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4.02 세상엔 절대적 선도 악도 없다 by 파비 정부권 (2)
  2. 2009.03.16 북면온천에서 주남저수지까지 걸어보니 by 파비 정부권 (10)

낙동강 천삼백 리 길을 걷는다

1. 낙동강의 고향, 태백산으로

세상엔 절대적 선도 절대적 악도 없다
오후 7, 구미종합터미널에도 서서히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초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3분 안에 도착할 테니 터미널 옆 주유소 앞에 서있으란다.


잠시 후 낙동강 변 도로에 비상등을 깜박거리며 달려오는 카렌스 승용차가 보인다
. 이제 출발이다. 낙동강의 발원지 태백산으로 가는 것이다.


초석님은
<사단법인 우리땅걷기> 회원이다. 내일은 근무를 해야 하는 날이지만 치과의원 문도 닫고 오는 중이라고 했다. 대화를 통해 그가 신정일 선생의 열렬한 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신정일 선생 이야기만 나오면 입에 침이 마르는 줄 몰랐다.

 

주말엔 쉬어야지요. 우리나라도 대부분 주 5일 근무가 정착되어 가는데, 그래도 토요일 하루 쉬니까 간호사들은 좋아하겠네요?

, 좋아하지요. 그치만 돈이 안되잖아요. 주말만 되면 이러이 돌아댕기니 우리 마누란 별로 안 좋아해요.

 

자동차는 시원한 고속도로를 달려 금새 안동에 닿았다. 구미에서 안동까지 이렇게 가까운 거리였던가. 이미 세상은 칠흑 같은 어둠에 점령당해 있었다. 차는 도산서원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자면 안동시내를 지나가야만 한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낙동강 다리를 건넜다.

 

강은 저 아래 어둠 속에 그 모습을 감추고 있다. 그러나 제아무리 어둠이 빛을 가린들 도도하게 흐르는 낙동강의 기질마저 감출 수는 없는 일이다. 어둠보다 더 짙은 검은 물줄기가 대지를 어루만지며 흘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시내에 들어서자 도로변을 밝히는 불빛들이 여느 도시와 다르지 않다. , 그런데 신호등들이 모두 황색점등 일색이다. 깜박거리는 노란색 신호등 아래로 차들은 잘도 지나다닌다. 초석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 익숙한 솜씨다. ~ 조수석에 뻗은 두 다리에 쥐가 날 것 같다.

 

다시 어둠에 점령당한 시골길을 달린다. 지금 우리가 가는 목적지는 농암종택(조선 중기 문신 농암 이현보의 종가)이다. 그곳에 <낙동강역사문화탐사>의 저자 신정일 선생이 기다리고 있다. 그는 그곳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일행들의 낙동강답사(안동지역)에 강연을 한다고 했다.

농암종택의 주인이 살고 있는 안채. 안동댐에 수몰되면서 옮겨온 이곳이 아직도 안정이 덜 된 듯했다.

이미 시간은 9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초석님은 걱정이 되는 듯 신정일 선생에게 연신 전화를 걸어 조금 늦으니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 , 이거 선생님 추운데 많이 기다리시겠네. 에이, 농암종택 거 군불도 뜨끈뜨끈하게 때 놓았을 텐데 방안에 가만 계시면 되지 뭐. 혼자서 중얼거리며 달리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그러더니 깜깜한 시골길에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이 길을 제집 드나들 듯 했을 초석님도 시간에 마음을 빼앗겼던지 길을 잃고 말았다. 깜깜한 비포장 길을 계속 달리다 보니 경운기 한대도 겨우 지나갈 것처럼 길이 좁아지기 시작한다.

 

결국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를 곳에서 우리는 어렵사리 차를 돌렸다. 다시 되돌아 나와 국도변에서 보니 농암각자(聾巖刻字)라고 쓰여진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그걸 보고 잘못 길을 들은 것이었다.

 

, 저걸 보고 헷갈렸네. 길도 진짜 비슷하게 생겼습디더. 그래도 좋은 거 하나 알았네요. 저 안에 어디 농암각자가 있는 모양인데 다음에 꼭 한 번 와봐야겠심더. 초석님의 사투리는 속된 말로 완전 오리지널이다. 의사보다는 농군 냄새가 더 물씬한 것이 정겹다.

