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법'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8.10.07 잃어버린 10년? 그들에게 이미 국민은 전투의 대상이었다. by 파비 정부권 (29)
  2. 2008.10.06 설거지 하면서 그릇 좀 깨보자 by 파비 정부권 (7)
  3. 2008.10.05 최진실법은 신종 국가보안법 by 파비 정부권 (32)
  4. 2008.10.04 빨갱이들이 최진실을 죽였다 by 파비 정부권 (14)

나는 노무현을 찍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노무현이 당선됐을 때 감격해서 동이 트도록 오징어를 뜯으며 맥주를 마셨고, TV에서 흘러나오는 당선방송을 보고 또 보았다. 노무현도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노무현이 검사들과 대화를 한답시고 TV 앞에 앉았을 때, 나는 또다시 오징어를 뜯고 맥주를 마시며 분개했다. “어떻게 쥐어준 권력인데 그따위 허접한 검사들을 모아놓고 손수 칼을 쥐어준단 말이냐.”

봉하마을 주민이 된 노무현=경남도민일보


'잃어버린 10년', 그리고 '인터넷검열'을 보며 드는 단상(斷想)

그리고 대통령이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조중동으로부터 온갖 수모를 다 당하고 마침내 별다른 이유도 없이 국회에서 탄핵되었을 때, “거봐라, 칼 쥐어주었더니 그 칼 내다버리고 잘하는 짓이다.”하면서 조롱했다. 어쩌면 허탈감과 배신감이 나를 사로잡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노무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가 김대중 정부에 이어 추진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들이 서민경제 파탄의 주범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한미FTA는 그가 추진한 정책 중 최악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인해 수많은 농가가 타격을 입고 국민건강이 위협받는 것도 그 출발은 노무현 정부에 있었다.

한편, 반대로 노무현이 민주주의에 획기적인 기여를 한 대통령인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그가 대통령이 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드라마였고, 대중적 참여의 적나라한 모델을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정치의 발달에도 한 몫 기여했을 것이다.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실험은 바로 노무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역시 나는 여전히 노무현의 팬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민주당도 나의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들이 한나라당으로부터 진보니 좌파니 하는 오해를 받든 말든 그건 상관없다. 그들이 민주주의를 통해 이루려고 하는 시장자유주의가 내가 생각하는 분배의 정의를 통한 선의 추구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고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에 이들이 방송국을 장악하고 인터넷까지 검열하겠다며 달려드는 모습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 한나라당에게 잃어버린 10년이란 것은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그들은 그토록 민주주의가 불편했던 것이다. 국민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비판하고 참여하는 것이 불편했던 것이다.

거짓 선동으로 여론을 호도하며 권력을 장악한 한나라당

지난 대선 내내 한나라당이 외쳤던 구호는 “잃어버린 10년”이었다. 그들이 잃어버렸다는 것은 정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정권을 잃어버린 것이 마치 나라를 빼앗기고 독립투쟁이라도 하는 양 국민을 선동했다. 그것은 한나라당 외의 정치세력은 모두 악이라고 호도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BBK주가조작, 위장전입, 탈세의혹을 뚫고 이명박은 대통령이 됐다. 사진=오마이뉴스


이 어처구니없는 선동질은 주로 경상도 땅에서 주효했다. 이 선동질의 선두에서 나팔수 역할을 한 것은 물론 다름 아닌 조중동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마치 집단최면상태에 빠진 것처럼 분기탱천했고, 선거에서 “우리가 남이가!”를 연신 외치며 결전에 임했다. 그들은 바야흐로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전쟁터에 나가는 전사들 같았다.

그리고 그들은 승리했다. 지난 10년 동안, 특히 연이어 대선에 패배한 이후 지난 5년 동안, 그들이 얼마나 이를 갈고 복수심을 불태웠는지는 정권을 탈환(?)한 이후의 행보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정권을 잡자마자 이전 정권에서 진행해왔던 모든 정책들을 뒤집어버렸다. 신자유주의적 기조를 유지하며 진보세력과 대립했던 김대중-노무현 두 정권을 좌파정권으로 몰아 붙였다. 그나마 민생안정용으로 만들어놓았던 개혁적 제도들은 모두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판이고 일부는 이미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려질 운명에 처해있다.

