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05.17 택시기사들이 직지사로 간 까닭은? by 파비 정부권 (6)
  2. 2009.01.13 민노당이 분열하고 있다구요? by 파비 정부권 (9)
  3. 2008.12.27 STX조선소에 뿌려진 70년대 유인물 by 파비 정부권 (1)
  4. 2008.11.10 빨갱이에 얽힌 추억 by 파비 정부권 (3)

택시운전을 하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자기네 회사 노조에서 야유회를 가는데 따라가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남의 회사 야유회 가는데 왜 따라가냐고 했더니 조합원 가족이나 친구들 초청해서 함께 가기로 했다면서 꼭 오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맛있는 음식과 술도 많이 있다는 유혹과 함께

 

그러나 정작 저를 유혹한 것은 맛있는 술과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야유회의 목적지가 바로 김천 직지사였던 것입니다. 직지사는 오래 전부터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문경은 오래된 불교사찰이 많은 고장입니다. 해방 이후 조계종의 성지로 추앙 받는 봉암사와 대승사, 김룡사를 깊이 묻은 산중은 실로 적막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듯합니다. 지리산 자락의 함양과 산청이 비록 깊다고는 하지만 그 유명세로 인한 번잡함 탓에 적막함으로 치자면 이곳에 비할 바 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곳에서 저는 늘 김천 직지사의 명성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아마 인근 고장의 큰 절이었기 때문이겠지요. 지금으로 말하자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겠지만 당시로서는 까까머리 중학생이 가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였습니다. 제가 살던 곳은 읍내에 한번 가려고 해도 한 시간 이상을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곡예 하듯이 골짜기를 지나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김천 직자사에 간다는 소리에 홀랑 넘어간 저는 더디 가는 시간을 탓하며 며칠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5 12아침 8 30, 마산역에 남보다 먼저 도착해 아리랑호텔 근처에 있는 T-World에 들어가 고객용 컴퓨터에서 제 블로그를 틀어놓고 집에서 나오기 전에 포스팅한 기사의 오탈자를 검색하며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습니다.


출발시간과 장소는
오전 9 30 마산역전 아리랑호텔입니다. 이곳에 사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야유회 내지 관광을 갈 때는 늘 이곳에서 출발합니다. 모두들 시간 맞춰 도착했습니다. 이미 잘 아시겠지만, 제가 아는 사람은 제 친구 한 명 뿐입니다. 서먹함을 감추기 위해 구석자리, 항상 그렇듯 앞도 아니고 뒤도 아닌 어중간한 자리에 파고들었습니다.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차창을 적시고 있습니다. ! 직지사에 도착할 때쯤이면 비가 그쳤으면 좋을 텐데 지금 내리는 단비가 농민들에게는 황금보다도 더 값진 것이겠지만, 야유회를 떠나는 사람들에겐 야속하기 그지없습니다. 고속도로변으로 펼쳐진 창녕들에서는 양파들이 오랜만에 단비를 맞으며 무럭무럭 알을 키워가는 것이 보입니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주최측
(?)은 김밥부터 돌립니다. 이런, 미리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나왔는데, 실수했습니다. 애써 차린 성의를 마다하면 예의가 아닙니다. 동방예의지국의 도리를 따지며 억지로 김밥을 밀어 넣고 나니 이번엔 오징어와 땅콩, 방울토마토 등이 담긴 비닐봉지를 1인당 하나씩 나누어줍니다. 접시에 담긴 돼지수육도 자리마다 돌립니다.

 

잠시 후, 소주와 맥주잔이 오가기 시작합니다. ! 이런, 또다시 실수를 절감합니다. 건강검진하기 전에 하룻밤 속을 비워두듯 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이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사회자가 앞자리에서부터 지명하면 의무적으로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음주가 있은 뒤엔 반드시 가무가 따라야 하는 것은 오래된 미풍양속입니다.

 

그러나 그런 미풍양속에 익숙지 못한 저는 차창에 머리를 박고 어젯밤 잠을 못 자 매우 피곤하다는 듯이 조는 시늉을 하며 빨리 도착하기만을 빌었습니다. 버스가 직지사에 도착했습니다. 굵게 내리던 비는 가랑비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미리 예약된 식당으로 가는군요. 몇  시간 만에 식사를 세 번 합니다. 이번엔 산채비빔밥입니다.

 

지금부터 4까지 자유시간을 드릴 테니까 마음껏 구경하시고 다시 이곳으로 모여주세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배불리 먹여놓고 관광을 시키려고 그런 것이었구나. 하긴 아무리 아름다운 경치도 배 고프면 허당입니다. 주최측의 세심한 배려에 고마운 마음을 안고 산사로 향합니다. 비를 머금은 길 주변 나무들의 자태가 자못 싱그럽습니다.

 

, 그럼 지금부터 절 구경을 함께 하도록 하시겠습니다. 사진이 매우 많습니다. 스크롤 압박이 좀 오시더라도 참아주세요. 좋은 절을 이렇게 책상에 앉아 간편하게 구경하는 게 참 즐겁다, 생각하시면서 말입니다. 그래도 정히 힘드신 분은 중간에 하산하셔도 상관없겠습니다. 그래도 가급적이면 대웅전에 부처님은 알현하시고 가도록 하세요.

 

제일 먼저 만나는 이 커다란 문은 사실 본래의 절과는 상관없는 문입니다. 이 문 옆에는 매표소가 있습니다. 그냥 돈 받기 미안하니까 아마 이렇게 커다란 문을 문화재스럽게 만들어놓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제 생각이긴 하지만 그래도 성의가 대단합니다. 여기서 1인당 2,500원씩 냈습니다. 단체로 계산하면 꽤 큰 돈이지요.

 

그래도 여기는 싼 편이라는군요. 다른 큰 절에서는 4~5천원씩 받는답니다. 하여간 제가 내는 건 아니니까 일단 논평은 여기서 그만하기로 하고 계속 올라갑니다. 숲으로 둘러싸인 오솔길이 시원합니다. 약수터도 있습니다. 예민한 저는 빗물이 섞였을 듯하여 안 마시지만 다른 이들은 잘도 마시는군요. 시원하답니다.


 

, 드디어 일주문이 보입니다. 절에 들어가는 첫 관문입니다. 기둥 하나(一柱)만을 세워 문을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두 기둥을 일직선상으로 나란히 세워 그 위에 지붕을 얹고 현판을 달아 문을 만들었다는 뜻에서 일주문(一柱門)이라고 한답니다. 네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건축양식과는 달리 특이하지요?

