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정'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12.04 퇴물된 대물, 최고의 희생자는? 서혜림? 하도야? NO! by 파비 정부권 (10)
  2. 2009.12.24 선덕여왕을 잃어버린 『선덕여왕』 by 파비 정부권 (25)
  3. 2009.11.11 애국자로 미화된 반란수괴 미실의 최후 by 파비 정부권 (10)
대물? 나는 갈수록 이 제목이 참 웃긴다. 대물? 뭔 대물? 권상우의 거시기가 대물? 원래 <대물>은 박인권 화백의 원작만화 제목이다. 박인권 화백이 만든 대물로 말하자면 실로 박진감 넘치는 스케일로 많은 팬들을 압도시킨 바 있는 작품이다. 이 대표작으로 박인권은 국내 최고의 스토리텔러라는 명성까지 얻었다.

박인권의 만화는 <대물> 외에도 <쩐의 전쟁>, <열혈장사꾼>이 드라마로 방영되어 성공했던 전례가 있다. 특히 <쩐의 전쟁>은 30%대가 넘는 시청율로 만화 원작 드라마 중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바 있다. 박인권의 어떤 만화보다도 더 방대한 스케일과 섬세한 인물묘사,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자랑하는 <대물>은 그래서 방영 전부터 초미의 관심을 받았던 것이다.

여기다 고현정, 권상우, 차인표, 이수정 등 내노라 하는 스타급 배우들이 캐스팅되면서 관심은 더욱 폭발했다. 출발은 좋았다. 기대 이상이었다. 첫회의 반응은 거의 폭발적이었다. 온 사방에서 기대에 찬 목소리들이 들렸다. <모래시계>가 돌아왔다는 반응들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사진. 연합뉴스


대물, 모래시계의 영광을 다시 재현할까, 관심 집중

그랬다. <모래시계>의 히어로 고현정이 이번엔 <대물>을 타고 다시 등장한 것이다. 게다가 고현정은 <선덕여왕>에서 미실여왕의 카리스마를 백분 보여준 터였다. <대물>이 올 초반 드라마계를 강타했던 <추노>를 능가할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런 전망까지 내놓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저런 반응들은 방송 첫주 2회분이 나가면서 거의 기정사실처럼 돼버렸다. 그러나 웬걸?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너무 큰 반응들에 SBS가 갈팡질팡 하는 것일까? 작가가 교체됐다. 여기까진 괜찮았다. 정권의 압력에 의한 낙마가 아니냐는 설이 무성했지만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피디와 작가의 마찰이 있었다는 것이다. 피디가 원하는 대로 받쳐주기가 작가로서는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아마도 <대물>의 경우 작가보다는 피디가 헤게모니를 쥐고 드라마를 이끌고 나가는 형국이었던 모양. 작가의 고백에 의하면 기관에 끌려가는 건 아닐까 겁이 났다고 한다.

그럴 만도 했다. 초반 <대물>은 매우 전투적이었다. 정치인들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냈다. 대통령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순식간에 대통령도 쥐새끼 같은 존재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듯이 <대물>은 덤볐다. 여기에 열광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언론에서도 쉽게 맛보지 못했던 카타르시스가 <대물>에 있었다. 

하지만 작가는 겁이 났던 모양이다. 도저히 피디가 원하는 대로 대본을 쓰기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결국 4회를 넘기지 못하고 하차했다. 여기에 대해선 사태가 어떻게 된 것인지 아직 정확한 내막을 알 길이 없다. 단지 작가와 피디가 노선이 안 맞아 결별한 것이란 정도. 그 이상은 그 다음 벌어진 사태로 묻혀버렸다.  

배가 산으로 가기 시작하는 대물, 선장마저 교체되고

그러나 결국 작가가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작가가 교체됐다는 소식이 있은지 며칠도 되지 않아 이번엔 피디가 교체됐다는 설이 인터넷상에 급속히 떠돌았다. 처음엔 작가를 피디로 잘못 읽었거나 기사를 잘못 썼겠거니 했다. 그런데 진짜다. 진짜로 피디도 쫓겨났다.

