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4.11.27 카트로 보는 폭력과 비폭력의 경계 by 파비 정부권
  2. 2011.04.11 신기생뎐의 도가 넘은 집단구타, 너무 살벌하다 by 파비 정부권 (8)
  3. 2008.11.03 교사폭력은 군사독재의 유령이다 by 파비 정부권 (33)

의견은 분분하였다. 참 잘 만든 영화라는 쪽과 그렇지 않다는 쪽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하나의 감상에는 모두 동의하였다. 눈물 없이 보기 힘든 영화라는 것. 분분하였으나 통일된 것은 공감, 바로 공감이었다.

 

극장을 나서면서 원호가 물었다.

 

감회가 새로우셨겠네예.”

허허, …….”

 

그러나 실제로 그랬다. 나는 과거의 추억에 잠겨, 감정에 겨워 보았다. 그리고 영화 속 주인공들을 걱정했다. 왜냐하면 그 과거의 추억이란 것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으므로 그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어둠이 점령한 0, 우리는 자동차가 드문드문 지나가는 희뿌연 도로를 건너 술집으로 갔다. 그곳에서 함께 영화를 보았던 변호사가 말했다.

 

참 나도 눈물 짜며 영화를 봤네요. 그런데 법률적으로는 논란이 있을 장면들이 많았어요. 예를 들면 아줌마가 폭행당하는 장면이라든가…….”

 

그것은 법률가로서 정의에 대해 갖는 당연한 의구심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며 엄연한 부조리가 정의 위에 군림하는 것이다. 마트의 여성노동자들이 계약의 성실한 이행을 촉구하며 농성하던 천막이 무자비한 용역들의 쇠파이프와 워카발에 짓이겨질 때, 그곳에 법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며칠 전 읽었던(그리고 페북에 썼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경구가 생각났다.

 

인디언들은 서구의 초기 정복자들과 맞서 싸울 때, 오랫동안 그저 창으로 그들의 어깨를 때리는 방식으로만 대응했다. 그럼으로써 자기들이 창으로 찌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인 것이다. 하지만 서구인들은 총을 쏘는 것으로 그것에 대응했다. 비폭력은 한쪽만 실천한다고 되는 일이 아닌 것이다.”

 

내가 위 인용문을 경구(警句)라고 하는 데에는 의미가 있다. 비폭력은 결코 일방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은 진리이다. 자본은 겨우 공장을 점거하는 정도에도 폭력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구사대란 이름으로 용역을 고용해 본원적인 폭력을 전격적으로 행사한다. 폭력에는 폭력만이 방법이다.

 

그리하여 영화 <마트>의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면서 감동적이었다. 그 장면 뒤에 검은 화면에 피어오르는 자막은 차라리 사족이었다. 없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그저 카트를 몰고 돌진하는 아줌마들의 결의에 찬 눈빛들, 그것으로 끝내었다면…… 그 이후의 일은 우리 모두의 상상으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날들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다.  


@다음영화


ps; 라스트 자막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투쟁 끝에 회사와 협상한 결과 노조지도부만 빼고 나머지 조합원은 모두 복직시키기로 했다는 것이다. 절반의 승리였다. 그러나 길게 보면 이는 승리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노조지도부만 뺀다는 것은, 앞으로 누가 감히 노조지도부가 되려 하겠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말이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신기생뎐이 큰 사고를 쳤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21세기에 멍석말이라니. 이건 해도 너무했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에 신기생뎐을 치면 멍석말이 설정에 대한 불만들로 뜨겁다. 불만 정도가 아니라 분노에 가깝다.

도대체 왜 이런 설정을 한 것일까?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기생은 일단 여자다. 기생집 부용각의 왕마담 오화란이 소속(?) 기생에게 멍석말이를 지시했다. 당연히 여자를 멍석에 말아 몽둥이로 두드려 패라는 얘기다. 그럼 누가 패는가?  

신체도 건강한 남자다. 이걸 보는 순간, 갑자기 숨이 멎을 것 같은 충격과 당혹감,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이 들이닥쳤다. 그야말로 들이닥친 것이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느닷없이 한 명의 기생이 마당으로 끌려나와 멍석말이를 당한 다음 부용각에서 쫓겨난다.

