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0.11.04 인터넷서평꾼 로쟈에게 책은 단두대의 칼날 by 파비 정부권 (7)
  2. 2010.11.02 조지 오웰, 글쓰기의 첫번째 목적 '허영심" by 파비 정부권 (5)
  3. 2009.08.22 역설의 퍼즐,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by 파비 정부권 (5)
  4. 2009.08.07 외국인의 눈에 비친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by 파비 정부권 (3)
  5. 2009.05.22 신영철사태로 다시보는 사법비리 by 파비 정부권 (1)
  6. 2009.05.09 마음이 머무는 도시, 그 매혹적인 여행 by 파비 정부권 (1)
  7. 2009.03.26 알라딘-티스토리 서평단에 합격했어요! by 파비 정부권 (5)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었던 <나는 왜 쓰는가>에서 조지 오웰은 그렇게 말했었다. “작가가 글을 쓰는 첫 번째 동기는 ‘순전한 이기심’ 때문이다.” 그리고 오웰은 그 ‘순전한 이기심’에 대해 친절하게 이렇게 번역해 놓았다. ‘허영심.’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많이 배워야 한다거나, 그래서 허영심을 채워야 한다거나 하는 따위의 엉뚱한 말을 하고자 함이 아니다. 오늘 내가 읽고 주제넘게 서평이란 걸 써야 하는 책, <책을 읽을 자유>의 프롤로그를 통해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는 진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배움을 통해 얻는 지식은 사람에게 자신감을 준다. 대학 진학을 포기한 조지 오웰도 숱한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그런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나는 왜 쓰는가>에서 글을 쓰는 이유는 “유명해지고 싶은 허영심 때문”이라고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책을 읽을 자유 - 10점
이현우(로쟈) 지음/현암사


 


<책을 읽을 자유>의 저자 이현우 역시 그 비슷한 감흥을 두툼한 책의 첫머리 프롤로그에서부터 내게 주었다. 아주 예감이 좋다. 책을 읽기도 전에 뭔가 커다란 수확을 거둔 농부처럼 마음이 풍성하다. “인생은 ‘책 한 권’ 따위에 변하지 않아.”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그럼 지금껏 수많은 위인들이 특별한 책 한 권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했던 것은 모두 거짓이었단 말인가? 거의 모든 정치인들이 인터뷰에서 밝히는 것처럼, 어떤 한 권의 책을 통해 인생의 가치관을 정립했다고 하는 것은 그럼 사실이 아니란 말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여러 권’입니다. 우리가 좀 ‘덜 비열한 인간’이 되거나 더 나아가 ‘비열하지 않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라면 ‘한 권’이 아니라 ‘여러 권’의 책, 다수의 책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인생이 아직도 비열한 인생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우리는 그가 ‘책만 읽어서’가 아니라 ‘책을 덜 읽어서’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멘트는 평균 독서량이 ‘한 달에 한 권’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국인의 독서 습관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독서캠페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인간이 한 권의 책만 가지고 어떤 깨달음을 얻거나 가치를 정립했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이다.

책을 읽을 자유 - 10점
이현우(로쟈) 지음/현암사

그걸 이 저자는 매우 자신 있게 그리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어 그는 또 하나의 특이한 주장을 하게 되는데, “인류는 원래 책을 읽도록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서 인간에게 독서는 선천적인 능력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계발되는 것이다.

물론 이 특이한 주장 역시 그의 독창적인 것은 아니었다. <책 읽는 뇌>라는 책의 저자가 그에게 가르쳐준 것이다. 그는 덧붙여 인류가 책을 읽게 된 것은 전체 인류사에 견주어 극히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고, 대중적인 독서는 불과 100여 년의 역사에 지나지 않으므로 너무 당연한 말이라고 지적한다.

말하자면 독서 능력이라는 ‘발명품’은 인간에게 주어진 ‘특별한 옵션’이다. “인간은 똑똑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똑똑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독서란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강력한 무기”다.

<책을 읽을 자유>의 저자 이현우는 <로쟈의 저공비행>이란 블로그의 주인장으로 더 유명하다. 나도 사실은 이현우란 이름은 이번에 처음 들었을 뿐이며 로쟈란 이름부터 먼저 알았다. 특별히 지적 허영심이 강한 내게 그의 블로그는 매우 인상적이며 매력적이었다.


<책을 읽을 자유>는 로쟈의 꾸준한 블로그 활동의 결과물이다. 몇 년 동안 알라딘 서평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과 <한겨레>와 <경향신문>, <시사인>등에 실었던 서평이 보태졌다. 그래서 이 책은 그의 표현처럼 매우 ‘불룩한’ 책이 되었다. 무려 600여 페이지에 달한다.

그러나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600여 페이지를 달리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의 주제, 즉 한 권의 책을 위한 서평에 보통 3페이지, 어떤 경우엔 겨우 1페이지 정도의 가벼운 산책만 하면 된다. 물론 좀 더 긴 것도 가끔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대체로 어려운 인문학 주제를 다룬 책들을 이렇게 가볍게 산보하듯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그러다 어떤 하나의 서평에 반해서 선뜻 그 책을 사서 달리기를 해볼 결심을 한다면 그야말로 더 큰 행운을 안게 되는 것이다.

저자에게 있어 책 읽기란 머나먼 이국 땅에서 ‘서울에서 가져온 라면에 김치를 먹을 때’처럼 행복한 일이다. ‘인류가 산출해낸 가장 위대한 정신들의 거처이자 가장 아름다운 양식들의 창고’를 만나는 일이다. 그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독서에 처형된’ 존재였다.

그러나 우리는 굳이 이 선택 받은 저자처럼 책이 만든 단두대에 행복하게 목을 들이밀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저 독서를 아침 저녁으로 하는 이닦기처럼 습관처럼만 할 수 있다면 족하다. 책을 애인처럼 늘 곁에 두고 자주, 혹은 가끔이라도 애무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흐뭇한 일이랴.

그러다 혹시 알겠는가. 정말 우리도 어느 순간, 행복하게 자청하여 목을 들이밀 ‘단두대의 칼날’을 얻게 될지. 그리하여 진정한 영혼의 거처를 만나게 될지도. 물론 저자의 넋두리처럼 ‘화려한 정신의 맨션’으로 안내 받는 게 아니라 ‘맨땅에 헤딩’할 때가 더 많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책을 읽을 자유 - 10점
이현우(로쟈) 지음/현암사

ps1; “자본주의가 노동자를 착취하지 않고도 돈만 굴리면 이윤을 얻을 수 있다고 발악하는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예비 노동자인 대학생들은 자본이 자신을 착취해주기를 간절하게 바랄 수밖에 없다. 오늘날의 대학생들이 바라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편입’이라는 것이 이 시대 젊은이들의 정직한 토로다.” <379p, 사상의 은사에서 사상의 오빠로, <리영희 프리즘>, 고병권 외, 사계절>

위 글을 읽으면서 ‘책을 읽을 자유’는 고사하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취업 수험서를 팔 자유’밖에 없이 ‘자본의 착취’로부터 호명 받을 날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오늘날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정신들의 거처’니 ‘양식들의 창고’니 논하는 것이 배부른 헛소리가 아닌가 생각도 든다.

그러나 어쩌랴. 당장 육신의 생활고 때문에 영혼의 거처를 포기한다는 건 가엾은 일이 아닌가. 인류를 다른 생명체들, 예컨대 “오징어나 말미잘과 다르게 해주는 것”이 바로 독서다. 인류에게 주어진 이 ‘특별한 옵션’을 포기하는 것은 실로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더 불행한 것은, 아직 이 세상은 몇몇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특별한 옵션’을 집행할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을 부여했다는 사실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책이 읽기 싫어서’가 아니라 ‘책을 읽을 수가 없어서’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 현실이다. 

ps2; 책을 1페이지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다 읽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특히 이 책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그저 내키는 대로 어느 페이지건 심지 뽑듯이 뽑아 읽어도 좋을 그런 책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마음대로 읽을 자유’가 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이 글은 <100인닷컴>과 <알라딘서평단블로그>에도 함께 올렸습니다. 제목을 "조지 오웰, 글쓰기의 첫번째 목적 "허영심'"이라고 고쳐 달았는데, 저는 조지 오웰의 이 말에 매우 공감합니다. 블로그나 트윗, 페이스북을 하는 이유도 물론 정치적 목적도 있고, 상업적 목적도 있는 등 다양하겠지만, 무엇보다 유명해지고 싶은 욕구가 1차적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허영심이야말로 글쓰기든, 트윗이든, 페이스북이든 혹은 다른 어떤 일에도 강력한 동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페이스북, 마케팅의 비밀>이란 제목으로 경남도민일보에서 강좌를 해주셨던 '인맥경영연구원장' 구창환 원장님도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페이스북 성공의 동인은 유명해지고자 하는 욕구다"라고. 물론 공공의 이익이니, 순수한 미학적 열정 따위를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들도 중요한 이유이지만, 역시 가장 강한 동인은 '순전한 이기심'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조지 오웰. 어린 시절 으레 이발소마다 걸려 있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시작하는 시를 쓴 푸슈킨만큼이나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그가 쓴 <동물농장>은 이른바 ‘북한공산집단’과 대치하고 있는 ‘자유대한’에겐 가장 탁월한 반공교육 자료였다.

