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단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2.11 하재근, 성폭력 민노총을 두둔하자고? 참 답답하다 by 파비 정부권 (1)
  2. 2008.10.06 설거지 하면서 그릇 좀 깨보자 by 파비 정부권 (7)

하재근, 그는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해 투쟁하는 지식인이다. 나는 그의 강연을 듣고 매우 감동했던 적이 있다. 그는 대단한 열정과 더불어 놀라운 분석능력을 갖고 있었다. 행동하는 지식인이란 그를 두고 하는 말인 성 싶었다. 그러나 이번에 그의 글을 읽고 매우 실망했다.

그는 이중잣대를 갖고 있었다. 한나라당 의원은 성추행을 하면 안 되지만, 민주노총 간부는 강간미수를 저질러도 용서받아야한다는 논리처럼 보였다. 한나라당에게는 성추행정당으로 해체를 주장할 수 있지만, 민주노총에게 그래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
http://ooljiana.tistory.com/352)

민주노총이 매우 중요한 조직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민주노총이 없어진다는 것은 약자들을 보호할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수단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실질적인 힘을 가진 약자를 보호할 세력은 사실상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총에 힘을 보태주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의 액면은 설득력이 있다.

이석행을 비롯한 지도부 총사퇴를 발표한 날, 민노총 중집회의. 사진출처=오마이뉴스

그러나 성폭력 같은 추악한 범죄행위에까지 힘을 실어주어서는 안될 일이다. 민주노총은 성폭력사건을 저지른 범법자를 보호하기 위해 사건은폐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고 한다. 피해자에게 허위진술을 강요하기까지 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새 사건은 두 달을 넘겼다. 여기에 피해자가 분노한 것이다.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것이다.

하재근은 너무 오바했다. 민주노총이 국민들이 힘을 실어주고 키워야할 조직인 것은 맞지만, 성폭력을 자행하고 은폐하고 피해자를 강박하는 범죄행위까지 눈감아주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한나라당과 무엇이 다른가? 조선일보와 무엇이 다른가? 오히려 그들보다 더 앞장서서 더 강력하게 규탄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것이 정의가 아닐까?

나는 엊그제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왜 당신들은 성명서 하나 내지 않고 있는 거지? 당신들은 소위 진보적인 여성단체잖아. 그런데 어째서 그 흔한 성명이나 논평 하나 안 내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야.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너무나 간단한 일일 텐데….”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참 입장이 난감한 모양이라. 입장 정리하기도 어렵고. 민노총 사람들이 아예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안면이란 게 있으니까. 곧 성명을 내긴 낼 모양이던데….” 그 입장정리란 것이, 그러니까 안면 때문에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런, 제기랄.’ 아내 역시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오늘날 민주노총이 만들어지는 데 꽤 공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조중동보다 진보적인 단체들, 언론들이 누구보다 앞장서서 민주노총을 까주길 바랬다. 그리고 그랬어야 마땅하다. 만약 제갈량이 마속을 참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벼슬의 등급을 낮추고 봉급을 깎는 벌을 받지 않았다면 촉한의 정국이 어찌 되었을까? 최소한 그동안 제갈량이 얻었던 신뢰는 잃고 말았을 것이다.

하재근의 주장 중에는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할 대목이 많다. 그중에서도 노조세력이 국가의 정책을 좌우할 정도로 강력한 스웨덴이나 핀란드 이야기는 참으로 경청할만하다. 그러나 이처럼 훌륭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그 핵심주장이 옳지 않으므로 나머지 이야기도 빛을 잃었다.

민주노총은 더 맞아야 한다. 내 보기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거 같다.
 
2009. 2. 11.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 저녁, 밥을 먹다가 아내에게 물어 봤습니다.

“세상도 하 수상하고 복잡한데, 뭐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 없을까?”

저는 요즘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부장에게 낚인 이래로 하루에 하나 이상은 포스팅을 해보자는 각오로 블로그를 시작했는데, 그것도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열심히는 하고 있고, 재미도 느끼고 있습니다. 남들이야 뭐라 하든지 본인이 재미있으니 일단 출발은 성공이라고 해도 별 무리가 없을 테지요.

요즘 부쩍 사회가 시끄럽습니다. 장애인들은 복지예산을 삭감당해 거리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고, 인기 연예인들의 자살 사태가 줄을 잇고, 방송장악음모 등 여론통제에 열을 올리던 이명박 정부는 이때다 싶어 <최진실법> 같은 해괴한 수법으로 국민들을 벙어리로 만들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런데다 나라경제는 꼴이 말이 아닙니다. 경제에 관해서는 거의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던 이명박 대통령이 아예 나라경제를 ‘갱제’로 말아먹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오십 보 백 보인 듯싶습니다. 완전 속았습니다. 할인마트에서 싸다고 산 생선이 포장지를 뜯어보니 완전 썩었을 때와 심정이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요사이 제 블로그도 온통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들로 가득 찼습니다. 제 마음도 별로 유쾌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물어본 것입니다.

