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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24 이요원이 창조할 선덕여왕 이미지는? by 파비 정부권 (3)

이요원을 처음 본 것은 <주유소 습격사건>에서였다. 그때 이요원은 매우 어리고 철없어 보였다. 당돌해보이기도 했던 그런 모습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 다음 본 것은 TV드라마였는데, <패션 70s>에서 그녀는 ‘더미’라는 이름의 남도의 섬마을에서 상경한 소녀였다. 청순함과 터프함이 믹스된 그런 캐릭터였다.


아마도 이런 캐릭터는 시골처녀의 전형일지도 모른다. 한없이 가냘프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그 속에 끈질긴 생명력을 감추고 있는 것이 땅을 딛고 살아온 시골처녀의 표상이 아닐까. 그래서 도시의 여자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대지와 같은 포용력을 그녀들은 갖고 있는 것이다. <패션 70s>에서 더미가 그랬다.

그리고 재작년이었던가?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그녀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가냘프고 강인하다. 평범한 간호사로 사춘기 같은 사랑과 소소한 삶의 아름다움에 빠져있던 신애가 광주에 진주한 중무장 군대에 맞선 결말을 알 수 없는 사투 속에서 비장하게 보여주던 강인함….
 

영화 '화려한 휴가'의 한 장면. 사진=다음영화


선덕여왕도 그런 이미지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다. 덕만공주는 궁궐이 아닌 사막에서 각지에서 몰려든 무역상들 속에 자란다. 그녀는 그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잠자리를 보살펴주면서 자연스럽게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배웠을 것이다. 숱한 여행자들의 고향 이야기와 경험담을 들으며 포부를 키웠을 것이다.


만약 덕만이 서라벌에서 금지옥엽으로 귀하게 자랐다면 서민들의 애환도 몰랐을 것이고, 그들과 한마음이 될 수도 없었을 것이고, 더욱이 대지와 같은 포용력은 더더욱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사람들 속에서, 서민들 속에서 자랐으므로 그들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았다. 아니 그들의 마음이 그녀의 마음이었다.


그 마음은 어린 김유신이 천명공주에게 말했던 바로 ‘진심’이다. “진심을 다하면 내가 변하고, 내가 변하면 사람들이 변하며, 그러면 결국 세상이 변한다!” 그 진심을 가장 잘 표현해낼 수 있는 것이 가냘프면서도 강인한 캐릭터다. 여기에 이요원이 가장 어울림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패션 70s>에서 고준희 역을 맡았던 김민정이라면 이 역이 어울렸을까?


그녀에겐 미안하지만, 화려한 캐릭터의 그녀는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천명공주 역의 박예진도 마찬가지다. 도회적 이미지의 김민정이나 박예진에게 풋풋한 시골냄새가 풍기는 덕만의 역할을 맡기기엔 분명 무리가 있다. 이요원이야말로 말똥냄새 풍기는 백성들의 고충을 가장 잘 알고 대변해줄 선덕여왕으로서 적격이 아닌가.


10회에서 보여준 이요원의 덕만은 뭇사람들의 그런 기대에 충분히 부응한 듯하다. 아역배우 남지현이 이요원에게 많은 부담을 준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요원을 걱정했지만, 10회에서 보여준 활약은 충분히 그런 불안을 불식시켜주었다. 남지현에서 이요원으로 넘어온 덕만은 어느 곳에서도 이질감을 찾기가 어려웠다.


내가 보기엔, 역시 남지현에 비해 이요원이 베테랑이므로 청순함과 터프함이 믹스된 카리스마를 서서히 구축하며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주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선덕여왕이 살았던 시대는 신라에겐 힘든 때였다. 북쪽에서는 연개소문이, 서쪽에서는 백제 무왕이 강성해진 세력으로 압박하던 위기의 시대였다.


진흥왕이 쌓아놓은 위업은 역으로 풍전등화의 위험에 신라를 노출시켰다. 시대를 극복할 사명이 주어진 선덕여왕에게 뛰어난 지혜와 담력도 필요했겠지만 무엇보다 백성들과 일체감을 형성하지 않고서는 나라를 위난으로부터 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그러한 점을 고려해 덕만을 사막과 백성들 속에 고군분투하도록 한 것은 아니었을까?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덕만처럼 백성들 속에서 백성들과 함께 고락을 같이하며 백성들의 마음을 다독여줄 가냘프면서도 강인한 카리스마를 간직한 지도자를 우리는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덕만처럼 다른 이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줄을 놓고 낭떠러지로 떨어질 용기를 가진 지도자를 우리는 본 일이 있는가? 그리고 미래에는 그런 지도자를 가질 수 있을까?  


물론 이제 시대가 바뀌어 지도자는 하늘이 내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스스로 만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덕여왕이 될 덕만의 캐릭터를 보면서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불만 때문이리라. 오늘 10회에서 미실과 설원공이 반대파의 싹을 미리 자를 심산으로 김서현과 김유신을 사지로 몰았다고 자축하고 있지만…


그것이 미래의 선덕여왕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었을 줄이야. 그래서 역사는 아이러니다. 다음 주가 기대된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