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9.04.22 화왕산 참사에 쓸쓸한 낙동강유채축제 by 파비 정부권 (4)
  2. 2009.02.12 MB, 어느나라 사람이냐? by 파비 정부권 (2)
  3. 2009.02.10 대한민국은 참사공화국인가? by 파비 정부권 (3)
  4. 2008.11.25 경기불황에 시골다방도 구조조정! by 파비 정부권 (4)
  5. 2008.11.05 람사르 폐막실날 우포늪 가봤더니 by 파비 정부권 (9)

지금 창녕 낙동강 변은 온통 샛노란 물결로 넘실대고 있습니다. 창녕군 남지읍은 2006년부터 낙동강 변의 드넓은 둔치에다 유채꽃밭을 조성했습니다. 원래 이곳은 민가들이 부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장마철이 되면 상습적인 침수로 피해가 극심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창녕군에서는 남지에 새로운 이주단지를 만들어 둔치의 주민들을 옮겨가게 하고 이곳에다 체육공원과 광활한 유채단지를 조성한 것입니다남지 낙동강 둔치의 노란 유채꽃 물결은 이렇게 해서 태어났습니다. 매년 여름 장마에 시달리던 상습침수지역이 놀라운 변신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해마다 이곳에서 유채꽃 축제가 열리는 것입니다.
 

 낙동강유채축제. 창녕군이 2006년부터 매년 4월말에 개최하는 축제의 이름입니다. 작년까지 세 차례 열렸으니 올해는 4회째가 되는 셈입니다. 그러나 올해는 유채꽃축제가 열리지 않습니다. 낙동강용왕대제를 시작으로 각종 공연과 전통행사, 문화행사, 체육행사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던 이곳이 올해는 썰렁합니다.

 

창녕군은 특별한 이유에 대한 설명 없이 낙동강유채축제를 열지 않음을 공지하면서 내년에는 꼭 열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로 대신했습니다. 이유를 밝히진 않았지만 화왕산 참사로 어수선한 군청의 사정을 그저 축제위원회의 사정이란 간단한 말로 대신한 것입니다. 그러나 굳이 말하지 않아도 참담하고 고통스런 그 심정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채꽃은 예년과 다름없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출렁이는 노란 물결이 신비롭기 그지없습니다. 유채꽃 물결이 출렁이는 옆으로는 태백산에서부터 천리를 달려온 낙동강이 굽이쳐 흐릅니다. 그 위로 동족상잔의 포화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온 남지철교가 낙동강과 유채꽃밭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유채꽃 사이를 누비는 벌과 나비의 모습이 너무도 평화로운 봄날의 따사로운 햇볕,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강변은 그러나 적막하기만 합니다. 화왕산 화마의 여파가 이곳 낙동강에도 불어 닥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유채꽃밭을 날아다니는 벌과 나비도 왠지 힘이 없어 보입니다. 오직 도도하게 흐르는 낙동강만이 피 같은 물을 출렁여 힘내라고 박수를 보내는 듯합니다.

 

일을 하다 보면 뜻하지 않은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너무 잘해보려다 도리어 화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입니다. 창녕군은 큰 교훈을 얻었을 것입니다. 비록 그 교훈의 대가로 지불한 쓰라린 고통이 참을 수 없을지라도 이제 그만 훌훌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이 황량하도록 쓸쓸한 낙동강유채축제장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내년 오늘 이 드넓은 노란 유채꽃 물결 속에 넘실대는 사람들의 물결을 함께 보고 싶다고 말입니다. 꽃이 제아무리 아름다워도 벌과 나비가 칭송해주지 않으면 존재이유가 없듯이 유채꽃밭이 제아무리 화려해도 그것을 즐겨주는 사람이 없다면 무슨 보람이 있겠습니까.

