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1.11.29 창원 온 한스 슐레겔, "한국영화는 몰라요" by 파비 정부권 (2)
  2. 2009.06.25 인기블로그가 되는 비결? "댓글부터 다세요" by 파비 정부권 (24)
  3. 2009.05.07 박쥐 보다가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by 파비 정부권 (2)
  4. 2009.04.17 결혼 앞둔 김보슬 체포, 무슨 영화 찍냐? by 파비 정부권 (50)

한스 슐레겔.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우리가 익히 들어 귀에 익은 대부분의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혹은 심사위원장이며 프로그래머다. 베를린영화제, 칸영화제 등등…. 그가 창원에 온단다. 그래서 그를 보기 위해 창원으로 갔다. 물론 경남문화정책연구소 윤치원 소장의 초대도 있었다.

윤 소장은 오래 전부터, 그이가 아마도 마산의 어느 허름한 건물에서 영화 관련 사무소(‘춘향’이란 이름이 기억나지만 너무 오래 됐다)를 운영할 때부터 친분이 있던 사이였다. 10여 년 전에도 역시 그이 초대로 어느 독립영화 감독이 만든 귀향(?)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비전향 장기수들이 출소 후에 남한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밀착 취재한 것을 다큐멘터리 식으로 만든 영화다. 다큐멘터리 영화였지만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한편의 드라마였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와 기대로 창원으로 갔던 것이다.

........ △ 고운메디칼 빌딩 강연장은 꽉 들어찼다. @경남문화정책연구소

한스 슐레겔은 독일인이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첫 인상은 “미스터 슐레겔, 독일인 맞아?”였다. 그는 독일인답지 않게 무려 35분이나 지각했다. 준법과 격식을 중시하고 근엄함과 장중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독일인치고는 의외의 파격이었다고나 할까.

아마도 80은 되었을 그의 나이가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여유를 우리에게 준 것은 그나마 매우 다행이었다. 늦게 도착한 그는 콧수염이 달린 매우 귀여운 미소로 지각한 것에 사과를 표명하며 양해를 구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러워서 사람들은 웃음으로 용서하지 않을 수 없었다.

11월 16일 2시에 시작하기로 한 강연이 2시 40분이 다 되어 시작했지만 그래서 화기애애하게, 다시금 저명한 영화학자이며 각종 국제대회의 심사위원에 대한 기대로 가득차서 경청할 수 있게 해주었다. 창원시청 옆 고운메디컬 빌딩 13층 문화원은 40여분이나 기다린 사람들로 가득했다.

슐레겔이 강연할 주제는 에이젠슈테인과 타르코프스키였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그랬던지 에이젠슈테인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모든 관심은 타르코프스키에게 맞춰졌다. 에이젠슈테인 이론의 세계적 학자인 슐레겔은 그러나 에이젠슈테인보다는 타르코프스키에 더 관심이 많은 듯이 보였다.

강연을 들으면서 알게 되었지만 슐레겔은 타르코프스키의 절친한 벗이었다. 그는 타르코프스키와 함께 베를린의 거리를 자주 산책했다. 물론 서베를린이다. 당시 독일은 동과 서로 분단된 상태였다. 타르코프스키가 사망한 해가 1986년이었으니 그는 독일의 통일을 보지 못했다.

타르코프스키는 누구인가? 1932년 러시아 볼가강변에서 시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를 졸업한 그는 러시아에서 감독이자 작가, 오페라 연출자로 활동했다.

아름다운 영상과 종교적 테마를 담은 작품들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타르코프스키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감독으로 꼽히고 있지만 많은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다. 슐레겔은 이에 대해 소비에트 정권의 감시와 통제 때문이었다고 증언했다.

슐레겔은 타르코프스키가 “나는 소련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영화를 만들 수 없다”고 했으며 결국 돌아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타르코프스키는 망명객으로 이국땅에서 쓸쓸하게 죽었다. 1983년 작 노스탤지어는 바로 그런 자신의 이야기였을까.

노스탤지어를 본 한 네티즌은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왜 영상시인인지 보여주는 영화. 영원히 기억될 영화!”라고 평가했다. 당연히 평점은 10점 만점이다. 두고 온 정신에 대한 육체의 갈망을 고혹의 세레나데로 보여주는 영화, 노스탤지어.

........ △ 맨 앞(우)에 앉아 필기하고 있는 것이 필자 @경남문화정책연구소

타르코프스키의 초기작 <이반의 어린 시절>을 빌어 그의 영화를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리얼리즘의 시각에서 보는 견해도 있지만 대체로 그에 대한 평가는 종교, 형이상학, 신비주의, 정신, 교양주의의 완성과 같은 단어들이 주류를 이룬다. 슐레겔도 마찬가지다.

