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의회'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5.10 홍준표를 창조컨설팅으로 보내자는 말인가? by 파비 정부권
  2. 2009.03.22 여성해방운동가 고 이경숙선생 회갑연에 다녀와서 by 파비 정부권 (2)

아래는 경남도 여영국 의원이 어제 도의회에서 한 발언 내용입니다. 후문에 의하면 이 발언이 끝나고 돌아갈 때 홍준표 지사는 여 의원과 마주치자 다른 길로 돌아갔는데, 다시 여 의원이 그 앞으로 가 기다리고 있자 악수를 하지 않으려는 양 뒷짐을 지고 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 의원이 그랬다는군요. 


"지사님, 잘 가이소."


그러자 홍준표 지사는 고개만 끄덕거리면서 써끔한 미소를 짓더라는 것입니다. 써금한 미소...... 라고 하면 대충 경상도 사람들은 알아듣는데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홍 지사. 당당한 경남 타령 같은 거 좀 하지 말고 사람이 아는 체 하면 같이 좀 아는 척 하고 합시다. 쪼잔하게 그러지 말고.



노동기본권, 헌법정신 부정할려면 
지사직을 사퇴하라!

여 영 국 의원(기획행정위원회)


존경하는 340만 도민 여러분! 선배 동료의원 여러분! 
창원 출신 기획행정위원회 소속 여영국 의원입니다.

4월30일, 진주의료원 노동조합 비방전단 10만 장이 경상남도 명의로 경남전역에 배포 되었습니다. 어버이날 전후해서 만난 어떤 어르신은 돈벌어서 노조 저것들이 다가져간다며 진주의료원 없애야 한다고 강변하시기도 했습니다. 
경남의 대표기업인 STX그룹의 유동성위기 원인도 노동조합에 있다는 말들이 너무 쉽게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동안 온 행정력을 동원하여 노동조합을 사회적 악으로 각인시키며 유포한 반노조 바이러스 효과이겠죠? 

헌법정신, 노동기본권 부정하는 홍준표 지사
헌법 제 33조 1항에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하여 노동3권을 분명하게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노동자가 사용자에 비해 힘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단결하고 대항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 ‘정의’에 부합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주의료원 문제를 통해 홍지사와 일부 공직자들의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대하는 시각이 너무나 편향적이고 반 헌법적 사고에 젖어 있습니다.
헌법의 정신을 존중하고, 그것이 구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공직자의 신분을 홍지사는 망각하고 있습니다. 
노사관계에 대한 중립적인 입장이 아니라, 반노동자적, 반노동조합적 태도를 유감없이 드러내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들의 중대한 기본권을 침해하는 홍준표 도지사는 행정을 수행할 기본 자질이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87년 이후 정의로운 사회는 노동조합이 만들었습니다.
홍지사께서는 유독 ‘정의’를 강조합니다. 과연 홍준표 도지사의 정의는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정의입니까?
87년 사회전반의 민주화운동과 더불어 노동조합운동도 활성화 되었습니다. 임금과 근로조건을 큰 폭으로 개선하였습니다. 그 결과 내수시장이 활성화 되면서 한국경제의 체질을 사실상 노동조합이 바꾸었습니다. 

부정부패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공직 사회였습니다. 누가 이 환경을 바꾸었고 바꾸고 있습니까? 
고질적인 학교의 촌지문제에 대해 가장 발 벗고 나선 조직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었습니다. 자신의 치부를 가장 먼저 드러내고, 양심선언과 자정노력, 그리고 이를 위한 제도개선을 요구했습니다. 
공무원 노동조합은 ‘공직사회 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을 아예 자신의 캐치플레이즈로 걸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진주의료원이 속해 있는 보건의료 노동조합이 가장 앞장서서 공공의료 실현과 의료제도개혁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현재 유동성위기에 처한 STX 조선,엔진 그리고 대우조선 등 경남의 대표기업들이 과거 부도 등 어려움에 처했을 때 노동조합이 가장 앞장서서 회사를 살려냈습니다. 
쌍용자동차를 중국 상하이 자동차가 인수할 때 노동조합은 기술만 빼먹고 튈 것 이라며 결사반대했고 정부와 채권단은 노조 주장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결국 기술만 빼먹고 날라버렸고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공권력을 동원해 짓밟았습니다. 

산업현장에서, 병원에서 언론사에서 공직사회와 교단등 모든 직장과 여의도 광장에서 다수를 위한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온갖 탄압에도 불구하고 나선 것은 홍지사께서 그렇게 증오하는 노동조합이었습니다. 