여기에 대해서도 우리가 아는 것은 별로 없다. 이번엔 피디와 방송사의 노선 차이 때문인가? 노선 차이라고 해봤자 좀 강하게 나가자는 것과 대충 유연하게 얼버무리자는 정도의 차이겠지만, 이게 방송사 내부에서 서로 결별을 강용할 만큼 그리 큰 문제일까? 

방송사가 드라마를 제작할 때 제1 기준이 무엇이겠는가. 당연히 시청율이다. 이 시청율 때문에 울고 웃는 게 바로 방송사다. 때에 따라선 이 시청율 때문에 피디와 작가가 목숨같이 여기는 퀄러티마저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한창 잘 나가는 시청율 제조 피디를 전격 하차시켰다? 무엇 때문에?

지금 그런  거 따져봐야 소용없다. 이미 상황은 끝났다. <대물>을 기획했던 피디와 작가는 모두 떠나고 대체인력이 투입됐으며 종영을 향해 달리고 있다. 대중들의 기대도 이미 떠났으며 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도 희석된지 오래고 작품성도 우주로 날아간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초반에 가졌던 너무나 큰 기대 때문에 억지로 보기는 하지만 볼 때마다 열불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니 저것밖에 안 되는 거야? 고현정. 미실로 보여주었던 카리스마가 고작 그거야? 그렇다고 <모래시계>에서 보았던 순정을 다시 찾기엔 그대의 나이가 너무 많아. 차라리 피디 떠날 때 함께 떠나는 게 옳지 않았을까?"

퇴물로 전락한 대물, 최대 희생자는 누구?

그러고 보면 퇴물로 전락한 <대물>의 최대 희생자는 고현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녀는 이 작품으로 작년에 이어 최고의 연기자로 뽑히는 영광을 안게 될 것이 거의 확실한 것처럼 보였지만, 이제 누구도 그녀의 연기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아니, 격렬하게 비난이라도 하고 싶지만 미실에 대한 예의로 참고 있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렇다. '아, 이건 아냐, 정말 아냐, 미실에서 그토록 강한 인상을 주었던 고현정이 절대 아니야, 왜, 무엇 때문에 저렇게 비실비실하고 아무런 캐릭터도 느낄 수 없는 서혜림이 되었을까?' 안타까워 참는 것이다.
 
권상우도 희생자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는 최대의 희생자라고 하기엔 얻은 것이 더 많다. 사실 나는 권상우가 가진 카리스마에 대해 별로 알지 못한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보여주었던 강렬함, 이소룡 뺨칠 것 같은 근육은 퇴색했다. 세월은 아무리 아름다운 물감을 들인 천이라도 회색으로 만든다. 

게다가 그는 음주 뺑소니 사건으로 사회적 공적으로 몰린 처지였다. 하기야 이 드라마가 애초 의도대로 성공했다면 그는 확실하게 재기에 성공했을 테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아마도 어쩌면 서혜림의 고현정이 주춤하는 것이 그의 이미지 회복에 청신호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완벽한 카리스마를 보였던 고현정의 미실 때문에 주인공인 이요원이 뒷방으로 밀렸던 것을 상기해보자. 그럼 방송사는? SBS야 말할 것도 없다. 이런 결과는 그들이 자초한 일이다. 그들은 이미 이런 결과를 예측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복골복이다. 잘 되면 그만이고 안 돼도 할 수 없다.

가장 큰 희생자는 고현정도 SBS도 아니다

정권의 압력에 의한 것이든, 자체 판단에 의한 것이든 모든 책임은 그들이 져야 한다. 그러니 그들이 희생자라고는 말하는 건 좀 억지다. 그래도 천만다행이다. KBS와 MBC가 워낙 허접한 경쟁작들을 내놓는 바람에 1등 자리는 고수하고 있으니 체면이라도 유지하고 있다.