책이 아니라도 만화로 된 <동물농장> 한번 안 읽어보고 유년기를 보낸 사람이 있었을까. 그러나 우리는 그가 투철한 사회주의 작가이며 언론인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그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모두를 지양하는 새로운 민주적 사회주의를 꿈꾸었다.

영국에서 명문사립학교를 나온 그였지만 대학을 포기하고 영국의 식민지였던 버마에서 5년 동안 제국경찰 간부로 근무하게 되는데, 제국주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압제의 일원’으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그만두게 된다.

나는 왜 쓰는가 - 10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한겨레출판
‘밑바닥으로 내려가 피억압자가 될 필요가 있었던’ 오웰은 런던의 빈민가에서 밑바닥 인생을 체험한다. 이때의 경험이 나중에 그의 첫 번째 문학 에세이 <스파이크>로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이 글이 조지 오웰의 수많은 에세이 중 단 29편을 모아놓은 책 <나는 왜 쓰는가>의 첫 번째 장이다.

조지 오웰은 1999년 새 밀레니엄을 앞두고 영국 BBC방송이 실시한 조사 가운데 ‘지난 천년 간 최고의 문학가 부문’에서 세익스피어와 제인 오스틴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찰스 디킨스가 4위, 도스토예프스키가 8위, 세르반테스가 9위였으니 그의 세계문학사적 비중을 짐작할만하다.

오웰의 글은 매우 명징하고 맑아서 술술 읽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그는 그가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서 작가가 글을 쓰는 동기 두 번째에다 올린 ‘미학적 열정’에 이끌려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해 탁월한 재능을 가진 작가였다.

조지 오웰은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로 ‘순전한 이기심’을 첫 번째에 올렸는데, 그것은 매우 솔직한 진술이었다. 여기서 이기심이란 ‘유명해지고 싶은 욕구’, ‘허영심’, ‘자기중심적’ 패턴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이기심, 허영심과 자기중심적 욕구가 없다면 대부분의 작가는 글쓰기를 포기할 것이다.

그는 또 이에 비해 “대부분의 사람들, 절대다수는 그다지 이기적이지 않으며 대부분 나이 서른 남짓이 되면 개인적 야심을 버리고(많은 경우 자신이 한 개인이라는 자각조차 거의 버리는 게 보통이다) 주로 남을 위해 살거나 고역에 시달리며 겨우겨우 살 뿐”이라고 말한다.

이 얼마나 인간에 대한 탁견인가. 만약 “나는 허영심으로 유명해지고자 글을 쓰지 않는다. 자기중심적이란 말은 작가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똑똑해 보이거나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거나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마음 따위는 추호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허위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의 동기로 오웰은 1) 순전한 이기심 2) 미학적 열정 3) 역사적 충동 4) 정치적 목적을 들었는데, 여기서 그는 “나는 앞의 세 가지 동기가 네 번째 동기를 능가하는 사람”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많은 글을 썼다.

그는 빈곤과 좌절을 겪으면서 노동계급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고, 버마에서 제국경찰로 일해본 덕에 제국주의의 본질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젊은 시절의 이런 경험들은 그가 행동하는 지식인의 길을 걷도록 만들었다.

스페인내전이 일어나자 오웰은 프랑코 파스즘에 맞서 의용군으로 참전했다. 그는 사회주의자였지만, 책상머리 좌파들이나 소련을 떠받드는 공산주의를 경멸했다. 그가 보기에 히틀러나 프랑코 같은 독재자들과 러시아 공산당은 다른 점이 없었다.

전체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동물농장>과 <1984년>이 한국에서 엄청난 판매부수를 기록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지만(미국의 정보당국이 판매촉진에 앞장섰다는 설이 있다), 반공을 앞세워 독재와 탄압을 일삼던 대한민국의 현실로 보건대 이는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했다.

오웰은 모든 형태의 전체주의에 반대했다. 나찌의 파시즘과 스탈린식 공산주의뿐 아니라 자본주의도 그에겐 전체주의였다. 오웰이 추구했던 것은 민주적 사회주의였다. 그는 그의 이상주의를 알리기 위해 글을 썼다. 그는 <나는 왜 글을 쓰는가>에서 이점을 분명히 밝혔다.

“1936년부터 내가 쓴 심각한 작품은 어느 한 줄이든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다, 우리 시대 같은 때에 그런 주제를 피해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내가 보기에 난센스다.”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울 수 없”고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라고 주장하는 오웰은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나는 미학적인 경험과 무관한 글쓰기라면, 책을 쓰는 작업도 잡지에 긴 글을 쓰는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 - 10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한겨레출판

문학적 예술성에 대한 깊은 애정과 고민이 묻어나는 그의 말을 한 번 들어보자.

“내가 스페인내전에 대해 쓴 <카탈로니아 찬가>는 물론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책이다. 하지만 대체로 어느 정도 초연한 마음으로 형식을 고려하며 쓴 작품이다. 나는 이 책에서 나의 문학적인 본능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모든 진실을 말하기 위해 상당히 애를 썼다.”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지만, 그 이전에 산문 형식에 애착을 가지며 구체적인 대상과 쓸모없는 정보 조각에서 즐거움을 맛보는, 낱말들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희열을 느끼는 이기심과 허영심으로 가득한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작가였던 것이다.

<한겨레 출판사>가 조지 오웰의 수많은 에세이 중에 29편을 엄선해 <나는 왜 쓰는가>란 제목으로 책을 내놓았다. 오웰이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썼던 수많은 에세이들 중 29편을 시간대 순으로 나열한 이 책을 읽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 틈엔가 조지 오웰이 살아온 길, 변화해온 과정들을 만날 것이다.

또한 독자들은 더불어 ‘전 생애에 걸쳐 인습과 관성을 거부한 오웰의 삶으로부터 나온 사유’와 ‘인간에 대한 경이로운 성찰’을 만나게 될 것이다. 조지 오웰은 과거의 사람이 아니다. 그는 오늘 우리와 함께 살며 내일을 내다보는 사람이다. 1950년 1월, 오웰은 오랫동안 앓던 폐결핵으로 젊은 나이에 죽었다.

이 책의 번역자 이한중은 역자 후기를 통해 조지 오웰로부터 받은 하나의 중요한 메시지를 이렇게 전한다.


“오늘 우리가 작가 오웰에게서 구할 수 있는 미덕은 무엇일까? 언어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심지어 업으로든 아니든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오웰이 주목한 언어의 타락에 대하여 오늘 우리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어머니의 젖줄에 비유되는 강을 파헤치고 댐을 쌓아 물을 가두는 일을 ‘강 살리기’라 부르고 ‘녹색’ 뉴딜이라 일컫는다. 오웰은 말한다. 생각이 언어를 타락시킬 수 있다면 언어도 생각을 타락시킬 수 있다고.

죽이면서 살린다고 하고, 나무와 습지를 파내면서 ‘녹색’이라고 하는 것은 <1984년>의 전체주의 사회에서 선전을 담당하는 기관이 “전쟁은 평화/자유는 예속/무지는 힘”이라는 슬로건을 내거는 것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는 전쟁이 나도 평화인 줄 알고, 노예가 되어도 자유로운 줄 알고, 모르는 게 자랑인 줄 알며 살게 될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 - 10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한겨레출판

▲ 이 글은 인터넷서점 <알라딘 서평단 블로그>와 <100인닷컴>에도 함께 싣습니다.