노동의 가치실현을 위해 노동조합 기차는 지금도 달립니다. 
노동조합은 사회를 보다 더 정의롭게 바꾸고자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바로 자본과 정부가 노동자들을 분할통치하고, 사회적으로 고립시켰기 때문입니다.
노동조합은 기업별 교섭이 아니라 산별교섭을 통해 임금협약 적용률을 확대하고 기업복지에 목맬 게 아니라 사회적 복지를 확충해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자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자본은 이를 거부했고 지금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교섭을 포함한 노동조합의 행보를 기업의 울타리로 가두어 버린채 비정규직을 확대했습니다. 기업에 갖힌 노동자들의 살기위한 몸부림은 기업복지 확대로 귀결되었습니다. 사회적 보편복지 확충을 위한 노동조합의 연대를 정부와 자본이 차단시킨 결과가 기업, 기관의 특성이 반영된 기업복지의 결과물이 단체협약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진주의료원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도 그 부산물 입니다. 이것은 정부와 자본의 전략이었고 현재도 그러합니다. 기업울타리에 갇혀버린 노동조합은 극단적 양극화로 신음하는 한국사회의 공범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노동조합은 정부와 자본이 강제한 기업울타리에 갇혀 힘을 잃어 버렸습니다. 기업에서 버림받으면 모든 것이 절망인 한국사회! 그래서 노동자들은 기업에 목을 매어 생존에 발버둥 치고 있습니다. 이런 노동자들에게 국가와 사회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노동조합은 자본의 천국으로 변해버린 한국사회를 바꾸려고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노조파괴 전문컨설팅사로 가시라
홍지사님!
이런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이 좋은 먹잇감으로 보였습니까?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영혼도 없이 자본과 권력자의 입맛에 순응하는 노예가 되는 것이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기본권의 정신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힘없는 노동자를 짓밟아 어떤 정의를 세우겠다는 겁니까?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정신으로 경남에서 정의를 바로세우겠습니다. 가지지 못하고 힘없는 사람의 편에 서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겠다” 취임사에서 하신 말입니다. 

진주의료원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이 힘 있는 불의의 세력입니까? 생존권을 지키겠다고 나선 노동자들이 강한 자들입니까? 지렁이도 밟으면 꿈들 거린다고 했는데 꿈틀거리는 지렁이는 강성지렁이 입니까?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에 얼마나 적대적 태도를 가졌길래 행정권력을 이용하여 먹이사냥 하듯 노동조합을 공격하고 공공의료를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습니까? 
그렇게도 노동조합이 사회악 이라면 홍지사께서 생각하는 정의실현을 위해 노조파괴 전문 컨설팅사로 가시기 바랍니다.

노동조합을 계속 적대 하실 겁니까?
다수의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기본권과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홍준표 지사님! 우리 사회의 근간과 룰을 부정하면서 어찌 ‘공공’이라는 이름으로 행정을 수행하겠습니까?

세계 어느 복지국가를 보더라도 그 중심에는 노동조합이 있습니다. 노동조합 없이는 복지사회 근처도 못 갈 뿐만 아니라 노동가치와 노동기본권,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세력은 ‘공공의적’입니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적대하는 모든 행위와 세력에 대해서는 의원직을 넘어서서 모든 것을 걸고 맞서 싸워 노동의 가치를 지켜내고, 헌법정신을 지켜내겠습니다. 자본의 탐욕에 신음하는 한국사회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노동조합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저 같은 사람이 정치를 하는 존재이유이기 때문입니다. 
홍준표 지사님! 노동조합을 존중하고 노동기본권을 보장한 헌법정신을 준수할 생각이 없으시면 차라리 지사직을 사퇴하고 정계를 떠나십시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 어떤 분의 회갑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주인공은 자리에 참석할 수 없었답니다. 오늘 회갑연의 주인은 이미 5년 전에 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기이한 회갑연이라고도 하겠습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은 이 잔치의 주인이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그리워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세상을 하직하고서도 남은 사람들에게 모여 떡과 고기를 나누게 하는 그 뜻이 실로 갸륵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 잔치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고 경숙 선생입니다.

 

 이경숙 선생은 5년 전 갑작스런 급성심부전증 발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무런 언질도 없이, 그야말로 느닷없는 그이의 죽음은 주변 사람들을 무척 당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청천벽력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당시에 많은 이들이 실감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경숙 선생에 대하여 특별히 남다른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이를 사모하고 존경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많은 이들이 수많은 계절이 옷을 갈아입었음에도 잊지 않고 모여 함께 떡과 고기를 나누며 선생의 회갑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다른 이들처럼 이경숙 선생과 함께 어떤 사업을 해보거나 활동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이의 평소 신념이나 지론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이의 온화한 모습에서 늘 위안을 받고 생기를 얻었던 기억으로부터 어떤 신조나 논리보다도 강렬한 선생의 삶을 느낍니다.