슐레겔은 타크코프스키가 동양적 정신의 세계를 동경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러시아 문장에 나오는 (하나는 동쪽을, 하나는 서쪽을 보고 있는) 두 마리의 독수리 모양과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즉, 동양을 동경하면서도 러시아정교에 침잠해있었다는 것이다.

타르코프스키는 독실한 정교도였지만 한편 러시아정교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러시아정교적인 감독으로 오해를 하지만 그의 관심은 다오이즘(도가사상)에 있었으며 교회를 국가와 마찬가지로 전체주의적 제도라고 비판했다.

한때 지휘자가 되려고 했던 타르코프스키는 영화에 특별한 악기음악은 필요 없다는 독창적인 관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모든 소리는 자연에 다 있으며 들을 준비가 돼 있으면 다 들린다”는 것이다.

슐레겔은 타르코프스키가 에이젠슈테인을 계승한 제자로 이해되고 본인도 그를 슈퍼아버지로 생각했지만 그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고 한다. 에이젠슈테인의 몽타주 이론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던 타르코프스키는 롱테이크 기법을 즐겨 구사했다.

그의 유작인 1986년 작 <희생>에서는 무려 12분에 걸친 롱테이크가 사용되기도 했다. 그는 이 영상기법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조차도 보여주려는 그의 의도’를 관철시키려는 것이었을까.

타르코프스키는 소비에트연방의 유물론적 이데올로기에 상처를 입고 서방으로 망명했지만, 그는 이곳에서도 소비적 물질주의에 고통 받았다. 공산주의 소련이나 자본주의 서방은 모두 타르코프스키에겐 예술창작의 신비를 파괴하는 척박한 땅이었던 것이다.

강연이 끝나고 슐레겔은 “좋은 영화란 어떤 영화인가?”란 질문에 “상업영화를 만들더라도 타르코프스키처럼 미묘한 방식으로 정신적 자극을 주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역시 ‘안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영화감독이 좋은 감독’이라는 것.

한 청중으로부터 “세계적인 영화학자로서 주목할 만한 나라를 꼽아보라”는 질문에 슐레겔은 아쉽게도 한국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보통의 영화인들이 그러하듯 일본의 구로자와 아키라를 존경한다고 했다. 이어 중국과 이란 영화를 흥미롭게 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브라질, 인도, 러시아, 슬로바키아, 폴란드, 독일 등의 국명을 나열한 후에도 끝내 대한민국은 호명하지 않았다. 이에 참지 못하겠다는 듯 다른 청중이 “아는 한국인 감독을 말해 달라”고 했지만 역시 아무도 기억해내지 못해 사람들을 아쉽게 만들었다(우리끼리만 깨춤 추고 있었던 것일까?).

........ △ 한스 슐레겔과 경남문화정책연구소 관계자들의 기념촬영 @경남문화정책연구소

이날 통역은 경상대 홍상욱 교수가 맡아서 해주었다. 슐레겔은 독일인이었지만 러시아어를 잘하는 홍 교수를 위해 러시아어로 말했다. 통역을 거쳐서 들어야하는 청중들로서는 조금 답답한 감이 없지 않았다. 다양한 이미지를 중간에 삽입해가면서 강연을 했더라면 하는 불만도 있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예쁜 그릇에 담아야 그 진미를 알 수 있는 법. 내용은 좋았지만 재미있는 강연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랬던지 몇몇은 졸고 몇몇은 자리를 비웠다. 그럼에도 강연 내용은 대단히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한스 슐레겔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는 화려한 이력도 그렇지만 우리에겐 생소한 러시아의 거장 타르코프스키를 만난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다. 이참에 타르코프스키가 쓴 <봉인된 시간>도 짬을 내 꼭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윤치원 소장은 내년 봄쯤에 영화제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글쎄, 어떤 형식일까? 이날의 강연을 본 소감으로 말하자면, 그때는 좀 아니 지나치게(!) 재미있는 영화제를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역시 대중은 뭐니뭐니 해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 질은 그 다음이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어제 경남도민일보에서 주최하는 블로그 강좌에 다녀왔습니다. 강의를 해주신 분은 <디자인로그>를 운영하시는 '마루'님이었습니다. 저는 마루님이 디자인 업종에 종사하시고 또 블로그 이름도 디자인로그이므로 마루란 이름은 당연히 디자인과 관련된 이름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마룻바닥, 강화마루,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경남도민일보의 블로거스 경남 팀이 주최한 강좌. 정원이 30명이었지만, 초과했다.


