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06.19 100분토론 출연 교수들, 팔아먹을 양심은 있나 by 파비 정부권 (34)
  2. 2009.03.08 KBS스페셜, 욕에 중독된 10대? 어른들이 더 걱정이다 by 파비 정부권 (15)
  3. 2009.03.03 인터넷을 너무 믿지는 마세요! by 파비 정부권 (2)
  4. 2008.10.18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댓글 폭력들 by 파비 정부권 (11)
오늘 <MBC 100분토론>에 나온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한 정진영 교수와 최창렬 교수를 보면서 벽창호도 저런 벽창호들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성진 의원도 전직 교수였다고 하니 세 명 모두 교수 출신인 셈인데, 나는 그들이 진정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맞는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온 국민들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고 있는데 자기들만 민주주의는 아무런 이상도 없으며 오히려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에 횡행하던 민중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로 대체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도대체 교수란 사람들이 민중민주주의가 무언지, 자유민주주의가 무언지 그 개념이나 제대로 알고 말하는 건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는 민중민주주의란 것이 존재한 적이 없다.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과 직접 소통하려고 시도했던 정치적 행위들을 두고 말하는 것이라면,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야말로 확실히 민중민주주의자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는데 인터넷과 블로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또 지금도 앞으로도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6월 항쟁으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성취되었고, 이후 점차적으로 자유민주주의가 확대되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맞아 대폭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국보법 등에서 보듯 여전히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갈 길이 먼 미완의 민주주의였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의 탄생으로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그 자유민주주의마저 길바닥에 내던져진 것이다.


이 세 명의 교수는 이런 문제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었다. 시국선언을 하는 교수들을 향해 왜 교수들이 발언을 해서 국론을 분열시키느냐는 말만 할 뿐이지, 어째서 자신의 양심을 밝히는 정당한 행위를 부정하는지, 집회시위의 자유를 막기 위해 서울광장을 경찰버스로 삥 둘러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토론 중간에 어느 아주머니가 전화의견으로 이런 말을 했다. “국회의원들 뽑았으면 그 숫자대로 국회에서 모여 일하면 될 것이지. 왜 거리로 나옵니까? 국민들이 선거로 한나라당을 170석 다수당으로 만들어주었으면 그냥 국회에서 그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왜 일도 안하고 거리로 나오고 그래요? 월급 내놓으세요.”


참으로 무식한 말씀이다. 물론 이 아주머니 의견도 일리는 있다.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일을 해야지…. 그런데 지금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가? 국회에 들어가는 순간, 한나라당은 국민의 뜻을 거역해 이명박 정권만이 좋아하는 법들을 통과시킬 것이다. 지금은 국회에 들어가 일하는 게 오히려 국민의 뜻에 반하는 역설의 시대가 아닌가.  


아주머니의 무식한 말씀에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세 사람의 교수들을 보면서 대한민국 교육현실이 실로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송영길 의원의 언급이 아니더라도 국회의원을 뽑는 행위가 모든 권리를 백지위임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은 기본에 해당한다. 아무리 국회의원, 대통령이라도 국민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교수란 직업이 무엇인가. 좀 과장되게 학생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행위를 빗대어 말하자면, 양심을 팔아 밥 먹고 사는 직업 아닌가? 그런데 이들 교수들에게 대체 팔만한 양심이라도 있는 것인지 의심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100분토론>을 시청한 소감으로는…. 하긴 이들도 살아남아야 하니 너무 나무라기도 그렇다. 이명박 정권에 잘못 보이면 교수직도 언제든 쫓겨나는 것이 요즘 세태 아니던가.


또 다른 시청자의 전화의견을 통해 전해들은 국민정서야말로 현 시국에 대한 가장 정확한 진단이 아니었을까.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죽으면 떡을 돌리겠다고 하더라!” 이 말을 들으니 퍼뜩 그런 생각부터 들었다. “그래, 나도 그런 떡 제발 얻어먹었으면 좋겠다.” 이런 말을 듣고도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든 죄악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다면 정말 살아야 할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닐까.  

