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페르시아전쟁에서 스파르타의 왕과 전사들의 옥쇄를 소재로 만든 영화 <300>이 유명하지요. 스파르타의 명예를 드높인 감동적인 사건이긴 했지만 그리스 승리의 주역은 스파르타가 아니라 아테네였습니다.
마라톤평원에서 치러진 전투에서의 승리를 전하기 위해 42.195킬로미터(실측한 결과는 34킬로 정도였다지만)를 내달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하고 외친 뒤 죽었다는 병사를 기념해 오늘날까지도 마라톤대회가 열리고 있다지요.
2차 전쟁 이후로 그리스의 맹주는 아테네가 됩니다. 3차 페르시아전쟁의 주역 역시 스파르타가 아니라 아테네였습니다. 이번엔 페르시아가 해군력으로 침공하게 되는데 스파르타는 배가 7척인가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살라미스해전에서 거둔 그리스해군의 승리는 온전히 아테네의 몫이었습니다.
이후 아테네의 그리스에서의 폴리스 맹주 지위는 더욱 굳건해지지요. 이 전쟁의 결과는 농업생산력에 대한 상업생산력의 승리, 전제정치에 대한 민주정치의 승리, 타율의지에 대한 자율의지의 승리, 동양에 대한 서양의 승리 등으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책에 나오는대로, 다분히 서양중심의 역사관에 따른 규정이긴 하지만… 뭐 일단.
이로써 페르시아는 기울고 그리스는 역사의 중심무대에 서게 됩니다. 정확하게는 아테네가 그렇다는 거지요. 페리클레스의 정치는 너무도 유명합니다. (참고로 페리클레스와 비견되는 로마의 인물로 파비우스 막시무스가 있습니다. 파비우스는 한니발의 침공에 지구전으로 대항해 이탈리아의 방패란 별명을 얻었지요. 제 인터넷 필명 파비도 실은 이 파비우스에서 딴 거랍니다.)
그로부터 거의 이백년 가까운 시간이 더 흐른 후에 그리스 북부의 마케도니아제국이 그리스를 통일한 다음 페르시아에 원정하여 완전히 정복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데 알렉산더의 이 원정 역시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전쟁으로 인식한다는군요.
아무튼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는, 이란에선 이 전쟁 이후로 아직까지도 마라톤을 금지하고 있다는데요, 이란 당국에 확인해보지는 못했습니다.
대충 이상의 내용들은 <페르시아전쟁, 영향> 등의 단어를 검색하면 인터넷상에서 다 가르쳐주는 내용들이었습니다. ○○님, 아직 숙제 못하셨으면 참고하셔요.
※ 마이 페이스북 담벼락에 올린 글쪼가리였습니다. 학교 숙제가 급하다고 해서 잠깐 디벼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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