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완 기자'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03.04 기자들이 사장을 뽑기도 자르기도 하는 신문사 by 파비 정부권 (25)
  2. 2010.01.31 사이판에 간 천하무적야구단이 불편한 이유 by 파비 정부권 (71)
  3. 2009.11.01 올챙이 블로그 1년만에 블로그 강사가 되어보니 by 파비 정부권 (20)
  4. 2009.09.21 선덕여왕은 실제로 미인이었을까? by 파비 정부권 (7)
"기자들이 신문사 사장을 자른다고?" 경남도민일보 서형수 사장 사퇴 파문
 

제목과 같은 신문사가 있을까요? 있습니다. 아주 특이한 경우지만 이런 신문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경남도민일보가 그렇습니다. 국민주주신문으로 알려진 한겨레신문사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경남도민일보는 사장과 편집국장을 기자들이 뽑습니다.

경남도민일보의 진짜 주인? 사장과 편집국장 임명권을 가진 기자들이었다

요즘 MBC가 KBS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이 내려 보낸 낙하산 사장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회사 정문을 가로막고 사장의 출근을 저지하고 있지요. 그러나 경남도민일보는 이런 일이 일어날 일이 없습니다. 신문사의 주인이 특정 자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진= "김주완 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에서 인용


경남도민일보의 주인은 도민들로 구성된 주주들입니다. 도민들이 십시일반해서 모은 돈으로 만든 신문사가 바로 경남도민일보인 것입니다. 저도 그 십시일반에 동참했으니 주인중의 한 명인 셈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소위 ‘김주완 편집국장 임명사태’는 저 같은 사람은 주인 축에 낄 수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의 진짜 주인은 기자들이었습니다. 기자들은 사장을 임명할 수도 있고, 편집국장을 임명할 수도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추천된 사장이나 편집국장을 기자들이 투표로 결정하는 제도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제도는 경남도민일보의 창간 과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창간주체의 핵심이었던 창간기자들이 만든 제도였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것은 어떤 언론사에서도 볼 수 없는 아주 민주적인 제도였습니다. 경영권으로부터 완전하게 독립된 편집권, 그야말로 꿈의 시스템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조중동에 이런 제도가 도입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물론 절대 불가능한 일이란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방에 자랑할 만한 이 제도로 인해 뜻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사장이 임명한 편집국장 동의안을 부결시켜 떨어뜨린 경남도민일보

사장이 추천한 편집국장 임명동의안을 기자들이 부결시키는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불행히도 그 당사자는 경남도민일보의 대표선수라고 할 수 있는 김주완 기자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김주완 기자 없는 도민일보를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김주완 기자가 사장에 의해 편집국장으로 임명됐고, 그걸 기자들이 떨어뜨렸습니다. 


외견상으로는 어떤 언론사에서도 볼 수 없는 가장 민주적인 제도에 의해 사장이 임명한 편집국장이 떨어진 것에 대해 이의를 달 일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이 일종의 반란이라는 유력한 주장이 있는 것입니다. “반란이라고?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경남도민일보는 창간 이래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습니다. 특히 경영상의 위기는 자그마한 지역신문사에겐 늘 달고 다니는 위궤양 같은 것입니다. 위궤양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나중에 암으로 발전할 수도 있지요. 그래서 경남도민일보는 타개책으로 서형수 한겨레신문 전 사장을 영입했던 것입니다.


서형수 사장은 경남도민일보의 위기를 타개할 방법으로 개혁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의 일환으로 자신의 개혁의지를 가장 잘 반영할 인물이라고 판단한 김주완 기자를 편집국장에 임명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기자들이 사장이 임명한 편집국장에 동의하지 않는 초유의 불상사가 발생했습니다.


김주완 편집국장 임명은 서형수 사장의 개혁의지의 표현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들리는 바에 의하면 이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편집국장 임명동의안 부결을 조직적으로 만들어낸 세력이 있으며 결국 이들의 입김이 승리했다는 의혹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의혹은 그저 의혹일 뿐입니다. 그러나 여기엔 의혹이란 말로 쉽게 넘어가기 어려운 지점들이 있었습니다. 