 

다시 1Km쯤 더 내려오니 이번엔 진짜 농암종택이라고 쓴 이정표가 보인다. 오른쪽으로 꺾어 드니 정말 아까 잘못 들었던 길과 생김새가 비슷하다. 한참을 달리니 낙동강이 보인다. 낙동강 변을 달리는데 낭떠러지 아래 물살이 제법 세다. 어둠보다 더 짙은 검은 물결이 무섭기까지 하다.

 

드디어 농암종택 도착. 대문 앞 공터에는 관광버스와 수십 대의 승용차가 번쩍거리고 있었다. 최신형 제네시스도 보이고 대체로 고급차들이다. , 그러고 보니 오면서 들은 대로 이곳에는 7명의 환노위 국회의원들과 봉화군수와 안동시장이 있을 터였다. 그리고 수행원들도.

 

이분들은 오늘 안동과 봉화 일원의 낙동강을 직접 발로 걷고 느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강문화 전도사 신정일 선생으로부터 훌륭한 강연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분들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결심했을까? 글쎄 그게 가장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강연도 모두 끝나고 왁자지껄한 담소 소리가 담장을 넘어왔다. 고색창연한 고가의 적막을 기대했지만 부질없는 바람이었다. 이미 국회의원들과 이 고을 수령들과 수행원들이 모여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런 기대는 애초부터 말았어야 했다.

 

바깥채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 앞으로 낙동강이 흐른다. 하늘의 별이 유난히 맑게 빛났다.

대신 하늘에는 별이 총총 떠 있었다. 검은 어둠 위에 하늘은 더없이 푸르렀다. 맑은 대낮에 보는 하늘보다 더 푸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하늘은 머리 위에 쏟아질 듯 지척에다 별들을 매달고 있었다. 반짝거리는 별들이 더없이 하얗게 빛난다.

 

사랑채와 긍구당(肯構堂)등을 둘러본 다음 이 저택의 주인이 살고 있는 안채로 가보았다. 안채는 대청에 매달린 불빛만이 사람이 산다는 것을 증거할 뿐 조용하다. 서울에서 온 귀한 손님들을 위해 그저 묵묵히 안방만 지키기로 한 것일까.


다시 사랑채 마당으로 나오니 신정일 선생이
MBC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나름대로
찬스다! 싶어 얼른 카메라를 들이댔다. 항상 자동모드만 고집하는 내 카메라는 번쩍 플래시를 터트렸다. 카메라 기자가 움찔하며 손을 들어 제지하며 당황한다.

 

이런, 이럴 때 플래시를 꺼야 하는데 할 수 없지. 이미 지나 간 일. 나 때문에 텔레비전에서 인터뷰 하던 얼굴에 갑자기 하얀 불빛이 지나가면 민망하고 미안해서 어쩌지? 초석님이 옆에서 훈수를 둔다.

 

이런 데는 플래시 터트리면 안됩니더. 오토에다 놓지 말고요. 항상 플래시발광금지 모드에다 놔 두이소. 사람들이 잘 모르고 무조건 오토에다 놔 두거든예~. 그런데 플래시발광금지가 오토하고 똑같심니더. 플래시만 안 터진다 뿐이지요.

 

태백산으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 신정일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없는 것이여.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서 낙동강 살리기다 운하다 말들이 많은데, 물론 나는 대운하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어쨌거나 요즘처럼 낙동강에 많은 관심을 보인 시절이 어디 있었나? 그러니까 절대적인 악이란 것도 없다는 말이 맞는 말이제. 

 

그러고 보니 낙동강이 오늘날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랬다. 매년 6월 깨나 ‘낙동강전선’이란 피어린 이름으로 우리에게 기억되었을 뿐 낙동강을 낙동강으로 살펴준 적이 제대로 있었던가.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절대적인 악이란 것도 절대적인 선이란 것도 없다는 그 말.  나는 철학적 심오함이 숨겨진 듯한 그 말의 깊은 뜻을 아직은 완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낙동강과 함께 길을 걸으며 서서히 그 뜻을 헤아리게 될 것이다. 멀리 철암역의 불빛이 보인다.

