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거야 로시난테'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3.03 인터넷을 너무 믿지는 마세요! by 파비 정부권 (2)
  2. 2009.02.14 아들들은 모두 배신자란 사실을 봄바람에 느끼다 by 파비 정부권 (5)

지난주에 아이들 봄방학을 맞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계획은 문경새재를 거쳐 수안보온천에 들른 다음 월악산 송계계곡에 갔다가 중원미륵사지를 답사하고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문경새재는 정말 좋은 곳이었습니다. 아이들도 아내도 모두 좋아했습니다. 마침 날씨도 최상이었고요.

새재 1관문 주변에는 태조왕건 세트장과 일지매 촬영장, 자연생태공원 등이 있어 볼거리도 되고 아이들 교육에도 좋습니다. 새재 길을 걷는 내내 온갖 전설과 조상들의 숨결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임진왜란과 일제시대의 상처도 느낄 수 있습니다. 3관문을 지나 충주 고사리로 내려서면 월악산 국립공원 중에서도 그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신선봉이 열두 폭 병풍바위를 벌려 반겨줍니다. 

인터넷에서 찾은 우리가 묵었던 펜션


고사리에서 하루에 네 번밖에 다니지 않는 버스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트럭 짐칸에 실려 수안보까지 내려가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즐거웠습니다.(고장 난 시내버스의 기사님께서 다음 차인 막차도 올지 안 올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실 때는 해프닝 정도가 아니었지만…) 수안보 온천의 따뜻한 온기가 모든 피로와 함께 불평마저 씻어주었습니다. 

수안보에서 온천욕을 하고 시내버스를 타고 송계계곡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는 미리 예약해놓은 펜션이 있습니다. 인터넷을 뒤져서 예약을 했는데 이용요금도 온라인 계좌로 절반을 지불했습니다. 그곳을 정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전거 때문이었습니다. 그 펜션의 홈페이지에선 자전거를 10여대 이상 비치해놓고 무료로 빌려준다고 했습니다. 

우리 아들 꿈이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일주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커서도 그 꿈을 간직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자전거를 무척 좋아하며 매일 자전거를 타고 놉니다. 자전거를 타고 뒷산 만날재에도 자주 올라갑니다. 얼마전, 「달리는거야 로시난테」란 책을 사서 내가 다 읽고 난 다음 녀석에게 주었는데, 그 책을 하루밤새 다 읽어버렸습니다. 

                

              펜션 홈페이지 설명에 의하면, 미륵사지(사진 윗줄 첫번째)까지 3km, 문경새재 관문(윗줄 두 번째)까지
              2km, 덕주사 마애불(윗줄 세번째)까지 2km라고 소개되어 있었지만, 글쎄다. 미륵사지를 지나야 관문이
              나오는데…, 이제 이 정보도 미덥잖다.
   

그리고 말하더군요. “아빠, 나도 의대 갈래.” (이거 뜻하지 않은 수확입니다. 실현가능성이 희박할지라도 듣기 좋은 소리임에 틀림없습니다. 부모란 다들 속물이죠.) 녀석이 그리 말한 데는 그 책의 저자가 의대생으로서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일주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저자(양성관)는 지금 산청의 생비량 보건소장으로 군복무 중입니다. 녀석에겐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일주한 이야기를 책으로 쓴 저자도 마음에 들었지만, 군대 가는 대신에 보건소 소장으로 근무하는 저자가 더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우리 아이는 군대를 무척 두려워하거든요. 총 쏘고 훈련받고 하는 게 무섭답니다.(내가 느끼기론 녀석은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도 어렴풋이 알고 있는 거 같습니다.)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무서운 걸 알다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나도 아들이 군대 가는 걸 그리 반기는 편은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안 갔으면 하지요.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의 두 아들도 군대 안 갔지 않습니까? 부모 마음은 다 똑같은 것이지요. 

홈페이지의 이 사진은 연출이었나?


하여간 자전거를 원 없이 타게 해준다는 그 펜션으로 우리는 시내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버스를 타기 전에 한 번 더 전화를 해서 확인을 했습니다.