 

불의의 사고에 희생된 분들의 억울한 넋을 생각하면 쉽사리 다시 축제를 열 생각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공무원들의 분위기도 어수선할 것입니다. 의기소침해 있기도 할 것입니다. 자숙하는 시간도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 정도면 되었습니다. 이제 그만 털고 일어나 내일을 향한 발걸음을 다시 시작하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내년 오늘
 남지의 낙동강가에선 다시금 희망이 노란 꽃물결에 넘실대는 유채축제를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늘에 걸린 달빛에 빛나는 유채꽃의 향기에 취해 터져나오는 노래소리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먹거리 장터에서 새어나오는 고기굽는 냄새와 파전에 동동주 마시는 소리도 그립습니다. 그러자면 하루 빨리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용기도 필요하겠지요.   

오늘도 세상 모든 영욕, 인간들의 교만과 근심과 걱정을  다 안고서도 지칠 줄 모르는 낙동강은 변함없이 침착하고도 굳센 물결을 출렁이며 흘러가고 있습니다. 실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저 낙동강의 도도하고 줄기찬 바다를 향한 집념입니다. <파비>


낙동강.강변에 유채꽃 단지가 보이고 그 뒤로 남지철교가 보인다.

지앙담. 제왕담의 남지식 발음이라 한다.

1933년 완공된 남지철교. 이편 남지쪽에는 웃개나루가 있었다 한다. 그럼 저쪽 함안에는 아랫개나루?

단일지대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유채단지. 전체면적이 12만평이라고 한다.

유채꽃에 붙은 벌이 바쁘게 작업 중이다.

유채꽃밭 사이로 난 오솔길. 오히려 한적한 이때가 연인들에겐 그럴듯한 데이트 장소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 신문사설을 보니 참으로 기가 막힌다. 청와대가 호주산불참사에 대해 위로의 전문을 보내고 유족에 조의를 표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창녕 화왕산 산불 참사로 희생된 국민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경남도민일보는 사설의 마지막을 이렇게 적고 있다.

유난스레 국민 한사람 한사람을 아주 소중히 여기는 듯 보여주기식 언행을 하면서 졸지에 화마에 목숨을 잃은 사람에 대해선 안중에도 없는 청와대를 보면서, 지방민은 이래저래 아주 언짢다.
도민일보사설보기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79168

황왕산 정상에서 불길에 쫓기는 사람들 /사진=경남도민일보

나는 기분이 언짢은 정도가 아니다. 우리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 놓았단 말인가? 시중에 MB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일본사람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돌아다니기도 했었다. 물론 별로 신빙성 없는 얘기다.

그러나 사람들 중에는 MB의 외모를 트집 잡아 사실일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또 그가 일왕이나 일본총리를 만나 했던 행동이나 말들을 보면 그런 트집이나 우스갯소리가 나올 법도 한 일이란 생각도 든다.

그런데 나는 최근 MB의 행보를 보면서 진짜 저 사람이 우리나라 대통령이 맞는지 의구심을 지우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용산철거민 참사가 났을 때도 그랬다. 그는 우선 화마에 희생된 국민에게 조의를 표하기보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지시했다. 당연히 진상규명을 지시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불법시위를 밝혀내고 처벌하라는 명령이라는 걸 모를 정도로 검경이 그리 멍청하진 않을 것이다. 뒤이어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을 필두로 살기위해 건물옥상에 올라간 철거민들을 테러범으로 규정하는 발언들이 나왔다. 나는 아직까지도 대통령이 유족들에게 조의를 표했다거나 위로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불과 20여일 만에 대형 참사가 이번에는 서울을 벗어나 지방에서 벌어졌다. 창녕 화왕산에서 정월 대보름 억새태우기 행사 도중 4명이 죽는 등 70여 명 가까이 화마에 변을 당했다. 그런데 정부측 입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지자체에서 발생한 일에 일일이 언급하는 건 좋지 않다.”고 말했다 한다.

남의 나라 국민이 죽은 것에는 위로도 하고 조의도 표하면서 제나라 국민이 죽었는데 조의는커녕 논평할 것도 없다니. 대통령이 이렇게 중요한 자리였던가. 대통령 하나 바뀌니 나라가 송두리째 바뀌었다. 나라가 온통 제정신이 아니다.

