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는 진해 벚꽃장을 다녀왔습니다만, 올해는 가지 못했습니다. 지난 주말이 절정이었지만, 그때는 다른 일로 바빴습니다. 그런데 화요일이 마침 아이 학교 개교기념일이라 쉬는 날이라고 해서 함께 진해에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출발하기 전에 우리 집 앞 창원천 변의 벚꽃을 다시 찍어보았습니다.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 앞에 이곳 사진을 몇 장 포스팅했었지요. 활짝 피기 전 과 핀 사진을 찍어서 올렸습니다만, 오늘은 꽃이 떨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목련은 완전히 떨어지고 푸른 잎이 무성해지기 시작했군요.  


진해여고 앞에서 북쪽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입니다. 이곳도 벌써 꽃이 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날은 바람도 무척 심하게 불어 꽃잎들이 마구 떨어지고 있었는데 추풍낙엽이 아니라 춘풍낙화였습니다. 낙엽은 생을 마치고 쓸쓸하게 퇴장하는 모습이지만, 낙화는 생의 시작을 알리는 징조라 낙화란 표현보다는 다른 말을 써야 할 듯싶군요.

그럼 뭐가 있을까요? 춤출 무를 써서 무화? 에이, 그것도 아니군요. 그냥 낙화로 가죠. 화무십일홍이란 말도 있으니 그에 맞추면 낙화가 더 어울릴 듯싶네요.


진해여고 앞 벚꽃길이 시작하는 곳에 이런 팻말이 붙어 있었는데요. 읽어보니 진해에 벚꽃을 심은 유래는 일제 해군이었는데, 이유는 그들의 생명경시사상과 닮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생명경시사상? 아, 가미가제를 말하는 것이구나, 웬 생명경시사상을 좋아해 벚꽃을 심었나 했네요. 

생명경시사상이란 다름 아닌 자기 목숨을 버려 나라를 위해 충성을 바친다, 뭐 그런 의미였겠죠. 박정희 전 대통령도 일본군에 자원하면서 지원서에 그렇게 썼다죠? "사쿠라처럼 살다가 사쿠라처럼 죽겠습니다." 그는 정말 사쿠라처럼 살다 사쿠라처럼 죽었을까요?

해방 이후 벚나무가 일본의 나라꽃이라 하여 주민들이 부러뜨리기도 하고 베어 불쏘시개로도 쓰고 해서 일제가 심은 10만 5천여 그루의 벚나무들이 모두 사라졌으나 1960년대에 다시 도시정비를 하면서 가로수로 벚나무를 정하여 심은 것이 오늘날의 진해 벚꽃장을 만든 것이라 합니다. 

당시 가로수로 벚나무를 정한 것은 왕벚나무의 원래 원산이 제주도임을 한국의 식물학자들이 밝혀내었기 때문이라 하는데 빨리 자라고 별다른 병충해가 없는 점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현재 35만여 그루가 진해에 자라고 있다고 하네요.


벚꽃 아래 잘 정비된 개울에 핀 노란 유채꽃이 장관입니다. 연분홍빛 벚꽃과 잘 어울리네요. 개화시기도 같고, 이런 걸 뭐라고 하지요? 저는 무식해서 금상첨화란 말밖에 안 떠오르네요. 그러나 금상첨화는 적당한 비유가 아닌 것 같고요.

서로 잘 어울리는 조화에 빗댄 적절한 비유가 없을까요?


진해여고에서 시작해 죽 뻗은 길이 한참이었습니다. 저는 잠깐 올라가면 끝인 줄 알았더니 벚꽃과 유채로 닦여진 터널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습니다.  


유채꽃 뒤로 반짝이며 개울 위를 흘러가는 벚꽃잎이 보입니다.  


위로 올라가니 아직 벚꽃이 완전히 지지 않았습니다. 같은 동네인데도 100m 아래와 그 위 북쪽의 차이가 이와 같습니다.  


진해여고 벚꽃길 끄트머리에 있는 환경생태공원입니다. 우연히 진해의 대표 블로거 실비단안개님을 만났는데 이곳을 꼭 가보라고 강권해서 들어왔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사실은 꽃만 보다가 옆에 이런 게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칠 뻔 했습니다.

