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2.24 김두관 지사님, 영화 한편 보러 오시죠? by 파비 정부권 (9)
  2. 2009.05.07 박쥐 보다가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by 파비 정부권 (2)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오래 전에 잠시 교도소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다행히 겨울에 입소(?)한 탓에 덜 힘들었다. 왜냐하면, 소위 혼거방이라 부르는 미결사동의 옥사는 매우 비좁았다. 만약 여름이었다면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곳에서 두어 달을 보내다 독거방으로 옮겼다.

아마도 기억에 17~8명이 함께 복닥이면서 살았던 것 같다. 내가 있던 방은 절도방이었다. 이른바 도둑놈들이 득실거리는 방이다. 하루는 이들 도둑놈들 간에 시비가 붙었다. 한국인이 평균적으로 1년에 영화를 몇 편이나 보느냐는 것이었다. 시비가 붙은 두 사람 중 하나는 쓰리꾼이요, 하나는 담치기였다.

쓰리꾼은 20편을 본다고 했다. 그러자 담치기는 "천만에, 30편 이상 본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팽팽했다. 쓰리꾼은 주로 낮에 일을 한다. 이른바 소매치기다. 담치기는 밤에 일을 한다. 이른바 밤손님이다. 일하는 시간대가 다른 만큼 한국인이 얼마나 영화를 보는지 통계에 대한 감도 확실히 달랐다.

결론이 나지 않자 혼거방의 나이 지긋한 어른(이분이 방의 책임자로서 봉사원이라고 불렀다)이 제안을 했다. "야야, 그러지 말고 이런 문제는 우리 시국한테 판결을 구하도록 하자. 아무래도 우리들 도둑놈들하고는 다르니까 시국이 그렇다고 하면 그게 맞는 거다."

그들은 보통 우리를 시국 혹은 독립군이라고 불렀다. 결국 내가 재판을 맡게 되었는데 나는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 "한국 사람들은 보통 1년에 영화를 한 10편 정도밖에 보지 않을 겁니다." 아무튼 판결은 내려졌고 모두들 수긍했다. 하하, 10편? 근 2년이나 수배생활을 하던 나도 실은 도둑놈들처럼 극장이 내 집 같았으니…, ㅋ~

어제 <조용한 남자> 영화 시사회에 다녀왔다. 아니 다녀온 것이 아니라 내가 주최자였다. <경남블로그공동체>와 <100인닷컴>이 <경남영화협회>의 요청으로 개최한 시사회였던 것이다. 나는 <경블공>의 총무요 <100인닷컴>의 편집장으로서 행사를 기획하고 주관해야 했다. 

앞에 별로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 그러나 내겐 오래도록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아있는 이야기를 한 이유는 내가 영화에 대해 완전 백지는 아니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다. 나는 그래도 꽤나 영화를 본다고 본 사람이고, 더욱이 지금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도 드라마 리뷰가 주 소재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행사는 내게 나름대로 의미있는 행사였던 것이다. 물론 영화를 만든 김재한 감독이나 제작 총괄을 맡았던 설미정 씨나 <경남영화협회> 사무국장인 박재현 감독 같은 분들은 내가 매우 고마웠을 수도 있다. (아닌가? ㅎㅎ) 어쨌든 나도 영화계에 뭔가 기여를 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는 내내 슬펐다. 단돈 천오백만원으로 만든 영화 안에는 조용한 남자의 예술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이 있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연극을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져야만 하는 고달픔. 무엇보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고독. 담배값도 제대로 벌지 못하는 열악한 경제적 환경. 

영화가 끝나고 극장 바닥에 퍼질러 앉아(영화 속의 주인공들처럼) 뒷풀이로 술을 마시면서 인사를 돌리게 되었는데,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만약 자기 남편이 저렇게 돈도 못 벌어오고 한다면 아내 입장에서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 대해서도 의견들을 말씀해보시지요."  