<나는 왜 쓰는가> 목차
스파이크 The Spike (1931/04)
교수형 A Hanging (1931/08)
코끼리를 쏘다 Shooting an Elephant (1936/가을)
서점의 추억 Bookshop Memories (1936/11)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다 Spilling the Spanish Beans (1937/07, 09)
나는 왜 독립노동당에 가입했는가 Why I Joined the Independent Labour Party (1938/06)
마라케시 Marrakech (1939/12)
좌든 우든 나의 조국 My Country Right or Left (1940/가을)
영국, 당신의 영국 England Your England (1940/12)
웰스, 히틀러 그리고 세계국가 Wells, Hitler and the World State (1941/08)
스페인내전을 돌이켜본다 Looking Back on the Spanish War (1942/가을)
시와 마이크 Poetry and the Microphone (1943/가을)
나 좋을 대로 As I Please (1944/01)
민족주의 비망록 Notes on Nationalism (1945/05)
당신과 원자탄 You and the Atom Bomb (1945/10)
과학이란 무엇인가? What Is Science? (1945/10)
문학 예방 The Prevention of Literature (1946/01)
행락지 Pleasure Spots (1946/01)
“물속의 달” “The Moon under Water” (1946/02)
정치와 영어 Politics and the English Language (1946/04)
두꺼비 단상斷想 Some Thoughts on the Common Toad (1946/04)
어느 서평자의 고백 Confessions of a Book Reviewer (1946/05)
나는 왜 쓰는가 Why I Write (1946/여름)
정치 대 문학: 『걸리버 여행기』에 대하여 Politics vs. Literature: An Examination of Gulliver's Travels (1946/09~10)
가난한 자들은 어떻게 죽는가 How the Poor Die (1946/11)
리어, 톨스토이 그리고 어릿광대 Lear, Tolstoy and the Fool (1947/03)
정말, 정말 좋았지 Such, Such Were the Joys (1947/05)
작가와 리바이어던 Writers and Leviathan (1948/03)
간디에 대한 소견 Reflections on Gandhi (1948/가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알라딘에서 받은 책 제목이다. 무슨 이런 섬뜩한 책 제목도 다 있단 말인가. 사람을 먹으면 안 된다니. 그럼 사람을 먹는 사람들이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물론 이건 나의 기우였다. 섬뜩한 제목과 달리 책은 처음부터 매우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33개의 퍼즐로 구성된 이 책의 첫 번째 퍼즐은 "생각이 많으면 공주를 얻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어느 왕국이 있다. 이 왕국에는 왕과 왕비가 있다. 왕과 왕비에겐 아리따운 공주가 있다. 그리고 똑똑이 왕자와 안똑똑이 왕자가 있다. 똑똑이 왕자는 별로 잘 생기지도 않았고 남자답지도 못하지만, 대단히 영리하다. 안똑똑이 왕자는 그 반대다. 문제가 있다. 문제는, 왕이 아리따운 공주가 똑똑이 왕자와 결혼하길 원한다.
그러나 왕비는 안똑똑이 왕자를 지지한다. 그렇다면, 당사자인 공주의 마음은? 그녀는 현명하게도 그녀의 사랑이 누구에게나 갈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녀의 속마음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왕비가 제안한다. "구혼자들에게 과제를 내야겠어요." 왕이 동의했다. "좋은 생각이요. 수학 퍼즐로 합시다. 가령 직각삼각형의…." 왕비가 반대한다. "어림없어요." 수학 문제를 내면 안똑똑이 왕자가 불리할 게 자명하다. "두 사람은 용을 죽여야 해요. 용을 쓰러뜨리고 먼저 돌아오는 구혼자가 우리 딸과 결혼할 수 있어요."
물론 왕은 이 제안이 못마땅하다. 그가 좋아하는 후보가 십중팔구 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 
이때 공주가 끼어들어 옵션을 제시한다. "둘 중 한 명은 단지 용을 죽이겠다는 마음만 가져도 되고, 다른 한 명은 실제로 용을 죽여야 한다면 어떨까요? 
똑똑이 왕자가 재빨리 '마음만' 옵션을 선택한다. 용을 죽이는 힘든 노동을 선택하는 것보다 '마음만' 먹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는 걸 영리한 그는 순간적으로 눈치 챈 것이다. 안똑똑이 왕자는 자신의 더딘 이해력을 탓하며 용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왕비는 펄쩍 뛰었다. '무의미하고 바보 같은 짓이야!'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 10점
피터 케이브 지음, 김한영 옮김/마젤란


현명한 독자라면 벌써 공주의 의도를 눈치 챘을 것이다. 공주는 영리하지는 못하지만, 잘 생기고 남자다운 안똑똑이 왕자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안똑똑이 왕자는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별 고민 없이 칼을 차고 달려나가 용의 목을 베어 돌아왔다. 저자는 이 왕국에는 쉽게 죽일 수 있는 용들이 무수히 많다고 가정한다. 당연히 안똑똑이 왕자는 가장 쉽게 죽일 수 있는 아주 작은 용을 선택했다. 그럼 우리의 똑똑이 왕자는?


그는 밤새도록 고민했다. '내가 용을 죽이기로 마음 먹는다는 것은 사실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건 내가 용을 안 죽여도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용을 죽이기기로 마음 먹는다는 것은 사실은 용을 안 죽이겠다는 것과 같다. …… 좋아, 어쨌든 용을 죽이는 게 낫겠어. …… 아, 아니야. 그건 미친 짓이야. 그런 중노동을 할 필요가 없어. 내일 동이 트면 용을 죽이겠다고 진지하게 마음을 먹는 거야. 하지만 잠깐….'

저자는 '만약 '마음먹기'만의 조건이 안똑똑이 왕자에게도 주어졌다면?' 하고 자문한다. 그의 답은 그래도 안똑똑이 왕자가 이겼을 것이라는 것이다. 안똑똑이 왕자는 별로 영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복잡한 추론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오디세우스의 신화에서도 등장하는데,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에게 자신을 돛대에 묶어놓고, 귀를 모두 밀랍으로 막으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죽음으로 인도하는 사이렌의 노래소리를 듣지 않고 살아남았다. 

똑똑이 왕자도 오디세우스처럼 '만일 죽일 마음만 먹을 수 있다면 굳이 죽일 필요가 없을 거라고 일러주는 이성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자신의 의도를 실천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런 류의 퍼즐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언제나 일어난다. 우리는 늘 역설의 역설을 경험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자, 첫 번째 퍼즐을 통해 우리는 이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에 대해 알았을 것이다. 이것만으로 부족하다고? 그럼 다음 두 번째 퍼즐을 들어보라. 

두 명의 탐험가가 있다. 한 명은 비관주의자 페넬로페이고 다른 한 명은 낙관주의자 오필리아이다. 산악지대를 탐험하고 있던 두 사람은 크고 굶주린 곰을 만났다. 곰은 맛있는 아침식사를 상상하면서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기 시작한다. "달아나는 게 좋겠어." 낙관주의자 오필리아가 재촉한다.
"아무 소용없어." 비관주의자 페넬로페가 곰을 보면서 절망스럽게 내뱉는다. "곰보다 빨리 뛸 순 없잖아." 
그러자 낙관주의자 오필리아가 능글맞게 웃는다. "안 그래도 돼. 우린 곰보다 빨리 뛸 필요 없어. '내'가 '너'보다 빨리 뛰면 되거든. 그 말과 함께 그녀는 냅다 뛰기 시작한다.  
  
   

저자는 질문한다.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도덕적으로 허용되는 행동은 무엇일까? 그 곰의 아침식사 거리로 한 명만 필요하다고 가정하면, 둘 중 한 명이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덕성은 그런 자기 희생을 요구할까?" "당신이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그 결과로 무고한 사람이 죽게 되는 경우는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있을까?" 안개 속을 헤맬 독자들을 위해 저자는 몇 가지 시나리오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건 독자 여러분이 직접 읽어보시기 바란다. 