 

쓸쓸한 적막 속에 아스라히 빛나는 역사의 불빛. 언젠가 읽었던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 느낄 수 있는 불빛이 아마 저런 것이었으리라.       파비

 

사평역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낮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사단법인 우리땅 걷기」라는 곳에서 낙동강 걷기 답사 계획이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 계획은 10회에 걸쳐 낙동강의 발원지 태백산 황지에서부터 을숙도까지 걸어서 탐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평소에 낙동강 등을 따라 걷는 것에 관심이 있던 나는 얼른 회원가입을 했다. 특히나 정부의 대운하사업이 4대강 물 살리기란 미명을 덮어쓰고 그 야욕을 멈추지 않는 터에 낙동강을 걸어서 탐사해본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되었다

도보훈련에 나서다

나는 어려서부터 걷기를 즐겼다평소에는 작은 산을 서너 개씩 넘어 지름길로 다니다가도 갑자기 걷고 싶은 마음이 들면 일부러 신작로를 따라 걸었다. 협곡을 따라 길게 뻗은 신작로는 학교에서 집까지 족히 40리가 넘었다. 지금도 걷기를 즐겨 해서 웬만한 바쁜 일이 아니면 시내까지 걸어서 간다. 걸을 때 나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 걸을 때 나는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다.

북면온천에서 동쪽으로 길을 접어들면 마산삼거리다. 주남저수지까지 16km란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지만 낙동강 천삼백 리를 걸어서 답사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미리 훈련을 하기로 했다. 배낭을 쌌다. 그런데 배낭에 무얼 넣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이렇게 일부러 계획을 하고 나서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빈 배낭을 매기도 그렇고 해서 걷기 전도사 신정일 선생의 「섬진강 따라걷기」를 ‘폼’으로 한 권 넣었다. 그리고 20번 버스를 타고 북면으로 갔다. 북면에서부터 주남저수지까지 걷는 것이 1차 훈련의 목표였다.

날씨는 매우 싱그러웠다들판에서 불어오는 봄내음이 코를 간지럽혔다완연한 봄이었다. 하늘에 태양은 적당한 온도의 빛으로 도보여행훈련 첫날을 배려해주었다. 들판을 바라보며 길을 걷자니 옛날 생각이 떠오른다. 군대시절, 가끔 똥차를 끌고 며칠씩 훈련소를 돌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일에 나는 서슴없이 손을 들었었다. 감옥보다 답답하고 지긋지긋한 내무반을 벗어나는데 똥차가 대수일소냐!

한적한 시골길의 풍요로웠던 추억

그렇게 부대 내무반을 탈출해 천국으로 향했다. 똥차를 타고서…. 선탑자인 중사와 나는 이곳에서 더 이상 서로를 갈구는 괴로움의 대상이 아니다. 함께 훈련소를 돌아다니며 무거운 고무호스로 오물을 퍼 담아야 하는 동지일 뿐이었다사람들이 보인다, 진짜 사람들이아가씨도 보이고 할머니도 보인다. 봄날의 아지랑이를 밟으며 우리는 넓은 논산평야를 가로질러 달린다그랬다. 그때도 봄이었다마치 마을 잔칫집 가마솥에서 김이 피어 오르듯 들판에선 아지랑이들이 어지러이 피어 올랐다.
 
그 아지랑이들 속에서 한 명의 농부와 한 마리의 소가 밭을 갈고 있었다. 그게 밭이었는지 논이었는지는 기억나지도 않지만,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닐 터. 나는 그때 소를 끌고 한가롭게 밭을 가는 그 농부의 주변에 피어 오르는 아지랑이에 흠뻑 취했다. , 아지랑이가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니. 아지랑이가 이토록 평화로울 수 있다니. 나는 그 농부와 소가 하염없이 부러웠다. 옆에서 선탑 중사는 핸들을 잡고 노래를 불렀다. “아싸~ 호랑나비♬ 한마리가~♪”
   

지금은 그때처럼 소를 끌고 밭을 매는 풍경을 구경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이맘때면 들판을 가득 적시고 남을 봄의 정취는 여전하다봄은 풍요를 기약하는 계절이다.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수풀들도 서서히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고, 봄볕 가득한 들판 한가운데 피어 오르는 아지랑이는 풍성한 가을을 약속한다이제 사람들은 저 들녘에 희망의 씨앗을 뿌릴 것이다
.  

도보자 앞으로 돌진해오는 쉼 없는 차량행렬. 이들을 피하느라 걷기는 계속 중단된다.


