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태왕'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1.12.05 광개토태왕은 바보? 적국사신 코앞에 와도 몰라 by 파비 정부권 (11)
  2. 2011.11.27 광개토태왕이 가야에는 선물 안 준 이유 by 파비 정부권 (10)
  3. 2011.11.20 광개토태왕, 도영을 백제왕비로 만드나 by 파비 정부권 (18)
  4. 2011.11.20 광개토태왕의 역사왜곡, 최고수준급이야 by 파비 정부권 (8)
  5. 2011.11.02 광개토태왕이 불쌍하다 by 파비 정부권 (28)

사극을 좋아하다보니 드라마 <광개토태왕> 비판을 많이 하면서도 빼먹지 않고 보고 있습니다. 가끔 ‘내가 너무 외눈으로 보는 게지’ 하면서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다가도 다시금 어이없는 장면을 만나면 허탈감에 허허 하고 웃고 마는데, 그러면서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뿌리깊은 나무>와 비교해보면 <광개토태왕>이 얼마나 수준 떨어지는 작품인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물론 두 작품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주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뿌리깊은 나무>가 소설적 허구라면 <광개토태왕>은 정통사극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에서 <광개토태왕>의 수준이 다시 한 번 비난을 받게 되는 역설이 일어납니다. 정통사극이 소설적 허구를 다룬 무협사극보다 더 허구적이라는 것이죠. <뿌리깊은 나무>는 논픽션 사극이면서도 어떤 사극보다 사실적이라는데 그 무게가 느껴집니다.

허구적 무협사극이 주는 사실감을 정통사극에선 찾아볼 수 없다는 것, 여기에 비애가 있습니다. 거기다 버럭버럭 질러대는 고함소리에 잔소리하는 것도 이젠 지쳤습니다. 드라마가 거의 중반부를 넘어선 상태에서 교정을 요구하는 것도 이미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래전에 <태조 왕건>에서 궁예로 나왔던 김영철은 어땠습니까? 그도 역시 자주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댔지만 <광개토태왕> 같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김영철의 궁예를 잊지 않고 있을 정도로 그의 연기는 리얼했습니다.

궁예의 광폭한 모습에서 우리는 궁예가 가졌을 내면의 아픔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단지 김영철이란 빼어난 배우와 이태곤의 차이기만 한 것일까요? 아무튼, 비슷한 시기에 방영되는 <뿌리깊은 나무>는 사소한 장면 하나에서도 깊은 감동을 주는 반면에 <광개토태왕>은 장면마다 짜증이 넘쳐납니다.

어제만 해도 그랬습니다. 후연으로 망명해 후연 황제의 신하가 된 고운이 자청해서 고구려에 사신으로 오게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남의 나라에 사신을 파견하려면 미리 통지를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냥 옆집 가듯이 들이닥쳐도 되는 것일까요?

.......... △ 담덕과 독대를 하는 후연의 사신 고운.

물론 이해는 합니다. 당시는 요즘처럼 통신이 발달한 시대도 아니고 거리도 멉니다. 좋습니다. 그런저런 사정으로 해서 아무런 사전통지 없이 불쑥 사신을 보냈다고 칩시다. 그런데 아무리 후연이 고구려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고는 하나 후연 수도 중산과 고구려 수도 국내성은 못되어도 수천 킬로의 거리는 될 것입니다.

“폐하, 지금 후연에서 사신이 오고 있다고 하옵니다. 그런데 그 사신이 이미 우리 대궐 정문 앞에 당도하였다 하옵니다.”

이 무슨 황당한 일이란 말입니까? 후연의 사신들이 고구려 국경을 통과하지 않고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했단 말입니까? 이 보고를 받은 광개토대왕이 헐레벌떡 대전에서 나와 벌써 궁으로 들어선 후연의 사신을 접하는 장면에선 실로 코웃음이 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대 동북아의 최강이었다는 고구려의 국경수비나 정보체계가 이런 정도로 허술했다니,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고운 등 후연의 사신 행렬이 고구려 국경을 통과하기도 전에 이미 광개토대왕은 후연에서 사신단이 출발했다는 사실을 보고받았어야 정상입니다.

그리고 고구려 국경을 통과하고 난 이후에도 광개토대왕은 봉화나 파발 기타 등등의 방법으로 얼마든지 후연에서 사신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어야 했습니다. 궁궐 정문에 사신이 당도했다는 보고를 받고서야 허겁지겁 달려 나가는 광개토대왕의 꼴이라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직접 달려나가 사신을 접할 까닭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선 영빈관에 묵게 한 다음 시간을 봐 알현을 허락하면 될 일을 말입니다. 하긴 뭐 이런저런 거 다 따지고 보면 재미없겠지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보면 될 일입니다.

드라마 초반에 광개토대왕은 말갈의 대족장과 함께 노예상인에게 잡혀 노예생활도 했으며 그 노예상인은 또 나중에 후연의 충직한 신하가 되어 고구려를 넘나들며 정보활동도 하는 <광개토태왕>이니 이런 정도야 충분히 이해하고 봄직 합니다.

.......... △ 담덕과 고운. 고운의 배신을 보고도 믿을 수 없다는 담덕은 순정파인가, 바보 멍청이인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일국의 대왕이 자기 집 문 앞에 적국의 사신이 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이게 될 법한 일입니까? 국내성이 무슨 산적들 소굴쯤이나 되기라도 한다는 것인지. 보아하니 다음 주에 광개토대왕이 백제를 공격할 모양입니다만.