 

다 이유가 있답니다. 일주란 일심(一心) , 한마음을 상징하는데요. 신성한 절에 들어가기 전에 세상사 어렵고 힘든 일은 모두 잊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의미가 있을 테지요. 일주문 현판을 읽어보니 黃岳山直指寺 라고 적혀 있군요. 한글세대를 위해 번역하자면 이렇습니다. 황악산직지사

 

우리나라 절들은 잘 아시겠지만, 대개 선종 계열입니다. 통일신라 초기까지는 교종이 우세했지만, 후기로 접어들면서 선종이 득세하기 시작합니다. 59산이 각축을 벌이지만 차츰 진골귀족의 종교였던 교종은 퇴조하고 선종이 득세하기 시작합니다. 고려 초에 들어와 왕의 아들인 대각국사 의천이 선교통합을 시도해 천태종을 창시하지만, 역시 선종에 기울었지요.

 

송광산 조계사에서 보조국사 지눌이 설법을 전한 이래로 한국불교는 조계종이 대표해왔습니다. 보조국사를 존경하는 왕명에 의해 송광산은 이름을 조계산으로, 조계사는 이름을 송광사를 바꾸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는데 서로 이름을 바꾼 데에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었을까요? 그 뜻을 아직 잘 모르겠네요. 저는. 

 

그저 임금이 지눌스님을 존경해서 그랬다고 하기엔 너무 허전하잖아요? 하여간 지눌스님이 설파하신 돈오점수의 선풍이 천 년을 이어왔는데 최근 성철스님이 돈오점수가 아니라 돈오돈수다라는 화두를 던져 불교계에 논쟁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저야 뭐 돈오돈수든 돈오점수든 도무지 이해도 못하는 속물중생에 불과하지만, 그 성철스님이 바로 제 고향 문경 봉암사(정확하게 희양산봉암사로 구산선문의 하나임)에서 득도하셨거든요. 그래서 관심을 가져보는 거지요.

 

이야기가 옆으로 길게 샜습니다. 역시 속물중생이라 일심이 안 되는군요. 계속 올라가시지요. 조금 올라가니 대양문(大陽門)이 나옵니다. 글쎄요. 이 문은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보통 일주문 다음에 금강문 그 다음에 사천왕문, 불이문이 나오고 대웅전에서 부처님을 만날 수 있는데요. 갑자기 대양문이 나오니 이게 무슨 문이지요?

 


저도 일단 잘 모르니까 패스하고
조금 더 올라가니 금강문이 나옵니다. 금강문에는 두 명의 역사가 지키고 있는데요. 아금강역사와 훔금강역사입니다. 아금강역사는 입을 아 벌리고 오른쪽 주먹을 불끈 쥐고 공격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대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훔금강역사는 반대로 훔하고 입을 다문 채 왼쪽 주먹을 치켜들고 방어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은 범어의 첫 글자와 끝 글자로서 처음과 끝, 생성과 소멸을 의미한답니다. 공격적인 자세의 의미는 당당함과 역동적인 힘을 상징하며, 방어적인 자세의 의미는 고요하고 정적인 마감을 상징한다고 하네요. 가톨릭 제단에서 상징물로 잘 쓰는 알파와 오메가의 뜻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건 잘 모르는 얘기니까 시비 걸지는 마세요. 

 

사진에서 보니 제 친구와 일행들이 금강역사를 보며 뭐라고 서로 의견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은 합장한 자세로 기도하시는 분도 있군요. 인사라고 해야 하나요? 계속 올라갑니다. 이번엔 사천왕문입니다. 사대천왕이 지키고 있는 곳입니다. 가장 무서운 곳이지요. 원래 사대천왕은 고대 인도의 마왕들이었답니다.

 

석가모니에게 귀의한 뒤로는 착한 마왕이 되어 불국정토의 외곽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습니다. 서유기에 보면 손오공도 처음에 매우 못된 장난꾸러기 마왕이었지요? 부처님도 아주 우습게 알다가 된통 혼난 뒤로는 개과천선하여 삼장법사를 따라 천축에 불경을 가지러 떠나게 되지요. 말하자면, 손오공도 마왕에서 수호신으로 전향한 셈이지요. ㅎㅎ

 

사천왕문을 지나면 보통 불이문(不二門)이 나오는데 불이문이 보이지 않는군요. 대신 만세루(萬歲樓)가 두 팔을 벌려 우리를 맞습니다. 울창한 나무숲에 둘러 쌓인 만세루가 무척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직지사의 특징 중에 하나가, 계속 사진을 보시면 느끼시겠지만, 모든 전각들이 울창한 나무숲에 둘러쌓여 있다는 것입니다.
 

 

불이문은 해탈문이라고도 하는데 산문의 마지막 문으로서 이 문을 거치며 세상에서의 모든 근심을 벗어버리면 해탈하여 비로소 부처가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불이 즉, 둘이 아니란 말은 곧 하나를 의미하는데 만남과 이별은 둘이 아니며, 시작과 끝도 둘이 아니며, 삶과 죽음 또한 둘이 아니니 세상 만사가 모두 둘이 아니랍니다.

 

불이의 이치를 깨닫는 순간이 바로 해탈에 이르러 부처가 되는 경지라고 하는데, 저는 아직도 불이가 이불인지 요인지 분간이 안 가니 해탈하기는 틀렸나 봅니다. 하여간 직지사에서는 불이문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일주문을 지나 대양문이 있었고 만세루가 대웅전 앞을 지키고 있군요.

 


마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었답니다
. , 이 만세루는 부처님이 한가 하실 때 여유를 즐기시는 곳인가? 그러나 어쨌든 특별한 절 구조를 감상 하는 것도 새로운 즐거움입니다. 드디어 대웅전입니다. 대웅전 앞에는 두 개의 석탑이 멋진 자태를 뽐내듯 서있습니다. 보물입니다. 보물 몇 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나 여러분이나 보물 몇 호 그런 거 잘 모르기도 하지만, 그저 일련번호에 불과한 거지요.

 


직지사 대웅전도 봉암사 극락전과 함께 보물지정 목록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 대웅전 안을 들여다보니 부처님이 떡 하니 앉아 계십니다. 그 부처님 뒤에 색이 바랜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일명 후불탱화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보물입니다. 역시 보물 몇 호인지는 모릅니다. 문 밖에서 사진을 찍었기 때문에 그림이 선명하지는 않습니다. 안에 들어가면 촬영 못하게 합니다. 밖에서도 플래시는 잠그고 찍었습니다.

빛을 많이 받으면 색이 계속 바래집니다. 여러분도 주의하세요. 그래도 혼났습니다. 사진만 자꾸 찍고 불전에 절을 안 한다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죄송합니다만, 저는 가톨릭계라서 부처님께 합장하고 인사까지는 해드릴 수 있어도 안에 들어가서 다른 불자님들처럼 그렇게 절을 몇 번씩이고 하는 그건 좀 곤란한데요. 잘 할 줄도 모르고요.