나처럼 오갈 데 없는 시청자들도 떠나지 않고 그대로 버텨주니 이거야말로 천운이다. 그렇다면 퇴물로 전락한 <대물>로 인한 최대 희생자는 고현정이란 얘긴데 꼭 그럴까? 아, 차인표가 빠졌는데… 이건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차인표는 오히려 퇴물이 된 <대물>의 수혜자 같다는 느낌이다.

씩씩거리며 속도전 같은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데 그가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혜림 캐릭터의 카리스마가 죽어버렸으므로 강태산이 전면에 부각되었으니 그를 희생자라고 말하기엔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 고현정이 결국 최고의 희생자? 아니다. 고현정이야 이번 실패를 거울 삼아 다음에 잘하면 된다.

사진. 고재열의 독설닷컴


<대물>이 퇴물로 전락함으로써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될 희생자는 다름 아닌 원작 <대물>의 작가 박인권 화백이다. 그가 5년에 걸쳐 쌓아올리고 필생의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대물>의 이름이 한순간에 퇴물로 전락함으로써 가장 큰 희생을 치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도 "나는 아냐" 하면 그만이다.

"역시 원작보다 나은 아류는 없다는 게 증명됐을 뿐이고, 원작료도 받았고. 게다가 나는 명예 같은 거 그리 따지지 않아" 그러면 그뿐인 거다. 그러면 누가 최고 희생자야? 이거 결론이 이상하게 돼버렸다. 그럼 이렇게 하자. 최고의 희생자는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이 미미하네요

나는 지난 몇 주 동안 꽤나 바빴다. 그래서 <대물>을 제시간에 볼 수 없었다. 결국 미디어 다음에서 다시보기로 회당 700원씩 주고 볼 수밖에 없었는데, 6 곱하기 700원 하니 4200원의 손실을 보았다. 거기에 시간적 손실과 실망감에 의한 정신적 피해까지 합하면 꽤 큰 희생을 치렀다고 할 수 있다.

믿거나 말거나. 아무튼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이 미미하게 된 점'에 대해선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내가 특별히 어떤 글쓰기 계획을 가지고 쓰는 게 아니라 드라마 보고 나서 컴퓨터 앞에 앉아 주절주절 하다 보니 가끔 이런 일도 생긴다. 그러나 확실한 것 하나. <대물>은 퇴물이 되었다는 것. 그래도 나는 끝까지 본다는 것.

※ 이건 순전히 우연의 일치인데, 이 글을 다 써놓고 내일 오전 발행으로 예약을 해놓은 다음 독설닷컴에 갔다가 박인권 화백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거기서 그는 원작에 비해 시시해진 드라마 <대물>에 불만이 없냐고 물어보자 "그런 점이 있긴 하지만, 각색도 창작이고 참여가 아니라 참견하기 싫어 아예 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태도는 매우 훌륭하지만, 아무튼 드러내지 않는 내심이라도 불만이 있는 건 분명해 보였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선덕여왕』의 주인공은 누구였을까? “당연히 선덕여왕이지!”라고 말해야 옳겠지만 아무래도 그렇게 말하긴 어려울 듯하다. “그럼 대체 『선덕여왕』의 주인공은 누구란 말이야?” 하고 다시 물어본다면, 아마도 비록 내키진 않을지라도 “미실!”이라고 말하거나 또는 “미실과 비담 모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훨씬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사실이 그렇다. 사실 나는 선덕여왕 역을 맡은 이요원의 팬이라고 할 수도 있다. 『패션70s』에서 처음 만났던 그녀는 참 매력적이었다. 시골소녀의 풋풋함과 당찬 도시여성으로 성장해가는 전사 같은 모습이 어우러진 이요원을 『화려한 휴가』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그 매력은 여전했다. 물론 선덕여왕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녀에겐 상경한 시골처녀의 당돌함이 있었고, 그것은 세상을 마주하는 자신감이기도 했다. 어린 덕만 남지현에 이어 등장한 이요원에게도 그것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패션70s』에서의 이요원도 서울에서 멀리 남도 끝자락의 어느 섬으로 유배되었다. 그 유배도 덕만처럼 음모에 의한 것이었다. 머나먼 이국의 사막 타클라마칸에서 자란 덕만처럼 『패션70s』의 이요원도 활기찬 사내아이 같았다.

