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문'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2.03.16 송정문은 박근혜-한명숙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by 파비 정부권
  2. 2012.03.09 거제에 터진 장애인비하 폭로전, 단일화 빨간불 by 파비 정부권 (8)
  3. 2012.03.06 송정문, 장학생이 되면 취업할 수 있을까 by 파비 정부권 (2)
  4. 2012.02.27 송정문의 금지된 욕망, 장애인도 학교에 가고 싶어요! by 파비 정부권
  5. 2012.02.23 휠체어 소녀, 국회에 도전장을 내다 by 파비 정부권 (3)
송정문의 진솔한 삶이야기 다섯 번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옛날에 비해 노동조건이 많이 나아졌다고들 이야기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제 친구 중에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습니다. 언젠가 제가 그 친구들과 얘기하다 실수한 적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술 약속을 하면서 토요일 오후에 하자고 했더니 “야, 우리가 토요일 오후에 어떻게 만나냐?”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주 5일 근무제 하는데 토요일 오후가 젤 부담 없고 좋잖아!” 했다가 세상 물정 모른다고 된통 혼나고 말았습니다.

사실 저는 주 44시간 근무제 할 때 이후로 회사를 떠났던지라 잘 몰랐던 것입니다. 주48시간 노동제가 주 44시간이라는 과도기를 거쳐 주 40시간 노동제가 정착됐다는 정도만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것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그림에 떡이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주 48시간 노동제가 지켜지고 있었습니다(물론 토요일에 출근 안 할 자유—실제로는 이런 자유도 없지만—는 있지만 대신 돈을 안 줍니다. 그러니 출근 안 할 수가 없는 것이고 그래서 사실상 주 48시간 노동젭니다).

그리고 일은 더 많이 하면서도 받는 월급은 실로 쥐꼬리 그것입니다. 이걸 밝히면 제 친구의 자존심이 많이 뭉개질지는 몰라도 이 친구 한달 월급이 잔업 빠지지 않고 꼬박 해야 180만 원 정돕니다. 나이에 비해 턱없는 액수죠.

▲ 송정문 마산회원 국회의원 후보(진보신당)

작년에 그랬는데 올해는 좀 올랐을까요? 아마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는 걸로 보입니다. 그때도 몇 년 동안 임금동결만 계속된 데다가 거꾸로 깎이기도 했다고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비정규직이라도 일자리가 있다는 걸 다행으로 아는 시대가 됐습니다.

요즘은 청년실업이란 말이 거의 무감각하게 들립니다. 그저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겁니다. 워낙 실업자가 많으니 실업이란 말도 특별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집에서 놀거나 공무원학원을 직장처럼 다니는 것은 예사가 됐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직업이 비정규직으로 대체될 거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대학교수도 머잖아 전부 비정규직이 되지 않겠냐는 말들도 공공연히 나돕니다. 진짜 그렇게 될지 어떨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정치가 워낙 오리무중이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위원장은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국민들 잘 살게 해주겠다고 말합니다. 한명숙 민주당 대표도 똑같은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분들 말을 믿을 수 있을까요? 믿는 사람 별로 없을 겁니다. 잘 살게 해주겠다는 말이야 빈말로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지요. 

그분들은 비정규직의 설움을 모릅니다. 남들보다 더 힘든 더 많은 일을 하고도 열악한 근로조건에 허덕이는 저임금 노동자의 실상을 알지 못합니다. 그분들이 진정성이 있다면 잘 살게 해주겠다는 추상적인 말보다는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확립하겠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 정규직 노동자 이하가 되지 않도록 법으로 강제하겠습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일을 하는 노동자가 변호사나 대학교수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 사회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비정규직이란 말 그대로 비정규직이므로 정규직보다 임금이 훨씬 더 많아야 하는 게 맞는 원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여러분들 생각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싼값에 노동력을 공급하는 도구가 됐습니다.

송정문 씨는 어떨까요? 그이는 누구보다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 실업자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는 정치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잖습니까? ○○ 마음은 ○○이 알고 △△ 마음은 △△이 안다. 그렇죠? 

