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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경주에서 웃고 있는 사자가 의미하는 것은?

경주는 실로 문화유산의 보고였습니다. 경주에 도착한 우리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국립경주박물관입니다. 아마 기억이 희미하긴 하지만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수학여행을 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경주박물관은 처음 와보는 곳처럼 생소했습니다. 그러나 경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겨우 반나절의 시간을 갖고 경주박물관의 유물을 둘러본다는 건 오만입니다. 며칠을 두고 도시락을 싸들고 관람을 해야 겨우 경주 유물의 껍질을 까 안을 들여다볼 줄 아는 안목을 배우는 데 만족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이번 경주 답사를 위해 미리 도서관에서 일고여덟 권의 책을 구해 읽었던 터였습니다. 

그러나 허사였습니다. 겨우 책 몇 줄 읽는 것으로는 경주박물관의 유물을 이해하는 데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무엇보다 부족한 시간에 엄청나게 많은 유물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답사계획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전 없이 전쟁에 나가는 병사처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준비 없는 답사가 죽음을 안겨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별로 얻는 것은 없으면서 시간 낭비와 엄청난 육체적 피로만 안겨주게 됩니다. 이번 답사의 경험으로 저는 예컨대 앞으로 이래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리 반드시 보아야 할 유물 목록을 적어올 것, 그리고 그 유물의 위치나 동선 정도는 미리 파악할 것.   

그래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생각하며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유물은 적당히 즐기며 패스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진짜 꼭 봐야할 것을 놓치는 경우가 생깁니다. 마치 뷔페식당에 가서 어마어마하게 많이 진열된 음식을 두고 도대체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나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번에 저는 반드시 보아야할 유물 하나를 보지 못했습니다. 황남대총에서 나온 금관을 보지 못했고, 당연히 사진도 못 찍었습니다. 그리고 황남대총에서 나온 은관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 두 유물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들입니다. 말하자면, 요즘 선덕여왕이 보여주는 신라의 여인천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인데, 선덕여왕 답사를 간다면서 이걸 놓친 것입니다.  

음, 제가 본론에도 들어가기 전에 이렇게 사설은 늘어놓는 이유는 여러분은 저처럼 실수하지 마시기를 바라는 뜻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사실 텍스트는 간단하게 또는 생략하고 단지 사진만 보여드리려고 한 것인데 역시 저는 구르다님의 지적처럼 '긴' 편입니다. 죄송합니다. 흐흐.   

오늘 제가 보여드리고 싶은 것은 다름 아닌 경주에 산재한 사자들입니다. 영어로는 라이온이라고도 합니다. 백수의 왕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아시아에는 사자가 살지 않습니다. 고대에도 아시아에 특히 동아시아에 사자가 살았다는 보고는 아직 들은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경주에는 엄청나게 사자가 많습니다. 

도대체 이 사자들은 모두 어디서 온 것들일까요? 아, 물론 고대 신라인들이 만든 것이죠. 네, 그런데 이 사자를 고대 신라인들이 어떻게 알았을까요? 용이나 봉황처럼 상상의 동물이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사자를 신라인들이 보았을까요? 저는 그게 제일 궁금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궁금합니다. 
 

맨 위에 게시한 사진은 경주박물관에 전시된 사자입니다. 사자의 뒤에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가 팔을 괴고 앉아있는 것이 보이시죠? 이곳은 휴게실입니다. 사자가 휴게실도 지키고 있습니다. 대단하죠? 고대 신라엔 이렇게 사자가 흔해빠졌다는 반증이죠. 머리가 다 빠져 대머리가 되었지만 기상은 천 년 전과 다름없습니다.  

바로 위 사진은 분황사탑을 지키고 있는 사자상입니다. 선덕여왕이 절을 창건할 당시엔 그 위용이 대단했으리란 짐작이 갑니다. 분황사란 황제의 향기가 나는 절이란 뜻이겠지요? 저는 이 절터를 둘러보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모란과 그림을 보내 자기를 모욕한 당태종에게 보란 듯이 이 거대한 절을 짓고 탑을 올렸던 건 아닐까? 그리고 절 이름을 분황사라 했던 것은 아닐까?


분황사지와 황룡사지를 뒤로 하고 선덕여왕릉과 괘릉으로 가는 길에 차 안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논 한 가운데 탑이 있습니다. 황룡사지를 둘러보다 저기까지 가 보려고 했지만 논 사이에 길을 찾을 수 없어 포기했었는데 차를 타고 지나가다 이렇게 사진에 잡혔습니다. 역시 경주는 곳곳에 유적이 널린 보물 창고가 맞습니다.  


자, 이곳이 경주의 왕릉 중에 가장 화려하다는 원성왕릉입니다. 수십 개의 돌기둥으로 만든 난간과 십이지신상이 능을 장식하고 있는 아름다운 무덤입니다. 그런데 이곳이 유명한 것은 이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곳엔 웃는 사자가 있습니다. 우선 아래 사진들을 보시며 천천히 감상해보시지요. 사자가 여러분을 쳐다보며 웃거나 몸을 들썩이는 것이 느껴지실 것입니다. 

 


          
원성왕릉은 괘릉이라고도 하는데, 원래 이곳에 있던 작은 연못의 수면 위에 왕의 유해를 걸어 안정하였다는 속설에 따라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이 왕릉의 입구에는 네 마리의 사자상과 두 명의 문인상, 두 명의 무인상이 지키고 있습니다. 위에 네 마리의 사자상을 작은 사진으로 모아놓았습니다.

모두 웃고 있지만, 그 중 마지막 사자상이 가장 역동적이고 해학적입니다. 웃는 폼이 마치 몸을 들썩이며 장난치는 것 같습니다. 자세히 보시죠.


그렇죠? 그럼 이번에 아래 사진을 보십시오. 마치 사람을 향해 장난을 거는 강아지처럼 정겹게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그런데요. 제가 더 궁금한 것은요.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바로 이겁니다. 고대 신라인들이 사자를 어떻게 알았을까? 혹시 이 사자상들 옆에 함께 서있는 무인상, 즉 로마인인지 아랍인인지 알 수 없는 서역인들이 데리고 온 것은 아닐까요? 그러고 보니 한 가지 궁금증이 더 생기는군요. 

원성왕은 왜 서역에서 온 무인에게 자기 무덤을 지키는 임무를 준 것일까요? 함께 간 김주완 기자와 커서님에게 물어보았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서양 사람이 아무래도 덩치도 더 크고 힘도 세고 그래서 그런 거 아닐까요?" 궁금증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고대신라의 유적을 둘러본 후에 남는 것은 온통 의혹덩어리입니다.  

경주박물관에 전시된 고구려, 백제, 중국, 아시아 어디에도 없는 특이하고 화려한 금관 그리고 금관총, 천마총, 황남대총 등에서 출토된 로마유리잔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연주하던 유리잔도 로마에서 온 것일까요? 또 원성왕릉을 지키고 있는 서역인의 얼굴을 한 무인상과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사자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또….

마지막으로 아래에 원성왕릉(괘릉) 맨 앞을 지키고 있는 무인상을 감상하시는 것으로 오늘의 포스팅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몽둥이를 들고 주먹을 불끈 쥔 로마인인지 아랍인인지 모를 무인상에서 무언가 힘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