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딸이 내게 물어봤다. "아빠는 어릴 때 꿈이 뭐였어?" 솔직히 대답할 게 없었다. 생각해보니 어릴 때 난 꿈이 없었다. 혹시라도 내게 어떤 꿈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 깊이 생각해보았지만 역시 난 아무런 꿈이 없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나름 꿈이 하나 생겼는데 금오공고나 부산기계공고에 진학해 빨리 공장에 취직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것은 내 꿈이라기보다는 집안에서 바라는 희망사항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희망사항을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특차로 학교장 추천이 필요했던 이 두 학교 중 어느곳이든 원하는 곳을 내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성적을 얻었다. 물론 그후 불과 몇 달만에 내 인생은 처참한 종말을 맞게 되지만... 아베베 실습장에서 기름범벅으로 서있는 내 실습대 앞을 하얀 카라의 여고생들이 원숭이 구경하듯(꼭 그렇지는 않았고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조국근대화의 기수가 되고자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지나가던 그 봄날의 기억. 여고생들이 수행여행지로 내 실습대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내게도 아예 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게도 꿈이 있었다. 마당이 넓고, 그 넓은 마당 한켠에 수영장이 있고 거기서 나는 마음껏 수영을 한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형이 의자에 비스듬히 몸을 누이고 그렇게 노는 내 모습을 즐거운듯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수영장엔 영롱하게 반짝이는 오렌지 빛깔의 환타가 출렁인다. 그러니까 나는 그 환타물 속에서 수영을 하며 깔깔 웃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어릴 때 나는 거의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환타를 좋아했었다. 이것은 진짜 꿈이었다. 아주 자주, 아주 똑같은 꿈을 꾸었었는데, 고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희한하게도 다시는 이 꿈을 꿀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워낙 똑같은 꿈을 자주 꿨던지라 꿈의 내용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부모형제가 영원히 한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꿈이었을 텐데, 절대로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희망이기도 했을 테고... 내가 이렇게 변할 줄 그땐 아마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아무튼 내게도 꿈이 없잖아 있었다. ^^
ps; 페북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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