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골'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09.10.15 '선덕여왕' 최초의 진골 왕 김춘추, 진실일까? by 파비 정부권 (11)
  2. 2009.10.10 김춘추와 선덕여왕, 진골 대 성골의 대결? by 파비 정부권 (5)
  3. 2009.10.06 '선덕여왕' 미실은 MB, 화백회의는 한나라당? by 파비 정부권 (14)
  4. 2009.09.25 황남대총금관으로 보는 선덕여왕 탄생의 비밀 by 파비 정부권 (6)
  5. 2009.08.13 선덕여왕, 김춘추는 왜 성골이 아니고 진골일까? by 파비 정부권 (6)
  6. 2009.08.06 이명박, 경북 출신에 고대 나왔으니 성골? by 파비 정부권 (6)
  7. 2009.08.05 선덕여왕, 비담의 반란 벌써 시작됐다? by 파비 정부권 (29)
김춘추는 자신이 주도하게 될 일대 혼돈을 앞두고 묘한 웃음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었다. “신라에는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여자가 왕이 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진골이 왕이 되는 것이야. 어느 게 먼저 될까? 여왕? 아니면 진골 왕?” 물론 이는 최초의 여왕인 덕만과 최초의 진골 왕인 자신을 빗대어 이르는 말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김춘추가 최초의 진골 왕이었다는 것은 삼국사기에 근거한다. 김부식은 사기에서 혁거세거서간으로부터 진덕왕까지 28대의 왕들은 성골이었으며 태종무열왕 이후로는 진골이 왕이 되었다고 기술했다. 이 말은 진실일까? 애석하게도 김부식은 여기에 대한 아무런 근거도 내놓지 않은 채 그저 간단하게 그렇다고만 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성골과 진골이 무엇이며 그 분류기준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다. 그럼에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외에는 고려시대 이전의 역사에 관한 특별한 기록이 없으므로 하는 수 없이 이 짤막한 기사에 대한 의존도가 심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김부식의 말을 금과옥조로 여겨왔다.

즉, 박혁거세왕으로부터 진덕여왕까지는 모두 성골 왕이었으며 김춘추가 최초로 진골로서 왕이 되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선덕여왕』의 인기는 그동안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에 많은 의문점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물론 『선덕여왕』의 역사왜곡이나 자의적 해석에 대해 일각에서 비판의 날이 날카롭기는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 또한 그렇게 정교하고 정확한 것이 아니란 점에서 딱히 드라마를 탓할 게재만은 아니다. 드라마가 얼마나 역사적 고증에 철저했는가를 말하기 전에, 우리는 선덕여왕에 대해, 신라의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이렇게 따져보니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 시대는 분명 격동기였다. 외부적으로는 삼국이 패권을 놓고 각축을 벌이고 있었으며 내부적으로는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던 시기다. 진평왕 말기와 선덕여왕 말기에 일어난 칠숙의 난과 비담의 난만 보더라도 당시의 권력암투가 어떠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나는 많은 부분 드라마 작가의 편이다. 『선덕여왕』은 드라마라는 도구를 이용해 고대 신라사회를 하나의 그림으로 만들어 보여주는 친절함을 보여준다. 우리는 『선덕여왕』을 통해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나 생활상을 감상하고 상상할 수 있다. 연대나 인물에 대한 각색이 좀 도를 넘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우리가 보아야할 것은 전체적 맥락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회에서 김춘추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며 하던 말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그 말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상식으로부터 나온 것이긴 하지만. “신라 역사에서 아무도 꾸어보지 못한 두 가지 꿈이 있어. 하나는 여자가 왕이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골이 왕이 되는 것이지. 그런데 그 둘 중 어느 게 먼저 될까? 여왕? 아니면 진골 왕?”

여왕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가 전하는 왕위 계승도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왕보다 권력이 더 센 왕후가 있었다고 하는 것은 앞서 <황남대총금관으로 본 선덕여왕 탄생의 비밀> 에서도 살펴보았다. 미실의 권력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신라는 여왕이 등극하는 데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쨌든 선덕여왕이 최초의 여왕이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역사적 사실이므로 여기에 대해 왈가왈부할 것은 없다. 다만, 김춘추가 최초의 진골 출신 왕이었다는 삼국사기의 기사에 대해선 의문의 여지가 있다. 김춘추 이전에도 성골이 아니면서 왕이 된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실성왕은 왕족이 아닌데도 왕의 사위로서 왕위를 이어받았다. 

물론 실성왕만 왕족이 아니었던 것은 아니고 석탈해도 왕족이 아니었을 것이며, 김미추도 본래 왕족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김춘추 이전의 왕들은 모두 성골이고 김춘추 이후는 모두 진골이라고 했을까? 이 점을 해명하기 위해선 우선 성골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성골에 대해 명확하게 밝혀낸 학자는 없다. 다만, 김부식의 짤막한 기사에 의존하여 성골과 진골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대세일 뿐. 김부식은 왜 이다지도 불친절한 기사를 작성했을까? 사실은 그도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 이상 아는 게 없었던 때문이었을까? 하긴 그도 선덕여왕 시대로부터 무려 500년 후의 사람이다.  

어떤 사학자는 법흥왕의 율령반포 이후에 신장된 왕권을 바탕으로 성역화된 것이 성골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왕위계승권의 범위를 성골로 축소함으로써 왕과 왕의 형제들과 그 가족들의 신분을 신성한 것으로 격상시켰다는 것이다. 매우 그럴듯한 논리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이 이론도 법흥왕 이전의 성골/진골을 제대로 해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박혁거세는 신라의 시조왕으로서 최초의 성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하늘에서 왔으며, 그의 왕후 알영부인도 하늘에서 왔다. 김부식의 의중을 정확히 읽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아마도 그는 박혁거세 시조왕으로부터 정통성을 부여받아 왕위를 계승한 왕과 왕족들을 성골이라고 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본다면 석탈해는 남해왕의 공주와 혼인함으로써 성골을 이어받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역시 부마가 되어 김씨족으로 최초로 왕위에 오른 미추왕도 마찬가지다. 내물왕, 실성왕, 눌지왕 등도 모두 부마였다. 이런 사실들은 신라의 전통은 사위에게도 성골의 정통성을 이을 자격을 주었다고 유추해볼 수 있는 자료들이다.

그리하여 성골에 관하여 게 이렇게 정리해보면 어떨까? 시조왕 혁거세거서간으로부터 왕통으로 이어진 집단이 성골이다. 왕통이 끊어졌을 경우에는 사위를 부군으로 삼아 계승시켰다. 이렇게 보면 박혁거세왕으로부터 진덕왕까지 꾸준하게 성골이 이어졌다고 말하는 것이 별로 틀리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16대 임금 흘해이사금은 15대 기림이사금이 아들이 없이 죽자 귀족들의 추대로 왕이 되었다고 전한다. 흘해는 10대 내해이사금의 손자였으나 어쨌든 당대의 왕통과는 거리가 먼 친척일 뿐이다. 그런 흘해가 기림이사금의 사위로 부군이 되어 왕위에 오른 것이 아니라 귀족들의 추대로 왕이 되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흘해왕을 끝으로 석씨족은 왕좌에서 멀어지게 된다. 흘해왕 역시 아들이 없이 죽자 그의 사위였던 내물마립간이 왕위에 오르고 이후 김씨족의 전제왕권이 확립된 것이다. 내물왕 또한 그의 아들들이 어린 이유로 사위 실성을 부군으로 삼아 왕통을 계승시켰다. 실성왕에 이어 왕이 된―사실은 쿠데타로 집권한 것이지만―눌지도 역시 실성왕의 사위였다.

김춘추가 최초의 진골 왕이었다는 김부식의 주장은 그렇다면 김춘추는 현존 왕의 사위가 되어 부군의 자리에 오른 다음 그 자격으로 왕통을 계승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까? 흘해왕의 예외가 걸리긴 하지만, 굳이 성골과 진골을 구분하고자 한다면 이만한 논리가 따로 없어 보인다.

그래도 남는 의문이 하나 있다. 김부식은 태종무열왕이 최초로 진골로 왕이 된 이래 신라의 왕들은 모두 진골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김춘추는 진골이었지만 그가 왕이 된 이후 그의 왕통을 이어받은 자손들은 모두 성골이라고 해야 되는 것 아닐까? 김춘추 이후 형성된 중앙집권적 전제왕권은 형제상속에서 부자상속으로의 변화를 가져왔다.

말하자면, 성골이 더욱 강화된 것이다. 그런데 왜 김부식은 김춘추 이후의 왕들은 모두 진골이라고 했을까? 김부식이 이 기사를 쓰면서 성골이란 무엇이며 진골이란 무엇이라고 부연 설명을 달아주는 친절함을 보였다면 오늘날 이런 논란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도 굳이 억지 해석을 하면 해결될 문제이다. 

