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밀레니엄파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9.22 신라 최고의 미녀 미실궁 집사는 통화중 by 파비 정부권 (10)
  2. 2009.09.21 선덕여왕은 실제로 미인이었을까? by 파비 정부권 (7)
선덕여왕을 답사하기 위해 경주에 갔다가 선덕여왕 세트장에 들렀습니다. 신라밀레니엄파크 안에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신라밀레니엄파크 입장료는 18000원이었습니다. 5시 이후에 입장하면 할인된 요금 8000원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국립경주박물관과 천마총, 첨성대, 김유신장군묘를 구경하고 난 다음 밀레니엄파크에 갔는데 딱 5시 20분이었습니다.
 

입구에는 이렇게 12지신상이 조각되어 있었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 김유신장군묘 둘레에 새겨진 12지신상을 보고 왔던 터라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김유신장군묘에 새겨진 12지신상은 참으로 정교하고 화려했습니다. 1000년도 훨씬 전의 조각 솜씨가 이렇게 빼어나다니, 감탄을 멈출 수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김유신장군묘를 둘러보면서 우리 모두 같은 생각을 했었답니다. "어떻게 일개 장군의 묘가 왕릉보다 더 화려하지?" 그러고 보니 어떤 왕릉에도 김유신장군묘만큼 화려한 조각이 새겨진 곳은 없었습니다. 선덕여왕릉도 무덤의 모양으로만 보자면 평그저 평범한 능에 불과했습니다. 오로지 괘릉으로 불리는 원성왕릉이 김유신묘와 같은 십이지신상으로 무덤을 치장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나중에 따로 보여드리겠지만, 괘릉(원성왕릉)은 신라 왕릉의 진수를 보여주는 최고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왕릉 입구에 도열해 있는 석상들은 화려함과 예술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들입니다. 웃고 있는 사자, 험악한 인상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칼을 든 무인은 아랍인인지 로마인인지 모를 서역인입니다.

김유신 장군묘도 원성왕릉에 못지않았습니다. 게다가 원성왕릉이나 선덕여왕릉, 진평왕릉 등은 돈을 받지 않았지만 김유신장군묘는 돈을 받았습니다. 짓궂은 김주완 기자가 안내인에게 물었습니다. "아, 그런데 말이죠. 김유신장군묘는 요금을 받던데 왜 여기는 안 받죠?" 원성왕릉을 지키던 안내인이 우물쭈물 했음은 물론입니다.

아마 속으로 그랬을 겁니다. "돈 안 받으면 고맙게 생각할 것이지 별 황당한 질문을 다 하네." 그때 옆에 있던 제가 말했지요. "아이, 김 기자님. 김유신 장군은 칼을 들고 있으니 무서워 돈을 받는 거지요. 괜히 장군 출신에게 흥무대왕이란 시호까지 추증했겠습니까. 다 무서워 그런 거지요."  


선덕여왕 세트장을 향해 한참을 가자니 이런 토우가 집단으로 모여 있는 자그마한 언덕이 나왔습니다. 토우인형 만들기 체험장이었습니다. 작은 언덕이 빙 둘러서 있고 거기에 토우들이 이렇게 세워져 있었으며 그 빙 둘러선 언덕의 중간에 체험장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장난기 어린 궁금증이 발동했습니다.


혹시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은 야한 토우들도 있을지 살펴보았습니다. 한 바퀴를 빙 돌며 자세히 살폈지만 그런 토우는 없었습니다. 에이, 실망감이 밀려왔습니다. '음, 역시 왕년의 자유분방하며 탁월한 예술 감각을 지녔던 신라인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는 것이로군. 신라인들도 이미 오랜 유교적 전통에 자신의 본 모습을 잃어버린 게지."

아래 토기는 국보 95호 토우장식 항아리로서 미추왕릉 지구에서 출토된 것으로 5~6세기 신라시대 작품입니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된 국보, 보물급 문화재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며 당시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됩니다만, 실제로 저는 이 작품이 최고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물을 관람하는 관람객들은 아무도 이 작품을 눈여겨보지 않고 그냥 지나치더군요. 우선 유물의 동선도 문제였지만, 세상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탓도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처럼 요즘 드라마 선덕여왕을 즐겨 보며 당시의 성 풍속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다른 어떤 유물보다 여기에 관심을 기울였을 텐데 말입니다. 

