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초고왕'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5.02 근초고왕과 진홍란이 쇠꼬비를 양자로 삼은 이유 by 파비 정부권 (23)
  2. 2011.03.23 근초고왕, 이혼녀의 재혼금지 필요한 이유? by 파비 정부권 (13)

그러지 말았으면 하고 바랐는데, 결국 근초고왕의 뒤를 잇는 근구수왕은 여화의 아들 쇠꼬비가 되는 것인가요? 늘 그렇습니다만, 왕이 될 자들은 마치 커다란 고난을 겪어야만 하는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부여구도 비류왕으로부터 버림받고 요서에서 소금장수로 젊은 나날을 보냈습니다. 비류왕으로부터 왕재를 인정받고 후사를 이어받을 참이었던 여구는 비류왕을 암살하고 왕이 된 계왕으로부터 핍박당해 다시 요서로 쫓겨 갔으나 갖은 고난 끝에 다시 돌아와 근초고왕이 됐습니다.

여구에겐 두 아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진홍란으로부터 얻은 태자 부여근이요, 다른 하나는 여화가 낳은 아들 쇠꼬빕니다. 아시겠지만, 여화가 낳은 아들은 여구가 요서에서 전연과 전쟁을 하는 중에 일으킨 위례궁의 반란 때 죽었습니다.

그러나 죽은 줄 알았던 여화의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입니다. 사태의 진상은 이렇습니다. 여화의 아들을 죽이려는 세력은 진씨족뿐만 아니라 위례궁과 해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백제의 모든 세력들이 서로 다른 이유로 여화의 아들을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화의 아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여화의 아들을 죽이란 명을 받은 해건의 심복 을마흘은 여화의 시녀장 단단이와 함께 궁을 빠져 나가 목지국으로 숨어들어 곡나부 철산에서 야장이 되어 자기 아들처럼 키우며 살았던 것입니다.

장성한 쇠꼬비가 곡나부에 들른 여구를 구한 것은 운명이었을까요? 여구는 쇠꼬비의 소원대로 한성으로 데려가 태자 여근의 호위장으로 임명합니다. 그런데 쇠꼬비가 지난주에 이어 이번엔 태자 여근을 구했군요.

남당에 모인 대신들 앞에서 쇠꼬비는 어라하로부터 위사군 장군을 하사받게 됩니다. 고구려군에 의해 죽을 뻔한 태자를 목숨을 바쳐 구한 것은 곧 백제를 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왕후 진홍란이 이 정도 상으론 부족하다며 양자로 세우겠다고 결정합니다.

물론 진홍란이 쇠꼬비를 양자로 삼기로 한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쇠꼬비가 한성으로 가자 신분이 들통 날까 불안해진 을마흘과 단단이도 부랴부랴 한성으로 따라옵니다. 쇠꼬비가 들고간 여화의 머리끈을 되찾기 위해서지요.

참나, 쇠꼬비는 그런데 여화의 머리끈은 왜 들고 간 것일까요? 어머니(단단이)가 가장 아끼는 물건인 줄 알면서, 그래서 머리에 매지도 못한다는 걸 알면서 말입니다.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 머리끈으로 쇠꼬비의 출신내력이 이렇다 사람들이 알게 함이 목적이지요.

좀 어설프다 싶긴 합니다만, 그냥 넘어가기로 하지요. 아무튼 쇠꼬비의 정체는 쇠꼬비 본인과 생모인 여화만 모르고 모두들 알게 됐습니다. 아니 아직 진씨족과 해씨족도 모릅니다. 이들이 알게 된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지요. 당장 죽이려 난리가 날 겁니다.

자, 이쯤에서 태자 여근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지요. 여근은 진홍란의 아들입니다. 전연이 쳐들어오자 여구가 군사를 이끌고 요서로 떠난 사이 해씨족들과 위례궁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와중에 진홍란은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고, 만삭이 된 배를 발에 차이는 등 큰 고난을 겪었습니다.

이때 그런 생각을 했었죠. 태중에서부터 저토록 고초를 겪으며 자랐으니 강성한 군주가 될 자질을 타고 태어날 수도 있겠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의심할 여지없이 진홍란의 아들이 근구수왕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게 순리라 생각했습니다.