허허, 그것 참. 하긴 그렇다. 신기생뎐의 주특기가 예고가 없다는 것이다. 일전에도 그랬다. 아다모가 단사란에게 이별을 통고할 때도 그랬다. 매우 일방적인 이 행동은 시청자들에게조차 아무런 언질 없이 진행됐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일본으로 훌쩍 떠나 온천욕 잘하고 와서는 “이제 우리 그만 만나자. 너를 만난 건 그저 장난이었어. 어쩌나 보려고” 하고 말하는 아다모를 과연 시청자들 중 누가 이해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이거 뭐야. 자다가 홍두깨도 아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한 명의 기생이 손님 중 누군가와 몰래 데이트를 즐겼다는 이유로 멍석말이를 당한다. 내참,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람? 일단 이 장면을 검찰이나 경찰이 보았다면, 즉각 인지수사에 들어가야 할 판이다.  

집단폭행 장면을 보고도 모른 체 한다면 틀림없는 직무유기다. 그런데 왜 이런 장면이 등장하는 것일까? 신기생뎐의 작가에게 혹시 윤리적 감성이나 정서상으로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는 것이 나의 지나친 상상력 과잉인 것일까.  

아버지가 딸을 기생집에 팔아넘기는 장면도 그렇다. 이건 지나쳐도 정말 지나쳤다. 딸을 가진 아버지의 입장에서 정말 보기에 곤욕스러운 장면이었다. 마치 내가 저지르는 짓인 양 온몸이 오글거리며 부끄러웠다. “아니, 내가 왜? 내가 뭣 때문에?” 그렇다. 내가 무슨 죄 졌나?  

그렇지만 옆에 있는 마누라 보기도 미안하고, 만화에 빠져있는 딸에게도 민망했다. 젠장…. 하긴 뭐 굳이 말하자면 팔아넘긴 건 아니다. 그저 부탁한 거다. “너도 우리 집 사정 잘 알잖니. 네가 이해해라.” 그 한마디에 착한 단사란이 훌쩍거리며 심청의 마음으로 떠난 거다. 기생집으로.  

하지만 이건 상상할 수 없는 폭력이었다. 어제 보니 사란이의 계모가 사란이가 기생질해서 벌어다준 돈으로 시장을 엄청 많이 본 모양이다. 입이 헤벌래하니 찢어진 것이 무척 행복한 표정이다. “하이고, 저런 것들도 사람이라고 시장에서 비싸고 맛난 거 사다 먹는 즐거움은 아는 모양이네!”  

애비라는 작자가 기생집으로 떠나는 딸을 배웅하며 슬픈 눈망울로 “가서 건강해야 된다”고 말하는 단철수를 보며 얄궂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건강해야지. 네가 아프거나 다치거나 그러면 너의 수입에 막대한 지장이 있을 테고, 그건 우리의 불행이지, 암.” 

애비와 애미(비록 피 한 방울 안 섞인 양부와 계모라지만. 단사란은 그래도 갓난아이 때부터 25살이 된 지금까지 단철수를 친아빠로 알고 살았다)가 함께 작당해서 딸을 기생집으로 보냈으니 이건 분명코 집단폭력이요, 사란이가 번 돈을 받아다 쓴다면 기필코 중간착취다.  

여기다 이젠 물리적 폭력까지 등장했다. 폭력의 대상은 연약한 여성이요,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건장한 남자들이다. 떡대 같은 남자들이 모포로 둘둘 말아 땅바닥에 엎어놓은 여자를 향해 몽둥이로 마구 갈긴다. 자세히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엉덩이도 때리고 등짝도 때리고 무차별이다.  

게다가 폭력을 지시하는 사람이 부용각의 왕마담 오화란 대표다. 이 또한 사용자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힘없는 근로자를 구타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일전에 모 재벌그룹 2세인지 3세인지가 이른바 매값폭행으로 근로자를 사정없이 구타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었다. 

혹시 작가가 그 사건을 패러디한 것일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왕꽃선녀님, 하늘이시여, 보석비빔밥 등 작가의 전작들을 빼놓지 않고 보았던 입장에서 작가에게 그만한 사회 비판의식이 있으리란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뭐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소견이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왜 이런 설정을 느닷없이(!) 집어넣은 것일까. 결론은 소소한 에피소드들의 나열로 편안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작가의 주특기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손자(성이 손이요, 이름이 자다. 오해마시길)의 할머니나 아다모의 할머니가 갑자기 사망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작가는 어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죽음, 인간의 본성에 공존하는 사악함과 선량함, 우연처럼 전개되는 필연적인 운명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 일부러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만들어 집어넣는 것일지도 모른다. 전작들에서도 이런 경향은 늘 보였다.  