삶이야기5.  60만원, 저임금 노동자

 

<글쓴이. 송정문>

 

좋은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저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 집안 일을 거들며 지내고 있던 어느 날, 어떤 목사님께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정문씨, 같이 일해보지 않을래요?”

 

그분은 밀알선교단이라는 장애인선교단체를 운영하고 계신 분이셨는데, 마산 창원에도 설립하고자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그 일을 같이 해보자는 거였습니다.

그렇지만 일을 하더라도 후원을 통해 운영비를 마련하기 때문에 급여는 많지 않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사실 당시 저에겐 급여가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뭐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다른 친구들처럼 자기 일자리를 갖고 싶었으니까요.

감사한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웬 장애인들이 이리도 많은지..

그 때가 바로 이 땅의 장애인이 저 뿐만은 아니란 걸 현실로 깨닫게 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몸에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이해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이래저래 외톨이가 되어버린 사람들.

교통사고, 출산사고, 산재사고, 유전, 질병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일순간에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밥먹고, 함께 노래하며 일하는 동안 저에게 업무시간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저를 보는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결혼을 하고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후 생활고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신학공부를 하고 있어, 거의 제가 버는 돈으로 생활을 했는데, 그게 고작 60만원이었기 때문이죠.

아파트 관리비 내고, 아파트임대료 내고,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상하수도세, 자동차보험료 등등.. 숨만 쉬고 살아도 나가야하는 비용은 한두 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부모님께서 쌀이며 반찬거리를 계속 사다주시지 않았다면, 계속 빚이 쌓여갔을지도 모릅니다.

 

이 땅의 저임금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매일이 걱정입니다.

‘차가 고장 나면 안되는데’, ‘아프면 안되는데’, ‘물가가 오르면 안되는데’...

친구들과 밥 한 번 먹는 것도 여윳돈이 생길 때 가능했고, 저축은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고, 하고 싶은 일이라 해도, 우선 살아야 했으니까요.

 

정치권에서 높은 지위에 계신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다지요.

가난한 것은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그분 평생에 과연 가난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과연 이분들의 손에서 어떤 정책이 만들어질까요.

수천만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 대학을 나와도, 번듯한 일자리 하나 구하지 못하는 청년실업자를 기억합니다. 현재 이십대들의 절반이 이런 청년실업자입니다.

한 가정에 오랜 투병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어, 치료하느라 고단한 삶을 감내하는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지적장애아이를 키우다 아이들과 자신의 목숨을 끊은 부모님들을 기억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들의 아픔’...

저의 마음 속에 이미 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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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문, 장학생이 되면 취업할 수 있을 까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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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페이스북에 몇 분이 교대로 이른바 도배질하는 내용이 있다. 거제시의원인 모 의원이 동료 장애인의원을 비하하는 행동을 아주 오래전부터 해왔다는 것이다. 동료 장애인 의원을 비하한 의원은 진보신당 한기수 의원이며 비하당한 의원은 통합진보당 김은동 의원이다.

그리고 이 내용을 페이스북에 지속적으로 도배질한 몇 분은 통합진보당 경남도당 사무처장 정철 씨와 노정욱 씨(직책불상)다. 이렇게 실명을 밝히는 것은 이들이 공개적으로 이름을 밝히고 한사람을 매장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점과 피·가해자 모두 공인이란 점 때문이다.

한기수나 김은동이란 이름에 대해 처음 들어본 나로서는 사실관계에 대해선 일단 알 길이 없다. 허나 세상에 속설대로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나. 그리하여 일단 도배질 내용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하자. 그렇다면 한 의원 같은 사람은 매를 맞아도 싸다.

▲ 통합진보당 당직자인 노정욱 씨가 올린 한 의원 비난 페북 글들 중의 하나다.

그리고 분명히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서 본다면, 그래서 한남일보 보도에 따르면 아마도 한 의원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엄연한 폭력이다. 법적으로 따져도 명예훼손과 모욕죄의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사안이다. 게다가 장애인 비하라니.

