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11.04 일본군 장교가 친일파 아니라면 누가 친일파일까? by 파비 정부권 (70)
  2. 2009.05.11 진중권, 한겨레와 손석춘 완전 맛이 갔네요 by 파비 정부권 (4)
  3. 2009.01.20 총리, 사람 죽여 놓고 유감이 뭔 말이여? by 파비 정부권 (28)
  4. 2008.11.03 교사폭력은 군사독재의 유령이다 by 파비 정부권 (33)
참 희한한 세상입니다. 친일파를 보고 친일파라고 하면 빨갱이라고 하는 세상이니 말입니다. 보수파 회원들이 친일인명사전에 박정희의 이름을 게재한 민족문제연구소를 향해 "왜 박정희가 친일파냐? 너희들은 빨갱이냐?" 라고 고함을 치며 거칠게 항의했다고 합니다. 주로 노인네들로 구성된 이분들은 국가쇄신국민연합 소속이라고 밝혔다고 하는데 참 별난 단체도 다 있습니다. 

만주군 박정희 @오마이뉴스-박정희 인터넷기념관


일제의 식민지배가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뉴라이트

그러고 보니 일전에 김대중 대통령 묘를 국립묘지에서 파내겠다며 난동을 부리고 국립묘지에서 나오던 참배객을 구타해 피를 흘리게 만들었던 일단의 노인들 생각이 납니다. 그분들도 무슨 보수단체 소속이라고 했었지요. 어느 신문기사를 보니 매일 그런 류의 집회에 참석하고 동원되는 대가로 점심을 얻어먹는다고 하더군요. 이 국가쇄신국민연합이란 단체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언제부터 대한민국의 보수파나 우익단체들이 친일파의 대변인 내지는 앞잡이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나라의 앞날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수우익의 선봉대를 자임하는 자유주의연대 등 뉴라이트는 아예 "일본이 조선을 식민통치함으로써 근대화가 앞당겨졌다"는 해괴한 주장을 하는 판이니 그리 새삼스러운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보수우익들도 일본이 조선을 식민통치한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하겠지요. 그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박정희가 대한민국의 대통령 자리에 남들보다 오래 앉아 있었다고 해서 일본육사를 나와 일본군 장교로 만주에서 연합군과 교전을 치른 친일 전력을 부정하는 것은 마치 이완용이 한일합방에 부역한 사실을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 "이완용이 비록 일본에 나라를 팔아넘겼지만 친일파는 아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누가 그를 일러 미쳤다고 비난하지 않겠습니까? 또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독립군을 잡아 고문하고 죽인 친일경찰에게 "그는 그저 직업에 충실했을 뿐 친일파라고 할 수 없다!" 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어느 누가 분개하지 않겠습니까?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렇게 못하겠지요. 그런데 실제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본군이었지만, 친일은 아니다?

바로 박정희의 유족들입니다. 박정희의 유족이란 다름 아닌 박근혜, 박지만 등 박정희의 자녀들을 말함입니다. 박정희의 아들 박지만이 법원에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할 예정인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법원에 '박정희의 이름을 게재하지 말 것을 청구하는 가처분신청'을 냈다고 합니다. 주장의 요지인즉슨, "비록 일본육사를 나온 일본군 장교였지만 만주군에 근무했으므로 친일을 했다고 볼 수 없다" 라는 것입니다. 실로 어이없는 주장입니다.

이런 주장을 논거로 제시하는 박정희 유족들의 변호인들도 한심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만주군이 곧 일본군이란 사실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만약 만주군이 일본군이 아니라면 일본육사 출신의 장교가 왜 만주군에 근무한단 말입니까? 이런 주장이 서슴없이 횡행하는 대한민국 법조계의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말이면 다냐?"가 그들에겐 "다다!"로 통하는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헌재의 미디어법 판결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박정희 추모제에 참여한 박지만, 박근혜 @오마이뉴스


"일분군이었지만, 친일이 아니다"란 주장이나, "미디어법이 위법하게 통과됐지만, 유효하다"란 판결에는 일맥상통하는 보수우익의 정신이 숨어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예가 있군요. 삼성 X파일을 폭로한 혐의로 기소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도둑놈을 신고했다는 죄로 재판받고 있는 경우입니다. 그는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만약 2심에서도 1심의 형량이 유지된다면 노회찬은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수 없습니다. 진보신당으로서는 치명적인 타격입니다. 그러나 그의 정치생명보다는 정의가 실종됐다는 보다 근본적인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제 도둑놈을 신고하면 안 되는 시대가 됐습니다. 도둑이 확실한데도 도둑을 도둑이라고 하면 명예훼손이 되는 것입니다. 