그런데 마루님의 설명을 듣고 보니 그런 뜻이 아니고 마루치, 아라치 할 때의 그 마루라고 합니다. 정상, 꼭대기란 뜻이랍니다. '치'는 사람을 의미하니까 마루치는 정상의 사람, 최고의 사람, 뭐 그런 뜻이 되겠군요. 공부 많이 했습니다. 또 공부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릴 때 "태권동자 마루치 정의의 주먹에 ~ 파란해골 13호~" 노래를 부르며 자랐건만… 마루치가 아직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있었네요. 또 어떤 교수님의 해석에 의하면 고대로부터 마루는 신성한 공간을 뜻한다고 하네요. 우리 전통가옥의 마루도 또한 방과 방 사이에서 조상의 제사도 모시고 손님도 맞이하는 신성한 곳이었다는 거지요.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마루님께서 강의를 해주는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신성한 것들 뿐이었답니다. 우리 같은 초보 블로거들이야(앞으로는 이 초보란 말도 안해야 될 거 같아요.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런 말하면 진짜 초보들 기분 나쁘겠지요. 저는 최초로 블로그용 포스팅을 한 날짜가 9월 1일이랍니다. 개설일은 작년 4월 19일이고요)

꼭 필요한 내용을 쉽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신성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정말 그랬습니다. 마루님의 강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들, 목말라했던 것들이었습니다. 마치 사막에서 물을 만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러고 보니 문득 옛날 연애편지 대필하던 생각이 나네요. '그대 없는 세상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 (자~ 자, 옆길로 새지 말고)

강의의 주제는 『인기 블로거가 되려면?』이었습니다. 인기 블로거가 되기 위해서는 정말 성실해야겠더군요. 블로그를 예쁘게 꾸며 고객(방문자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할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것이 댓글을 열심히 다는 것이랍니다. 

남의 블로그에 자주 방문해서 댓글을 열심히 달아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글에 달린 댓글에도 성실하게 임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성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었겠지요. 그런데 오늘 제블로그를 열어보니 바로 이를 실천하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바로  <달그리메>님입니다. 오늘 아침에 당장 제 블로그에 댓글을 달아놓으셨더군요. 

안 그래도 썰렁했는데 정말 고맙습니다. 그래서 저도 어제 교육받은 신성한 가르침을 실천한다는 의미에서 답글도 달았지만, 거기에다 아예 이렇게 포스팅으로 보다 더 진지한(!) 답글을 달아봅니다. 네, 오늘 이 글은 달그리메님의 댓글에 대한 답글이랍니다. 달그리메님께서 <이요원이 창조하는 선덕여왕의 이미지는?>이란 제 글에 이렇게 댓글을 주셨네요.  

  • 달그리메 2009/06/25 1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파비님의 글을 읽으면서 부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상하게 드라마에 집중을 잘 못하겠더라구요.
    가끔 재미있게 보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드라마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에 대한 감상글을 잘 못 적겠습니다.
    몰입을 해야 느낀점이 생기고 거기서 글이 나오는데 말입니다.
    어제 인사를 해야 했는데 기회가 없어서 못했습니다...^^*

    • 파비 2009/06/25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어릴 때부터 공부는 안하고 드라마만 보면서 커서 그렇습니다. 제가 제일 처음 드라마에서 만났던 탤런트는 김영란입니다. 혹시 옥녀라고 기억 안 나실지 모르겠는데요. 제가 국민학교 6학년 때였던가? 우리 동네 그때 처음 전기 들어왔습니다. 1976년이었죠.

    • 파비 2009/06/25 1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리고 저는 지금도 드라마 즐깁니다. 그리고 영화도 엄청 좋아해서 국산, 외화 가리지 않고 거의 다 봤습니다, 물론 안 본 건 빼고요.

  • 강의 시작 전에 일찌감치 도착해 준비하시는 마루님. 역시 성실을 블로그의 모토로 삼는 분 다웠다.


    제 답글이 충분히 성실하지 않았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마침 생각나는 게 있어서 좀 더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제가 얼마나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하는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8 년 전 쯤에 제가 감옥에 있을 때입니다. 그때 저는 노동운동사건으로 본의 아니게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안에서는 우리를 '시국'이라고 불렀습니다.
     
    교도소에선 시국들을 한방에 가두지 않습니다. 한명씩 따로따로 흩어놓는 거지요. 제가 들어갔던 방은 '절도방'이었는데, 완전 도둑놈들(죄송하지만, 이보다 정감가는 말이 없네요) 방이었지요. 교도소에서도 가장 불쌍한 사람들… 인생의 막장들이라는 이들은 여기서도 차별 받더군요. 가장 잘 나가는 사람들은 폭력방에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심지어 강간범한테도 무시당하는 게 절도방 사람들이었습니다.

    교도소는 평등할 줄 알았지만, 이곳에도 계급이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교도소에조차 차별받는 불쌍한 인생들인 절도범 두 사람이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한사람은 소매치기 출신이었고, 다른 한사람은 야간털이범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한사람은 낮에 일하는 사람이고, 다른 한사람은 밤에 일하는 사람이었던 거지요. 