진보신당 차원에서도 진상을 조사하고 적절한 조치를 내려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합당한 징계가 내려져야 함은 물론이고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공직후보자의 조건으로 성평등교육과 더불어 장애인차별금지교육도 아울러 실시하는 제도적 보완책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사실을 폭로한 통합진보당 김은동 의원에 대해서도 드는 의문이 있다. 어째서 장애인 비하행위가 있었던 당시에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1년도 더 지난 과거 일을 들추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게다가 한참 야권단일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정치적 목적을 의심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야권단일화에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여론조사에서 진보신당 김한주 후보에게 자당 후보가 밀리자 이런 수를 쓴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물론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었을 테지만 김은동 의원이 주장하는 것처럼 한기수 의원이 장애인 비하행위를 한 작년 2월 시점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고 징계와 사과 등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은동 의원이 어떤 정당보다도 전투적인 통합진보당(구민노당) 출신이란 점을 생각한다면 멸시와 조롱을 받고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도 참아왔다는 것은 사실 이해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거기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나온 폭로라 더욱 그러하다.

아무튼, 이 일로 통합진보당이 의원직 사퇴까지 요구하는 것은 과도한 정치공세에 불과해보이지만 한 의원은 정중히 사과하고 스스로 당에 징계를 요청하는 대범한 자세를 보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뉘우치고 반성하는 사람에게 박수를 보낸다.

아래에 한 의원과 같은 진보신당 소속인 송정문 마산회원 국회의원 후보의 의견을 참고로 소개한다. 송 후보는 휠체어를 타는 1급 중증장애인이다. 페이스북에다 나양주 진보신당 거제시당위원장에게 보내는 편지대화 형식이다.

중간에 통합진보당과 관련하여 좀 거친 표현이 있긴 하지만 두 사람이 페이스북에서 나눈 대화라는 점을 고려해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양주 위원장님 / 네,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거제에서 장애인콜택시를 도입하고, 교통약자를 위한 저상버스를 도입하고, 장애인자립지원 정책을 만들기 위해 거제시청에서 긴 기간 농성을 할 당시, 그 자리를 지켜주셨던 분은 한기수 의원이시지 김은동 의원이 아니시지요.

또한 당시 김은동 의원이 거제 장애인들을 위한 정책 만드는 농성자리에 단 한번 와 본적도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뿐이겠습니까. 김은동 의원과 함께하는 단체들이 거제에서 장애인정책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렇게 애쓰는 사람들에게 ‘거제일이니 다른 지역장애인들은 상관마라’고 했던 사실도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잊겠습니까.

또한 기억합니다. 당시 한기수 의원님께서 나서서 장애인정책은 필요하다고 의회에서 나서주시고, 장애인정책 예산이 마련되도록 애써주신 것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 한마디 실수로 덮을 순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몰라서 실수하셨을 거라 생각하지만, 진보정치를 하시는 분이시라면 모르는 것도 죄가 될 것입니다.

또한 이 문제를 그냥 넘어가고자 한다면, 저에게 보여준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의 장애인비하 행동들, 그리고 1년 전 일을 당시도 아닌, 선거기간인 지금에서야 터트리며 문제를 키울 목적을 가진 그 사람들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보십시오. 현재 거제는 단일화과정도 통합진보당이 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진보신당 후보가 지지도가 높은 이유라지요?

그런데 저에게는 단일화하자고 기자회견을 하는 등 쇼를 하고 있습니다. 진보진영의 유일한 중증장애후보가 나왔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떤 배려도 하지 않은 채, 단일화하자고 하면서, 동등한 입장의 후보들이 싸우는 거제에서는 단일화에 미적대는 사람들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습니까?

나양주 위원장님. 우리는 정직했으면 합니다. 잘못은 잘못으로 시인하고, 잘한 것은 잘했다고 서로 칭찬하는, 그런 정당 사람들이었으면 합니다.