안개 속을 직접 걸어보지도 않고 '오리무중'을 이야기하는 건 물론 가능한 일이긴 하겠지만, 왠지 허전하다. 그러나, 그래도 뭔가 부족하다고 항의할지도 모를 독자들을 위해 한 가지 퍼즐을 더 소개한다. 이 책의 제목 "사람을 먹으면 왜 안되는가?"가 있다. 이 엽기적인 제목의 퍼즐은 이 책의 열아홉 번째 퍼즐이다. 물론 이 퍼즐도 그러나 사실은 그렇게 엽기적인 것도 아니다. 그저 역설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사실 오늘날 산다는 것이 서로 먹고 먹히는 그런 과정 아니겠는가? 사실은 우리 모두가 한입 거리다.  

"가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그는 번득이는 휜 이를 드러내고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면서 두 팔로 내 목을 감았다. 이 순간 내가 어떻게 우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방금 나를 회원으로 받아준 클럽에서 그렇게 따뜻한 환영과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으니 말이다.
"누가 저녁거리지?" 몇몇 사람이 물었다. 나는 배가 고팠고, 사람들은 밝고 친절했으며, 게다가 너그럽게 회비를 받지 않았다. 나는 명예회원이라고 그들이 말했다. 순진하고 한심한 나. 나는 저녁식사 초대를 기꺼이 받아들인 결과가 이것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쨌든 나는 손님이나 요리사로 초대된 것이 아니라 '요리를 해먹을' 한입 거리로 초대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대단히 관대했지만, 나는 곧 그 관대함이 지나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까지 읽은 현명한 독자라면 틀림없이 눈치 챘을 테지만, 이 책은 철학 책이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안도하는 대로 그다지 어려운 책은 아니다. 거기다 재미도 있다. 이 책은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즐겁게 읽기 위해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전혀 없다. 사실 이 말은 과장이지만 그리 큰 과장은 아니다. 당신은 글자를 읽을 줄 아는가? 어쨌든 우리는 만난 적이 없지만 그 대답이 '예스'라는 걸 서로 안다. 당신이 여기까지 읽었다면 우리는 이미 그 장애물을 넘은 셈이다."

'철학은 눈을 열고, 고로 '나'를 연다' 그러나 철학은 우리에게서 멀다. 그런 우리에게 이 책은 훌륭한 철학 트레이너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트레이닝을 통해 우리는 철학적 사색의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이다. 기발한 재치들이 퍼즐 곳곳에서 우리를 반겨주는 이 책을 다 읽고 난 여러분은 상식과 지혜를 얻은 기쁨에 가슴이 불꽃처럼 뜨거워질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비트겐슈타인의 금언을 빌어 말한 것처럼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다. 급하게 가지 말고 퍼즐 하나씩 천천히 읽고 천천히 생각하길 바란다는 뜻에서.

"천천히 하시오!"                   파비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 10점
피터 케이브 지음, 김한영 옮김/마젤란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래전에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란 책을 본 적이 있다. 홍세화란 사람이 쓴 책이었다. 1979년 남민전 사건에 연루된 그는 마침 프랑스 빠리에 회사 일로  출장 가 있다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망명객 신세가 되었다. 그러다 세상이 바뀌어 2002년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그는 현재 진보신당 당원이기도 하다.
 
에펠탑을 보려면 에펠탑으로 가면 안 된다
그는 빠리에서 살기 위해 택시운전사로 20년을 일하게 되었는데, 그때의 경험을 담아놓은 책이 바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다. 나는 그 책을 시간 날 때마다 읽었던 부분을 다시 읽고 또 다시 읽기를 즐겨 했는데, 거기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에펠탑을 보려면 에펠탑으로 가서는 안 된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할까? 

글쎄 그게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홍세화 선생은 빠리의 택시운전사 시절 에펠탑을 보려는 관광객들을 어느 언덕으로 안내했다고 했다. 에펠탑을 보려면 멀리 떨어져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지리산을 제대로 보려면 지리산 속에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도 같은 이치가 아닐까.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 - 10점
권진.이화정 지음/씨네21


                          일상은 여행처럼, 삶은 예술처럼, 
                        
                 이방인들의 새롭고 낯선 서울 생활기

       
서울에서 그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로버트 프리먼의 연신내 시장과 스타벅스, 에밀 고의 홍대 앞과 신사동,
          젠 아이비의 의릉과 인사동, 곤도 유카코의 연남동과 이문동, 
          얼 잭슨 주니어의 시네마테크와 고대 앞, 바또 브레이즈이 이태원,
          마크 지그문드의 낙원동과 종로통.
          작가, 아티스트 등 문화노마드들의 특별한 공간, 그리고 일상 이야기.




오늘,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란 책을 읽었다. 알라딘에서 보내준 책이다. 일곱 명의 외국인을 두 명의 한국인이 인터뷰한 내용이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마치 에펠탑의 그늘 밑에서 실제 에펠탑이 어떤 모양인지도 모르면서 에펠탑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이들이야말로 적당한 거리에서 우리를 제대로 살펴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것을 아닐까?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 특히 서울의 모습은 다양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에게 서울은 서울이라는 것이었다. 서울은 뉴욕도 아니고 도쿄도 아니다. 서울은 서울만의 특징이 있다.

청계천 공사 이후 사라지는 오래된 전통 유산들
인터뷰어의 한 사람인 에밀 고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성격이 공존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서울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이런 거죠." 그러나 이런 공존도 서서히, 최근에는 보다 급속하게 종말을 고하고 있다. 그는 청계천이 개발된 것에 내심 불만이다. 이제 청계천에는 트렌디한 레스토랑과 커피숍이 넘쳐난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고의 치적으로 자랑하는 청계천 복원 공사가 기실 외국인의 눈에는 그저 환경파괴 이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유럽풍으로 뒤바뀌고 있는 청계천 주변은 유서 깊은 서울의 참 모습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어쩌면 몇 년 내에 우리는 이런 모든 오래된 유산들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서울은 점차 능률이란 이름으로 서구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그 속에는 전통의 냄새가 배어있는 특이한 도시였고 그런 점이 이들 외국인의 눈에는 보였다. 그런데 이런 전통들, 서구화의 바람 속에서도 명맥을 유지하던 옛 모습들은 어느 날부터 갑자기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이젠 급속하게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경우가 재래시장이다.

재래시장들은 월마트나 이마트 같은 대형마트들에 밀려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재래시장이 사라진다는 것은 편리함 대신에 자기만의 스타일을 잃는 것과 같다. 서울의 재래시장은 '파리나 런던 같은 체계적인 곳에서는 도저히 발견할 수 없는 자연스런 서울의 색깔'이다. 그런데 이 고유의 색깔이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환경파괴의 다른 말 재개발, 개발이익에 떠밀린 인간성도 파괴한다 
자본과 이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파괴가 아니라 개발이다. 아이러니지만, 이처럼 하나의 현상을 놓고도 마치 수백광년이나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처럼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뉴욕에서 온 젠 아이비는 묻는다. "그'개발'이라는 것이 뭡니까?" 그의 질문처럼 과연 개발이란 무엇일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발은 경제적 이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개발로 인해 한 쪽은 엄청난 돈을 벌고, 다른 한 쪽은 생존의 기본 터전마저 잃게 되는 불운에 빠지는 게 바로 개발이다. 그리니 개발을 간단히 요약해서 말하자면, '너 죽고 나 살자!' 쯤 되는 것이 아닐까? 개발, 알고 보니 실로 무서운 말 아닌가. 

우리는 얼마 전, 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철거민들의 저항을 보았다. 그리고 여섯명의 죽음도 보았다. 용산참사다. 용산에서 벌어진 철거민들의 아픔 뒤에는 삼성이라는 대한민국 최대 재벌의 개발이익이 있었다. 삼성은 용산을 개발하지 않아도 대한민국 1등 기업이다. 그러나 용산 철거민들은 용산이 개발되면 죽는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서울의 모습…,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를 읽으며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물론 이 책은 이런 따위의 무거운 주제만을 다루고 있는 책은 아니다. 인터뷰를 책으로 엮은 만큼 부드럽다. 책 속 곳곳에 배치된 사진들, 서울의 모습들은 독자들의 눈도 즐겁게 해준다. 

외국인을 통해 우리가 볼 수 없는 우리의 참 모습을 발견
도쿄에서 온 여자가 본 한국인의 술버릇에 관한 이야기도 있으며, 차가운 마룻바닥에서 아프리카 춤을 배우는 열정적인 한국인의 모습도 그려진다.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실제로 젠 아이비는 배우로도 활약했다. 그는 '성공시대' '명성황후' '슬픈 연가' '원더풀 라이프' '올인' 등에 출연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우리가 우리 눈으로 보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러나 부드러운 필치로 아름다운 사진과 더불어 보여주는 매우 매력적인 책이다. 나는 이 책을 몇 시간 만에, 순식간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빠르게 읽어냈다. 그만큼 재미도 있었다는 말이다. 마치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감상하는 기분과 더불어….