이만 대충 정리하고 잠이나 자야겠다. <ps;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전화의견으로 등원 안 하는 의원들 월급 내놓으라고 핏대 올리던 그 아주머니 "동네에서 일을 해보니 법에 호소해서 안 되는 게 없더라!" 라고 하시던데 대충 뭐 하는 분인지 짐작이 간다. 세상이 하 수상하니… 별 생각이 다, 쩝~

ps2; 원래 제목이 "MB 죽으면 떡 돌리고 싶다!" 였지만 누가 먼저 똑 같은 제목을 달았기에 달리 고친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졸라’는 ‘존나’가 변형된 말이다. 아마도 ‘존나’를 좀 더 발음하기 쉽고 좀 더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낸 말이 ‘졸라’인 듯싶다. 그러고 보니 ‘존나’보다는 ‘졸라’가 더 친근감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졸라’든 ‘존나’든 모두 욕설이다. ‘졸라’의 원형이라고 할 ‘존나’도 사실은 그 태생의 원천이 따로 있다. ‘존나게’를 줄여서 더 극적인 효과를 부여한 게 바로 ‘존나’이고, ‘존나게’란 정확하게 발음하면 ‘좆나게’란 말이다.

즉, ‘좆나게’가 오늘날 인터넷 물결을 타고 보다 관능적이고 적나라하며 첨단인터넷시대에 걸맞을 법한 ‘졸라’라는 신조어로 재탄생한 것이다. ‘좆나게’란 ‘졸라’에 비해 얼마나 촌스러운가. 한국인의 조어능력은 참으로 신기막측하다. 요즘 아이들에게 이 ‘졸라’라는 말은 수식어이며 감탄사이자 나아가 어휘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없어서는 안 될 약방의 감초다.

“‘졸라’ 재미없네.” “‘졸라’ 재미있네.” “‘졸라’ 웃기네.” “‘졸라’ 짜증나네.” “‘졸라’ 싱거운 놈.” 뭐, 이 정도가 내가 생각해 낸 ‘졸라’의 용법이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에게 이 ‘졸라’의 용법은 실로 무궁무진했다. 게다가  ‘졸라’는 마치 소금과 같아서 이 단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말에 맛이 없어지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졸라’란 욕은 욕 축에도 끼이지 못하는 졸라(매우!) 준수한 언어생활에 속했다.

오늘 『KBS 스페셜』의 제목은 「10대, 욕에 중독되다」였다. 10대 아이들의 서슴없는 욕에 대한  실태보고 다큐멘터리다. 이 프로그램을 방영하며 KBS가 밝힌 기획 의도는 이랬다.

우리나라 10대 청소년들은 ‘욕’을 얼마나 할까?
그들 대화 내용의 반 이상이 ‘욕’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심지어 선생님이나 부모를 상대로 아무 거리낌 없이 ‘욕’을 해대기도 한다. 많이 하다못해 만연해 있는 10대의 ‘욕’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아이들의 언어 습관 속에 뿌리박혀 있는 욕의 사용 실태와 무분별한 욕사용 원인에 대해 KBS스페셜에서 현장 밀착취재 하였다. 

남녀 학생을 불문하고 95%이상이 ‘욕’이 없이는 언어생활이 안돼
조사결과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욕을 하지 않는 것이 비정상적이란 평가를 들을 정도의 결과가 나왔다. 욕의 종류도 천태만상이었다. 초등학생의 경우 거의 97% 이상이 일상적으로 욕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중 72%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욕을 한다고 했다. 

                     
                     
                         [자료 - KBS 스페셜 <10대, 욕에 중독되다>]
                         특이한 것은 고교생의 경우 여학생(97.4%)이 남학생(93.7%)에 비해 욕을 더 많이 한다.  