장애인예산수립에 앞장서셨던 한기수 의원님이라면, 그동안 보여주신 장애인정책에 대한 열정이 살아있으시다면, 먼저 당기위원회에 나가주시고, 합당한 처벌을 스스로 당당히 요구했으면 합니다. 그게 우리였으면 합니다.  (송정문/ 페이스북)

 

Posted by 파비 정부권

송정문의 진솔한 삶이야기 네 번쨉니다. 휠체어를 타는 1급 중중장애인으로서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송정문 씨는 대학에 갔습니다. 물론 대학이 장애인을 위한 어떤 사소한 배려라도 준비해놓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남들 다 가는 학교에 가고 싶다는 열망으로 배우고 싶다는 의지로 나도 할 수 있다는 오기로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안경광학 공부는 재미있었고 적성에도 맞았습니다. 장학생도 됐습니다. 그러나 취업의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경기불황으로 안경점을 내기도 어려웠습니다.
 

이 이야기는 장애인 송정문 씨의 이야기지만… 어쩌면 오늘날 모든 젊은이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사회에 막 발을 들여놓던 80년대 초는 직장을 구하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질 좋은 직장이 많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일자리는 많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젊은이들은 질 좋은 직장은 고사하고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문제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좀 더 나은 미래를 고민해야 할 젊은이들이 ‘꿈’을 꾸는 것은 사치가 됐습니다. 그런 면에서 요즘 젊은이들은 이른바 고난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보다 더 불쌍합니다.

어쩌면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야말로 모두가 장애인일지도 모릅니다. 

삶이야기4. 적 우수 장학생

 

<글쓴이. 송정문>

 

결국 부모님의 허락을 얻어, 대학시험 준비를 할 수 있었고, 모두가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합격을 하였습니다.

 

대학생활.

물론 수업받는 건물에 양변기가 설치된 화장실이 없어, 화장실 갈 때마다 고생을 해야 했고, 학생식당까지 계단이 너무 많아 늘 도시락을 싸들고 다녀야 하긴 했지만 그래도 저에게 학교생활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꿀맛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주말에 친구들을 만나 대학생활의 담소를 나누는 것도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만남도 잠시. 장학생이 되면, 취업할 때 유리하다며 주말마다 도서관에 가 공부하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정말?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저도 장학생이 되면, 취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죠.

나의 꿈이 한 단계 더 발전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지원한 안경광학이란 학문이 참 재미있었고, 재미있다보니 공부하는 것이 어렵지만은 않았습니다.

드디어, 성적 우수 장학생.

저도 그 대열에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취업의 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대학을 나와서도, 그냥 집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죠. 누구도 제게 눈치를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참 답답했습니다. 다시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는 것은 저를 더욱 무기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안경점이라도 차려보려고 생각했지만, 투자비용이 장난아니더군요. 당시는 개인 안경점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하고, 안경점도 체인점화되어 안경점 사업도 순탄하지 않던 시기라, 섣불리 빚을 내서 시작할 수도 없었지요.

저는 전공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 여기가 내가 도전할 수 있는 끝인가.

내 꿈의 한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슬퍼졌습니다.

 

얼마 전 프랑스에서 있었던 학생시위를 기억합니다. 프랑스 정부가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 2년 내 해고 자유정책을 입법하려 하였으나, 학생들은 이 정책이 통과되면 기업은 비정규직을 많이 뽑을 것이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급격히 많아지면 고용불안을 넘어 삶의 불안을 가져올 것이라며 시작된 시위였죠.

요즘은 열심히 공부하고, 자격증을 취득하여도 운없고, 빽없으면 실업자로 사는 세상이라고들 합니다. 실업자가 아니라고 해도 언제 해고될지 모를 비정규직 인생이라고들 합니다.

부자로 살 순 없어도 최소한의 안정된 삶을 추구하는 것. 그것은 욕심일 수 없습니다.