제도에 길들여지지 않은 순수한 영혼의 힘, 나는 그것이 덕만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덕만이 처음 서라벌에 들어와 미실과 마주했을 때 거둔 덕만의 승리는 바로 그것이었다. 순수한 영혼의 힘. 아마도 오래 전 기억이지만-벌써 7개월이란 세월이 흘렀으니-‘하룻강아지’ 덕만과 여우같은 천명의 합작이 미실에게 거둔 첫 승리의 원동력이라고 포스팅한바가 있다.


나는 그래서 덕만이 머나먼 이국 사막에 버려진 것이-나중에 그것은 덕만의 유모 소화가 문노를 피해 덕만을 데리고 도망간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어쩌면 예언의 이끌림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라벌에 있었다면 천명처럼 덕만도 미실을 무서워하며 오금을 펴지 못했을지 모른다. 사실 이런 설정은 여러 고전에서도 발견되는데, 반대의 경우지만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도 그렇다.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는 예언자의 불길한 예언에 따라 아들을 숲에 버린다. 죽여야 한다고 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했던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파리스는 목동이 되고 유명한 ‘황금사과의 재판’을 하게 된다. 그리고 예언의 이끌림에 따라 트로이로 돌아와 왕자의 지위를 되찾는다. 그러나 그는 혼자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의 10만 대군과 맹장 아킬레우스를 끌고 돌아온 것이다.


이런 종류의 설정은 자주 보는 것이지만, 늘 사람들을 긴장시키는 힘이 있다. 덕만도 국조의 예언에 따라 버려졌다. 어출쌍생 성골남진. 결국 이 예언은 이루어진 셈이다. 덕만과 승만을 끝으로 성골은 멸절했으니까.―대체 성골과 진골이 뭐냐는 따짐은 여기선 생략하기로 한다. 성골남진이 춘추가 진골로서 왕이 된 이유라는 사기의 기록을 믿는다는 전제하에―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예언은 이보다 먼저 진흥왕이 문노에게 남긴 예언 즉,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는 날 미실을 물리칠 자가 오리라!”는 예언을 이루기 위한 보조적인 예언에 불과했다. 덕만을 멀리 사막으로 보내 미실을 물리칠 힘을 키워오도록 해야 하는데 별다른 장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불길한 예언’이다. 역사기록을 예언으로 바꾸는 기지가 참으로 놀랍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드라마의 제작 의도는 틀림없이 덕만이 미실이 대표하는 세력 즉, 구세력을 타파하고 신진귀족들을 중심으로 하는 보다 강해진 신라를 만들어 삼한통일의 대업을 준비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미실을 악으로, 덕만을 선으로 규정해 대립구도를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 초기의 시도는 매우 옳았고 성공했다. 그러나 갈수록 미실의 악역이 빛나는 게 문제였다.

매력적인 악의 화신 미실. 시청자들로부터 쏟아지는 미실에 대한 찬사에 제작진들도 넋을 잃은 것일까. 어느 날부터 갑자기 미실이 변하기 시작했다. 미실은 원래 인정사정없는 권력의 화신이었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자기 부하도 가차 없이 목을 벤다. 실제로 덕만을 안고 도망치는 소화를 놓친 근위병사를 직접 칼을 들어 베지 않았던가. 게다가 동생 미생도 죽이려 했고, 심복 상천관은 끝내 죽였다.