그렇다. 이들 외국인은 우리를 비추어주는 거울이었으며 에펠탑의 참 모습을 보여주는 언덕이었다.            파비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오래된 기억
그가 경찰서에 끌려갔던 것은 1991년 11월이었다. 2년여에 걸친 수배생활로 초췌해질 대로 초췌해진 모습으로 그는 오동동아케이드 앞 전화박스에 잠복해있던 형사에게 덜미를 잡혔다. 굵은 뿔테안경을 쓰고 있었지만 수첩에 사진을 끼워 넣고 수없이 쳐다보았을 그를 그들은 알아보았다. 좁디좁은 사제 승용차에 전리품처럼 던져진 그는 사복들의 만세소리와 머리위로 달려드는 붉은 신호등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체념했었다.

다음날 아침, 유치장에서 간신히 눈을 뗀 그를 구경하기 위해 출근하는 경찰관들이 몰려들었다. 그중에 꽤 높은 듯이 보이는 정복차림이 말했다. “음~ 듣던 대로 그렇게 잘 생긴 것은 아니네.” 그러자 옆에 있던 형사가 얼른 말을 받았다. “아닙니다. 계속 쫓겨 다닌 데다 수염도 못 깎고 세수도 안 해서 그렇습니다.” 그들에게 그는 그저 우리에 갇힌 원숭이였다.  

전날 밤, 모두들 잠든 시간에 공중전화 박스에서 잠복하던 형사가 그를 불러내었다. 수갑은 물론이고 양발에 채운 족쇄를 끌며 컴컴한 지하실로 가자 형사는 통닭 한 마리와 소주 몇 병을 사놓고 기다렸다. 그러면서 그에게 소주를 부어주고 담배를 권하며 말했다. “이제 마음이 편하제? 진작 들어왔으면 고생을 덜 했을 거 아이가. 이자, 모든 걸 잊고 소주나 한잔해라.”

형사는 일계급 특진을 했다고 했다. 그에게 붙었던 현상금 이백만 원을 미리 가불해 직원들이 회식을 하고 오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형사는 그에게 혹시 잘 아는 변호사가 있냐고 물었다. 만약 아는 변호사가 없다면 자기가 소개해줄 수 있다고 했다. 그 김모 변호사는 매우 훌륭한 법조인이고 그분을 선임한다면 아마도 경찰조서도 수월할 것이라는 조언도 겸해서…

그는 형사의 제안이 매우 고마웠지만,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미 구속된 사실을 바깥에 있는 노조의 동지들이 알고 있을 것이므로 그들이 남은 일은 처리하지 않겠느냐고 말해주었다. 자기가 할 일은 이제 형무소에 가서 편히 쉬는 일뿐이라고… 그러자 형사는 다시 잘 생각해보라는 말과 함께 그를 다시 유치장으로 밀어 넣었다.

불멸의 신성가족 - 10점
김두식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고독하고 절대적인, 그러나 자기만족으로 함께 부패하는 신성가족이 된다는 것
그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거리에서 유치장을 거쳐 교도소로 가던 바로 그해 가을, 『불멸의 신성가족』(이하 이 책)의 저자 김두식은 사법시험 합격통보를 받았다. 1991년 9월 19일, 저자는 네 편의 홍콩느와르와 함께 뒹굴 참이었다. 다음날이면 백수 인생에 종지부를 찍을 것인가 말 것인가가 결판나는 날이었기 때문에 평범한 하루를 보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오후 4시, 저자는 미리 백수인생은 끝났으며 드디어 신성가족의 일원이 되었음을 통보받았다. 어쩌면 발표일보다 미리 결과를 알 수 있었던 것도 신성가족에 대한 예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신성가족은 맑스와 엥겔스의 첫 번째 공동저작 『신성가족, ‘비판적 비판주의’에 대한 비판: 브루노 바우어와 그 일파를 논박한다』에서 유래한 말이다.

저자는 검찰과 법원, 변호사로 이루어진 법조계를 신성가족에 비유했다. 신성가족. 맑스에 의하면 신성가족은 “불경스러운 대중과 모든 것으로부터 스스로 해방된… 고독한 신을 닮았으며 자기만족적이고 절대적인 존재”였다. 이 책의 저자 김두식은 그가 찬바람 부는 거리를 떠돌다 형무소로 향할 때 고시생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와 바로 그 신성가족에 입문한 것이다.

다음날부터 저자에 대한 예우는 당장 달라졌다. 친척들의 모임에서조차 사람들이 자기와 앞다투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대한 겸손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저자가 검사를 그만 두었을 때 어머니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아마 이런 이야기를 민감하게 받아들일 정도의 감수성을 가진 저자였기에 검찰생활을 오래 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지금은 대학교수다. 

“두식아, 이모가 그러는데 전에는 안 그러더니 네가 검사가 된 이후로는 젊은 애가 왜 늘 뒷짐을 지고 걷는지, 애가 좀 이상해졌나 생각했대. 어른들을 모신 자리에서도 왜 늘 중심에 있으려고 하는지, 쟤가 원래는 안 그랬는데 검사가 되더니 아예 영감노릇을 하려나 생각했다고 하더라.”

"이 버러지만도 못한 놈들, 똑바로 다 불어"
그는 교도소에서 두 번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검찰 유치장에서 차례를 기다렸다가 포승줄에 묶인 채로 검사실로 가서 바로 앞 순서가 끝나기를 기다렸는데, 세 명의 소년수들이었다. 조사는 서기가 대신하고 있었으며 검사는 의자를 창가로 돌린 채 자고 있었다. 한참을 자던 검사는 배가 고팠던지 일어나 식당에 간다며 나가려다 나란히 묶여있는 소년들을 쳐다보았다. 

소년들을 권태로운 눈길로 물끄러미 쳐다보던 검사는 갑자기 책상위에 있던 서류철을 집어 들고 소년들의 머리를 차례로 내리쳤다. “이 버러지만도 못한 놈들. 똑바로 다 불어.” 그러더니 구석에 멍청하게 앉아있는 그를 힐끗 돌아보았다. “이건 또 뭐야?” “네, 그 친구는 시국사범입니다.” “그래?” 검사는 그를 한심하다는 듯 한참을 내려다보다 문을 열고 나갔다.

그는 그때 생각했다. “이런, 제길, 저놈들은 내가 누군지 관심도 없구나. 아예 누군지도 모르고 있어. 그러면서 무슨 검사랍시고.” 당시로서는 그래도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던 그는 자존심에 꽤나 상처를 입었다. 그때는 한창 피가 끓는 젊을 때였으니까 그가 상처를 입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검사의 입장에서는 매우 귀찮은 범법자의 한 명이었을 테지.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공소장이 교도소 안으로 배달되었고 그는 재판을 받으러 법정에 나가게 되었다. 재판 첫날, 구속 된지 거의 두 달 만에 잡힌 재판일정이었다. 오랜만의 외출에 설렘 반 재판에 대한 불안함 반으로 푸른 수의에 수갑을 차고 법정에 앉았다. 간단한 인정신문이 끝나고 검사가 무엇인가를 읽기 시작 하고 이어 판사가 뭐라고 중얼대더니 그만 일어나란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시 유치장에 들어가는 그를 향해 간수가 설명해주었다. “속행이야. 4주 속행. 4주 후에 다시 재판을 한단 말이지.” 허탈했다. 그는 오늘의 재판을 위해 두 달 동안 감방에서 준비를 했다. “우리는 왜 민주노조를 만들었으며 파업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아니 그는 그보다 자신을 세워두고 하는 말들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내가 판사하고 이미 이야기를 다 했다니까요"
그렇게 재판은 4주에 한 번씩 열렸으며 4개월을 끌었다. 그러니까 1심 재판의 미결수로써 그는 무려 6개월을 감옥에 갇혀 있었던 셈이다. 중간에 설날연휴가 끼었을 때는 한 파스를 거르기도 했다. 그가 감옥에서 겪을 하루의 고통 따위는 아무도 안중에 없는 듯했다. 마침내 6개월 만에 검사의 구형을 받고 최후진술을 할 기회를 얻었다.