몸뚱아리 하나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단한 얼굴을 저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출처] 4. 성적우수 장학생 (송정문의 삶이야기4)|작성자 dreamsnog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은 ☞휠체어소녀, 국회에 도전장을 내다 에 이어 송정문 씨의 이야기 두 번째입니다. 그녀는 세살 때 입은 장애로 인해 학교에 갈 수 없었습니다. 남들 다 가는 학교에 갈 수 없다고 하니 가고 싶은 욕망이 더 절절했고 그 이상으로 절망했습니다. 생명을 내어던질 마음까지 먹었고 실행에 옮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마침내 그렇게도 바라던 학교에 갔습니다. 마산대학에 진학해 안경공학과도 나왔고 방송대학에서 교육학도 전공했으며 경남대학교 대학원도 졸업했습니다. 대학원에 다닐 때는 장애인 이동편익시설을 설치하라며 경남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이겼던 사실은 우리 지역사회에 유명한 일화입니다.

송정문 씨는 다시금 국회의원 선거(마산을)에 도전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나 원하는 만큼 교육받을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은 가난하다는 것도, 장애가 있다는 것도, 여자라는 것도, 나이가 많다는 것도 문제되지 않는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을 만들면, 저와 같은 경험 또한 대물림되지는 않겠지요.”


삶이야기2. 교에 가고 싶다.

<글쓴이 : 송정문>

▲ 경남보건신문에 출마 인터뷰하고 있는 진보신당 마산을 송정문 후보

“엄마, 난 왜 학교에 못가?”

어린 시절 저의 철없던 질문에 한숨을 쉬시던 엄마였지만, 동네 친구들이 소풍을 가던 날, 엄마는 저에게도 김밥을 싸주셨습니다. 친구들이 졸업하던 날, 몇몇 친척들은 선물을 사주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내게 ‘학교 가고 싶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마치 제게 해선 안될, 금지된 질문처럼 말이죠.

고민을 털어놓던 친구에게 화를 내버린 그 날. 저는 깊은 절망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꿈도 선택할 수 없는 사람... 미래가 없는 사람이 나라면, 왜 살아야 할까.
먹고 살기 위한 고민이 삶 자체에 대한 고민으로 번져가면서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워져만 갔습니다.

자살시도.
결국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른 후에야 비로소 금지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용기가 생겼습니다.
‘산다면 뭘 하고 싶어?’라고.
“산다면? 책가방 들고 학교를 다녀보고 싶어...”
‘그럼 해봐. 까짓 거 죽기밖에 더하겠어. 좋아. 앞으론 남들이 못할거라고 말해도, 하고 싶은 거 있으면 시도라도 해보자.’

그래요. 죽음의 문턱 앞에서 제게도 하고 싶은 것이 생겼습니다.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는 것.
아버지는 늘 제게 목표를 가지면 그만큼 상처를 받게 될 거고, 저로 인해 가족이 모두 슬퍼질 거라고 했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대학시험 준비하겠다는 말을 내뱉은 순간부터, 정말 아버지의 말대로 되어갔습니다.
엄마의 한숨은 더해갔고, 아버지와는 밥상을 마주앉는 것조차 불편해졌습니다.
주위사람들조차 대학에서 절 받아주지 않을 거라고, 상처받을 지도 모른다며 조심스레 포기할 것을 권했습니다.

“너 같은 장애인이 대학을 가서 뭐 할거냐”

“니 동생 하나 대학보내는 것도 뼈빠진다.”
“취업도 안될건데 왜 헛고생을 할 거냐.”

사실 그랬죠. 나 스스로도 대학 나와서 내가 뭘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었고, 학비는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지도, 학교에서 절 받아줄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전 시도해보고 싶었습니다.
저도 제 인생에 책임이란 걸 져보고 싶었습니다.
이 방법이 안되면, 저 방법을. 저 방법도 안되면, 또 다른 방법을 찾아서라도 말이죠.
그동안 금지되었던 소망이 제 속에서 꿈틀대던 날. 모든 것이 변해갔습니다.

제가 갈 길이 아니라구요?
그럼 제가 갈 길을 만들어야 겠지요.