 

그래도 들어와서 하고 가라고 그러더군요. 물론 한번 그냥 씩 웃어주는 걸로 대신했습니다. , 그러고 보니 만세루 옆에 기와불사라고 크게 씌어진 간판을 본 기억이 나는군요. 이 절은 지금 한창 중창불사 중인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불전에 인사들 하라고 하셨던 것이로구나, 평소에 그런 모습을 잘 보지 못했었거든요.

 

기와불사 하니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옛날 가톨릭도 비슷한 걸 한 적이 있었습니다. 소위 면죄부판매라고 하는 것입니다. 로마에 거대한 성 베드로 성당을 지을 건축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그랬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가톨릭은 종교개혁의 격랑에 휘말리게 되고 결국 개신교와 분열합니다. 루터의 98개항비판이 시발이었지요.

 

루터는 가톨릭 신부였고 그는 교회의 부패를 질타하며 오리지널로 돌아가기를 촉구했지만, 그가 원했던 대로 오리지널 즉, 초대교회의 정신으로 돌아간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루터는 이후에 연하의 전직 가톨릭 수녀와 결혼했지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자기 부모에게 손주를 안겨주고 싶다면서 말입니다.

 

물론 그는 가톨릭의 오래된 전통을 타파함으로써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북유럽의 루터교들이 성직자가 결혼하는 것 외에 가톨릭과 별 다름없는 예배방식을 계속 고수하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미국의 개신교들은 가톨릭과 확실한 차별성을 보이고 있고, 한국의 개신교는 아예 완전히 이질적입니다만.

 

그 와중에 헨리8세는 가톨릭과 결별하고 영국국교회(성공회)를 만들었지요. 합법적으로 재혼을 하기 위해서였는데-가톨릭 교회법이 그의 이혼과 재혼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죠- 이걸 반대하다 유토피아의 저자로 유명한 토마스 모어 경이 헨리8세의 손에 처형되는 비극도 발생했답니다.

 

기와불사를 보며 왜 면죄부가 떠올랐는지 원 그러나 가톨릭은 오늘날도 그 면죄부란 것을 계속 판매(?)하고 있습니다. 저도 가끔 성당에 가서 그 면죄부란 것을 사는데요. 고해성사를 통해서 말이지요. 어두운 고해실에서 제 얼굴을 보지 못하는 신부님을 향해 우선 죄를 고백하지요. 죄가 없다고 생각하면 뭐 아무거나 하나 만들어서 고백해도 됩니다. 그러면 신부님이 보이지 않는 저를 향해 사면을 해주시는 거죠. 신을 대신해서.

 

고백한 죄가 진짜라고 생각되면 앞으로 그러지 말라는 훈계를 주실 때도 있지요. 그러고 난 다음 주기도문을 몇 번 외우라든지 뭐 이런 간단한 벌을 내립니다. 그러면 저처럼 순진한 신자는 매우 기뻐하며 벌을 받는 임무를 다하기 위해 기도문을 열심히 외는 거지요. 이게 말하자면 면죄부란 것인데요, 아마 종교개혁 당시에 건축헌금을 요구하는 폐단으로 이용되었겠지요. 그러나 기와불사든 면죄부든 과도하게 그 순수성을 의심하는 자체가 도리어 불순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역사책에는 너무 과격하게 당시를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무엇이든 과격해지면 왜곡이란 악마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마침내 주인행세를 하게 되는 법이지요. 제가 배운 역사책(국사나 세계사를 고등학교에선 배우지 못했으므로 중학교 과정을 말하는 것. 그러므로 고교 이상에서 가르치는 역사는 차이가 있을 수도)에서도 그런 것을 느꼈답니다.

 

제가 불자가 아니라서 잘은 모르지만, 법당의 현판에 대웅전이라고 씌어진 것을 보니 이곳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곳입니다. 大雄이란 석가모니를 이름입니다. 진리를 깨달아 세상에 널리 알렸다는 뜻이죠. 대웅전은 부처님의 좌우에 협시보살이라고 해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함께 모신답니다. 만약 대웅보전(大雄寶殿)이면 석가모니불의 좌우에 약사여래불과 아미타불을 모시고 뒤에 삼존불 탱화를 그린다는군요. 
 


대웅전을 지나 옆으로 나아가니 비로전(毘盧殿)이 나옵니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입니다. 비로자나불은 법신불입니다. 불교는 부처를 믿는 종교가 아니라 법을 믿는 종교라고 말합니다. 부처님도 열반에 드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오로지 자기자신과 법에만 의지하여 정진하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곧 불교는 진리를 믿는 종교란 뜻이겠죠.


안을 들여다보니 부처님 뒤에 하얀 수백 개의 부처 또는 동자승이 있는데 정확하게 무엇일까요? 모르면 일단 패스. 하여튼 중요한 것은 이 비로전도 보물이란 사실입니다. 역시 몇 호인지는 모릅니다. 보물로 지정된 것이 1970년대란 사실만 어렴풋이 들은 기억이 납니다. 아 이거 시간이 너무 걸립니다. 지금부터 대충 설명하고 넘어갑니다. 저도 곧 어디 가야 하거든요. 아래 사진에서처럼 비로전 앞에도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역시 보물이고요. 몇 호인지는 역시 모르지만.

 

전체적으로 조경이 참 잘 되어 있습니다. 배수로도 잘 만들어 놓았고… 이렇게 나무가 울창한 절은 처음입니다. 아래 보이는 누각 옆 등나무 아래에서 잠깐 쉬었습니다. 



대웅전과 마찬가지로 비로전도 정면에 보시는 바와 같이 누각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이 누각의 이름은 보시는 바와 같이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습니다. 기억도 잘 나지 않고요. 누각에 범종도 달아놓았네요.


이곳은 객사인지 아니면 스님들이 기거하는 곳인지 모르겠습니다. 역시 문이 닫혀 있어 들어가보지는 못했습니다.  


관음전. 말할 것도 없이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곳이죠. 관음보살은 대자대비의 상징입니다. 관음보살이 머리에 쓴 보관에는 아미타불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관음보살이 아미타불을 스승으로 모시겠다는 공경의 표시라고 합니다.  

여기는 응진전입니다. 16나한을 모시는 곳이죠. 


사명각이라고 쓰인 현판에서 눈치 채셨겠지만, 이 당우는 사명대사의 영정을 모신 곳입니다.


! 이런 무릉도원이 절 속에 숨어 있었다니 그런데 다리를 건너가려니 <출입금지>랍니다. 아마 스님들이 참선하는 곳인가 봅니다. 그럼 들어가면 안 되지요. 스님들 보통 소림사 권법 기본으로 하시는 거 다 아시죠? 누각의 이름이 안양루라고 적혀 있더군요. 틀려도 할 수 없습니다. 저 한글세대거든요.


