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의례적인 것이다”란 말에 공감이 가는 기사다. 성폭력범이 아니라도 모든 범죄자는 의례적으로 자기가 살기 위해 사과도 하고 거짓말도 한다. 그건 인지상정이다. 이참에 기사내용과 상관없는 내 이야기를 하겠다.
몇 년 전 주먹으로 얼굴을 수십 차례 가격 당하고 막판엔 소주병에 이마를 맞아 찢어져 40바늘을 꿰맨 적이 있다. 물론 눈은 소위 이 동네 말로 방티가 됐으며 코는 거의 보름동안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피가 손가락 마디 크기로 엉겨 붙어 떨어지지를 않았다.
코뼈도 비틀어졌는지 얼얼하게 아프고 이도 흔들거렸다.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진다는 느낌을 받았을 땐 따뜻한 무엇이 얼굴을 타고 흘러 몸을 적신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 어떤 통증도 사실 느끼지 못했다.
동료들 중 누군가가 119에 전화를 거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 급히 제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안 된다. 어서 전화 끊어라. 119가 오면 경찰도 따라 온다.” 야밤에 부산까지 가서 40바늘을 꿰매고 돌아온 나는 너무나 괘씸해서 스스로 경찰서에 가 신고하고 고소의 뜻을 밝혔다.
며칠 동안 소식이 없던 피의자는 경찰에서 출두연락이 가자 내게 찾아와 만나자고 했다. 그리고 사과하겠다고 했다. 나는 못 받겠다고 했으며 돌아가라고 했다. 그러자 며칠 뒤 당시 민노당 마산시당 부위원장(위원장이 사퇴한 뒤라 직대 격이었음)이던 문순규씨(현 통진당 창원시의원)가 만나자고 해서 만나게 되었다.
얼굴에 붓기도 웬만큼 가라앉은 터라 부담이 덜했다. 나는 그가 일개 시당을 책임지는 대표로서 사과의 뜻을 전하러 온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문순규씨는 간략한 의례적인 사과의 뜻을 비친 후 대뜸 내게 “고소취하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은근한 목소리로 “경남도민일보에 폭행사건 기사가 났던데 누가 제보한 줄 아느냐?” 하고 물었다. “아파서 계속 집에 누워있다 오늘 처음 나온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느냐. 나는 신문도 보지 못했다”고 하자 문순규씨는 “조사하면 다 나온다”고 말하면서 협박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당시 취재기자가 오상진씨였던 것으로 나중에 알게 됐는데 나도 물어보고 싶다. 대체 누가 제보했는지... 그래서 술이라도 사주고 싶다.
물론 이런 정도는 별것도 아니란 것이 나중에 입증되었다. 일방적인 폭행을 당하고도 나는 소위 당기위란 곳에 회부되었는데 신마산에 사는 나를 창원당사까지 불러 조사를 했다. 네 명이 앉아 두 시간 동안이나.
그들은 그중에 한 시간 반을 “왜 동지를 적(경찰)에게 넘겼느냐? 이유를 대라”며 취조하는 데 할애했다. 나는 폭행을 당해 상처 입은 피해자로서 조사를 받은 것이 아니라 동지(폭행가해자)를 적에게 넘긴 반동으로 취조 받은 것이었다.
나는 그들이 이 상황에서 왜 경찰을 적이라 부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겐 당신들이 적이야. 시방 이 순간 경찰은 하나뿐인 나의 친구라고. 아무튼 나는 며칠 뒤 생각을 바꿔 용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고 그런 뜻을 당게시판에도 올렸다.
반대자들도 많았다. 그건 용서가 아니다. 그 용서를 쟤들이 진심으로 받아들일 줄 아느냐?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이므로 그렇게 하기로 했다. 고소도 취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렇게도 용서를 빌 테니 고소를 취하해달라고 사정하던 태도가 하룻밤 새에 돌변했다. 푹 숙였던 고개는 뒤로 뻣뻣이 젖혀졌고 말투는 고자세가 되었다. “내가 용서를 빌면 안 된다 카데예. 정치적으로도 부담이 되는 일이고. 그라고 재판을 해도 내가 이긴다 캅디다. 어젯밤에 다 상담했습니다. 그러니 선배님은 선배님대로 마음대로 하시고 저는 제대로 하겠습니다.”