Posted by 파비 정부권

송정문 씨는 사실 제목처럼 소녀가 아니랍니다. 그녀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있는 아줌마입니다. 그리고 휠체어를 타고 다닙니다. 3살 때 시장에서 놀다가 넘어져 하반신이 마비된 1급 중증장애인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누구보다 밝은 웃음을 띠는 소녀다운 아줌마입니다. 그녀의 해맑은 미소를 보노라면 ‘부조리에 저항하는 여성장애인 투사’의 모습을 떠올린다는 것은 도무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녀가 휠체어를 끌고 국회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그녀는 4년 전에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휠체어를 끌고 마산역 옆 번개시장과 석전시장, 동마산시장, 중리 아파트단지를 돈다는 것은 실로 ‘고난의 행군’이라 할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휠체어는 마지막 날까지 쉼 없이 달렸습니다.

‘아구할매’ 작가였던 송정문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손을 잡고 울먹였습니다. 그렇게도 앳되고 맑은 얼굴을 가진 그녀가 휠체어를 타고 시장통을 누비고 있다는 사실에 한숨짓다가도 감동에 겨워 박수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4%.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그녀의 도전이 이루어낸 성과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휠체어를 타고서. 여전히 변하지 않은 해맑은 미소를 안고서…. 혼자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꿈꾸는 세상을 위하여….

아래는 그녀가 출마하면서 내놓은 진솔한 삶의 이야기입니다. 그녀의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읽어보고 받은 진한 감동을 혼자 느끼기에는 너무 아깝다 싶어 앞으로 10회에 걸쳐 제 블로그에 연재할 생각입니다. 어떻습니까? 함께 꿈꿀 수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세상은 아름다운 것 아니겠습니까?

삶이야기1. 이 없던 아이  

<글쓴이 : 송정문> 

 “정문이는 꿈이 뭐야?”

다니던 교회 전도사님의 물음.

19살이나 먹은 저였지만, 꿈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갑작스런 질문에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뭐라고 답했는지, 지금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저 저의 고민은 ‘앞으로 부모님 돌아가시면, 어떻게 살까?’하는 것이었죠.

‘뭘 하고 싶은가?’를 생각한다는 것은 제게 있어 욕심이라 여겼으니까요.

어릴 적 집 앞에서 놀다 넘어져서 하반신을 쓸 수 없는 장애인이 되었지만 저의 장애는 ‘앞으로는 걸을 수 없는 사람’ 그 이상이었습니다.

하반신 장애라는 이유로 학교에서도 받아주지 않았고, 부모님 평생의 짐으로 살아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19살의 저는 꿈 많은 소녀가 아닌,

세상에서 말하는 “불쌍한 사람”, “평생 누군가의 도움 없인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저 스스로도 말이죠.

물론 동네 친구들의 꿈과 고민을 들으며, 미래를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닙니다.

목사가 될까, 의사가 될까, 약사? 상담사? 교사?

하지만 그 모두가 학력이 기반이 되어야만 가능한 미래였죠.

작곡가는 어때? 화가는? 그러나 제겐 그만한 재능은 없었죠.

친구들은 대학을 간다, 직장을 구한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될 거다 등등 여러 가지 꿈과 고민을 품던 시절.

저는 친구들과 같은 고민을 하지 못하고, 그저 친구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꿈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 꿈을 꾸는 사람의 고민을 듣는 것. 제겐 혼란의 순간이었지만, 친구들은 제게 찾아와 끊임없이 자신의 꿈과 고민을 털어놓곤 했습니다. 

결국 친구에게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뭐? 꿈을 향한 길이 힘들다고? 장난해? 그리 힘들면 포기하면 될 거 아냐. 난 하루하루 사는 것 자체가 바늘방석인데, 힘들다고? 니가 힘든 게 뭔 줄 알아?

진짜 힘든 건 어떤 꿈도 선택할 수 없다는 거야.” 

놀란 친구가 제게 한 말을 아직 기억합니다.

“정문아, 미안해.”...

뭐가 미안하단 말일까..

19살 소녀에게 또 하나의 고민이 생겼습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