정치적으로는 대귀족들에게 고율의 세금을 부과하고 중소귀족들과 평민들의 세금을 낮추어주려는 덕만의 정책에 맞서 대토지소유귀족들의 권익을 옹호한다. 뿐 아니라 매점매석으로 자영농을 소작농으로 전락시키고, 소작농에겐 고리대를 놓아 이들을 노예로 만들어 나누어가진다. 전형적인 독재자다. 독재자들이란 늘 그렇듯이 서민들을 핍박하고 대신 기득권 세력을 만들어 그들을 지지기반으로 삼는다.


이런 미실이 극 후반부로 갈수록 묘하게 뒤틀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원래 그렇게 기획됐던 것인지, 고현정의 열연으로 미실의 인기가 높아진 탓에 변형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볼 때 이것은 부조리였다. 미실을 이기고 새로운 신라를 만들어 삼한통일의 기초를 닦을 덕만이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매혹적인 독재자미실이 들어선 것이다.

나중에 미실은 반란까지 일으켰으나 많은 네티즌들은 미실의 반란이 실패한 것이 못내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미실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었겠지만, 그게 그거 아닌가. 미실이 죽고 난 뒤에는 비담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비담은 미실의 아들이었던 고로 마치 비담이 난을 일으켜 왕권을 잡으려고 하는 것은 미실의 유지인 것처럼 비쳐졌다.

진흥왕이 자신을 척살하라고 설원공에게 내린 칙서가 비담의 손에 들어갔을 때, 미실은 “제 주인을 찾아갔구나!”라고 말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다. 비담이 사량부령이 되어 새의 깃털로 만든 부채를 들고 나타나자 그건 기정사실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 비담은 난을 일으켰다. 그러나 마지막 12회 분량에서 보여준 제작진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선덕여왕』의 마지막은 비담과 선덕여왕의 사랑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이 사랑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구세력-염종을 비롯한 전통 귀족세력-의 음모에 의해 비극으로 끝난다. 마지막 비담의 회상에서 미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 “여리디 여린 사람의 마음으로 푸른 꿈을 꾸는구나!” 이 말은 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한편 자신이 못다 이룬 대업을 아들이 이루길 바라면서 또 한편 그것이 실패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이런 모순이... 그러나 어찌 되었든 『선덕여왕』 후반부의 주인공도 선덕여왕이 아니라 비담이었다. 비담은 미실과 마찬가지로 악한 성정을 타고난 인물이었다. 미실이 그렇듯 비담도 사람을 죽이는데 일말의 양심도 없는 사람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닭고기를 못 먹게 만들었다고 칼을 휘두르는 인물이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덕만을 위기에서 구한 첫 번째 공이었지만.

그런 비담도 미실과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부터 순정적인 인물로 그려지기 시작한다. 악의 화신이 졸지에 순정만화의 주인공으로 둔갑한 것이다. 애초에 비담이 덕만을 표적으로(!) 삼은 것은 문노가 자신에게 넘겨주려 한 신라를 가지기 위함이었다. 너무 오래돼서 모두들 잊어버린 것일까. 그러나 어떻든 비담은 최후마저도 순정만화의 주인공처럼 멋있게 죽었다.

“덕만 앞 70보” “덕만 앞 30보” “덕만 앞 10보” 할 때는 마치 이연걸이 주연한 중국영화 『영웅』의 ‘십보필살검법’을 패러디한 것 같아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덕만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서는 비담의 모습은 실로 눈물겨웠다. 마지막회는 그야말로 어느 블로거의 표현처럼 비담의, 비담에 의한, 비담을 위한 드라마였다. 그럼 선덕여왕은 그동안 무얼 했을까?

글쎄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질질 짜다가 갑자기 냉철한 모습으로 우리를 당혹하게 만드는가 하면 갑자기 사랑의 열병도 앓는다. 그러다가 다시 냉정한 모습으로 그 사랑이 진심인지도 의심하게 한다. 원래는 유신과의 애절한 사랑의 레퍼토리가 끝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갑자기 유신에 대한 연모는 오간데 없고 비담이 덕만의 가슴에 들어앉았다.

