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우'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0.08.20 초딩 딸이 쓴 시, 정말 예술이네 by 파비 정부권 (10)
  2. 2010.05.24 강신억, 주역의 마지막 점괘처럼 '만사형통' by 파비 정부권
  3. 2009.08.10 미천마을 산골축제, 마산에도 달이 뜬다 by 파비 정부권 (19)
  4. 2009.07.02 공무원이 주민들에게 뿔난 사연, "에이 분위기 안 좋네" by 파비 정부권 (16)
  5. 2008.10.10 [경제/경영/외국어/자기계발/실용]권환 문학기행 참가후기 by 파비 정부권 (2)
오늘은 별로 쓸 만한 소재도 없고 해서, 우리 딸이 쓴 시를 하나 올려볼까 합니다. 우리 딸은 자기 이야기나 사진을 블로그에 올려주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안 올려준다고 투덜거리며 삐질 때가 많은 걸 보면 어쩌면 스타 기질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타? 아, 이건 좀 아니군요. 아무나 스타 되는 것도 아닌데... ㅋ

아마 이 시는 우리 지역의 송창우 시인이 여름방학을 이용해 개설한 독서캠프에서 배우고 쓴 시가 아닌가 합니다. 저는 아예 시를 쓸 줄도 모르고 읽을 줄도 모르는데, 그래서 그런지 딸이 쓴 시가 굉장히 잘 쓴 작품처럼 느껴집니다. 그게 다 제가 문학에 무디거나 무식해서 그런 것일 테지요. 이 점 특별한 이해를 구합니다. 

띄어쓰기나 맞춤법, 줄 모양은 고치지 않고 그대로 옮겼습니다. 딸아이는 이제 열 살인데 언제부턴가 왠지 가슴에 살이 붙는 느낌이 들어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모자

                               
정혜민

밀집모자 
밀집모자는 둥글다
나의 큰 얼굴 전체를 가려주는 양산
동글동글 보름달 모양같은 밀집모자

밀집모자를 다른 모양으로 만들면 
어떨까? 
세모 모양처럼 뾰족하게 만들면 
좋을까? 

네모모양으로 만들어 세워보면
어떨까?
이렇게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면
좋을까?

그래도 난 동글한 보름달 모양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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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TAG , 송창우,
제가 블로그에 링크를 해놓고 가끔 들러보는 쉼터가 있습니다. 대우백화점 홈페이지 속의 <합포만의 아침>이라는 코넙니다. 진전면 미천마을에 살고 있는 송창우 시인이 몇 년째 하루도 쉬지 않고 만들어온 공간입니다. 송창우 시인은 참 편안한 사람입니다.

그이처럼 이 공간도 참 편안합니다. 그래서 제겐 쉼터처럼 여겨집니다. 컴퓨터로 무언가 작업하다가 마음이 지칠 때 이 쉼터에 한 번 들러보시면 아마 사람 산다는 게 무언지 느끼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감미로운 음악도 들려주니 마음을 탁 놓고 쉬어간다면 더없이 좋을 그런 곳입니다. 


일요일 깊은 밤, 잠이 안 와 무심코 들렀더니 내일 아침(실은 오늘 아침)에 소개될 <합포만의 아침>이 미리 올라와 있군요. 제목이 오늘의 점괘입니다. 이거 그냥 퍼다 소개하는 건데 불펌에 걸리지나 않을지 모르겠군요. 허락은 내일 따로 얻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송창우 시인과 그의 부인 심경애 여사와의 친분을 믿어보기로 하지요.

송창우 시인은 경남대에서 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현재 진전에 살면서 <더불어사는내고장운동본부(더불사)> 활동도 매우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행동하는 시인이요 선생이 그의 직업입니다.  


오늘의 점괘

<하늘의 도는 가득히 가진 것을 덜어서 나눠주는 사람을 구해 주고, 땅의 도는 가득 찬 것을 덜어서 나눠주는 사람을 형통하게 하고, 귀신은 넘치게 가진 사람을 해치고 덜어서 나눠주는 사람에게 복을 내리며, 사람들은 잔뜩 움켜쥐고 있는 사람을 싫어하고 덜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겸손하라. 가득 찬 것을 덜어내는 것이 겸(兼)이다.>

- 주역 겸괘(謙卦)의 풀이

주역의 64괘 가운데 나쁜 면이 없는 점괘는 오직 ‘겸괘(謙卦)’ 하나 뿐입니다. 겸괘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길흉(吉凶)이 반복되는 점괘입니다. 겸괘(謙卦)는 땅 아래에 높은 산이 있는 형상으로 겸손함을 상징합니다. 이는 늘 우리들이 꿈꾸며 사는 점괘인 ‘풍요로움(대유괘)’ 다음에 있는데, 무릇 인간이란 가득 차면 오만하기 쉬운 것을 경계하는 까닭입니다.