그러자 바로 경남아고라의 하얀리본님이 일어나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그건 그렇지 않죠. 주인공들은 보아하니 서로 상대에 대해 잘 알고 인정과 이해를 전제로 부부가 된 것 같네요.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돈을 벌고 잘 살아야 하는 건 아니죠. 저런, 힘들지만 예술을 지키는 사람도 있어야 세상이 밝아지는 거 아닐까요?"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일어나서 "가장 현실적인 질문에 가장 이상적인 훌륭한 답이네요" 하고 맞장구를 쳤는데 여기다 정확하게 옮겼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때 나는 이미 맥주에 소주를 타서 양껏 마셨으므로 상당히 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 한가지만은 확실하게 떠올랐다.  

'그래, 우리나라 사람들 영화를 좀 많이 봐야 되는 거야. 특히 이렇게 지역에서 만드는 독립영화를 많이 봐(줘)야 되는 거야. 그리고 창원시나 경상남도도 관심 좀 많이 가져줘야 되는 거야. 이은상이니 이원수니 친일작가들 기념관에 세금 퍼부을 생각 그만 하고 이런 데다 돈 좀 써야 되는 거야.'

그리고 나아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좀 관심을 가져주면 어떨까? 내가 볼 때 박완수 창원시장이 이런 미천한(그들에겐 분명히 그럴 것이다) 곳에 관심 가져줄 리는 만무하고, 아무래도 도민의 염원으로 한나라당 일당독재를 꺾은 김두관 지사야 다르지 않을까?'

............ 영화를 보고난 후 감독, 스텝, 출연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워낭소리>도 이명박 대통령이 봤기 때문에 흥행에 성공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사실 나도 <워낭소리> 봤지만 지루하기로 말하면야 <조용한 남자> 뺨치는 영화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워낭소리>를 군말 없이 보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것일까? 

한국사람들도 이제 지루한 영화를 볼 줄 아는 정도로 문화적 소양이 높아진 것이다. 자극적인 할리우드식 양념으로 범벅이 된 영화만 영화로 치부하던 우리나라 사람들도 수준이 많이 향상된 것이다. 그래서 감히 말 나온 김에 김두관 지사님께 부탁 한 번 드려볼까 한다.

"김두관 지사님. 영화 한 편 봐주십시오. 제목이 <조용한 남자>입니다. 3월 3일 창원 메가박스에서 관객시사회 합니다. 중요한 건 공짭니다. 보좐관들과 함께 영화 한 번 보러 오십시오. 잠시 휴식한다 생각하셔도 되겠습니다. 피곤하시면 좀 조셔도 나무랄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깜깜해서 안 보입니다. 하하."

김두관 지사가 대단히 바쁘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경남의 문화예술 진흥을 위해 조금만 신경을 나누어 주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다. 그러면 우수한 인력들이 집중되어 있다는 경남도청 공무원들도 지역 영화예술에 관심을 많이 가질 것이고, 나아가 도민들도…, 그러면 경남은 이제 대한민국의 문화예술 1번지? ㅎㅎ

그건 그렇고, 한국인들은 1년에 영화를 몇 편이나 볼까? 책은 한 달에 1권도 읽지 않는다는 어떤 통계자료를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어쩌면 한국인들은 너무 불쌍하다. 책이든 영화든 문화를 즐기지도 못할 뿐 아니라 아예 노는 것 자체를 모르니 말이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영화 《박쥐》 관전기


오늘 영화 박쥐를 보았다. 워낙 논란의 중심에 있는 영화라 꼭 한번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진작 하고 있었다. 또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이 찬욱이란 사실도 이 영화를 꼭 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박찬욱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이다. 아마 나보다 나이 많은 선배들이라면 임권택을 최고로 꼽는 분이 많겠지만, 만약 국민투표를 한다면 아무래도 박찬욱이 뽑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런 투표가 전체 국민의 기호를 완벽하게 반영하는 것이 절대 아니란 것은 누구라도 알 것이다. 투표란 원래 인간이 제거하기 힘든 원초적인 함정을 갖고 있는 법이니까. 아마 어쩌면 박찬욱보다 봉준호를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어떻든 박찬욱은 이시대 최고의 감독임에 틀림없다. 그가 영화를 만들겠다면 벌써 칸을 비롯해 고집 센 할리우드도 미리 움직인다고 하니 그의 실력은 이미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는 증거다.