 

그이는 평생을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오로지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선 봉사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은 고결한 수녀가 걸어가는 길과는 또 다른 길이었습니다. 가톨릭 신도이기도 했던 그이는 신에게 봉사하는 대신에 가난하고 핍박 받는 민중을 위해 봉사하기로 마음먹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 결실 중에 하나가 오늘날 마창여성노동자회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남여성회도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사람들을 모아놓고 떡과 고기를 나누는 기쁨을 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런 결실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이와 처음 인연을 맺게 해준 것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양곡에 있는 그이의 아파트였습니다. 거의 이십 년 전쯤에 저는 수배된 오갈 데 없는 노동자였습니다. 게다가 나이도 무척 어리거나 젊었습니다. 아마 스물 다섯이나 여섯쯤 되었을 겁니다.

 

당시에는 노동자들이 수배되거나 해고되는 일이 너무나 자주 일어나는 일이어서 사람들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오늘 어느 사업장에 누군가가 해고 또는 수배되었다고 하면 , 거기도 드디어 배자가 하나 떴군! 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한참 어리거나 젊거나 혹은 여리디 여린 제게는 무서운 일이었지요.

 

당시엔 수배자는 배자, 해고자는 고자라는 은어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마산과 창원의 배자와 고자들은 주마다 한 번씩 모여 회합을 가졌는데 삼겹살 파티를 하기도 하고 우루과이 라운드(그게 WTO가 됐다가 요즘은 한미FT에다 미국산 쇠고기까지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원흉쯤 되겠는데, 모두들 잊어버린 까마득한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지요.)에 대해 토론회를 벌이기도 하면서 친목을 다지며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그때 그 장소로 이경숙 선생의 아파트가 가끔 이용되었습니다. 따사로운 봄날 4층인지 5층인지 아파트 거실 전축 턴테이블에 올려진 양판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클래식에 흠뻑 빠졌던 기억이 가물거립니다. 물론 대부분은 저 같은 센치맨과 달라서 빨리 판 갈라고 성화를 부렸지만 말입니다
 

 
그이가 경남여성회 회장으로 계실 때, 저는 마침 남산복지회관(경남여성회) 인근에 살고 있었으며 제 아내가 사무국장 일을 맡고 있었습니다. 사무실에 자주 갔었는데 갈 때마다 따뜻한 커피(원두로 만든)를 내주며 맛있다고 먹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이거 굉장히 맛있는 거야. 어서 먹어봐! 하는 식이었지요.  

 

그이는 제 아들녀석 생일도 잊지 않고 챙겨주시던 자상한 분이었습니다. 바쁜 중에도 일부러 시간을 내어 가끔 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는데, 도민사격장 인근의 두부요리집은 요즘도 장사가 잘 되는지 어쩌다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그이의 무덤에 새겨진 것처럼 여성해방운동가이기도 하고 노동운동가이기도 했던 삶의 치열함이 언제나 그렇게 온화하고 다정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 모습만이 지금 눈에 선합니다.

 

그이의 업적에 대하여는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모든 삶을, 가족과 행복하게 보내어야 할 일생의 모든 시간들을 여성노동자들과 부조리한 세상을 혁파하는 일에 바친 그 삶이 이미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으니까요. 다만 저는 그이와 가졌던 다정하고 즐거웠던 그래서 제게는 너무나 소중한 순간들을 기억해보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입니다.

 

오늘이 벌써 이경숙 선생의 회갑이었군요. 그래도 남아있는 사람들이 저렇게 즐겁게 모여 담소하고 음식을 나누는 모습을 보니 그이도 틀림없이 하늘나라에서 기뻐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년 가을, 가족과 함께 그이의 무덤에 다녀오며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선생님은 가시고 나서도 좋은 일만하시네.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 묻혀계신데다가 바로 앞에는 국민관광지 통도사까지 있으니… 선생님을 뵙고 나서 관광 삼아 통도사 구경하면 딱 좋겠구먼….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지만, 나중에는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의 기일에 찾았던 통도사를 가득 메운 붉은 소나무들의 키가 유난히 훌쩍 크고 우람했습니다.        파비

 

이경숙 선생 약력   ▷ 충남 공주군 정안면 북계리에서 6남매 가운데 막내로 출생 (1949년 음력 2월 26일생)
                            ▷ 마산가톨릭여성회관 및 가톨릭노동문제상담소 근무 (1981년~1991년)
                            ▷ 마산창원 여성노동자회 초대, 2대 회장 역임(1992년~1996년)
                            ▷ 경남여성회 회장 역임(2000년~2002년)
                            ▷ 경상남도의회 의원(2002년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 경남도의회 교육사회위원/농수산위원/여성특위 위원장 역임
                            ▷ 과로로 인한 급성심부전증으로 사망 (2004년 9월 3일)
                            ▷ 공주여고/서울여대/경남대 행정대학원 졸업
                            ▷ 경남도민일보 이사/ 경남시민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마창진 참여자치연대 공동대표/
                                경남
여성회 회장/ 마창여성노동자회 회장/ 경남여성단체연합 대표/ 노동사회교육원 外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