작년 이맘때 숭례문이 화재로 소실되고 난 다음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금모으기 운동을 해서 숭례문을 복원하자고 제안했을 때 ‘저사람 제정신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사실 숭례문화재의 1등 책임은 MB에게 있지 않았던가. TV에 나온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그가 제정신이 아니거나 얼굴이 대개 두껍다고 생각했다.  

화왕산 참사 당일 억새태우기 행사 /사진=경남도민일보

청계천 복원과 숭례문 개방은 MB가 서울시장 재직 시 보여준 대표적 전시행정의 케이스다. 청계천에 수돗물이 흐른다는 소문이 나돌고, 숭례문은 토지수용 개발보상금에 불만을 품은 한 노인에 의해 불타버렸다. 전시행정의 끝은 늘 이렇다.

그러나 내가 오늘 화가 나는 것은 그 때문만이 아니다. 온갖 전시행정으로 제자랑 늘어놓기에 열심이었던 자들이 막상 제나라 국민의 죽음 앞에서는 한마디 말이 없다. 남의 나라 사람 걱정은 하면서 제나라 사람 걱정은 한마디도 안한다.

사설란 옆에 보니 <전의홍의 바튼소리>가 있다. 바튼소리의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호주 불 챙긴 청와대, 창녕 쪽엔 ‘불구경 관심’” 그러고 보니 서울을 뺀 지방민은 위로 받을 국민도 되지 못하고 의례적인 조의를 받을 이웃도 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저 불구경 대상일 뿐.

정말 우리는 어느 나라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놓은 것일까?

2009. 2. 12.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어제 밤, 정월 대보름달이 휘영청 세상을 밝혀주는 그 시간, 경남 창녕 화왕산 정상에서는 참혹한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제가 처음 뉴스를 접한 시간은 8시경. 급히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켜자 사건현장을 찍은 동영상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불지옥, 아비규환이 따로 없어
수만 평에 달하는 화왕산 정상이 불바다로 변해 있었고 그곳을 향해 사람들이 안타까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소방관 몇 명이 황급히 뛰어갔지만 속수무책. 불바다 한 가운데 10여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갇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불길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불길에 쫓기는 관람객들. 사진=경남도민일보


불과 사람이 구분이 잘 안갈 정도였습니다. 정말 끔찍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찍은 동영상을 보며 마치 제가 현장에 있는 듯 너무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경남도민일보에 난 기사를 보니 4명이 죽고 2명이 실종되었으며 50여명이 부상했는데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가 더 늘어날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어제의 사고가 이미 3년 전에도 발생했으며 경남도민일보에서 크게 질책하는 기사를 썼었다는 사실입니다. 다행히 당시에는 돌풍은 불지 않아 어제 같은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행사참가자들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창녕군청 홈페이지를 거의 마비시킬 정도로 항의했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예견된 참사였던 것입니다.

경남도민일보 3년전 기사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178137
블로거 봄밤
http://metablog.idomin.com/blogOpenView.html?idxno=59184

화왕산 억새태우기 행사는 3년마다 한 번씩 여는 행사입니다. 이번이 제 기억엔 세 번째 하는 행사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미 이전 행사에서 충분히 참사가 예견됐고 지적이 있었음에도 이번에 또다시 아무런 준비 없이 행사를 강행했습니다. 도민일보의 3년전 기사제목을 보십시오.

화왕산 억새태우기, 운영미숙에 ‘아수라장’


작년 오늘, 숭례문이 불탔다
오늘은 2009년 2월 10일입니다. 작년 오늘, 그러니까 2008년 2월 10일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숭례문이 불탔습니다. 600년을 말없이 한자리를 지켜오던 숭례문이 불에 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왜란과 호란, 동족상잔의 포화 속에서도 근엄하게 자리를 지키던 숭례문이 불타버린 날입니다.

