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09.26 마당에 핀 꽃을 보며 드는 생각 by 파비 정부권 (3)
  2. 2009.09.17 방사선검사 때문에 예쁜 우리딸 지울뻔한 사연 by 파비 정부권 (8)
  3. 2008.10.04 개천절에 무학산을 정복하다 by 파비 정부권 (2)
  4. 2008.09.22 목욕탕에서 만난 낯선 남자 by 파비 정부권 (2)

매년 이맘때면 우리집 마당에 피는 꽃이랍니다.
꽃 이름은 꽃무릇. 
왜 하필 이름이 꽃무릇일까요? 

"꽃이란 무릇 이렇게 고와야 하느니라!"

그래서 꽃무릇일까요? 

아무튼 꽃무릇이 활짝 핀 걸 보니 이제 완연한 가을이겠군요. 
날씨도 이제 제법 가을다워졌습니다. 

그렇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점령군 같은 여름이 물러날 줄 몰랐지요. 
올여름은 유난히 더운 데다가 길었습니다. 
보통 8월 중순을 넘기면 질긴 여름도 한 풀 꺽이기 마련인데, 
올여름은 그 기세가 멈출 줄을 몰랐지요.
 
9월 말이 되어서야 이제 겨우 꼬리를 내리고 후퇴할 모양입니다. 
내년을 기약하며…. 

물러가는 여름을 배웅하는 우리 마음도 한결 풍성해졌습니다. 
도무지 올 것 같지 않던 가을이
마치 밤사이 몰래 진주해들어온 해방군처럼
그렇게 여름을 몰아내고 세상을 점령했습니다.
남몰래 어둠을 타고 내린 밤이슬과 함께.


빠알간 꽃들을 이리저리 타고넘는 나비가 평화롭습니다.
혼자서 저 많은 꽃들과 사랑을 나누려나보지요.
욕심 많은 나비가 부럽습니다.
훠얼~ 훨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과 함께 돌아온 꽃무릇을 보며
나는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아! 또 덧없이 한 살 더 먹는구나.
그저 그 생각 말고는 더 드는 생각이 없으니
참 한심도 하군요.


마당에 한가롭게 핀 꽃을 보며
그래도 그런 생각 하나는 드는군요.

정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광활한 들판 같은 곳에서
높이 흘러가는 구름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싶다.

뭐 그런 생각 하나는 드니 아예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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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가을이다. 가을은 결혼시즌이다. 나도 가을에 결혼했다. 그러나 결혼을 갑자기 결정하는 바람에 다른 팀에 밀려 10월에 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찬바람 들기 시작하는 11월에 마산 완월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성당에서 하는 결혼식은 절차가 좀 까다롭다. 미리 교육도 받아야 한다. 성교육이었나? 무슨 교육을 받았는지 기억은 하나도 안 난다. 

작년 우리집 마당에 피었던 꽃무릇은 이번 가을에도 어김없이 피었다.


1995년 11월 5일이 결혼기념일이니 벌써 십년하고도 몇 년이 흘렀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도 한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 걱정이 많았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서로 말은 못하고 답답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거실 TV위에 앉아있는 작은 달력에 눈이 갔다. 거기에는 빨간 사인펜으로 동그라미들이 그려져 있었다. 숫자들에 그려진 동그라미. 

처음에 나는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설명을 듣고 나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동그라미는 연속적으로, 그러니까 1일부터 18일까지 계속 그려져 있었고 또 19일부터 30일까지는 깨끗한 식이었는데,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진 날은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날이었다. 그런데 그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진 날들이 바로 소위 '주기'에 해당하는 날이었단다. 

나는 아내의 한숨소리가 무얼 의미하는지 잘 알았지만, 내 생활패턴을 바꾸지는 않았다. 당시만 해도―지금도 그렇지만―친구들과 술 먹고 어울려 노는 게 내 인생 최고의 낙이었다. 뭐 보통 남자들이 다 그렇겠지만 나는 유독 심한 편이었던가 보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나는 허리를 다쳐 집에서 쉬게 되었다. 나중에 악화돼 수술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 입원하던 그날, 나를 입원시켜놓고 아내는 산부인과에 갔다. 그리고 다들 아시겠지만 8개월 후에 아들을 낳았다. 그 녀석이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건강해졌으며 예전처럼 친구들과 어울려 술 먹고 노는 걸 낙으로 삼으며 열심히 살았다. 그러던 2000년 가을 무렵, 아마 이때쯤이었을 게다. 허리통증이 재발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 우리는 예쁜 딸을 낳았다. 그런데 아내가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마산 삼성병원에서 암 검진을 받았는데 그 검사는 초음파 뿐 아니라 조직검사와 방사선 검사도 있었다. 무척 신경이 쓰였다. 아내도 걱정이 태산 같다고 했다. 이를 어쩐다? 생각 끝에 아는 의사를 찾아갔다. 