때론 하루의, 때론 한주의 길흉을 점쳐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욕망이 앞설 때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럴 때 겸괘(謙卦)의 의미를 생각해보십시오. 굳이 점을 쳐보지 않아도 겸손하게 살면 만사형통할 것입니다.


송창우 시인은 매년 5월이면 <권환문학제>를  주관해왔는데, 올해는 아직 열지 못했습니다. 그가 창원 삼진·구산지역에 시의원 후보로 출마한 강신억 <더불사> 전 본부장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거가 끝나면 곧 문학제를 열 것이라고 합니다.

강신억 시의원 후보의 선거사무실에는 송창우 시인 말고도 경남대 안차수 교수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두 분은 아주 죽이 잘 맞는 멤버인 듯싶습니다. 송창우 시인은 안 교수의 리더십을 부러워 하고, 안 교수는 송창우 시인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불안하지 않다고 합니다.

오늘의 점괘처럼 그들이 고른(?) 후보도 매우 겸손한 사람입니다. 다들 내가 낸데 하는 시절에 강신억 후보는 소나 키우던 나이 든 사람이 무얼 알겠냐며 끝까지 고사했지만, 두 학교 선생을 비롯한 삼진, 구산 주민들이 기어이 설득해 출마시켰습니다. 바로 주민의 손으로 직접 뽑은 후보였던 것입니다.

송창우 시인을 직접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합포만의 아침>에 실린 송창우 시인의 글을 읽어보신 분이라면 실제로 그이가 얼마나 겸손한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안차수 교수도 그래서 송창우 시인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불안감이 사라진다고 하지 않았을까요?

그이야말로 겸괘의 미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이들이 하는 일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그이가 쓴 마지막 글귀처럼 "굳이 점을 쳐보지 않아도 겸손하게 살면 만사형통할 것"이란 뜻대로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6월 2일에 꼭 만사형통하도록 저도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습니다. 그런데 송창우 시인 사진은 아무리 찾아도 없어 대신 그이가 그토록 겸손하게 만사형통하기를 바라마지않는 강신억 시의원 후보의 선거대책본부 회의 사진을 싣습니다. 한적한 산골마을에서 열리는 선거대책회의가 참 정겹습니다.

사진 속을 잘 찾아보시면 강신억 후보도 있고, 안차수 교수도 있고, 송창우 시인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신부님도 계시고 진동에서 농민운동을 오래 해오신 임수태 선생님도 계시군요. 사진은 제가 찍었습니다만, 저는 저 구성원들 틈에 낄 만큼 훌륭한 사람은 아니고요. 그냥 취재차 갔던 겁니다. 

아무튼, 모두들 힘내시고요. 화이팅 하십시오. 화이팅~ 
Posted by 파비 정부권
마산시 진전면 미천마을에서 열리는 <서북산 산골축제>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마당에 핀 꽃이 곱습니다. 무슨 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꽃은 장미와 코스모스 뿐입니다. 거기에 국화가 하나 더 있는데, 제대로 구분을 못합니다. 저는 식물 이름을 잘 모릅니다. 시골에서 자랐는데도 그렇습니다. 

한번은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서울 종로 거리에 가 보면 1가에서 3가를 거쳐 가는 대로변에서 작은 길로 들어가는 입구에 커다란 단지 비슷한 것을 세워놓고 거기에 무언가를 심어놓습니다. 저를 잘 아는 어떤 분이 제게 물었습니다. "야, 저거 이름이 뭔지 너 혹시 아나? 말해 봐라." 그래서 제가 유심히 살펴보니 줄기와 잎새의 모양이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덩쿨나무 같습니다. 