도둑놈보고 도둑이라고 하면 범죄자가 되는 세상

물론 여기서 말하는 도둑들은 사회적으로 힘이 있는 도둑들이겠지요. 박정희가 일본육사를 나왔다는 것도, 일본군 장교였다는 것도 모두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친일파란 것도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제 일본육사를 나왔다고 해서, 일본군 장교였다고 해서 친일파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만주군은 일본군이 아니라는 거짓 증언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모두들 주지하듯이 박정희는 일제시대에 교사였습니다. 당시에 교사는 꽤 괜찮은 직업이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그때 교사보다 더 좋은 직업이 얼마나 있었겠는가를. 그런 직업을 내팽개치고 만주군관학교로 가게 된 배경에는 출세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있었던 것입니다. 나이가 많아 군관학교 입학이 어려웠던 그는 진충보국을 혈서로 써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 합니다. 이는 조갑제의 말이라고 하니 가히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만약 조갑제가 거짓으로 이런 말을 했다고 하면 박정희를 신격화하는 그가 일제도 동경한다는 말이 되겠지요.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 보면 10·26 당시 궁정동에서 통닭(당시 중정이나 경호실 은어)이 된 심수봉에게 엔가를 시켜 들으며 감상에 젖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런 모습들이 그저 영화 속의 픽션만은 아니라는 것을 대개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건 어쩌면 박근혜가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박정희가 경제를 부흥시켜 국민들이 배곯지 않게 됐다는 주장에 대해선 별로 하고 싶은 말이 없습니다. 사실 18년 동안이나 권좌를 지키면서 치적이 아무것도 없다면 그야말로 부끄러운 일이지요. 우리나라에 일하러 온 중국인(그중 대부분은 중국교포)들과 술자리를 같이 하다 보면 놀라운 소리를 듣게 됩니다. 개방개혁 기치를 내건지가 오래된 중국 사람들은 아직도 모택동을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박정희의 경제부흥 치적? 18년 동안 장기집권하며 그것도 못했다면 식물인간이지

"모택동 주석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오늘날 이 자리에 없어요. 전부 다 굶어 죽었지." 만약 북한 동포들을 똑같은 자리에서 만나 술을 마셨다면 이런 소리를 들었을 겁니다. "김일성 주석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모조리 미제의 노예가 되어있었겠지비. 수령님의 은덕이 있었기에 공화국이 오늘날 이토록 부강하고 잘 먹고 잘 사는 나라가 된 기야요." 그들이 하는 말은 실제 진심에서 우러나온 듯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어떨 땐 조갑제 같은 박정희 추종자들의 심정을 이해할 때도 있습니다. 북한 동포들에게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신인 것처럼 그들에게도 박정희는 신이겠지요. 그리고 대개 이분들은 박정희를 비판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어떤 대통령이 박정희처럼 그렇게 청렴결백하고 근면하고 검소하게 사신 분 있었는가." 오죽 나라가 부패했으면 이런 말이 나오나 싶기도 하지만, 막상 박정희가 청렴결백한 대통령이었다고 하니 실소할 힘도 없어집니다.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찬탈한 자에게 청렴결백이란 말을 갖다 붙이는 것도 우습지만, 그렇다 치고, 정말 박정희가 청렴결백했을까요? 그럼 박근혜와 박지만이 지금 배 쫄쫄 곯아가며 고생하고 있습니까? 우선 박근혜의 재산내역이나 살펴보고 그런 말을 하더라도 해야지요. 박근혜는 재벌입니다. 만약 박정희가 그토록 청렴결백했다면 박근혜가 가진 재산들은 도대체 무얼로 해명할 거죠? 게다가 그녀의 드러난 재산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합니다. 박정희 시대는 암흑시대였다는 점을 상기해보십시오.