이미 상당수의 아이들이 욕이 들어가지 않으면 정상적인 언어생활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KBS 스페셜』이 한 학생의 대화를 분석해보니, 욕을 빼고 남는 건 감탄사 밖에 없었다. 의미전달에 필요한 아무런 내용도 들어있지 않은 그런 말만 가지고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게 참으로 신통했다.

『KBS 스페셜』은 이 아이들이 욕설로 대화하는 장면을 담은 비디오를 학부모들과 현직 선생님들에게 틀어주며 의견을 물었는데 모두들 황당해서 입을 열지 못했다. 실로 기기 막혔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이없어 하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을 보면서 거꾸로 그들의 태도가 한편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긴 하다. 그리고 이 망각은 때로 인간에게 행복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망각 때문에 역사는 반복되고 실수를 되풀이하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굳이 별 개연성도 없어 보이는 망각이란 단어를 끄집어낸 것은 우리 기성세대들 역시 10대를 욕설 속에서 보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자 함이다.

나는 아이들이 욕하는 장면을 담은 비디오를 보면서 기가 차서 또는 착잡하게 우리는 저리 살지 않았는데 하는 표정을 짓는 어른들,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을 보며 나는 저분들이 진정 진심으로 저런 표정을 짓고 저런 함숨을 내쉬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증스럽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욕에 중독된 아이들, 어른들 책임이다
사실 요즘 아이들이 우리 세대들에 비해 욕의 정도가 심하고 보다 더 일상화 됐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그들만의 책임인 것만은 아니다. 그 욕설은 어디까지나 기성세대들을 통해 그들에게 전해진 하나의 문화적 전통이며, 단지 인터넷 세대의 특성이 더해진 것뿐이다.

실제로 그들이 쓰는 욕 중에 내가 못 알아듣는 욕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 3~40대들도 그런 욕을 가끔 혹은 자주 쓴다. 인터넷 댓글들을 살펴보면 입에 담지 못할 온갖 욕설들이 돌아다닌다. 과연 쓰레기장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그러나 그중 진원지의 상당수는 30대, 40대들이다.

말죽거리잔혹사의 한장면. 리얼한 영화다. 특히 그 생생한 욕설들이 잔혹한 추억사를 더 리얼하게 했다.


심지어는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도 욕을 심심찮게 내뱉는 40대들을 자주 본다. 나도 가끔 아무런 이유 없이 욕을 들어보기도 했다. 작년 봄, 같은 학교를 다녔다면 2~3년 후배쯤이나 될 친구처럼 지내는 이로부터 “씨불탱아~”란 욕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아무 이유도 없었다.   

내 생각엔 그 친구는 보다 친밀함을 드러내기 위해 그런 욕을 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일종의 자기과시를 위해 그런 욕을 했을 수도 있다. 남자들의 경우에 특별히 자기를 과시하거나 어떤 포지션을 획득하기 위해 가끔 이렇게 적당한 욕설을 이용해 쇼맨십을 발휘하기도 한다.

어쩌다 이런 태도들을 직면하고 어처구니가 없을 때, ‘장구한 구석기시대를 통해 형성된’ 유전적 특성으로 여성에 비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떨어지는 남성 특유의 자기 생존 방법이라고 이해해주기로 나는 많이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나 역시 욕을 먹고 나면 기분이 안 좋은 법. 나는 그 이후에 그 친구와 가급적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거나 굳이 피할 수 없다면 아예 대화를 회피한다.

다방면에서 자정노력 일어나야
이야기가 많이 비약했는데, 오늘 『KBS 스페셜』「10대, 욕에 중독되다」를 본 소감을 정리하면 이렇다. 많이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아이들이 욕하는 것보다 학부모들이나 선생님들의 태도가 더 걱정된다는 것이다. 그런 태도로는 결국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이 앞선다.