숭례문 화재의 책임은 근본적으로 현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이 중론이었습니다. 그가 서울시장 재직시절 숭례문을 개방한 것입니다. 이명박이 최고로 내세우는 업적 중에 하나가 청계천 복원이었습니다. 물론 그게 사기라는 말도 있고, 거기 흘러내려가는 물이 수돗물이란 말도 있습니다. 엄청남 돈을 매일 청계천에 흘려보낸단 말이지요.

그런데 대개 그런 소문들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시골에 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청계천에 수돗물이 흐르든 벽계수가 흐르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러나 숭례문이 불탄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때도 그런 지적이 있었습니다. 숭례문 방화가 예견되는 몇 차례 사건이 있었고 언론에 보도도 했었다고 말입니다.

그때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사태 수습책이 걸작이었습니다. 금모으기 운동을 제안했었지요. “IMF 위기 때도 금모으기 운동으로 단결된 힘을 보여주었다. 이번에도 금모으기를 해서 숭례문을 복원한다면 국민저력의 상징이 될 거다.” 그때 알아보았어야 했습니다. 그는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사고 부르는 전시행정, 비판에는 귀 닫아
그러나 MB만이 정상이 아닌 것이 아니었습니다. 온 나라가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부산의 한 체육관에서는 기독교도들이 모여 돌아가면서 부산의 절간과 전국의 절간을 불태우는 기도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범어사가 불태워 없어지도록 기도합시다. … 사상구의 모든 절간들이 불태워지도록 기도합시다. … 동래구의 모든 절간이 불태워지도록 우리 모두 기도합시다. ……”

용산참사현장. 사진=칼라TV


지난 1월 20일 벌어진 용산참사는 제정신을 상실한 이 정권의 말기적 증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용역깡패들의 횡포에 못이긴 철거민들이 빈 건물 옥상을 점거하고 신나로 바리케이드를 쳤을 때, 그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제정신이 박힌 경찰청장이라면 충분히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불과 하루도 못 견디고 특공대를 투입했습니다. MB가 그토록 부르대는 속도전 때문이었겠지요. 경찰청장 자리에 앉혀준 MB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위험물질이 가득한 곳에다 밑에서 불을 지피고 물포를 쏘아댔습니다. 정신들이 모두 나간 것입니다.

그러더니 보름달이 휘영청 온 천지를 비추던 어제 밤에는 참사행렬이 서울을 벗어나 제가 살고 있는 경남에서도 벌어졌습니다. 정신 나간 전시행정에 아까운 생명 넷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둘은 실종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50여명이 다쳤습니다. 중상자가 많아 희생자가 더 늘어날까 걱정입니다.

엄청난 비난과 비판에도 똑같은 사고 재연
앞서도 말했듯이 이번 사태는 충분히 예견된 사고였습니다. 3년 전 신문기사 제목만이라도 유념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절실합니다. “화왕산 억새태우기, 운영미숙에 ‘아수라장’”
<경남도민일보 2006. 2. 14>

그런데 그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하던 대로 전시행정을 되풀이했습니다. 요즘은 속도전 시대이니 거칠 것 없이 밀어붙이는 게 정상으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전시행정에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다치고 실종됐습니다. 실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통곡할 일입니다.

아, 어쩌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습니까? 경제를 살리라고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아놓았더니, 스스로 경제의 달인이라고 자랑하던 MB는 진짜 ‘개콘’의 달인 같은 짓만 하고 있습니다. 그 '개콘' 달인 짓을 또 지방나리들이 따라 합니다. 나라는 온통 부구덩이 천지입니다. 얼마 전 용산참사와 숭례문 참사를 비교하며 했던 말이 다시금 생각납니다. “이 정권은 불로 시작해 불로 망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고통은 야속하게도 MB가 아니라 국민들이 짊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MB를 포함한 위정자들이 정신을 차린다는 것은 참나무에 물고기가 열리길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모두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안 그러면 정말 무시무시한 불덩어리가 우리 모두의 머리위에 사정없이 떨어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2009. 2. 10.  파비

ps; 참고로 2006. 2. 14일 도민일보 기사에 달린 댓글입니다.

