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스탠스’란 용어가 유행하다 잊혀진 가수의 유행가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나이브’란 새로운 유행어가 등장했다. 나이브 역시 잊혀져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아직도 가끔 소수의 사람들로부터 지성의 공증인이라도 되는 듯이 불려나온다. 나도 이 나이브란 뜻 모를 말을 언젠가는 꼭 한번 써봐야지 했지만 기회가 오질 않았다.
더 이전에 ‘디테일’이란 말이 또 많이 썼었는데 어느 토론프로그램에서 이 디테일이란 말을 하는 걸 보고 “그냥 적나라하게, 라고 하면 더 좋을 걸 꼭 디테일이라고 해야 되나?” 했었는데, 영문과 나온 와이프가 옆에 있다 “정말 그렇네” 하고 맞장구쳐주어서 으쓱했던 적이 있다.
어떤 경우엔 우리말보다 외국어가 더 어울릴 때도 있지만(애매모호함으로 인해 더 많은 해석의 여지를 주니까), 대부분의 경우에 ‘스탠스’니 ‘나이브’니 ‘디테일’이니 하는 말은 써도 되고 안 써도 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한때의 유행이 지나가고 난 뒤에 굳이 그런 표현을 쓰지 않아도 소통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으로도 증명된다. 그럼에도 왜 이런 불편한 혹은 불필요한 용어를 수입해 쓰는가.
내 짐작으로 말하자면, 순전히 공신력 때문이다(혹은 잘난 체 하려 그런다는 생각도 있겠지만 내 생각엔 공신력 때문으로 보인다). ‘스탠스’, ‘나이브’, ‘디테일’ 같은 뜻 모를 말을 끼워놓으면 무언가 좀 지성적인 듯 보이고 내 말에 신뢰성이 생길 거 같은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기대는 현실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많은 경우에 말 속에 ‘스탠스’를 집어넣으면 상대는 우선 기가 죽는다(나만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
이건 좀 다른 경우가 되겠는데 주의 깊게 대화를 관찰하다보면 일부러 어려운 한자로 만들어진 용어를 쓰는 경우를 종종 본다. 내 짐작으로는 이런 경우는 위 예와는 달라서 실제로 무지해서 그런 경우가 많다.
어휘력의 한계 때문에 오는 의사전달의 답답함을 사실은 잘 알지도 못하는 한자말로 대체하는 것이다. 어떤 분은 “정서가…”라는 말을 수시로 가운데 집어넣어야만 이야기가 됐는데... 그분이 쓰는 정서와 내가 아는 정서는 의미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나도 가끔 어떤 말로 설명해야 할지 곤란한 경우가 생기면 그냥 한자말을 하나 생각해내고 뱉어버릴 때가 있다. 상대가 알아들었든 말았든 알 바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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