허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태자 여근은 여구가 만들어놓은 넓은 백제를 경영하기엔 너무나 단순한 성격을 가졌습니다. 흑과 백이 그에게 너무나 뚜렷한 것입니다. 그는 진씨족을 매우 경멸합니다. 외가이면서 장차 처가가 될 진족이 그는 매우 부담스럽고 화가 납니다.

“내 아비가 어라하고 내가 장차 어라하가 될 것인데 어찌 감히 진족 따위가 우리를 능명하는가” 하는 것이 그의 생각이죠. 맞습니다. 왕권이 서지 못하면 나라가 강성해질 수 없습니다. 특히 당대는 삼국이 정립되기 시작하는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정치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측근들의 결속을 다져 우군을 확대하는 한편, 비판세력을 포용해 다독이면서 반격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은 정치의 주요기술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여근은 측근의 결속을 다지기는커녕 내쳐 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내가 낸데” 하는 생각 때문이지요. 그런 그의 태도를 보는 순간 아뿔싸, 여구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자는 태자 여근이 아니라 쇠꼬비로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고구려 태왕의 태자(후일 소수림왕이 되나요?)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저자를 반드시 죽여라. 후일 고구려에 큰 근심이 될 자다!”

그러나 쇠꼬비가 근구수왕이란 판단엔 무엇보다 진고도의 딸 진아이와의 관계가 작용했습니다. 근구수왕의 장인은 진고도입니다. 그러니 여구의 뒤를 이어 어라하가 되려면 진아이와 결혼해야만 합니다. 헌데 태자 여근은 진아이에겐 관심도 없고, 경멸의 눈길만 보냅니다.

반면에 여근에게 무시당하는 진아이를 바라보는 쇠꼬비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연정이 싹트고 있는 것이지요. 허, 그것참. 꼭 MBC 선덕여왕의 덕만공주를 보는 듯합니다. 단단이는 그럼 뭐가 되는 거지요? 소화가 되는 거네요. 근초고왕은 진평왕이고요. 하하~

에혀~ 아무튼 저로서는 매우 불만입니다. 왜 꼭 2대에 걸쳐 이런 진부한 시추에이션을 만들어야만 하는 건지… 그냥 진홍란의 아들 부여근을 근구수왕으로 만들면 안 되는 건지… 그러면 너무 재미없다고 생각했을까요? 하지만 그걸 재미있게 만드는 게 작가의 능력이지요.

쇠꼬비가 여구의 뒤를 이어 어라하가 되기엔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가 부여화라는 거지요. 사료에 의하면, 근구수왕은 왕후도 진씨이지만 어머니도 진씨라고 합니다. 즉 근구수왕은 어머니가 부여화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편법을 쓴 것일까요? 근초고왕 부여구가 왕후 진홍란에게 쇠꼬비의 정체를 알리면서 양자로 세워줄 것을 부탁했고, 처음에 이를 거절했던 진홍란이 쇠꼬비를 양자로 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로서는 매우 불편한 설정이긴 합니다만,

이로써 작가는 쇠꼬비가 백제의 다음 왕이 되는데 장애물을 제거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럼 태자 여근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혹시 일본에서 온 야마타이국의 진구공주와 결혼해서 아예 일본으로 가버리는 그런 설정으로 가는 것은 아닐지….

야마타이국은 지금은(드라마 시점) 비록 백제의 한 고을 정도에 지나지 않는 자그마한 나라일 뿐이지만, 장차 야마토 정권을 수립해 오늘날 일본 천황족이 되는 중요한 나랍니다. 어쩌면 쇠꼬비에게 대권을 주는 대신 여근에겐 일본 야마토 정권의 시조 자리를 주려고 하는 걸지도.

곧 고흥의 수제자 왕인박사도 나올 것으로 보이니… 대충 제 예감이 틀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저는 진홍란의 아들 여근이 근구수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여화야 한 일이 뭐 있나요. 여구와 백제에 만날 근심만 안겨줬지요.