내과의사인 그는 나와 같은 성당에 다니는 또래의 친구였다. "아, 이거 '이러저러' 해서 걱정이 태산인데 어쩌면 좋지요?" 그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정 걱정이 되면 지우시든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핑 도는 걸 느꼈다. '아니, 이런 대답을 들으려고 온 건 아닌데.' 

하긴 내가 이런 말을 한다면 그 의사의 입장에선 '그럼 무슨 대답을 원하고 왔단 말이요?' 하고 되물을 게 틀림없다. 맞다. 나는 도대체 어떤 대답을 원하고 그를 찾아갔던 것일까? 그는 나와 같은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이므로 천주교 가르침에 따라 "생명은 소중한 것이에요. 아무 걱정 말고 낳으세요" 이런 대답이 나오기를 바랐던 것이었을까? 

아마 그랬을 게다. 그러나 그는 무심하게도 "지우시든지요"라는 말로 나를 충격과 갈등에 빠뜨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 그의 말은 매우 위안이 되었다. "나는 내과의사라 잘 모르니까 산부인과에 가서 정확하게 알아보세요." 그리고 다음날 바로 어느 산부인과에 갔다. 그 의사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말했다.       

"요즘은요. 기술이 발달해서 아무 문제없어요. 그러니까 걱정 말고 산모 맛있는 거나 많이 사드리세요." 뛸 듯이 기뻤다. 며칠 사이에 천당에서 지옥으로 다시 지옥에서 천당으로 올라온 기분이었다. 그렇게 해서 얻은 딸이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다. 이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첫 해 첫 시험에서 10점을 받아왔다. 

지난 봄 진해 벚꽃장에서 찍은 사진


받아쓰기 시험이었는데 이 최초의 시험에서 10점을 받아든 시험지를 들고 헐레벌떡 뛰어온 딸애는 내게 말했었다. "아빠~ 아빠~ 나 칭찬해줘. 어서 빨리 칭찬해줘." "왜?" "나 오늘 받아쓰기 시험 10점 받았다~" "뭐? 10점? 그걸 어떻게 칭찬해준단 말이야." 그러자 뾰로통해진 딸이 말했다. "10점이면 잘 한 거지. 빵점보다는 잘 했잖아."  

나중에 딸아이는 10점이 그렇게 칭찬받을 만한 점수가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70점, 80점, 점수가 올라가더니 지금은 평균 95점 이상 맞는다. 하긴 초등학교 2학년짜리들 점수란 게 뭐 다 그렇지만. 우리 애하고 가장 친한 민서는 100점짜리 다섯 개를 받아 소위 '올백'이고 미솔이는 백점짜리가 세 개다.
 
어떻든 우리 딸애는 지금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노래도 잘 하고 춤도 잘 춘다. 피아노도 잘 치고 공부도 잘 한다. 얼마나 알뜰한지 지갑에서 돈이 떨어질 날이 없다. 용돈 관리를 잘 못하는 아들놈은 매일 동생에게 빌붙어 안달이다. "혜민아, 우리 아이스크림 하나만 사 먹자. 내가 사 올께" 그러나 딸애의 대답은 간단하다. "나 돈 없다." 

예쁜 우리 딸을 볼 때마다 가끔 미안한 생각이 들곤 한다. 그리고 가슴 한구석을 쓸어내린다. '아유, 큰일 날 뻔 했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개천절에 무학산 등산을 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아니 사실은 평소에 거의 하지 않던 등산을 했습니다.

물론 개천절 기념 등반 이런 건 절대 아니었습니다. 제 아내의 대학 과선배(1년 선배고 저는 처형이라고 부릅니다)가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 나선 것입니다. 그 처형은 진해 웅진씽크빅 지국의 장님이십니다. 원래 부산에서 지사장으로 있었는데, 집에 어르신이 몸이 안 좋으셔서 일부러 지국장으로 좌천해서 낙향(?)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진짜로 좌천된 것인지도 모르지만, 효심이 갸륵해서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개천절이라 함은 하늘이 열렸다 이런 뜻이겠지요. 단군께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신시를 여신 날이라지요. 그 높고 큰 뜻을 어찌 알겠습니까만, 우리 같은 백성들이야 하루 쉴 수 있어 좋고 특히 이번엔 3일 달아서 쉴 수 있으니 더욱 좋지요. 그래서 바빠서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처형이 일부러 시간 내서 산에 가자고 할 수도 있었던 것이기도 하고 말이지요.