이곳도 출입금지입니다. 살짝 들어가서 장독대를 전경으로 건물을 살짝 찍었습니다만, 얼른 나왔습니다. 소림사 무술을 잘 하실 거 같은 스님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담 너머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

 

여기는 무슨 박물관 같습니다. 평일이라 그런지 문을 안 열었습니다. 이 앞뜰을 가로질러 나가니 다시 절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가만 이건 뭐지? 다시 사찰 경내로 들어서는 문을 지나 좌측으로 조금 올라가니 좌측에 아래 사진과 같은 문이 나타났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은 아까 보았던 <외인은 출입을 금합니다>란 팻말이 붙어 있던 스님들과 보살님들이 기거하는 건물-푸른기와의 박물관 옆 건물-로 통하는 문이었습니다.) 











 


다가가 보았더니 이렇게 적혀 있군요.
가던 발걸음 멈추고


뭘 어쩌라는 건지
? 가던 발걸음 멈추고… 돌아가라는 건지, 아니면 조용히 들어오라는 건지…. 무서워서 들어가지는 못하고 그냥 나왔습니다
.


, 이곳은 찻집입니다. 차는 한잔 못했습니다. 저 혼자 사진 찍고 구경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빨리 내려 오라고 단체 사진 좀 찍어달라네요. 아유, 뭐가 그리들 바쁘셔서, 좀 천천히 구경하다 내려가시지 않고. 하여간 우리나라 사람들 동작이 너무 빠릅니다. 문화재 감상할 때뿐만이 아니고 밥 먹는 시간도 아마 세계에서 따라올 나라가 없을 걸요?

 

 

 

, 개중에 그래도 진득하게 감상할 줄 아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기사님들, 말도 아주 잘 듣습니다. 합장 한번 해 주세요. 하자 바로 자세 나옵니다. 하하. 사실은 저 두분 중에 한 분은 불교대학 출신이랍니다. 누가 부처님하고 닮았는지 한번 맞춰보세요. 그분이 불교대학 출신이겠지요.

 

여기서부터는 청풍료 앞뜰에 전시된 유물입니다. 바빠서 설명은 길게 못 다니까 알아서 그냥 조용히 감상해 주세요.




자, 유물 감상 계속 하시지요. 아래 보시면 1/4~4/4까지 매직으로 써놓은 유물이 보이실 텐데요. 아마 네 개의 부분이 원래 일체였던 모양입니다. 확실한 것은 저도 모릅니다. 그냥 추측으로 그리고 물고기도 한 마리 보이시죠? 불교에서 이 물고기는 매우 중요한데요. 범종각에도 보시면 물고기가 보이실 겁니다.

목어라고 하지요. 기독교에서도 물고기는 매우 중요한 상징입니다만, 그와는 또 다른 전설이 이 목어에는 담겨 있답니다. 아무리 바빠도 이 이야긴 빠뜨리면 안 될 것 같군요.

 

옛날 한 승려가 스승의 가르침을 어기고 늘 그릇된 짓만 일삼다가 몹쓸 병에 걸려 죽은 후 물고기로 태어났답니다. 보통 불교에서 업보라고 하는 그런 것이었겠지요. 그것도 등에 커다란 나무가 솟아난 그런 물고기로 태어났는데 풍랑이 칠 때마다 피를 흘리는 고통을 당하곤 했다고 합니다.

 

하루는 스승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등에 커다란 나무가 솟아난 물고기가 뱃전에 머리를 들이대고 슬피 울기에 스승이 신통력으로 그 물고기의 전생을 살핀 결과 방탕한 짓을 일삼다가 일찍 죽은 제자였습니다. 불쌍히 여긴 스승은 곧 제자를 위해 수륙재를 베풀어 물고기의 몸을 벗게 해주었습니다.

 

그 날 밤, 스승의 꿈에 나타난 제자는 스승님의 은혜에 감사 드립니다. 이제부터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바라건대 저의 등에 있던 나무를 베어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어 나무막대로 쳐주십시오. 그리고 저의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수행자에게 제 이야기는 좋은 교훈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스승은 나무를 베어 물고기 모양의 목어를 만들어 수행자들에게 교훈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 목어로부터 변형된 것이 바로 목탁인데, 둥근 형태에 앞 부분의 긴 입과 입 옆의 둥근 눈이 물고기를 나타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스님들이 목탁을 두드리는 이유가 괜히 그러는 게 아니란 걸 아시겠지요? 수행자들의 나태한 정신상태를 일깨워 맑은 정신으로 수행정진하고, 그리하여 중생을 제도한다는 큰 뜻이 숨어있는 것이겠지요.

 

앞으로는 절에서 목어를 만나면 그냥 가지 마시고 막대기로 한대씩 때려주고 가세요. 하하. 그러면 안 되려나?

 


빨리 내려오라니 부랴부랴 뛰어가는 중입니다
. 다시 일주문입니다. 그래서 돌아가는 기념으로 다시 한 장 찍었습니다. 제가 카메라를 조준하자 올라오시는 분들이 자기들 찍는 줄 알고 움찔 하는군요. 미안합니다.

 

이건 무슨 비석인지 모르겠습니다. 안내 간판도 없습니다. 문도 잠겨있고요. 바빠서 확인할 겨를도 없습니다. 여기도 그냥 패스. , 그런데 청풍료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삼층석탑 사진을 못 찍은 게 생각납니다. 그것도 보물인데. 그러고 보니 직지사석조여래좌상도 못 찍었습니다. 역시 보물입니다.

 

할 수 없죠. 시간도 없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번 더 와야겠습니다. 여기는 완전 보물 천지입니다. 다음에 혼자 와서 조용히 감상해야겠습니다. 역시 단체로 어딜 가서 심도 있게 무얼 본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집단이 좋을 때도 있지만, 나쁠 때도 많다는 말이죠.


 

 

 












헐레벌떡 뛰어내려가니 단체 사진 찍으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 한 분이 그러시는군요.
, 작가님 오십니다. 모두 모여주세요. 단체촬영 합니다. ? 이게 무슨 소리랍니까? 사실은 아까부터 저보고 자꾸 작가님, 작가님 하시더라고요. 이것 참, 저 카메라 산지 이제 겨우 두 달 됐는데, 오래 살다 보니 별 소리 다 듣습니다.

 

그런데 마산 우성택시 기사님들 말 참 안 듣습니다. 저렇게 모여달라고 애원을 해도 안 모이는 거 보십시오. 모두들 HID 출신들인가? 북파공작원 말입니다. 거기는 혼자서 행동하는 부대이기 때문에 말 진짜 안 듣는답니다. 완전 개인플레이죠. 택시도 비슷하긴 하군요. 혼자 움직인다는 점에서. 하여간 여차여차 사진은 찍었는데, 보안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출신부대의 특성상 단체사진은 공개 안 하기로 합니다.