전 세계가 산업화와 개발바람에 파괴된 자연을 회복하자는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이때, 거꾸로 나라의 젖줄인 한강과 낙동강을 파헤칠 대운하 구상을 하고 있다. 당장 저항에 주저하고 있긴 하지만, 이는 엄청난 개발이득을 노린 재벌과 집권세력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난관이 봉착해도 반드시 실현시키려고 할 것이란 점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 남북화해협력을 위한 모든 노력들도 ‘퍼주기’란 이름으로 폄하하고 양측의 정상이 약속하고 서명한 합의서까지 파기하는 국제적 망신을 자초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미국에는 재협상 가능한 쇠고기협정조차 거부하는 이중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앞으로 어떤 나라가 이런 정부를 신뢰하고 조약을 맺고 교류를 하려고 하겠는가?

한순간, 촛불이란 장벽에 부닥치긴 했으나 이제 그들은 거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방송도 장악했고, 곧 가장 껄끄럽던 사이버공간마저도 함락이 눈앞에 보인다. 마침 벌어진 유명 연예인들의 연이은 자살은 그들에게 호재다. 이런 기회를 놓칠 그들이 아니다.

그들은 무엇보다 인터넷을 평정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정권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호시탐탐 인터넷을 장악할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기려고 했지만, 촛불이 그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촛불이 잦아들더니 기대하지 않았던 호재까지 겹쳤다.

여론을 장악하고 영구집권을 꿈꾸는 한나라당

그리고 드디어 그들은 ‘최진실법’이란 이름으로 포장한 ‘인터넷검열제’란 칼을 들었다. 그들이 이 새로운 전투에서 한 번 더 승리한다면 국민들의 입마저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괴벨스가 했던 것처럼 라디오를 하나씩 나누어주고 자기들 말만을 들으라고 할 것이다.

여론장악과 선동정치로 독재자로 군림한 히틀러


안타깝게도 이와 같이 지난 10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느끼는 격세지감은 단순한 감상의 수준을 넘어 시나브로 현실을 압박하고 고통을 강요하게 될 것이다. 칼을 함부로 내다버린 노무현을 조롱하던 그 순간도 어느덧 낡은 앨범 속의 추억으로나 기억하게 될 것이 분명할 듯보인다.

진보진영의 어느 인사는 이 격세지감의 시기를 히틀러의 파시즘을 연상시키는 것은 옳지 못하며 그리 되지도 않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 이유를 “히틀러가 살던 시대와 달리 한국 사회의 지배자인 대자본은 지금 방식으로도 충분히 지배 지속 가능하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일당독재’의 가능성이야 높지만, 그것은 파시즘이 아니라 한국판 자민당 시대의 개막이지 않을까?”(진보신당 이재영-레디앙) 라는 말로 설명하기도 한다.

글쎄,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히틀러도 처음부터 파시스트가 되려고 작정하고 그리 되었을까?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화가를 꿈꾸었던 그가 희대의 독재자가 되리라고 처음부터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말이다.

히틀러가 죽고 난 후에 연합국 진영의 많은 정치가들도 그의 타고난 선동술과 대중장악력에 대해 연구했다는 걸 보면 시사 하는바가 크다. 전두환이나 이명박이 언론을 장악하는 기술도 알고 보면 원조는 바로 히틀러가 아니겠는가.

방송장악에 이어 인터넷검열제를 시도하는 이명박 정부를 바라보며 전운戰雲을 감지한다.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는 그들에게 국민은 이미 전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2008. 10. 7.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 저녁, 밥을 먹다가 아내에게 물어 봤습니다.

“세상도 하 수상하고 복잡한데, 뭐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 없을까?”

저는 요즘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부장에게 낚인 이래로 하루에 하나 이상은 포스팅을 해보자는 각오로 블로그를 시작했는데, 그것도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열심히는 하고 있고, 재미도 느끼고 있습니다. 남들이야 뭐라 하든지 본인이 재미있으니 일단 출발은 성공이라고 해도 별 무리가 없을 테지요.