아무튼 좋습니다. 경제개발에 엄청나게 공이 많았다고 인정해줍시다.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 청렴결백했다고 인정해줍시다. 그래도 박정희는 역시 일본군 장교이며 친일파입니다. 그의 형 때문이었다고 변명하지만 한때 좌익운동에 연루되어 처형당할 위기까지 갔다가 동지들을 배신하고 밀고한 대가로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글쎄, 그것도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고 인정해줍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교사란 좋은 직업을 내팽개치고 만주 목단강까지 달려가 만주군관학교에 입교했다는 사실입니다. 

박정희가 친일파가 아니라고 한다면, 전국은 친일파의 기념관으로 넘쳐날 것

그리고 일본육사에 편입해 졸업 후 일본군대에서 복무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그를 친일파가 아니라고 한다면 도대체 누구를 친일파라고 해야 합니까? 강제로 일본군에 끌려간 것도 아니고 자의로 입대했으며, 그것도 나이 제한에 걸려 어렵게 되자 일본과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진충보국'이란 글자를 혈서로 써 바쳤다니 이를 두고 친일이 아니라고 한다면 도대체 누가 친일파란 말입니까? 

내가 살고 있는 마산에서는 친일파로 지목받고 있는 이은상과 조두남의 기념관 건립 문제로 한동안 홍역을 앓았습니다. 유명한 시인이며 작곡가라는 이유로 황철곤 마산시장은 이들의 기념관을 건립하려고 했습니다. 희망연대 등 시민단체들의 저지로 잠잠해졌지만, 이들 친일파들의 기념관을 짓고자하는 시도는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습니다. 만약 박정희가 친일파가 아니라고 하는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래, 봐라. 일본육사를 나와 자발적으로 일본군 장교가 되어 조선을 해방시키려는 연합군에게 총부리를 겨눈 박정희도 친일파가 아니란다. 그런데 약소한 친일을 한 데 불과한 이은상과 조두남의 기념관도 못 짓게 하다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맞습니다. 박정희처럼 직접 황군의 장교가 된 자도 친일이 아니라는데 그저 글줄이나 긁적여 일제에 아부한 이은상이나 조두남 나부랭이가 친일이라니요.

전국이 친일파를 찬양하는 기념관으로 넘치고 친일파가 아니면 존경받지 못하는 세상이 되더라도 할 말이 없는 거지요. 안중근 의사가 이토오 히로부미를 격살한 날은 10월 26일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박정희를 비명에 가게 한 총탄이 발사된 날도 바로 10월 26일입니다. 물론 우연입니다. 그러나 우연치고는 너무나 기묘한 우연이지요. 안중근 의사의 의거 1백주년이 되는 이때 들려오는 이 불미스러운 소식들도 어쩌면 우리를 일깨우기 위한 하늘의 소리가 아닐런지요.
Posted by 파비 정부권
어제 12시경에 전화를 받고 나갔다가 이제야 집에 들어왔네요. 창녕에 사시는 아는 형님 아들이 죽었다는군요. 이제 겨우 21살인데… 농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식을 놓고 오열하는 형수님을 보고 있으려니 저도 눈물이 앞을 가리더군요. 정말 이런 초상은 처음이었습니다. 밀양의 화장장으로 마지막 떠나는 모습을 보고 마산으로 돌아왔지만,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최진실 씨의 안타까운 사연이 있은 지 오래지 않아 그 상처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이번엔 장자연 리스트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지요. 조선일보의 방사장(나는 이분의 이름을 아직도 모름)이란 분의 이름이 리스트에 올랐다 해서 세상을 더 시끄럽게 했었지요. 그래서 조선일보가 민주당의 이종걸 의원을 검찰에 고발했다지요? 그런데 저는 왜 아직도 그 방사장이란 분의 이름을 모르는 것일까요?