"덩쿨나무 아닙니까? 덩쿨나무 같네요." 그랬더니 박장대소를 하며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합니다. "야, 너는 문경 촌 골짝에서 살았다는 놈이 고구마 줄기도 모르냐? 이거 고구마잖아." 아,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같습니다. 세상에, 왜 하필 고구마를 서울 한복판에다 심어 사람을 이렇게 부끄럽게 하는 것인지 원…    


지금부터 사진이 엄청 많습니다. 한 서른 댓 장 될 거 같습니다. 오늘은 별 내용 없이 그냥 사진 전시회만 합니다. 발목이 좋지 않으신 분들은 미리 잘 판단하시고 이쯤에서 그만 내려가셔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더운 여름에 너무 무리하면 건강에 안 좋으니까요. 하하~ 우선 아래 보이는 집은 마산시 진전면 미천마을에 사는 송창우 시인의 집입니다. 

테라스에 보이는 쟁반을 든 젊은 남자는 역시 이 마을에 사는 사람이지만, 이 집 주인은 아닙니다. 저하고 똑같은 객인데 꼭 저렇게 주인 행세를 한답니다. 이날 산골축제 공연을 비롯한 행사도 이 사람이 대개 일을 했다고 합니다.     


테라스에서 마을 아래쪽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입니다.(이 사진은 지난 달 사진임) 경치가 너무 좋았습니다. 이런 곳에 살면 신선이 안 될 수 없겠다 싶습니다.


송창우 시인의 뒷 집이 부재산방입니다. 오늘 행사는 이곳에서 합니다. 가수 김산 씨와 경남대 배대화 교수가 공연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배 교수는 무언가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군요. 일은 안 하고… 배 교수는 진보신당 경남도당 문화생태위원회 위원장으로 이날 행사에 찬조 지원했다고 합니다. 

찬조지원이라고 해봤자, 기획을 비롯해 노동력 제공이 전부였습니다. 그래도 고생했습니다. 이날 <재앙>이라는 다큐멘타리를 상영했는데, 지루하지 않게 34 분짜리로 편집하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힘들고 어려운 일은 배 교수가 아니라 위 사진에서 보았던 젊은이가 다 했습니다만… 흐흐  


얼마 전에 히말라야 트래킹을 다녀온 박영주 선생입니다. 이분은 몇 년 전에는 중국을 거쳐 티벳을 다녀오셨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형님, 형님은 어째서 아름다운 금강산 같은 곳도 아니고 히말라야니 티벳이니 그 험하고 위험한 곳에 무엇 하러 가십니까? 취미도 참 특이하십니다." 물론 답변은 이거였습니다. "내 맘이다, 와~"

그러고 보니 참 취미가 독특합니다. 남들은 잔디밭에 편하게 앉아 구경하는데 배구네트에 올라가 있는 것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래서 히말라야에도 갔었나 봅니다.


제가 이분은 누구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이분도 이날 공연행사를 위해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노래도 마음껏 부를 수 있습니다. 오브리 값은 없습니다. 공짜입니다.


한쪽에선 고승하 선생님과 아름나라 어린이들이 리허설을 하고 있습니다.


이분은 오늘 행사의 주관자요 총감독인 송창우 시인입니다. 경남대에서 문학을 강의하고 있기도 한 송 교수는 <걷는사람들> 대표입니다. <걷는사람들>은 매월 1회 걷기 행사를 한답니다. 주로 마산의 한적한 시골길을 택해서 걸으며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고 하는데요, 모토는 '도시 보행권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합니다. 

프로그램 일정을 쓰고 있는 분은 송 시인의 아내입니다. 글을 시원하게 참 잘 쓰는군요.


1부 순서로 댜큐멘터리 <재앙>이 상영되고 있습니다. 내용은 이랬습니다. 남태평양 작은 섬나라가 어느 날 갑자기 부자나라가 됩니다.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니까 우리나라가 천불소득을 목표로 열심히 일할 때 그들은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넘었다고 합니다. 한 집에 자동차가 서너 대는 기본이었다고 하네요.

인광석 덕분이었다고 합니다. 가난한 섬나라이던 이곳에 인광석이 발견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30년이 지난 오늘 어떻게 되었을까요?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가 되어 아이들을 어떻게 먹일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빠졌습니다. 그래도 이 나라 사람들은 아직 예전의 생활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답니다. 