    이들 둘이 다투게 된 주제는 이거였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1년에 평균적으로 몇 편의 영화를 볼까?" 이글을 보시는 독자들께서는 황당하실지 몰라도 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마치 자기 자존심이라도 걸려있다는 듯이 맹렬하게 싸웠습니다. 밤에 일하는 털이범의 의견은 이랬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1년에 최소한 30편 정도의 영화를 본다!" 그러나 낮에 일하는 소매치기의 의견은 달랐습니다. "무슨 소리. 어떻게 30편씩이나 볼 수 있단 말이야? 1년에 20편 정도밖에 보지 않아!" 두 사람은 절대 물러설 기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볼 때 그것은 직업적 자존심같기도 했습니다. 

    결론을 내지 못하고 싸움이 길어지자 봉사원(사동 호실 대표)이 끼어들었습니다. "야, 그러지 말고 우리 '시국선생'한테 판결을 맡기는 어때?" 다른 모든 사람들도 동의했습니다. "그래, 시국선생이 결정을 냅시다. 그래도 시국은 우리하고 다르니까…" 글쎄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가 결론을 내야만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참 난감하더군요. 누구 편을 들어야 하나? 그러나 저는 제 양심에 따라 공정한 결론을 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둘 중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을 판단을 하겠다는 것이었죠. 제가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두 분 다 틀렸습니다. 평균적인 대한민국 사람들은 그렇게 영화를 많이 볼 시간이 없습니다. 제가 볼 때 1년에 대략 대여섯 편 정도 보는 게 맞습니다."

    하하… 그런데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대한민국 사람들의 평균적인 부분은 1년 내도록 거의 영화 한 편도 안 보더군요. 제 주변에도 20년 동안 영화를 한 편도 안 본 사람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저는 정말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1년에 약 5~6 편 정도의 영화는 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밤과 낮에 일하는 그분들과 저는 다를 바 없는 개구리였습니다. 우물 안에 사는 개구리 말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의 눈에는 하늘이 자그맣고 동그랗기만 하지요. 나머지는 모르는 것이고 알 필요도 없는 것이죠.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블로그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블로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들을 세상 밖으로 안내하여 우주가 얼마나 넓고 아름다운지 가르쳐줄 수 있는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렇게 배운대로 댓글에 포스팅 답글까지 다는 저는 최소한 우물로부터 탈출한 것만은 분명한 것이겠지요? 아니라고 생각하시면 빨리 끌어내 주시고요, 우물 안에서…. 

    아무튼 어제 마루님의 블로그 강좌는 정말 유용했습니다. 교육받은 내용을 다음날 아침 눈뜨자마자 바로 실천해주신 달그리메님도 훌륭하시고요. 고맙습니다. 하반기에 한 번 더 디테일한 내용으로 교육을 해주겠다고 하셨으니 그 보충수업이 벌써 기다려지는군요. 늦은 시간에 잘 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참, 저도 오늘 아침 <디자인로그>를 방문하여 댓글 남기고 왔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파비 2009/06/25 1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 남기기

    반갑습니다. 어제 강의는 최상이었습니다. 제가 들어본(아마 대여섯번?) 블로그 강의 중에 최고 명강의였습니다. 다들 감동 먹고 가신 듯 ^^* 자주 뵈요. 그리고 수제자는 아니라도 종제자 명단에 저도 좀 올려주세요.

    • BlogIcon 마루[maru] 2009/06/25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열정있는 블로그분들을 많이 만나서 좋았고, 오프라인 공간이 아니면 접할 수 없는 생생한 사람사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만남에서는 더 더욱 유익한 이야기로 찾아 뵙겠습니다.

    파비     ▽김주완 부장님, 블로그강좌 후기는 낙동강 도보기행 다녀와서 쓸게요. 공짜로 강의 들었으니 밥값은 해야 되는데…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영화 《박쥐》 관전기


    오늘 영화 박쥐를 보았다. 워낙 논란의 중심에 있는 영화라 꼭 한번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진작 하고 있었다. 또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이 찬욱이란 사실도 이 영화를 꼭 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박찬욱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이다. 아마 나보다 나이 많은 선배들이라면 임권택을 최고로 꼽는 분이 많겠지만, 만약 국민투표를 한다면 아무래도 박찬욱이 뽑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런 투표가 전체 국민의 기호를 완벽하게 반영하는 것이 절대 아니란 것은 누구라도 알 것이다. 투표란 원래 인간이 제거하기 힘든 원초적인 함정을 갖고 있는 법이니까. 아마 어쩌면 박찬욱보다 봉준호를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어떻든 박찬욱은 이시대 최고의 감독임에 틀림없다. 그가 영화를 만들겠다면 벌써 칸을 비롯해 고집 센 할리우드도 미리 움직인다고 하니 그의 실력은 이미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는 증거다.