실제로 학자들 중에도 이 유물, 특히 이 유물에 나오는 성행위 장면을 묘사한 토우 인형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화랑세기를 연구하는 이종욱 교수 정도가 이 작품의 우수성을 논하고 있을 따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아니라고 부정하겠지만, 알게 모르게 유교적 엄숙주의가 몸에 밴 탓을 아닐지…. 
 

드디어 미실궁에 도착했습니다. 선덕여왕 세트장에는 왕궁도 있고 귀족들이 살던 집도 있지만 역시 미실궁이 가장 화려하군요. 미실궁 너머로 석양이 서서히 물들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었다면 붉은 노을에 물든 미실궁이 보다 요염한 자태를 뽐냈을 텐데 아쉽습니다.


미실궁에는 집사도 있습니다. 미실궁 정문을 들어서니 집사가 한 분 서서 우리를 반겨줍니다. 복장은 신라시대 복장을 흉내 내 만들어 입은 것 같은데 모자가 좀 특이하군요. 저 모자도 신라시대에 쓰던 모자가 맞을까요? 꼭 동네 할아버지들 쓰고 다니시는 모자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데 미실궁 집사님, 휴대폰 들고 전화하시느라 바쁘시네요. 누구하고 통화하고 계신 걸까요? 혹시 댁에 계신 미실마님으로부터 온 전화?

우산을 든 모습이 너무 특이해서 제가 사진 한 장 찍자고 부탁드렸더니 포즈를 취하다가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에 사진이 이렇게 되고 말았답니다. 어쨌든 저로서는 더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때 맞춰 전화를 걸어주신 미실마님께 감사를 올려야겠군요. 하하.


그런데 미실궁 집사님은 정문을 지키는 일 뿐 아니라 이렇게 관광객들을 위해 사진을 찍어주는 데도 바쁘셨답니다. 집사님의 이런 친절은 결국 미실 새주의 이미지를 제고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어쨌든 친절이 최고의 덕목입니다. 언젠가 하워드 진을 만나기 위해 미국까지 날아간 부산의 대학생들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저희들에게 새겨들을 할 만한 가장 중요한 가치에 대해 한말씀 해주십시오." 그러자 하워드 진이 짤막하게 말했습니다. "카인드니스!" "네?" 노엄 촘스키와 더불어 금세기 최고의 미국 내 진보학자로 추앙받는 하워드 진의 입에서 겨우 "카인드니스!"라니. 평등이니, 자유니, 해방이니 하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고 겨우 "카인드니스?"   

그러나 여러분. 오늘은 진보사상에 대해 논하자는 게 아니고 미실궁을 감상하는 게 목적이었으므로 간단하게 '카인드니스'가 매우 중요한 또는 가장 중요한 가치란 사실을 일단 인정하고 넘어가기로 합시다. 그런데 저도 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매우 감동했었답니다. 친절, 친절함, 그래 세상 어떤 가치보다도 월등한 가치는 바로 친절이지.

창원의 가음정에 있던 한 감자탕집 주인아주머니가 생각나는군요. 이분이 운영하던 가게는 하루 종일 미어터졌는데 저도 이 집에 자주 갔었답니다. 갈 때마다 이 주인아주머니의 독특한 인사를 받을 수 있었지요. 그게 뭐였는지 혹시 이 집에서 감자탕을 드셔본 분이라면 아마 기억이 나실 겁니다.

"친절 합시다!"

밥 잘 먹고 가게 문을 나서는 손님에게 두 손을 배에다 공손히 모은 자세로 허리를 구십 도로 숙이며 "친절 합시다!"라고 인사하는 모습은 진풍경이었습니다. "엥? 나보고 친절하게 살라는 말이야, 아님 자기가 앞으로 나를 볼 때마다 친절하게 하겠다는 소리야?" 아마 헛갈린 분도 계셨겠지만, 그 친절 구호에 누구든 흐뭇한 기분이었을 겁니다.

