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9.24 창동예술촌 골목에선 어떤 소리가 들릴까? by 파비 정부권 (1)
  2. 2008.10.22 골목을 점령한 개들을 쫓는 경찰 by 파비 정부권 (3)

일전에 나는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가 썼다는 대선관련 기자회견문을 비판한 일이 있다. 대중적인 기자회견문에 왜 그람시가 나오나 하는 것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석영철 경남도의원(통합진보당 창원시당위원장)이 페이스북에다 노동을 통한 교화, 총화에 대해 말했다. 

나는 이 글을 보며 허허 웃고 말았는데 좀 비약에 궤변이긴 하지만 말하자면 홍대표가 유럽사대주의라면 석의원은 북한사대주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사실 교화니 총화니 하는 말은 우리네가 잘 쓰는 말이 아니고 북한에서 사상교육을 할 때 즐겨 쓰는 말로 알고 있다. 

그런데 엊그제 창동예술촌 팸투어에 갔다가 또 다른 형태의 사대주의적 일면을 보고는 다시 한 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에꼴드 창동골목. 예상대로 어김없이 이에 대한 비판적 질문이 나왔다. 김용운 창원시 도시재생과장과의 간담회에서 김종길(김천령의 바람흔적)씨는 이렇게 물었다. 

▲ 창동예술촌 골목에서 추억을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는 한 가족.


“에꼴드, 이런 말을 보통사람들이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일반시민들이 잘 알 수 있는 그런 이름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과장은 이렇게 답변했다. “네, 듣고 보니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이 예술촌 사업은 일단 공모에 당선된 촌장님이 기획한대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잘 검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글쎄 이를 두고 사대주의라 하면 비약도 너무 심한 비약이라고 비난할 사람도 있을 테지만 어쨌든 저마다 자신이 보고 배우고 잘 아는 부분에 대해 강한 애착과 사람들에게 알리고픈 욕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창동예술촌은 에꼴드 창동골목이란 고급스런 이름에 걸맞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매우 매력적인 골목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자기한 골목은 구부구불 옛이야기를 담은 채 잘 정돈됐다. 우중충한 과거의 그림자 위에는 예술가들의 활기찬 작업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도예가의 정교한 손놀림이 빠르게 회전하는 흙더미를 하나의 예술품으로 재생시키며 섬세한 흔적을 남긴다. 탕~ 탕~, 하나의 나무판때기에 불과했던 무생물에 목각공예가의 망치와 끌이 닿자 새로운 생명이 불어넣어진다. 

토요일 오후 창동예술촌 골목을 탐방하며 장인에게 설명을 들을 땐 그저 신기함과 새로운 지식에 대한 욕망으로 깨닫지 못했는데 다음날 오전 조용한 골목을 걸으며 나는 정말이지 무생물이 생명체가 되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탕~ 탕~,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일정한 크기로 전해져오는 소리는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정취였다. 말하자면 내게도 일종의 노스탈쟈가 있었다. 그것이 무엇에 대한 향수인지 뚜렷하진 않지만 아무튼 ‘물결 같이 바람에 나부끼는 순정’이 내속에도 감추어져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마치 오래전 어릴 적 향수로부터 들려오는 듯한 소리에 얼굴을 돌렸을 때 그곳엔 어제 보았던 늙은 장인이 색 바랜 낡은 베레모를 쓰고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아아, 이것이었다. 저 아름다운 소리, 고요한 정적을 깨고 골목을 울리는 생명을 다듬는 소리야말로 내가 그토록 바라고 기다려왔던 소리가 아니었을까.

▲ 장인의 설명을 듣고 있는 팸투어 참여 블로거들.


물론 여기에 소년소녀들의 재잘거림과 청춘들의 그윽한 눈길과 노인들의 추억을 되짚는 발길이 뒤섞여도 더없이 좋겠다. 그 왁자함을 뚫고 들려오는 망치소리는 언젠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어느 조용한 찻집에 앉았을 때 잔잔한 회상을 타고 들려올 것이다. 탕~ 탕~. 

그러면 창동골목을 누비며 보았던 예술가들의 섬세한 손놀림과 예술촌 어느 귀퉁이 찻집에서 마셨던 진한 커피 향기와 갖가지 미술품과 오색창호지로 치장된 주점에서 마셨던 막걸리 냄새가 그리워질 것이다. 