바로 위는 직지사 입구에 만들어진 직지공원입니다. 직지사 구경한 다음 여기서 도시락 까먹고 놀기 좋게 만들어 놓았군요. 아이들 데리고 소풍가면 딱 좋겠습니다. 아니면 시민단체들 버스 한대 끌고 소풍가도 딱 좋겠네요. 아래 보시는 사진은 직지사 입구 상가지역입니다. 아까 이곳에서 점심으로 산채비빔밥을 먹었었지요. 늘 그렇듯 더덕 안주에 동동주도 물론 곁들였지요.

소주병을 들고 환하게 웃으며 소주잔을 권하는 분은 우성택시 노조위원장이십니다. 그 아래 두 손을 공손하게 모은 자세로 인사를 하고 계신 분도 아마 노조 간부이신 모양입니다. 이분은 인사말을 다 하시고 나서 건배 제의를 하실 때도 두 손을 공손하게 모은 자세를 소주잔을 들어 “건배” 하시더군요.  

모두들 땡볕에 앉아서도 잘들 먹고 마시고 놀고 있습니다. 나중엔 안 되겠던지 우산까지 등장했습니다. 처음에 비가 오고 날도 흐려 이렇게 난장에 자리를 잡았는데 갑자기 해가 쨍쨍 뜬 것입SL다. 원래 야유회니 운동회니 하게 되면 하늘도 얄궂게 시샘을 하는 법입니다.

이제 먹을 것도 다 먹었겠다 청소 하고 돌아가야 합니다. 밀대 들고 열심히 닦고 계시는 기사님, 왕년에 모 은행 지점장님이셨답니다. IMF 덕분에 택시업에 뛰어드셨다는군요. 택시 기사님들 인생 역정 다 들어보면 정말 몇 편의 파노라마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이력도 다양하고 화려합니다. 그래서 단체사진 찍을 때 그렇게들 말을 안 들으셨나? 하하. 하여간 지점장 출신이라는 기사님, 밀대질도 정말 잘 하십니다. 은행 근무하실 때 밀대 들고 청소만 하셨나? 

맨 마지막 사진은 아마도 노조 지도부인 모양입니다. 마산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할 것인지 작전회의를 하고 있는 듯합니다. 돌격 앞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일단 작전상 해산할 것인지…. 결론은 돌격 앞으로로 났습니다. 마산역에 도착한 후 일행들은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모두 노래방으로 돌격했습니다. 저도 종군기자(!)로서 끝까지 돌격에 참여했고요. 이상 끝입니다. 

아 참, 그리고 제목에 <택시기사들이 직지사로 간 까닭>이 무엇이냐고요? 그거야 당연히 야유회 간 거지요. 여기까지 오셨으면 다 아실 텐데. 별 거 없어요. 그냥 야유회. 마땅히 달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서요. 이해 바라고요. 여러분도 긴 글 읽으시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너무 많이 걸어 다리들 아프시지요? 저는 약속이 있어서 이만. 말이 너무 길어져서 시간이 얼마 안 남았네요. 오탈자 많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나중에 고칠 게요. 총총.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두산중공업 정문 앞을 파고드는 골바람은 매서웠습니다. 본부석으로 차려진 트레일러 운전석 위로 금속노조 깃발이 얼음처럼 차디찬 바람에 부딪혀 팽팽하게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6년 전 이날,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도 차디찬 자본의 공세에 맞서 팽팽하게 나부끼는 불길 속에 자신의 몸을 내던졌습니다.

배달호 열사는 두산중공업 노동자였습니다. 그는 50년 인생 중 절반을 두산중공업(구 한국중공업)에 바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2002년 한국중공업을 인수한 두산자본에 의해 노조간부들이 부당하게 해고되자 여기에 불복하여 맞서 싸우다 구속까지 되어야 했습니다.

신자유주의 민영화 바람이 몰고온 대규모 해고 사태

5조 원 가치의 공기업 한국중공업을 3000억 원이란 헐값에 손아귀에 넣은 두산자본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노동조합을 길들이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구속되었다 출소한 노동자 배달호에게 내려진 것은 아파트를 비롯한 모든 재산과 임금에 대한 가압류였습니다.

막막해진 생계를 위해 회사 복지기금에 대출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것은 가압류자에게는 대출 불가라는 통보뿐이었습니다. 현장에 복귀해서도 단지 노조활동을 열심히 했다는 이유로 관리자와 노무팀의 관리대상(소위 블랙리스트)에 올라 끊임없이 감시와 통제를 받아야했습니다.

결국 노동자 배달호는 한 장의 유서를 남겨놓고 타오르는 불길 속에 자신을 맡겼습니다. 그는 유서에서 “하늘에서 반드시 지켜볼 것”이라는 경고를 잊지 않았습니다. 동지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남겼습니다. 남겨진 가족에 대한 절절한 사랑과 부탁도 남겼습니다.

배달호 열사의 항거는 결국 63일에 걸친 투쟁의 불길을 일으켜 손배, 가압류를 철회시키고 금속노조 연대투쟁의 모범을 만들어냈으며 일부 해고자 복직의 성과도 이루어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 배달호가 분신으로 열망한 세상은 아직 멀었습니다.
 

배달호열사 정신계승사업회 회장 김창근 전 금속노조 위원장


손배의 사슬을 끊기 위해 분신, 그러나 악랄한 자본의 손배는 아직도 살아 있어

1월 9일, 배달호 열사가 그토록 아끼던 민주광장이 아닌 회사 정문 앞에서 치러진 추모제에서 <배달호열사 정신계승사업회> 김창근 회장(전 금속노조 위원장, 두산중공업 해고)은 “고 배달호 동지가 손배가압류의 사슬을 벗기 위해 끝내 하나뿐인 목숨을 끊은 지가 벌써 6년이 지났지만… 우리 현실은 아직 그대로다.”며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이어 그는 “지금도 노동자들이 굴뚝 꼭대기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데, 여전히 악랄한 두산자본은 (전국에) 널려있다.”고 말했습니다. 추모제가 열리는 시간, 또 다른 배달호들이 칼바람 몰아치는 100m 굴뚝 꼭대기에서 또 다른 두산자본, 현대미포조선 정몽준에 맞서 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가슴에서 지울 수가 없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한 두산중공업 박종욱 노조지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국민을 하나로 묶어내지 못하고 분열만 시키는 MB정부”를 신랄하게 비난했습니다.

그는 또 “올해는 노사관계가 더 악화될 것 같고, 경제 악화로 구조조정과 노동탄압이 자행될 것으로 보이는데, 두산을 비롯한 자본은 그 기회를 엿보고 있다”면서 “힘들게 사는 노동자들이 또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되고 있다”고 열변을 토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의 말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민주노동당이 분열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도 분열하고 있습니다.”