하지만 이번엔 좀 심했던 것 같다. 느닷없는 죽음의 릴레이에 이어 애비가 딸을 기생집에 팔아먹는 것도 그렇지만, 술집 기생이 손님과 전화 좀 하고 따로 몰래 만나 데이트 몇 번 했기로서니 멍석말이를 해서 쫓아낸다는 게 에피소드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쫓아내는 것은 그래도 이해를 할 수 있다고 치자. 물론 이것도 엄격하게 말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생도 엄연히 서비스 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라고 봤을 때, 이는 명백한 부당해고다. 아마 쫓겨난 기생은 노동위원회에 권리구제 신청을 하고, 법원에도 해고무효확인소송을 할 준비를 해야 할 듯하다.

그렇지만 폭행이라니. 그것도 멍석말이라는 전근대적 방식을 통한 집단폭행이다. 이는 어떤 경우에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집단적인 린치를 당하는 여성을 앞에 두고도 아무 말 못하는 저 가련한 인생들이라니. 그들에겐 심장도 없는 것일까?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그게 곧 냉엄한, 너무나 솔직하고 정확한 우리의 현실이다. 기생이라는 점만 뺀다면, 사실은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다만, 매일 당하고 살면서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재판과정에서 밝혀진 사실이지만, 모 재벌2세의 맷값폭행에 당한 노동자가 그 한 사람뿐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 노동자 외에도 다른 많은 직원들이 비슷한 폭력에 희생되어왔지만, 그들도 부용각의 기생들이나 직원들처럼 아무 말 못하고 지켜보아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다른 방송사의 드라마 근초고왕에서 반역을 일으킨 계왕의 두 아들이 백제의 수도 한성의 광장에서 참수당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군중들이 떠오른다. 바로 그것이다. 기생 멍석말이나 맷값폭행이나 근초고왕의 공개처형과 똑같은 것이다. 

경고, 혹은 시범케이스. 마음 편하게 보던, 또 그러길 추구하던 드라마 신기생뎐에서 이 시범케이스는 에피소드로서 너무 살벌한 것 아닐까? 충성도 높은 시청자의 한사람으로서 부탁해본다. 좀 살살해주시면 안 될까요? ㅎㅎ

글고요^^ 기생은 뭐 사람 아녀요? 연애 좀 했다고 매질이라니. 보아하니 부용각 기생들도 하는 짓이 다들 천박한 것이 일반 요정의 작부들과 하나 다를 게 없더구만, 무슨 요정이 아니라고 그러세요? 하긴 나 같은 사람은 돈이 없어 요정 출입도 못해봤지만서도….

아무튼, 기생이면 기생이지 고급기생은 또 뭐냐 그런 말이지요.

Posted by 파비 정부권
초등 2학년생에 대한 과잉 체벌 사태에 이어 또다시 체벌 논란이 재연되고 있습니다. 대구의 모 여고에서 교사가 단체로 학생들을 체벌하는 과정에서 한 여고생의 뺨과 허벅지를 구타하는 동영상이 유포돼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지난 5월에는 전북 익산의 한 여학교 운동장에서 교복치마를 입은 여학생 40여 명을 일렬로 엎드려뻗쳐 시킨 상태에서 엉덩이에 5대씩 몽둥이로 구타하는 장면이 TV에 방영되는 등 체벌 사태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영화 『말죽거리잔혹사』에서 야구배트로 학생들을 구타하는 장면은 실제 우리네 모습이었다.