30 년 동안 세계 최고의 부자로 살아왔던 이들이 갑자기 세계 최고의 가난뱅이로 산다는 걸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게지요. 무분별한 개발로 인광석은 동이 났고, 옛날 농사를 짓던 농토도 모루 폐허가 되었습니다. 섬 곳곳은 쓰레기와 버려진 자동차들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섬나라 주민들은 농사 짓는 방법도 다 까먹었다고 합니다.

더 문제인 것은 30 전에는 날씬하고 건강한 몸매를 유지했던 이들이 이제는 마치 살찐 돼지를 연상시킬 정도로 뚱뚱해져 비만으로 인한 건강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30 년 전의 모습과 비교해 보여주는 섬 주민의 모습에서 보통 문제가 아니란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걷는 것마저도 힘겨워 보였습니다.

넘쳐나는 돈으로 외국에서 들여온 인스탄트 식품을 많은 먹는 대신에 농사도 짓지 않고 운동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잘 사는 것도 좋은 게 아닌가 봐요, 그러고 보면.


해는 서산에 지고 동쪽 하늘로부터 서서히 어둠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어딜 가나 꼭 이렇게 대열에서 이탈한 열외군번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평상에 편안하게 앉아 담소를 나누며 영상을 감상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영화감상이 끝나고(영화가 아니고 자연다큐멘타리죠, 참)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이날 행사를 총괄기획하고 주관하신 <걷는사람들> 대표이며 <산골마을 축제> 준비위원장이신 송창우 시인이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꼭 노래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노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인사만 했고, 공연에 대한 소개만 했습니다. 노래도 한곡 시킬 걸 그랬군요.


첫 번째 출연진은 4인조 혼성그룹, 이름은 기억이 안 나고 아는 사람도 가운데 두 여자분 뿐입니다. 결성한지 이제 한 달, 아니면 두어 달? 하여간 신생 그룹입니다. 물론 프로는 아니고 아마추어 수준도 아니며 그냥 써클 수준이랍니다.  


아, 그런데 실력은 프로급입니다. 대단하네요. 직접 못 보신 여러분은 참으로 아깝게 되겠습니다. 왼쪽 여자분은 미천마을공동체 사무장이셨던 김수환 씨의 부인이고, 그 오른쪽은 송창우 시인의 부인인 심경애 씨네요. 김수환 씨 부인은 그러고 보니 제가 이름을 모르네요. 마산 창동 시와 자작나무 옆에서 <비누공방>을 하고 있답니다.  


사실 이분은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지역의 가수라고 하던데요. 목소리가 너무 매력적이었습니다. 정말 놀랐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어떤 가수에게서도 이만큼 매력적인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가 조성모를 좋아하는데 조성모보다 훨씬 매력적인 목소리였습니다.


배구네트 심판대에 올라가 계시던 박영주 형님, 위에서 그냥 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열심히 촬영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가수는 주부가요열창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상을 받으신 분이시랍니다. 무슨 상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잘 모를 땐, 그냥 대상이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역시 노래 참 잘 하시더군요.


다음 순서는 아름나라입니다. 고승하 선생님과 준비한 노래와 율동이 참 예뻤습니다.


이 팀은 미천마을 어린이 합창단입니다. 물론 이날 행사를 위해 급조된 팀입니다. 어쩌면 공연 끝나고 바로 해산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쑥스러워 인사도 제대로 못합니다. 참 걱정 되는군요. 이래 가지고 공연 되겠어요?


그러나 노래가 시작되자 금방 달라졌습니다. 완전 프롭니다. 나중엔 거의 광기 수준이었습니다. 해산이 아니라 본격 프로팀 창단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산 씨와 베꾸마당 대표님, 고승하 선생님이 협연을 하고 있습니다.


아름나라도 이제 박수를 치며 관객으로 즐겁습니다.


역시 마지막은 우리의 가수 김산 씨가 장식해주었습니다. 옆에서 박수치고 있는 두 사람은 바람잡이인 것 같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찍어보니 역시 바람잡이들이 맞습니다.


관람석은 가족 단위로 이렇게 최대한 자유롭고 편안하게 마음대로입니다. 저쪽 한쪽 구석에선 십여 명이 둘러앉아 술병을 돌리며 구경하는 팀도 있습니다.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그분들 소개는 생략합니다. 별로 그림이 안 좋습니다. 흐흐~  


기타를 내려놓고 마지막 열창을 하고 있는 김산 가수. 짜 짜라 짜라짜라 짠짠짠~ 대충 이런 거였는데요. 제목은 역시 모름.