그 전에 먼저 내부 기강부터 확실히 잡는 게 순서가 아닐까 합니다. 제가 볼 때 이런 상태로 전쟁에 나갔다간 백전백패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광개토대왕이 즉위하던 해 백제를 공략하여 수많은 성을 함락시키고 난공불락 관미성마저 차지한다고 말합니다.

그러고 보니 백제가 영 엉터리 같은 나라였나 봅니다. 불과 얼마 전에 광개토대왕의 조부 고국원왕을 죽이고 평양성을 공략하던 강성한 백제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그저 엉터리 같은 나라 고구려에 당하는 엉터리 같은 백제, 이것이 <광개토태왕>이 그리고 싶은 모습일까요?

<광개토태왕>의 작가님과 연출자님. 아무리 바쁘셔도 리얼리즘은 좀 살려주셨으면 합니다. 시청자들 너무 무시하지 마시고요. 요즘 시청자들도 눈이 대개 높거든요. 차라리 자신 없었으면 광개토대왕 이야기에 손대지 말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괜히 광개토대왕에 대한 신비감만 떨어뜨린 건 아닐까 해서 말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담덕은 왜 백제와 신라에만 선물 줬나. 혹시 가야는 우리민족 아니라서?

<광개토태왕>이 영 엉터리 같은 스토리와 버럭버럭 지르는 연기자들의 고함으로 사람을 피곤하게 함에도 불구하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동안 광개토대왕을 다룬 사극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뭐 아무튼, 앞서 불편하던 여러 가지 사건들은 일단락됐습니다. 일단 개연수가 무대에서 사라진 것은 저로서는 매우 다행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개연수는 왜 고연수가 아니라 개연수였을까요? 저는 그 점도 매우 불편했습니다.

고개연수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그렇다고 멀쩡한 아들 고운을 고운이 아니라 개고운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말입니다. 어쨌든 <다음>에 검색해본 바에 따르면 고운은 고구려의 왕족으로 나중에 후연의 황제가 될 인물이라고 하니 말입니다. 아, 태자비 도영은 고도영일까요, 개도영일까요?

자, 잡설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고…. 어제 담덕이 결혼 축하사절로 온 각국의 사신들 중에서 백제와 신라의 사신만 따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선물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지요. 아무에게도 주지 않고 너희들에게만 주는 것이다, 라고 하면서 말이지요.

그 특별한 선물이란 다리가 세 개 달린 삼족배였습니다. 담덕은 동명성왕 때부터 왕실에 내려오던 황금을 녹여 특별히 두 나라에 선물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말하지요. 신라와 백제는 고구려와 더불어 한 뿌리에서 나온 같은 민족이라고 말입니다.

담덕이 이렇게 말합니다. “고구려와 백제, 신라는 같은 말을 쓰며 비슷한 생활을 하는 나라로 같은 조상으로부터 피와 살을 받은 한 뿌리를 타고난 가지들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헌데 왜 우리가 서로에게 칼을 휘두르며 싸워야 한단 말인가?” 하고 열변을 토합니다.

열변은 계속 이어집니다. “우리는 서로 적으로 싸울 상대들이 아니요. 화합과 도모를 통해 중원으로 진출하는 것이 한 핏줄을 타고난 우리가 가져야 할 사명이오. 우리의 반목은 공멸을 가져올 것이고, 우리의 화합은 중원으로 진출하는 길을 여는 것이오.”

오, 멋진 광개토대왕입니다. 정말 그 시절에 그런 말씀을 하셨다면 존경해마지않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과연 그때도 민족이란 개념이 있었을지, 상대(고구려, 백제, 신라)를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통일의 대상으로 보았을지는 의문입니다만 요즘 사고로 보자면 멋진 말입니다.

아무튼, 감동 먹은 백제와 신라의 사신(이 두 사신은 나중에 백제와 신라의 왕이 됩니다)은 아무 말도 못합니다. 물론 담덕이 백제와 신라를 누르고 삼국경쟁체제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뜻이 삼족배에 들어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 두 사람입니다.

숙소로 돌아온 아신 성주(백제의 사신, 관미성주, 후일 아신왕)는 측근들에게 “담덕이 ‘우리가 하나로 뜻을 모은다면 한민족의 기상을 드높일 날이 올 것’이라고 했지만 이 삼족배에는 자기네 고구려가 삼국의 우두머리이니 그리 알라” 하는 뜻이 숨어있다고 경고합니다.

“삼족배의 세 다리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을 말하며 그 삼국이 떠받들고 있는 하늘은 삼족오, 곧 담덕이다. 고구려를 포함한 삼국이 담덕을 받들라는 의미다”라는 것이지요. 뭐, 거기까지는 충분히 이해가 됐습니다. 담덕의 뜻도 아신의 경계심도 다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담덕이 내민 선물 삼족배에는 왜 다리가 세 개밖에 없을까요? 아, 물론 삼족배니까 다리가 세 개겠지요. 하지만 담덕이 상징으로 내세우는 한 민족의 가지로서의 다리라면 단 세 개뿐이어서는 안 되는 거 아닐까요?