 

그래서 나도 박찬욱의 영화를 기다렸다. 나는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고 난 이후 그에게 반했으며, 올드보이에서 완벽한 그의 팬이 되었다. 그의 복수는 처절하고 잔인했지만 아름다웠다. 그는 느와르에 서정의 미학을 가미하는 기술을 가진 것 같았다그러나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그리고 친절한 금자씨, 이 복수시리즈 3부작이 완결되고 난 후 TV에 얼굴을 내민 박찬욱은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는 복수 이야긴 절대 다루고 싶지 않습니다. 사실은 만드는 나도 너무 힘들었어요. 이제 아름다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어요. 

나는 박찬욱이 서정적인 멜로물을 만들더라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JSA와 올드보이에서 그의 카메라가 얼마나 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영상을 담아내는지를 보았었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그가 그런 영화를 만들기를 기대했다그러나 이번에도 그의 영화는 그가 만들어낸 장르를 벗어나지 못했다. 제목부터 박쥐. 박쥐는 이쪽에도 저쪽에도 끼지 못하는 이방인 같은 존재다. 그러면서도 박쥐의 세계는 밤이다

이 박쥐는 고뇌하는 뱀파이어였다.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 한 친구로부터 가급적이면 안 보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받았었다. 그 친구는 차라리 그 영화보다 똥파리를 보라고 권했다. 아마 이 영화를 보는 것이 내게는 대단히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걱정과 함께그러나 나는 결국 오늘 박쥐를 만났다. 친구의 조언을 받아들여 똥파리를 볼까 하고도 생각했지만, 애석하게도 우리 동네 영화관 시간표에 똥파리는 없었다. 하긴 똥파리가 독립영화라고 했으니 롯데시네마 같은 개봉관에 걸릴 리가 없었겠지만.

 

자료사진 : 다음영화

영화는 3시 30 시작되었다. 일부러 낮 시간을 택했다. 무서운 영화니까. 영화관엔 40여명 정도의 사람들이 나와 함께 대기하고 있었다. 낮 시간대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긴 처음인 것 같다박찬욱에 대한 기대가 역시 영화에 대한 부담보다는 앞섰던 모양이다. 친구의 조언을 나와 함께한 관객들도 분명히 느끼고 알고 있었을 터이다. 여자들이 더 많았다. 임신한 여자도 한 분 있었는데, 나는 그녀가 심히 걱정되었지만 그녀는 당당했다.

 

나중에 영화가 끝나고 난 후에 그녀의 표정을 몰래 살펴보았지만 그녀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이왕 얘기가 나왔으니 영화가 끝난 이후의 표정부터 먼저 살펴보자. 영화 중간쯤 되었을 때, 도저히 더 이상 계속 보기가 어려웠던지 한 쌍이 먼저 일어났다그러니까 태주가 상현의 피를 받아먹고 뱀파이어가 되기 직전이었는데 그들은 중년의 부부인 듯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려고 하는 참이었는데 일어서는 그들을 보며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더 이상 잔혹한 장면을 대하는 게 고통스러웠겠지.

 

상현과 태주가 꼭 껴안은 채 저 멀리 수평선을 타고 넘어 들어오는 햇살에 시커멓게 부서지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스크린은 모든 빛을 잃고 엔딩 자막과 음악이 흐른다. 영화가 끝났지만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장내가 환한 불빛으로 밝아졌지만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박수를 치는 것도 아니고. 아무 말도 없이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누가 먼저 일어나길 기다리는 것일까. 영화가 너무 충격적이었나. 아니면 이 난해한 영화의 결말에 뭔가 더 남은 것이 있을까 기다리는 것일까.