공연이 끝나고 뒷풀이 시간을 가졌습니다. 부재산방 한쪽에 마련된 장소에서 술과 돼지고기 수육으로 회포를 풀었습니다. 얼마 전에 경남도민일보 사장직에서 물러나시고 휴가를 즐기고 계신 허정도 사장께서 인사를 하고 계시네요. 앞서 임수태 위원장님과 몇 분의 동네 어른을 소개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만, 술 먹느라고 사진을 못 찍었습니다.   


뒷풀이가 끝나고 가실 분들은 가시고 남은 서른 몇 분의 사람들이 "미천마을 달빛 속에 걷기" 행사를 가졌습니다. 이날 프로그램의 마지막 행사입니다. 둥근 달을 이고 산골길을 걷는 기분이 쏠쏠했습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걷기 어려워 보이는 무서운 산골길이었지만, 함께 걸으니 신이 났습니다.

반환 지점에서 모두 퍼질러 앉아 쉬고 있습니다. 먹은 술기운이 모두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이분은 한참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귀신 이야기였습니다. 마지막에 "와앙~" 하자 모두들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저만 빼고요.


누구 생일이었던 모양입니다. 창동수다님이 케잌을 준비해서 불을 켜고 있습니다.


그리고 축하노래도 일장 해주십니다. 그런데 생일노래 치고 너무 어렵습니다. 무슨 가곡 같았거든요. 우리는 그저 "해피 벌쓰데이 투유~" 이것 밖에 모르니까…



허정도 경남도민일보 전 사장님도 축하노래를 한곡 뽑고 계십니다. 그런데 더 어렵습니다. 만주에서 독립군들이 부르던 노래 같습니다. 흐~ 그러나 어쨌든 노래 실력이 보통이 아닙니다. 콩쿨 나가셔도 장려상 정도는 무난할 듯합니다. 아래 모자를 쓰고 계신 분은 경남대 양운진 교수님이십니다. 역시 노래가 너무 고상하고 어렵나 봅니다. 고개를 숙이고 깊은 마음으로 감상하고 계시네요.  


얘는 촛불 꺼질라 걱정이 태산입니다. 오로지 촛불을 지키는데 일념입니다.


빨리 촛불 끄고 케잌이나 먹지 축하인사가 너무 깁니다. 우리의 케잌방위대 독수리 소년, 그러거나 말거나 촛불 지키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마침내 기다란 생일축하 노래와 인사가 끝나고 케익을 잘라 나누어 먹는데, 그냥 손으로 잘라 먹어야 됩니다.


진보신당(경남) 문화생태 위원장 배대화 교수도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사진 좌측 위에 달이 떴군요. 달밤인데, 인사 말고 노래나 한곡 하시지 그러셨어요~ 다음부터는 앞에 나오시면 노래를 하세요, 특히 달이 떴을 때는. 정말 달이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크고 밝은 달은 정말 오랜만입니다.  

도시에 살다 보면 이렇게 달이 뜨는지도 모르고 사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러고 보니 마산에도 달이 뜨는군요. 한적한 산골마을에 들어와 이처럼 여유로워지니 달도 보이는 것이 아닐까요? 원래 달은 늘 뜨고 지고 변함이 없었건만 우리만 마음이 바빠서 그 달을 못 보았던 것이지요.


이날 행사의 마지막은 이 행사를 주관하신 송창우 시인과 함께 창동수다님이 촛불을 켜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마쳤습니다. 창동수다님은 이날 수다 대신 주로 노래를 많이 하셨네요. 좀 늦게 오셨는데, 미안해서 그러셨나? 좋은 노래 잘 들었습니다요.


좋은 행사를 준비하신 <걷는사람들>과 <서북산산골마을축제>에 감사드립니다. 내년에도 더 좋은 행사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참, 생일파티의 주인공은 산골마을 주민이면서 이날 행사준비에 가장 공이 많았고 <재앙> 영상편집을 했으며 바람잡이 역할까지 충실히 수행해주신 유목민 김성훈 씨였습니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엊그제 6월 30일, 마산시 진전면 미천마을 회관에서 공청회가 열렸다. 공청회가 열린 이유는 이곳에 산업단지가 지정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미천마을은 마산에서는 보기 드문 산골마을이다. 양촌온천을 지나 오른쪽으로 꺽어 한참을 들어가다보니 진로소주(두산그룹) 표지판과 함께 미천마을 이정표가 보인다.