어떤 언론도 가르쳐주는 분이 없으니…. 조선일보의 김대중 고문도 그냥 ‘그분’이라고만 하시더라고요. 주일에 성당에 앉아 졸다보면 신부님이 가끔 그런 표현을 쓰시거든요. ‘그분’…, 이때 그분이란 당연히 하느님을 말하는 것이지요. 하여간 한동안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이 세상을 달구었었는데요. 그게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나다니,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해 비몽사몽 하다가 머리를 깎고 간신히 정신을 차려 컴퓨터 앞에 앉아 이틀 동안 못 본 뉴스들을 검색하다가, 이런… 제길…, 아주 기분 나쁜 인터뷰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한겨레신문이었는데요. 자기가 뭐 조승수 의원에게 후보를 양보했다나요? 졌으면 깨끗하게 진 것이고 진보진영 후보단일화로 승리한 것을 축하해주면 될 일이지 참 더러운 인간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노당 최고위원 겸 대변인이던 박승흡 씨가 깽판 치며 낙선운동 분위기 조장한 걸로도 모자라더란 말입니까? 김창현 씨가 진보신당 사람들을 비롯한 반주사파 진영의 사람들에게 종북의 수괴로 지목당했던 전과가 있다는 건 사실일 겁니다. 기분 나쁘겠죠. 그러나 거기엔 아무런 근거가 없었던 게 아니잖아요? 김창현 씨가 그런 빌미를 제공했던 게지요.

김창현 씨가 자기를 주사파라 부르지 말고 자주파라 불러다 달라고 했던 기사를 본 기억이 나네요. 옳습니다. 그래 달라면 그래 주면 되는 거지요. 주체든 자주든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그건 그렇고, 그런데 우습게도 지금도 종북논쟁을 선도하고 있는 것은 김창현 씨를 비롯한 민노당 사람들이란 겁니다. 

계속 그러시니 종북 문제가 도마에서 내려갈 생각을 안 하지요. 빨리 국 끓여먹고 설거지를 하던지 해야 하는데 말이지요. 하여간 기분 꿀꿀한데 엎어치기로 더 꿀꿀해졌습니다. 하여, 한마디 한마디 안 할 수가 없겠다 싶었는데, 마침 진보신당의 진중권 교수가 적절한 멘트를 날렸네요. 아주 훌륭합니다. 제 생각하고 아주 똑같습니다. 

손석춘 씨는 아마도 김창현 같은 부류의 사람들 눈치 보느라 그러는 거 대충 눈치 채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약칭 새사연)인가 하는 거 만들어 새로운 통합을 선도하면서 나름대로 정치적 지분을 노리는 뭐 그런 고수 흉내를 내보고 싶은 모양인데(그거 이미 이수호 씨가 시도하다 실패한 작전인 거 이분은 아직 모르시나?), 이분 아직 철이 덜 든 거지요. 세상 물정 모르는 꼬맹이 같은 늙은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나이가 많아보이진 않으시던데.

저는 진보신당 아이디가 없어 댓글로 진중권 선수에게 이 글 좀 빌려간다고 허락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냥 여기다 갖다 붙입니다. 뭐 다른 언론들도,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진보신당 게시판에다 읊조린 진중권 교수의 일기를 많이들 인용하더라고요. 제가 볼 때 그 사람들도 일일이 허락을 맡는 것 같지는 않던데, 하여간 이 정도로 하고 저는 부족한 잠이나 채워야 할까 봅니다. 

어쨌든 졸면서 수고했어야 할 피로를 덜어주신 진중권 씨에게 감사드리면서.   파비 

손석춘 완전 맛이 갔네요
오로지 머릿속에 '미국' 밖에 안 들어있나 봅니다. 그러니까 달라이 라마가 미국의 전략에 놀아나는 측면을 왜 못 보냐는 얘기죠. 티벳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당연히 전 세계의 지지가 필요하지요. 세계의 강대국인 미국의 지원은 말할 필요도 없구요. 미국이 중국의 인권문제를 거론하기 위해 달라이 라마를 이용한다 할지라도, 중국에 심각한 인권문제가 존재하고, 그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보편인류적 관점에서 정당한 한, 그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는 거죠. 