(.XXX.XXX.) 2006-02-14 11:01:53
좋은 기삽니다.
좋은 기사

ㅇㅇ(.XXX.XXX.) 2006-02-14 13:26:45
기사를 읽어보니
평소 도민일보를 주의깊게 읽는 사람이오만... 매번 날카롭고 예리한 지적 참으로 속시원하긴 합니다만... 이번기사는 소설 같이 썼구료... 내 그날 가보진 않았소만... 기승전결에 복선까지 준비한 이번기사는 마치 한편의 드라마 같구랴...도민일보는 도민들을 위한 이런 행사한번 추진해볼 의향은 없소? 진보주의자들의 습성중 하나가 남 약점 꼬집는 것이긴 하더라만... 정작 도민일보가 문화사업을 추진하는것은 보기 힘들구랴...

 
참가자(.XXX.XXX.) 2006-02-15 20:29:59

기사대로 죄다 사실입니다

아이들 데리고 갔다가 달집과 억새타던 모습과 불꽃놀이가 절경이었는데, 불이 번지는 중에 억새밭에 사람이 대피하고 있었고, 내려올 땐 사람들이 뒤엉킨 것도 길이 얼어버려 미끄럼 타고 어른들은 여기저기 넘어지고 우리아이도 엎어지고 매표소에 내려오니 10시가 넘었더군요.
내려오며 사람들 하는 이야기가 다시는 화왕산에 안 온다며 앞서 좋은 구경한 것을 완전히 잊어버렸을 정도로 힘들었답니다. 기사는 소설같지만 쩝- 사실이랍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요즘 경기가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서민가계의 장바구니도 많이 가벼워졌습니다. 친구들과 술 한 잔 하자는 소리도 부담스럽습니다. 환율이 1,500선을 돌파했다느니 주가 1,000포인트 저지선이 무너졌다느니 하는 건 그저 먼 나라 이야기로만 들립니다. 그런 거시적인 국가경제 이야기는 서민들에겐 소용없는 이야기입니다. 당장 먹고 사는 게 걱정이지요.

어제 창녕에 볼일이 있어 다녀왔습니다. 창녕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제가 가족과 떨어져 지내던 곳입니다. 따뜻한 동네입니다. 아직 시골다운 정서가 많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가을이면 머리에 억새물결이 나부끼는 아름다운 화왕산과 소벌(우포늪)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간다운 정이 살아있는 동네였습니다.

제가 처음 창녕에 갔을 때, 손님들을 만나기 위해 도천면의 어느 다방에 들어갔던 적이 있습니다. 커피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커피 한 잔에 삶은 달걀이 하나씩 따라 나오는 것입니다. 마담에게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여기서는 다 그렇게 서비스하는 것이니 부담 갖지 말고 많이 드시고 부족하면 더 달라고 하세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1000원이면 커피에 삶은 달걀 하나가 따라 나오던 도천의 어느 다방. 그러나 이제 그것도 옛말이 됐다.

죽 도시에서만 살아왔던 저에겐 특이한 경험이었지만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시골이라 그런지 다방 장사를 하는 데도 정이 살아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다 끝내고 일어서면서 계산을 하려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날 커피를 일곱 잔을 마셨는데 7,000원이라는 것입니다.

7,000원을 7명으로 나누면 한 사람당 커피 값이 1,000원입니다. (그집은 도시스럽게 리필도 해주더군요.) 그래서 저는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역시 7,000원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커피 한 잔에 얼마냐고 확인하듯 물어보았지만 역시 커피 한 잔 값이 1,000원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창원에 살고 있었는데 거기는 ‘다방’ 같은 것은 아예 찾아볼 수가 없고 ‘커피숖’이라는 이름의 공간도 워낙 비싼 땅값 때문인지 가물에 콩 나듯 했습니다. 이런 곳에서 차 한 잔 하고 나면 최소한 4,000원 내지 5,000원은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창녕에선 커피 한 잔에 단돈 1,000원이었던 것입니다. (면 지역이 아닌 읍내는 1,500원이었음)