언젠가 세월이 흘러 만삭이 된 소녀는 이 골목을 찾아 팥빙수도 먹고 싶고 칼국수도 먹고 싶어질 것이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는 다시 이 골목에서 뛰놀며 예술가들의 손길을 받고 팥빙수도 먹고 칼국수도 먹으며 자랄 것이다. 

지금도 나는 에꼴드란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지만 아마 그때쯤이면 에꼴드 창동골목은 얼마든지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이 될 만한 걸맞은 이름이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경남도민일보 <해딴에>가 기획하고 창원시가 후원한 창동예술촌 팸투어 후기를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내 귀에는 색 바랜 낡은 베레모를 쓴 늙은 장인의 망치소리가 들려온다. 탕, 탕.

Posted by 파비 정부권

우리동네는 골목길이 많은 꽤 오래된 동네입니다. 옛날 ‘골목길’이란 제목의 노래도 있을 만큼 골목길은 우리에겐 친근한 고향 같은 곳입니다. 세상이 변하면서 아파트형 밀집주거지역이 대세로 자리잡고 있는 추세지만 아직 우리동네는 구비구비 골목길이 아름다운 정겨운 마을입니다.

우리동네에서도 제일 큰 골목길입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평화로운 이 골목길에 반갑지 않은 불청객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덩치가 산 만한 개들입니다.  귀엽게 생긴 자그마한 개들은 오래전부터 골목길의 단골 손님들이었지만, 이제 만주벌판에서나 뛰놈직한 늑대의 사촌 쯤 되어보이는 개들도 아무 거리낌없이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우리 딸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는 이 골목길들을 지나 학교로 가야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이가 제게 말했습니다.

“아빠, 무서워서 학교 못가겠어.”

“왜?”

“골목에 개들이 너무 많아. 너무 무서워.”

우리 딸애는 겁이 좀 많은 편입니다. 그래서 제가 부드럽게 타일렀습니다.

“혜민아, 개들도 자세히 보면 귀엽잖아. 니가 먼저 헤꼬지 안 하면 절대 안 물어. 그러니까 모른척 그냥 지나가면 되는 거야. 알았지?”

아이가 무서워한다고 매번 학교까지 데려다 줄 수야 없는 처지가 아니겠습니까? 하긴 어떤 집 아이는 매일 아침마다 엄마가 자가용으로 학교까지 데려다 준다고 이 아이의 오빠인 우리 아들놈이 부러워하는 걸 보긴 했습니다만, 보통 서민들은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무섭단 말이야. 하나도 안 귀여워.”

“….”

골목길을 휘젓고 다니는 개들, 너무 무서워 떨다보니 사진이 제대로 안 잡힙니다.


그리고 한 열흘 전에 우리 딸아이는 마침내 개에게 물리는 사고가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다행히 큰 개는 아니었고 중간 정도 크기의 개였던 모양입니다. 마침 긴 청바지를 입고 있었던 탓에 옷만 조금 찢어졌을 뿐 다리에 상처가 크게 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는데,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날이었습니다.

오후 늦게 이 사실을 알게된 우리 부부는 병원도 열지 않는 늦은 시각이라 병원에 데려가야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이 되었습니다. 광견병이 무섭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그리 큰 상처가 난 것 같지는 않았고 토요일 오후라 의사들도 자리에 없을 거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골목길이 무서워 학교 가기 무섭다고 하기 전부터 사실은 저도 무시로 돌아다니는 개들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거의 열마리 가까운 숫자의 덩치 큰 개들이 골목을 마치 들판처럼 뛰어다니는 걸 자주 보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부쩍 늘었습니다. 

어떤 개는 허연 침까지 질질 흘리는 게 마치 싸움개 처럼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개주인들은 그런 개가 흐뭇해 보이는 모양이었습니다. 골목길 끝까지 달려갔다 다시 뛰어오며 주인에게 안기는 모습에 연방 웃음을 흘리며 흐뭇해하고 있었습니다. 그 옆을 지나갈 때마다 기겁을 하며 매달리는 우리 딸아이를 달래며 지나갔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혼자 학교에 갔다오던 우리 어린 딸이 마침내 개의 공격을 받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날부터 주머니에 사진기를 넣어가지고 다녔습니다. 경찰서나 동사무소에다 신고한다고 해도 아무런 물증이 없으면 믿어줄 것 같지가 않아서였습니다. 그런데 어제 집에 올라오다 커다란 개 두마리가 골목을 휘젓고 돌아다니는 걸 목격했습니다. 

아주머니가 그래도 용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개들이 워낙 빨리 돌아다니니 속수무책.