박혁거세거서간의 성골 전통을 이어받지 못한 김춘추 이래의 왕들은 모두 진골이라고 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김춘추는 반드시 최초의 진골 왕이어야만 한다. 그래야 『선덕여왕』의 다음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다. 바야흐로 자고 있던 용이라고 표현되는 미실이 깨어났다. 그녀를 깨운 것은 다름 아닌 최초의 여왕 덕만과 최초의 진골 왕 춘추다.
 

미실은 그동안 자신이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두 가지를 이 두 사람을 통해 깨달았다. 하나는 여자도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성골이 아닌 진골도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미실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미실이 정리했다는 마음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그녀도 왕이 되겠다고 도전장을 내밀기라도 하겠다는 것일까? 

아무튼 미실의 새로운 도전이 성립하기 위해서라도 김춘추가 최초의 진골 출신 왕이었다는 데 대해선 회의를 품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최소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만큼은…. 요 며칠 매일 술자리가 이어지는 바람에 화요일 『선덕여왕』을 오늘 새벽에 일어나서 보았다. 그러면서 들었던 궁금증이 바로 이것이었다. 

‘춘추가 최초의 진골 출신 왕이 맞기는 맞나?’ 술이 덜 깬 것일까? 별 희한한 궁금증도 다 있다. 공부 많이 하신 훌륭한 분이 그냥 그렇다고 하면 믿으면 될 일이지…, 흐흐.
Posted by 파비 정부권
김춘추가 골품제도를 일러 천박하고 야만스러운 제도라고 일갈했다. 그것도 성골 왕인 진평왕 앞에서.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일까? 결론은 도저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이미 김춘추는 덕만공주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공주님은 어떤 마음으로 신라에 오셨습니까? 저는 또 어떤 마음으로 신라에 온 것 같습니까?"
 

사서에 등장하는 김춘추는 탁월한 외교전략가였다.


김춘추, "나는 신라를 가지기 위해서 왔다!"

그리고 김춘추는 힘주어 말했다. "저는 신라를 가지기 위해 왔습니다." 이미 덕만공주도 오래전에 같은 말을 했었다. "신라를 먹어버릴 거야." 그리고 그 말은 곧 "내가 신라의 왕이 되겠다"는 확신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덕만공주는 바야흐로 왕이 되려고 한다. 아무도 꾸어보지 못한,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꿈, 여왕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 김춘추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김춘추는 말한다. "신라 역사에서 아무도 꾸어보지 못한 두 가지 꿈이 있어. 하나는 여자가 왕이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골이 왕이 되는 것이지. 그런데 그 둘 중 어느 게 먼저 될까? 여왕? 아니면 진골 왕?" 묘한 웃음을 흘리며 질문 아닌 질문을 던지는 김춘추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진심은 무엇일까?

그러나 이미 우리는 김춘추의 마음을 그의 입을 통해 충분히 들었다. 그는 덕만에게 "나도 이모님과 마찬가지로 신라를 가지기 위해 바다를 건너 왔다"라고 말했으며, 엊그제는 진평왕과 대등들 앞에서 "골품제도는 천박하고 야만스러운 제도"라고 일갈했던 것이다. "그래, 성골만 왕이 되란 법이 있소? 나 진골도 왕이 되고 싶소!" 이게 그의 진심인 것이다.

그리고 김춘추는 입국하자마자 염종을 수하에 두고 비담을 포섭하기 위해 저울질 하는 등 나름대로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나아가 미생과 친하게 지내면서 적을 안심시키고 내부를 교란시키는 양동작전까지 펼치고 있다. 가히 외교술의 귀재였다는 그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마 우리가 짐작하는 것이 맞는다면, 김춘추는 기골이 장대하고 빼어난 용모를 지녔으며 뛰어난 두뇌와 유창한 화술의 소유자였다. 당태종조차도 김춘추를 칭찬했다고 하니 그가 고구려와 일본, 중국을 넘나들며 외교전을 펼친 것이 우연한 일은 아니었을 듯하다. 게다가 김춘추는 출중한 지혜뿐 아니라 대범한 용기까지 지니고 있었다.  

김춘추는 뛰어난 외교전략가에 행동가였다

감히 누가 있어 용담호혈에 주저 없이 들어갈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런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김춘추는 스스로 죽을지도 모를 길을 주저 없이 갔다. 그리고 실제로 고구려에서 연개소문에게 죽을 고비를 가까스로 넘겼다. 그런 그였으니 진평왕 앞에서 감히 "골품제도는 천박하고 야만적인 제도"라고 일갈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국기를 뒤흔드는 일이다. 골품제도는 신라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장치다. 정확하게 말하면, 신라가 아니라 신라왕실을 지탱하는 장치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곧 역모다. 성골왕족을 부정하고 역모를 일으키겠다는 공개적인 선언을 김춘추가 왕 앞에서 한 것이다.

사실 김춘추는 진지왕의 친손자이면서 동시에 진평왕의 외손자이기도 하다. 그러니 못할 소리도 아니다. 그의 입장으로 보면 성골남진한 상태에서 충분히 왕위계승권을 주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 김춘추는 진평왕에 의해 폐위된 진지왕의 친손자요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진골귀족일 뿐이다.   
 
아무래도 김춘추가 왕이 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역시 덕만공주의 부마가 되어 부군이 되는 것이다. 부군이란 태자가 없을 때 공주의 부마를 다음 왕위계승자로 삼는 신라만의 독특한 제도다. 이런 제도는 근친혼이 성행하던(혹은 권장되던) 신라였기 때문에 가능했을지 모른다. 어차피 부마도 결국 같은 왕족이니까.   

실제로 부군의 지위에 올라 왕이 된 예는 많았다. 석탈해가 그랬으며 김씨족 최초의 왕인 미추왕이 그랬다. 내물왕과 실성왕도 모두 사위로서 왕이 된 케이스다. 그러니 성골 태자가 없을 경우에 진골귀족 중 한 명을 성골 공주의 부마로 맞아 부군으로 삼는 것이 신라의 전통이며 자연스럽게 후계를 확정짓고 정국을 안정시키는 방법이다. 

김춘추의 위험한 발언, "성골만 왕이 되란 법 있나? 진골도 왕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김춘추가 굳이 왕이 되고 싶다면 이미 미실과 계획한 것처럼 덕만공주와 혼인해 부군이 되면 될 일이다. 덕만은 김춘추에게 외가 촌수로는 이모(3촌)가 되지만, 친가로 보면 6촌 형제간이다. 근친혼을 신국의 도라 하여 권장하던 신라사회에서 6촌 형제간인 덕만과 춘추가 결혼하는 것은 하등 이상할 이유가 없는 일이다. 

물론 역사에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드라마에서도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신라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겠다는 연출의도에 따라 연대나 인물 등에 대해 각색의 가위질이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도저히 손을 댈 수가 없는 역사적 사실도 있는 법이다. 선덕여왕과 김춘추의 관계가 그렇다. 

그래서 진골인 김춘추가 성골 왕 진평왕 앞에서 감히 역모에 준하는 발언을 한 것일까? "폐하, 어찌 성골만 왕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저 진골도 왕이 되고 싶사옵니다. 저를 후계자로 삼아주시옵소서." 그러나 이는 분명 매우 위험한 발언임에 틀림없다. 진평왕은 5촌 조카이면서 동시에 외손자이기도 한 김춘추의 발언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있다.

만약 진골도 왕이 될 수 있다고 하면 위 인물들 중 누가 제일 기뻐할까?

 
그러나 다른 신료들은?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들은 당장 김춘추를 참하라고 소를 올릴 것이다. 만약 그들 귀족들도 김춘추의 발언을 문제 삼지 않는다면, 특히 미실과 세종 일파의 경우에, 다른 의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도 진골이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기회가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며, 때문에 속으로는 김춘추의 발언에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재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보이고 있는 권력을 둘러싼 역관계로 보아 김춘추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다음 왕위에 가장 근접한 사람은 세종이다. 이것은 미실이 평생을 꾸어오던 꿈, 곧 황후가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김춘추는 "성골만 왕이 되고 진골은 왕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야만적"이란 따위의 발언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김춘추에게 필요한 것은 세력이다

오히려 김춘추는 '성골만이 왕이 될 수 있으며, 덕만공주야말로 하늘이 예언한 개양자로서 나라를 다스릴 임금의 재목'이라고 진평왕에게 품해야 옳은 일이다. 나아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덕만공주의 결정이야말로 참으로 현명한 판단이라고 부추겨야 옳은 일이다. 그 길만이 "신라를 가지기 위해 돌아왔다"라고 말하던 그의 야심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설령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역사적 사실들을 땅 속에 묻어두고 이야기를 전개한다고 하더라도 김춘추의 생각대로는 절대 될 수가 없다. 왜? 김춘추는 미실 일파가 몰아낸 진지왕의 손자이기 때문이다. 김춘추는 패주의 자손이다. 그리고 진지왕을 패주로 만든 것은 미실과 세종, 설원공 등이다.