그래도 벌이가 꽤 괜찮다고 했습니다. 아가씨들 월급 주고도 충분히 운영이 가능하니 그 정도 가격에 삶은 달걀까지 제공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중에 알았지만 힘든 농사일을 하다가 들에서 커피를 시켜 먹는 것이 땀 흘린 중에 즐거움이었나 봅니다. 들에 앉아 흙 묻은 장화를 신은 채 커피를 시켜 마시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옛날에는 들에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때쯤 되면 막걸리와 함께 참이 나옵니다. 일꾼들에겐 그때가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고 일하는 보람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정겨운 모습이었지요. 그러나 요즘 세상에 그런 모습을 기대할 순 없습니다. 더 이상 농촌에서 참을 머리에 이고 날라다 줄 젊은 새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자리를 오토바이를 탄 아가씨들이 차지했던 것입니다.

우포늪에서 바라본 창녕 화왕산. 꼭대기 분화구에 억새평원이 보인다.


어제도 창녕에 사는 중장비(포크레인) 운전을 하는 선배와 함께 그 다방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활기도 없어 보이고 오가는 손님들도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커피값도 1,000원에서 1,500원으로 올랐습니다. 불과 두어 달 전까지도 1,000원을 유지했는데, 원가부담을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 1,500원으로 인상했다고 했습니다. (면지역은 1,500원, 읍내는 2,000원)

그러자 손님들도 팍 줄었다고 울상입니다. 시골다방의 주 고객인 노인네들에게 1,000원과 1,500원은 엄청난 심리적 부담의 차이가 있습니다. 불황은 갈 곳 없는 시골노인들의 사랑방마저 빼앗은 것입니다.
오랜만에 들른 정겨운 시골다방도 쓰러져가는 한국경제의 참담한 현실은 비껴가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서글픈 일입니다.  

앞에 앉아 담배를 피워문 선배는 시골 다방에도 이제 구조조정 비슷한 바람이 불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결국 문을 닫고야 말 다방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산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배웅하는 선배의 어깨가 한껏 처진 모습이 차창으로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예년에 비해 유달리 일감이 떨어진 올해는 그 선배에게도 무척이나 모진 한해였다고 합니다.

내년엔 좀 나아져야 할 텐데…, IMF가 발표한 내년도 한국경제의 전망은 깜깜하기만 합니다.

2008. 11. 25.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어제 람사르 총회가 창원선언문 채택을 마지막으로 8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한쪽에서는 연안매립을 강행하면서 람사르 총회장에서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연방 외치는 정치 쇼에 불쾌해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엉뚱하게 청계천을 습지보전의 성공적 사례로 홍보하는 대통령이나 따오기 외교를 펼치는 김태호 경남지사가 광대처럼 보이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람사르 총회가 습지보전에 대한 인식을 확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만은 모두 한결 같을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을 습지 보전 모범국가로 만들기로 약속했고 이만의 환경부 장관도 갯벌의 생태적 가치를 인식하고 개발사업을 할 때 습지 보전을 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펼치겠다고 말했습니다. 워낙 거짓말을 많이 하는 정부라 이분들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분들이 별로 많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소벌 전경. 그러나 백과사전에는 우포늪의 전경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사진=위키미디어백과


포스트 람사르, 언론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 람사르 총회에서 「동아시아 람사르지역센터」를 한국에 유치하기로 사실상 확정하는 성과도 있었습니다. 포스트 람사르의 사실상 교두보가 마련된 셈입니다. 이제 이러한 작은 성과들이 정치 광대들의 쇼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환경단체들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이번 람사르 총회에 많은 지면을 할애해 준 경남도민일보와 같은 언론사의 감시역할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남도민일보는 수년 전부터 습지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전국의 습지를 취재하고 보도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그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 현재 경남도민일보 언론노조 지부장으로 있는 김훤주 기자입니다. 그는 수년 동안 습지를 훑고 취재하고 공부한 결과를 한권의 책으로 냈습니다. 바로 『습지와 인간』입니다. 그가 땀으로 쓴 이 책에는 습지와 인간이 함께 만들어 온 역사의 숨결이 고스란히 살아 있습니다. 