학교폭력에 대한 잔인한 추억

저는 얼마 전 초등생 구타 사건이 났을 때,
“초등생 체벌사태를 보며 드는 잔혹한 추억”이란 제목으로 포스팅을 한 바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말죽거리 잔혹사」란 영화에서 나왔던 장면이 제가 고1 때 우리 급우 한명이 담임선생님에게 폭행당하던 장면과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에 그렇게 제목을 붙였던 것입니다. 정말 우리는 지긋지긋한 폭력교실에서 일상화되고 제도화된 구타를 인내하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저도 국민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에게 밀대자루(밀걸레 자루)로 속칭 빳다 20대를 맞은 기억이 있습니다. 자습시간에 조용히 공부하지 않고 떠들었다는 이유로 엎드려뻗쳐해서 하나 둘 세어가며 맞았던 것입니다. 물론 맞은 것이 이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 아들이 지금 초등학교 5학년입니다.  그래서 그때 엎드려뻗쳐해서 빳다 20대를 하나 둘 세어가며 맞던 제 모습과 어린 제 아들놈을 가끔 비교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상상이 가지 않는 일입니다. 

저는 맞은 기억 외에도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치심에 몸을 떠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1979년에 저는 까까머리 중3이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대대장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학교는 매주 월요일과 토요일에 ‘전체조회’를 했습니다. 저는 30리가 넘는 산골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다녔지만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딱 한 번 지각을 했는데, 하필 이날이 ‘전체조회’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전체조회’를 빠트린 저는 교무실에 불려가 예의 빳다를 맞은 다음 교무실 앞 복도에 무릎을 꿇고 손을 든 채 벌을 받게 됐습니다. 교무실 양 옆으로 좌측에는 3학년 남학생 교실이 우측에는 3학년 여학생 교실이 있었습니다. 잠시 후 저에게 빳다를 때린 그 선생님이 다가오시더니, “이새끼, 손 똑바로 못 들어? 안 되겠군.” 하시더니 자기 책상에서 사과를 하나 들고 와서는 한 입 크게 베어 무시더니 남은 사과를 제 입에 척 물리셨습니다. 그러면서 떨어뜨리면 각오하라는 협박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폭력은 교사 스스로를 비인간화 시킨다

여러분께서는 그 이후의 제 심정이 어떠했을지는 말로 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하시리가 믿습니다. 예민한 사춘기의 소년이 동급생인 여학생들 앞에서 당했던 수모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그 사건 이후에 제가 매주 두 번씩의 ‘전체조회’를 어떻게 진행했으며, 또 남은 학교생활은  어떻게 마무리했는지 정말이지 아득합니다. 그런데 그 전한○ 선생님이 단지 조회 한 번 빼먹었다고 저한테 그러신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게지요.

이 선생님은 니콘 카메라를 가지고 계셨는데 어느 날 그걸 잃어버리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담임인 반의 저와 친한 친구 한 놈이 그걸 훔쳤다고 의심을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친구가 이 선생님 집에 가서 구두며 신발들을 가끔 도랑에다 내버리는 통에 슬러퍼를 끌고 학교에 오신 적이 많았었거든요. 선생님도 자기에게 자주 맞던 그 친구가 그랬으리라고 짐작하셨던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이 친구를 지서에 신고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가 선생님의 신발을 가끔 훔쳐다 버리는걸 아는 제가 다그쳐 물어봤더니 자기는 절대 안 훔쳤다고 결백을 주장하는 겁니다. 이 친구는 저보다 국민학교 3년 선배였고 소위 ‘꼴통’이었지만 저하고는 아주 친했습니다. 그리고 저한테 거짓말 할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교무실에 계신 그 선생님에게 가서 “걔는 절대 안 훔쳤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만 오해를 풀어주십시오.” 하고 부탁드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아무런 증거도 없는데 지서에서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후 그 선생님이 제게 앙심을 품었을 거라는 짐작을 ‘조회 사건’ 이후 하게 됐습니다. 산골 오지에 살았던 저는 니콘 카메라가 세계에서 제일 좋은 카메라였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학교폭력은 결국 군대와 사회로 이어져

우리가 학교를 다니던 유신독재와 5공화국에서 교사의 존재는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이었습니다. 그러나 또한 존경받지 못하는 권력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당시의 교사들이 사회에 전반적으로 팽배한 군사문화의 폭력적 경향에 최면이 걸린 불행한 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당시에도 일제시대 교사들이 칼을 차고 가르치던 시대를 추억하는 엉터리 같은 선생님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집단적 최면의 피해자라고 이해를 하는 편이었습니다.  