길은 사람을 위한 길이 아니었다

힘차게 내딛는 발걸음은 그러나, 곧 난관에 봉착했다. 길은 사람을 위한 길이 아니었다. 오로지 자동차만이 다닐 수 있도록 설계되고 만들어진 차도일 뿐이었다. 차라리 자동차 전용도로란 표지판이라도 달아놓았다면 이런 불평은 없었으리라. 자동차전용도로엔 말 그대로 자동차만 다닐 수 있다. 만약 자동차등록법상 자동차가 아닌 것이 다니게 되면 벌금 등의 처벌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자동차 전용도로가 아닌 곳이라면 당연히 자동차 외에 자전거나 사람이 다닐 수 있다는 말이다.  

또 이는 역설적으로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특혜를 받는 자동차보다 일반도로에서는 사람이나 자전거가 더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 아닐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도로에는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었다. 이런 도로에 사람이 다니다가는 언제 ‘로드 킬’ 신세가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처음에 이 위험천만한 국도를 걸으며 나는 ‘어? 이게 아닌데! 하며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불평은 곧 ‘불안’으로 다시 ‘두려움’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

앞에서 달려오는 차들은 두려움 같은 건 없어 보였다. 배낭을 짊어지고 먼지를 뒤집어쓴 별 볼일 없어보이는 사내쯤이야 별로 신경 쓸 일이 있을 일도 없을 터이다. 그리고 그들은 매우 바빠 보였다. 편도 1차선의 국도 내리막길에서 그들은 속도를 줄일 겨를도 없이 내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어떤 차는 내 어깨를 스칠 듯 아찔한 순간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런 괘씸한…, 한비야의 여행기에서 마치 일부러 자신을 향해 돌진하듯 스쳐 지나갔다는 트럭들 이야기가 생각났다. ‘설마 그럴 리야 있을라고. 그저 다들 바쁜 탓일 게다
.’

대문과 도로가 딱 붙은 길가의 집. 대문 나서기가 무섭겠는데…


계속되는 도로공사, 그러나 ‘걷는사람’을 위한 공사는 없다

북면에서 동읍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올라서니 공사가 한창이다. 아마 4차선 산업도로 공사 중인 모양이다. 잘려나간 고개마루가 횡하다. 이렇게 잘려나간 고개마루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가히 대한민국은 토건공화국이다. 중국에서 건너온 내가 아는 교포들은 한국의 도로를 보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들은 조선족이면서도 중국인의 자부심을 배운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이 웬만해서 한국에 대해 칭찬하는 걸 본 일이 없다. 대국인의 자존심은 서울조차도 별스럽다. 그들에겐 상해가 있고 북경이 있다. 그러나 그런 그들도 대한민국의 도로에는 경탄을 금치 못했다. 대한민국의 도로사정이라든가 그 도로를 닦는 기술수준은 세계 수준급이라는 걸 그들 대국의 자존심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내가 느낀 대한민국의 도로에는 사람을 위한 흔적도 토건왕국의 자존심도 없었다. 지금 한창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도로공사 현장에도 사람을 위한 공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차들이 질주하는 도로에 도보자의 자존심이 끼일 자리는 없었다.

 

시골길에는 사람만 없는 게 아니라 대중교통도 자주 다니지 않아

 

나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나 버스라도 오면 주남저수지까지 타고 갈 심산이었다. 아무리 훈련도 좋지만, 목숨까지 위태로운 도보훈련은 영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버스도 오지 않았다. 내가 걷는 두 시간 동안 북면으로 가는 30번과 본포 방향으로 가는 40번 버스가 지나갔지만,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한참을 버스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다 다시 출발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멀리 저수지가 보인다. 지도를 보니 봉곡저수지다. 이제 저기를 지나면 산남저수지와 주남저수지가 나온다. 다리에 힘이 솟기 시작했다. 두려움이 사라지니 뒤돌아볼 필요도 없이 힘차게 걸었다. 이내 용산마을에 도착했다.

 

용산마을 입구는 산남저수지와 주남저수지를 좌우로 가르는 커다란 제방이었다. 왼쪽에서는 강태공들이 늘어서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내려가 보았더니 망태기에 들어앉아있는 붕어란 놈들의 씨알이 꽤 굵다. 주남저수지에서는 허가 받은 어로행위 외에는 금지되지만 맞붙어있는 산남저수지는 낚시도 할 수가 있다.

주남저수지와 맞닿은 산남저수지의 강태공들. 씨알 굵은 붕어가 꽤 잡혔다.