광개토대왕이 즉위하던 시절 만주와 한반도에는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가 고구려, 백제, 신라 외에도 북쪽에는 부여, 동쪽에는 동예, 남쪽에는 가야가 있었습니다. 북쪽의 부여는 이미 대무신왕 이후에 사실상 붕괴됐다고 보더라도 남쪽의 가야는 당시에 건재해있었습니다.

연맹체로 존재했던 가야를 고대국가로 볼 수 있는가라는 주장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같은 이유로 신라를 고대국가로 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당시의 신라는 그저 경주 일원의 맹주에 불과한 작은 나라로 가야와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 이미지/ 오마이뉴스

오히려 가야연맹체를 합친 강역이 신라보다 훨씬 크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가야가 신라보다 더 강성한 나라였을지도 모릅니다. 금관이나 유리잔이 가야의 유물에서도 발굴되는데, 경주의 금관이나 유리잔은 가야를 통해 전래됐다는 엉뚱한 가설을 내세운대도 뭐 그리 큰 문제가 될까 싶은데요.

어쨌거나 가야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담덕은 백제와 신라의 사신에게는 같은 민족이라고 추켜세우며 선물을 주면서 가야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을까요? 백제와 신라는 같은 민족이지만 가야는 아니라고 생각한 걸까요?

그것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담덕은 부여와 동예, 가야 등은 모두 정벌하여 멸망시켰지만(물론 가야는 이후에도 백오십년 가까이 명맥을 유지하긴 하지만 세력은 많이 약해졌으며, 사실상 신라의 정치연합에 포섭됐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백제와 신라는 그래서 살짝 혼내주기만 하고 만 것일까요?

여하튼, 제가 살고 있는, 그래서 혹시 저의 조상일지도 모르는 가야를 이른바 우리민족에서 빼버리고 선물도 주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섭섭한 일입니다. 후세에 광개토대왕이라 칭송받게 될 담덕, 이럴 수가 있습니까?

선물 주려면 공평하게 가야의 사신도 불러 “우리민족끼리 화합과 도모를 해보세!” 이러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우리는 어디 딴나라 사람들입니까? 혹시 광개토대왕께선 우리 가야를 임나일본부라고 주장하는 왜놈들의 말을 더 믿으시는 건 아니실 테지요.

아니, 그런데 진짜로 가야가 다른 민족이라고 생각해서 정벌하신 거 맞으면 어떡하나. 휴~

Posted by 파비 정부권

앞의 글 ☞<광개토태왕의 역사왜곡, 최고수준급이야> 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전쟁까지 치른 적대국가 후연에 사신으로 가면서 담덕이 자신의 비를 데리고 간다는 것부터가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였습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혼부부라 떨어지기 아쉬워 그랬을까요? 아예 전쟁터에 나갈 때도 데리고 다니지 그러셔요.

에이고, 그러더니 결국 태자비 도영은 후연의 간계에 빠져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긴 도영을 구해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역시 고구려의 적대국인 백제의 왕자 아신이었습니다. 아신은 침류왕의 장자로 현왕 진사왕의 조카인데 드라마에선 관미성주로 나옵니다.

도영을 바라보는 아신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아신은 첫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도움이 필요한 여인에게 반하고 만 것입니다. 아신의 도움으로 곤란한 지경을 벗어난 도영은 천신만고 끝에 고국으로 돌아오지만 아버지 개연수는 역모혐의로 목이 잘려 효수되고 오라비는 종적이 묘연합니다.

갈 곳을 잃은 도영. 뱃속에 아이마저 유산당하는 아픔을 겪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제 생각엔 죽든 살든 그저 남편 곁으로 가는 게 옳다는 생각이지만 어쩐 일인지 도영은 담덕에게로 가지 않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다들 아시다시피 매우 숭고한 뜻이 담겨있습니다.

고구려의 국상 개연수의 딸 도영은, 이제는 역적의 딸이 된 자신의 처리 문제로 고구려의 국론이 분열되는 것을 원치 않을 만큼 애국심도 강하고 정치적 판단력도 뛰어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런 도영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백제였습니다. 자신을 구해준 적이 있는 아신에게 몸을 의탁하기로 마음먹은 것입니다. 오, 이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이랍니까. 애국심에다 정치적 식견까지 갖춘 우리의 태자비 도영낭자가 적국에 몸을 의탁할 생각을 하다니요.

실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개연수의 아들 고운이 후연으로 망명해 담덕과 원수지간이 되더니 개연수의 딸이자 담덕의 비 도영은 백제로 망명해 아신왕의 왕비가 된다? 그리하여 두 오누이는 남과 북에서 각각 담덕과 운명을 건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인다?

그런데 역시 남자인 담덕은 후연보다는 자신의 마누라를 뺏어간(도영이 자발적으로 간 거지만) 백제를 먼저 응징하기로 할 것 같군요. 사서에 의하면 담덕은 즉위하자마자 백제부터 공격해 석현성 등 10여개 성을 빼앗고 난공불락의 관미성마저 함락시키고 맙니다.

줄기차게 백제를 공략하는 담덕. 마침내 58성 700촌을 쳐부수고 아신왕에게 항복까지 받아냅니다. 어떻게 될까요? 백제왕의 동생과 대신들을 인질로 잡아갈 때 사랑하는 도영이도 함께 데리고 갈까요? 위풍당당하게. 자기가 무슨 일리아스의 메넬라오스 왕도 아니고.