“자전거는 틀림없이 무료로 빌려주시는 거지요? 우린 두 대가 필요한데요.”
“그러믄요. 얼마든지 마음대로 타실 수 있어요.”

버스가 지릅재(계립령이라고도 하는데, 미륵리에서 관음리로 넘어가는 하늘재가 계립령이란 설이 더 유력해 보인다.)를 넘어서자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에 우리는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실로 장관이었습니다. 설악산이 하늘을 찌를 듯한 기암괴석으로 그 이름이 높다한다면, 월악산의 암봉들은 부드럽고 매끈한 암릉의 곡선들이 포근하게 다가오는 산입니다. 올록볼록한 암봉들이 마치 중국의 계림(실제 보지는 못했지만)을 보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아들 녀석은 아름다운 경치보다는 자전거를 탈 생각에 더 마음이 바쁩니다. 하긴 초등학교 5학년짜리에게 아름다운 산천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드디어 시내버스가 충북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 도착했습니다. 우리가 묵을 펜션은 조금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조금 걷다보니 월악산 영봉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팻말도 보입니다. 펜션은 지척에 있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녀석은 자전거부터 찾았습니다. 그러나 이내 우리는 참담한 실망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마구 뒤엉켜 버려진 자전거. 브레이크는 모두 끊어지고 핸들은 안 돌아가고 휠과 타이어도 따로 놀았다.


자전거는 분명 여러 대가 있었지만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탈만한 자전거는 한 대도 없었습니다. 이건 완전히 고물상에 쳐 박힌 자전거보다 못합니다. 아, 이럴 수가…, 아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젊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아들 녀석은 그저 실망하지 않고 자전거를 하나 하나 꺼내어 확인해보더니 기어이 한 대를 골라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아빠, 이거는 조금만 손보면 탈 수 있겠다.”

그래도 한 대는 건졌으니 불행 중 다행입니다. 대충 손을 보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브레이크는 불안합니다. 아들에게 조심해서 타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녀석은 “그건 걱정마라. 내가 자전거를 얼마나 잘 타는데….” 하면서 신나게 자전거를 끌고 나갔습니다. 본래 계획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저녁을 먹기 전에 덕주사 마애불까지 다녀오는 것이었습니다. 하긴 저런 자전거로는 두 대가 있다 한들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걸 끌고 나섰다간 거의 사망이지.’ 

그래도 아이들이 자전거 타고 놀기에는 좋은 환경이었다.


문경새재의 상쾌한 아침공기와 아름다운 새재 길과 고사리 신선봉의 빼어난 자태, 월악산의 수려한 암봉들의 감동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갑자기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습니다. 펜션지기 할머니가 소개해주는 식당을 찾아 털레털레 밤길을 내려갔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예약할 때 전화를 받던 젊은 펜션지기는 할머니의 아들로서 이곳에는 없는 거 같았습니다. 문명의 편리함이란…. 그러나 그 편리함이 못내 불쾌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자전거가 탐이 나 예까지 온 게 너무나 아까워 밤새 한 대의 자전거를 돌아가면서 타고 또 타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또 탔습니다. 그저 본전 생각이 나서 말입니다.

그렇게 자꾸만 자전거를 타다보니 이곳이 자전거 타기에는 참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로에도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데다가 펜션 주변에는 잘 닦여진 단지 내 도로가 있어서 자전거 타기에는 그만이었습니다.  자전거만 고물이 아니었다면, 약속대로 얼마든지 마음대로 자전거를 탈 수만 있었다면 말입니다. 

어쨌거나 이번 여행이 아주 수확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행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철저한 사전조사가 필요하다는 것, 인터넷으로 여행지를 검색할 땐 여러 군데를 비교해가며 주의를 기울일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인터넷이 유용하긴 하지만 너무 맹신하지는 말자는 것이 이번에 얻은 교훈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인터넷, 너무 믿지는 마세요!                                                
          2009. 3. 2.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아, 봄이다. 창문을 여니 봄내음이 확 코끝을 스친다. 어제는 비바람이 용천을 부리더니 오늘 이렇게 맑은 날씨를 선물하려고 그랬나보다.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우리 집은 산동네다. 해안가 산비탈에 도시가 형성된 마산은 모든 마을이 산동네라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마산을 차지하고 난 이후 그들의 방식대로 바다는 매립되었고 이제 평지도 꽤 넓어졌다.