 람사르 총회가 폐막식을 하던 날, ‘건강한 습지와 건강한 인간’의 교섭에 관심이 많은 부산과 경남의 몇몇 블로거들이『습지와 인간』의 저자와 함께 대한민국 최대의 내륙 습지 소벌(우포늪)을 둘러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부산에서 오신 커서님의 차를 타고 아침공기를 가르며 소벌을 향해 달려가는 마음은 구름 한 점 없는 가을하늘처럼 맑고 뿌듯했습니다. 저자는 제일 먼저 우포늪 보호구역이 시작되는 창산다리로 우리를 안내했습니다. 

            
국민협조사항을 자세히 읽어보니 우포늪, 목포늪, 사지포늪은 모두 한자이름을 하사 받았는데 유일하게
            
쪽지벌만 이름을 받지 못했다. 희한한 일이다. 창산다리의 위쪽은 우포늪 생태보호구역이 아니다.
                              
창산다리 밑 습지를 관찰하고 있는 김훤주 기자와 커서, 실비단안개님. 
                               한쪽에선 강태공이 여유롭게 낚시를 하고 있었다.    

『습지와 인간』의 저자와 함께 둘러본 동양 최고의 습지, 소벌


토평천을 가로지르는 창산다리의 아래쪽은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다릿발 위쪽은 보호구역 밖이므로 아무런 제재도 없다고 했습니다. 마침 우리가 갔을 때 다릿발 바로 위 습지에는 승합차를 세워놓고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이 있었습니다. 평화로운 모습이었지만, 행정편의주의의 극단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그리 유쾌하진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릿발 아래로 펼쳐진 토평천이 만든 습지의 장관은 탄성과 함께 금새 우리의 마음을 돌려놓았습니다. 

가을에 물든 소벌은 두어 달 전에 와봤던 소벌이 아니었습니다. 저자는 올해 본 소벌은 내년에는 없다고 했습니다. 매년 매 계절 소벌의 모습은 바뀌는 것입니다. 은은하게 물든 소벌의 가을은 마치 스펀지처럼 제 마음에 찌든 도시의 소음과 매연을 빨아들이는 것 같았습니다. 저자도 책에서 그런 말을 한 것 같습니다. 이곳에 두 시간만 가만히 앉아있으면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토평천 습지 갈대밭 사이를 걷는 실비단안개님


누렇게 물든 갈대와 노릇노릇하기도 하기도 하고 불굿불긋하기도 한 습지의 생물들이 만들어내는 장관에 우리는 흠뻑 빠졌습니다. 그때 여러 명의 아저씨와 아주머니로 구성된 관광객들이 우리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그분들은 승합차를 타고 오셨는데 전망대를 찾아간다고 했습니다. 전망대는 반대편에 있었습니다. 친절한 성품의 저자가 세세하게 길을 이러주었지만, 그들은 질러서 빨리 갈 수 있는 길이 없다는 사실에 짜증만 내고 있었습니다.

습지는 아는 만큼만 보여준다.

그들의 눈에는 바로 앞에 펼쳐진 천상과도 같은 그림이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천상의 그림 속에서 왜가리며 쇠오리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았나 봅니다. 그들은 어떡해서든지 공신력 있는 관청이 만들어놓은 전망대에 가서 우포늪의 장관을 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짜증을 내며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웃음이 나왔지만 속으로만 흘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분들은 고맙다는 말도 잊은 채 먼지를 일으키며 떠났지만, 무사히 전망대를 찾아 ‘공식적인’ 장관을 감상하며 즐거워했기를 빌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탐방관이나 전망대를 만들어놓고 자신들의 업적을 자랑하듯 자기들이 아는 우포늪을 열심히 홍보하는 정치관료들이 고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소벌은 이렇게 평화로운 자태를 유지하며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매번 새로운 모습을 선보일 수 있는 게 아닌가하고 말입니다.