그러고 나서 후일 모반을 해서 후연(북연)의 황제가 된 고운과도 사이좋게 지내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도영의 오빠니까. 죽마고우이기도 하고. 후연은 고구려를 치기 위해 이용하려던 망명객(드라마상의 설정이지만) 고운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게 되니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튼, 이건 뭐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광개토태왕의 위대한 업적을 한낱 질투심으로 가득한 연적과의 결투 정도로 만들 요량인 거 같아서 아찔하다 못해 무섭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스토리를 전개하는 양상을 보아하건대 전혀 불가능한 추리도 아닌 것 같습니다.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지도 않으면서 도무지 개연성도 없고 정교하지도 못한 드라마 작가의 글쓰기 성향으로 보아 무슨 일을 낼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혹시나 작가님. 이글을 보신다면 제발 그렇게는 만들지 말아주세요.

세종대왕과 더불어 가장 위대한 조상 중의 한분이신 광개토대왕이 너무 추해지지 않습니까? 그러지 마시고 차라리 이러면 어떨까요. 도영을 그냥 아웃시킵시다. 일단 아신을 만났으니 백제로 가는 것은 어쩔 수 없고, 그냥 어느 날 자다가 건물에 불이 나 죽는 걸로 끝냅시다.

오지은 씨에겐 미안하지만 그러는 게 깔끔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건 제 개인적인 바람일 뿐이고, 바야흐로 개연수의 복수가 시작될 모양입니다. 후연에선 아들 고운이, 백제에선 딸 도영이. 오누이가 비명에 간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남과 북으로 흩어진 셈입니다.

물론 드라마가 도영의 복수심을 결코 드러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백제와 전쟁을 벌이는 담덕을 보며 눈물콧물 다 짜면서 비련의 여주인공 행세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저로서는 정말이지 있는 짜증 없는 짜증 안 낼 도리가 없겠군요.

어쩌면 저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아신의 도영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지극해서 그녀를 아내로 취하지 않고 그냥 백제 한성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선에서 그칠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드라마나 소설 속에선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도영을 백제의 왕비로 만들건, 아신왕과의 플라토닉 러브로 만족시키건 오십보백보라는 생각입니다. 꼭 이런 신파조를 넣어야 드라마가 재미가 나는 것일까요? 도영과 백제왕 아신을 연결시키는 것은 지나친 비약 아닐까요?

광개토태왕에게 최대의 숙적이라면 남쪽은 백제요, 북쪽은 후연입니다. 광개토태왕의 수많은 전투 중에 이 두 나라와의 전투가 가장 치열하고 위기감도 팽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사려 깊은 사람으로 보이던 고운과 도영 남매가 별다른 해명도 없이 각각 이들 두 적국으로 가게 되다니요.

담덕의 가장 신실한 측근이었던 고무 대장군의 차남 고창이 어느 날 갑자기 입가에 비릿한 웃음을 흘리더니 간신배 비슷한 인물로 바뀐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별다른 변화 과정도 보여주지 않은 채 담덕과 원수가 된 고운은 정말이지 충격이었습니다.


거기에 도영이 보태주는 메가톤급 충격. 아신과의 해후.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 결혼할까요, 아니면 그냥 플라토닉으로? 그리고 아직 충격이 하나 더 남은 듯합니다. 담덕의 동생 담주공주의 후연 탈출.

다들 아시다시피 담주공주는 담덕이 인질로 후연 태자에게 시집보냈습니다. 늘 고국을 그리워하던 담주는 후연 태자 모용보가 담덕의 결혼축하사절로 고구려에 갈 때 따라가게 해달라고 졸라 허락을 얻습니다. 목적은 단 하나. 후연으로 돌아가지 않고 고구려에 남으려는 심산.

모용보가 노발대발 하겠지요? 담주공주에게 반해 고구려에 대한 반감이 많이 꺾였던 찌질이 후연 태자가 다시 고구려에 대한 적개심으로 불타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히 보이는 스토리. 그거 참, 모용보도 할 짓 아닙니다. 이랬다저랬다 하려니 참 힘들겠어요. 흐흐.

한편, 담덕은 도영을 잃어버리고(담덕은 도영이 죽은 줄 알고 있죠) 약연을 새 왕비로 맞아들이는데요. 주변 나라들에 축하 사절과 함께 고구려 포로들을 돌려보낼 것을 요구합니다. 좀 어이없기는 하지만 담덕, 역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합니다. ㅋ~

Posted by 파비 정부권

불멸의 이순신, 태조 왕건, 무인시대 등 굵직한 작품들을 통해 정통사극의 본령으로 대접받아온 KBS가 이렇게 형편없는 사극을 만들어 방송에 내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지금 현재시간 포털에 상위 노출된 광개토태왕에 대한 한 트위터의 평입니다.

“사극을 좋아해서 보기는 한다만 역대 KBS 사극 중에 광개토태왕처럼 재미없고 늘어지고 개연성 없게 만든 드라마도 없을 듯. 주인공이 눈 크게 뜨고 목소리 우렁찬 거 말고는…, 연출가 실력이 정말 중요한 듯….”

제 생각도 똑같습니다. 하나 더 추가하면 단지 연출가의 실력 탓만은 아니고 작가의 형편없는 시나리오 탓도 크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너무 태연작약 하고 있으니 어떨 땐 짜증을 넘어 분노마저 치밀어 오를 때가 있습니다.