지금은 또 뭘 하고 있지요? 역모를 꾸미고 있지 않습니까. 친정이 고이왕통이면 고이왕통이지, 무슨 초고왕통을 무너뜨리고 고이왕통을 세우겠다는 황당한 음모나 꾸미는 얼빠진 부여화에 비해 진홍란이야 정말 한 일이 많지요.

하여간 진홍란을 위해서라도 이건 정말 아니다 싶습니다. 이건 제 개인적 감정이긴 합니다만, 부여화, 정말 미워요.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여잡니다. 그런 부여화를 싸고 도는 여구도 마찬가지고요. 내가 볼 땐 여구는 고구려 태왕 사유에 비해 턱없이 왕재가 모자랍니다. 카리스마가 없어요.

아이고, 이거 이야기가 삼천포로 막 새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만, 제 결론을 말씀드리고 끝내지요. 결국 쇠꼬비가 여화의 아들이란 사실은 드러나게 될 겁니다. 양자로 세운다고 여화의 아들이 진홍란의 아들이 될 수 있나요?

그러니 작가님. 쇠꼬비를 왕으로 만들겠다는 무협지 같은 생각 버리시고 그냥 여근을 근구수왕으로 만드는 순리로 갑시다. 부여근과 진아이를 맺어주고, 쇠꼬비와 진구공주를 결혼시켜 야마토 정권을 만들도록 하는 건 어떨지요. 물론 수행비서로 왕인박사를 함께 보내야지요.

안 된다고요? 벌써 여근이와 야마타이국 공주가 키스를 해버렸다고요? 읔, 진짜 아뿔싸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랜만에 드라마 근초고왕 이야기를 해볼까한다. 사실 근초고왕이 백제 역사상 가장 강성한 군주였다는 것은 알겠지만 요서지방까지 경략했다는데 대해서는 아직 미심쩍은 감이  없지 않다. 당시의 백제는 아직 한강 일원만을 차지한 자그마한 나라에 불과했다. 여전히 경기남부, 충청 이남은 마한이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민족적 자긍심을 세우는 데는 이만한 드라마도 없는 것 같다. 요동은 고구려가, 요서는 백제가 차지하고 있었다는 역사적 가설이 사실이었으면 하는 바람은 역시 나도 알량한 민족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반증 아니겠는가. 빨간 티를 입고 월드컵 경기장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때가 사실 엊그제다.

그런데 이런 근초고왕을 민족적 자긍심까지 더하여 재미있게 보다가도 어쩌면 꼭 이렇게 이야기를 꼬아야 하나 하는 게 있다. 바로 근초고왕의 제1왕후 부여화가 낳은 아들 이야기다. 그러니까 이 아이가 누가 아이냐 하는 것인데, 말하자면 요즘 거의 모든 드라마에 동시에 소재로 등장한 출생의 비밀이 여기서도 나오는 것이다.

부여화는 근초고왕 부여구와는 친족이다. 백제의 왕족들이 부여 씨라는 성씨를 사용한 것을 보면 그들이 스스로 부여의 후예를 자처하고 있다는 말이겠다. 후에 성왕은 도읍을 사비로 옮기면서 국호를 남부여라 고치기도 했으니 이는 과장이 아니다. 백제 민족의 기원이 만주에 있다는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다.

부여화는 고이왕통의 후손이요, 부여구는 초고왕통의 후손이다. 이 두 세력은 왕권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숙적으로 백제를 반분하고 있다. 비록 부여구가 어라하(왕)라고는 하나 고이왕통의 위례궁을 무시할 수 없다. 그리하여 부여구는 제1왕후의 자리에 부여화를 앉힌 것이다. 이른바 정략결혼을 한 것.

그런데 문제는 이 부여화가 부여구와 혼인하기 전에 고구려 태왕의 왕후였다는 사실이다. 부여구가 왕이 되기 전 선대왕은 부여준이었다. 부여준은 부여화의 아버지다. 즉, 고이왕통의 수장으로 어라하가 되었던 것. 허나 초고왕통에 비해 세력이 약했던 그는 고구려의 힘을 빌리기 위해 딸을 고국원왕에게 시집보낸다.