저 멀리 마창대교가 보입니다. 안개만 아니었다면 거제도도 환히 보일 것만 같습니다.



우선 우리 집 뒤 만날고개로 해서 대곡산 정상으로 올랐습니다. 가파른 산길이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숨은 턱에 차고 다리는 후들거리는데 뉘집 아이들인지 떼로 몰려 히히낙락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강아지 한 마리도 막 뛰어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강아지도 뛰어가고 아이들도 저리 잘도 올라가는데 어른인 내가 비실거린대서야 될 일이겠습니까? 물을 반병이나 비우고 힘을 냈습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가 아니겠습니까?

드디어 대곡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저 멀리 바다 너머로 거제도인 듯 보이는 육지가 기다랗게 널려 있었는데, 안개가 자욱한 날씨 탓에 그리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정상표지석에는 516m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렇게 높이 올라와 보기는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대곡산 정상. 여기까지가 힘들고 이후부터는 능선행입니다.



어릴 때 산골에 살 때는 산에서 뛰어노는 게 일이었지요. 이즈음엔 한 시간만 뛰어다니면 머루가 쌀푸대에 한가득 담기고 했습니다. 그러면 겨울에 우리 아버지는 머루주에 붉어진 얼굴로 두만강 푸른물에를 부르시곤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버지도 운동 삼아 산에 오르시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얘길 했더니 처형이 그러시는군요.

은성무공훈장

"전쟁을 겪으신 분들이야 어디 산에 재미삼아 오를 생각이 나겠어? 산에서 생과 사를 넘나들며 생존투쟁을 하셨을 텐데, 지긋지긋하실 테지. 우리 아버지도 산에 올라가는 사람들 보고 미친놈들이라고 그러셔." 

그러고 보니 그 말씀이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산봉우리 하나를 지키기 위해 한 달을 넘게 오줌을 받아 마셔가며 버티던 쓰라린 전쟁의 기억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덕에 을지무공훈장 등을 세 개나 받으셨지요. 그러나 나라에선 전쟁터에 나가 목숨 바쳐 충성했다고 그리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릴 때 홧김에 모두 불살라 버렸답니다. 작년에 필요해서 다시 찾아오시긴 했지만…. 그런 분들에겐 처형 말씀처럼 산이란 존재가 지긋지긋할 수도 있겠군요. 

어쨌든 우리는 대곡산 정상에서 막걸리를 한 잔씩 나누어 마시고 다시 힘을 내어 무학산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여기서부터 무학산 정상까지는 능선을 따라 완만하게 올라가는 길입니다. 역시 산은 능선을 타는 맛이 일품입니다. 익어가는 억새풀과 함께 산 아래를 굽어보며 걷는 기분은 정말 천상을 걷는 기분입니다. 억새를 보더니 갑자기 처형이 물어보는군요. 

“부권씨는 으악새가 무슨 뜻인지 알어?”

구름과 맞닿은 억새



저야 물론 으악새란 가을이 오는 것을 구성진 울음소리로 알려주는 어떤 구슬픈 새라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억새풀이라고 가르쳐 주는군요. 역시 사전에 찾아보니 억새의 경기방언입니다. 새가 맞다, 아니다 억새의 방언이다 아직 논란이 많은데, 막상 ‘짝사랑’의 노랫말을 지은 박영호 선생이 월북 후 북조선연극인동맹 위원장을 하다 돌아가셨으므로 알 길은 없습니다.

일제 말 친일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가 이북 출신(강원도 통천)이란 점을 들어 왜가리의 이북 방언이란 설도 있지만 억새의 방언이란 설이 더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눈을 감으니 가을바람에 부대끼는 억새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아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젖은 이지러진 조각달
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멥니다


포즈 잡는다고 웃고 있지만 사실은 울고 싶은 모양입니다. 태극기 날리는 정상이 바로 뒤에 보입니다.



목이 메거나 말거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치며 우리는 정상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이제 고지가 바로 저기입니다. 정상에 나부끼는 태극기를 보노라니 아닌 게 아니라 목이 메는군요. 이제 고생 끝입니다.

761.4m. 정상에 올라서니 젊은 학생들이 반겨주는군요. 수고했다고 막걸리도 한 잔 권합니다. 제 아내와 처형은 맛있게 한 잔씩 얻어 걸쳤습니다. 그러나 저한테는 아무도 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남자들이란 세상 밖에 나와서도 이렇게 괄시만 받고 살아야 하다니 참 처량도 합니다.    