소벌 너머 보이는 화왕산 정상 오목하게 패인 넓은 평원에도 산지늪지가 있다. 촬영장소는 나무갯벌(목포)


소벌은 너무나 넓었습니다. 하루에 다 둘러보기에는 무리였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근처에 1박 하면서 차분히 둘러보아야 소벌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룻밤 이곳에서 묵을 수 있다면 깜깜한 소벌의 물위에 떠오른 달과 별을 볼 수 있는 행운도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새벽을 타고 들어오는 아침햇살이 채 반짝이기 전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더 없는 행복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1970년대에 습지를 메워 농토를 개간한 기념비를 둘러보았습니다. 1986년에 세워진 이 향군건설기념비에는 거대한 습지를 둑을 쌓고 메워 땅으로 만든 역사가 고스란히 적혀 있었습니다. 역사의 주인은 재향군인회였던 모양입니다. 당시는 박정희 유신정권이 있었던 시대이므로 매우 힘 있는 조직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일대는 원래 ‘사물포’라는 습지였는데 1963년에 시작해서 1971년에 공사가 완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덧붙인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사물포 아래 ‘세거리벌’이라는 습지를 추가로 메우는 공사가 1979년에 완성됨으로써 이 일대 거대한 습지는 마침내 육지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기념비가 있는 곳에서 모퉁이를 한 번 돌아가자 바로 창녕 읍내가 나왔으니 오래 전에는 이 일대의 습지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했으리라는 짐작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경남도는 논이 된 과거의 습지를 다시 되살려 천변저류지를 조성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혔습니다. 실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정일 처 성혜림 생가. 사진출처=까페 '들꽃풍경' http://cafe.daum.net/iyippo


소벌 입구에 우뚝 솟은 거대한 김정일 처의 생가 

고속도로를 찾아 나오는 길에 소벌을 들어서던 입구에서 언뜻 보았던 거대한 고가를 다시 만났습니다. 저자는 저곳이 창녕 성씨의 고택으로 성혜림의 조상들이 살던 집이라고 했습니다. 성혜림도 저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고 했습니다. 99칸짜리 대궐 같은 집이라고 했는데, 일견해 보기에도 대원군이 살던 운현궁보다 훨씬 거대해 보였습니다.

가만, 성혜림?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습니다. 바로 김정일 조선로동당 총비서의 아내이며 가끔 TV에 나타나 기행으로 물의를 일으키던 김정남의 어머니였습니다. 1억 5천만년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창녕에 또 다른 현대사의 비밀이 숨어 있었습니다. 창녕, 정말 신비로운 곳입니다. 우리는 우스갯말로 그런 소리를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김일성이 일가도 부르주아였네?” 

이미 해는 떨어지고 사방은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출발지였던 경남도민일보 앞으로 돌아온 우리는 금새 헤어지지 못하고 인근의 감자탕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모두들 멀리 가야 한다는 핑계로 술을 기피하는 통에 저 혼자 내어온 술을 다 마셨습니다. 그리고 채 식지 않은 감동에 겨워 일행들에게 쑥스러움도 잊어버리고 말했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한지가 채 두 달밖에 안 된 올챙이라 포스팅 주제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오늘 해결이 됐네요. 앞으로 습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써 볼 생각이에요. 김훤주 기자가 쓴 『습지와 인간』을 따라 답사하듯 하면 그리 힘든 일도 아닐 거여요. 환경운동이 뭐 별건가요?”

그런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고민입니다. 저 혼자 만족하자고 취재하고 포스팅하는 게 아니라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고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터인데, 그런 재주가 제겐 턱없이 부족합니다. 은밀하고 신비로운 자태를 내어준 습지에게도 체면이 아닙니다. 그래도 앞으로 시간 내어 해보렵니다. 누라 뭐라고 하든지 보람 있는 일이 아니겠느냐고 아직은 식지 않은 감동이 제 마음 속에서 속삭이는 한 말입니다.  

2008. 11. 5.  파비
습지와 인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김훤주 (산지니,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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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