또 하나 나를 기가 막히게 하는 얘기는 달라이 라마 망명 전의 티벳이 이상사회가 아니었다는 대목입니다. 이것은 정확히 티벳이 아직 봉건사회였을 때 사람의 가죽을 벗기던 습속이 있었다며 사람 가죽 사진을 서울 시내에 버젓이 전시했던 중국대사관측의 논리죠. 그러는 중국은 봉건사회 때에는 어디 건전했나요? 사람의 살점을 천 조각을 내서 처형하는 능지처참을 하던 야만적 사회였지요. 능지처참의 장면은 아예 동영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손석춘의 말은 결국 일제의 논리와 똑같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들어오기 전에 조선은 과연 해방된 사회였냐는 거죠. 신분제로 민중이 차별받고, 양반계급에게 착취와 수탈을 당하던 사회였지요. 그렇게 억압받던 조선인을 일제가 해방시켜 준 측면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냐, 뭐 이런 얘깁니다. 미국을 비판하며 북한의 중국 추종을 옹호하는 민족좌파, 혹은 주사파의 논리가 결국은 일제를 옹호하는 뉴라이트 논리와 동일하다는 것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하여튼 손석춘이란 사람, 이미 맛이 오래 전에 갔으니, 관심 끊어도 될 것 같습니다. 아울러 손석춘씨, 진보신당에 대한 관심도 좀 끊어주세요. 계속 민노당이랑 항미연북이나 하면서 연방제 통일의 그날을 위해 여러분들끼리 따로 열심히 매진해 주세요. 아울러 이참에 반수구연대를 위해 민주당과 합당을 하시지요. 민주당이 있는데, 민주노동당을 따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야말로 민중 앞에서 대역죄인이 되는 거 아닐까요? 지금 민노당 사람들, 민노당에 들어오기 전엔 다들 그렇게 얘기했었는데.... 

아울러 '연합'이니 뭐니 하는 애들의 수구적 작태나 계속 옹호하시구요. 내가 울산에서 겪어 보니까, 강대표님이 참 불쌍합디다.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선출된 당대표가 무슨 꼭둑각시인지,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이상한 사람의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하더군요. 그 친구, 뭐하는 친구인지 모르겠어요. 민노당 내부에 무슨 정치보위부 같은 게 따로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하여튼 내 눈엔 민노당의 진짜 대표가 강기갑이 아니라 김창현으로 보이더군요. 

하여튼 이 티벳에 대한 태도만 봐도, 진보신당은 민노당과는 완전히 다른 정치적 사상과 목표를 갖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북한이 미국에 당하는 것(?)을 비판한다면, 당연히 티벳이 중국에 당하는 것도 비판해야지요. 미국이 어디 북한 사람들 죽입디까? 하지만 중국은 티벳 사람들 마구 죽이더라구요. 이 가공할 인권유린을 보고도, 제기하는 게 달라이 라마와 미국의 유착의혹이라니... 그건 인두껍을 쓰고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죠. 

ps.
한편, 한겨레 기자에게 한 마디. 뭐, 김창현이 겨우 26표 차이로 졌다고요? 게임 규칙은 자기들이 유리할 대로 다 짜놓고, 10배나 더 많은 울산 지역의 당력으로도 모자라, 모자라 전국의 연합조직 총동원해 울산을 온통 주황색 잠바로 도배질하다시피 하고도 졌다면, 적어도 조승수 개인과 김창현 개인의 실력 차이는 확연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역민으로부터 받는 지지는 그렇게 인위적인 방식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게다가 '깨끗하게 승복'했다구요? 승복하기로 약속했으면 승복하는 게 당연한 거죠. 게다가 안 하면 어쩔 겁니까? 그럴 경우 분노한 울산의 유권자들이 민노당 조직을 아예 들어내 버릴 텐데요.... 게다가 깨끗하게 승복한 것도 아니죠. 박승흡인가 뭔가 하는 친구는 승복 못하겠노라로 아예 당직을 내던지더군요. 대변인이라면 그냥 일반 당원도 아니고 당의 공신력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 아닙니까? 그런 자리에 있는 분이 선거 끝나기도 전에 수틀린다고 파토부터 놓은 민노당이었습니다.

대동단결하자던 그 사람들이 자기들 후보로 대동단결을 못하게 되자, 자기들이 분열주의 노선을 걷더군요. 이거야말로 민중 앞에서 대역죄를 짓는 게 아닐까요?
                <진중권>
Posted by 파비 정부권

용산 철거민 참사에 대해 한승수 국무총리가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총리입니다. 지난 가을에는 대통령이 불교계를 향해 유감을 표명한 적이 있습니다. 서울시를 하나님에게 헌납한 이명박을 기쁘게 하고 싶었던지 전국의 절간을 다 태워 없애자고 기도하던 시골도시의 어떤 시장도 있었지요.