미천마을 회관에서 바라본 전경. 앞에 보이는 산은 여항산 줄기란다.


이정표를 따라 다시 오른쪽으로 꺽어 올라가니 저수지가 보이고 그 뒤로 험준한 산맥이 둘러쳐져있다. 낙남정맥이다. 실로 높고 깊은 것이 장관이다. 도회지로만 알려진 마산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공기 냄새부터가 다르다. 논두렁 아래 내려다 보이는 개울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정겨웁다.
 
먼저 이 동네에 살고 있는 송창우 선생 집부터 들렀다. 송창우 선생은 이 마을에 살면서 경남대학교까지 수업을 하기 위해 마티즈를 몰고 다닌다. 경남대 근처에 집을 구해 살 수도 있겠지만, 이 마을이 좋아서다. 송 선생의 집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우람한 산과 구름과 내려다 보이는 정겨운 마을이 부럽다.  

그런데 이 산골마을에 산업단지가 들어선단다. 도대체 이 산골에 무엇하러 갑자기 산업단지가 들어서는 것일까?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그래서 이곳에 온 것이기도 하지만) 저녁 7시가 가까워오자 마을회관에서 방송이 흘러나왔다. "주민 여러분. 모두 마을회관으로 모여주십시오. 산업단지지정에 관한 공청회가 곧 열리겠습니다. 맛있는 부페음식도 많이 준비되어 있으니 공청회도 참여하시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드시기 바랍니다." 

공청회장에 뷔페까지 등장하는 줄은 몰랐다. 평소에 좀 하시지…


마을회관으로 가니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잘 차려진 출장 부페다. 하늘에선 굵은 장맛비가 대지를 적시고 곧 이어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공청회가 시작되었다. 진로소주 공장에서 나온 직원들이 프리젠테이션으로 산업단지지정에 대한 소개부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공청회의 주체는 마산시가 아니라 진로소주다.

그때서야 왜 이 산골마을에서 산업단지지정을 놓고 공청회가 벌어지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아차~ 제 2의 수정만 사태가 여기서도 벌어질지 모르겠구나.' 국회에서 산업단지 지정신청 및 하가절차를 간소화하는 법률이 통과된 후 전국적으로 이런 현상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있다. 마산에서만도 대략 대여섯 곳 정도가 신청을 했다고 한다.
   

한 주민의 발언에 손을 흔들며 제지하듯 자기 주장하는 도시개발계장님


주민들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당장 지하수 고갈로 먹을 물 걱정이 우선이다. 산단이 들어서면 늘어나는 차량과 콘테이너로 인해 주민들의 안전문제도 심각한 고민거리다. 그러나 공청회를 주최하는 진로소주의 답변은 단순함 그 이상 아무 것도 없었다. "차량이 늘어날 일도 없고, 지하수 고갈도 없을 것이다. 산단지정은 그냥 창고를 짓기 위해 하는 것 뿐이다."

진로소주만의 창고를 짓기 위해 산업단지 지정을 한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그 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수정만 사태에서도 늘 지적되어 오던 문제였지만, 공무원들의 태도였다. 공무원들이 시민의 공복이기보다 기업체의 용역직원처럼 행세하길 더 즐기듯이 보이는 건 왜였을까? 

주민들의 질문에 도시계획과장을 대신해 참석한(도시계획과장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함) 도시개발계장은 매우 짜증난다는 듯이 손을 휘저으며 큰 소리로 싸울듯이 달려들었다. 그는 주민들의 반대의견들이 어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조용히 설명 듣고 잘 차려진 부페나 먹고 갈 것이지!' 하는 생각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보였다.

주민의 질문이 매우 귀찮고 어이없다는 표정. 옆에 마이크를 든 사람은 진로소주 부장.


[동영상 마지막에 보면 질문하는 주민이 공무원 나오라고 하자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등장하는 계장님이 보인다]

공청회가 끝난 후, 주민들은 이왕 차려진 음식이니 먹고나 가자며 마을회관에 차려진 부페에 모여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매우 신경적인 반응을 보이느라 피곤했던지 도시계획계장은 부페 옆에 멍하니 서있었다. 그때 진로소주의 전무가 그의 옆에 다가갔다. 그는 공청회 내내 주민들 뿐아니라 공무원에게도 공손했었지만, 이때는 달랐다. 