 

성질 급한 내가 먼저 일어섰다. 통로를 가로질러 출구를 나설 때가지도 조용히 앉아있던 사람들은 그제서야 하나 둘 일어섰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끼리 귓속말로 이 난해한 영화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는 눈치였다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 모든 것이 박찬욱의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미 박찬욱은 거장이 되었으며, 그 거장의 작품에는 무언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심오한 수수께끼 같은 것이 숨어있기 마련이고, 만약 그것을 찾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저 내 탓이리라.

 

아마도 최소한 내가 본 몇몇의 사람들은 상당한 시간을 궁금증을 캐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그 시간들이 그들에겐 행복할 수도 있겠다. 피카소의 추상화를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그것을 본 것만으로도 우리의 가슴은 감동으로 넘쳐날 수도 있다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박찬욱의 영화들이 그렇게 난해한 영화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아니 그의 스토리 공식은 오히려 매우 단순하게 생각되었었다. 과거의 어느 시점에 일어난 하나의 사건으로부터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따라잡는 것이 그의 카메라가 잘 쓰는 방법이었다.
 

자료사진 : 다음영화

그리고 그의 영화에는 그리 많은 인물도 등장하지 않는데다가 공간도 거의 특정되어있다. 특정한 공간에 캐릭터가 분명한 인물들을 배치해서 우리의 이해가 복잡하게 되는 것을 막아주는 친절함이 그의 영화에는 있었다거기에다 보너스로 아름다운 영상, 그 영상을 더 아름답게 해주는 음악, 그것이 박찬욱의 느와르고 미학이라고 생각했었다. 잔혹한 장면마저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그만의 찍는 기술을 나는 믿었다.

 

그래서 이 부담스러울 것 같은 영화를, 친구로부터 이미 안 보는 게 어떠냐고 조언 받은 나였지만 끝내 이 영화를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그 믿음은 나에게 등을 돌렸다. 영화는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우리를 긴장 속에 밀어 넣었지만 끝까지 전편들에서 보았던 미학 같은 것은 보여주지 않았다이미 소문만으로도 우리는 불이 꺼지기 전부터 충분히 긴장해있었다. 그러나 내 경험에 의하면 그것은 곧 박찬욱 특유의 시리도록 아름다운 영상에 녹아들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완전히 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잔혹.

 

가끔 중간에 송강호와 김옥빈의 코믹제스처가 있긴 했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질 못한 것 같다. 박찬욱은 복수시리즈 3부작을 통해 충분히 그의 잔혹한 영상을 과시했지만, 박쥐는 그것들의 총결산 판이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박찬욱 특유의 미학이 빠졌다는 것아니 어쩌면, 너무 긴장한 나머지 보고도 느끼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처음 영화가 시작될 때, 시작한 것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하얀 스크린 속에서 어떤 윤곽이 서서히 뚜렷해짐을 느꼈는데, 잠시 후 나뭇가지와 잎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그림자가 그려진 하얀 벽 속에 또 다른 하얀 문이 열리며 송강호가 나타났다.

 

아름다운 영상이었다. 나는 만족했다. 그래 이게 바로 박찬욱의 특기지. 그러나 그 이후로 나는 두 시간 동안 하늘로 영화관의 천정에 올라 붙을 것 같은 가슴을 내리누르며 긴장을 죽여야 했다. 영화가 끝난 지가 두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가슴은 어깨에 붙은 듯 답답하다어쩌면 나와 함께 영화를 본 이름 모를 다른 관객들도 그래서 선뜻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영화가 끝난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었던 건 아닐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김옥빈의 상상을 초월하는 노출과 영화관을 온통 격정의 숨소리로 뒤덮었던 섹스신, 송강호의 돌연한 겁탈행각에서 보여준 축 늘어진 자지도 이 지독스러운 긴장감을 넘어서지 못했다. 어쩌면 그런 것들은 의도된 긴장을 설명하는 완벽한 소품이었을까.
아마 우리가 일반적인 영화에서 저토록 격정적인 장면을 마주했다면 함께 흥분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비뇨기과나 산부인과에 들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아주 오래도록, 정말 오래도록 치루어지는 격정적인 섹스신도 두려운 마음으로 보았다. 그리고 돌연히 송강호(상현)가 신도를 겁탈하는 신에서 노출된, 아주 잠깐이었지만 축 늘어진 맥 빠진 송강호의 자지를 통해 이제 그 두려움도 막이 내리는구나 하는 걸 직감했다. 그래. 영화 곳곳에 이런 장치들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걸 영화가 끝난 이제서야 이 글을 쓰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토록 이 영화는 두렵고 거북스러운 영화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친구의 조언을 듣지 않은 걸 후회했다.