여하튼 결국 이명박이 직접 TV 화면에 나와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그때도 저는 그런 대통령을 보며 참 유감스러웠습니다. “무엇 때문에 사태를 모면하고자 자기도 무슨 뜻인지 잘 알지도 못하는 ‘유감’이란 말들을 저렇게 함부로 할까? 무엇이 유감인지 알기는 알고나 저런 말을 쓰는 것일까?”

살인계획 뉴타운 사업 반대집회 모습. 사진/오마이뉴스

그래서 유감이란 말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 사전에 나오는 용례를 찾아 제 블로그에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소개했던 유감(遺憾)의 뜻과 용례를 다시 한 번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감(遺憾) :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불만스럽게 남아있는 느낌”

용례를 살펴보니,

“유감을 품다.” “내게 유감이 있으면 말해 보아라.”

“우리는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박완서 ‘도시의 흉년’)

“양 서방은 노상 나이대접을 안 해주고 떵떵거리는 김두수에게 유감이 많다.” (박경리 토지)

또, 유감에 관한 기사를 검색해 보았더니,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근태 당시 보건복지부장관의 발언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 전례’가 있다.

유감이란 이럴 때 쓰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릴 때 동무들과 놀다가 싸움이 벌어지면 먼저 따지는 것이 있습니다. “유감 있나?” “그래. 유감 있다!” 그러면 둘은 서로 주먹다짐을 주고받습니다. 그리고 둘 중 하나는 코피가 터지게 되고 싸움은 끝납니다.

물론 유감이란 표현을 이용하는 또 다른 사례도 있습니다. 과거 일본 총리가 일제의 조선강점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전례가 있습니다. 물론, 이 애매한 유감표명은 나중에 다른 일본 총리에 의해 번복되어 취소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유감이란 말이 사과 하기는 싫은데 그러지 않으면 뭔가 난처한 입장을 피하기 어려울 때 던지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국무총리가 표명한 유감은 위에 든 용례나 사례 중 어디에 해당할까요?

그러나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닌 듯합니다. 그 유감의 의미가 무엇이든 이 사태에 대한 총리의 언사로는 적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총리는 고작 유감이란 말밖에 생각나지 않았을까요? 그의 머릿속에는 유감이란 단어 외에는 들어있지 않았을까요?

우리 말 중에는 이런 경우에 쓸 수 있는 좋은 말이 많이 있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엎드려 사죄드립니다.”

정히 할 말이 없으면 이러면 됩니다.

“참으로 무어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물론 그래도 용서받기 어려운 일일 터인데, 총리란 사람이 하는 말이 고작 유감이라니… 그런데 총리의 유감 표명이 우리나라에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말을 하기 싫으면서도 난처한 국면을 회피하기위해 사용하던 일본 총리의 유감과 하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뻔뻔스러운 일본의 모습이 자꾸 눈에 어른거립니다.

2009. 1. 20.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초등 2학년생에 대한 과잉 체벌 사태에 이어 또다시 체벌 논란이 재연되고 있습니다. 대구의 모 여고에서 교사가 단체로 학생들을 체벌하는 과정에서 한 여고생의 뺨과 허벅지를 구타하는 동영상이 유포돼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지난 5월에는 전북 익산의 한 여학교 운동장에서 교복치마를 입은 여학생 40여 명을 일렬로 엎드려뻗쳐 시킨 상태에서 엉덩이에 5대씩 몽둥이로 구타하는 장면이 TV에 방영되는 등 체벌 사태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영화 『말죽거리잔혹사』에서 야구배트로 학생들을 구타하는 장면은 실제 우리네 모습이었다.


학교폭력에 대한 잔인한 추억

저는 얼마 전 초등생 구타 사건이 났을 때,
“초등생 체벌사태를 보며 드는 잔혹한 추억”이란 제목으로 포스팅을 한 바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말죽거리 잔혹사」란 영화에서 나왔던 장면이 제가 고1 때 우리 급우 한명이 담임선생님에게 폭행당하던 장면과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에 그렇게 제목을 붙였던 것입니다. 정말 우리는 지긋지긋한 폭력교실에서 일상화되고 제도화된 구타를 인내하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저도 국민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에게 밀대자루(밀걸레 자루)로 속칭 빳다 20대를 맞은 기억이 있습니다. 자습시간에 조용히 공부하지 않고 떠들었다는 이유로 엎드려뻗쳐해서 하나 둘 세어가며 맞았던 것입니다. 물론 맞은 것이 이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 아들이 지금 초등학교 5학년입니다.  그래서 그때 엎드려뻗쳐해서 빳다 20대를 하나 둘 세어가며 맞던 제 모습과 어린 제 아들놈을 가끔 비교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상상이 가지 않는 일입니다. 