요즘 부쩍 사회가 시끄럽습니다. 장애인들은 복지예산을 삭감당해 거리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고, 인기 연예인들의 자살 사태가 줄을 잇고, 방송장악음모 등 여론통제에 열을 올리던 이명박 정부는 이때다 싶어 <최진실법> 같은 해괴한 수법으로 국민들을 벙어리로 만들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런데다 나라경제는 꼴이 말이 아닙니다. 경제에 관해서는 거의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던 이명박 대통령이 아예 나라경제를 ‘갱제’로 말아먹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오십 보 백 보인 듯싶습니다. 완전 속았습니다. 할인마트에서 싸다고 산 생선이 포장지를 뜯어보니 완전 썩었을 때와 심정이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요사이 제 블로그도 온통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들로 가득 찼습니다. 제 마음도 별로 유쾌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물어본 것입니다.

“음~ 그라모, ‘설거지를 마치며’ 이런 건 어때? 마누라를 위해 설거지를 하면서 느낀 단상 같은 걸 한 번 적어 보는 거야. 박노해 시인이 ‘이불을 꿰매며’란 시를 썼던 것처럼 말이야.”

참 나, 여성단체 일꾼 아니랄까봐, 직업의식이 만점입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니 별로 나쁘지 않은 의견입니다. 예전에 어떤 가수가, 이름은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거 왜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 주제가 부른 가수 있지 않습니까? 그분이 불렀던 노래 중에 ‘그릇을 깨자’란 노래가 있었지요. 그 노래 가사도 아내를 도와 설거지 좀 하자, 뭐 그런 얘기 아니었을까요?

저의 20대와 30대를 즐겁게 해주었던 최진실 씨의 죽음을 보면서, 가정의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걸 새삼 느낍니다. 그래서 아내의 제안이 단지 별로 나쁘지 않은 제안을 넘어, 매우 소중한 金言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에게 설거지를 하며 느낀 단상을 시로 만들어 전해 드릴 만큼의 재주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냥 박노해 시인의 ‘이불을 꿰메며’ 란 시를 소개해드리는 걸로 대신하겠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사랑과 행복이 충만한 가정이 되기를 빌어마지 않습니다. 아울러 가끔 설거지도 도와주며 펴진 아내의 허리도 한 번씩 안아볼 수 있는 그런 남편들이 되어보시는 것도 좋은 생각이 아닐까 합니다. 저부터 실천해야 하는데, 사실 그거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행복해 질수만 있다면야,

“그깟 설거지가 뭐라꼬….”

2008. 10. 5. 파비

박노해, 본명은 기평



<박노해는 노동자 시인이다. 김문수(한나라당), 심상정(진보신당) 등과 함께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결성에 참여했으며, 이후 사노맹을 결성하면서 혁명조직운동가로 변신한다. 그러나 무기징역을 살다가 가석방 된 후에는 김지하 시인과 함께 ‘생명운동’에 몰두하면서 과거의 동지들로부터 변절자란 비난을 듣기도 했다. 또 레바논과 이라크 등지를 돌며 평화운동에도 앞장섰다. 과거 어린 시절, 그를 본 적도 없고 더구나 그의 과격한 노선에 동의하지도 않았지만, 그의 시 만큼은 심금을 울려주는 무엇이 있었다. - 필자 주>