담덕의 형 담망이 죽을 때도 그랬고 고국양왕의 왕비가 어이없이 죽을 때도 그랬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설정들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만들어내는 작가가 신기할 지경입니다. 이 정도면 수준 낮은 대사들에 대해선 언급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연기자들이 불쌍할 뿐입니다. 언젠가 한 연예잡지에서 톱클래스의 배우들이 작품 섭외가 들어왔을 때 시나리오를 꼼꼼하게 읽어보고 결정한다는 소리를 듣고 “그거 참, 배들이 불러터졌구먼” 하고 욕을 했었지만 이제는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습니다.

작가와 연출자 한번 잘못 만나면 힘들게 쌓아올린 이미지가 한순간에 ‘꽝’ 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시나리오와 연출, 연기자를 드라마의 3박자라고 한다면 광개토태왕은 완전 엇박자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한마디로 ‘꽝’입니다.

자, 그런데 문제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일전에도 포스팅으로 말했지만 드라마 광개토태왕은 광개토태왕을 심각하게 모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드라마는 광개토태왕을 바보로 만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태왕의 선왕인 고국양왕은 더한 바보로 만들었습니다.

광개토태왕 담덕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고조선의 고토를 완전하게 회복한 것입니다. 담덕은 18세에 왕이 된 이래 동서남북을 종횡무진하며 영토를 넓혔습니다. 백제를 무릎 꿇리고 신라에 군대를 주둔시켜 사실상 복속시켰으며 부여와 말갈, 거란, 숙신을 발아래 두고 요동을 정벌했습니다.

이를 위해 담덕은 왕으로 있는 내내 국내성을 떠나 전장을 누볐을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역사소설이나 드라마에서 왕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전장으로 나가는 경우를 봅니다만, 왕이 수도를 비우고 전쟁터를 떠돈다는 것은 보통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와 영국 리처드 왕의 일화가 이를 증명합니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오디세우스는 이타카의 왕이었지만 트로이전쟁에 참전한 사이에 이른바 구혼자들로부터 왕국과 왕비 페넬로페를 강탈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로빈훗의 전설에 의하면 영국의 국왕 리처드 역시 십자군 원정을 간 사이에 동생 존에게 왕위를 강탈당합니다. 물론 오디세우스와 리처드는 귀환하는 즉시 왕권을 되찾았습니다만 불필요한 피를 흘려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재기가 모든 현실에 통용되는 것도 아닙니다.

자, 그럼 우리의 광개토태왕은 어떻게 마음껏 전장을 누비며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요? 국내 정치가 안정됐기 때문입니다. 고구려를 떠받치고 있는 5부족이 혼연일체가 되어 국왕을 지지하고 지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정국이 불안정하면 왕이 수도를 비울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정국의 안정은 강력한 왕권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고구려가 고대국가의 틀을 갖추고 왕권이 확립된 것은 대체로 소수림왕 때로 보고 있습니다. 소수림왕은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국교로 정했습니다. 나라의 기틀을 세운 것입니다.

나중에 신라는 법흥왕이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공인하는데 이때부터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누르고 삼국패권경쟁에서 우위에 나서기 시작합니다. 국운에 있어서 고구려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 점에서 국상 개연수가 태자 담덕을 죽이고자 모의를 하고 마침내 고국양왕이 겁박에 넘어가 옥새를 내놓으며 살려달라고 애원한다는 드라마의 설정은 실로 어처구니없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이런 일은 도대체 상상하기도 싫고 할 수도 없는 심각한 역사왜곡인 것입니다.

이런 정국에서 담덕이 왕위를 물려받았다면 그는 대외활동보다는 내치에 힘을 기울여야 했을 것입니다. 드라마의 내용대로라면 흩어진 귀족세력을 규합하고 이들을 왕의 권위에 복종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당장 역적모의를 한 자들을 색출해 숙청한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병을 거느리는 등 강력한 권력기반을 가진 중앙귀족과 지방호족들로부터 진심으로 충성을 받아내는 것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또한 시스템과 구조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요즘처럼 미디어와 통신망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적 상황을 감안한다면 담덕은 재위 20여년을 오로지 귀족세력을 제압하고 왕권을 확립하는 데만 힘을 쏟아도 모자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담덕은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소수림왕-고국양왕을 거치면서 왕권은 충분히 강했으며 국론은 통일돼 있었던 것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소수림왕의 뒤를 이은 고국양왕도 안정된 왕권을 바탕으로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고구려의 대대적인 정복전쟁은 담덕뿐만 아니라 이미 그의 부왕인 고국양왕이 실천에 옮겼던 것이고 아들 장수왕 대에도 계승됐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드라마는 고국양왕을 신하에게 굽실거리며 옥새까지 갖다 바치는 비굴한 왕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고국양왕의 모습을 보는 것은 실로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 순간은 드라마 광개토태왕의 작가가 한국인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작가와 연출자에게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담덕 역을 하고 있는 주인공 이태곤은 눈을 부라리고 괴성을 지르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무엇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광개토태왕을 마치 일개 오랑캐 부족장 정도의 캐릭터로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담덕은 오직 무력만으로 광활한 만주대륙의 패자가 되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장르가 판타지이긴 했지만 최근 광개토태왕을 다루었던 드라마 태왕사신기를 기억해봅시다. 담덕이 무력만을 쓰던가요? 아닙니다. 그는 무력보다 덕을 베풀어 사방을 경략했던 것입니다.