4개월 동안 이어진 재판에서 판사와 검사, 변호사는 자기들끼리만 아는 언어로 속삭였었다. 그는 그게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왜? 내가 이럴 수밖에 없었는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변호사는 면담 자리에서 그에게 말했었다. “그냥 가만히 앉아 계세요. 내가 다 알아서 합니다. 판사하고도 이야기를 다 했어요.”

담당 변호사는 말하자면, 그에게 반성하는 표정으로 피고석에 묵묵히 앉아 있기를 원했다. 그럼 자기가 다 알아서 한다는 거였다. 이미 판사하고도 이야기가 끝났다고 했다. 그럼 이 재판은 뭔가? 변호사는 그가 실형을 얼마나 많이 살게 될 건지보다 어떻게든 자기 행동의 이유를 말하고 싶다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를 못했다.

변호사는 최후진술도 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그냥 선처를 바란다는 말만 하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럴 수 없었다. 자기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공장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고 왜 노동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했다. 그리고 만약 실정법을 어긴 것이 있다면 당당하게 벌을 받겠지만, 원인과 결과에 대한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며 장황하게 최후진술을 하고 말았다.

6개월을 갇혀있는 동안 공식 면담 외에 한 번도 대화가 없었던 변호사는 일부러 검찰유치장에 앉아있는 그를 찾아왔다. 변호사는 버럭 화를 내었다. 왜 시키지 않은 짓을 해서 일을 망치느냐는 거였다. 그러면서 자기는 모르겠으니 이후의 일은 책임질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변호사에게 말했다. “책임질 필요 없으십니다. 살아도 제가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희망제작소의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저자는 이미 2004년에 『헌법의 풍경』이란 책을 통해 법조사회의 비리에 대하여 신랄한 비판을 한 바가 있다. 나는 아직 그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책도 반드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은 대한민국의 법조사회가 얼마나 부패했으며 그 피해를 국민들이 얼마나 짊어져야만 할 것인지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다.

이 책은 희망제작소가 진행한 <우리시대 희망찾기> 프로젝트 중 ‘사법’ 분야 연구의 결과물이다. 이 책의 저자는 언제부터인가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렸다고 했다. 그 스스로 사법시험이 보장해준 특권을 버렸다고는 하지만, 그는 여전히 법조계의 한사람이었으며 젊은 나이에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부담스럽고 두렵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처음엔 무조건 이유 없이 거절하려고 했지만 법학분야에선 흔치 않은 질적 연구란 점이 묘한 흥미를 끌었다. 질적 연구란 문제를 정해놓고 여러 가지 가설을 제시하며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수집하는 양적 연구와 달리 대화를 통해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를 상상하고 창조하도록 돕는 실천적 수단의 하나다. <우리시대 희망찾기>는 심층면담을 질적 연구방법으로 채택했다.   

저자에게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 내용을 녹취하여 분석하고 재구성하여 책을 집필한다는 것은 양적 연구조차 거의 하지 않는 법학분야에서는 흔치 않은 기회로서 여로 모로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양적 연구나 질적 연구, 혹은 연역법이나 귀납법과 같은 전문적이고 고리타분한 느낌은 전혀 받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은 한적한 대포집에 앉아 저자의 경험담을 듣는 것처럼 편안하다. 그의 글은 법조인 출신답지 않게 매우 친절하고 부드럽다. 그에게서는 신성가족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고백했듯이 끊임없이 겸손해지려고 노력했던 탓이기도 하겠지만, 이 책의 내용이 말하듯 치열한 자기반성의 결과였을 것이다.

『불멸의 신성가족』은 법조계의 검은 커넥션을, 그러나 부드럽고 친절한 필치로 그려낸 작품
내가 이 책 이야기를 하면서 왜 ‘그’에게 들었던 오래된 기억을 먼저 들추었을까? 그것은 오래 전 들었던 그의 경험담 속에는 이 책에서 통렬히 비판하는 신성가족의 비리가 태연히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검사였던 저자가 만난 여러 명의 현직 판검사, 변호사의 입을 통해 밝혀지는 거대한 커넥션의 뿌리는, 그러나 우리가 이미 익히 알고 있고 겪기도 했던 실체들 중 일부였던 것이다.

이토록 짧은―또는 짧아야만 하는―서평으로 신성가족이 만들어놓은 검은 실체를 모두 보여준다는 것은 무리다. 그걸 모두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먼저 읽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신영철 대법관 사태가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차분한 설명도 들어있다. 신영철 사태는 신영철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아니라 신성가족의 문제였다. 

이미지=언론사취재사진

이 책을 쓰게 된 연구프로젝트는 신영철 사태가 일어나기 훨씬 전에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신영철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이미 모든 작업을 마치고 집필 작업에 들어갔으며 출판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 책 속에 이미 신영철 사태가 예견되어 있었음을 발견한다. 신영철 사태는 신성가족으로 말하자면, 그저 지극히 자연스럽고 온당한 하나의 일상이었다.

대법관은 법조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최후의 목적지다. 그러나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이 하나의 사건에 이름만 빌려주고도 수천만 원의 수임료를 받는다는 소문은 대법관 자리가 순수한 명예로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현실을 절감케 한다. 이용훈 대법원장도 대법관 출신의 변호사 시절 사건을 수임했지만 변론은 김앤장이 도맡았던 때문에 명의만 빌려준 게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에 시달렸었다.

이 대법원장이 여기에 발끈해 세무자료까지 제출하며 자신의 청렴을 강조한 것은 나름대로 절제한 자신의 변호사 생활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도 대법관을 그만두고 변호사를 개업한 5년 동안 60억 원에 달하는 수임료를 벌어들이는 기록을 세운다. 그렇게 청렴에 자신 있다던 이용훈 대법원장이 이 정도라면 다른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의 수입은 어느 정도일까.

'거절할 수 없는 돈'과 '거절할 수 없는 관계'
이 책의 주제들은 우리에게 하나같이 낯설지 않은 것들이다. ‘전관예우’ ‘거절할 수 없는 돈’ ‘청탁’ ‘압력’ ‘평판’… 신영철이 서울중앙지법원장의 이름으로 현직 재판관들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그들이 이 모든 주제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자신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법원장의 전화에 헌법상 재판권 독립 운운하며 맞설 수 있었을까?

슬픈 일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미 우리 국민들은 사법시스템이 신성가족에 점령당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책 속의 구술자들이 말하듯 억울한 일을 당해도 법에 호소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봐야 나만 더 힘들어지고 내 생활만 파탄 날 뿐이니까…’ 의외로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은 심각했다. 변 교수라고 밝힌 한 구술자는 이렇게 말한다.

“대기업들이 노조원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것이다. 민주노총의 집계에 따르면 한때 노조원에게 요구한 손해배상의 규모가 2000억 원을 넘어선 적도 있을 정도다. 이런 식의 법률남용은 ‘모든 저항과 자기 권리 구제에 따른 손실을 개인에게 책임지게 함으로써 실제로는 법으로 저항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손해액을 계산하는 것도 결국은 자본가와 법률가들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이래로 법은 완전히 자본의 하수인이 되었으며, 약자가 몸을 일으키는 순간 불법으로 만들어버리는” 우리 사법시스템에 대한 변 교수의 통찰에 귀 기울일 점이 많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우리 사법시스템에서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거절할 수 없는 돈’의 문제이다.