부여화는 우여곡절 끝에 백제로 돌아왔으며, 어라하의 위에 오른 부여구와 혼인했다. 그리고 곧 임신을 하게 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부여화가 고구려 태왕의 부인이었다가 부여구의 부인이 되고 다시 임신을 한 다음 아이를 낳기까지의 시간이 열 달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참 기가 막힌 일이다. 

달을 채워 아이를 낳아도 의심의 눈초리들이 야수처럼 번뜩이는 판에 부여화는 칠삭둥이를 낳았다. 고이왕통의 근거지 위례궁을 제거하고자 호시탐탐 노리는 부여구의 가신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이들은 부여화가 임신하자마자 소위 참요란 것을 만들어 민간에 퍼뜨렸다. 한번 들어보자.

콩밭에 콩을 심었는데 어째 팥이 열렸는가.
콩밭에 콩을 심었는데 어째 팥이 나는가.
어라하의 콩밭에 고구려 팥이 열렸네.
어라하의 콩밭에 고구려 팥이 열렸네.
팥은 팥밭으로 보내야지, 보내야지, 보내야지.
고구려 팥밭으로 보내야지. 

실로 불경스런 노래다. 백제의 왕후가 고구려왕의 아이를 가졌다는 말이 아닌가. 이런 노래를 만들어 퍼뜨린 의도는 뻔하다. 부여화가 낳은 아이가 태자에 책봉되는 것을 막고 제2왕후 진홍란이 낳은 아이를 태자로 만들기 위함이다. 진 씨 가문은 전통적으로 초고왕통의 확고한 후견인.    

열 달을 채운 아이가 태어나도 고구려 왕의 씨앗이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는 자들에게 일곱 달 만에 아이를 낳은 부여화는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다. 마침내 국태공(부여구의 할아버지)은 아이를 엎으라고 명하고, 부여화는 위례궁에서 동원한 군사의 도움을 받아 궁궐을 탈출해 위례궁으로 간다.

자, 그런데 이 지점에서 따져볼 것이 있다. 부여구가 부여화를 제1왕후로 삼은 것은 고이왕통을 따르는 세력 때문이다. 그들에겐 초성리의 군사력이 있다. 이들을 끌어안지 않고서 부여구가 마한을 경략하고 고구려와 대방 땅(지금의 황해도 일대)과 요서지역을 놓고 다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그는 위례궁의 공주 부여화에게 제1왕후 자리를 준 것이다. 제2왕후는 초고왕통의 핵심이며 자신의 가장 확실한 후원자인 진 씨 가문에 내어주었다. 백제는 아마도 왕후를 두 명 두었던 모양인데, 이는 두 파로 갈라진 백제의 세력균형을 위한 고육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떻든 그처럼 용의주도한 부여구가 왜 이런 문제에 대해선 생각조차 못한 것일까? 고구려 왕후를 데려다가 자신의 왕후로 삼았을 땐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했어야 했다. 탕평책으로 분열된 백제 내부를 하나로 통일하겠다던 근초고왕의 계획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게 되었다.

그건 그렇고 혼인한지 일곱 달(혹은 여덟 달) 만에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은 부여구의 심정은 어떨까? 그도 사람인즉, 갈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도대체 남자들이란 그렇다. 루이지 조야는 <아버지란 무엇인가>란 책에서 어머니가 ‘원초적 존재’인데 반해 아버지란 존재는 ‘제도적 산물’이라고 폄하한다. 즉, 아버지와 자식은 불완전한 관계다.

아버지들은 자기 자식이 하다못해 발가락이라도 자기와 닮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하다. 요즘에야 시대가 변해 많이 달라졌다지만, 옛날 사람들은 누군가가 아이를 보고 “아이고, 아버지는 안 닮고 엄마만 닮았네”라고 하면 매우 경망스럽거나 남의 가정에 돌을 던지는 아주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비난했다.

그럴진대 부여구의 심정은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찢어질 것이다. 어쩌면 그는 의심하면서도 마치 칭기즈칸처럼 행동할는지 모른다. 칭기즈칸은 사랑하는 부인 보르테가 낳은 아버지가 불분명한 첫 번째 아들 주치를 자신의 장자로 인정했다. 메르키트족에게 납치되었던 보르테는 구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출산을 했던 것이다.