어제 보니 고운이 담덕에게 복수하기 위해 후연의 태자에게 무릎을 꿇더군요. 고운이 나중에 후연(혹은 북연)의 황제가 된다는 역사를 들어 이런 설정을 한 것은 한편 이해는 갑니다만 개연수의 모반과 죽음-고운의 망명으로 이어지는 스토리는 상당히 무리가 있습니다.

‘드라마의 전개 내용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떠나 왜 좀 더 정교하게 시나리오를 다듬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심하게 말하자면 너무 엉성하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어제의 마지막 장면, 태자비(담덕이 첫째 부인) 도영이 관미성주 아신을 만나는 대목에선 경악을 금치 못하겠더군요.

‘이거 이러다 드라마를 광개토태왕과 개연수 집안간의 분쟁으로 만드는 거 아냐?’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아신은 진사왕에 이어 백제의 왕이 될 인물입니다. 392년에 왕위에 올랐으니 담덕과 같은 해에 왕이 됐습니다.

담덕은 왕이 되자 곧바로 백제부터 공격했습니다. 결국에는 한강 이남까지 쳐들어가 아신왕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백제는 왕의 동생을 비롯해 십여 명의 대신들이 인질로 잡혀가는 수모를 당했다고 합니다. 이런 역사적 사정을 감안하면서 그다음 드는 생각.

‘이거 혹시 도영을 아신에게 시집보내려는 거 아냐?’

그래서 화가 난 담덕이 즉위하자마자 백제부터 공격한다는? 여기에 대해선 따로 이야기를 하기로 하지요. 좀 황당한 이야기긴 하지만 재미는 있을 것 같습니다. 광개토태왕의 남하정책을 연적과의 결투 정도로 만들다니.

아무리 재미도 좋지만 지나친 역사왜곡이 짜증납니다. 역사를 왜곡하는 것도 이 정도면 가히 최고 수준급입니다. 자, 글이 너무 길게 나왔으므로 이만 이정도로 마치겠습니다. 그리고 아래에다 위키백과에서 드라마 광개토태왕에 대해 묘사한 부분을 짧게 소개합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은 고구려 제19대 광개토왕을 조명한 KBS 드라마이다.[1][2] 그러나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음에도 드라마의 전개 내용이 정사와는 상반되게 제작되어 논란을 낳았고,[3] 진부한 극 전개로 인한 작품성 시비도 계속되고 있다.[4]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랜만에 드라마 리뷰를 한번 써보려고 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TV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좋아하는 연속극을 간간이 보기는 했습니다만 예전처럼 그렇게 재미를 느끼지는 못하는 편입니다. 왜 그럴까요? 드라마에 대한 저의 감이 떨어진 걸까요, 드라마가 질이 떨어진 걸까요?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드라마가 질이 현저하게 떨어진 것 같습니다. 특히 사극에서 두드러집니다. 드라마는 연출자도 중요하고 연기자도 중요하지만 역시 작가의 시나리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연출자에 뛰어난 연기자가 있어도 시나리오가 엉망이면 모든 게 꽝입니다.

MBC사극 계백도 처음부터 보다가 도저히 참기 힘들어 중간에 보기를 포기해버렸습니다만, KBS사극 광개토태왕은 이보다 더 심합니다. 도대체 이런 드라마를 왜 보고 있는지 황당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만 오래도록 이 시간대에 이 사극을 보는 것이 버릇이 된지라 관성으로 보는 것뿐입니다.

제가 옛날 한창 출장을 많이 다니던 시절에 불멸의 이순신을 바로 이 시간대에 했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도 불멸의 이순신 할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휴게소에 차를 대고 드라마를 다 보고는 다시 출발하곤 했었지요. 그때 주인공이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이었는데, 참 멋졌었지요.

........ 버럭대왕 담덕역의 이태곤

그런데 어떻습니까? 담덕태자로 나오는 이태곤은 완전 버럭대왕이 됐습니다. 이태곤은 하늘이시여, 보석비빔밥 등에서 따뜻하고 사려 깊은 남자로 귀공자의 표본처럼 보였었지만 갑자기 광개토태왕이 되더니 버럭대왕이 돼버린 겁니다. 그래야 용맹무쌍한 광개토태왕을 잘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담덕이 버럭버럭 거리니 다른 이들도 덩달아서 버럭 댑니다. 국상도 눈에 있는 힘 다 주고 버럭버럭, 광개토태왕의 숙적 연나라의 황제도 버럭버럭, 연나라 태자도 버럭버럭. 고구려, 후연, 말갈의 장군들도 하나같이 버럭버럭. 눈을 치켜뜨며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보면 꼭 정신병자들 같습니다.

아, 김명민이 그립습니다. 김명민이 결코 버럭 대지 않더라도 이순신 장군의 위엄과 기개가 하늘을 찔렀지 않습니까? 왜군들이 외유내강의 이순신을 보고 벌벌 떨었지 않습니까? 꼭 이 드라마의 담덕처럼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미친 듯이 눈에 힘을 주며 으르렁거려야만 용맹함이 드러나는 것일까요?