일본인들이 물러가고 난 이후에도 매립의 역사는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박정희가 집권하던 시절에는 바다를 메우는 간척을 영토 확장 사업쯤으로 생각했었다. 우리는 국민학교(요즘은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바다가 어떻게 메워지고 있으며 지도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배웠고 시험도 치렀다. 어느 선생님은 간척사업을 (거의 찬양에 가깝게) 칭찬하면서 박통은 광개토대왕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마산만이 시원하다. 멀리 창원도 보이고, 두산중공업도 보인다. 아들놈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마산의 역사는 매립의 역사
수년 전에 경남도민일보가 기획으로 연재했던 기사가 떠오른다. 아마 1976년이던가? 기억이 희미하다. 당시 마산시청을 새로 짓는 공사를 한다고 땅을 파니 그곳에서 조개껍데기가 무더기로 나왔다. 그래서 조사를 해보았더니 그곳이 1930년대까지만 해도 바다였다는 것이다. 바다라도 보통 바다가 아닌 아주 특별한 바다 말이다. 바로 마산시청자리가 월포해수욕장이 있었던 자리였다는 것이다.

월포해수욕장은 일제시대 때만 하더라도 대단한 명성을 자랑하던 명소였단다. 인천의 송도와 더불어 조선팔도에 쌍벽을 이루는 해수욕장이었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다. 이 해수욕장으로 인해 경성에서 마산까지 직통 증기기관차가 다녔다고 할 정도니 가히 그 명성을 알만하다. 하긴 산 위에서 가만이 내려다보니 둥근 항아리처럼 생긴 마산만 한쪽에 자리한 모양이 해수욕장의 입지로서 그만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해수욕장을 따라서 길게 송림이 있었다고 하니 그 운치가 오죽했으랴.

나는 사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이 월영이란 사실에 별로 믿음이 가지 않았다. 누가 월영이라고 이름을 지었단 말인가? 월영이란 달그림자. 이름 한 번 대단하다. 이 퀴퀴한 냄새나는 마산만에 도대체 달그림자가 가당키나 한가. 그런데 그 이름을 지었다는 분이 다름 아닌 고운 최치원 선생. 아, 이분이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신선 같은 사람이 아니던가? 그의 드높은 학식은 이 좁은 땅을 넘어 당나라에까지 떨쳤다.

그러나 인걸이 시대를 잘못 만나면 할 수 있는 일은 방랑뿐이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최치원을 신선으로 기억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중환도 권력에서 밀려나 20여년의 방랑 끝에 택리지를 썼다. 정약용은 맏형 정약종이 천주학쟁이(천주교)의 괴수로 지목돼 한강에서 목이 잘리었으며, 또 다른 형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를 가 그곳에서 죽었다. 그 자신도 18년 유형의 세월을 보냈는데, 그가 권력의 품 안에서 달콤한 나날을 보냈다면 우리는 목민심서와 흠흠신서, 경세유표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만날고개에 얽힌 전설이 돌에 새겨져 있다. 읽어보면 눈물 난다. 참말로 옛날엔 저리 살았나.

따스한 봄볕 아래 배드민턴을 즐기고 있는 부부가 부럽다.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월영대의 전설이 어린 마산, 그러나 이제 달그림자 대신 쓰레기만…
이렇든 저렇든 나는 그 고매하신 최치원 선생이 어째서 마산의 이 시끄러운 도심 한복판에 월영대를 짓고 시가를 읊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답은 매립에서 나왔다. 최치원이 감동해서 3년을 머물렀다는 월영대. 그 월영대가 바라보던 바다는 매립되어 이제 건물이 하늘을 찌르고 차들이 매연을 뿜으며 달린다. 달이 그림자를 드리우던 아름다운 밤바다는 이제 휘황한 네온사인과 젊은 남녀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어느 취객이 웩웩거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소리들로 가득 찬다.