무학산 정상에서 만난 친절한 학생들과 무학산을 정복한 투여사



정상에서 바라보니 마산은 물론이고 창원 시가지도 바로 손에 잡힐 듯 다가와 있습니다. 제가 살던 가음정과 상남동도 보이는군요. 정말 시원합니다. 이 동네에서 산지도 (좀 부풀려서!) 어언 30년이 다 되어 가는데 무학산 정상에는 처음 올라서 봅니다. 제가 스물 몇 살 때 마창노련 전진대회 한다고 딱 한 번 올라와 본 적이 있지만, 그때도 서마지기 고개에서 막걸리만 마시다 내려갔습니다. 

역시 사람들에겐 누구나 정복자의 야심 같은 게 숨어있는 것일까요? ‘인자仁者’는 ‘요산樂山’ 해야 한다는 개똥철학을 모시고 사는 저도 산 정상을 정복하고 보니 그 희열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앞으로 자주 산을 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산을 정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산에 올라 저 자신을 정복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2009. 10. 4.  파비


서마지기 고개에서 지하여장군의 머리가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산하는 길이 너무 가팔라서 올라가기보다 힘들었습니다. 다음엔 다른 하산 코스를 골라야겠습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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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목욕탕에 갔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우리 아이 말마따나 여름하고 전쟁을 치르고 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가 밤 사이 패주하는 적군들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산들거리는 바람을 선봉장으로 가을이 해방군처럼 진주해 들어왔다. 아! 얼마 만에 느껴보는 상큼한 기분인가. 살갗을 녹여버릴 듯 짜증스럽게 달려들던 열풍은 간 데 없고 선선한 미풍이
달착지근한 연인의 밀어처럼 감겨든다. 참으로 오랜만에 나는 다정한 연인의 팔에 이끌리듯 여름 내 시달린 몸통을 달래러 목욕탕으로 갔다.

    휘뿌옇게 김이 서린 거울 앞에 앉았다. 거울을 바라보았다. 앗! 이게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웬 낯선 남자가 거울 속에 앉아 있었다. 물을 뒤집어쓴 남자의 머리에선 듬성듬성 머리카락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수리 아래쪽은 텅 비었다. 앞머리 부분만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비바람에 스러진 갈대 꼴이다. 바닷물이 불어나 대륙으로부터 떨어져나간 일본열도마냥 그렇게 간신히 붙어있었다. 몇 달 만에 목욕탕에서 만난 내 얼굴이 이처럼 낯설 줄이야.

    나는 평소에 거울을 거의 들여다보지 않는다. 얼굴에 화장품도 바르지 않는다. 달리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귀찮아서 하기 싫은 것이다. 아내가 사다주는 남성용 스킨과 로션은 10년이 다돼가도록 먼지를 이불삼아 화장실에서 잠을 잔다. 그것도 몇 해 전에 혹시나 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다 버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머리에 빗질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손으로 몇 번 쓰다듬기만 해도 손질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속으로 그저 빗으로 머리를 빗지 않아도 되니 참 편리하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래서 거울은 더욱 볼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 물을 한바가지 뒤집어쓰고 보니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얼굴이 거울 속에 드러난 것이다. 갑자기 오래된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유달리 목욕을 즐겼었다. 목욕을 하고 난 다음 머리를 말리면서 거울을 들여다볼 때의 그 흡족한 만족감을 좋아했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면 날아올랐다가 스르르 떨어지는 머리카락들의 질감은 마치 고요한 겨울들판에 함박눈이 내려앉듯 포근했다. 아, 이다지도 고운 머리카락이라니! 나는 나르시스가 된 기분으로 바라보며 만족감에 취하곤 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나는 머리에 빗질하는 것도 귀찮은 남자가 되었다. 그저 손가락을 빗살처럼 만들어 머리를 몇 번 어루만져 주는 것으로 외출준비를 끝낼 수 있다는 것에 무척 행복해하며 그 편리함에 고마워했다.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게 된 것도 그즈음부터였으리라. 팍팍한 일상 때문이었을까? 나는 어느새 ‘거울도 보지 않는 남자’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거울 속에서 나는 전혀 낯선 새로운 남자를 만난 것이다.

2008년 9월 1일 밤  파비


  ps; 머리를 말리고 거울을 들여다보니 다시 잘 정돈 된 내가 거기 있었다.
        아직 허무하게 비어버린 공간을 감추어줄 만큼의 모발은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테지.
        머잖아 앞머리에 위태롭게 매달린 섬들도 필경 침몰해야만 할 운명을
        받아들여만 할 게 분명할 터이다.
        우연히 목욕탕에서 만난 낯선 남자는 내게 새로운 나를, 아니 본래의
        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는 미래의 내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도 주었다.
        창 밖에선 지금, 가을바람에 실려 온 빗방울이 마른 대지를 적시고 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