오염된 기성세대의 문화는 그대로 내버려둔 채 백번 아이들을 걱정한들 해결될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얼마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란 사람이 기자들의 카메라 세례 앞에서 “아 씨발, 더러워서…” 라고 했다던가. 이게 대한민국 문화의 현주소다. ‘자지’나 ‘보지’ 같은 순 우리말은 떳떳하게 쓰지도 못하고 ‘페니스’나 ‘음부’ ‘옥경’ 등의 알아듣지 못할 말로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이 쓰발 새끼야!”란 욕을 서슴없이 내뱉는 게 기성세대다.

아이들 중독을 걱정하기 전에 어른들 중독부터 걱정하는 게 순서고, 그러면 아이들은 자연히 치유될 것이다. 윗물이 더러운데 아랫물이 깨끗할 수가 있겠나. 『KBS 스페셜』이 제시한 미국의 어떤 학교의 예는 참 좋았다. 부적절한 언어생활이 계속되면 경고나 정학까지 당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 노력도 절실히 필요하다. 『KBS 스페셜』의 실태보고도 아주 적절할 때 나왔다.

그러나 그런 것도 윗물이 맑을 때 효과가 있는 법이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지난주에 아이들 봄방학을 맞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계획은 문경새재를 거쳐 수안보온천에 들른 다음 월악산 송계계곡에 갔다가 중원미륵사지를 답사하고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문경새재는 정말 좋은 곳이었습니다. 아이들도 아내도 모두 좋아했습니다. 마침 날씨도 최상이었고요.

새재 1관문 주변에는 태조왕건 세트장과 일지매 촬영장, 자연생태공원 등이 있어 볼거리도 되고 아이들 교육에도 좋습니다. 새재 길을 걷는 내내 온갖 전설과 조상들의 숨결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임진왜란과 일제시대의 상처도 느낄 수 있습니다. 3관문을 지나 충주 고사리로 내려서면 월악산 국립공원 중에서도 그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신선봉이 열두 폭 병풍바위를 벌려 반겨줍니다. 

인터넷에서 찾은 우리가 묵었던 펜션


고사리에서 하루에 네 번밖에 다니지 않는 버스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트럭 짐칸에 실려 수안보까지 내려가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즐거웠습니다.(고장 난 시내버스의 기사님께서 다음 차인 막차도 올지 안 올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실 때는 해프닝 정도가 아니었지만…) 수안보 온천의 따뜻한 온기가 모든 피로와 함께 불평마저 씻어주었습니다. 

수안보에서 온천욕을 하고 시내버스를 타고 송계계곡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는 미리 예약해놓은 펜션이 있습니다. 인터넷을 뒤져서 예약을 했는데 이용요금도 온라인 계좌로 절반을 지불했습니다. 그곳을 정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전거 때문이었습니다. 그 펜션의 홈페이지에선 자전거를 10여대 이상 비치해놓고 무료로 빌려준다고 했습니다. 

우리 아들 꿈이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일주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커서도 그 꿈을 간직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자전거를 무척 좋아하며 매일 자전거를 타고 놉니다. 자전거를 타고 뒷산 만날재에도 자주 올라갑니다. 얼마전, 「달리는거야 로시난테」란 책을 사서 내가 다 읽고 난 다음 녀석에게 주었는데, 그 책을 하루밤새 다 읽어버렸습니다. 

                

              펜션 홈페이지 설명에 의하면, 미륵사지(사진 윗줄 첫번째)까지 3km, 문경새재 관문(윗줄 두 번째)까지
              2km, 덕주사 마애불(윗줄 세번째)까지 2km라고 소개되어 있었지만, 글쎄다. 미륵사지를 지나야 관문이
              나오는데…, 이제 이 정보도 미덥잖다.
   