 

그러나 또 한편 생각해보면 이토록 가슴이 어깨를 뚫고 날아오를 것 같은 두려움과 긴장으로 두 시간을 떨게 만든 것은 박찬욱 감독이 바란 진정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는 지금 성공했다고 축배를 들고 있는 건 아닐까그러나 그런 것은 잘 모르겠다. 어떻든 이 영화는 무섭지는 않지만 매우 두려운 영화다. 그래서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영화다. 그래서 나처럼 올드보이에서 느꼈던 잔혹함 위에 칠해진 순정과 서정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자료사진 : 다음영화

그러나 이러한 나의 감상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매우 독립적인 영화라는 인상을 주었다. 독립영화의 의미가 포퓰리즘 또는 상업주의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면 박쥐는 독립영화보다 더 독립영화 같은 영화다. 마치 그는 대중의 눈치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이 이 영화를 만든 것처럼 보인다그런 점에서 올해 최단기간에 100만 관중을 돌파하는 신기록을 세웠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박찬욱의 명성이란 어드밴티지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 영화는 당분간 흥행 신기록에 관한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한국영화의 부활을 알릴 신호탄 역할에 충실하게 될 듯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박찬욱 감독에게 부탁하고 싶다. 이전에 그가 복수시리즈 3부작을 완결하고 다시는 복수 영화를 만들지 않겠으며 서정적인 멜로드라마를 만들고 싶다고 했던 약속을 기억하라고 말이다. 물론 이런 약속을 지켜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그가 만들어낸 시리도록 아름다운 영상을 보고 싶었으므로. 

 

하여간 나는 아직도 가슴이 벌렁거리고 두려움에 어깨까지 올라 붙었던 가슴이 내려올 줄을 모르고 있다. 아직도 너무 두렵다.     파비

<감상에 다는 의견> 그럼에도 눈치채신 분은 이미 아시겠지만, 이 작품은 매우 잘 만든 작품이란 것이 나의 평가다. 그리고 김옥빈이 이 작품을 택한 것은 실수였다고 말한 어느 분의 평론을 읽었지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김옥빈이 지독하게 파격적인 태주의 캐릭터로 인해 이미지 손상을 입을 것이라고 했지만, 모든 탑 클라스의 여배우들이 고사했다는 이 역할을 그녀는 매우 훌륭하게 수행한 것 같다. 그녀는 매우 매력적이었다. 송강호의 자지 노출과 김옥빈의 담대한 노출을 마케팅 소재로 삼은 것을 비판하는 것도 별로 이유없다. 왜냐하면 제작자들은 충분히 그럴 권리가 있고, 이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들이 그것만 보러 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많은 리뷰를 통해 이미 그 장면이 이 영화의 작은 소품, 그러나 꼭 필요한 소품이란 것을 충분히 알고 보러 오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이 영화가 아직도 두렵고 거북스럽다. 친구의 조언이 옳았다. 내겐 확실히 부담스러웠다. 올드보이는 그 아름다운 영상에 취해 대여섯 번을 보았지만, 이건 다시 볼 용기가 잘 나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영화는 매우 훌륭했고 역시 박찬욱이 아니면 만들지 못할 작품인 것은 맞다. (끝)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