판검사들이 제아무리 깨끗하게 살고 싶어도 이 거절할 수 없는 돈의 존재는 거대한 신성가족에 파묻힌 그들을 결국은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원치 않으나 남들이 다 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게 되는 이 거절할 수 없는 돈의 정체를 이 책은 신성가족이란 이름으로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신영철 대법관 사태도 신성가족이 만든 관계망이 만들어낸 일각일 뿐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결국 이 거절할 수 없는 돈과 신영철의 e메일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커넥션을 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저자가 말한 신성가족의 관계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얻게 될 엄청난 부도 있었을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연구에 응해준 현직 판검사 출신 구술자들은 “판검사들은 어떤 경우에 돈을 받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어야 하고, 둘째, 잘 아는 사람들, 특히 판검사 생활을 함께 했던 변호사들의 돈이어야 하며, 셋째, 액수가 너무 크지 않아야 한다. 경우에 따라 ‘거절할 수 없는’ 인간관계가 개입되면 돈이 좋아서가 아니라, 대열을 무너뜨릴 수 없어서 받아야 하는 특별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이들은 성실하게 면담에 응하기 했지만 역시 신성가족의 일원이란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럼 판검사들에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안전한 돈은 누구의 돈일까? 아마도 준(準)국가에 해당하는 삼성의 돈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자기가 맡은 삼성 관련 사건이 없는데 김용철 변호사 같은 사람이 꾸준하게 몇백만 원 수준의 돈을 “좋은데 쓰시라”며 가져다 준다면? 이 안전하고 지속적인 돈을 누가 거절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저자는 돈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아니라고 말한다. 면담을 진행할수록 문제는 돈이 아니며 바로 ‘거절할 수 없는 돈’을 만들어내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저자의 말처럼, 일부 판검사들이 그냥 돈이 좋아, 골프가 좋아, 술이 좋아 아무한테나 접대를 받는 게 문제라면 그것은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썩은 사과는 골라내면 그만이니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 관계망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우리는 신영철 대법관 사태의 본질도 그 관계망을 통해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그 관계망을 이해하게 되면 그 관계망에서 자라온 판검사들이 현 법조계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는 실정으로부터 몇 차례의 사법파동을 더 겪어야만 해소될 것이라는 슬픈 현실도 보게 될 것이다. 

『불멸의 신성가족』이 신성가족을 향한 고독한 투쟁이 되지 않기를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모든 국민이 한사람도 빼놓지 말고 읽었으면 하고 바란다. 특히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 책을 사서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사서 읽는 자체도 대한민국을 깨끗하게 만드는 시민운동의 일환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법조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이 책을 읽으며 뼈저린 반성과 성찰을 통해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우선 나부터 이 책을 내 주변의 친구들과 내가 속한 단체의 동료들에게 사서 읽기를 권할 생각이다. 말로만 사법비리를 탓하고 개혁을 외칠 것이 아니라 직접 이 책을 사서 읽는 것부터 실천하자. 이 책이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사법개혁은 가까워질 것이며, 민주주의도 그만큼 넓어지지 않겠느냐고 말하면서 말이다. 

우리 모두는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은 그 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우리는 늘 법속에서 법과 함께 살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전율을 느꼈다. 우리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동안에도 신성가족은 끊임없이 자기들만의 규율과 질서를 만들며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신영철 대법관 사태처럼 신성가족들이 저지르는 사법비리는 운명인가? ―나는 신영철의 행동도 대법관이 되기 위한 포석의 하나였고, 대법관이란 자리는 궁극적으로 엄청난 돈을 보장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확실히 비리라고 생각한다―박재영 판사처럼 저항수단은 오로지 사표를 던지는 길밖에 없는가? 그렇지 않다.

신성가족을 만들어낸 것은 실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들이기 때문에―사실은 신성가족을 비판하는 우리도 전관변호사를 찾지 않나―, 결자해지란 말처럼 매듭을 풀 책임도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할 것이고 그 힘과 지혜도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매듭을 풀어가는 출발은 현실을 아는 것이고 분노할 줄 아는 것이 아닐까. 

바로 이 책 『불멸의 신성가족』에는 숨겨진 현실을 까발기고 분노하는 마음을 담아놓았다. 다른 이들도 이 책을 읽다보면 원래는 우리 모두가 ‘알면서도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을 하나씩 깨닫는 분노를 느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신영철 같은 부패한 인물들이 사법부에서 완전히 사라지기를 바란다.        파비

불멸의 신성가족 - 10점
김두식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Posted by 파비 정부권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마음이 머무는 도시 그 매혹의 이야기 - 10점
이희수 지음/바다출판사

 

여행의 묘미는 변함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공간을 찾아 지나간 시간들을 추억하는데 있다. 우리는 그 추억을 통해 과거에 대한 회상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무런 기억의 도움 없이도 그저 아름다움이나 웅장함, 위대함 따위만으로도 얼마든지 여행의 목적한 바를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위대하고 웅장한 아름다움도 거기에 추억이 저장되어 있지 않다면 생명이 없는 나무와 같을 것이다
. 우리는 나무에 돋아나는 연초록 이파리들에 감동하면서 지난 겨울을 생각한다. 그 나무는 그 자리에 남아서 지난 겨울의 온갖 풍상과 눈보라를 다 견뎌내고 드디어 연초록 이파리로 세상을 맞이했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너무나 빠른 세상에 살고 있다. 빨리, 더 빨리가 모토였던 7~80년대를 지나왔던 우리에게 세상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차창 밖의 풍경일 뿐이었다. 우리는 세상 속에 살면서도 그 세상에 머무르지 못하고 늘 지나쳐야만 하는 나그네일 뿐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음이 어디에 머무는지도 모르는 채 습관처럼 달려왔던 것이다.

 

<마음이 머무는 도시 그 매혹의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우리에게 오래된 공간을 찾아 시간을 추억하며 머무르길 권하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 희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기 실린 문화도시들은 빠르지 않은 도시들이다.
   그리고 풍성한 스토리를 가진 도시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도시들이다.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새로운 기운을 얻기 위해,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자에게 어울리는 도시들이다.
   혼자라도 좋고 여럿이라도 상관없다.”



  마음이 머무는 도시 그 매혹의 이야기
- 10점
  이희수 지음/바다출판사

이 책에 소개하는 도시들을 향해 여행을 떠나보라는 저자의 권고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저자처럼 문화인류학을 연구하는 학자도 아니기 때문에 굳이 이 많은 외국의 도시들을 다 여행할 필요도 없고 또 여행할 수도 없다. 저자의 뜻도 굳이 외국의 이 도시들을 향해 떠나기를 권하는데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 저자의 어쩌면 사치스러워 보이기도 하는 이 권고는 시간의 노예가 되어버린 현대인들에게 잃어버린 자신을 찾기 위해 마음을 기댈 만한 오래된 공간이 필요함을 역설적으로 말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매우 매력적인 책이다. 우선 편집부터가 제목처럼 매혹적이다.

 

큼지막한 활자는 이 책 속의 공간을 여행하게 될 독자들의 눈의 피로를 덜어준다. 활자를 여행하는 중간중간에 오래된 유적과 도시의 사진을 배치해 쉬어갈 수 있도록 하는 배려도 훌륭하다. 활자 속에 들어있는 역사를 읽고 난 다음 휴식 삼아 사진 속의 밀라노 두오모를 물끄러미 쳐다보라. 그리고 두오모의 지붕에서 하늘을 찌르고 있는 3159개의 조각상들을 세어보라.

 

그저 차창 밖으로 지나치는 풍경처럼 책 속의 활자와 사진들을 스쳐가지 말고 차에서 내려 그 풍경 속에 빠지듯 해보라. 그리하여 오랜 세월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공간에서 지나간 시간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라. 그리하여 느림의 미학을 마음껏 느껴보라. 그렇게 해서 그 속에서 마음껏 노닐 수 있기를 이 책은 바라는 것이다.

 

우리는 늘 반만년 유구한 단일민족의 역사를 자랑해왔다. 민족주의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어서 독재자에게마저도 유용한 도구다. 우리가 어린 시절 암기를 못해 혼나던 국민교육헌장에서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어야 하는 이유에도 반만년 유구한 역사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반만년 역사는 언제나 그렇듯 말 속에서만 있었을 뿐 실제로 그 역사는 왜곡되고 부수어지기 일쑤였다.  


나는
에스파냐의 건축물을 보면서는 제발 연대를 묻지 말라며 고개를 흔들었다는 안내인의 이야기를 읽으며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들은 하나의 성당을 완성하기 위해 천 년의 세월을 기다릴 줄 안다. 고딕양식에서 출발하여 바로크 시대를 거쳐 19세기 현대 건축의 요소까지 모두 담고 있다는 팔마 대성당은 사진만으로도 인류의 위대함이 느껴진다.

 

천 년의 세월을 넘어온 이 위대한 건축물을 과연 누구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오늘 누군가가 백 년 혹은 이백 년에 걸쳐 땅을 파고 다지고 기초를 놓고 다시 굳기를 기다리는 지루한 건축물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은 바보가 아닌가. 당신 대에 끝내지도 못할 일을 도대체 누구를 위해 한단 말이요.