     

    그래서 나도 박찬욱의 영화를 기다렸다. 나는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고 난 이후 그에게 반했으며, 올드보이에서 완벽한 그의 팬이 되었다. 그의 복수는 처절하고 잔인했지만 아름다웠다. 그는 느와르에 서정의 미학을 가미하는 기술을 가진 것 같았다그러나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그리고 친절한 금자씨, 이 복수시리즈 3부작이 완결되고 난 후 TV에 얼굴을 내민 박찬욱은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는 복수 이야긴 절대 다루고 싶지 않습니다. 사실은 만드는 나도 너무 힘들었어요. 이제 아름다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어요. 

    나는 박찬욱이 서정적인 멜로물을 만들더라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JSA와 올드보이에서 그의 카메라가 얼마나 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영상을 담아내는지를 보았었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그가 그런 영화를 만들기를 기대했다그러나 이번에도 그의 영화는 그가 만들어낸 장르를 벗어나지 못했다. 제목부터 박쥐. 박쥐는 이쪽에도 저쪽에도 끼지 못하는 이방인 같은 존재다. 그러면서도 박쥐의 세계는 밤이다

    이 박쥐는 고뇌하는 뱀파이어였다.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 한 친구로부터 가급적이면 안 보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받았었다. 그 친구는 차라리 그 영화보다 똥파리를 보라고 권했다. 아마 이 영화를 보는 것이 내게는 대단히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걱정과 함께그러나 나는 결국 오늘 박쥐를 만났다. 친구의 조언을 받아들여 똥파리를 볼까 하고도 생각했지만, 애석하게도 우리 동네 영화관 시간표에 똥파리는 없었다. 하긴 똥파리가 독립영화라고 했으니 롯데시네마 같은 개봉관에 걸릴 리가 없었겠지만.

     

    자료사진 : 다음영화

    영화는 3시 30 시작되었다. 일부러 낮 시간을 택했다. 무서운 영화니까. 영화관엔 40여명 정도의 사람들이 나와 함께 대기하고 있었다. 낮 시간대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긴 처음인 것 같다박찬욱에 대한 기대가 역시 영화에 대한 부담보다는 앞섰던 모양이다. 친구의 조언을 나와 함께한 관객들도 분명히 느끼고 알고 있었을 터이다. 여자들이 더 많았다. 임신한 여자도 한 분 있었는데, 나는 그녀가 심히 걱정되었지만 그녀는 당당했다.

     

    나중에 영화가 끝나고 난 후에 그녀의 표정을 몰래 살펴보았지만 그녀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이왕 얘기가 나왔으니 영화가 끝난 이후의 표정부터 먼저 살펴보자. 영화 중간쯤 되었을 때, 도저히 더 이상 계속 보기가 어려웠던지 한 쌍이 먼저 일어났다그러니까 태주가 상현의 피를 받아먹고 뱀파이어가 되기 직전이었는데 그들은 중년의 부부인 듯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려고 하는 참이었는데 일어서는 그들을 보며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더 이상 잔혹한 장면을 대하는 게 고통스러웠겠지.

     

    상현과 태주가 꼭 껴안은 채 저 멀리 수평선을 타고 넘어 들어오는 햇살에 시커멓게 부서지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스크린은 모든 빛을 잃고 엔딩 자막과 음악이 흐른다. 영화가 끝났지만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장내가 환한 불빛으로 밝아졌지만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박수를 치는 것도 아니고. 아무 말도 없이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누가 먼저 일어나길 기다리는 것일까. 영화가 너무 충격적이었나. 아니면 이 난해한 영화의 결말에 뭔가 더 남은 것이 있을까 기다리는 것일까.

     

    성질 급한 내가 먼저 일어섰다. 통로를 가로질러 출구를 나설 때가지도 조용히 앉아있던 사람들은 그제서야 하나 둘 일어섰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끼리 귓속말로 이 난해한 영화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는 눈치였다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 모든 것이 박찬욱의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미 박찬욱은 거장이 되었으며, 그 거장의 작품에는 무언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심오한 수수께끼 같은 것이 숨어있기 마련이고, 만약 그것을 찾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저 내 탓이리라.

     

    아마도 최소한 내가 본 몇몇의 사람들은 상당한 시간을 궁금증을 캐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그 시간들이 그들에겐 행복할 수도 있겠다. 피카소의 추상화를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그것을 본 것만으로도 우리의 가슴은 감동으로 넘쳐날 수도 있다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박찬욱의 영화들이 그렇게 난해한 영화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아니 그의 스토리 공식은 오히려 매우 단순하게 생각되었었다. 과거의 어느 시점에 일어난 하나의 사건으로부터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따라잡는 것이 그의 카메라가 잘 쓰는 방법이었다.
     