실제로 역사에서도 김춘추는 선덕여왕 16년과 진덕여왕 7년을 합하여 무려 20년이 넘는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진덕여왕이 죽은 후에도 김춘추는 바로 왕으로 추대되지 못했다. 삼국사기에 보면 귀족들이 화백회의를 열어 알천공을 왕으로 추대했지만 알천공은 자신은 늙고 덕이 없음을 들어 고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진실일까?

온갖 부패혐의에 시달리면서도 대통령이든 총리 자리든 연연하는 오늘날의 세태로 보면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 될 수도 있는 미담이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통틀어 이런 미담은 대체로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럼 왜 알천공이 왕 자리를 고사했을까? 바로 김춘추의 뒤에는 김유신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월성전투의 승리로 비담의 난을 제압한 이후 김유신은 신라의 무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아이러니지만 후일의 김유신과 김춘추를 만들어 준 것은 바로 비담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알천공이 김춘추에게 왕위를 양보한 것은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 목숨은 두 개가 아니니까.

김춘추가 해야 할 일은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것


그리고 이때부터 화백회의는 사실상 그 기능을 잃었다고 볼 수 있다. 중앙집권을 통해 왕권이 강화된 신라에서 화백회의는 왕의 괴뢰기구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법흥왕 때부터 대등들을 각 행정기관의 장으로 배치해 왕권의 통제아래 두려던 시도는 김춘추가 왕이 될 무렵에는 거의 복종하는 관계로 굳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김춘추가 덕만공주에 맞서 진골도 왕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대드는 것은 난센스다. 아니 치명적 실수다. 지금은 은인자중할 때다. 조용히 세력을 키우며 때를 기다리는 게 그가 할 일이다. 영민한 그로서는 분명 언젠가는 자기에게 기회가 올 것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당나라에 유학까지 한 김춘추라면 태공망의 고사쯤은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잠시 미쳤던 것일까?
Posted by 파비 정부권

"당신이 통치하던 시대엔 왜 발전이 없었을까요?"

덕만공주가 미실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이 대사를 들으며 우리는 역사적 사실 따위는 잠시 잊어야 합니다. 미실이 진평왕을 제치고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라도 통치행위를 했는가 아닌가가 중요한 건 아닙니다. 미실은 드라마상에서 실질적인 통치자입니다. 진평왕은 허수아비 황제에 불과하죠. 미실은 오늘날 국회에 해당하는 화백회의도 쥐고 있고, 병부령을 통해 군권도 장악하고 있습니다. 


미실이 시대의 주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사람에 백성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고 시대의 주인이 된다!" 미실은 그 사람을 귀족들로 보았습니다. 미실은 유력한 귀족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나머지 귀족들은 당근과 채찍을 병용하는 수법으로 통제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공포를 통해 지배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미실에게 백성이란 시대의 주인이 되기 위해 얻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 통제해야할 대상에 불과한 피지배자일 뿐입니다. 

미실은 마치 오늘날 대한민국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부자들에겐 세금을 깎아주거나 갖은 특혜를 베풀면서도 정작 서민들에게선 그나마 주어지던 복지혜택을 빼앗아가는 MB정권의 과거형이 바로 미실입니다. MB에게 얻어야할 사람은 국민이 아니라 재벌을 비롯한 기득권 세력입니다. 미실과 세종 등 진골귀족 일파는 MB와 재벌 등 기득권 세력의 과거형입니다. MB의 국민관과 미실의 백성관이 닮았음은 물론입니다.

"아니 내 돈 가지고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한단 말이야. 공주라고 해도 그건 용납할 수 없어." 핏대를 올리는 하종의 모습은 마치 MB정권을 배출한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모습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화백회의의 대등들이 고대 신라사회의 진골귀족들로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을 독점하고 있었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여기에 하종과 난투극을 벌이는 용춘은 전형적인 민주당 의원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용춘과 하종이 덕만공주의 쌀값 안정 정책을 놓고 결투를 벌이는 듯한 장면에서 웃음이 나왔지만, 작가의 기발한 발상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용춘공이 폐위된 진지왕의 아들이긴 하지만 어쨌든 왕자 출신인데 과연 그럴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따지고 보면 하종도 만만찮은 골품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용춘공에게 꿀릴 것이 하나도 없겠다 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용춘공은 입장은 매우 난처하지만―그도 역시 매점매석을 했으므로―세종이나 설원공 일파와는 달리 양심의 가책을 받습니다. 그는 덕만공주의 편에 서서 화백회의 내 야당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그러나 덕만공주만 아니었다면 그도 세종 일파와 별로 다르지 않은 행보를 취했을 것입니다. 이건 미실이 오래전에 덕만공주에게 한 말을 상기해 보시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덕만공주가 처음 궁궐에 들어왔을 때 미실이 무어라고 했지요?  

세상을 횡으로 나누면 세종공이든 용춘공이든 또는 보종이든 유신이든 알천이든 모두 한 편이다

"세상을 종으로 나누면 공주와 나는 경쟁자가 되겠지만, 횡으로 나누면 우리는 한 팀이랍니다. 공주님과 나는 어차피 지배계급의 일원이니까!" 이 말은 이렇게 바꾸어도 되겠군요. "공주님과 저는 권력을 두고 다툴 때는 경쟁자이지만, 백성들 앞에서는 한 편입니다. 무지한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우리가 가진 것을 빼앗으려고 할 때 우리는 힘을 합쳐 백성들을 통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덕만공주가 폭동을 일으킨 백성들과 직접 소통하겠다고 나섰을 때, 덕만공주의 편에 선 귀족들도 반대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그들이 비록 미실 일파에 반대하여 투쟁하긴 하지만, 역시 그들도 지배층의 일원이란 자각 때문이죠. 이 장면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큰 대목입니다. 미실 일파도 나쁘지만 용춘공을 비롯한 착한 귀족들도 결국은 귀족들일 뿐이란 진실이 슬프지만 아픈 지점이었죠. 

경주 낭산 정상 선덕여왕릉. 사진속의 인물은 자전거를 타고 경주투어에 나선 아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덕만공주가 미실에게 던진 질문을 한번 더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이 통치하던 시대엔 왜 발전이란 것이 없었을까요?"

미실은 이 말을 듣고 찔끔합니다. 역시 미실은 세종이나 설원공과는 차원이 다른 귀족입니다. 그녀는 실질적인 통치자입니다. 세종 등은 그저 눈 앞에 보이는 개인의 이익에만 몰두하지만, 미실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녀는 최고 통치자로서 큰 판을 보아야 합니다. 그녀는 사람을 얻기 위해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자들의 배를 불려주는 일에 골몰하다보니 큰 것을 놓친 것입니다. 

덕만공주의 말을 듣고 고민하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잠깐이었지만 연민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고 말 것입니다. 그녀에겐 시대의 주인 자리를 지키기 위해 확보한 사람들을 잃어선 안 되고, 그들을 잃지 않으려면 그들의 배를 적당히 불려주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MB가 제 아무리 위기의식을 느끼고 서민행보―쇼맨십뿐이지만―를 하더라도 결국은 제 사람들의 이해관계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또 알고 보면 제 사람들의 이익이란 것이 사실은 자기 이익이기도 합니다. 미실도 처음엔 큰 야망을 가졌을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가진 계급적 한계를 벗어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덕만공주는 다릅니다. 그녀는 비록 성골이긴 하지만 황실에서 자라지 않았습니다. 멀리 타클라마칸의 사막에서 장사를 배우며 잔뼈가 굵었습니다. 백성들에게 고품질의 농기구와 자영지를 주어야겠다는 발상도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덕만과 미실의 차이는 성골과 진골의 문제가 아닌 경험의 차이 

반면 미실은 어떻습니까? 그녀는 자신이 성골이 아니란 사실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긴 하지만, 그녀 역시 진골귀족으로 왕족입니다. 게다가 그녀는 황실에서만 줄곧 살았습니다. 그녀가 제 아무리 원대한 통치자의 이상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그 한계는 명백합니다. 백성들 속에서 백성들과 함께 살며 백성들의 마음이 곧 자기 마음이었던 시절이 단 한 순간도 없기 때문입니다. 미실에게 백성이란 겁을 주어 통제해야할 대상일 뿐입니다. 반드시 필요하지만 동시에 매우 귀찮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MB나 박근혜가 가진 한계도 마찬가집니다. 젊은 시절부터 현대건설 이사로, 사장으로, 회장으로 군림해온 MB, 어릴 때부터 청와대에서 공주처럼 살아온 박근혜는 미실의 현재형입니다. 그들 역시 미실이 가진 한계로부터 한 발짜욱도 나갈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세종이나 하종, 설원공 일파의 현재형입니다. 그들의 한계 또한 명백합니다. 아마도 용산참사를 바라보는 미실과 덕만의 의견도 극명하게 엇갈렸을 것입니다. 