권영길 민노당 국회의원


추모사에서 갑자기 왠 민노당 분열?

그런데 이 말은 작년 1월 9일, 똑같은 시간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이 안타깝게 절규하는 목소리로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똑같은 분에게 말입니다. “민주노동당이 분열하고 있습니다.”란 외침 속에는 노동자들의 지난한 투쟁의 결과로 만들어진 진보정당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절규가 들어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또 다시 듣게되는 똑같은 절규 속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기 때문일까요? 1년이나 지난 지금 이 순간에 무엇 때문에 과거에 부르대던 소리를 다시 하는지 저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민주노동당을 버리고 떠난 사람들중 대다수는 진보신당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민주노동당을 만든 1세대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제 더 이상 민주노동당을 자기 당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미 진보신당의 60% 이상이 민노당과 무관한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짐으로써 이제 그들 마음대로 민노당과 어쩔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민노당의 종북정책과 대남 간첩행위에 대한 입장 차이로 갈라져나간 사람들이 김일성주의와 주체사상, 간첩행위에 대한 반대를 명시하지 않는 한 단결이 어렵다는 것은 대공장 노조지회장쯤 되시는 분이 모르실리 없습니다.
 
민노당이 종북, 간첩행위 반대를 명시하지 않는 한 정치조직적 단결은 어려울 것

그러나 그분의 뜬금없는 “민주노동당이 분열하고 있다”는 철지난 탄식이 아예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닙니다. 다분히 정치적 의도도 있고 내부 단속용일 것이라는 이해도 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울산의 고공농성장에서 벌어진 행태는 암울한 노동계와 진보운동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현대미포조선의 굴뚝 위에서 20일 넘게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영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 권한대행과 김순진 현대미포조선 조합원은 진보신당 당원들입니다. 이들이 농성을 하고 있는 현장투쟁에 심상정 진보신당 대표를 비롯한 진보신당 당원들이 대거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민주노총 울산본부에서는 심상정 대표에게 마이크를 줄 것이지 말 것인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에게는 당연히(?) 발언권이 주어졌습니다. 문제는 진보신당(!) 심상정 대표였던 것입니다. 30년 가까운 세월을 노동운동에 헌신한 여전사에 대한 대접치곤 너무 어이없습니다.

러나 이런 일은 비단 울산에서만 벌어진 일은 아니며 우리 동네에서도, 또 다른 곳에서도 늘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루 이틀 겪는 일이 아니어서 사람들도 이제 감각이 무디어졌습니다. 바로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가 배타적 분열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말로만 단결, 실제로는 배타적 종파주의

말로는 통일을 외치지만, 그 통일을 위해 반통일적 행위를 자행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고서 어떻게 통일단결해서 막강한 자본에 싸워 이기겠다는 것인지 참으로 한심합니다. 이명박의 대국민 분열행위를 비난하기 전에 자신부터 거울에 비춰보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옛날 밤이슬 맞으며 부르던 ‘진짜노동자’ 노래가사 중에 이런 구절이 생각납니다. ‘반성하는 민주투사~’ 

왼쪽부터 조승수 전 의원, 노옥희 진보신당 울산대표, 심상정 전 의원, 단병호 전 의원, 홍희덕 현 민노당 의원


배달호 열사는 유서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더러운 세상, 악랄한 두산, 내가 하늘나라에서 꼭 지켜볼 것이다. 동지들이여. 끝까지 투쟁해서 승리해주기 바란다. 불쌍한 해고자들 꼭 복직 바란다. 나는 항상 우리 민주광장에서 지켜볼 것이다. 내가 없더라도 우리 가족 보살펴주기 바란다. 미안합니다. 배달호”

21년을 한 직장에서 쉰을 넘기도록 살아온 노동자 배달호, 그가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부릅뜬 그의 두 눈은 악랄한 두산 자본이 아니라 민주광장이 아닌 두산중공업 정문 앞에서 치러지는 추모제를, 현대미포조선 굴뚝 위에서 찬바람 맞으며 싸우고 있는 두 명의 노동자 동지를 바라보면서 슬픔에 눈물 젖어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번 주에도 내도록 한겨울 강추위가 맹위를 떨칠 것이라고 합니다. 찬바람이 매섭습니다.

2009. 1. 13.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STX조선이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는 2001년에 설립된 회사입니다. 원래는 대동조선이라는 회사가 1960년대부터 있었습니다만, 쌍용그룹 임원 출신으로 M&A의 귀재라는 강덕수 현 STX그룹 회장이 인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회사입니다. 경남 진해와 창원, 마산에 STX조선소와 STX중공업, STX엔진 등 주요 사업체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동안 이 회사는 양적, 질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불과 5년 만에 매출 28배, 자산규모 12배의 고속성장을 이루어냈고, 현재는 매출 6조 4000억 원에 10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는 재계서열 20위권의 대기업으로 발돋움했습니다. 

중국에도 진출해 다롄에 조선소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유럽 최대의 대형 크루즈 선사인 아커야즈를 인수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로써 STX는 단기간에 세계 6위의 조선회사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에 유인물이 뿌려졌습니다. 1970년대도 아니고 1980년대도 아닌 21세기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에서 비밀리에 일어난 일입니다. 공개적으로 공장 정문에서 출근하는 노동자들에게 유인물을 배포한 것도 아니고, 비밀결사가 목숨을 내어놓고 거사를 결행하듯 그렇게 뿌려졌다고 합니다.

STX 다롄 조선소 1단계 준공식 및 첫 선박 진수식. 사진=이하 모두 경남도민일보


요즘 세상에도 이런 70년대 유인물이…

유인물의 내용을 보면 마치 우리가 1970년대를 살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착각이 듭니다. 노동조합을 결성하자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노동법에 명시되어있는 법적 의무사항인 『노사협의회』를 만들자는 소박한 내용이었습니다.

노사협의회는 노동조합이 없는 기업에 의무적으로 만들도록 노동법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한국노총도 있고 민주노총도 있지만,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전체의 90%를 넘습니다.

따라서 노사협의회는 이처럼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받도록 하기 위한 최저한의 조치인 것입니다. 그래서 노사협의회법은 강행규정, 즉 반드시 지켜야하는 강제법규로 제정되었습니다.

그런데 노사협의회를 요구하는 유인물이 비밀리에 삐라처럼 뿌려진 것입니다. 그것도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최저한의 조치’ 노사협의회법은 실제로는 아무런 효력도 없는 죽은 법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니, 노조도 없는 회사에 여태껏 노사협의회도 없었단 말입니까? 그럼 임금이나 근로조건 같은 것은 어떻게 정한단 말이죠?”