개들이 뛰어다니는 폼이 얼마나 빨랐던지 카메라에 잘 잡히지도 않았습니다. 사실은 저도 자기들을 촬영하는 저를 공격할까보아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빠르게 뛰어다니는 개들도 다행히 몇 커트가 제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저는 바로 인근 마산중부경찰서 신마산지구대로 갔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보여주며 개들을 단속해 줄것을 부탁했습니다. 

신마산 지구대 경찰관들은 참 친절한 분들이었습니다. 요즘 언론에 떠도는 별로 좋지 않은 이미지와는 완전 달랐습니다. 제가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무척이나 걱정스럽게 위로하며 알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사무소에도 가서 개를 집에 잘 묶어놓도록 방송을 해달라고 부탁해보라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구대를 나와 집으로 올라가려는데 이미 경찰관 두 분이 경찰차를 몰고 개를 잡으러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차를 몰고 따라가는 경찰보다 개들이 더 빨랐습니다. 지켜보던 저는 저러다 사고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개들은 빨랐습니다. 요리조리 뛰어다니는 산 만한 개들을 경찰차가 어떻게 따라잡겠습니까?

경찰이 출동했습니다. 개들은 아랑곳 않습니다. 사이렌을 울리자 그때서야 도망갑니다.


그러나 경찰관들은 끝까지 개들을 추적하여 개들이 사는 집을 알아냈습니다. 이 집은 평소에도 제가 지나다니던 골목에 있던 집입니다. 이 집과 이어진 집들은 대체로 부자집들입니다. 이 집 옆의 집은 거의 저택이라 TV드라마에서나 봄직한 크고 넓은 정원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이 집도 그 정도 수준입니다. 별도 주차장까지 갖고 있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하긴 보통 서민의 집에서 저렇게 큰 세퍼트나 이름 모를 싸움개 같은 걸 키울 능력이 되겠습니까? 저런 애완견 한마리 사려면 꽤나 비싼 값을 지불해야할 텐데 말입니다. 그나저나 저는 그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런 집에 사는 아이들은 개한테 물릴 걱정 같은 건 안 하고 살까? 아들놈 친구 엄마처럼 매일 아이를 자가용으로 학교에 데려다 주기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아니면 아이들이 두려워 하든 말든 자기들만 개를 보면서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일까? 자기 개들이 맘껏 골목을 활보하며 뛰노는 행복이 아이들의 안전보다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까?”

개가 사는 집을 찾아낸 경찰.


답은 없습니다. 제가 그분들 머릿속을 들어가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나저나 경찰관 아저씨들 저 때문에 괜히 고생하셨습니다. 몇 년 전에 우리 동네에 있던 파출소가 폐쇄되어 걱정을 많이 했었습니다. 파출소가 동네에 하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파출소가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안심하고 다닐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IMF 이후 구조조정 바람이 불면서 전국의 파출소들을 통폐합하거나 아예 없애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동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신마산 지구대가 다시 부활했습니다. 그 앞을 지나다니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진작에 이렇게 좀 하지. 얼마나 든든하고 좋아. 안심도 되고.” 

그리고 어제 이렇게 지구대 경찰관들의 도움을 톡톡이 받았습니다. 이제 최소한 저 산 만한 두마리 개는 집 밖으로 못 나올테지요. 그러나 아직도 목줄을 풀어놓고 골목을 뛰어다니는 개가 몇마리 더 있습니다. 그걸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개주인들도 물론 몇 분이 더 있습니다. 앞으로도 경찰관 아저씨들이 좀 더 수고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는 평소에 권력의 시녀노릇이나 하는 경찰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일선에서 시민의 안전을 걱정하는 직업의식에 투철한 많은 경찰관들을 보노라면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리고 요즘 경찰들 많이 친절해졌습니다. 예전엔 경찰서 앞을 지날 때면 위압감이 들고 했지만, 요즘은 화장실이 급하면 경찰지구대로 뛰어가 부탁하기도 합니다. 

“고맙습니다. 신마산지구대 경찰관님들. 개 잡는다고 고생하셨습니다.”  

2008. 10. 22.  파비

ps; 초등학교에 다니는 우리 아들놈이 그러는데, 셰퍼드 이름이 ‘알리’라고 하네요. 동네 애들 중에 누군가가 가르쳐 주었답니다. 저 개는 늘 동네 골목을 저런 식으로 돌아다녔다고 하네요. 자기 친구들 중에 저 개를 모르는 애가 거의 없답니다. 무섭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대답은 이거네요. “당연하지.”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