서형수 사장이 취임한 이후 취한 개혁적 조치들 중에는 몇 가지 재정적 과제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중 하나는 경영관계 국장이 가져가는 광고비 리베이트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광고수주는 경영관계 국장으로서는 당연히 해야 할 업무에 속합니다. 그런데 광고비의 1%가 무조건 경영관계 국장의 손으로 들어가는데 대해 서형수 사장이 칼을 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제보해 준 한 내부구성원의 말에 의하면 그 금액이 대략 3~4천만 원 정도 된다고 합니다. 작은 금액이 아닙니다. 지역 주재기자들에게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들도 지자체로부터 받는 광고비의 20% 가량을 리베이트로 챙긴다고 했습니다. 이걸 서형수 사장이 전격적으로 자른 것입니다.


사진= 김훤주 기자 블로그에서 인용


불만이 있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만약 이러한 의혹들이 사실이라면, ‘김주완 편집국장 임명동의안 부결사태’가 개혁에 저항하는 내부세력의 반란이란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풀리지 않는 하나의 의문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제가 듣기에 주재기자 수는 서울을 포함해 모두 열일곱 명이라고 했습니다.


제기되는 조직적인 반란투표 의혹, 기득권 세력의 반발?

아마도, 꼭 집어 말하지는 않지만, 뉘앙스는 경영관계 국장과 외부 주재기자들이 일으킨 반란으로 들렸습니다. 그런데 투표결과는 28대 30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17명 외에도 최소 13명 이상의 본사 기자들도 동조했다는 얘깁니다. 그들은 대체 누구였을까요? 이에 대해 김주완 기자는 사직의 변에서 이 사태를 개혁세력에 대한 '사내좀비'들의 반발로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김주완 기자는 자신의 이름이 계속 거론되는 것에 대해 매우 불편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의 이름을 계속 부르는 것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잔인한 행위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경남도민일보의 간판기자인데다 이 사태가 가져올 파장이 만만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영상의 문제는 사원들과 주주들이 힘을 모으면 풀 수 있는 문제입니다. 2003년 경영파동 때 김주완, 김훤주 등 여러 기자들이 힘을 모아 돈도 모으고, 우리사주조합을 만들었던 경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청체성의 위기입니다. 경남도민일보가 창간정신에서 천명한 정체성을 버리고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우리의 경험은 “결코 없다!”고 말합니다.

자,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의문을 제기하고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기자들이 투표를 통해 사장과 편집국장 추천에 동의하는 (결과적으로는 임명하는) 제도를 여전히 민주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아니오.” 창간초기에는 가장 민주적이고 바람직한 제도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경남도민일보의 진짜 위기는 재정이 아니라 정체성이다 

기자들 중에는 창간주체가 아닐 뿐 아니라 창간정신 따위엔 전혀 관심도 없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기자는 이병철 삼성그룹 전 회장을 일러 호암선생이라고 부르며 기사를 쓰기도 합니다. 여기에 대해선 제가 직접 비판한 바가 있습니다. <☞관련기사; 경남도민일보, '약자의 힘' 어디로 갔을까?> 좀 과격한 표현을 빌자면, 고양이에게 생선가게 주인을 뽑으라고 시키는 꼴이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주주요 독자의 한사람으로 매우 당혹스럽습니다. 며칠 후면 지면평가위원회가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지면평가위원들의 진지하고 냉정한 평가를 기대합니다. 이보다 더 중대한 지면평가 사안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논의를 중단하고 이 부분에 대해 집중 토론하는 태도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주주, 독자들의 각성입니다. 창간할 때 푼돈 좀 내고 신문 한 장 받아보는 것으로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하면 안 되겠지요. 주인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되새길 좋은 기회로 삼는다면 이번 사태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창간할 때의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일어서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결국 서형수 사장이 2/25 이사회에서 사퇴의사를 밝혔다고 하는군요.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일부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편집국장 동의투표가 사실상 사장 신임투표가 된 셈입니다. 사장의 사퇴선언에 반대하는 기자들이 피켓팅을 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일부 기자들과 경영진 중에는 반기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필이면 이 글을 쓰면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같은 시가 생각나는군요.

