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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08 '역전의 여왕' 패배자들, “힘내라 힘내, 파이팅!” by 파비 정부권 (2)

사실 제가 요즘 좀 우울합니다. 어쩌면 우울증 초기 증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람이 산다는 게 참 힘듭니다. 인생이란 어차피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작은 기쁨에 만족해하고 행복해하다가도 어느 순간 그 작은 만족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늘 만족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야 많은 만족들 중에 몇 가지쯤 잃어버려도 잠시 서운한 것으로 끝내면 될 터이지만, 오랜 시간의 기억을 뒤로 하고 겨우 얻은 것이었다면 그렇게 쉽게 마음을 정리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우울증이란 게 그렇더군요. 물론 의사의 진단을 받은 것도 아니고 그저 제 짐작입니다만, 가슴이 울렁거리고 조마조마하며 속이 메스껍고 안절부절 허둥대는 것입니다. 손도 떨리고 다리도 후들거립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무언가 쓰려고 해도 무얼 써야할지 낱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소주라도 한잔 마셔야 겨우 진정이 되고 떨리고 후들거리는 증상들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술기운이 가시면 또 역시 마찬가지 증상이 찾아옵니다. 이 우울증이란 놈이 어떤 사람들에게 잘 들러붙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평범한 사람들과 친하진 않겠지요.

그런데 이 불편하고 마땅찮은 우울한 증세로부터 벗어나는데 술보다 더 좋은 약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로 연속극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연속극을 보지 못했습니다. 지난 몇 달 그래서 블로그에 글도 별로 올리지 못햇습니다. 이번 월, 화요일에 보지 못한 <역전의 여왕>을 다음캐쉬로 다운 받았습니다. 

<역전의 여왕>은 아시는 분은 아시지만 ‘인생의 패배자’들이 모여 한편의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입니다. 그 패배자들이란 회사로부터 구조조정당한, 말하자면 회사로부터 잉여인력으로 낙인찍힌 쓸모없는 인생들입니다.

그들이 마지막 한 번의 기회를 부여받아 모인 곳이 특별기획팀입니다. 이 특별이란 단어에는 세상으로부터 도태된 잉여존재란 의미가 함축돼 있습니다. 일반에 포함되지 못하는 특별. 곧 사라질 것을 전제하고 만들어진 한시적인 조직이 특별기획팀입니다.

이 특별기획팀에는 정말 불쌍한 사람이 두 사람 있습니다. 한 사람은 목영철 부장입니다. 그는 기러기 아빠입니다. 그의 아이들은 미국인지, 캐나다인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아무튼 그곳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아이의 엄마도 아이들 뒷바라지를 위해 함께 떠났지요.

그는 아이들 유학비를 넉넉하지는 못해도 부족하지 않게  보내주고자 조금이라도 돈을 절약하려고 고시원에서 생활했습니다. 직장에서는 상사들 눈치를 살피며 술도 많이 마셔야 했습니다. 원래 대한민국 직장인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술을 많이 마셔야 한다는 사실은 다들 잘 아실 겁니다.  

그런 그가 간암에 걸렸습니다. 시한부 인생입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특별기획팀에게 주어진 시간과 같습니다. 그의 소원은 죽더라도 회사에서 일하다 죽는 것입니다. 그래야 보험료라도 받아 아내와 아이들이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 사람의 불쌍한 인생이 있습니다. 소유경. 그녀는 매우 박복한 스타일입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소녀가장 출신입니다. 대학도 한 학기 공부하고 한 학기는 휴학해서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동생들 학비며 뒷바라지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이 거의 없다보니 남 앞에서 자기주장을 떳떳하게 내세우지 못합니다. 자신감도 없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어느 줄에 서야 할까 눈치만 보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줄이라는 것을 잡아보지만 잡는 줄마다 썩은 동아줄입니다.

아무런 존재감도 없던, 그런 그녀가 특별기획팀에서 중요한 프레젠테이션 발표를 맡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다 망쳐버릴까 봐, 다른 사람의 희망까지도 다 망쳐버릴까 봐’ 너무 겁이 났던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덜덜 떨고만 있었습니다.

쇼핑몰 프로그램도 그렇게 망칠 뻔 했지만 다행히 황태희의 기지로 위기를 넘겼습니다. 오히려 자연스런 황태희의 순발력으로 폭발적인 매출을 올려 특별기획팀이 주목받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럼에도 특별기획팀 구용식 본부장은 끝까지 소유경에게 발표를 맡깁니다.

벌벌 떨기만 하는 소유경을 데리고 지하철로 간 황태희. 소유경에게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해볼 것을 종용합니다. “여기서 자신감을 얻어 봐, 너는 할 수 있어” 하고 소유경을 떼밀지만 한 번도 자기 존재를 드러내본 적이 없는 소유경은 계속 떨면서 못하겠다고만 합니다.