"안강의 백성들이 성을 점거한 것은 폭동입니다." "아니에요. 그건 폭동이 아니에요. 폭동이란 역모를 목적으로 일으키는 것이지 살기 위해 하는 건 폭동이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건 생존이라고 하는 거죠."  

그럼 민주당은? 그들이 가진 한계도 분명하다는 것을 오늘 드라마 선덕여왕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용춘공이 바로 민주당의 과거형입니다. 그는 선덕여왕에서 매우 의기가 있고 양심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덕만공주가 왕이 되는데 큰 역할을 할 사람입니다. 게다가 그는 장차 태종무열왕이 될 김춘추의 삼촌(사서에서는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그도 역시 미실의 말처럼 세상을 횡으로 나누면 지배계급의 일원일 뿐입니다.

어떤 분은 오늘 선덕여왕을 보고 매우 불쾌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니 어떻게 미실에게 당신은 주인이 아니라서 나라를 발전시킬 수 없었다고 말할 수 있지? 그럼 자기는 성골이고 나라의 주인이니까 발전을 시킬 수 있다, 이런 말인가? 이런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가 대체 가당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맞습니다. 오늘날 양심으로 보면 있을 수 없는 이야기죠. 나라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니며 오로지 국민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성골도 진골도 아닌 국민들이 직접 통치할 때만 발전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골이든 진골이든 자기 이익을 위해 움직일 것은 자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성골의 이익이냐, 진골의 이익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내일은 김춘추도 한마디 거들 모양입니다만, 도대체 성골이니 진골이니 이런 시대에 뒤떨어진 분류가 어디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내친 김에 한말씀 더 드리면 김춘추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라마가 김춘추를 어떻게 그릴지는 더 두고 봐야 알 일이겠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은 고대 신라사회의 골품제로부터 얼마나 발전했을까?

그런데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은 어떨까요? 우리는 과연 고대 신라와는 다른 정치체제에서 살고 있을까요? 혹시 우리는 아직도 그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혹시 미실이 말한 세상을 횡으로 자른 위에 존재하는 사람들끼리 파당을 지어 다투다가 국민들 앞에서는 한 편이 되어 자기들 이익을 챙기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고 보니 오래 전에 한 미실의 말이 섬뜩하게 다가오는군요. 

"세상을 종으로 나누면 공주님과 나는 경쟁자가 되겠지만, 횡으로 나누면 우리는 한 팀이랍니다. 공주님과 나는 어차피 지배계급의 일원이니까!" 

우리는 여전히 골품제 하에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설마 아니겠지요?

Posted by 파비 정부권

신라밀레니엄파크에서 찍은 사진

선덕여왕 탄생의 전시대적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미리 말한다면 그건 신라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라는 매우 개방적인 사회였다.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와는 달랐다. 고구려와 백제가 중국문화를 받아들이며 제도를 정비한 데 비해 신라는 이들과는 다른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유심히 유물을 관찰한 사람이라면 찬란한 신라문화의 독자적인 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신라고분은 찬란한 문화유산의 보물 창고

이재호가 쓴 <천년 고도를 걷는 즐거움(한겨레신문사)>에 이런 일화가 있다. 경주의 고분들에 일제는 아무런 의미없이 1호부터 155호까지 번호를 붙였다. 일제는 1920년대에 대대적인 고분 발굴에 착수했는데 금령총과 금관총 등에서 금관이 발굴되었다. 그리고 이어 129호분을 발굴하자 금관이 또 나왔다. 이에 본국과 긴밀히 연락한 총독부는 발굴을 중단했다. 

그리고 때마침 일본에 신혼여행 중이던 스웨덴의 구스타프 6세 황태자에게 "신라 천 년 고도 경주에서 금관이 나왔고, 지금 발굴 중인 고분에서도 금관이 나올 기미가 있다"며 발굴에 참여하지 않겠느냐고 유혹했다. 물론 아시아 침략의 야욕을 위해 서방과 선린관계를 맺으려는 일본의 계략이었다. 구스타프는 고고학에 상당한 조예가 있는 사람이었다.  

구스타프는 당장 현해탄을 건너 경주에 왔다. 각본대로 금관이 발굴되었음은 물론이다. 흥분과 감동으로 금관을 잡은 황태자는 손을 파르르 떨었다. 이를 지켜보던 일본관리가 만면에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황태자님이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음…." "황태자님이 직접 발굴에 참여하셨으니 서전국(스웨덴)의 이름을 따 서전총이 어떨지요?" 

"안 될 말이오. 찬란했던 동양의 나라 신라 왕릉에 서양 이름을 붙이다니 당치도 않소. 아까 보니 금관 정수리에 봉황 세 마리가 붙어 있던데 봉황총이 어떻겠소." 결국 129호분의 이름은 스웨덴과 봉황의 이름을 합쳐 서봉총이 되었다. 어찌 되었든 고고학적 지식과 안목을 갖춘 서양의 황태자에게도 신라의 금관은 휘황찬란한 것이었다. 

그리고 해방 이후 1971년 경주관광개발종합계획이 수립되었을 때 대릉원에서 제일 큰 98호분을 발굴하기로 했다. 이 고분을 발굴하기 위한 예행연습으로 바로 옆에 있던 155호분을 먼저 발굴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여기서 천마도가 나왔다. 예행연습으로 발굴한 고분에서 천마도와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금관(국보 188호)을 비롯해 1만 5천여 점의 유물이 쏟아지다니.

그리하여 155호 고분은 천마총이란 이름을 얻었다. 신문에 보니 천마도는 30여 년이 흐른 오늘에서야 비로소 전체 모습이 공개되었는데 머리에 뿔이 달린 모습이 유니콘을 닮아 앞으로 많은 논란이 예상된다고 한다.   

국보 188호 천마총 금관. 플래시를 쓸 수 없어 사진 상태가 안 좋다.


황남대총의 주인은 누굴까?

천마총에서 연습을 끝낸 발굴팀은 1973년부터 2년 3개월에 걸쳐 98호분을 발굴했다. 여기에 연인원 3만 2800명이 투입되었다. 이 98호분이 바로 황남대총이다. 이곳에서도 3만 5000여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황남대총은 북분과 남분으로 이루어진 쌍총인데 남분은 왕, 북분은 왕비의 능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북분에서는 금관(국보 191호)이 나왔는데 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남분에서는 금관이 나오지 않고 대신 은관이 나왔다는 것이다.  남분에는 60세 전후의 남자와 순장된 것으로 보이는 여자의 유골이 나왔는데 남자의 유골은 내물왕 또는 실성왕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관이 출토된 고분의 제작시기를 5세기에서 6세기 초반으로 볼 때 이 시기의 왕은 대략 6명으로 압축되는데 내물, 실성, 눌지, 자비, 소지, 지증왕이다. 이 중에 황남대총 남분의 주인은 누구일까? 여기에 대해 일본의 역사학자 요시미즈 츠네오는 그의 저서 <로마문화 왕국, 신라>에서 흥미로운 주장을 한다. 그는 남분의 주인을 실성왕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로 실성왕은 왕족이 아닌 신분으로 왕위에 오른 유일한 신라의 왕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이 모든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성왕 외에도 왕족이 아니면서 왕이 된 인물은 이미 여럿 있었다. 우선 유명한 석탈해가 있다. 석탈해는 왕족이 아니었다. 다음 미추왕도 있다. 그도 역시 왕족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왕의 사위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부마로서 왕이 된 사람들인데, 어쩌면 아들이 없는 왕의 공주를 대신해서 왕좌를 이어받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요시미즈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석탈해나 미추왕 또는 내물왕의 경우에 박씨족, 석씨족 혹은 김씨족과의 권력투쟁을 통해 왕권을 쟁취한 것이라면 말이다.  
 
황남대총의 왕비는 금관, 왕은 은관?

실성왕은 김씨족이긴 하지만, 즉 김알지의 후손이긴 하지만 최초의 김씨 왕인 미추왕의 자손이 아니다. 그러므로 왕족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내물왕의 사위였다. 내물왕이 죽으면서 어린 아들들을 대신해 사위에게 왕좌를 넘겼다. 실성왕은 왕이었지만 미추왕(또는 내물왕)의 딸인 왕비에 비해 계급이 낮았다. 