진해 사람들이 왜 마창진 통합 논의가 있을 때―어이구 이거 또 마창진이라고 했다가 민언련의 어떤 분으로부터 창마진이라고 안 했다고 비판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언련이 무엇 하는 곳인가 했더니 정부에서 창마진으로 부르기로 결정하면 그렇게 부르도록 계몽하는 곳이었나 봅니다. 하긴 뭐 저는 경남도민일보도 아니고 그냥 개인 블로거에 불과하니까―마산은 거지 같다고 통합대상에서 빼자고 했는지 알 거 같습니다.

아무튼 진해가 마산보다는 살기가 좀 낫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거 같습니다. 


저수지(호수)를 한 바퀴 돌고 나서 아래의 번호표를 하나씩 돌리는 겁니다. 한 바퀴 돌면 1, 두 바퀴 돌면 2, 이런 식으로요. 꽤 좋은 아이디어네요.


호수변에 누군가가 그림, 아니 사진인가? 어쨌든 전시를 해놓았네요.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런지 비닐을 씌워 놓았습니다. 그래도 감상은 잘 했습니다. 풍경도 좋고, 그림도 좋고, 모든 것이 좋습니다.


여름에도 시원하겠습니다. 마산시내에도 이런 곳이 있다면 늙어죽을 때까지 떠나고 싶지 않을 텐데. 사실 한때 그런 말이 유행했습니다. 친구들끼리 술자리에 앉으면 이런 말들이 인사인 때가 있었지요.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대부분 아는 친구들은 거의 창원에 다 사니까.  

"너 아직도 마산 사나?"


물이 좋아 물가로 휘어진 나무인가 봅니다. 그 나무 앞에 포즈를 취한 친구는 제 아들입니다. 이 녀석이 어릴 때는 꽤나 시적 감수성이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함안 군북의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적벽은 아니라도 그 비슷한 절벽 아래 차를 세워두고 그 높이에 감탄하며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그 절벽은 바위 틈새 이곳저곳에서 물이 새듯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는데요. 이제 갓 네 살을 넘긴 아들 녀석이 말문을 뗐습니다. "바위가 엄마 보고 싶어서 울고 있나." 저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녀석이 정말 시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었답니다.  


또 우리 집에 걸린 그림 중에 북한 인민화가 정창모가 그린 것으로 믿고 있는 금강산 그림 한 점이 있는데요. 이 그림에는 운무 위를 날고 있는 세 마리의 새가 그려져 있습니다. 어느 날, 아이에게 "저 그림에 새가 몇 마리냐?" 하고 물어보았지요. 나름 셈을 가르친답시고 그런 것이었는데,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99마리."


저는 깜짝 놀라서 "아니 99마리가 어디 있단 말이냐? 여기 세 마리밖에 없잖아." 그러자 아이가 말했습니다. "나머지는 구름 속에 들어가서 안 보이는 거야." 아 그렇구나, 나는 왜 구름 속에 숨은 나머지 새들을 보지 못했을까? 그러나 여러분, 이제 아들의 눈에는 새가 세 마리밖에 보이지 않는답니다.

물론 엄마가 보고 싶어 눈물 흘리는 바위도 없습니다. 시인 같이 생각되던 어린 아이는 이제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고, 승호딕플 사내라고 조르고, 말은 뒤지게 안 듣습니다. 시는 고사하고 책 한 줄 읽기를 최영장군이 황금 보기를 돌보듯 하니, 이거 원.


꽃터널, 사진사들은 꽃들이 만드는 장관을 담기 위해 연신 셔터를 누릅니다. 위 사진에 보이는 사진사는 허리가 아픈지 가끔 허리를 돌려가며 다시 뷰파인더에 눈을 같다 대고 구도를 잡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한 차례 바람이 일기라도 하면 꽃잎들은 사방에 휘날릴 것이고 그때가 사진사에겐 셔터를 누를 최고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린 저렇게 한곳에 진을 치고 셔터를 누를 기회를 기다릴 만큼 그렇게 마음의 여유가 넉넉하지 못합니다. 어떨 땐 그런 사진사들을 보며 태공망을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는 160년을 살았는데 후 80년을 위해 전 80년은 그저 낚싯줄만 드리우고 세월을 낚았다고 합니다.

그게 진짠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런 사람 흉내 내다간 속 터져 죽을 거 같다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아무튼 꽃구경은 참 잘했습니다. 진해여고 앞만 한 바퀴 도는데도 하루가 훌쩍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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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해시 여좌동 | 진해여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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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