그리고 말하더군요. “아빠, 나도 의대 갈래.” (이거 뜻하지 않은 수확입니다. 실현가능성이 희박할지라도 듣기 좋은 소리임에 틀림없습니다. 부모란 다들 속물이죠.) 녀석이 그리 말한 데는 그 책의 저자가 의대생으로서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일주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저자(양성관)는 지금 산청의 생비량 보건소장으로 군복무 중입니다. 녀석에겐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일주한 이야기를 책으로 쓴 저자도 마음에 들었지만, 군대 가는 대신에 보건소 소장으로 근무하는 저자가 더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우리 아이는 군대를 무척 두려워하거든요. 총 쏘고 훈련받고 하는 게 무섭답니다.(내가 느끼기론 녀석은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도 어렴풋이 알고 있는 거 같습니다.)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무서운 걸 알다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나도 아들이 군대 가는 걸 그리 반기는 편은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안 갔으면 하지요.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의 두 아들도 군대 안 갔지 않습니까? 부모 마음은 다 똑같은 것이지요. 

홈페이지의 이 사진은 연출이었나?


하여간 자전거를 원 없이 타게 해준다는 그 펜션으로 우리는 시내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버스를 타기 전에 한 번 더 전화를 해서 확인을 했습니다.

“자전거는 틀림없이 무료로 빌려주시는 거지요? 우린 두 대가 필요한데요.”
“그러믄요. 얼마든지 마음대로 타실 수 있어요.”

버스가 지릅재(계립령이라고도 하는데, 미륵리에서 관음리로 넘어가는 하늘재가 계립령이란 설이 더 유력해 보인다.)를 넘어서자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에 우리는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실로 장관이었습니다. 설악산이 하늘을 찌를 듯한 기암괴석으로 그 이름이 높다한다면, 월악산의 암봉들은 부드럽고 매끈한 암릉의 곡선들이 포근하게 다가오는 산입니다. 올록볼록한 암봉들이 마치 중국의 계림(실제 보지는 못했지만)을 보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아들 녀석은 아름다운 경치보다는 자전거를 탈 생각에 더 마음이 바쁩니다. 하긴 초등학교 5학년짜리에게 아름다운 산천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드디어 시내버스가 충북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 도착했습니다. 우리가 묵을 펜션은 조금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조금 걷다보니 월악산 영봉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팻말도 보입니다. 펜션은 지척에 있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녀석은 자전거부터 찾았습니다. 그러나 이내 우리는 참담한 실망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마구 뒤엉켜 버려진 자전거. 브레이크는 모두 끊어지고 핸들은 안 돌아가고 휠과 타이어도 따로 놀았다.


자전거는 분명 여러 대가 있었지만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탈만한 자전거는 한 대도 없었습니다. 이건 완전히 고물상에 쳐 박힌 자전거보다 못합니다. 아, 이럴 수가…, 아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젊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아들 녀석은 그저 실망하지 않고 자전거를 하나 하나 꺼내어 확인해보더니 기어이 한 대를 골라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아빠, 이거는 조금만 손보면 탈 수 있겠다.”

그래도 한 대는 건졌으니 불행 중 다행입니다. 대충 손을 보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브레이크는 불안합니다. 아들에게 조심해서 타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녀석은 “그건 걱정마라. 내가 자전거를 얼마나 잘 타는데….” 하면서 신나게 자전거를 끌고 나갔습니다. 본래 계획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저녁을 먹기 전에 덕주사 마애불까지 다녀오는 것이었습니다. 하긴 저런 자전거로는 두 대가 있다 한들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걸 끌고 나섰다간 거의 사망이지.’ 

그래도 아이들이 자전거 타고 놀기에는 좋은 환경이었다.


문경새재의 상쾌한 아침공기와 아름다운 새재 길과 고사리 신선봉의 빼어난 자태, 월악산의 수려한 암봉들의 감동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갑자기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습니다. 펜션지기 할머니가 소개해주는 식당을 찾아 털레털레 밤길을 내려갔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예약할 때 전화를 받던 젊은 펜션지기는 할머니의 아들로서 이곳에는 없는 거 같았습니다. 문명의 편리함이란…. 그러나 그 편리함이 못내 불쾌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자전거가 탐이 나 예까지 온 게 너무나 아까워 밤새 한 대의 자전거를 돌아가면서 타고 또 타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또 탔습니다. 그저 본전 생각이 나서 말입니다.