미실을 물리치고 ‘덕업일신 망라사방’의 꿈을 이룰 덕만도 없었다. 원래 『선덕여왕』은 불가능한 꿈에 도전하는 선덕여왕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 선덕여왕은 처음에는 있었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블로거 송원섭의 스핑크스 글 제목처럼 ‘진짜 선덕여왕이 『선덕여왕』을 보았다면’ 무어라고 했을까. 아마도 매우 실망했을 것이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고 하면서.

진짜 선덕여왕은 미실과 비담을 위한 내레이터 정도로 전락한 선덕여왕을 보면서 모욕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랬다. 내가 보기에 선덕여왕은 『선덕여왕』에서 미실과 비담의 내레이터였다. 역시 다시 한 번 하는 말이지만, 『선덕여왕』은 미실의 난을 제압하고 왕위에 오르는 것으로 끝냈어야 했다. 그리고 미실과 비담도 원래의 모습에 충실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오해를 피하기 위해 굳이 사족을 다는 것이지만-『선덕여왕』은 매우 훌륭한 드라마였다. 이전에 이토록 훌륭한 드라마는 보지 못했다. 엄청난 자본이 투입된 광개토대왕을 다룬 『태왕사신기』가 있었지만 이만한 국민적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토록 많은 블로거들이 많은 후기를 쏟아낸 드라마가, 또는 무엇이었든, 있었던가.


아무튼 결론은 내가 좋아하는 이요원이 『선덕여왕』에서 내레이터처럼 만들어진 것은 매우 불만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래봐야 소용없는 일인 줄은 안다. 엿장수 마음이란 말도 있으니까.

Posted by 파비 정부권
미실이 드디어 최후를 맞았습니다. 대단한 인기에 걸맞게 장중하고 엄숙한 죽음이었습니다. 마치 드라마의 주인공이 선덕여왕이 아니라 미실이 아니냐는 비아냥거림이 사실이라고 항변하는 듯 그런 죽음이었습니다. 실로 죽음이 아름답다고 생각될 만한 그런 죽음이었습니다. 미실이 죽던 그 순간은 온 세상이 고요 속에 어쩔 줄 모르는 듯했습니다. 

미실의 용상. 미실은 자신만의 옥좌에서 고혹적인 죽음을 맞는다.


미실 권력의 핵심은 사람 

대야성에 피신한 미실은 그곳에서 전열을 가다듬으며 전세를 역전시킬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미실은 대야성에 쫓겨 들어간 그날 측근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부터 이전과는 반대로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덕만은 시간에 쫓기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듯 미실의 군세는 불어납니다. 

미실은 주지하듯 젊은 시절에 진흥대제와 함께 변방을 누비며 당대 신라의 국경을 만든 인물입니다. 물론 이는 픽션이긴 하지만, 1부의 첫 장면이었던 만큼 드라마에서 대단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실질적인 신라의 통치자 미실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진흥대제는 그걸 알았고 그래서 설원랑에게 미실을 죽이도록 칙서를 내렸던 것이죠. 
그러나 설원랑은 미실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때는 이미 신라의 서울(서라벌)과 지방의 모든 조직이 미실에게 넘어간 후였습니다.  대세를 장악한 미실은 진흥대제의 주검 앞에서 이렇듯 당당하게 외칩니다.

“사람? 사람이라 하셨습니까? 폐하. 보십시오. 여기 이 사람들을. 폐하의 사람들이 아니라, 제 사람들입니다.” 

이미 대부분의 인재들이 미실의 편에 가담했으며, 진흥대제는 사실상 앙상한 뼈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단지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는 날, 미실을 이길 자가 오리라!"는 알지 못할 예언만 남긴 채.
그리고 마침내 진흥대제의 예언대로 개양성의 주인 덕만이 나타나 미실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나 30여 년의 세월은 너무나 긴 세월이었습니다.