            
              이불을 꿰매며

                 이불호청을 꿰매면서

                 속옷 빨래를 하면서

                 나는 부끄러움의 가슴을 친다

                 똑같이 공장에서 돌아와 자정이 넘도록

                 설거지에 방청소에 고추장단지 뚜껑까지

                 마무리하는 아내에게

                 나는 그저 밥달라 물달라 옷달라 시켰었다

                 동료들과 노조 일을 하고부터

                 거만하고 전제적인 기업주의 짓거리가

                 대접받는 남편의 이름으로

                 아내에게 자행되고 있음을 아프게 직시 한다

                 명령하는 남자, 순종하는 여자라고

                 세상이 가르쳐둔 대로

                 아내를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나는 성실한 모범근로자였었다

                 노조를 만들면서

                 저들의 칭찬과 모범표장이

                 고양이 꼬리에 매단 방울소리임을,

                 근로자를 가족처럼 사랑하는 보살핌이

                 허울 좋은 솜사탕임을 똑똑히 깨달았다

                 편리한 이론과 절대적 권의와 상식으로 포장된

                 몸서리쳐지는 이윤추구처럼

                 나 역시 아내를 착취하고

                 가정의 독재자가 되었었다

                 투쟁이 깊어갈수록 실천 속에서

                 나는 저들의 찌꺼기를 배설해낸다

                 노동자는 이윤 낳는 기계가 아닌 것처럼

                 아내는 나의 몸종이 아니고

                 평등하게 사랑하는 친구이며 부부라는 것을

                 우리의 모든 관계는 신뢰와 존중과

                 민주주의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잔업 끝내고 돌아올 아내를 기다리며

                 이불호청을 꿰매면서

                 아픈 각성의 바늘을 찌른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속칭 ‘최진실법’을 만들겠다고 한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법안의 명칭에 고인이 된 연예인의 이름을 집어넣는 의도부터가 불손하다. 고인에 대한 도리도 아니다.

그러나 고인을 모독하지 말라는 따위의 도덕선생 같은 비판에 이 정권은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들은 애초에 부도덕과 부조리를 생명의 원천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최진실법’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그러나 문제는 도덕성 정도가 아니다. 지금 정부여당에서 추진하고 있는 ‘최진실법’은 표현의 자유란 헌법적 권리에 도전하는 초법적 법률안이다. 만약 정부여당의 의도대로 ‘최진실법’이 통과된다면 그야말로 한국은 다시금 암울한 70년대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프랑스혁명 -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들라크루아 作 〕

근대시민사회는 자유에 관한 시민의 권리를 쟁취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자유에 관한 기본권 중에서도 표현의 자유는 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표현의 자유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또 폭넓은 정보의 소통과 논의를 통해 정치적 의사결정에 간여하는 참정권의 주요한 형태이다. 표현의 자유 없는 민주주의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최진실법’이란 물건을 살펴보면 인터넷 게시물에 대하여 1) 피해자의 고소나 고발이 없이도 임의 수사와 기소가 가능하고, 2) 피해자의 요청만 있으면 언제든지 해당기록의 삭제가 가능하며, 3)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한다는 등의 내용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포장지에는 피해자를 보호하고 실명화를 통해 건전한 인터넷문화를 창달하겠다는 안내문을 친절하게 달아놓았다.

‘사이버모욕죄’는 검찰에 무소불위의 칼을 쥐어주기 위한 수단
 
그러나 그 안에는 실상 전혀 엉뚱한 결론을 도출할 가능성을 감추어 두고 있다. 핵심은 검찰에 무소불위의 칼을 쥐어주는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공인이 직접 나서서 제지하지 않더라도 검찰과 경찰을 통해 얼마든지 통제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모욕 등 피해의 범주란 것도 매우 애매해서 해석남용의 소지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만약 거꾸로 공안당국이 이를 악용한다면 무고한 범죄자를 양산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고 또 이미 그럴 의도가 충분히 예상되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정치적 반대자 자체를 없애버릴 수도 있다. 히틀러 역시도 사회주의자단속법 등과 같은 초헌법적 법률을 만들어 사상과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반대자를 제거했던 악행의 역사가 있다.

물론 악성 댓글로 인한 폐해도 만만치 않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악플러를 두둔하거나 면죄부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가장 중요한 근대시민사회의 기본권 중의 하나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가면서까지 법을 만들겠다는 의도가 수상쩍은 것이다. 빈대를 잡겠다고 집을 태우는 사람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단 말인가.