    자료사진 : 다음영화

    그리고 그의 영화에는 그리 많은 인물도 등장하지 않는데다가 공간도 거의 특정되어있다. 특정한 공간에 캐릭터가 분명한 인물들을 배치해서 우리의 이해가 복잡하게 되는 것을 막아주는 친절함이 그의 영화에는 있었다거기에다 보너스로 아름다운 영상, 그 영상을 더 아름답게 해주는 음악, 그것이 박찬욱의 느와르고 미학이라고 생각했었다. 잔혹한 장면마저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그만의 찍는 기술을 나는 믿었다.

     

    그래서 이 부담스러울 것 같은 영화를, 친구로부터 이미 안 보는 게 어떠냐고 조언 받은 나였지만 끝내 이 영화를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그 믿음은 나에게 등을 돌렸다. 영화는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우리를 긴장 속에 밀어 넣었지만 끝까지 전편들에서 보았던 미학 같은 것은 보여주지 않았다이미 소문만으로도 우리는 불이 꺼지기 전부터 충분히 긴장해있었다. 그러나 내 경험에 의하면 그것은 곧 박찬욱 특유의 시리도록 아름다운 영상에 녹아들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완전히 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잔혹.

     

    가끔 중간에 송강호와 김옥빈의 코믹제스처가 있긴 했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질 못한 것 같다. 박찬욱은 복수시리즈 3부작을 통해 충분히 그의 잔혹한 영상을 과시했지만, 박쥐는 그것들의 총결산 판이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박찬욱 특유의 미학이 빠졌다는 것아니 어쩌면, 너무 긴장한 나머지 보고도 느끼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처음 영화가 시작될 때, 시작한 것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하얀 스크린 속에서 어떤 윤곽이 서서히 뚜렷해짐을 느꼈는데, 잠시 후 나뭇가지와 잎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그림자가 그려진 하얀 벽 속에 또 다른 하얀 문이 열리며 송강호가 나타났다.

     

    아름다운 영상이었다. 나는 만족했다. 그래 이게 바로 박찬욱의 특기지. 그러나 그 이후로 나는 두 시간 동안 하늘로 영화관의 천정에 올라 붙을 것 같은 가슴을 내리누르며 긴장을 죽여야 했다. 영화가 끝난 지가 두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가슴은 어깨에 붙은 듯 답답하다어쩌면 나와 함께 영화를 본 이름 모를 다른 관객들도 그래서 선뜻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영화가 끝난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었던 건 아닐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김옥빈의 상상을 초월하는 노출과 영화관을 온통 격정의 숨소리로 뒤덮었던 섹스신, 송강호의 돌연한 겁탈행각에서 보여준 축 늘어진 자지도 이 지독스러운 긴장감을 넘어서지 못했다. 어쩌면 그런 것들은 의도된 긴장을 설명하는 완벽한 소품이었을까.
    아마 우리가 일반적인 영화에서 저토록 격정적인 장면을 마주했다면 함께 흥분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비뇨기과나 산부인과에 들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아주 오래도록, 정말 오래도록 치루어지는 격정적인 섹스신도 두려운 마음으로 보았다. 그리고 돌연히 송강호(상현)가 신도를 겁탈하는 신에서 노출된, 아주 잠깐이었지만 축 늘어진 맥 빠진 송강호의 자지를 통해 이제 그 두려움도 막이 내리는구나 하는 걸 직감했다. 그래. 영화 곳곳에 이런 장치들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걸 영화가 끝난 이제서야 이 글을 쓰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토록 이 영화는 두렵고 거북스러운 영화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친구의 조언을 듣지 않은 걸 후회했다.

     

    그러나 또 한편 생각해보면 이토록 가슴이 어깨를 뚫고 날아오를 것 같은 두려움과 긴장으로 두 시간을 떨게 만든 것은 박찬욱 감독이 바란 진정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는 지금 성공했다고 축배를 들고 있는 건 아닐까그러나 그런 것은 잘 모르겠다. 어떻든 이 영화는 무섭지는 않지만 매우 두려운 영화다. 그래서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영화다. 그래서 나처럼 올드보이에서 느꼈던 잔혹함 위에 칠해진 순정과 서정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자료사진 : 다음영화

    그러나 이러한 나의 감상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매우 독립적인 영화라는 인상을 주었다. 독립영화의 의미가 포퓰리즘 또는 상업주의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면 박쥐는 독립영화보다 더 독립영화 같은 영화다. 마치 그는 대중의 눈치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이 이 영화를 만든 것처럼 보인다그런 점에서 올해 최단기간에 100만 관중을 돌파하는 신기록을 세웠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박찬욱의 명성이란 어드밴티지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 영화는 당분간 흥행 신기록에 관한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한국영화의 부활을 알릴 신호탄 역할에 충실하게 될 듯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박찬욱 감독에게 부탁하고 싶다. 이전에 그가 복수시리즈 3부작을 완결하고 다시는 복수 영화를 만들지 않겠으며 서정적인 멜로드라마를 만들고 싶다고 했던 약속을 기억하라고 말이다. 물론 이런 약속을 지켜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그가 만들어낸 시리도록 아름다운 영상을 보고 싶었으므로. 