아무래도 마침 엊그제가 삼일절이어서 그런 것일 테지요. 아마 그런 것이 분명하겠지요. 그리고 그래야지요. 아무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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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총격사건 피도 안 마른 사이판 가서 희희낙락 전지훈련, 
네티즌들이 받아낸 사과에 찬물 끼얹는 천하무적 야구단, 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일까?
  

KBS가 사이판에서 찍은 오락 프로그램이 결국 방송되었군요. 천하무적 야구단입니다. 저는 사실 천하무적 야구단이 무얼 하는 팀인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천하무적 토요일》이란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연예인 야구단(사회인 야구단인가?)이란 것 정도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도 최근에 알게 됐습니다. 한 1주일 정도 됐을까요.


천하무적 야구단의 전지훈련 장소 사이판은 어떤 곳인가? 

사이판은 작년 11월 20일 대한민국의 관광객 6명이 총기난사 사고를 당한 곳입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 중에 한 분은 저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사이판에 도착한 첫 날 무차별 총기 난사에 척추를 관통당하는 총상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걷지 못하고 휠체어를 타야만 움직일 수 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이판 당국은 피해보상은커녕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기들 나라에선 범죄피해자 보상제도가 없다는 것이 이윱니다. 사이판으로 여행을 주선한 여행사 하나투어도 마찬가집니다. 그들도 여행자보험에서 제공하는 기본적인 보상 말고는 한 푼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전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란 게 이유였습니다.

좋습니다. 사이판 당국이나 여행사의 경우엔 사과나 피해보상을 해줄 경우 앞으로 발생하게 될 사고―총기난사와 같은 불의의 사고가 또 일어나게 될 것을 예상한다는 게 웃기는 일이지만―마다 매번 공식 사과하고 보상해야하는 전례를 만들기 싫어서라고 치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어차피 사람을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는 어땠을까요? 대한민국 정부는 사이판 당국이나 여행사보다 더 가관이었습니다. "우리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차라리 인터넷에 호소해보는 게 어떻습니까?" 이게 대한민국 정부의 대답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부산에서 발생한 실내사격장 화재사건으로 일본인들이 사망하자 국무총리가 현장으로 가 무릎을 꿇고 사죄한 것과는 대조적인 처삽니다.

좀 비약해서 말하자면,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을 일본인보다 하찮게 생각한다고 볼 수밖에 없는 태도였습니다. 그럼 정부는 그렇다 치고 불의의 총격에 반신불수가 된 피해자가 살고 있는 마산은 어땠을까요? 마산시장도 사이판 당국이나 여행사나 대한민국 정부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뽑아준 시민이 사이판에서 총에 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도 그는 문병 한 번 가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이 사건에 관해 가타부타 말이 없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산시 의원들도 마찬가지로 아무도 입을 연 사람이 없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부터 여행사, 마산시장, 마산시 의원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사건을 네티즌들에게 미루었던 것입니다. 

네티즌들이 받아낸 사이판 정부의 사과와 보상 약속, 천하무적 야구단이 찬물 끼얹나

대한민국 정부와 유력 언론사들마저 외면했던 이 사건은 결국 지역의 힘없는 언론사(경남도민일보)와 몇몇 뜻있는 네티즌들에 의해 여론화되었습니다. 두 달 넘게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네티즌들의 노력으로 외면하던 방송사들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방송3사들이 이 사건을 재조명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뒤이어 심층취재 프로그램을 내보내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사이판 당국이 마침내 공식 사과와 함께 보상을 약속했다는 기사가 1월 29일 경남도민일보에 실렸습니다. 그러나 공식 정부의 보상이 아닌 민간기금을 통한 보상이란 점에서 논란의 여지는 계속 남아있습니다. 마산시장도 그토록 무겁던 몸을 일으켜 피해자의 병실에 문병을 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데, 이렇게 네티즌들의 노력에 의해 사태가 해결되려고 하는 즈음 갑자기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천하무적 야구단이 사이판에서 전지훈련 하는 장면을 담은 오락프로그램이 어제 저녁 공중파를 타고 전국에 방송된 것입니다. 천하무적 야구단이 사이판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는 김주완-김훤주 블로그의 기사를 접했을 때만 해도 저는 설마 했습니다.  