"근로조건? 그런 게 어디 있나."

STX조선에 다니는 한 노동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어보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게 어디 있어. 말도 못 꺼내지. 월급 같은 건 그냥 주면 주는 대로 받고 그러는 거고. 근로조건? 그런 말은 이 세계엔 없어.”

“그런데 노조도 없이 어떻게 이런 유인물을 뿌리게 되었죠? 매우 힘들었을 텐데… 위험부담도 컸을 테고. 어떤 특별한 계기나 뭐 그런 게 있었나요?”

“그런 건 없어. 그냥 우리도 보는 눈이 있으니까. 정규직들은 우리보다 더 편한 일 하면서 월급은 두세 배 더 많이 받아가고 토요일 일요일 꼬박꼬박 쉴 수 있지.”

그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에 뒤섞인 슬픔 같은 것이 배여 있었습니다.

“우리는 토요일도 없어. 주 40시간 근무제? 그런 게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 있다면서.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이야. 이제 더는 못 참는 거지. 상여금이 100%야. 20년 전에도 이런 회사 없었다고.” 

더는 못 참겠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갑자기 전태일 열사가 생각났습니다. 그는 근로기준법을 자신의 몸과 함께 불태우며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근로자를 혹사하지 말라!”

그러나 40여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여전히 노동법은 노동관료들의 책상 위에서 먼지나 먹으며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나 봅니다. 세상은 아직도 나아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금년 8월, STX조선은 유럽 최대 조선사 아커야즈를 완전 인수했다.

STX의 고속 성장, 그러나 하청노동자들의 삶은 거꾸로 70년대로…

STX가 고속 성장한 배경에는 물론 강덕수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경영을 잘한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현장에서 묵묵히 땀 흘려 일한 노동자들의 공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STX의 하청노동자들은 7~80년대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있었습니다.

STX는 본사직원보다 하청노동자들이 더 많은 기형적 노무체제를 갖고 있는 회사입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1990년대 이후 정부의 비정규직 노동정책이 STX가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하청 위주의 사업장을 확대하는 데 보탬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이 정한 주 40시간 노동제도 이들 하청노동자들에겐 그림의 떡입니다. 이들은 사실상 비정규직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겐 정규직(본사) 노동자들에게 제공되는 어떤 혜택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청노동자들에게 주 40시간 노동은 그림의 떡

주말에도 묵묵히 일해야 합니다. 물론 토요일에 일하지 않고 쉴 권리는 있습니다. 그러나 무급휴일입니다. 말하자면, 일하지 않는 대신에 굶어죽을 권리가 주어진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받아가는 돈은 평균 연봉 1500을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2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일시에 10여개의 샤워기에 매달려 조선현장에서 흘린 땀과 기름을 씻어내야 합니다. 마치 일제시대에 징용된 북해도의 탄광노동자들이 연상되지 않으십니까?

물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기야 하겠느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비약입니다. 아무리 그렇지만 21세기 선진 대한민국의 노동자를 징용된 일제 탄광노동자와 비교할 수야 있겠습니까?

회장 등 임원진은 100억대의 보너스 지급하면서…

그러나 그들이 가지는 박탈감이나 상실감은 오히려 더 크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누리는 동시대의 보편적 삶의 질은 오히려 그때보다 더 못하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퇴근하고 동료들과 함께 마시는 소주 한 잔도 부담스럽습니다. 그들이 감당해야할 짐의 무게는 7~80년대의 노동자들보다 훨씬 크고 무겁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에게 주어지는 대가는 이 짐을 감당하기에 너무나 턱없이 모자랍니다.

STX 이사회는 올해 강덕수 회장이 회사발전에 공헌한 점을 인정해 100억 원대의 보너스를 지급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다른 임원들에게도 역시 이에 상응한 보너스가 성과급으로 지급되었습니다. 자기들끼리는 고속 성장한 회사를 축하하며 이미 모든 논공행상을 다 벌였습니다.

STX 본사 앞에서 항의시위 중인 마산 수정만 매립 반대 시민들. 사진=2kim.idomin.com 김훤주 기자


월드 베스트 STX? 월드 베스트 악덕기업!!

그러나 강덕수 회장이 약속한 “5년 안에 정규직과 비슷한 대우를 해주겠다”는 말은 이미 거짓말이 된지 오래입니다. 게다가 ‘World Best STX’ 하청노동자들에겐 ‘노사협의회’마저 없습니다. 법이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부여한 강제적인 보호 장치도 그들에겐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STX는 법에 보장된 노사협의회마저 허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만주에 독립운동 자금 부치듯 비밀리에 유인물이 STX 조선소에 뿌려졌습니다. 앞으로 STX조선과 STX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매우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2008. 12. 26.  파비                 

STX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은 2kim.idomin.com 에 가셔서 STX를 검색해보세요. 참고로 STX중공업이란 회사는 완전히 하청 비정규직노동자들만으로 돌아가는 회사라고 하는군요. 말하자면, 공장에 본사 직원이 없다는 말입니다.  

<노사협의회 설치를 요구하는 STX 하청노동자들이 배포한 유인물>

노사협의회 설치하여 우리 권리 우리가 얻어내자!!

STX조선 하청노동자들은 봉인가?

STX는 재계 순위 20위권의 대기업이다. 단기간의 고속성장을 이룬 배경에는 열심히 일한 하청노동자들의 땀이 서려있다. 그러나 우리 하청노동자들은 70년대보다도 못한 열악한 근로조건 속에 버려져 있다. 근로기준법이 정한 주 40시간 노동도 우리에겐 그림의 떡이다. 정규직들이 토요일에 여가를 위해 떠나는 차량행렬을 비집고 우리는 일터로 향해야 한다. 장시간 노동에도 우리가 받아가는 임금은 최저생계비를 겨우 웃도는 형편없는 수준이다.

70년대 탄광보다도 형편없는 복지시설

200명도 넘게 수용하는 탈의실에 샤워기는 고작 10개가 고작이다. 뜨거운 조선소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하루 종일 땀 흘린 우리 하청노동자들 깨끗하게 씻고 집으로 돌아갈 자유도 없다. 힘들게 일하는 우리에게 지급되는 점심식사는 2600원짜리 ‘짬밥’이다. 이런 형편없는 밥을 먹고 쇳가루와 먼지가 뒤범벅이 된 현장을 책임지라는 회사는 악마가 아닌가.

상여금이 고작 100%, 이게 뭡니까?

STX 강덕수 회장은 100억대에 달하는 상여금을 보너스로 받았다고 한다. 열심히 일한 대가를 받는 것에 토를 달 사람은 없다. 그럼 강덕수 회장이 100억대의 보너스를 받을 동안 우리 하청노동자들은 아무 일도 안 하고 놀았는가. 그래서 우리에겐 고작 상여금 100% 지급도 아까워하는 것인가. 지금 세상에 상여금을 100% 받는 회사가 있다고 하면 지나던 개도 웃고 말 것이다.