이로써 오늘 미실궁을 구경한 마지막 감상은 이렇습니다. "친절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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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보덕동 | 신라밀레니엄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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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MBC 드라마에서 선덕여왕 역을 맡고 있는 이요원은 미인입니다. 지난 주 금요일 경주에 선덕여왕을 만나러 가는 길에 김주완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요원은 볼에 살이 붙으니까 예전에 비해 훨씬 낮죠. 전에는 비쩍 말라서 별로더니, 예뻐졌더라고.” 김주완 기자는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선덕여왕도 보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역시 세간의 화제인 선덕여왕을 무시할 순 없나봅니다. 선덕여왕(이요원)의 미모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니 말입니다.
 

경주 낭산 정상의 선덕여왕릉. 김주완 기자와 거다란닷컴 커서님이 선덕여왕릉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요원은 일곱살짜리 아이를 둔 애엄마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아이를 낳고 나서 훨씬 미모가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 너무 마른 것 보다는 적당하게 살이 붙어주는 게 남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점, 혹시 이 글을 보고 계신 여자분들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살이 찌면 곤란하겠지요? 적당한 운동과 적절한 식습관으로 몸매를 관리하는 것도 세계평화를 위해 좋은 일이지요. 물론 건강에도 좋습니다. 아무튼, 그렇다면 진짜 선덕여왕은 어땠을까요? 그녀는 미인이었을까요?

선덕여왕의 미모를 추정해볼 수 있는 두 개의 설화

선덕여왕의 미모에 대하여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어디에도 언급이 없습니다. 다만 김부식은 사기에서 선덕여왕의 사촌동생인 승만공주(선덕왕의 뒤를 이어 진덕여왕이 된다)의 신체에 대하여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자태가 풍만하고 아름다웠으며 키는 칠 척이고 팔을 늘어뜨리면 무릎에 닿을 정도로 길었다.” 이로 보아 선덕여왕의 자태를 가늠해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선덕여왕 역시 진덕여왕처럼 키가 크고 자태가 풍만한 아름다움을 지녔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선덕여왕의 미모를 추정해볼 수 있는 두 개의 설화가 있습니다. 그 하나가 당태종이 보냈다는 향기 없는 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당나라에서 꽃씨와 함께 그림을 보냈는데 이를 본 덕만공주는 단박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꽃은 틀림없이 향기가 없는 꽃이다.” 과연 꽃씨를 심어 후에 핀 꽃을 보니 향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는 선덕여왕의 뛰어난 지혜를 드러내고자 지어낸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와 다른 해석도 있습니다.

당태종이 향기 없는 꽃그림을 보낸 것은 선덕여왕을 비하하기 위해 그랬다는 겁니다. “그대는 미모는 꽃처럼 빼어날지 몰라도 향기 없는 꽃에 불과하니 어찌 신라의 왕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아마 이런 메시지를 보내 여왕의 권위에 흠집을 내고 분란을 일으켜 모종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계책이 숨어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어쨌든 이런 설화로 미루어 살펴보면 선덕여왕의 자태나 풍모가 범상치 않았다는 짐작을 능히 할 수 있습니다.

신라밀레니엄파크 선덕여왕세트장에서 찍은 사진

그러나 이보다 더 확실하게 선덕여왕의 미모를 짐작케 해주는 설화가 있습니다. 바로 선덕여왕을 사모하여 연못에 빠져 죽은 지귀의 전설이 그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 모르는 분이 아무도 없겠지만, 한 번 더 들어보시기로 하겠습니다.

신라 선덕여왕 시대에 지귀라는 거지가 살았습니다. 그는 활리역에서 노숙을 하며 살았는데, 하루는 서라벌에 나왔다가 행차를 나온 선덕여왕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홀딱 빠져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선덕여왕은 진평왕의 맏딸로서 성품이 인자하고 지혜로울 뿐 아니라 용모가 매우 아름다워 백성들의 칭송과 찬사가 자자했는데 한 번 행차를 나오면 모든 사람들이 여왕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위해 거리를 가득 메웠다고 합니다.