‘정권보안법’ 만들어 영구집권 노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최대의 적은 다름 아닌 국가보안법이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보다도 더 포괄적이고 자의적일 뿐 아니라 무차별적으로 국민을 통제할 수 있는 신종 국가보안법이 곧 잉태되려고 한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기어이 ‘최진실법’이란 이름으로 위장한 악의 씨앗을 잉태시키고야말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다 자살로 고단한 생의 끝을 마무리한 인기연예인의 이름을 도용하는 비열한 수법을 동원하면서까지 이들이 얻으려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그들은 국민들이 모두 벙어리가 되는 바로 그런 나라를 원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원칙까지 파괴하면서 얻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영원한 자기들만의 제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항구적인 독재체제를 갖추기 위해 ‘정권보안법’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 법이 바로 ‘최진실법’이다.   

그 외에 저들이 저지르는 광포한 짓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2008. 10. 5.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고인의 영정사진 = 레디앙

오늘 탤런트 최진실이 한 줌 재가 되어 이승에서의  마지막 이별을 고했다. 비슷한 또래의 젊은 인기 탤런트의 죽음을 대하고 보니 내 마음도 착잡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런데  사람의 죽음을 앞에 놓고 여기저기서 자기 입맛에 따라  흔들어대는 역겨운 모습들이 있다. 이들의 행태는 착잡함을 넘어 차라리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네티즌 죽이기' 선봉은 역시 전여옥  

  “댓글이 최진실을 죽였다.”

  최진실이 자살한 변사체로 발견되자 언론인 출신인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남에게 뒤질세라 발 빠르게 던진 말이다. 그녀는 별로 깊게 고민할 새도 없이 마치 부검에 입회라도 한 경찰관처럼 말을 뱉어버렸다. 용기가 가상타고 하기엔 너무 어이가 없다.

  도대체 그녀는 얼마나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기에 겁도 없이 수많은 네티즌들을 범죄용의자로 지목한 것일까? 도대체 그녀의 사려 깊지 못한 발언이야말로 가장 저질스럽고 악질적인 악플이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고인의
이름을 팔아 정략에 이용하는 저속하고 비열한 정부여당

  그녀의 발언에 이어 각종 언론들도 최진실의 살해주범으로 인터넷 댓글을 지목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이때다 싶어 소위 ‘사이버모욕법’을 ‘최진실법’으로 포장하는 기발한 아이디어까지 내놓았다. 하다하다 이젠 고인의 이름까지 팔아 정치적 야욕을 쟁취하고야말겠다는 반인륜적인 착상까지 나온 것이다. 실로 점입가경이다.

  그러나 이들 언론이나 정치인들의 비열한 선정주의는 워낙 면역이 돼 있으므로 별로 걱정도 되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 국민들의 의식수준이다.

  열도 받는 김에 술이나 한 병 살까하고 동네 슈퍼에 들렀더니 슈퍼 아저씨도 TV 앞에서 역정을 내며 들으라는 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에이, 이놈의 나라가 어찌 되려고 그러는 건지. 빨갱이 놈들이 댓글인가 뭔가를 가지고 아까운 탤런트 하나 죽였구먼. 에이, 더러운 빨갱이 놈들. 이놈의 빨갱이 놈들을 전부 잡아다 한강물에 빠트려 죽여 버리든지 해야지.”

빨갱이들이 댓글로 최진실을 죽였다고?

  도대체 이 나라에 빨갱이들이 무슨 할 짓이 없어 여자 탤런트를 상대로 댓글질이나 하다가 죽인단 말인가. 참 더럽게 할 짓도 없는 빨갱이들이다. 요즘 빨갱이들은 혁명할 생각은 안 하고 댓글로 여자 탤런트나 희롱하고 다닌단 말이렷다.

  그런데 이 아저씨는 최진실을 괴롭힌 그 악플러들이 빨갱이인줄은 어떻게 알았을까? 혹시 안기부(국정원)에서 거점 활동 중인 요원일지도 모르겠다.

  전여옥 씨도 대단하지만, 우리 동네 슈퍼 아저씨도 정말 대단하다. 그나저나 이들 전여옥 씨나 슈퍼아저씨가 대책 없이 질러대는 악플은 도대체 누가 처리해줄 것인가.

  2008. 10. 4.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