아마도 광개토태왕의 작가는 동북아를 평정한 광개토태왕이라면 그 정도로 야성미 넘치게 야만적인 포효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요. 좋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광개토태왕이 범이면 그 아비인 고국양왕도 호랑이는 못되더라도 최소한 표범은 돼야 하는 거 아닙니까?

........ 소심하고 겁 많은 광개토태왕의 아버지 고국양왕. 국상에게 옥새를 바치며 "살려주시오" 하고 애원하고 있다.

그런데 이건 뭐 똥강아지도 아니고. 도대체 어떻게 저런 작자가 고구려의 왕이 되었으며 광개토태왕의 아버지란 것인지 실로 난해합니다. 물론 천하의 광개토태왕의 선왕이라도 인물이 똥강아지에도 미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해도 너무합니다.

겨우 군사 몇 명으로 큰 성을 함락시키는가 하면 다시 얼토당토않은 계략에 빠져 성을 빼앗긴다거나 하는 현실성 없는 시나리오에 대해선 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야심 가득한 국상이 담덕을 몇 차례나 죽이려 시도하다가 돌연히 자기 딸을 시집보내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죠.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사위인 담덕을 죽이려 하더니 결국 역모까지 일으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으로까지 몰고 왔습니다. 담덕의 아비 고국양왕과 왕비는 아들을 살리고자 모든 것을 내던지는 비련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허허,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말입니다.

옥새를 내주며 아들만은 살려달라고 간청하는 고국양왕에게 국상이 이렇게 말하죠. “폐하. 그러셔도 소용없습니다. 이미 옥새는 주지 않으셔도 우리 손에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고. 담덕태자는 이러나저러나 저자에서 참수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제가 어처구니없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 다음입니다. 담덕이 “네 이놈 국상” 하며 칼을 빼어들자 왕비가 담덕의 앞을 가로막으며 “안 된다. 참아야 하느니라. 참아야만 살 수 있느니라.” 뭐 이런 황당 시추에이션이. 제가 참 많고도 많은 드라마를 보아왔지만 이토록 황당한 시나리오는 처음입니다.

........ 천민이라도 좋다. 건강하게만 살아다오. 담덕의 어머니, 고국양왕 왕비. 이건 뭐 드라마가 광개토태왕인지 의자왕인지 모르겠다.

왕비의 말씀은 제대로 요약하자면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얘야 담덕아. 참아라. 칼을 들고 싸우다 죽는 것보다는 그냥 국상 손에 잡혀서 참수 당하는 편히 낫느니라.” 그리고 잠시 후 국상의 심복이 쏜 화살에 맞은 왕비, 죽어가면서 유언을 남깁니다.

“부디 너만은 건강하게 살아다오. 꼭 건강하게만 살아다오.”

하하, 정말 이 대목에서 웃음보가 터질 뻔했습니다. 옛날 광고 카피가 생각나더군요. “개구쟁이라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왕비의 말을 다시 제대로 번역하면 이렇게 되겠습니다. “어떻게 돼도 좋다. 건강하게만 살아다오.”

그러나 그게 어디 왕비 당신 뜻대로 된답디까? 국상을 쓰러뜨리지 않는 한 국상은 어떻게든 담덕의 목을 자를 게 뻔한데 말입니다. 왕비는 그렇다 치고, 일개 왕이라는 작자가 그런 기본도 모르고 어떻게 그 긴 세월을 왕 노릇을 해왔다는 것인지. 에혀~ 한숨이 절로 납니다.

저는 진짜 궁금한 게 있습니다. 국상 개연수의 아들과 딸의 운명에 대해서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현재 국상의 딸 도영은 태자 담덕의 아내지요. 태자비입니다. 그리고 개연수의 아들 고운은 담덕을 따르는 심복입니다. 일종의 장자방 역할을 하는 것 같기도 한데 아직은 그 존재가 확실치 않습니다.

이미 개연수의 역모는 고국양왕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강요하는 지경을 넘어 왕비까지 죽였습니다. 그야말로 구족이 멸문지화 당하게 생겼습니다. 길은 하나뿐입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대한민국 사법부의 판결 예를 따라 무조건 ‘고’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개연수의 역모는 성공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개연수의 아들 고운이 국내성으로 돌아왔는데 뭔가 일을 벌일 것 같습니다. 이 대목도 참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국내성 성문을 완전히 봉쇄해서 출입이 금지됐고 일반백성은 절대 들이지 말라는 엄명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아니 봉쇄하려면 변방의 군대가 국내성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봉쇄해야지 왜 아무 힘없는 일반백성들의 출입을 통제한단 말입니까? 참 쓸데없는 짓입니다. 한데 고운은 부하장수가 명찰을 내밀며 “중앙군 부장 누구(도각?)다” 이러니까 확인절차도 없이 바로 성문을 활짝 열어주는군요.

그런데 잠시 후 한 떼의 군사가 고운이 들어간 성문으로 뒤따라 들어섭니다. 이것도 뭔 시추에이션인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무슨 역모를 한다면서 이렇게 허술하게 하는 것인지 원. 박정희나 전두환이 보면 코웃음을 치겠습니다. 아무리 상식이 없어도 이건 아니죠.