저는 맞은 기억 외에도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치심에 몸을 떠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1979년에 저는 까까머리 중3이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대대장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학교는 매주 월요일과 토요일에 ‘전체조회’를 했습니다. 저는 30리가 넘는 산골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다녔지만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딱 한 번 지각을 했는데, 하필 이날이 ‘전체조회’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전체조회’를 빠트린 저는 교무실에 불려가 예의 빳다를 맞은 다음 교무실 앞 복도에 무릎을 꿇고 손을 든 채 벌을 받게 됐습니다. 교무실 양 옆으로 좌측에는 3학년 남학생 교실이 우측에는 3학년 여학생 교실이 있었습니다. 잠시 후 저에게 빳다를 때린 그 선생님이 다가오시더니, “이새끼, 손 똑바로 못 들어? 안 되겠군.” 하시더니 자기 책상에서 사과를 하나 들고 와서는 한 입 크게 베어 무시더니 남은 사과를 제 입에 척 물리셨습니다. 그러면서 떨어뜨리면 각오하라는 협박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폭력은 교사 스스로를 비인간화 시킨다

여러분께서는 그 이후의 제 심정이 어떠했을지는 말로 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하시리가 믿습니다. 예민한 사춘기의 소년이 동급생인 여학생들 앞에서 당했던 수모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그 사건 이후에 제가 매주 두 번씩의 ‘전체조회’를 어떻게 진행했으며, 또 남은 학교생활은  어떻게 마무리했는지 정말이지 아득합니다. 그런데 그 전한○ 선생님이 단지 조회 한 번 빼먹었다고 저한테 그러신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게지요.

이 선생님은 니콘 카메라를 가지고 계셨는데 어느 날 그걸 잃어버리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담임인 반의 저와 친한 친구 한 놈이 그걸 훔쳤다고 의심을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친구가 이 선생님 집에 가서 구두며 신발들을 가끔 도랑에다 내버리는 통에 슬러퍼를 끌고 학교에 오신 적이 많았었거든요. 선생님도 자기에게 자주 맞던 그 친구가 그랬으리라고 짐작하셨던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이 친구를 지서에 신고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가 선생님의 신발을 가끔 훔쳐다 버리는걸 아는 제가 다그쳐 물어봤더니 자기는 절대 안 훔쳤다고 결백을 주장하는 겁니다. 이 친구는 저보다 국민학교 3년 선배였고 소위 ‘꼴통’이었지만 저하고는 아주 친했습니다. 그리고 저한테 거짓말 할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교무실에 계신 그 선생님에게 가서 “걔는 절대 안 훔쳤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만 오해를 풀어주십시오.” 하고 부탁드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아무런 증거도 없는데 지서에서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후 그 선생님이 제게 앙심을 품었을 거라는 짐작을 ‘조회 사건’ 이후 하게 됐습니다. 산골 오지에 살았던 저는 니콘 카메라가 세계에서 제일 좋은 카메라였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학교폭력은 결국 군대와 사회로 이어져

우리가 학교를 다니던 유신독재와 5공화국에서 교사의 존재는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이었습니다. 그러나 또한 존경받지 못하는 권력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당시의 교사들이 사회에 전반적으로 팽배한 군사문화의 폭력적 경향에 최면이 걸린 불행한 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당시에도 일제시대 교사들이 칼을 차고 가르치던 시대를 추억하는 엉터리 같은 선생님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집단적 최면의 피해자라고 이해를 하는 편이었습니다.  