지귀, 선덕여왕의 미모에 흠뻑 빠지다

지귀도 사람들 틈에서 선덕여왕을 보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그는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못하고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니며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여왕이 날 안으면 아이고 죽겠네. 아이고 죽겠네.” 사람들이 그의 이 기괴한 행동에 화를 내며 매질을 하였으나 그의 이런 행동은 멈추지 않고 늘 선덕여왕을 사모하는 노래를 부르며 혼자 울기도 하기 웃기도 하는 등 점점 미쳐가고 있었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그를 욕하기도 하고 동정하기도 했습니다.

이 소문은 급기야 전국으로 퍼졌고 여왕의 귀에도 들어갔습니다. 하루는 여왕이 영묘사에 기도를 드리기 위해 행차를 가는데 지귀가 나타났습니다. “아름다운 여왕이여. 사랑하는 나의 여왕이여.” 지귀가 가까이 다가오자 신하들이 제지하여 그를 내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왕은 “어찌 나를 만나러 온 사람을 내친단 말이냐” 하고 신하들을 꾸짖고 지귀가 따라오는 것을 허락하도록 했습니다. 지귀는 기뻐 덩실덩실 춤을 추며 여왕의 행렬을 따라갔습니다. 

선덕여왕이 불공을 드릴 동안 탑 앞에 앉아 기다리던 지귀는 한참이 지나도 여왕이 나오지 않자 안타깝고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심신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지귀는 마침내 지쳐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불공을 마치고 나오던 선덕여왕은 쓰러져 잠이 든 지귀를 보았습니다. 자기를 사모하다 지쳐 잠이 든 지귀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여왕은 자신의 팔목에서 팔찌를 풀어 잠든 지귀의 가슴(성기 위 옷 부분이란 설도 있다)에 올려놓고 떠났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무튼 잠에서 깬 지귀는 선덕여왕이 자기의 사랑을 인정해준 것이라고 여기고 팔찌를 가슴에 꼭 껴안은 채 기뻐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가슴속에서 터져나온 불길에 온 몸이 새빨간 불덩어리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지귀가 탑을 잡고 일어서다가 탑도 불기둥에 휩싸였으며 거리도 온통 불길로 뒤덮였습니다. 이후부터 불귀신으로 변한 지귀가 세상을 떠돌아다니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화재를 당하는 백성들이 늘어나자 선덕여왕은 다음과 같은 주문을 지어 집에 붙이게 했습니다.  

지귀는 마음에 불이 일어
몸을 태우고 화신이 되었네.
푸른 바다 밖 멀리 흘러갔으니
보지도 말고 친하지도 말지어다.

볼 만한 것도 많고 공연도 재미있었다. 그러나 식당 음식맛이 없었다. 아무리 좋아도 음식 맛이 없으면 다 안 좋게 된다.


거지의 사랑도 받아들일 줄 아는 선덕여왕이야말로 절세의 미인

그러자 모두 화재를 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선덕여왕이 지어준 주문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불귀신이 된 지귀가 선덕여왕의 뜻만 쫓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불귀신이 되어서도 선덕여왕을 향한 지귀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지귀의 숭고한 사랑도 대단하지만 대체 선덕여왕의 미모가 얼마나 빼어났기에 귀신의 마음마저 움직였던 것일까요? 어쨌든 위 두 개의 설화를 통해 우리는 선덕여왕이 대단한 미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덕여왕의 미모는 무엇보다 노숙을 일삼는 거지와 같은 일반 백성의 사랑도 받아들일 만큼 넓은 도량을 가진 마음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MBC드라마의 선덕여왕도 백성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주의 신분을 회복했음에도 죽방을 일러 여전히 ‘형님’이라고 불러주는 덕만, 선덕여왕의 아름다움은 바로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귀의 전설에 나오는 선덕여왕도 마찬가지죠. 누가 감히 선덕여왕처럼 할 수 있었을까요?

그러므로 선덕여왕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절세의 미녀였음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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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보덕동 | 신라밀레니엄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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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