옛날 교련 선생님들은 이렇게 군복을 입고 학생을 지도했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부터 길들여진 폭력 문화는 결국 사회 전반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맞은 놈이 더 잘 팬다는 속설도 있습니다. 무의식중에 주입된 폭력을 통한 문제 해결 방식은 군대에서 그 절정에 다다르고 결국 가정에까지 침투하는 것입니다. 어느 틈엔가 우리는 대화를 통한 모색보다는 폭력을 통한 손쉬운 해결을 추구하는 습관에 길들여지게 됩니다. 학교가 민주주의의 적을 훈련시키는 부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학교와 사회를 지배하던 폭력적 군사문화도 유신정권이 궁정동의 총성과 함께 종말을 고하고, 전두환의 5공화국도 6월 항쟁으로 막을 내리면서 서서히 종적을 감추는가 했습니다. 그런데 유신도 아니고 5공도 아닌 21세기 선진 대한민국의 학교에서 버젓이 폭력이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폭력이란 것들이 모두 상식을 초월하는 것들입니다.

9살짜리 여자아이의 엉덩이를 피투성이로 만들어놓는가 하면, 여고생의 뺨과 허벅지를 무자비하게 구타하는 장면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여고 2학년은 학생이란 신분만 뺀다면 성숙한 여성입니다. 아무리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성숙한 여고생의 뺨을 후려갈기고 허벅지를 때릴 수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치마 입은 여학생들을 운동장에 일렬로 엎드려뻗쳐 시킨 상태에서 몽둥이로 엉덩이를 두드려 패는 장면은 무슨 말로도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학교와 교사가 폭력을 조장하고 가르쳐서야

이건 폭력이나 구타의 수준을 넘어 변태라고까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올바로 된 정신 상태를 가지고 이런 일을 벌인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어린 딸아이들 둔 부모로서 소름이 끼치는 일입니다. 금년 5월 춘천에서는 한 여고생이 체벌을 견디다 못해 유서를 써놓고 자살을 기도한 사건까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학교당국이나 교육청은 은폐에만 급급합니다. 

얼마 전, 초등생 체벌사태로 세상이 시끄러울 때 울산의 어느 학교 학부모들이 체벌동의서란 것을 학교에 제출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체벌은 폭력의 동의어일 뿐입니다. 체벌은 군사독재의 잔재일 뿐입니다. 이러니 세상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 어려운 것입니다. 극우적 경향의 사람들이 무시로 내뱉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사람이 총 들고 나타나서 확 후려잡아야 돼.”

저는 이런 망발조차 학교에서부터 익숙해진 폭력의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군대 갔다오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졸병 때 고참에게 얻어맞던 때가 언제였느냐는 듯, “졸병놈들은 뒈지게 맞아야 돼. 그래야 군대가 잘 돌아가.” 라고 하면서 서슴없이 폭력을 행사합니다. 이미 자기는 졸병생활 지났다는 거지요. 소위 ‘맞아본 놈’이 더 때리는 것입니다.  

폭력교실은 결코 성숙한 인격도야의 장이 될 수 없다

학교는 지식만 전수하는 곳이 아니라 학생을 성숙한 인격체로 인도하는 곳입니다. 민주주의의 요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을 구타로 괴롭히며 폭력의 모범을 보여준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질풍노도의 미성숙한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이 아무리 어려운 일이기로서니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스스로 교사이기를 포기한 자가당착입니다.

저는 사소한 체벌조차 반대합니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상담 등의 노력을 통해 교사와 문제 학생이 일체가 되는 경험을 가끔 접할 수 있습니다. 어째서 체벌 외에 다른 방법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교육당국 만이 아니라 전교조를 비롯한 참교육을 추구하는 여타의 단체들이 깊이 관심을 가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활지도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구타 등 폭력이 도대체 어떤 생활에 대한 모범을 보여준다는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폭력은 폭력을 부릅니다. 폭력은 민주주의의 적이며 독재의 수단일 뿐입니다. 폭력을 조장하는 교사가 학교 내 학생들간에 벌어지는 폭력을 막을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학교에서 체벌, 구타, 폭력 등이 어떠한 이름으로도 자행되어서는 안 됩니다. 학교가 민주적 시민의식을 제쳐두고 폭력과 독재를 가르친다는 오명을 덮어써서야 되겠습니까? 

2008. 11. 3.  파비

※ 독서의 계절 가을과 람사르 총회를 맞이하여 추천하는 책 한권/
습지와 인간
카테고리 시/에세이/기행
지은이 김훤주 (산지니,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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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