 
금 긋기식 행정으로 주남저수지의 철새들이 보호될까?

편리한
금 긋기 식 행정은 여기에도 있었다. 소벌(우포늪)을 탐방할 때도 이런 경우를 보았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위는 낚시를 할 수가 있고 아래는 금지되었다. 그때 그런 엉뚱한 생각을 했었다. 그럼, 다리 가운데는?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씨알 굵은 붕어들을 보자 나는 매운탕과 소주가 생각났다. 어쨌거나 주남저수지와 제방 하나로 경계를 가르는 이곳 산남저수지에는 철새가 한 마리도 없었다.

 

주남저수지에는 아직 게으른 철새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아니면 먹을 것을 다 못 챙겨먹어서 아직 떠나지 않고 남아있었던 것일까? 저수지 한쪽 물위에 모여 앉아 연신 물속으로 고개를 쳐 박으며 먹이를 잡아먹거나 자맥질을 하고 있는 오리들이 무척 한가롭게 보였다. 저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조차 까먹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나 저들도 태양의 고도가 높아질수록 떠날 준비를 서두르게 될 것이다.

 

주남저수지를 돌아 생태학습관과 람사르문화관을 지나자 동판저수지가 다가왔다. 오래된 버드나무(?)들이 물속 깊이 뿌리를 박고 있었다. 물속에 둥지를 틀고서도 저렇게 살아있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저녁노을에 물들어가는 물위를 한가로이 유영하는 아무런 걱정도 없어 보이는 백로가 한없이 부럽다.

 

주남저수지 입구에 잘 만들어진 인도, 이 정도 성의라도

 

마산으로 돌아가기 위해 가호삼거리로 향했다. 주남저수지에서 가호삼거리까지 나가는 길에 빨간색으로 치장된 예쁘장한 인도가 인상적이었다. , 이곳은 이렇게도 도보자를 위해 길을 준비해두었구나! 다른 길도 모두 이 정도의 성의를 보여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나는 왠지 그 계산된 성의에 되레 불쾌한 마음이 되었다.

주남저수지 입구 도로의 보도. 좀 좁긴 해도 이 정도면 대단히 준수하다.

 1번 혹은 2, 3번 번호판을 단 마이크로 버스가 차례로 세대나 지나갔다. 나는 처음에 저 차들이 무슨 차일까? 학생들이 많이 탄 걸 보니 학생들 전용버스인가보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똑 같은 1번 번호판을 붙인 커다란 시내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아차, 저게 바로 소위 마을버스라는 것이었군 하고 깨달았지만 이미 버스는 지나가버렸다.

 

그러나 이 동네는 버스가 자주 다녔다. 10분에서 15분 간격으로 한대씩 다니는 것 같았다.(창원역이 종점) 다섯 번째로 내게 다가온 버스는 1번 마이크로 버스였다. 처음 타보는 마이크로 시내버스가 신기하다. 달리는 승차감도 색다르다. 괜히 기분이 좋아 기사 아저씨에게 버스가 참 좋다고, 자주 타야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걷기운동, 살빼기와 미용에도 특효약 아닐까… 

 

하여간 운동은 잘했다. 다음날 이 버스를 타고 주남저수지를 한 바퀴 더 돌았다. 이렇게 이틀 운동을 하고 오늘 목욕탕에 갔더니 글쎄, 몸무게가 2킬로그램이나 빠졌다. 이틀에 2킬로그램씩 곱하기 5하면 열흘이면 10킬로그램을 뺄 수 있다는 무식한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만 산수는 그저 산수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보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다.


걷기운동을 열심히 하면 변비에도 아주 특효라고 한다. 변비는 미용에 매우 안 좋다. 그렇다면 이로부터 ‘미용에는 걷기운동이 최고다!’ 이런 결론이 나온다. 바꾸어 말하면 ‘많이 걸으면 예뻐진다!’ 이런 말이렷다. 그래서 앞으로 걷기운동 임상결과를 여기에다 밝혀볼까 한다. 그러나 어떨지는 모르겠다. 시작이 반이란 속담도 있지만,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악담도 있으니까….          파비

주남저수지 전경. 아직 떠나지 못한(않은?) 오리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주남저수지와 산남저수지를 가르는 둑방에 핀 화사한 꽃들

열심히 작업 중인 꿀벌과 꽃의 사랑 또는 공생? 사랑하면 같이 사는 거죠!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