“음~ 그라모, ‘설거지를 마치며’ 이런 건 어때? 마누라를 위해 설거지를 하면서 느낀 단상 같은 걸 한 번 적어 보는 거야. 박노해 시인이 ‘이불을 꿰매며’란 시를 썼던 것처럼 말이야.”

참 나, 여성단체 일꾼 아니랄까봐, 직업의식이 만점입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니 별로 나쁘지 않은 의견입니다. 예전에 어떤 가수가, 이름은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거 왜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 주제가 부른 가수 있지 않습니까? 그분이 불렀던 노래 중에 ‘그릇을 깨자’란 노래가 있었지요. 그 노래 가사도 아내를 도와 설거지 좀 하자, 뭐 그런 얘기 아니었을까요?

저의 20대와 30대를 즐겁게 해주었던 최진실 씨의 죽음을 보면서, 가정의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걸 새삼 느낍니다. 그래서 아내의 제안이 단지 별로 나쁘지 않은 제안을 넘어, 매우 소중한 金言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에게 설거지를 하며 느낀 단상을 시로 만들어 전해 드릴 만큼의 재주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냥 박노해 시인의 ‘이불을 꿰메며’ 란 시를 소개해드리는 걸로 대신하겠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사랑과 행복이 충만한 가정이 되기를 빌어마지 않습니다. 아울러 가끔 설거지도 도와주며 펴진 아내의 허리도 한 번씩 안아볼 수 있는 그런 남편들이 되어보시는 것도 좋은 생각이 아닐까 합니다. 저부터 실천해야 하는데, 사실 그거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행복해 질수만 있다면야,

“그깟 설거지가 뭐라꼬….”

2008. 10. 5. 파비

박노해, 본명은 기평



<박노해는 노동자 시인이다. 김문수(한나라당), 심상정(진보신당) 등과 함께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결성에 참여했으며, 이후 사노맹을 결성하면서 혁명조직운동가로 변신한다. 그러나 무기징역을 살다가 가석방 된 후에는 김지하 시인과 함께 ‘생명운동’에 몰두하면서 과거의 동지들로부터 변절자란 비난을 듣기도 했다. 또 레바논과 이라크 등지를 돌며 평화운동에도 앞장섰다. 과거 어린 시절, 그를 본 적도 없고 더구나 그의 과격한 노선에 동의하지도 않았지만, 그의 시 만큼은 심금을 울려주는 무엇이 있었다. - 필자 주>

            
              이불을 꿰매며

                 이불호청을 꿰매면서

                 속옷 빨래를 하면서

                 나는 부끄러움의 가슴을 친다

                 똑같이 공장에서 돌아와 자정이 넘도록

                 설거지에 방청소에 고추장단지 뚜껑까지

                 마무리하는 아내에게

                 나는 그저 밥달라 물달라 옷달라 시켰었다

                 동료들과 노조 일을 하고부터

                 거만하고 전제적인 기업주의 짓거리가

                 대접받는 남편의 이름으로

                 아내에게 자행되고 있음을 아프게 직시 한다

                 명령하는 남자, 순종하는 여자라고

                 세상이 가르쳐둔 대로

                 아내를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나는 성실한 모범근로자였었다

                 노조를 만들면서

                 저들의 칭찬과 모범표장이

                 고양이 꼬리에 매단 방울소리임을,

                 근로자를 가족처럼 사랑하는 보살핌이

                 허울 좋은 솜사탕임을 똑똑히 깨달았다

                 편리한 이론과 절대적 권의와 상식으로 포장된

                 몸서리쳐지는 이윤추구처럼

                 나 역시 아내를 착취하고

                 가정의 독재자가 되었었다

                 투쟁이 깊어갈수록 실천 속에서

                 나는 저들의 찌꺼기를 배설해낸다

                 노동자는 이윤 낳는 기계가 아닌 것처럼

                 아내는 나의 몸종이 아니고

                 평등하게 사랑하는 친구이며 부부라는 것을

                 우리의 모든 관계는 신뢰와 존중과

                 민주주의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잔업 끝내고 돌아올 아내를 기다리며

                 이불호청을 꿰매면서

                 아픈 각성의 바늘을 찌른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