어제 서점에서 책 한 권을 샀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다. “마산은 퇴근시간이면 항상 붐비는 고속도로와 국도, 낡은 건물, 구불구불한 도로, 그리고 오염된 바다로 이제는 그 초라함을 감출 수가 없다. ……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는 마산 앞바다가 현재 마산의 실상이다. 쇠퇴해가는 도시에 대한 아쉬움과 마산 시내의 도로에 대한 불평을 달고 마산을 가로질러 달린다.”

이런 괘씸한 녀석이 있나. 이 책의 저자는 이제 겨우 스물여섯이다. 대학졸업 기념으로 전국을 일주하고 있단다. ‘로시난테’라고 명명한 자전거를 타고서. 그렇다면 녀석은 틀림없는 돈키호테일 터. 그러나 녀석의 말은 하나 틀린 데가 없다. 책이름은 <『달리는 거야 로시난테』글/사진 양성관, 즐거운상상>, 문장이나 구성이 신선하다. 한마디로 좋은 책이었다. 나는 원래 서점에서 너댓시간씩 죽치며 공짜로 책 읽기를 즐기는 데 이 책은 너무 좋아 직접 돈을 주고 샀다. 내가 다 읽고 아들에게 물려 주려고….

사실 마산은 도로도 엉망이고 가로수도 별로 없고 공원도 없다. 젊은 부부가 아이 키우기에 가장 부적합한 도시가 마산이다. 노인들에게는 편리한 구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단선에 가까운 교통망하며 인근에 어시장을 비롯한 재래시장이 가까이 있으니 노인들이 살기에는 편하다. 그러나 젊은이들이라면 이런 곳에서 별로 살고 싶지 않을 터이다.

지금 마산은 매립이 한창이다. 그리고 그곳에다 공장을 유치한단다. 그러면 마산의 인구가 늘고 상권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요즘처럼 교통이 발달하고 자가용이 생필품이 된 시대에 STX가 수정만에 들어오면 젊은 부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마산에 정착하고 창동 상권이 살아날까? 몇 년 지나보면 자연히 알 일이다.

차이나 최가 뽑는 옛날 손짜장은 정말 맛있다. 한 번 가 보시길. 만날재에 올라 마산만도 감상하시고.

그래도 만날재 공원이 있어 마산만은 아직 푸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산을 오른다. 겨울이 바로 엊그제, 너무 무리하지 말자. 오늘은 그저 만날고개 꼭대기까지만 올라가 봄바람을 마음껏 쐬기로 했다. 만날고개 입구에 ‘만날재 옛날 손짜장’ 집이 있다. 최점구 씨가 하는 가게다. 그의 별명은 ‘차이나 최’다. 그에게 딱 어울리는 별호다.

보신 분은 수긍하겠지만, 그는 꼭 무술영화에 나오는 검객(또는 권객)처럼 생겼다. 주먹도 엄청 큰 게 진짜 강호에 태어났더라면 한 가닥 했을 것처럼 보인다. 거기서 일단 요기부터 했다. 아들은 짜장면, 나는 짬뽕. 계산을 하고 다시 산을 오른다.

마산 앞바다가 가슴을 후련하게 쓸어준다. 아들녀석이 돝섬을 바라보며 말한다. “아빠, 요즘은 돝섬에 사람이 아무도 안 가나봐.” 지난 가을 국화축제 때 녀석을 데리고 돝섬에 갔었다. “어떻게 아는데?” “봐라. 배가 안 다니잖아. 배가 안 가면 사람이 어떻게 가는데?” ‘음, 역시 젊은 놈이라 관찰력이 나보다 뛰어나군.’