옛날 교련 선생님들은 이렇게 군복을 입고 학생을 지도했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부터 길들여진 폭력 문화는 결국 사회 전반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맞은 놈이 더 잘 팬다는 속설도 있습니다. 무의식중에 주입된 폭력을 통한 문제 해결 방식은 군대에서 그 절정에 다다르고 결국 가정에까지 침투하는 것입니다. 어느 틈엔가 우리는 대화를 통한 모색보다는 폭력을 통한 손쉬운 해결을 추구하는 습관에 길들여지게 됩니다. 학교가 민주주의의 적을 훈련시키는 부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학교와 사회를 지배하던 폭력적 군사문화도 유신정권이 궁정동의 총성과 함께 종말을 고하고, 전두환의 5공화국도 6월 항쟁으로 막을 내리면서 서서히 종적을 감추는가 했습니다. 그런데 유신도 아니고 5공도 아닌 21세기 선진 대한민국의 학교에서 버젓이 폭력이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폭력이란 것들이 모두 상식을 초월하는 것들입니다.

9살짜리 여자아이의 엉덩이를 피투성이로 만들어놓는가 하면, 여고생의 뺨과 허벅지를 무자비하게 구타하는 장면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여고 2학년은 학생이란 신분만 뺀다면 성숙한 여성입니다. 아무리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성숙한 여고생의 뺨을 후려갈기고 허벅지를 때릴 수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치마 입은 여학생들을 운동장에 일렬로 엎드려뻗쳐 시킨 상태에서 몽둥이로 엉덩이를 두드려 패는 장면은 무슨 말로도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학교와 교사가 폭력을 조장하고 가르쳐서야

이건 폭력이나 구타의 수준을 넘어 변태라고까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올바로 된 정신 상태를 가지고 이런 일을 벌인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어린 딸아이들 둔 부모로서 소름이 끼치는 일입니다. 금년 5월 춘천에서는 한 여고생이 체벌을 견디다 못해 유서를 써놓고 자살을 기도한 사건까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학교당국이나 교육청은 은폐에만 급급합니다. 

얼마 전, 초등생 체벌사태로 세상이 시끄러울 때 울산의 어느 학교 학부모들이 체벌동의서란 것을 학교에 제출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체벌은 폭력의 동의어일 뿐입니다. 체벌은 군사독재의 잔재일 뿐입니다. 이러니 세상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 어려운 것입니다. 극우적 경향의 사람들이 무시로 내뱉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사람이 총 들고 나타나서 확 후려잡아야 돼.”

저는 이런 망발조차 학교에서부터 익숙해진 폭력의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군대 갔다오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졸병 때 고참에게 얻어맞던 때가 언제였느냐는 듯, “졸병놈들은 뒈지게 맞아야 돼. 그래야 군대가 잘 돌아가.” 라고 하면서 서슴없이 폭력을 행사합니다. 이미 자기는 졸병생활 지났다는 거지요. 소위 ‘맞아본 놈’이 더 때리는 것입니다.  

폭력교실은 결코 성숙한 인격도야의 장이 될 수 없다

학교는 지식만 전수하는 곳이 아니라 학생을 성숙한 인격체로 인도하는 곳입니다. 민주주의의 요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을 구타로 괴롭히며 폭력의 모범을 보여준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질풍노도의 미성숙한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이 아무리 어려운 일이기로서니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스스로 교사이기를 포기한 자가당착입니다.

저는 사소한 체벌조차 반대합니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상담 등의 노력을 통해 교사와 문제 학생이 일체가 되는 경험을 가끔 접할 수 있습니다. 어째서 체벌 외에 다른 방법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교육당국 만이 아니라 전교조를 비롯한 참교육을 추구하는 여타의 단체들이 깊이 관심을 가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활지도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구타 등 폭력이 도대체 어떤 생활에 대한 모범을 보여준다는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폭력은 폭력을 부릅니다. 폭력은 민주주의의 적이며 독재의 수단일 뿐입니다. 폭력을 조장하는 교사가 학교 내 학생들간에 벌어지는 폭력을 막을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학교에서 체벌, 구타, 폭력 등이 어떠한 이름으로도 자행되어서는 안 됩니다. 학교가 민주적 시민의식을 제쳐두고 폭력과 독재를 가르친다는 오명을 덮어써서야 되겠습니까? 

2008. 11. 3.  파비

※ 독서의 계절 가을과 람사르 총회를 맞이하여 추천하는 책 한권/
습지와 인간
카테고리 시/에세이/기행
지은이 김훤주 (산지니,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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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