신라의 곳곳에 미실의 촉수가 뻗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신라의 귀족, 장군들치고 미실로부터 은혜를 받지 않은 자가 없을 지경입니다. 미실의 힘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진흥대제 밑에서 은밀하고 꾸준하게 자기 세력을 만들어온 미실은 마침내 권력을 잡자 도처에 그들을 심었습니다.

여기엔 미실의 말처럼 속함성을 비롯한 변방의 모든 장수들은 미실과 함께 피를 흩뿌리며 고락을 같이 해온 동지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중에는 속함성 당주처럼 진심으로 미실을 받드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공포정치 아래 길들여진 노예근성에 젖은 자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상주정 당주 주진의 변심은 미실의 권력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던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좋은 예입니다. 

 

덕만을 향해 화살을 날리는 미실, 이것도 대의였을까?


미실은 한 번도 대의를 저버린 적이 없었다?

미실이 난을 일으키고자 했을 때, 세종과 설원을 비롯한 측근들조차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동안 미실이 보여준 모습과는 너무 상반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쿠데타는 미실처럼 대의를 존중하고 실천해온 사람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대야성의 수비진용을 짜던 칠숙과 석품이 나눈 대화에서도 그걸 엿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미실 새주를 따랐던 것은 단 한 번도 새주가 대의를 벗어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소리를 매번 들을 때마다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실이 대의를 저버린 적이 없다니요? 진흥대제가 살아있을 때의 미실이라면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흥대제가 죽을 때 미실이 어떻게 했었지요? 미실은 진흥대제를 독살하려고 했습니다.

다행히 진흥대제는 미실에게 독살되기 전에 눈을 감았습니다. 이에 미실은 진흥대제에게 이렇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었지요. "폐하, 제 손으로 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실은 진흥대제가 남긴 유서를 숨기고 백정이 아닌 금륜을 왕으로 옹립합니다. 여기엔 금륜과 미실의 검은 거래가 있었습니다. 미실에게 황후전을 보장하겠다는. 

왕이 된 금륜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미실은 이번엔 진흥대제의 진짜 유언장을 들이밀며 진지제를 폐위시킵니다. 그리고 어린 백정을 왕이 되게 하고 그의 황후가 되기 위해 마야부인을 죽이라는 밀명을 내립니다. 마야부인은 문노의 도움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오고 미실의 꿈은 좌절됩니다.

덕만과 천명이 태어났을 때, 진평왕이 덕만을 버린 것도 결국은 미실이 무서워서였습니다. 제 아무리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이 있다 한들 미실이 아니었다면 덕만이 타클라마칸의 사막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할 이유는 그다지 없었습니다. 이미 미실은 신국의 황제 위에 군림하는 만인지상이었던 것입니다.

덕만을 몇 번이나 위기에서 구한 진흥대제의 소엽도


 미실에게 대의란 곧 자기 파벌의 권력과 축재의 수단일 뿐 

그리고 30여 년, 미실과 미실의 측근들은 신국의 정치, 군사, 경제 등 모든 분야를 주물렀습니다. 그들은 매점매석으로 토지를 잃게 된 농민들을 노예로 사들였고, 부를 축적하며 사병을 길렀습니다. 덕만이 공주의 신분으로 처음 미실을 만났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왜 신라가 진흥대제 이후 발전을 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겠다.”

모두들 아시겠지만, 덕만의 말에 의하면 그 이유는 미실은 신국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생각엔, 미실과 그의 측근들이 수십 년 동안 나라를 농단했음에도 발전은 고사하고 망하지 않은 신라가 참으로 신통합니다. 그런데 이런 미실을 향해 한 번도 대의를 벗어난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떻든 좋습니다. 미실이 한 번도 대의를 벗어나본 적이 없다고 칩시다. 요즘은 친일 행적이 명백함에도 그건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었으며, 누구라도 당시로서는 그리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 그깟 대의 같은 게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과거에 역적질을 좀 했고, 나라 재정을 거덜냈으며, 백성들을 노예로 만든 게 무에 그리 대수겠습니까.  