     

    하여간 나는 아직도 가슴이 벌렁거리고 두려움에 어깨까지 올라 붙었던 가슴이 내려올 줄을 모르고 있다. 아직도 너무 두렵다.     파비

    <감상에 다는 의견> 그럼에도 눈치채신 분은 이미 아시겠지만, 이 작품은 매우 잘 만든 작품이란 것이 나의 평가다. 그리고 김옥빈이 이 작품을 택한 것은 실수였다고 말한 어느 분의 평론을 읽었지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김옥빈이 지독하게 파격적인 태주의 캐릭터로 인해 이미지 손상을 입을 것이라고 했지만, 모든 탑 클라스의 여배우들이 고사했다는 이 역할을 그녀는 매우 훌륭하게 수행한 것 같다. 그녀는 매우 매력적이었다. 송강호의 자지 노출과 김옥빈의 담대한 노출을 마케팅 소재로 삼은 것을 비판하는 것도 별로 이유없다. 왜냐하면 제작자들은 충분히 그럴 권리가 있고, 이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들이 그것만 보러 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많은 리뷰를 통해 이미 그 장면이 이 영화의 작은 소품, 그러나 꼭 필요한 소품이란 것을 충분히 알고 보러 오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이 영화가 아직도 두렵고 거북스럽다. 친구의 조언이 옳았다. 내겐 확실히 부담스러웠다. 올드보이는 그 아름다운 영상에 취해 대여섯 번을 보았지만, 이건 다시 볼 용기가 잘 나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영화는 매우 훌륭했고 역시 박찬욱이 아니면 만들지 못할 작품인 것은 맞다. (끝)

    Posted by 파비 정부권

    MB정권, 막장을 지나 이제 영화까지 찍는다


    김보슬 피디가 잡혀갔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김보슬 피디는 MBC <피디수첩>에서 미국산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연출하여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피디라고 합니다. 저도 그 프로를 한편 감동 있게, 또 한편 걱정스럽게 그리고 또 한편 분노하면서 보았었습니다 


    만약 그 프로가 없었다면 광우병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 미국산쇠고기가 얼마나 광우병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지, 미국산쇠고기를 아무런 대책도 없이 수입하려는 이 나라 정부가 얼마나 잘못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피디수첩이 진중권 교수의 말처럼 한국정부에는 경종을 울리고 미국정부로 하여금 다우너 소에 대한 도축을 금지하게 함으로써 소비자들을 기만하는 행동에 일정한 제한을 가해 한미 양국 소비자의 권리를 어느 정도 보호하는 효과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했다면, 이는 국제인권상이라도 받을 만한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김보슬 피디가 한국피디대상(올해의 피디상)을 받은 것은 매우 당연한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프로가 저에게 준 또 하나의 선물이 있습니다
    . 이 프로가 방영되고 난 이후 우리 아이들이 햄버거를 안 먹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미국산쇠고기와 상관없이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햄버거를 좀 안 먹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물론 모든 부모들이 다 그러하겠지만, 우리 아이 엄마는 유독 햄버거 사주길 꺼려했고 아이들 등살에 못 이긴 저는 매번 편치 않은 마음으로 아이들 엄마 눈치 보며 햄버거를 사주곤 했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우리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햄버거를 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젠 먹으라고 꼬셔도 절대 안 먹겠다고 버티는 희한한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는 것이지요. 심지어 어린 딸아이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빠는 내가 일찍 죽었으면 좋겠나.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말이지요, 내참….

     

    하여간 햄버거는 미국산쇠고기와 상관없이 아이들 건강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이므로 아주 잘 된 일이었지요. 초등학교 5학년이던 우리 아들녀석은 그 이후로 소비자고발 프로를 아주 열심히 보는 것 같았습니다. 글쎄요, 저도 안 보는 걸 말이지요.

     

    <개콘>은 안 봐도 <소비자고발>은 보는 녀석이 이제 갓 초등학교 6학년짜리라니 다른 분은 어떠실지 몰라도 저는 너무 신기합니다. 제가 그만할 땐 절대 그런 프로 안 봤거든요. 주로 <소머즈><육백만 불의 사나이>, 아니면 <서부소년 차돌이>, 그런 게 제가 보는 티브이 프로의 전부였지요.