그러나 이 참담한 기사는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김주완 기자가 자기 블로그에서 지적한 사이판 당국의 로비가 총격사건을 희석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천하무적 야구단을 타겟으로 삼았을 것이란 의심은 방송을 보고 난 후에 거의 진실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항공기 2등석에 앉아 희희낙락하는 연예인들을 보며 그런 의심이 안 든다면 더욱 이상한 일이지요.


김주완 기자 블로그가 의혹을 제기한 북마리아나(사이판) 관광청 한국사무소가 발행한 뉴스레터 2010년 1월호 

물론 이건 저의 의심일 뿐입니다. 시청자들로부터 돈을 물 쓰듯 한다고 따가운 눈총을 받는 그 행위가 사이판 당국의 로비가 아니라 KBS의 자체 제작비로 만든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KBS 시청료 인상과 맞물려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 그 행위가 사이판의 로비의 결과였다면 이는 보통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사이판에 전지훈련 가서 희희낙락하는 연예인들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그들은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약간의 사회의식이라도 요구한다면 그건 난센습니다. 물론 연예인들 중에도 김미화나 김제동처럼 뛰어난 사회의식을 겸비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천하무적 야구단 전지훈련, 꼭 사이판서 해야 되나

그러니 천하무적 야구단의 일원으로 사이판에 간 연예인들에게 거기 왜 갔냐고 따질 필요까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설령 따진다 한들 그들의 귀에 잘 들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천하무적 야구단을 만드는 제작진, 감독은 다릅니다. 그들은 이 프로그램이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고민했어야 합니다.

사이판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당한 총격에 고통 받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사이판 당국은 웃게 될 것이고, 고통당하는 피해자는 울게 될 것이란 사실도 알았어야 합니다. 그런 생각도 없이 프로그램을 만들면 평생 딴따라 소리 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제 방송된 천하무적 야구단 사이판 전지훈련이 제 1탄이라고 하는 걸 보면 앞으로도 계속 사이판 전지훈련 장면을 방송하겠다는 뜻이겠지요? 아무리 아무 생각 없이 멍청하게 보는 오락 프로그램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한 일 아닐까요? 거기서 계속 상주하는 것도 아닐 테고 매번 항공기 2등석을 타고 사이판 홍보방송을 하겠다는 얘긴데….

국민의 시청료로 우리 국민을 불구로 만든 사이판 관광을 홍보한다니, 대한민국 국민이란 사실이 창피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 줄 알지만, 그래도 창피합니다. 아무튼 시청료를 내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사이판 말고 딴 데 가서 찍으면 안 될까요? 전지훈련을 꼭 사이판에서 해야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 위 배너를 누르면 피해자 박재형씨의 부인 박명숙씨가 네티즌들의 도움으로 만든 <푸른희망 블로그>에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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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블로그 강좌에 강사로 나서달라는 요청을 받고 나는 잠깐 망설였다. 우선 내가 블로그 강사가 될 자격이 있을까 하는 이유 때문이었지만, 무엇보다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늘 교육만 받던 처지에서 거꾸로 교육을 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내가 남들 앞에서 말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제일 문제는 그것이었다.

강의중인 필자. 강좌에 참석하신 달그리메님이 찍어주신 사진.