문제는 지금입니다. 미실은 분명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것도 아주 비열한 방법으로. 미실 스스로도 치가 떨리도록 비열한 방법을 써서 역모를 성공시키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리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진평왕도 연금했고, 덕만공주를 죽이라고 지시했으며, 왕위에 오르기도 전에 옥좌에 앉아 신료들에게 호통을 치는 불경죄를 저질렀습니다. 

미실은 명백히 이순간 반란 수괴인 것입니다. 그런 미실이, 그런데 너무 쿠데타 세력의 수괴답지 않은 행동을 합니다. 자신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2만 군사를 이끌고 달려온 속함성 당주를 국경을 잘 수비하라는 당부와 함께 돌려보냅니다. 실로 착한 반란 수괴입니다. 반란군이 당장 눈앞의 역모보다 나라의 장래를 먼저 생각합니다. 눈물겹습니다.

미실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남편과 아들(좌) / 덕만공주를 거짓말로 속이는 미래의 배신자 비담(우)


과도하게 미화한 반란 수괴의 최후

일개 국경수비대장이 2만의 병력을 갖고 있는데 서울(서라벌)을 수비하는 금군이 겨우 수천도 되지 않는다는 설정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난센스란 것쯤은 그냥 넘어가도록 합시다. 하긴 상주정 당주가 5천의 군사를 끌고 오자 바로 전세가 결판이 나는 상황을 보며 놀랐던 경험이 있던 터에 이제 2만이라고 하니 더 놀랄 힘도 없습니다.

아무튼 미실의 최후는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최후가, 꼭 그렇게 반란 수괴를 나라에 충성하는 애국자로 만들어야만 가능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쉽기만 합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입니다. 여기에 어떤 역사적 가치관 같은 것을 대입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30여 년만에 두 번의 반란으로 헌정이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던 나라의 국민으로서, 전방에서 나라를 지켜야할 군대가 전선을 이탈해 권력을 찬탈하는 역모에 동원되는 반역사의 현장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공포정치로 권좌를 지키기 위해 제 나라 국민을 도륙한 군인들이 통치하는 시대를 지켜보았던 사람으로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선덕여왕』이 미실의 최후를 그렇게 그린 것인지도. 역설적인 어법으로 과거의 쿠데타 세력에 대한 준엄한 역사적 심판을 하려는 의도였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무튼 미실의 최후는 불만입니다. 그녀의 죽음이 충분히 아름다울 필요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 미실을 애국자로 만들 필요까지 있었을까요?  

미실을 얼마든지 악당으로 만들더라도 그간 미실이 보여 왔던 무게만큼 장중하고 엄숙한 그리고 아름다운 죽음은 가능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왕 대의를 버리고 오랜 꿈을 쫓아 칼을 뽑아들었다면 최선을 다하다가 장렬하게 죽는 모습이 훨씬 아름답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나는 정말 미실의 그런 죽음을 바랐습니다.

대의는 내게 있다는 듯 진흥대제의 소엽도를 내미는 덕만은 미실이 떠난 자리를 어떻게 메울지


미실 없는 『선덕여왕』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50여 회에 걸친 미실의 역정이 이토록 허무하게 끝나리라고는 상상을 못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오늘 50회 미실이 죽는 모습만 놓고 본다면 멋진 죽음이었다는 것은 인정하겠습니다. 고현정은 역시 훌륭한 연기자임에 틀림없습니다. 『모래시계』의 히어로였던 그녀가 삼성가의 며느리가 되는 것을 보면서 실망하기도 했었지만, 역시 그녀는 멋진 배우입니다. 

고현정 없는 『선덕여왕』의 미래가 실로 궁금합니다. 고현정을 죽였으니, 이요원은 이제부터 진짜 실력을 한번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만. 아무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