그러나 어떻든 정말 시원하다. 마산에도 이렇게 시원한 공원이 있다. 나는 예의 그 돈키호테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탁 트인 호수 같은 바다를 조망하며 등산까지 즐길 수 있는 이런 공원이 세상에 그리 흔한 줄 아느냐? 보아라. 예서 보니 마산 바다가 얼마나 푸르고, 봄바람은 또 얼마나 상큼하단 말이냐.”

만날재 공원 주변에 심어놓은 자그마한 나무들이 불쌍해보였다. 저놈들이 탈 없이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렇더라도 저것들이 훌쩍 커서 아름드리 나무가 되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 때쯤이면 나는 백발을 날리며 여기 기어오르는 것조차 힘들어 할 테지. 그리 생각하니 괜히 또 짜증이 난다. ‘대체 마산의 조상님들은 지금껏 무얼 하셨단 말인가.’

하긴 못난 놈이 조상 탓이다. 가수 이용 생각이 난다. 그가 부른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었다.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을지로에는 감나무를 심자고 했던가, 배나무를 심자고 했던가? 하여간 나무를 많이 심자는 건 좋은 일이다. 아직은 앙상한 뼈대가 너무나 초라하고 불쌍해 보이는 이 애처로운 나무들도 머잖아 사람들의 훌륭한 휴식처로 사랑받게 되겠지.

만날공원 내에 주막집도 있다. 공원으로 조성되면서 허름하던 옛집을 신축한 모양이다.

새로 지은 주막 옆에 오래된 옛 건물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공원 안에 만들어놓은 자리에서 한참을 쉬다가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서려니 불룩한 배가 장히 부담스럽다. “아, 이거 나도 배가 꽤 나왔는데. 운동을 너무 안 했나?” 그러자 옆에서 아들 녀석이 응수한다. “아빠. 나는 운동을 너무 많이 해서 배에 왕(王)자가 새겨졌다.” 그러고 보니 녀석의 배에는 왕자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아들들은 모두 배신자다
너무나 바싹 말라 불쌍해 보이는 녀석이 언젠가 자기 배를 내어 보이며 왕자를 살펴보라고 했던 적이 있다. 자세히 보니 녀석의 배에 새겨진 것이 왕자 같기도 했고, 또는 너무 말라 뼈대가 드러나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하여간 살찌지 않는 체질은 실로 복 받은 일이라는 데 둘은 동의했었다.

그러나 방심하지 마라, 아들아. 이 아빠도 어릴 때 별명이 자그마치 ‘며르치’였단다. 그러나 이제 80Kg에서 1~3Kg이 들락거리는 ‘살찐 며르치’가 되었단다. 오늘에 자만하지 말고 항상 내일을 염려하며 자신을 갈고 닦기에 게으름이 없어야한단다. 그리해도 겨우 자기를 보존하는 데 만족해야 하는 게 인생이란 것이지.

그런데 녀석이 안 보인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한참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아빠, 나 먼저 내려갈게.” 하며 내려갔었지. 나는 아래쪽 공연무대가 있는 곳에서 기다리겠다는 소리로 알아듣고 그러라고 했었다. 전화를 걸었다. “야, 너 지금 어디냐?” “아빠, 나 지금 중앙캐스빌에 와 있는데. 먼저 내려간다고 했잖아. 친구랑 좀 놀다 갈게.”

중앙캐스빌은 월포초등학교에 함께 다니는 제 친구 녀석의 집이다. 아, 이럴 수가, 아들 녀석이 나를 배신했다. 터덜거리며 혼자 내려오는 길이 외롭다. 화도 난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이것도 다 운명이다. 결국 아들들이란 모두 배신자다. 나도 배신자가 아니던가?

그래, 배신자여. 너는 네 갈 길로 떠나라. 나도 내 갈 길로 가련다. 아들은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는 딸내미를 데리고 풍물 연습하러간다고(또는 구경) 갔다. 모두들 돌아올 생각을 않는다. 전화도 받지 않고. 재미있나보다. 에이~ 배신자들….

이 녀석이 바로 배신자다.


2009. 2. 14. 토요일
오후 6시 정각.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