신라 왕릉 최대 규모의 황남대총. 길이는 남북으로 120m 동서로 82m, 높이는 남분이 22m 북분이 23m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왕은 은관을 쓰고, 왕비는 금관을 쓰고 누워있는 무덤의 실체'에 대해 이보다 더 확실한 대답은 없을 것이다. 또 혹자는 같은 맥락에서 내물왕의 무덤이 아니겠느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실성왕은 눌지에게 피살당해 권력을 상실했는데 이토록 거대한 무덤을 조성했을 리 없다는 차원에서 눌지왕의 능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물왕의 무덤이라는 주장은 비록 석씨왕의 사위로서 왕이 되었으나 김씨족 왕권의 기틀을 닦은 강력한 군주라고 평가한다면 별로 설득력이 없는 이야기다. 눌지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실성왕을 죽이고 권력을 빼앗았다고 하나 그는 내물왕의 아들로서 정통성이 있다. 은관을 쓰고 누워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리 보면 가장 확실한 무덤의 임자는 아무래도 요시미즈의 주장처럼 실성왕이다. 그런데 어떻게 눌지에게 피살당해 권좌에서 밀려난 왕의 무덤이 이토록 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미스터리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커다란 핸디캡이 있다. 바로 의식이며 고정관념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왕을 보는 눈은 가졌지만 왕비를 보는 눈은 갖지 못했다. 

기록에 의하면 실성왕의 왕비는 미추왕의 딸이라고 한다. 그러나 연대 차이로 볼 때 이는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다. 아마도 미추왕의 적손이거나 내물왕의 딸일 가능성이 크다. 미추왕의 딸이라고 하는 것은 김씨 왕족의 정통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을 수 있다. 왕에 비해 신성한 혈통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황남대총의 여주인은 왕보다도 강한 권력자였다

어떻든, 우리는 황남대총의 북분과 남분의 피장자를 통해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북분의 피장자는 여왕이 아니었는데도 왕만이 쓸 수 있는 황금수목관과 호화찬란한 장신구를 비롯해 로마유리잔과 자기 등이 부장되었지만, 남분의 피장자는 비록 왕이었지만 왕비에 비해 낮은 신분 탓으로 은관과 금동관과 기타 무기·무구류가 부장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은 원래 이 글의 주제이기도 한데, 자신을 암살하려던 실성왕을 오히려 시해하고 왕이 된 눌지조차도 어쩔 수 없이 거대한 봉분을 조성하는데 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세력관계다. 실성왕의 왕비는 눌지왕의 이모이고 눌지왕의 아내는 실성왕의 딸이다. 눌지왕 주변에는 강력한 외척, 여인들의 파벌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 착안하여 우리는, 어째서 왕비의 무덤인 북분에서 왕이 쓰는 황금수목관이 나오고 왕의 무덤에서는 은관과 금동관만이 나왔는지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MBC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보듯 미실이라는 여인이 구축한 권력관계란 것이 그렇게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란 사실도 함께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미실이 구축한 구도란 것은 결국 선덕여왕이 왕좌에 오를 수 있는 토대다. 선덕여왕이 비록 성골이라고는 하나 여자로서 왕위에 오른 것에 대하여 아직 어떤 구체적인 해명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다만 삼국사기에서 '성골남진'을 이유로 들고 있는데 이는 그저 불가피한 하나의 조처였을 뿐이라는 소극적인 해명 아닌 해명에 불과하다. 

신라 왕릉 중 가장 거대한 황남대총은 활발하고 진취적인 신라 여인들의 패기를 보여주는 블랙박스다. 그러나 우리는 이 블랙박스를 푸는 열쇠를 잃어버렸다. 여기에는 통일신라 후기부터 유입되기 시작한 유교의 영향으로 고대의 전통을 깡그리 부정하는 풍조도 한몫했다. 이 풍조에 편승한 김부식은 암닭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식으로 선덕여왕을 비하했다. 

황남대총 사이를 지나가는 두 사람. 무슨 생각을 하며 걸어가고 있을까?


그러나 결국 여왕도 배타적 근친혼을 통해 탄생한 왕족일 뿐, 
중요한 것은 골품귀족의 이해에 반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  
 
그러나 그 역시도 삼국통일의 토대를 닦고 문물을 장려한 선덕여왕의 공덕을 모두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완곡하게 "여자가 왕이 되었는데도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은 신통한 일이다"라고 비틀어 말했던 것이다. 선덕여왕은 우연히 왕이 된 여인이 아니다. 또는 성골이 남진하여 그리된 것도 아니다. 

선덕여왕의 뒤를 이은 진덕여왕과 이백여 년이 지나 다시금 등장한 진성여왕은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사대주의 사관으로 씌어진 삼국사기, 이를 극복했으나 여전히 한계를 가지고 있는 삼국유사만으로 고대사회를 본다는 것은 얼마나 편협한 것인가. 그러므로 비록 필사본이라 해도 화랑세기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은 실로 위안이라 아니할 수 없다.

화랑세기 진본이 나타나기 전에는 위작 논쟁은 아마도 종지부를 찍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기와 유사에서는 볼 수 없는 생생한 고대 신라 사회의 생활상을 그려보는 기쁨을 화랑세기를 통해 누려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화랑세기의 이야기를 확실하게 증언하고 있는 것은 다른 어떤 왕릉보다 우뚝 솟아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황남대총의 여주인이 아닐까?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이 분묘의 여주인이야말로 당당하게 신라정계에서 활약한 미실과 선덕여왕의 전신이란 사실을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만 전제가 있다면, 황남대총의 여주인이든 미실이든 선덕여왕이든 타고난 혈통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철저한 근친혼을 통해 배타적 신분으로 만들어진 왕족이거나 성골들이다.

그러나 아직 모든 것은 수수께끼다. 무덤들은 말이 없다. 대릉원을 순례하던 날, 마치 계곡을 타고 바람이 흐르듯 거대한 무덤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무척이나 시원했다. 황남대총 사이를 걸어가며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그래,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일 뿐이다.

"와,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참 잘 생겼다." 

ps; 마무리가 희끄무리하지만 잠이 와서 할 수 없이 예약 걸고 그냥 잡니다. 내일 시간 나면 손 보겠습니다.
     뭐 크게 무리는 없다고 보지만, 결론은 신라사회는 여왕이 탄생하는 데 큰 거부감이 없는 사회였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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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 대릉원 황남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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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천명공주가 죽었다. 아쉬운 대목이지만, 덕만공주가 왕이 되기 위해선 불가피한 조처(?)였던 것으로 보인다. 천명공주가 일찍 요절했다는 기사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어디에도 없다. 김춘추가 왕좌에 올랐을 때 그의 아비 용춘공을 갈문왕으로 예우해 올렸다는 기록이 있긴 하지만 천명공주가 덕만이 왕이 되기 전에 죽었다는 기록은 없으며, 오히려 김춘추가 왕위에 올랐을 때까지 살아있었다고도 한다.


성골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드라마 선덕여왕은 미실궁주와 덕만공주의 대결구도를 만들기 위해 천명공주를 제물로 삼았다. 어디까지나 드라마로서의 자유를 최대한 누린 것이다. 모두들 드라마를 보면서 느끼고 있을 테지만, 사실 천명공주와 덕만공주가 일국의 지도자로 성장하는 배후에는 미실이 있다. 만약 미실과 같은 걸출한 여걸이 없었다면(물론 악마지만, 드라마는 악마가 있어야 영웅이 나오는 법이다) 천명도 없었으며 덕만도 없었을 것이라는 뉘앙스가 이 드라마의 배경에 은밀히 깔려 있다.

원래 천명공주는 부군(태자의 존재를 해제조건으로 하는 왕위계승권자)의 자리에 올라 진평왕의 후계를 잇기로 되어있었다. 용춘을 사모하던 천명이 모후인 마야부인에게 "용숙과 혼인하고 싶다"고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용춘이 아닌 용수와 결혼하게 된다. 용숙이라 한 것은 숙부뻘(5촌 아저씨)인 용춘을 차마 입에 담지 못하고 빗대어 부른 것일 게다. 그러나 마야부인은 용숙을 용수로 착각하고 진평왕과 의논하여 두 사람의 혼사를 정해버린 것이다.   

마음이 유약해 왕실의 법도를 거역하지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혼인을 하게 된 천명부군은 월성에서 용수전군과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 용수전군은 본래 선제인 진지왕의 장남으로 태자였으나 진지왕이 폐위되는 바람에 전군으로 족강한 인물이다. 이종욱 교수의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에 의하면 용수가 성골이 아니라 진골인 것은 진지왕의 폐위로 인한 탓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고 설명한다. 

이종욱 교수는 성골에 대해 대체로 이렇게 해석한다. "신라는 골품제 사회다. 골품제는 골품과 두품으로 나뉘는데 두품은 다시 6두품으로 구분했다. 골품은 왕족으로 진골과 성골이 있는데, 성골이란 왕위계승권을 가진 왕족의 집단을 의미하며, 왕과 왕의 가족, 왕의 형제와 그 가족으로 구성됐다. 그리고 왕이 바뀌면 성골집단은 새롭게 구성된다."

