지진다 해도 물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청명한 날에 이 길을 걷는다면 여러 마리의 새들이 우지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물소리와 바람소리, 새소리의 합주가 되는 것이지요.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 마을 뒷산에도 소리길 비슷한 게 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마산시가 만든 길인데요. 무학산 둘레길 초입(혹은 마지막 코스)에 새소리가 들리는 편백나무 울창한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이 소리는 진짜 새소리가 아니라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기계음이었답니다. 그 기괴망측한 아이디어에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지요. 그냥 바람소리에 담겨오는 편백나무의 향긋한 내음만 감상하는 편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무튼 홍류동 소리길. 정말 멋진 길입니다. 이름과 실제도 잘 어울려 명실상부하게 소리길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정운현 선생이 내지른 감탄사야말로 이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 길인지를 잘 드러내주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니 합천군, 지금까지 뭐 한 거야!”

여러분도 이 길을 걷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면 정말이지 명실상부란 말을 실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제 짐작에 최치원이 신선이 되었다면 틀림없이 이곳 홍류동에서 여러분이 듣는 것과 똑같은 물소리를 들으며 인간의 탈을 하나둘 벗겨갔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농산정에 앉아 홍류동 계곡을 타고 흘러내려오는 물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어느 틈엔가 여러분은 신선이 되어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리 되려면 여러분도 최소한 최치원 선생 정도의 참을성은 있어야겠지요.

속세를 버리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은 아무리 아름다운 금강산을 보고서도 배가 고프면 금방 산을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지는 것이니까요.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