     

    어쨌든 저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피디수첩>이나 <소비자고발>을 매우 좋아하고 고맙게 생각하는 처지가 되었답니다. 말하자면, 은혜를 입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세상에 그 피디수첩의 김보슬 피디가 결혼식을 앞두고 경찰에 잡혀갔다고 하네요. 그것도 결혼준비를 위해 시댁을 방문한 자리에서 말입니다.

    사진=레디앙/미디어오늘, 아래 영화이미지들은 Daum영화

    이 소식을 접하는 순간 저는 왠지 영화 <킬 빌>이 떠올랐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킬 빌>, 다들 보셨겠지만요. 너무나 잔혹한 장면을 미학적으로 치장한 부분들이 걸리긴 해도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거기 일본 야쿠자 두목으로 나오던 여자, 나중에 주인공 여자에게 머리 윗부분이 잘려 죽고 말았지만…, 대단했었지요.

    그런데 이 영화가 전개되는 시초가 무엇이었느냐 하면, 다들 아시겠지만, 이라는 폭력조직 두목이 주인공 여자의 결혼식장에 부하들을 이끌고 난입해서 다 죽이고 여자도 거의 죽을 지경으로 만들어놓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원기를 회복한 주인공이 무술을 익혀 을 처단하기 위해 야쿠자 조직과 대결을 벌인다는 스토리였지 않습니까? 

     

    물론 결말은 의 부하들과 야쿠자가 주인공에게 전멸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 영화는 별 의미 두지 말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기엔 딱 좋은 그런 영화입니다. 하얗게 눈이 내리는 일본식 후원에서 규칙적으로 달그락거리며 떨어지는 물바가지 소리에 맞춰 벌이는 두 여자의 진검승부…, 배경을 타고 흐르는 감미로운 음악…!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 이란 놈, 진짜 초자븐 놈일세. ‘초잡다는 말은 경상도 사투리로서 저도 무슨 뜻인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대충 아주 형편 없는 놈이라거나 아주 쫀쫀하다는 뜻임 아무리 조폭 두목이지만, 하필 남의 결혼식장에 가서 깽판 놓을 게 또 뭐란 말이냐.  

       

    영화 보는 내내 그 대목이 좀 찜찜하더군요. 그런데 그러고 나서 한참 후에 결혼식장에 쳐들어가서 깽판치는 그 ‘초자븐’ 장면을 한국영화에서도 보게 되었답니다. 준호, 김정은, 유동근이 나왔던 <가문의 영광>이란 영화였는데요. 재미있게 보다가 마지막에 가서 기분 완전히 잡친 영화였습니다.


    마지막 장면이 무엇이었느냐? 바로 결혼식장에 깡패들이 개떼같이 몰려가서 깽판치는 바로 그 장면이었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보던 중이었는데, , 이거 정말 뭐야. 이건 아니지, 이건. 괜히 내 얼굴이 화끈거리네, 창피해서…” 그랬던 영화였습니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쪽 팔립니다. 왜 마지막 설정을 그렇게 했는지 저는 지금도 그 영화 만든 감독이 이해가 안 가거든요 


    그런데 그
    깽판치는 이야기가 영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쪽 팔리는 장면이 아니라 현실 속에 등장했습니다. 그것도 무식한 조폭 똘마니들이 아니라 대한민국 검찰에 의해서 말입니다. , 이건 뭐 쪽 팔리는 정도도 아니고, 뭐라고 해야 할지를 모르겠네요. “……”
     

    결혼식장에 나타난 빌의 부하들

    제가 볼 땐 이런 쪽 팔리는 시츄에이션은 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 영화 <킬 빌>에서 왜? 은 하필 결혼식장에 총과 칼을 든 마피아 똘마니들을 투입시켜 난장판으로 만들었을까요?

    거기엔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
    은 본래 자기 애인이었던 그녀(주인공)가 가장 행복해하는 순간에 가장 처절한 고통을 안겨주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게 결혼식이었고요. 폭력조차 미학으로 풀어나가는 수준이 거의 네로 황제 수준이지요.

     

    그럼 우리의 MB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결혼식을 나흘 앞둔 김보슬 피디를 공격했을까요? 1년도 더 지난 사안을 지금껏 질질 끌다가 왜 하필 결혼준비를 위해 시댁을 방문하는 날 전격적으로 끌고 갔을까요? 여기에도 무슨 폭력미학 같은 고도의 시나리오가 숨어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영화를 너무 많이 보셨나? 도대체 왜 그런당가요? 쪽 팔리게….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