이런 해석에 의하면 용수는 자기의 사촌형제인 진평왕이 등극함으로써 성골의 범주에서 자연스럽게 빠지게 된 것이다. 즉 진평왕이 즉위하기 전에는 성골이었으나 진평왕이 왕이 되어 새롭게 성골귀족이 재편됨으로써 진골로 족강한 것이다. 선덕여왕의 사촌동생인 승만공주가 성골이므로(진평왕의 형제의 가족이므로)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용수는 매우 용의주도하며 야심이 큰 인물이었다. 그는 천명과 혼인하기 전에는 폐주의 자식으로 최대한 몸을 낮추었다. 미실에게 다가가 아첨을 하며 충성을 맹세하기도 했다. 미실은 천명의 배필로 용수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폐위시킨 왕의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용수의 맹세에 마음이 움직인 미실이 용수와 천명의 국혼을 허락한다. 

천명공주를 부군의 자리에서 폐하고 덕만공주를 여왕의 재목으로 선택한 이유

천명과 혼인하여 부군의 남편 자리에 오른 용수는 이제껏 보여주던 태도를 180도 바꾸어 진평왕의 오른팔처럼 행동했다. 공공연히 미실궁주의 권위에 도전하기도 서슴지 않았다. 마치 천명이 왕위에 오르면 실제 왕은 자기라는 듯 오만하기 그지없다. 이에 미실은 생각을 바꾸어 마야부인을 황후에서 폐하고 새로운 황후를 들여 태자를 생산해야한다는 당론을 만들기에 이른다.

이는 결국 천명부군을 폐하겠다는 뜻이다. 이에 덕만이 미실의 처소로 가 무릎을 꿇고 뜻을 거두어주길 간청한다. "미실궁주께서는 왕도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궁주님으로 인해 여자도 부군이 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천명공주를 부군의 자리에서 폐하려 하십니까?" 그런 덕만공주에게 미실이 묻는다.

"공주, 그대의 말처럼 나는 미실이란 옥토를 통해 여왕이란 꽃이 필 수 있는 기반을 닦았소. 그대가 제왕으로서 이 땅에 선다면 무엇을 위한 기반을 닦고 싶소?" 무슨 뜻인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던 덕만이 말한다. "덕만은 눈물이 흐르지 않는 나라를 위해 살아갈 것 같습니다. 하늘 아래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의 욕망에서 불거져 나온 전쟁과 협상의 노예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심히 이상적이구먼." 미실이 말하자 덕만은 다시 힘주어 말한다.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삼한의 통일… 제가 제왕이라면 그것을 이상으로 내세우고, 영원토록 추구할 것입니다."  그러자 미실이 덕만을 찬찬히 내려다보며 다시 말한다. "일전에 천명부군에게도 이와 같은 질문을 했지만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소." 그리고 이어 말한다. "내가 천명부군을 폐한 것은 덕만공주, 뒤늦게 그대를 발견했기 때문이오."

이 뒤의 이야기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모두들 짐작할 것이다. 천명공주는 부군의 자리를 스스로 내놓고 월성에서 낳은 춘추를 데리고 용수와 함께 월성을 빠져나간다. 월성은 왕과 왕의 가족만이 기거할 수 있는 곳이다. 공주가 성골이 아닌 진골과 성혼을 하게 되면 월성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천명은 부군의 자리에 있었기에 용수와 혼인하고서도 월성에서 계속 살면서 김춘추를 낳았다. 

즉, 부군으로서 왕위를 계승할 위치에 있었으므로 일반 법도와는 다른 기준이 적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부군의 지위를 잃었으니 월성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음은 자명하다. 야심만만한 용수전군이 반발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용수전군이라 한들 어쩔 도리가 없다. 그는 부군의 남편이었기 때문에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을 뿐 스스로 힘의 원천은 아니었던 것이다. 

선덕여왕 - 10점
신진혜 지음/창해

   


성골은 신라 왕궁 월성에 살아야 하며, 월성을 떠나면 성골의 지위도 잃게 된다

이상 미실이 신라의 여왕으로 덕만을 택하고 천명을 버린 이야기는 소설 속의 이야기다. 창해출판사에서 펴낸 소설《선덕여왕》은 고려대 한국사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는 신진혜라는 역사학도가 쓴 책이다. 그녀는 1985년 생으로 아직 4반세기도 살지 못한 어린 나이다. 이 소설의 텍스트도 물론 화랑세기지만, 소설적 구성을 위해 약간의 변형을 꾀한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나는 신진혜 작가가 의도한 소설적 해석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진다. 덕만공주가 천명을 제치고 왕위에 오르게 되는 배경과 과정을 빠른 전개와 박진감 넘치는 필치로 사실감 있게 잘 그려놓았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사실 미실이 삼한의 통일이란 원대한 이상을 품은 덕만을 선택했다고 하는 설정은 좀 억지가 있지만, 천명이 아니라 덕만이 왕이 되는 이유로는 손색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궁금해 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천명공주와 그 가족들이 월성을 떠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천명공주의 신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하는 것이다. 서강대 이종욱 교수에 의하면, 월성은 성골만이 살 수 있는 곳이고 성골은 월성에 살아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월성을 벗어나게 된다는 것은 성골의 지위도 잃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광법사의 어머니는 숙명부인이다. 그녀는 지소태후의 딸 숙명공주로 진흥왕의 왕후였으나 이화랑을 사모해 출궁하여 이화랑과 혼인함으로써 성골의 지위를 버렸다. 물론 진흥왕의 포기와 묵인 하에 이루어진 일이다. 이 이화랑의 자손들이 4대에 걸쳐 화랑의 풍월주를 세습하게 되었으며 화랑세기의 기자 김대문은 그 5대손이란 사실은 이미 전회의 포스팅에서 밝힌 바 있다.

어쨌든 천명공주는 부군의 지위에서 물러나 월성을 떠남으로써 성골에서 진골로 족강되었다. 춘추 역시 월성에서 살 때는 성골이었으나 진골로 족강되었음은 당연하다. 이러한 성골에 관한 개념이 하나의 원칙이나 제도로 자리잡은 것은 법흥왕 때로 보인다. 법흥왕은 율령을 반포함으로써 국가제도를 정비하고 왕권을 강화했다. 

이 율령반포에서 중요한 두 가지가 골품제도와 화백회의에 관한 것이었을 것이다. 특히 왕족들의 신분과 처우에 관한 법이 정비되어있지 않아 늘 정국불안의 한 요인이었던 것을 해소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였을 것이다. 또한 성골의 범위를 축소하여 왕과 왕의 형제와 그 가족들로 한정했다는 것은 중앙집권제가 시도되었음도 의미한다. 

성골은 왕위계승권을 확정해서 분쟁을 없애기 위한 제도적 장치

율령이 반포되기 전에는 귀족회의인 화백회의 의장을 왕이 맡았으나 상대등을 따로 두어 화백회의 의장 역할을 하도록 한 것도 왕권 강화의 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즉 대등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만장일치제 회의를 하던 관행에서 왕은 빠진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 일파가 진평왕과 권력게임을 하는 것도 그러고 보면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법흥왕이 만들어 놓은 성골의 범주에 들지 못하는 귀족들의 불만, 그런 것이 있지 않았을까? 거기다 아직 확고하게 완성되지 못한 중앙집권도 분란의 씨앗이었다. 어린 나이에 등극한 진평왕을 대신해 태후와 미실궁주의 오랜 섭정도 왕권과 귀족간의 싸움을 부채질한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물론 우리란 필자의 주관적 해석이지만―김춘추가 본래 성골이었으나 모후인 천명공주가 부군의 지위를 잃고 월성에서 쫓겨남으로써 함께 진골로 족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진흥왕의 유일한 적통으로서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패망하여 신라에 귀순한 가야계인 김유신이 김춘추를 선택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김유신이 문희를 태워 죽이겠다고 벌인 쇼를 오로지 김춘추의 인간성이 마음에 들어서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독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김춘추 또한 자신의 운명적 신분에 힘을 실어줄 김유신의 무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자, 이로써 우리는―역시 필자의 주관적 해석인 우리다―성골이란 현재의 권력관계를 표상하는 하나의 제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성골은 고정불변의 신분이 아니며 성골이 진골로 족강할 수도 있는 것이고 반대로 진골이 성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 김춘추가 태종무열왕이 됨으로써 성골의 시대가 끝나고 진골의 시대가 왔다고 말했었다. 

즉, 김춘추 이후로는 진골들이 왕위에 올랐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역시 주관적인 우리는―오늘 이 말이 난센스임을 알았을 것이다. 김춘추가 왕이 된 이후 신라 천 년을 통틀어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왕의 시대가 백년을 넘게 이어졌다. 형제계승을 기본으로 하던 왕위 세습은 장자계승의 원칙이 확립되어갔다. 

