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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혹사당하는 전태일, 비정규직

1970년 11월 13일, 22살의 한 청년이 온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밝혔다. 이 불은 평화시장만이 아니라 온 나라로 퍼져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었다. 이 등불은 김근태, 장기표, 조영래 같은 재야 민주인사를 인도하는 등불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자그마한 등불은 들불이 되어 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타올랐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

한 손에 근로기준법을 부여잡은 채 불길 속에 타들어가면서 외쳤던 그의 함성은 영원한 메아리가 되어 세상에 울렸다. 그리고 세상은 변했고 발전했다. 노동자들은 이제 더 이상 기계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 태어나고자 스스로 일어섰다. 민주노총도 결성했다. 그리고 매년 11월 이때가 되면 민주노총은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되새기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전태일이 죽음으로 지키고자 했던 ‘나의 나’인 전태일들이 아직도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혹사당하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근로기준법은 주 40시간 노동으로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도록 규정하고 있다. 선진국들의 보편적 노동시간 주 35시간 이하인 점에 비교하면 아직 턱없이 모자라는 기준이다.

사진=레디앙

주 5일제 근무로 알고 있는 주당 40시간 노동제가 과연 우리나라에서 잘 지켜지고 있는가? 대답은 “아니오!”다. 우리나라는 주 40시간 노동제의 나라가 아니다. 아직도 절반 이상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일제에서 해방된 후에 만들었던 주 48시간제 노동시간법이 엄존하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굶어죽을 자유만 얻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주 40시간 노동법'

현행 근로기준법은 주 40시간 노동법을 만들면서 토요일 근무에 대한 임금지급에 관한 문제는 단체협약으로 노사가 따로 정하도록 하는 편법을 자행했다. 노동시간에 대한 강행규정을 임의규정으로 바꾸는 정부와 자본의 고도의 계산이 깔린 이 편법에 ‘노’의 대표인 민주노총도 묵시적으로 동의한 것처럼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민주노총은 얼마든지 단체협약을 통해 실질적인 주 5일 근무제를 관철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민주노총을 이끄는 대기업 노동조합들의 이야기다. 노동조합이 조직되지 못한 90%의 노동자들, 하청업체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그래서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토요일에 무급으로 쉴 자유만 얻었다. 즉, 굶어죽을 자유만 얻은 셈이다.

우리나라 전체 임금노동자 중에 월급이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가 25%에 달한다고 한다. 하청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평균연봉도 1500만원을 넘지 못한다고 한다.(한 통계에 의하면 평균 월급이 120만원 수준이다.) 이들 노동자들은 부족한 임금을 채우기 위해 무급휴일인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쉬지 않고 일을 나가야 한다. 이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세상은 아직 바뀌지 않았다. 아니 거꾸로 70년대로 돌아갔다. 일부 대기업 노동자들이나 민주노총의 눈에는 이런 것들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유인물을 복사해서 비밀리에 배포하며 노동조합을 결성하려는 비밀결사들이 공장 내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이들의 눈에는 하찮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이 땅에는 전태일이 ‘나를 죽이고’ 영원히 함께 하기 위하여 다가가겠다고 말한 ‘나의 나’들이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 열악한 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혹사당하는 ‘나의 나’들의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아직도 너무나 크다.

여전히 유효한 전태일의 외침,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

지난 일요일,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계승한 민주노총은 대규모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전태일이 죽음으로 다가가고자 했던 ‘나의 나’들은 얼마나 있었던가?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안 될 나약한 생명체들’을 향한 외침과 결의는 얼마나 있었던가?

그래서 나는 오늘,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던 전태일 열사의 피맺힌 목소리를 자본가들이 아니라 민주노총에게 다시금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1970년 8월 9일, 전태일의 일기 중에서>

전태일과 전태일의 어머니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理想)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동심 곁으로,

생(生)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2008. 11. 13.  파비

습지와 인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김훤주 (산지니,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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