올챙이 블로거, 블로그 강좌에 강사로 나서다

그러나 수락하기로 했다. 우선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나에게 블로그를 전도한 김주완 기자의 부탁이니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강의를 하기로 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내가 하게 될 강좌의 내용이 교육이라기보다는 사례발표에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에 크게 부담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같은 초보블로그에게―이제 이 초보란 딱지도 떼야 하겠지만―블로그 강좌를 부탁할 때는 전문적이고 차원 높은 수준의 강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지나온 과정을 들려달라는 뜻이 숨어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경남도민일보가 주최하는 블로그 강좌의 청강생으로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던 나는 그 뜻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촉박했다. 1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강의가 열리는 당일까지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다. 게으른 사람들은 늘 여기저기 하는 일 없이 바쁘다. 게다가 블로그 강좌 전날에도 어느 강좌의 수강생이 되었던 나는 뒤풀이 자리를 새벽까지 지켰다. 해가 뜨자 나는 참으로 난감해졌다. 후회와 함께 두려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오전에 대충 일을 본 나는 점심을 먹고 나서 컴퓨터 앞에 앉아 교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막막했다. 어쩐다? 생각 끝에 나는 내가 맡은 강좌 내용을 실제로 현장에서 강의를 하듯이 그냥 글로 적기로 했다. 그러니까 컴퓨터 앞에 앉아 수강생들을 상대로 미리 강의를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리허설이라고나 할까. 

역시 블로그는 급할 때 긴요하고 훌륭한 프레젠테이션 도구

이미 주제와 소제목은 김주완 기자로부터 받았었다. 1. 블로그를 운영하게 된 계기와 이유, 2. 블로그를 하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 3. 처음 블로그를 할 때 유의할 점이나 고려할 사항, 4. 쉽고 즐거운 블로그 운영비법, 5. 글의 소재는 어디에서 찾을까, 6. 나의 히트 블로그 포스트, 7. 향후 계획 및 전망, 이렇게 받은 숙제를 인터뷰에 답변하듯 하면 되는 것이었다.

소제목마다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먼저 틀을 잡는 것이 일이었다. 이 일을 하는데 대충 30분 정도가 소진되었다. 시계는 이미 두 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고 마음은 초조하다. 강의를 한다는 기분으로 편하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이 중간에 끊어지면 안 된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거의 네 시가 다 되어서야 작업이 끝났다. 

활자 크기 10으로 A4 용지 9장 분량이었다. 매우 많은 분량이다. 이걸 1시간 이내에 끝낼 수 있을까? 시간을 재면서 다시 리허설을 할 필요가 있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빔 프로젝트로 강의 내용을 프레젠테이션 할 수 있도록 자료를 만드는 작업이 남았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다른 프로그램을 이용할 거 없이 그냥 블로그에 자료를 만들어 담기로 했다. 

역시 블로그는 급할 때 긴요하고 훌륭한 프레젠테이션 도구다. 그런데 이것도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제목과 소제목, 간단한 설명을 다는 것은 금방 마칠 수 있었지만, '나의 히트 블로그 목록'을 만드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지난 1년간 쏟아낸 300여 개의 블로그를 일일이 확인하며 그 중 20여 개를 골라내고 주소를 링크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은 꽤 많은 시간을 요구했다. 

게으름으로 인해 얻은 불안과 초조는 스트레스였다

물론 시간이 충분하다면 간단한 일이었을 테지만, 7시부터 강의가 시작되니 늦어도 5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시간은 이미 5시를 넘기고 있었다. 초조한 마음 탓인지 손가락에 경련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겨우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시간은 5시 30분, 경남도민일보 강당에 도착하니 6시 20분쯤 되었다. 김주완 기자에게 빔 프로젝트와 노트북을 받아다 강의실에 설치하고 나니 6시 40분이었다.
 
남은 시간 동안 미리 작성한 강의안을 읽어보려고 했지만 워낙 장문이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대략 윤곽만 확인하고 빨간 볼펜으로 줄을 그어 중요부분이나 단락을 구분 지어두는 정도밖에 하지 못했다. 7시에 강좌가 시작되었는데 <발칙한 생각>을 운영하는 구르다님이 먼저 강의를 하고 그 다음이 내 순서였다. 

구르다님(정보사회연구소 이종은 소장)은 준비를 제대로 해 오신 것 같았다. 아니 이분은 정보사회연구소에서 평소에 블로그 강좌를 연다고 했다. 그러니 이미 충분히 단련된 훌륭한 강사였다. 거기다 블로그 경력도 거의 5년이라고 했던가? 그는 이미 블로그 전도사 역할을 충실히 해오던 선교사였다. 말하자면, 준비된 강사였던 것이다. 