김춘추 이후에 진골들이 왕이 되었다는 말은 난센스

다시 말해서 성골의 범주가 더욱 엄격해졌다는 말이다. 성골이란 진골귀족들 중에서 왕위계승권자의 범위를 확정할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앞서 말했다. 굳이 억지로 성골과 진골을 구분하라고 한다면 성골은 왕족이고 진골은 귀족이다. 그러나 신라 하대로 가면서 왕권이 약화되고 골품제도는 혼란을 겪게 된다. 상대등 중에서 왕이 나온 경우도 많았다는 것은 무너진 왕권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예다.  

아무튼 오늘 이야기의 결론은 이렇다. 김춘추는 성골로 태어났으나 진골로 족강되었다가 다시 왕이 되면서 성골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에 김춘추의 후계자들은 보다 더 엄격해진 성골의 기준을 만들고 왕위를 세습했다. 그러니 김춘추 이전에는 성골들이 신라의 왕 노릇을 하다가 김춘추가 정권을 잡으면서 진골들이 왕이 되었다는 말은 난센스다. 

그러나 이런 결론도 뒤집어 말하자면, 성골이란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니란 것이며, 존재조차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 성골이란 단어가 그리 흔하게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성골에 대한 개념을 정확하게 기술해놓은 기사도 없다. 화랑세기에서는 아예 성골-진골 대신에 진골정통과 대원신통이란 개념을 사용한다. 

이렇게 본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이 만들어낸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도 허구로부터 만들어낸 허구 같은 게 되고만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허구 중의 허구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런 것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드라마는 재미있으면 된다. 아무리 드라마라도 역사를 왜곡해선 안 된다는 불평도 있지만, 내가 볼 땐 그렇게 왜곡할 만큼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도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중요한 주제는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말이다. 이처럼 민심을 얻는 자가 진정한 성골이 아니겠는가. 민심, 그것이 현대적 의미에서 성골의 진정한 척도가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아무도 눈물 흘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선덕여왕, "그 이상을 위해 삼한통일의 기반을 닦겠다!"는 선덕여왕이야말로 진정한 성골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역대 정권들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성골이었을까? 그들은 '아무도 눈물 흘리지 않게 되는 나라'를 꿈꾸었을까? 이를 위해 남북통일의 기반을 닦는 것을 이상으로 내세우고 그것을 영원히 추구한 정권이 있었을까? 물론 어떤 정권이든 다 그렇게 말하겠지만, 그걸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듯싶다. 

눈물이 마르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에 진정한 善德은 없다 

위의 마지막 질문은 내가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소설 선덕여왕의 저자인 신진혜 씨가 소설 속에서 암시해준 질문이다. 그리고 사실 그녀는 덕만공주를 통해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이 온통 눈물 천지다. 용산에선 삼성의 개발이익에 밀린 철거민들의 눈물이 도시를 적시고, 평택에선 기업 살리기란 명분으로 살 길을 잃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눈물이 공장을 적신다. 

세상에 사는 낙이 없다. 그러나 오늘 역사학도이며 선덕여왕(창해)의 작가 신진혜 씨의 글을 읽노라니 기특한 생각에 입가에 번지는 기쁜 미소를 지울 길이 없다. 내가 그녀를 기특하다고 하는 것은 그녀가 이제 갓 만 23세의 대학생이고 나와는 20년이나 차이나는 나이 때문이지만, 그녀가 특별히 욕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리라 본다. 

그리고 그녀의 집필의도가 무엇이었든 그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소설 선덕여왕을 읽으며 내가 느낀 감상, 그것이면 족하다. 책을 읽고 가지는 감상은 작가가 아닌 독자의 영역 아니겠는가.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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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선덕여왕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사실 요즘처럼 낙이 없는 세상에 선덕여왕이라도 있으니 사는 재미가 있다. 게다가 나는 선덕여왕을 보고 블로그에 리뷰를 올려 재미도 좀 보고 있으니 더더욱 선덕여왕이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선덕여왕은 재미뿐만 아니라 고대사회에 대한 호기심도 함께 자극해서 역사공부를 새롭게 시켜주는 선생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선덕여왕 리뷰를 올리다 보면 칭찬도 듣고 실수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도 듣게 되는데, 가끔은 아주 엉뚱한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그 중에 하나가 "이명박이 성골"이라는 주장이었다. 선덕여왕이 공전의 인기를 끌자 박근혜 지지모임(박사모)에서 박근혜를 선덕여왕에 비유하는 해프닝을 보여주기는 했어도 이건 아주 의외다.

박근혜를 선덕여왕과 비교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로 첫째, 지지기반이 경북으로 같고, 둘째, 최고 지도자의 딸, 즉 같은 공주 출신이란 점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황당한 비유에 대해 "박근혜가 선덕여왕? 그럼 김정일은 광개토대왕이냐?"란 포스팅으로 응수해주었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 여기에 한 술 더 떠 "이명박이 성골"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물론 댓글 수준의 주장이긴 하지만, 다음뷰에서만 4만이 넘는 독자들이 읽었으므로 또 그리 만만하게 볼 것도 아니다. 그래서 생각 끝에 여기에다 정식으로 소개하기로 했다. 혹시 못 보신 분도 있을지 모르니 그분들에게는 재미있는 코미디 하나를 감상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  

대구고대 2009/08/05 11: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은 민주주의가 되어서 계급이 없지만,
실질적으론 계급이 존재하죠.
고대출신은 진골이고 경북출신중 고대출신이 성골이죠.
한국에선 역시 민족고대가 최고입니다.

한국도 선진국이 되려면 다시 왕이 있었으면 합니다.
유럽 선진국들 대부분 왕이 있잖아요.
민족고대출신 이명박 대통령을 초대 국왕으로 하면 좋을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대다수 원하는 것이 잖아요.

  • 미쳐군 2009/08/05 1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미쳤군,,
    미쳤어..
    정신병자군...ㅡ.ㅡ;;;

  • 미친놈은 2009/08/05 1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매가 약이다. 그냥 병원가든지

    너같이 쥐빠들때문에 온나라가 쥐똥냄새로 가득하다

  • 투바이 2009/08/05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왕권을 원하면 저기 두바이가 통치하는 곳으로 떠나

  • 파비 2009/08/05 14: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구고대/ 성골이란 <성행위를 아무 곳에서나 해대는 골빈 놈들>의 약자랍니다. 이명박 대통령께서 성골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마사지 걸은)못생긴 여자가 훨씬 서비스가 좋다. 못생긴 여자를 골라라!"는 청사에 길이 남을 금언을 내려주신 이명박 대통령을 빗대어 말씀하신 거라면 동의합니다. 저도 사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글고 보니 대구고대님도 성골이시네요. 반갑습니다. 하하~


혹 어떤 분은 내가 대구고대란 필명에 응수한 방법에 대해 너무 과문한 것이었다고 비판적인 의견을 내시는 분도 있을지 모른다. 또는 대구고대는 사실은 이명박에 대한 지능적 안티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 이 대구고대란 분은 이명박에 대한 지능적 안티는 절대 아니다. 

기억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이 대구고대란 이름은 우리가 자주 접하던 이름이다. 특히 "김주완 김훤주의 지역에서 세상보기"란 블로그에 자주 출몰하던 댓글 필명이다. 김훤주 기자가 이명박을 비판하는 글을 쓰면 꼭 거기에 나타나서 욕을 하고 이명박과 이명박의 출신학교를 민족고대라 지칭하며 자랑하던 사람이 바로 대구고대였던 것이다. 

아마 그는 대구사람이며 고대 출신인 모양이다. 그래서 자기도 소위 TK에 고대 출신이니 성골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이런 정신 빠진 분들을 위해서 나는 꼭 이 '성골'의 의미에 대해 제대로 된 해석을 해주고 싶었다. 성골이란 '성행위를 아무 곳에서나 해대는 골빈 놈들'의 약자라고 말이다. 

사실은 이 기발하면서도 기괴한 성골에 대한 의미해석은 대구에서 얻은 것이다. 내가 어느 날 대구에 있는 어떤 선배를 만나기 위해 갔을 때였다. 그 선배는 대구구경을 시켜줄 요량으로 나를 차에 태워 대구 팔공산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티재(고개 너머는 군위군이었는데, 이름이 정확히 맞는지는 모르겠음)에 올라 휴게소에서 커피를 한 잔씩 나누어 마셨다. 

그런데 내 눈에 희한한 것이 들어왔다. 휴게소 옆에는 비탈진 울창한 수림에 공원이 있었는데 입구에 안내문 간판이 하나 서있었다. 그 간판 맨 아래에는 '대구시장 대구경찰서장 백'이라고 씌어있었다. 물론 당연히 이런 부류의 모든 간판들이 그러하듯 여러 가지 금지사항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1.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마시오 2. 무단 방뇨를 하지 마시오, 이런 식으로…. 그런데 죽 읽어 내려가던 나는 4번인가 5번인가를 보았을 때 기절할 듯이 웃고 말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5. 이곳에서 성행위를 하지 마시오!"