그렇게 자꾸만 자전거를 타다보니 이곳이 자전거 타기에는 참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로에도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데다가 펜션 주변에는 잘 닦여진 단지 내 도로가 있어서 자전거 타기에는 그만이었습니다.  자전거만 고물이 아니었다면, 약속대로 얼마든지 마음대로 자전거를 탈 수만 있었다면 말입니다. 

어쨌거나 이번 여행이 아주 수확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행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철저한 사전조사가 필요하다는 것, 인터넷으로 여행지를 검색할 땐 여러 군데를 비교해가며 주의를 기울일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인터넷이 유용하긴 하지만 너무 맹신하지는 말자는 것이 이번에 얻은 교훈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인터넷, 너무 믿지는 마세요!                                                
          2009. 3. 2.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평양에 다녀온 많은 분들이 쓰신 방문기를 읽어보았습니다. 아름다운 평양거리도 보았고, 묘향산도 보았으며 백두산도 보았습니다. 백두산 천지는 사진으로만 보아도 장관이 감동적입니다. 역시 웅대한 민족의 성산입니다.

저는 사실은 백두산보다는 금강산을 더 좋아합니다. 물론 가보지는 못했지만, 늘 인터넷으로 금강산을 구경하곤 합니다. 제 방에는 북한 최고의 인민화가 정창모가 그린 『금강산 보덕굴』그림이 걸려있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과는 벌써 3년 전부터 금강산에 가기로 약속해놓고 아직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백두산 천지,
사진=블로그 '김용택의 참교육'

꿈에서도 그리운 금강산

약속을 안 지키는 제게 아들 녀석이 물어봅니다.

“아빠, 금강산은 언제 가는 거야?”

“어, 그게 말이야. 아직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허락을 안했어. 조금 더 기다려야 돼.”

달리 둘러댈 말이 없어서 그냥 김정일 탓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아들 녀석은 제 말을 믿습니다. 그리고 생각날 때마다 “아빠, 아직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허락 안했나?” 하고 물어봅니다.

그러나 이제 아들도 더 이상 물어보지 않습니다. 아빠와 함께 어딜 가는 것 보다 제 친구들과 노는 것이 더 좋은 나이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세월은 이처럼 아이에게 사랑을 베풀 기회도 알듯 모를 듯 빼앗아가 버립니다.

그러나 설령 다시 물어본다 하더라도 김정일 국방위원장 탓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금강산 해수욕장에서 북한군 병사가 쏜 총에 우리나라 국민이 죽음을 당한 사건 이후로 금강산은 이제 갈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이명박 정부의 반북정책 기조 탓이든 아니면 북한군의 도발적 민간인 총격사건 탓이든 10년 넘게 쌓아온 남북관계가 순식간에 경색되고 금강산은 다시 꿈에서도 그리운 산이 되고 말았습니다.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 만세!" 선전문구 옆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찬양 선전판이 얼핏 보인다.
               어린 시절 우리
가 다니던 학교 건물에도 이런 식으로 "10월 유신"을 찬양하거나 "근면 자조 협동" 같은 
               계몽 선전판이 붙어있었다. 평양의 거리는 서울에 비해 말쑥하게 잘 정돈된 느낌이다.  
               사진=블로그 '김용택의 참교육'

그래서 이번에 평양을 다녀오신 몇몇 분들이 올려주신 평양거리와 묘향산, 백두산 사진은 금강산은 아니지만 참으로 살갑게 느껴집니다. 특별히 김용택 선생님은 사진을 소개하며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하지 못하는 괴로운 심정도 토로하셨습니다. 모두 국가보안법 탓이라고 말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저 역시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하지 못하고 추한 것을 추하다고 하지 못하는 이 야만의 시대가 싫습니다.
 