그의 강의를 듣는 내내 나는 더욱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 저렇게 준비도 많이 하고 말씀도 잘하시면 이거 참 곤란한데….' 그러나 사람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궁지에 몰린 쥐처럼 변할 수도 있는 법이다. 이런, 비유가 너무 지나치게 어울리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그냥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에이, 될 대로 되라지.'

포기하는 순간 찾아온 마음의 평화와 여유

'강의가 아니라 사례발표를 한다고 생각하자. 그리고 실제로 교육내용이 사례발표 아니던가. 그저 지인들 앞에서 편안하게 내가 지나온 길을 들려준다고 생각하자.' 그러자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도 두세 차례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 이유는 경험해보신 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사람이 긴장하면 오줌이 자주 마려운 법이다. 

그러나 훨씬 편안해진 마음으로 시작한 강의는 무리 없이 진행되었던 것 같다. 그냥 이웃들과 어울려 내가 경험하고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니 이보다 더 편하고 재미있는 일이 없었다. 시간이 모자랐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1시간이었지만 그걸 다 쓸 수는 없었다. 앞에서 시간이 초과한 탓이었다. 시간이 30분만 더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나의 히트 블로그 포스트'를 소개할 때 제목 달기나 사진 배치, 소재 발굴 등에 대해 이야기를 곁들일 생각이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사실은 이게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자를 수밖에 없었다. 9시까지는 교육을 마쳐야 질문 30분 정도 받고 3교시 뒤풀이로 갈 수 있다. 청강생들에겐 뒷풀이 시간이 더 기다려진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나 잘 아는 것이다. 

9시 10분에 강의를 마쳤다. 소요시간은 약 50분이었다. 그러나 기지를 발휘해 제목 달기에 대해서는 질의응답 시간에 잠깐 언급함으로써 아쉬움을 풀 수 있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이유는?' 이런 식으로 제목을 다는 게 독자들에게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훌륭한 강의를 위해선 소주제별로 적절한 시간 안배가 필요했다

"홀딱 벗으면 안 됩니다. 적당히 보여주고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정도로 제목을 다는 게 중요하죠. 그러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보신탕 때문이었다' 라고 홀딱 보여주는 제목이 때에 따라서는 어필할 경우도 있습니다. '달마, 보신탕 맛보러 동쪽으로 가다' 이렇게 갈 수도 있겠지요. 모든 건 상대적이죠. 절대적인 건 없습니다." 

그리고 나의 블로그 제목들이 변해온 과정을 잠깐 언급했는데 내가 보아도 1년 전 혹은 6개월 전의 블로그 제목들은 촌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지나치게 길거나 짧았다. 그러나 아직도 감각이 많이 모자란다. 지금도 어떤 제목을 달아야할지 막막할 때가 있다. 자칫하면 낚시 제목으로 오해 받을 수도 있고, 반대로 성의 없는 제목으로 냉대 받을 수도 있다. 

아무튼 나의 첫 번째 강의는 무사히 끝났다. 지금 마음 같아서는 출사표라도 올리고 강좌에 나섰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런 마음도 실은 마라톤을 완주하고 난 다음에야 가질 수 있는 여유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런 여유가 내게도 올지 모르겠다. 그때는 나도 김주완 기자나 이종은 소장처럼 블로그 전도사로 자처해도 되지 않을까. 

이제 겨우 개구리 발이 보이기 시작한 올챙이에 불과한 나에게 블로그 강좌를 맡겨준 김주완 기자와 경남도민일보에 감사드린다. 재미없는 강의를 졸지 않고 끝까지 들어준 블로거 여러분에게도 감사드린다. 아, 한 사람 졸지는 않았지만 하품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나의 고교 동창인데 여영국이란 친구였다. 