뭐 내가 대구 시민들을 욕보이자고 하는 건 아니다. 단지 거기에 그런 팻말이 있었고 그 선배와 내가 너무 우스워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그런 터무니없는 간판 문구를 새긴 대구시장과 대구경찰서장의 탓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이명박과 경북출신 중 고대출신이 성골이라는 희한한 이야기를 접하고 그때 일을 상기했을 뿐이다. 

하여간 여러분, 성골이란 바로 이런 뜻이랍니다. "아무 곳에서나 성행위를 해대는 골빈 놈들!"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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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비담의 난이 일어났다고?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그저 괴담이다. 아직 덕만이 왕위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비담이 반란을 일으키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괴담을 충분히 지어낼 만한 사정이 벌어졌다. 어제 막판에 등장한 비담으로 인해 선덕여왕은 온통 비담 얘기로 들끓었다. 다음뷰 베스트란은 4일 오전 한때 1위부터 10위까지 7~8개가 선덕여왕 리뷰에 덮였다. 하재근블로그의 말처럼 가히 비담의 난이다.
 

선덕왕 오른쪽에 미실 모자가, 왼쪽에 천명 모자가 섰다. 덕만을 등지고 고개를 돌린 유신의 포즈가 의미심장하다.

 
사실 유신랑이 지금껏 보여준 태도는 매우 미심쩍었다. 시청자들이 바라는 유신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강인한 결단력과 추진력, 탁월한 리더십을 보고 싶었던 시청자들에게 유신은 너무 미적거렸다. 우유부단했다. 천명과 덕만이 처한 상황이 그저 결단과 투지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건 모두들 안다.

그래서 이해하는 것이다. 지금 상황은 오기보다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서 유신의 태도가 조금 불만이긴 해도 그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유신에게서 기대하던 모습을 느닷없이 출현한 비담이 보여주고 말았다. 시청자들은 당연히 열광했다. 비담은 등장하자마자 영웅이 되었다.

자, 그런데 비담이 어떤 인물인가? 비담에 대하여 구체적인 역사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사기나 유사에서 비담이 선덕왕 말년에 난을 일으킨 것으로 되어 있다. 비담이 난을 일으킬 때 그의 신분은 상대등이었다. 상대등은 진골귀족이 아니면 오를 수 없는 자리다. 상대등 뿐만 아니라 17관등 중 5등 이상에 진골이 아니면 오를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신라는 진골귀족, 즉 왕족들의 연합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였다. 화백회의의 존재는 왕이 중앙집권을 통해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상대등은 이런 신라사회에서 국사를 총괄하는 한편 화백회의라는 귀족회의의 의장 역할을 하는 막중한 자리였다. 소위 일인지하 만인지상을 넘어 왕을 견제하기도 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상대등은 법흥왕이 율령을 반포하고 국가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왕권이 강화되어 국왕이 귀족회의를 주재하지 않게 되면서 만들어진 제도이므로 일면 왕권강화의 소산이기도 하지만, 완전한 중앙집권에 이르지 못했음의 반증이기도 하다.)

상대등이 왕에 의해 임명되는 형식적 절차를 거치긴 하지만 '귀족 내부의 세력관계나 골품에 따른 서열에 따라 임명자가 정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비담이 난을 일으킬 당시 상대등의 지위에 있었다는 것은 다른 한편 그가 가진 권력기반이 어떠했는지를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그는 왕이 될 수 있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사실 신라라는 특수한 나라에서 귀족계급에 속해 있다는 것은 언제든지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중고시대의 신라는 '왕'이 아니라 '왕과 (진골)귀족계급'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였다. 이런 상황에서 왕위계승권을 안정적으로 확정하기 위해 성골이란 제도가 창안된 것인지도 모른다. 

MBC 선덕여왕은 바로 이 성골남진의 위기상황에 착안한 드라마다. 물론 이처럼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소재를 제공한 것은 삼국유사와 필사본 화랑세기였다. 그러나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해 파란을 일으키는 비담은 MBC 드라마팀의 작품이다. 비담은 실존인물이다. 그러나 비담의 가계에 대하여 알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비담은 김유신의 연날리기 전술로도 유명한 월성전투에서 패한 후 구족이 멸하는 참화를 입었다. 비담의 이름을 입에 담을 만큼 간이 큰 자가 누가 있었을까. 비담은 김씨 족보에서도 사라진 것이다. 비담의 난을 제압한 김유신과 김춘추는 명실상부하게 신라의 패권을 장악했을 것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진덕여왕마저 후사가 없이 죽은 후 김유신이 화백회의에서 김춘추를 왕으로 추대했을 때 반대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물론 화백회의는 만장일치제이므로 반대가 있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미 화백회의가 열리기 전에 사태는 결정난 것이 아니었을까? 처음에 상대등 알천이 귀족들로부터 왕으로 추대를 받았으나 스스로 나이 들고 덕이 없음을 들어 사양하고 대신 김춘추를 천거했다고 하지만, 이 모든 정황의 근저에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성장한 신흥 진골귀족 김유신이 있었다.)   

그런데 MBC가 비담의 가계를 살려냈다. 비담은 진지왕과 미실의 아들이라는 설정이다. 참으로 기발하다. 실상 미실이 선덕여왕 집권 말년까지 살아서 대결구도를 펼쳐간다는 것은 아무리 픽션이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미실이 덕만과의 대결에서 패하고 사라진 후에도 마지막까지 미실의 세력을 대표해 덕만과 대결을 벌일 인물로 드라마는 비담을 선택한 것이다. 

비담이란 캐릭터는 실존인물 비담과 진지왕과 도화녀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비형을 합성한 모델로 보인다. 실제로 삼국유사는 비형이란 인물에 대해 지금 드라마에서 비담이란 캐릭터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신비하면서도 괴팍한 인물이었다고 전한다. 비형이 진지왕이 폐위되고 유폐된 상태에서 출생한 비운의 인물이었다는 점도 역시 닮은 부분이다.  

그러나 아무튼, 비담의 출현은 드라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유신도 이제 더 이상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일 수 없게 되었다. 드라마의 마지막까지 자신과 겨룰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났으니 그도 이제 뭔가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변화의 암시를 비담과 더불어 등장한 문노가 우리에게 슬쩍 던져주었다. 

오늘 드라마에서 유신이 홧김에 도끼를 집어던지자 장작 패는 받침나무가 쩍하고 갈라진다. 그걸 본 문노가 놀라운 눈으로 유신의 손을 살피며 말한다. "자네는 스승도 없이 이 지경이 되도록 만들어 냈다니… 대단하군. 자네 혹시 누군가와 검술 대결을 해본 적이 있는가? (유신이 고개를 흔들자) 그렇다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군." 

비담은 문노라는 걸출한 스승을 만나 놀라운 무공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유신은 스승도 없이 오직 혼자의 힘으로 비담에 견줄 무공을 얻었던 것이다. 곧 덕만의 정체를 문노도 알게 될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유신에게 절정의 무공을 전수해 줄 스승을 만난다는 것 아니겠는가. 이리하여 우리는 보다 업그레이드된 유신의 새로운 포스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선덕여왕의 비밀병기 문노와 비담이 공개되었으니 이제 남은 건 춘추다. 김춘추는 유신과 더불어 선덕여왕의 한 팔이다. 유신이 무력을 대표한다면 춘추는 정치를 대표한다. 김춘추는 잘 생긴 외모와 타고난 달변으로 사람의 혼을 빼앗을 정도였다고 전한다. 그가 고구려와 왜를 거쳐 당나라에까지 외교행전을 펼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타고난 재주 덕이었다.  

비담의 출현을 반란에 비유한 괴담은―그것이 그저 배우들에 대한 비평의 의도였다 하더라도―매우 재미있는 발상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비담의 출현으로 반란은 시작된 것이다. 비담이 진지왕과 미실의 아들이란 설정부터가 반란이며, 덕만과는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운명이란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거기다 비담은 미실의 잔혹한 성격을 그대로 빼닮았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특히 미실이나 비담처럼 사람의 목숨을 자기 기분에 따라 어찌할 수 있는 성품의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들에겐 이루어야할 정의보다는 물보다 진한 피가 더 중할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백성들의 피울음 따위는 상관할 바가 아니다.

"백성들은 원래부터 그렇게 (억압과 고통 속에)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라고 말하는 미실과 고작 자기가 먹을 닭고기를 못 쓰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검을 휘둘러 살생극을 벌이는 비담, 이들 모자는 결국은 상봉하고야 말 운명이 아니겠는가. 바야흐로 양 진영의 전열이 정비되고 있다. 다음 주가 기대된다.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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