마치 아랫사람이나 잘 아는 아우를 다루듯이 말했다. "어이, 음식도 많이 차려놓았는데 좀 먹지 그래." 그러자 계장이 대답했다. "에이, 안 먹을랍니다. 분위기도 안 좋고…" 글쎄,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그 두사람이 얼마나 허물이 없는 사이일지는 몰라도 주민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그래도 되는 것일까? 

그래도 명색이 공무원인데… 공무원이란 말 그대로 공무를 보는 사람 아닌가 말이다.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 아마도 선입견이 없었다면 이런 사소한 대화를 옆에서 들으면서도 별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민들을 향해 대들듯이 손을 휘젓던 그가 진로소주 전무 앞에서는 양순하기 이를데 없어 보이니…

설마 그렇지야 않겠지? 내 생각이 쓸데없는 공상이었기를 빈다. 간절히…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권환.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누구였을까? 우리 지역에 그런 이름의 시인이 있었던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신록의 싱그러움을 만끽하며 가족들과 함께 소풍을 간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10시 정각까지 해운동 체육공원에 도착하기 위해 부랴부랴 서둘렀지만 결국 지각하고 말았다. 막내 녀석이 화장실이 급하다고 해서 중간에 LG마트에 들른 것이다. 뭐 10분 정도 쯤이야 용서 받을 수 있겠지. 공원에는 이미 여러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리 쪼이는 따스한 햇살과 살랑이는 바람이 완연한 봄을 말해 주고 있었다. 아, 정말 고운 날씨로구나!


마산시 진전면 오서리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차를 세워 놓고 권환 시인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삼삼오오 떼를 지어 시골길을 걸었다. 마산에도 이처럼 한적한 시골길이 있었던가. 길 양옆의 들판에는 보리밭이 푸른 물결을 출렁이고 있었다. 푸른 물결 속에 간간이 보이는 유채꽃이 노오란 빛으로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 반가운 동지들 그리고 가족들과 오랜만에 걸어보는 이 한가로운 시골길이 너무나 정겨웠다.


시골길 한쪽으로 돌아 조그마한 언덕에 오르자 안동 권씨 납골묘가 거대한 왕릉처럼 눈에 들어왔다. 그 한 쪽 옆에 권환 시인과 그의 부인이 나란히 잠들어 있었다. 지역의 문인들이 정성을 들여 권환 시인의 묘지 앞에 비를 만들어 놓았고 거기에 권환 시인의 일대기가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카프문학의 거장 권환. 아! 바로 이 분이 옛날 중학교 시절 국어시간에 잠깐 보았던 바로 그 분이었던가. 임화와 더불어 일제시대의 모진 풍상을 겪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바로 그 분이었던가. 새로운 감회가 일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잠들어 있는 역사를 이제껏 까맣게 모르고 살았다니.


창원군 진전면 오서리(현재 마산시). 권환 선생의 생가 터는 웅대했을 집은 다 스러지고 집터만이 덩그러니 남아 옛 시절을 말해 주고 있었다. 권환 선생이 태어나고 뛰어놀았을 자리에는 사람 대신 상추며 마늘이며 나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권환 선생의 당질(5촌 조카) 되시는 권택임 옹은 선생의 생가 터를 소개해 주시는 중에도 옛 기억이 새로운 듯 눈빛을 반짝이며 열심이셨다. 덩그러니 남아있는 터만 일견해 보기에도 꽤 규모 있는 부잣집이라고 느껴졌다. 권환 선생의 부친인 권오봉 선생은 이곳에 사시면서 경행학교를 세워 후진을 양성하기에 모든 힘을 다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경행학교에서 뜻을 세운 수많은 지사들은 삼진 독립만세운동으로 그 불꽃을 태웠을 것이다.