블로그 강의를 맡긴 경남도민일보에 감사

이 친구에게 나는 따로 강좌에 참석해달라고 연락한 바도 없는데 어떻게 알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하품을 몇 번 하긴 했지만 끝내 졸지는 않았으므로 내 친구에게도 더불어 감사드린다. 경남도민일보가 지역 언론으로서 지역 블로그의 활성화를 위해 바치는 노고가 실로 가상하다. 마지막으로 경남도민일보의 건승을 기원한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MBC 드라마에서 선덕여왕 역을 맡고 있는 이요원은 미인입니다. 지난 주 금요일 경주에 선덕여왕을 만나러 가는 길에 김주완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요원은 볼에 살이 붙으니까 예전에 비해 훨씬 낮죠. 전에는 비쩍 말라서 별로더니, 예뻐졌더라고.” 김주완 기자는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선덕여왕도 보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역시 세간의 화제인 선덕여왕을 무시할 순 없나봅니다. 선덕여왕(이요원)의 미모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니 말입니다.
 

경주 낭산 정상의 선덕여왕릉. 김주완 기자와 거다란닷컴 커서님이 선덕여왕릉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요원은 일곱살짜리 아이를 둔 애엄마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아이를 낳고 나서 훨씬 미모가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 너무 마른 것 보다는 적당하게 살이 붙어주는 게 남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점, 혹시 이 글을 보고 계신 여자분들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살이 찌면 곤란하겠지요? 적당한 운동과 적절한 식습관으로 몸매를 관리하는 것도 세계평화를 위해 좋은 일이지요. 물론 건강에도 좋습니다. 아무튼, 그렇다면 진짜 선덕여왕은 어땠을까요? 그녀는 미인이었을까요?

선덕여왕의 미모를 추정해볼 수 있는 두 개의 설화

선덕여왕의 미모에 대하여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어디에도 언급이 없습니다. 다만 김부식은 사기에서 선덕여왕의 사촌동생인 승만공주(선덕왕의 뒤를 이어 진덕여왕이 된다)의 신체에 대하여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자태가 풍만하고 아름다웠으며 키는 칠 척이고 팔을 늘어뜨리면 무릎에 닿을 정도로 길었다.” 이로 보아 선덕여왕의 자태를 가늠해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선덕여왕 역시 진덕여왕처럼 키가 크고 자태가 풍만한 아름다움을 지녔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선덕여왕의 미모를 추정해볼 수 있는 두 개의 설화가 있습니다. 그 하나가 당태종이 보냈다는 향기 없는 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당나라에서 꽃씨와 함께 그림을 보냈는데 이를 본 덕만공주는 단박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꽃은 틀림없이 향기가 없는 꽃이다.” 과연 꽃씨를 심어 후에 핀 꽃을 보니 향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는 선덕여왕의 뛰어난 지혜를 드러내고자 지어낸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와 다른 해석도 있습니다.

당태종이 향기 없는 꽃그림을 보낸 것은 선덕여왕을 비하하기 위해 그랬다는 겁니다. “그대는 미모는 꽃처럼 빼어날지 몰라도 향기 없는 꽃에 불과하니 어찌 신라의 왕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아마 이런 메시지를 보내 여왕의 권위에 흠집을 내고 분란을 일으켜 모종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계책이 숨어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어쨌든 이런 설화로 미루어 살펴보면 선덕여왕의 자태나 풍모가 범상치 않았다는 짐작을 능히 할 수 있습니다.

신라밀레니엄파크 선덕여왕세트장에서 찍은 사진

그러나 이보다 더 확실하게 선덕여왕의 미모를 짐작케 해주는 설화가 있습니다. 바로 선덕여왕을 사모하여 연못에 빠져 죽은 지귀의 전설이 그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 모르는 분이 아무도 없겠지만, 한 번 더 들어보시기로 하겠습니다.

신라 선덕여왕 시대에 지귀라는 거지가 살았습니다. 그는 활리역에서 노숙을 하며 살았는데, 하루는 서라벌에 나왔다가 행차를 나온 선덕여왕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홀딱 빠져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선덕여왕은 진평왕의 맏딸로서 성품이 인자하고 지혜로울 뿐 아니라 용모가 매우 아름다워 백성들의 칭송과 찬사가 자자했는데 한 번 행차를 나오면 모든 사람들이 여왕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위해 거리를 가득 메웠다고 합니다.