아무튼 태자 담덕은 수없이 칼에 맞고 창에 찔려도 불사신처럼 죽지 않고 버티고 있는데-여기에 대해 네티즌들이 말이 많은가본데 워낙 황당한 시나리오라 뭐 이런 정도는 참아줄 수 있겠습니다-이 군대가 담덕을 구해줄까요, 말까요?

그리고 이 군대에 앞서 들어간 고운과 이 군대의 관계는? 만약 제가 짐작하는 것처럼 이 군대가 고운과 관련이 있으며 결국 고운이 자기 아버지에 반하여 담덕을 구하게 된다면 실로 복잡하게 됩니다. 고운과 태자비 도영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그러나 그렇더라도 고운과 태자비 도영은 죄를 면할 길이 없습니다. 죽음은 피하더라도 유폐는 불가피합니다. 그게 현실이죠. 그런데 제가 짐작하는 두 번째는 이 드라마 작가들의 황당한 글쓰기 태도로 보아서는 고운과 도영은 태자를 살린 공을 인정받아 원래대로 담덕과 함께 영화를 누릴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드라마의 지금껏 모양새로 보아서는 우리가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황당한 전개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고무 대장군이 등장했다든지 아니면 해모월이 남겨둔 군사들이 들어왔다든지-전혀 그런 언급은 없었지만-.

황당한 이야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 담덕의 심복 연살타의 아버지 연도부 말입니다. 분명히 역모를 일으켜 태자 담덕을 척살하자는 모의를 하는 중에 개연수에게 자기 아들 연살타를 살려달라고 부탁했었죠. 그러자 개연수가 “하하, 걱정마시오. 그대의 아들은 내 중히 쓸 것이오” 하지 않았습니까?

연도부의 입장에서야 당연한 요청이고 주장일 것입니다만, 글쎄요. 지난 일요일 마지막 장면에 보니 태자 담덕과 함께 연살타가 포위돼 있는데 거기를 향해 연도부가 이렇게 외치네요. “저것들 모조리 죽여 버려.” 와, 이거 완전 막 가자는 건데요. 흐흐.

방울소리 하나로 신라의 성을 함락시킨 계백도 황당하긴 마찬가집니다만-제작비가 모자라 대형 전투신 같은 거 만들기 곤란하니까 그런 해괴한 이야기를 만들었을까요?-, 광개토태왕의 황당부르스는 도를 넘어도 너무 많이 넘었다는 생각입니다.

그나저나 개연수의 역모가 실패로 끝나고 나면 대대적인 연기자 교체가 불가피한데 큰일이네요. 드라마에서 하차할 인물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개연수를 필두로 해서 대당주 여소이, 연도부 등 장난이 아닙니다. 고운과 도영도 마찬가지고요.

혹시 이렇게 되는 건 아닐까요? 제작비도 부족하고 새로 연기자를 대거 영입하는 것은 여러 모로 어려운 점이 있으니, 그냥 모두 용서하고 함께 힘을 합쳐 대고구려를 건설하자, 뭐 이렇게 말입니다. 까짓 광개토태왕이 못할 게 뭐가 있습니까? 버럭 소리 한 번 지르면 다 끝나는 거지요.

어쨌거나 어떤 의미이든지간에 드라마 광개토태왕은 사극계에 전무후무, 공전절후, 군계일학의 대업적을 세웠다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정말 대단한 드라마에요. 흐흐. 하지만 이런 엉터리 같은 사극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사극도 있습니다.

..... 근래 보기 드문 사극, 뿌리깊은 나무. 역시 한석규와 장혁의 연기가 빛난다. 하지만 역시 작가들의 능력이 받쳐줘야 연기자도 빛이 나는 법.

오늘 밤 10시에 하는 뿌리깊은 나무가 바로 그런 사극입니다. 주인공 장혁과 한석규의 연기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광개토태왕에 나오는 인물들과는 비교할 바가 못됩니다. 장혁은 추노에 이어 뿌리깊은 나무에서도 명연기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밤이 기대되는군요. 에혀~ 그나저나 세종대왕은 저렇게 멋있는데... 불쌍한 광개토태왕. 참고로 아래에다 다음백과사전/브리태니커에 소개한 고국양왕 내용입니다. 이걸 보면 그렇게 비굴한 인간도 또 그렇게 불쌍한 인간도 아니었습니다.. 

아들 광개토태왕에 못잖은 활달한 왕이었던 거지요. 다시 에혀~가 나옵니다. ㅠㅠ

외치(外治)에 힘써 국력을 외부에 떨치면서, 안으로는 불교를 널리 펴 문화를 발전시켰다. 이름은 이련(伊連)·이속(伊速) 또는 어지지(於只支). 고국원왕의 아들이며, 광개토왕의 아버지이다. 형인 소수림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선왕이 이룩해놓은 국내정치의 안정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대외활동을 전개했다. 385년 4만의 군사로 후연(後燕)을 공격하여 요동군(遼東郡)과 제3현도군을 점령했으나, 이듬해 다시 후연에게 빼앗겼다. 남쪽으로는 386년에 백제를 공격했고, 389년과 390년에는 백제의 공격을 받기도 하는 등 공방을 계속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392년 신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신라 내물마립간(奈勿麻立干)으로 하여금 실성(實聖)을 인질로 보내게 했다. 같은 해 국사(國社)를 세우고 종묘(宗廟)를 수리하는 등 국가체제의 확립에도 이바지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