경행재(경행학교) 뜰에 서있는 권오봉 선생과 권환 시인의 기념비를 바라보며 <삼진 독립만세운동>의 발상지가 바로 이곳 경행학교였을 걸 생각하니 숙연함이 절로 일었다. 대지주이면서도 경행학교를 세워 신학문을 가르치고 민족정신을 일깨웠던 권오봉 선생의 제자들이 삼진 지역의 독립운동의 기둥들이 되었음은 어쩌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재교 선생 등 내노라하는 독립지사들이 모두 경행학교 출신들이다. 경행학교를 중심으로 이 지방에 많은 선각자들이 배출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봉건시대와 일제의 수탈을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사회주의자가 되었을 것이다. 권환 시인도 경행학교에서 지주의 아들인 자신의 신분을 넘어 민중의 정신을 가다듬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얄궂어서 언제나 좋은 쪽으로만 씌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힘 있는 자들에 의하여 이리저리 휘갈겨지는 것이리라. ‘곡안리 학살사건’과 이후의 ‘왜곡된 현대사’가 이를 웅변해주고 있지 아니한가. 경행재의 유래를 설명해 주시던 권택임 옹은 스스로 안동 권씨로서 조심스럽게 말씀하시면서도 오도된 역사에 대한 분노를 굳이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자세히 들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노 대통령 영부인 권 여사의 부친(권오석)도 이 곳 출신인 듯 경행학교의 복원에 별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 대통령에 대한 불만도 잠깐 표출하셨다.


‘일본제국주의 – 경행학교 - 삼진 독립만세운동 - 카프문학의 거장 권환, 임화 - 좌파 독립운동 – 해방 - 곡안리 학살사건 - 오도된 역사(권오봉 선생, 경행학교, 권환 선생 등의 이름은 공식적인 역사에서 빠졌다.), 이런 생각들이 내 머리 속을 어지럽게 맴돌았다. 그 분들이, 경행학교가 다시 제자리를 찾도록 힘쓰는 일은 함께 경행재 마루에서 김밥을 나누어 먹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우리의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고향 마산을 물려주는 일이라고, 아지랑이가 일렁이며 피어오르는 따사로운 봄날 진전 오서리 마을길을 정다운 사람들과 어울려 걸으면서 생각해 보았다. 그래도 송창우 선생 같은 뜻있는 지역의 문인들이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마침 경행재 마루에서 송창우 시인과 배대화 교수로부터 경행재와 권환 시인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을 때, 경북 지방의 안동 권 씨 일족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자기네 집성촌의 경행재를 둘러보기 위해 왔다. 그 분들은 우리가 보여주는 관심에 매우 고마워하며 한참이나 우리 행사를 지켜보기도 하고 배 교수님이 준비한 자료를 얻어가기도 하고 누구들이며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나는 곁눈질로 머리에 하얗게 눈을 뒤집어 쓴 경북에서 내려 온 안동 권 씨들을 보며 저 분들은 이곳에 살던 자신의 선조들이 이루어 놓은 업적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하고 강의 중인 선생님 몰래 잠깐 머리를 굴려 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심경애와 송창우 부부, 두 분이 살고 있는 진전면 골짜기 속에 자리 잡은 집 구경을 하고 ‘참으로 아름다운 두 개의 영혼이 아름다운 경관과 정신이 숨 쉬는 곳에서 소박하게 살고 있구나’ 하고 느꼈다. 무척 부럽기도 했다. 정말 좋은 하루였다. 날씨도 너무 좋았다. 함께 가기로 했다가 당일 몸이 아파 못 오신 우리 애 엄마와 함께 일하는 친구 분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권환 시인은 생전에 전투적인 시들을 주로 쓰셨지만 이 시처럼 서정적인 시도 가끔 쓰셨다고 한다. 옛날 마산 진전 마을에는 느티나무 숲과 목화밭이 무성했다는데 지금도 간간이 느티나무 숲이 보인다. 권환 선생은 일제 경찰에 의한 수차례의 피검과 옥중 생활로 얻은 폐환으로 1954년 이곳 오서리 마을, 고향에서 영원한 안식에 드셨다고 한다.


 <고향>                         

                               

                                       권 환


내 고향의

욱어진 느티나무 숲

가이없는 목화밭에

푸른 물결이 출넝거렸읍니다.


어여쁜 별들이 물결 밑에

진주같이 반짝였습니다.


검은 황혼을 안고 돌아가는 힌돛대

당사(唐絲)같은 옛곡조가 흘러나왔읍니다.


꿈을 깬 내 이마에

구슬같은 땀이 흘렀습니다.



/ 봄볕이 따사로운 어느 일요일에,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