 

나는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많은 도시들의 오래된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또한 심한 질투심을 느꼈다. 우리는 왜 저런 곳에서 살지 못하는가. 몇 년 전 프랑스의 세계적인 사진작가 얀이 유네스코의 파견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산하를 찍다가 그런 말을 했다. 미안하지만 한국의 도시들은 도저히 카메라를 들이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우리는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 어딘가에서 그 역사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역사는 둘째치고 사람들에게 평온한 안식을 주는 마음이 머물만한 그런 도시를 찾는 것도 꽤나 어려운 일이다. 자본주의적 속도와 실용만이 강조된 획일적인 건축물들과 거대한 간판들 사이에서 우리의 마음이 잠깐이라도 머물 곳이 없다는 것은 실로 불행한 일이다.   

 

<마음이 머무는 도시 그 매혹의 이야기>는 포르투갈의 아름다운 도시 포르투에서 시작하여 쇼팽과 조르주 상드가 사랑한 마요르카, 중세 절대왕권에 밀린 교황청이 피난해있던 프랑스의 아비뇽, 밀라노와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를 거쳐 고대 그리스 신화의 고향 크레타 섬으로 떠난다. 그리고 석양이 아름다운 동유럽 최고의 문화도시 프라하에 잠깐 들른 다음 에메랄드 빛 지중해를 건넌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도시 터키 안탈리아는 산타클로스의 고향이다
. 이곳에서 지중해를 따라 다시 서쪽으로 가면 고대신전과 조각상의 위대함을 만날 수 있는 룩소르(테베) 그리고 까뮈와 지드의 정신적 고향 알제가 기다린다. 그리고 지중해를 떠나 아시아에서 앙코르와트와 이슬람문화의 화려함과 역동성이 살아 숨쉬는 파키스탄 라호르를 만난다.

 

라호르는 농부의 아들이었던 나나크가 힌두교를 접목해 이슬람 시크교를 창시한 곳이다. 자비를 너의 모스크로 삼고, 신앙을 너의 기도 방석으로 삼고, 정직한 삶을 너의 <꾸란>으로 삼고, 겸허함을 너의 율법으로 삼고, 경건함을 너의 예식으로 삼아라.라는 가르침을 새기며 혹한의 땅 이르쿠츠크와 우리와 닮은 사람들이 옛모습을 간직한 채 살고 있는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를 거쳐 캐나다 밴쿠버와 미국의 첨단도시 시애틀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장 그르니에는 사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사는 것보다 덜 힘들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여행하게 될 이 책 <마음이 머무는 도시 그 매혹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도시들은 하나같이 사람들의 정이 느껴지는 도시다. 이 도시들에선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사는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이 도시들의 거리를 걷게 된다면 살아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기억 속에 잠자고 있는 옛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수천 년간 숙성된 깊은 맛과 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부족하나마 이 도시의 거리를 직접 걷는 즐거움을 우리에게 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굳이 포르투나 알제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우리의 마음이 머물 수 있는 거리를 찾는 여유로움을 선물해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다면 혹시나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게 되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지 않을까.  파비

마음이 머무는 도시 그 매혹의 이야기 - 10점
이희수 지음/바다출판사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 제 블로그 공지사항에 들어갔다가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알라딘-티스토리 서평단에 합격한 것입니다. 겨우 서평단 모집에 뽑혀놓고 무슨 합격이냐구요? 하하~ 제가 입사시험에 붙은 이래로 물경 이십여 년 만에 합격이란 걸 해보는 바이니 그냥 뽑혔다고 하는 것보단 합격이라고 좀 허풍을 쳐도 큰 허물이 되지는 않겠지요? 된다구요?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참 깜박했네요. 8년 전에 공인중개사 시험에서도 기쁜 소식을 접한 바가 있었군요. 요즘 기억력이 형편없습니다. 그때도 기뻤지만 지금도 기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통점이 있다면 그냥 우연한 계기로 도전하게 됐는데 붙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더 기분이 좋군요.

알라딘 - TISTORY 서평단 당첨 블로그

◎ [인문/역사/사회/자연과학] 카테고리 (총 1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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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직도 블로그 초보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제 손으로 직접 보다 나은 블로그 환경을 만드는데도 익숙하지 못할 뿐 아니라 티스토리에서 꾸준하게 공지사항을 공지한다는 사실도 얼마 전에야 알았답니다. 덕분에 알라딘 서평단 모집에 응모하게 된 것이지요. 공지사항을 처음 열어본 것이 글쎄 서평단 모집 공고였거든요.

 

8년 전에도 그랬었던 거 같군요. 어느 날 아내의 선배와 술을 마시다가 이 아줌마가 갑자기 부권씨, 고마 공인중개사 시험이나 한 번 쳐보지? 그거 시험 별로 안 어렵다더라. 60점만 넘으면 된다던데, 하나 따 놓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그러더군요. 그래서 진짜로 시험을 쳤지 뭡니까? 물론 합격했으니까 이런 말도 하는 거죠. (그런데 그 선배는 그런 말 한 것조차 기억 못 하더군요. 그냥 장난으로 한 말이었던 거죠. ㅎㅎ)

 

반년 공부했다고 하니까 아무도 안 믿더군요. 거기다 시험치기 일주일 전에 대형사고가 하나 터졌었는데요. 9·11테러라고요. 거 왜 뉴욕 맨하탄에 있는 무역센타에 비행기 두 대가 폭탄 실고 가서 충돌했잖아요. 아이구~ 일주일 내도록 테레비로 그거 보느라 시험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요.

 

그런데 합격자 공고에 이름이 보이더라고요. 문제가 너무 쉬웠나 봐요. 하긴 1, 2차 다 객관식이었으니까…. (그렇게 받은 자격증은 지금 장농에서 장기수면 중이세요. 요즘 갱제가 무너져서 부동산도 영 장사가 안 된다더만요, ㅠㅠ) 이번에 알라딘-티스토리 서평단 모집도 알고 보면 장난 아니었거든요? 응모 트랙백이 4백 개가 넘었고 그 중에 40명이 뽑혔다니까 나름대로 경쟁이 꽤 치열했네요. 물론 모두들 가벼운 마음으로 응모했을 테지만요.

 

하이고~ 그러고 보니 이거 제가 제 자랑만 잔뜩 늘어놓고 있었군요. 그래도 이해해주세요. 이런 것도 아니라면 저 같은 소인배가 언제 우쭐거릴 기회라도 있나요? 그냥 귀엽게 봐주세요. 징그럽다구요? 그래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봐주세요. 어쩌겠어요. 어쨌든 오늘 무척 기분 좋은 날이군요, 간만에.

 

제가 당첨(사실은 합격이 아니고 당첨이 맞겠죠, ㅎㅎ)된 분야는 인문/사회/역사/자연과학 분야인데요. 저하고 어울리려나 모르겠어요. 저는 4개 분야 중에 유아/어린이/학부모/가정을 뺀 나머지 분야 즉, 문학/만화’, 경제/경영/자기계발/실용’, 인문/사회/역사/자연과학에 모두 응모했는데요. 이중 하나는 당첨되겠지 하는 마음으로요. 그런데 실제로 하나는 붙었군요.

 

이런 걸 유식하게 포트폴리오 전술, 아 이건 좀 비유가 적절하지 않은 것 같군요. 분산투자라니, 무슨…. 그냥 인해전술이라고 해두죠. 그래도 유아/어린이/학부모/가정’ 파트에 응모 트랙백을 안 보낸 건 제 양심의 발로였답니다. 아무리 인해전술이라지만, 차마 거기까진 못 보내겠더군요.

 

쾌락의 기쁨은 잠깐이요 고통은 영원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앞으로 서평 써 올릴 일이 걱정이네요. 그래도 공짜로 책 보내준다는데 그런 고통쯤 얼마든지 감수해야지 않겠어요? 그리고 그 고통도 알고 보면 쾌락의 연속인 걸요. 앞으로 공짜로 보내주는 책 열심히 읽고 부지런히 독후감 써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덤으로 ‘책 보기를 돌같이는 우리 아들녀석에게도 모범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싶군요. “아들아, 책은 돌이 아니라 바로 황금이란다, 황금!그러면 이 녀석 눈이 번쩍 뜨일 게 분명합니다.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황금의 단맛을 잘 알거든요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