이때 목 부장이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처지에 대해 지하철 승객들에게 털어놓습니다. 그의 돌연한 발표를 듣던 소유경은 깜짝 놀랍니다. 자기기 좋아하고 따르던 부장이 간암말기라니.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던 황태희는 살며시 눈물만 흘릴 뿐입니다.

목 부장은 소유경에게 힘을 주기 위해 자기의 아픈 상처를 드러내며 사람들 앞에 선 것입니다. 소유경이 일어섰습니다. 그녀는 힘을 얻었습니다. 그녀는 약간 떨기는 했지만, 차분하게 자기 이야기를 다했습니다. 그녀는 힘겹게 자기 존재를 드러낸 것입니다.

아마 이 장면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심장은 정말로 강철로 만든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숨어서 이들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던 구용식 본부장과 그의 비서(구용식의 후배이자 가장 절친한 존재)도 눈물을 찍어냅니다.

실로 한편의 드라마였습니다. 아 그렇군요. 이건 사실 드라마가 맞지요. 그러나 아무튼 <역전의 여왕>은 실패자들이 모여 성공담을 만들어가는 드라마이면서도 한편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특수한 모순을 제대로 드러내고 있는 프레젠테이션이기도 합니다.

이 드라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세상에 쓸모없는 인생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을 수는 있어도 이른바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정리해고 대상에 이름을 가볍게 올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울산시 인구 5명 중 1명이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합니다. 경제활동 인구를 절반으로 잡았을 때 2명 혹은 3명 중 1명이 비정규직이란 말입니다. 혹은 이보다 더 비율이 높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요즘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더 많습니다.

이들은 <역전의 여왕>에 나오는 특별기획팀 사람들처럼 언제든 정리해고 될 것을 예정하고 취업이 된 사람들입니다. 말하자면 시한부 피고용자인 셈입니다. 시한부 취업, 시한부 노동자, 시한부 인생, 이것이 바로 비정규직입니다.

울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목숨을 건 파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사법부가 이들을 비정규직으로 처우하는 것이 불법이라고 판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기 위해 하청회사를 없애고 이들을 해고했기 때문입니다.

합법적인 비정규직 고용 자체도 비인간적이고 반사회적인 처사이지만, 마치 비정규직으로 고용한 것처럼 위장해서 헐값에 더 힘든 일을 시키며 부려먹는 것은 실로 인간이 할 짓이 아닙니다. 이들의 처지를 뻔히 알면서도 이기심에 연대하지 않는 정규직도 마찬가집니다.

목영철 부장과 소유경의 눈물어린 지하철 발표를 들으면서 속으로 그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힘내라 힘내, 파이팅!” 그들은 아마 파이팅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기회를 잘 잡을 것입니다.

이제 이 파이팅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힘차게 외쳐주고 싶습니다. 이들은 사법부로부터 “더 이상 비정규직이 아니며 정규직이다”라는 기회의 판결을 얻었지만, 현대차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불법을 중단하고 즉시 정규직으로 인정하라”는 외침을 강제진압과 경찰에 고소, 손해배상 청구 등의 물리적 수단으로 잠재우려 합니다. 경찰은 이미 10여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조 간부들에게 체포령을 내린 상태입니다.

참으로 이상합니다.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현행범 현대차 사주는 체포하지 않으면서 그 불법을 중단하라고 외치며 농성에 들어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즉각 체포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정의는 승리하겠지요? 그러므로 다시 외칩니다. “힘내라 힘내, 파이팅!” 

그러고 보니 이렇게 힘든 가운데서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겨우 ‘그만한’(제겐 그리 작은 일도 아닙니다만) 일로 우울증 운운하는 제 자신이 한심하기만 합니다. <역전의 여왕>을 보고 나니 한결 진정되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글도 쓸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모르겠습니다. 한번 화학적 반응이 몸속에서 일어나면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는 것이 또한 신체의 원리라고 알고 있습니다. 어느 선까지는 관리가 되고 통제가 되지만, 그 선을 넘으면 돌이키기 어려운 것은 사실 물질세계나 인간세계나 비슷한 것입니다.

내일 100인닷컴과 회원 블로거들이 공동으로 한나라당이 ‘어르신들 틀니 무상보급과 아이들 무상급식에 관한 복지예산’을 삭감한 문제에 대해 경남도의회 기획행정위 소속 석영철 의원(민노)실에서 간담회식 취재를 하기로 했는데, 그것도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연속극을 보고나니 한결 나아지긴 했는데 그래도 아직 두근두근 거립니다. 거다란님처럼 두관두관 거리면 좋겠는데, 그건 아니고…. 이번엔 이어서 <대물>을 연속해서 봐야겠습니다. 오늘은 완전 드라마 몰아서 보는 날입니다. 덕분에 다음캐쉬도 막 깨지고 있습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