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8시, 푹 퍼져서 TV뉴스를 보는데 엥겔계수라는 말이 나온다. 가계 전체의 소비 지출 중에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따지는 경제학 용어다. 쉽게 말하면, 돈이 많아 여기저기 쓸데가 많은 가계는 엥겔계수가 낮고 돈이 없어 쓸데가 먹는 거밖에 없으면 엥겔계수가 높다.
더 쉽게 말하자면, 이렇게 비교해보면 되겠다. 이건희 일가의 엥겔계수는 형편없이 낮지만 우리 가계의 엥겔계수는 지나치리만치 높다. 엥겔계수가 형편없이 낮은 이건희 일가의 삶은 지나치게 윤택하고 풍요롭지만 반대로 엥겔계수가 지나치게 높은 우리 가계의 삶은 형편없이 가난하고 고통스럽다는 뜻이다.
신문과 방송을 포함한 대부분의 뉴스들은 이렇게 전하고 있었다. “올해 소득하위 20% 서민의 먹는데 쓴 돈이 늘었다. 엥겔계수가 22.8%로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가상승이 주범으로 보인다.” 대다수 보수언론들은 엥겔계수가 사상최고치를 기록한 원인으로 물가상승만을 꼽았던 것이다. 그럼 다른 이유는 없는 것일까?
물가는 늘 상승해왔다. 20년 전에 버스요금은 100원 미만이었지만 지금 우리는 1,000원인 시대에 살고 있다. 정몽준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나와 버스요금이 얼만 줄 아느냐는 물음에 “70원”이라고 답한 것은 그에게도 나름대로 기억이 있는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이를 통해 이유야 어떻든 물가란 존재는 끊임없이 올라가는 속성을 지닌 존재란 것을 알 수 있다.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가 삶의 질 개선의 욕구도 있지만 이보다는 앞서가는 물가상승에 삶의 질이 저하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방편이라는 측면이 그래서 있는 것이다. 이런 지점에서 물가상승이 엥겔계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모든 것을 물가의 책임만으로 돌려서는 본질을 정확하게 볼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도 언론들은 어째서 엥겔계수가 높아진 원인으로 물가상승만을 지목하는 것일까? 실제로 그들은 그렇게 믿는 것일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 국내 유수의 언론사 경제담당 기자들의 경제학적 식견이 짧아서 물가상승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색맹인 것일까? 다행스럽게도 한겨레신문이 그나마 균형을 잡는다.
“김미선 에듀머니 팀장은 ‘엥겔계수가 오른 이유를 물가 상승에서만 찾아선 안 된다’며 ‘저소득층의 소득이 줄거나 정체되면서, 소비지출을 늘리지 못하는 더 큰 배경을 같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식료품값이 올라 엥겔계수가 높아질 수 있지만, 전체 소비지출이 줄어들 경우에도 엥겔계수가 커지기 때문이다.” (한겨레신문 11. 20. 기사에서 인용)
△ 한겨레신문
친구이자 비정규직 노동자인 김○◯ 씨는 벌써 4년째 임금이 동결되었다면서 동료들과의 사적인 회식자리에도 거의 나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쓸 돈이 없기 때문이다. 물가는 올라가는데 명목소득에 변동이 없다면 이는 곧 실질소득이 줄어들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먹는 것조차 줄였지만 식료품비 비중을 나타내는 엥겔계수는 높아지는 역설이 일어나는 것이다.
실로 오랜만에 엥겔계수라는 다소 학구적인 용어를 들으면서 밀려드는 감상은 이런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시절 장밋빛으로 그득한 이른바 747 대선공약을 들이밀더니 결국 우리가 받은 것은 최악의 엥겔계수 수치로구나. 무역규모 7위의 경제대국에 살면서도 먹는 것에 급급한 70년대의 향수를 뿌려야 하다니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감상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잘 먹고 잘 살게 해준다고 해서 뽑아주었지만 이명박은 경제대통령보다는 토건대통령이 되길 원했으며 또 그렇게 밀어붙였다. 아마도 이명박 대통령은 토건이 곧 경제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보통의 국민이 생각하는 경제와 이명박이 생각하는 경제는 우선 살아가는 토양부터가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결국 경제대통령 이명박은 ‘7년 만에 최대치의 엥겔계수’라는 선물로 자신을 뽑아준 국민에게 화답했다. 내일의 희망 대신에 오늘의 일용할 양식에 매달리며 살아가야 하는 나라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던져준 것이다. 그런데 왜 감상을 말하는가. 지금껏 보아온 국민이라는 이름의 이 부족은 대체로 ‘망각의 종족’에 가깝다는 사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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