인류는 말을 사용함으로서 사람이 되었다

‘호모 에렉투스’는 서서 걷고 도구를 사용함으로서 최초의 인류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사람이 비로소 사람이 된 것은 말을 할 줄 알게 된 때부터라고 생각합니다. 글자의 발명은 사람을 더욱 사람답게 만들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말은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전 세계 사람들이 동시에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바야흐로 말의 전성시대가 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씨족과 부족으로 나뉘어 살던 공동체사회가 국가라는 권력구조 하에 놓이게 되면서 통제당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은 오로지 최고 권력자만 할 수 있는 전유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귀족들은 통치자의 귀에 거슬리지 않는 한도 안에서 말을 허락 받았습니다.

그리고 평민들은 말다운 말은 할 수가 없었으며, 천민계급은 아예 말을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로마의 폭군 네로의 스승이었던 세네카조차도 불필요한 말을 하다가 모함에 빠져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오랜 세월 사슬에 묶여 신음하던 말이 프랑스대혁명을 거치며 슬슬 자유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혁명 -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들라크루아 作〕

근대시민혁명이 쟁취한 자유 중에 가장 위대한 것이 바로 말의 자유, 표현의 자유입니다. 말이 자유를 얻게 되자 세계는 급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역사, 문학, 예술 등 문화적인 분야만이 아니라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는데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날 컴퓨터와 인터넷 혁명은 말의 자유가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근대시민혁명이 쟁취한 말의 자유

그런데 아직도 우리나라는 말이 완전한 자유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김용택 선생님에게 말은 불편하고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참교육’이란 블로그에 북한 방문길에 찍어놓았던 사진을 올리면서 아무런 설명을 달지 않았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선생님은 국가보안법이 아니라 전혀 엉뚱한 곳에서 폭력을 당하셨습니다. 북한 방문기를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거리와 함께 꾸준히 소개해주시던 선생님이 주사파에 대한 비판적 표현을 잠깐 언급했던 것이 빌미가 되어 느닷없이 노망난 늙은이로 매도당하고 조선일보의 ‘조깝제’와 사상적 동반자로 몰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주사파에 호의적인 사람들이었나 봅니다. 
<관련기사
http://chamstory.tistory.com/68>


평생을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은퇴하시고 이제는 남은 여생을 참교육 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선생님에겐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마음이 여리신 선생님이 받았을 상처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도대체 주사파에 대한 짧은 언급 하나가 그다지도 노여웠던 것이어서 평생을 교육에 헌신하고 정년퇴직한 교사의 명예를 무참히 짓밟는단 말입니까? 

저는 선생님이 사진과 설명을 통해 평양거리를 너무 미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마음이 불편했지만, 굳이 반대 댓글 같은 걸 달지는 않았습니다. 평생을 참교육 운동에 바친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 만큼 선생님을 신뢰하는 마음도 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사파 비판' 한마디에 선생님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구겨지고 말았습니다. 이참에 선생님은 국가보안법보다 주사파가 더 무섭다고 생각하게 되실지도 모를 일입니다.

국가보안법보다 더한 말의 자유에 대한 폭력

국가보안법은 법전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늘 우리들 속에 숨어 함께 숨 쉬면서 자유로운 말을 향해 폭력을 행사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란 노래가 유행입니다.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는 노래지요. 그러나 저는 이 노래를 들으며 우리는 과연 얼마나 민주적인가에 대해서도 반성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체사상탑, 사진=블로그 '김용택의 참교육'

이 사진은 선생님이 찍어 오신 주체사상탑입니다. 평양의 맑은 하늘을 이고 우뚝 솟은 탑이 인상적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탑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 주체사상탑은 도대체 말의 자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할까?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할까?”

‘유일무이한 주체사상과 수령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저 주체사상탑은 서로를 인정하며 화해와 협력으로 통일의 길로 가자고 하는 민족대단결의 정신을 헤치는 반통일적 조형물은 아닐지 의심이 든다고 하면 또다시 나를 반북분자에 수구꼴통이라고 공격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아름다운 금강산을 꿈에도 그리며 하루빨리 남과 북이 통일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러기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말이 자유를 찾아 맘껏 세상을 뛰어다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2008. 10. 18.   부마항쟁 기념일에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