지귀, 선덕여왕의 미모에 흠뻑 빠지다

지귀도 사람들 틈에서 선덕여왕을 보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그는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못하고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니며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여왕이 날 안으면 아이고 죽겠네. 아이고 죽겠네.” 사람들이 그의 이 기괴한 행동에 화를 내며 매질을 하였으나 그의 이런 행동은 멈추지 않고 늘 선덕여왕을 사모하는 노래를 부르며 혼자 울기도 하기 웃기도 하는 등 점점 미쳐가고 있었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그를 욕하기도 하고 동정하기도 했습니다.

이 소문은 급기야 전국으로 퍼졌고 여왕의 귀에도 들어갔습니다. 하루는 여왕이 영묘사에 기도를 드리기 위해 행차를 가는데 지귀가 나타났습니다. “아름다운 여왕이여. 사랑하는 나의 여왕이여.” 지귀가 가까이 다가오자 신하들이 제지하여 그를 내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왕은 “어찌 나를 만나러 온 사람을 내친단 말이냐” 하고 신하들을 꾸짖고 지귀가 따라오는 것을 허락하도록 했습니다. 지귀는 기뻐 덩실덩실 춤을 추며 여왕의 행렬을 따라갔습니다. 

선덕여왕이 불공을 드릴 동안 탑 앞에 앉아 기다리던 지귀는 한참이 지나도 여왕이 나오지 않자 안타깝고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심신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지귀는 마침내 지쳐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불공을 마치고 나오던 선덕여왕은 쓰러져 잠이 든 지귀를 보았습니다. 자기를 사모하다 지쳐 잠이 든 지귀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여왕은 자신의 팔목에서 팔찌를 풀어 잠든 지귀의 가슴(성기 위 옷 부분이란 설도 있다)에 올려놓고 떠났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무튼 잠에서 깬 지귀는 선덕여왕이 자기의 사랑을 인정해준 것이라고 여기고 팔찌를 가슴에 꼭 껴안은 채 기뻐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가슴속에서 터져나온 불길에 온 몸이 새빨간 불덩어리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지귀가 탑을 잡고 일어서다가 탑도 불기둥에 휩싸였으며 거리도 온통 불길로 뒤덮였습니다. 이후부터 불귀신으로 변한 지귀가 세상을 떠돌아다니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화재를 당하는 백성들이 늘어나자 선덕여왕은 다음과 같은 주문을 지어 집에 붙이게 했습니다.  

지귀는 마음에 불이 일어
몸을 태우고 화신이 되었네.
푸른 바다 밖 멀리 흘러갔으니
보지도 말고 친하지도 말지어다.

볼 만한 것도 많고 공연도 재미있었다. 그러나 식당 음식맛이 없었다. 아무리 좋아도 음식 맛이 없으면 다 안 좋게 된다.


거지의 사랑도 받아들일 줄 아는 선덕여왕이야말로 절세의 미인

그러자 모두 화재를 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선덕여왕이 지어준 주문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불귀신이 된 지귀가 선덕여왕의 뜻만 쫓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불귀신이 되어서도 선덕여왕을 향한 지귀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지귀의 숭고한 사랑도 대단하지만 대체 선덕여왕의 미모가 얼마나 빼어났기에 귀신의 마음마저 움직였던 것일까요? 어쨌든 위 두 개의 설화를 통해 우리는 선덕여왕이 대단한 미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덕여왕의 미모는 무엇보다 노숙을 일삼는 거지와 같은 일반 백성의 사랑도 받아들일 만큼 넓은 도량을 가진 마음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MBC드라마의 선덕여왕도 백성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주의 신분을 회복했음에도 죽방을 일러 여전히 ‘형님’이라고 불러주는 덕만, 선덕여왕의 아름다움은 바로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귀의 전설에 나오는 선덕여왕도 마찬가지죠. 누가 감히 선덕여왕처럼 할 수 있었을까요?

그러므로 선덕여왕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절세의 미녀였음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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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