열세 살이나 어린(나는 갓 넘은 40대였고 놈은 20대였다) 이 친구는 나를 선배라고 불렀다. 대체 내가 왜 제 선배란 건지…. 그러고는 놈은 찬바람을 날리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휑하니 가버렸다.
이때 내가 얼마나 쪽팔렸을지, 얼마나 참담했을지 상상이 가겠는가. 정말이지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이건 맞은 것보다 더 아팠다. 사람 하나 병신 되는 거 시간문제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친구는 불과 하루 만에 다시 저자세가 되었다. 막상 경찰 조사를 받고 보니 제 선배들이 조언해준 것과는 상황이 180도 달랐던 거다. 다시 비굴한 구걸이 이어지고... 하하, 물론 그 다음은 생각하시는 대로다.
놈은 재판을 받았고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집행유예와 사회봉사명령형으로 법정구속만은 면했다. 나로서는 무지 억울한 일이었지만 판결문은 대충 이랬다.
“주먹으로 폭행하고 소주병으로 가격해 열상을 입힌 점이 모두 인정돼 징역형에 처하나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을 참작해 집행유예와 사회봉사명령으로 대체한다”는 것이었다.
깊이 반성한다고? 하긴 놈의 변호사가 어련히 알아서 잘 했겠냐마는 나로서는 한이 남았다. 법정구속 시켰어야 하는 건데. 나는 놈이 반성의 표시를 보인 것은 절대 거짓이며 속으면 안 된다고 재판부에 탄원서라도 써넣지 않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지금도 생각하는 것이지만 탄원서 한 장만 써넣었어도 놈은 법정구속 되었을 것이다. 참고로 놈은 자기도 폭행당했다면서 맞고소를 넣었다. 맞지 않기 위해 저항하는 과정에서 목덜미에 생긴 손자국으로 전치 2주의 진단서를 끊어서, 너무나 멀쩡한 얼굴을 하고서 맞고소를 해놓고는 사과며 고소취하를 들먹이다니.
실로 웃기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이후로 범죄자들의 사과를, 고개 숙인 불쌍한 모습을 결코 믿지 않는다. 이 기사처럼 그들의 사과는 그저 의례적일 뿐이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사과를 하는 것이다. 아니 사과를 하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
교도소에 가면 범죄자들끼리 말하는 자기네 공식이 있다. 일도이부삼백. 제일 먼저 무조건 도망가라. 그다음 잡히면 무조건 부인하라. 그래도 안 되겠거든 무조건 자백하고 용서를 빌어라.
나주 어린이 성폭행범의 사과를 놓고 “살기 위한 의례적인 방책일 뿐 전혀 반성하는 기미가 없더라”는 기사를 보고 불현듯 옛 생각이 나서 분기탱천하여 휘갈겨 적는다. 정말이지 이렇게 긴 글이 이렇게 숨 쉴 틈도 없이 토해내어진다는 것이 내 억울한 심정이 얼마나 큰지 짐작이 될 것이다.
아마도 죽기 전에는 잊지 못할 것이다. 최소한 가끔 불쑥불쑥 찾아오는 이마의 가려움증을 참지 못하고 벅벅 긁어 벌겋게 달아오르는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 분기는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폭력전과자라 해서 취업을 제한하는 것은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에 어긋나는 것이겠지만 이런 자들이 ‘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같은 통일운동단체에서 실무자로 일하고 있다는 것도 또한 마음에 안 든다. 도대체 이런 사람들이 누구와 하나 되는 일을 하겠다는 것인지 그게 궁금하다. 아니, 의혹이 간다, 라고 하는 게 정확할 거 같다.
페이스북에 너무 긴 글 올려 죄송하긴 하지만, 성폭행범 관련 기사를 읽다 열 받다 보니 여기까지 달려왔다. 이해를 구한다.
ps; "동지를 적에게 팔아넘긴다"는 식의 악에 받친 비난은 작금에 통진당사태를 통해 다시 보고 있으니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실추된 당원들의 명예회복"을 그들은 말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동지"와 "당원들"이란 소위 "우리끼리" "자기들끼리" 속에 깊숙이 갇힌 패권주의, 종파주의란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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