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현 후보와의 블로그 집담회. 매우 가고 싶었고 또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무슨 해괴한 말일까요? 매우 가고 싶었다는 것은 내가 문성현 후보에 매우 관심도 많고 또 좋아하기도 한다는 것 때문이고, 반대로 가고 싶지 않았다는 것은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태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물론 짐작하시는 바와 같이 창원 을구에 출마한 손석형 전 도의원 때문입니다. 그는 도의원을 중도에 사퇴하고 총선후보로 출마했습니다. 4년 전 자신이 한나라당 강기윤 도의원을 향해 비난했던 일을 똑같이 벌인 것입니다. 도대체 진보에 양심이란 것이 있나?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매우 가고 싶은 한편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일었던 것입니다. “에이, 지저분한 정치 따위, 신경 쓰고 싶지 않아. 그냥 연속극 후기나 신변잡기, 여행 이야기나 쓰고 말지. 보수나 진보나 하는 짓이 거기서 거기니. 어떨 땐 진보들이 더 역겨울 때가 많단 말이야.”
▲ 오른쪽부터 이윤기, 달그리메, 선비, 문성현, 필자, 거다란, 김병국, 그리고 그 옆으로 20대와 30대 블로거 4명과 천부인권, 김훤주가 참여했다. @사진=천부인권
그러나 결국 20일 저녁, 문성현 후보와의 집담회에 갔습니다. 궁금증을 떨치지 못하는 특유의 성격에다 문성현이란 인물에 대한 나름의 애정 탓이었습니다. 창원과 울산에서 벌어지는 통합진보당의 해괴한 행보에도 불구하고 문성현에 대한 신뢰가 더 컸기 때문입니다. 물론 경블공(경남블로그공동체) 회원이신 선비님이 처음으로 소집한 모임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걱정도 많이 되었습니다. 기득권을 접고 창원 갑(의창구)을 선택한 그의 결단이 상처를 입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는 진보정치 1번지 창원 을에 이어 창원 갑에서 새로운 혁명이 일어날 것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최근 일련의 사태는 이런 믿음에 파열구를 내고 말았습니다.
창원 을과 갑 모두에서 한나라당에 패하고 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실제로 진보정치를 지지하는 사람들조차도 넘겨주어야 정신 차린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합니다-팽배합니다. 총력전을 펼쳐도 승패를 장담하지 못하는 판에 절반이 나자빠질 판입니다. 그래서 걱정이고 그래서 갔습니다.
그런데 집담회가 시작되기 전, 우리끼리 간단하게 막걸리를 한잔씩 돌리고 있는데 웬 남자가 우리 자리로 소주병을 들고 오더니 문성현 후보에게 권했습니다. 그는 자기도 통합진보당 당원이라고 했습니다. 술이 꽤나 거나하게 취한 듯이 보이는 그는 그대로 제 앞에-문 후보는 제 옆에 있었고-퍼질러 앉아 한참을 갈 생각도 하지 않고 이 얘기 저 얘기를 해댔습니다.
자기가 하고 있는 건설업 얘기도 했고, 과거에 했다는 덤프 얘기도 했습니다. 그는 2007년부터 민노당 당원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짜증스럽게 술 취한 그의 얘기를 듣고 있는데, 헐,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그는 지금 우리와 같은 술집의 저쪽 자리에서 한나라당 모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기 위한 만남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모 후보(혹은 측근)도 그 자리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너무 짜증스러워 자세히 듣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있었을 걸로 짐작됩니다. 그러나 그건 중요한 얘기가 아닙니다. 통합진보당 당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분이 세상에나, 한나라당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운동을 하러 다니고 있다는 말씀이니 기절초풍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더 충격적인 것은 제가 듣기로는 “자기 말고도 (꽤 많은 수의) 당원들이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하고 또 구체적으로 활동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진상을 눈앞에서 확인하는 순간 저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한마디로 “허걱!”이었죠.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얼마 전 모 블로거가 통합진보당을 향해 정신분열증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손석형 도의원의 중도사퇴에 대해 가지는 이중잣대 때문이었죠. 혹자는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다”라는 비유를 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진짜 정신분열증은 따로 있었군요. 통합진보당 당원이 한나라당 후보를 밀기 위해 뛰어다닌다니(그냥 그쪽 선거담당자를 잠깐 만나기만 한 거라고 말해도 그건 변명이 안됩니다).
그는 그런 말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자기 당의 전직 중앙당 대표였으며 얼마 전까지 창원시당 위원장이었던 문성현 후보에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큰 선심이라도 쓰는 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원장님 나오시는 곳은 을이 아니라 갑이니까 도와드릴 수도 있을 겁니다. 저쪽에 있으니까 한번 보시죠. 하지만 을은 어쨌든 ◯◯◯을 도와야 되니까 안 되지만.”
제가 비록 통합진보당 당원은 아니지만 속에서는 욕이 튀어나오려 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자당 후보에 대해 가지는 통합진보당원들의 이중적인 잣대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건 이런 부류의 정신분열증에 비하면 아주 가벼운 신경증상에 불과했습니다. 오, 통제라!
▲ 통합진보당 문성현 후보. 막걸리를 참 잘 마신다. @사진=천부인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당원들 뽑을 땐 시험을 쳐서 뽑는 게 어떠냐고. 최소한 진보정당은 그래야 한다고. 몇 달 집체교육 한 다음 1차 필기시험, 2차 면접 이런 식으로. 제가 20년 전에 천주교 신자증 받을 때도 그렇게 해서 겨우 받았습니다. 매주 몇 시간씩 6개월간 교육받고 시험도 쳤던 것이죠.
저는 수업시수를 다 채우지 못해 결국 1차에 합격하지 못하고 한해 재수해서 그 다음해에 신자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유영봉 신부라고 대단히 깐깐한 신부님이 당시 완월성당의 주임신부였거든요. 재수까지 해서 천주교 신자가 됐으니 천주교에 대해 가지는 제 애정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아무튼 위 예와 같은 정신분열증 당원 100명 더 확보하는 것보다 제대로 된 당원 한명 가지는 것이 당의 미래로 보아 훨씬 더 훌륭한 농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통합진보당 스스로가 자성해야 될 일이겠습니다만, 당장은 다가올 선거가 걱정이로군요.
진보정치 1번지의 확산을 꿈꾸며 기득권까지 내버리고 달려온 문성현 후보의 갈 길이 험난해 보입니다. 블로그 집담회 내내 그래서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이른바 손석형 사태로 인해 창원지역 노동계가 총력대응하기도 어려워진 상황에다 이런 정신분열증 환자당원까지 만났으니. 어이구 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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