월드베스트 STX? 월드베스트 악덕기업!!

새벽밥을 먹고 나와 하루 16시간 이상을 회사에 몸 바친 우리가 이런 대우를 받고 살아야하는 것이 바로 STX의 월드베스트다. STX에겐 일당 4만 원짜리 노동자들을 하청 비정규직으로 고용해 장시간 노동으로 부려먹는 월드베스트다. 토요일을 무급으로 만들어 강제로 노동을 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도록 만드는 월드베스트다. 노동자들의 피를 빨아 자기들 배만 채우겠다는 월드베스트다.

강덕수 회장이 “5년 안에 정규직과 비슷한 대우를 받도록 해주겠다!”던 약속은 이미 거짓말이 되었다. 이에 우리는 요구한다.

1. 하청노동자들에게도 연간 상여금 500%를 지급하라!

2. 토요일을 비롯한 무급휴일을 폐지하고 유급휴무제를 실시하라!

3. 사내 복지시설, 자녀 학자금 등 복지혜택을 정규직 수준으로 대우하라!

노사협의회를 구성해서 우리의 권리는 우리가 스스로 얻어내야 한다

전체 하청노동자들에게 호소한다. 이런 요구들은 우리가 아무리 한다고 해도 STX자본과 하청업체가 들어줄리 만무하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노사협의회를 설치해야 한다. 노사협의회는 법에으로도 보장돼 있다. 앞으로도 형편없는 복지시설에서 2600원짜리 짬밥을 먹으며 토요일에도 쉬지 못하고 일하고 상여금 100%에 감지덕지하면서 계속 STX의 봉이 될것인가? 아니면 우리 권리를 회사에 당당히 요구할 것인가?

하청노동자 여러분! 우리 모두 힘을 모읍시다.

노사협의회 설치하여 우리의 권리는 우리가 찾읍시다.

노사협의회 설치를 요구하는 STX 하청노동자 일동

Posted by 파비 정부권

김주완 기자는 경남도민일보 기자입니다. 그는 기자 신분을 십분 활용해서 지역현대사에 관한 누구도 넘보기 어려운 커다란 업적을 쌓았습니다. 주로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일어났던 민간인학살을 들추어내기 위해 지난 수년 간 그가 닳아 없앤 신발만 해도 상당하리라 짐작합니다. 

그런 그가 엊그제 그의 블로그에 올렸던 기사 「70 노인이 말하는 빨갱이의 정의 
http://2kim.idomin.com/521」에 실린 70대 노인의 육성은 그야말로
지난 수년 간 돌아다니며 파헤친 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살아있는 역사였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굴비처럼 엮여가서 죽은 사람들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었습니다. 심지어 남자가 멀리 출타하고 없자 그의 아내를 대신 엮어가서 죽였다는 이야기엔 넋을 잃을 지경이었습니다. 

산청군 시천면 외공리 발굴현장에서 유해의 상태를 설명하는 이상길 교수. 경남도민일보/김주완기자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말들이 많습니다. 이런 진실을 밝혀내는 사람을 도리어 빨갱이라고 모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자 이어 김훤주 경남도민일보 언론노조지부장이 거들었습니다. 역시 그의 블로그에다 「21세기의 ‘빨갱이’와 150년 전의 ‘천좍쟁이’ http://2kim.idomin.com/523」란 제목으로 권력자들이 빨갱이를 어떤 용도로 이용해왔으며 빨갱이의 제대로 된 정의가 무엇인지 밝혀주는 좋은 글을 실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의 빨갱이에 얽힌 이야기들 듣다보니 저도 갑자기 빨갱이에 관한 오래 된 추억이 하나 떠오릅니다. 저도 예전에 빨갱이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결혼 전
지금의 처가에 인사드리러 갔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한창 때인 20대였는데, 연애 중이었던 아내가 집에 인사드리러 가자는 말에 아마 엉겁결에 가게 되었지 싶습니다.  

그때 저는 노동조합 일로 경찰에 지명수배 중이었고 제 아내는 마산수출공단 어느 공장의 노조 위원장이었습니다. 미리 이야기가 있었던지 장인, 장모님과 위로 언니 세 분과 형부들이 모두 모여 있었습니다. 제가 수배자라고 미리 언질이 있었으므로 모두들 긴장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막상 저를 보더니 약간 안심하는 눈치였습니다.

제가 당시만 해도 허우대가 꽤 멀쩡했습니다. 그래서 그랬던지 뭐 그렇게 대단한 빨갱이처럼 보이지는 않았나 봅니다. 어른들에게 큰절을 올리고 몇마디 물어보시고 대답하고 하는 의례적인 순서가 지나가고 과일상이 나오고 모두들 편하게 둘러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리려는 순간, 갑자기 제일 손위 처형이 대뜸 말씀하셨습니다.

"이 두 사람은 빨갱이 사상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래도 안 돼. 두 사람은 고마 저 위에 평양에 올라가서 결혼하고 거기서 살든지 해."

"사람에게는 저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재능, 기독교에서는 이를 신이 부여한 운명으로 여기는 모양)가 있는데 그 달란트대로 살아야 되는 거야. 그걸 부정하는 사람이 바로 빨갱이지."

참고로 우리 큰처형과 큰동서는 서울에서도 꽤 큰 교회의 집사와 장로입니다. 대뜸 저더러 자기 동생 데리고 평양 가서 김일성이 밑에서 살라고 하니까 황당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몇 년 후에 무사히 결혼을 했고 애도 낳고 잘 사는지는 모르지만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그때는 노조만 한다고 해도 모두 빨갱이로 보는 시절이었으니 큰처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그분들이 저를 빨갱이라고 생각하시진 않는 거 같습니다. 저나 제 아내가 약간 좌파적 경향을 갖고 있는 건 알지만, 그렇게 (그분들이 생각하는 머리에 뿔 난) 숭악한 빨갱이처럼 보이진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오래지않아 학교 선생님들도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일반 공무원들도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들과 대학교수에 공무원들까지 모두 빨갱이가 된 셈입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머잖은 장래에 경찰들도 유럽 선진국처럼 노조를 만드는 세상이 올 겁니다.  

그런데 아직도 세상에선 빨갱이가 유령이나 악마의 거죽을 쓰고 돌아다니고 있으니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젊은 사람들 중에도 빨갱이 타령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그놈의 유령이 끈질기긴 끈질긴 모양입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계속 거꾸로 돌다가는 어지러워서 모두 다 쓰러지고 말 것이 걱정입니다.  

2008. 11. 10.  파비

습지와 인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김훤주 (산지니,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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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