우리 속담에 “소 도둑질은 해도 씨 도둑질은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이 말을 거꾸로 해석하면 부자지간은 어디가 닮아도 닮아야만 한다는 족쇄로 귀결된다. 이런 속담을 철썩 같이 믿는 한 남자가, 만약 내 아이가 나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면? 아무리 살펴보아도 도무지 닮은 점을 찾을 수 없다면? 돌아버릴 것이다.

하긴 부여구는 평범한 남자가 아니다. 그는 백제의 전성시대를 구가할 근초고왕이다. 그는 아마도 칭기즈칸처럼 현명한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초고왕통과 고이왕통의 화합과 단결을 위해. 하지만 그가 내미는 다정한 손을 고이왕통은 잡을 생각이 없다. 부여구의 가신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똑같이 부여화의 조산을 이용하려 한다.

한차례 피바람이 불 것이다. 한 여자의 이른 출산으로 인한 피바람.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과거의 전철을 우리 민법은 알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 민법 811조에 보면 ‘재혼금지기간’이란 것이 있다. ‘여자는 혼인관계가 종료한 날로부터 6월이 경과하지 아니하면 혼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혼인관계의 종료 후 해산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무슨 말인가. 단서를 보면 무슨 뜻인지 금방 알 수 있다. ‘혼인관계의 종료 후 해산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란 이혼한 남편과의 사이에 생긴 아이를 이미 낳았으므로 더 이상 분쟁의 소지가 될 사정이 없어졌다는 의미이다. 이 조항은 여성의 입장에서 논란이 많긴 하지만, 입법취지는 태어난 아이가 누구 아이인지 확정함으로써 보호하려는 것이다.

물론 페미니스트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분명히 여성에 대한 지나친 인권침해다. 태어날 아이와 이혼한 전 남편과 재혼할 새로운 남편의 권리를 보호하고 나아가 불필요한 분쟁에 휘말리게 될지도 모를 여성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이 조항은 꼭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면 차라리 남녀 모두 재혼금지기간을 두었으면 좋았을 일이다.

낡은 기억에 의하면, 10여 년 전부터 이 조항이 여성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하여 폐지하자는 입법 움직임이 있었지만,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반대로 이혼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측에선 민법상의 이 규정을 폐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해서 남녀 모두 1년이 경과해야 재혼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강화하자고 주장할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부여구의 명백한 실수다. 그는 왕좌에 오르자마자 결혼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부여화와 동침하는 것이 급했을까?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프게 사랑했던 사이라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이해는 간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남자가 아니다. 어라하다. 백제의 군주, 위대한 백제를 일군 근초고왕이 바로 그가 아닌가.

고구려왕으로부터 부여화를 탈취해온(구출이라고 해야 되나?) 후에 바로 혼인을 할 것이 아니라 6개월의 재혼금지기간이 지나고 혼인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긴 그러면 너무 재미없을 것이다. 부여화의 조산은 위례궁의 고이왕통과 근초고왕 세력의 투쟁에 불을 붙였다. 제2왕후 진홍란(원래는 부여국 마여왕의 자손 위홍란)과의 싸움도 재미다.

그러고 보니 부여화가 칠삭둥이를 낳은 것은 모두 시청자의 재미를 위한 것이라는 말이 되는데…, 그렇다면 이렇게 불만을 할 일은 아니다. 주인공 근초고왕 역을 맡은 감우성의 연기는 역시 볼만하다. 실로 그는 명배우다. 그런데 북방의 대유학자라는 고흥 역의 안석환, 너무 웃긴다. 자꾸만 추노의 그 방화백이 생각나서 그런 것일까?

“으힝, 임자, 오늘밤 어뗘?” 하던 그가 “그러니 네가 유학을 잘못 배웠다는 것이야” 하고 점잔을 피울 땐 정말이지 웃음이 아니 날 수가 없다. 나만 그런 것일까? 그의 연기에 감탄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아무래도 고흥을 보면서 자꾸만 방화백이 흘리던 그 음흉한 웃음이 생각나니…. 으흐흐~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