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김두관 경남지사와 지역블로거들의 간담회가 있었다. 영광스럽게도 나도 초청받아갔다. 그러고 보니 김두관 지사와 간담회가 벌써 세 번째인가, 네 번째인가 기억이 가물거린다. 제일 첫 번째는 작년 6․2지방선거 때 김 지사가 도지사후보 시절이었다.
블로거합동인터뷰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간담회에서 보여준 김두관의 첫 번째 모습은 좀 어리숙해보인다였다. 아마도 이것은 이장부터 시작해서 군수, 장관까지 역임한 사람에게서 전해오는 다소 의외의 모습으로부터 얻게 되는 반사적 감상이었을 수도 있겠다.
아니 어쩌면 약간 수줍음도 타는 것이 시골에서 올라온 귀티 나는 소년의 모습이라 그랬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첫 번째 그의 인상은 다른 정치인들과는 분명히 다른 무엇이 있었다. 일부러 근엄하게 보인다는 것이 거만하게 보인다거나, 지나치게 친절하게 노력한다는 것이 다소 헤프게 보이는 사람들과 달랐던 것이다.
그때 대부분의 블로거들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이미 수차례의 합동인터뷰를 통해 여러 정치인들을 경험해왔던 블로거들에겐 아마도 좋은 대비가 되었을 것이다. 블로거들은 약간 어리숙해보이면서도 소년 같은 김두관 후보의 모습에서 푸근한 느낌을 받았던 모양이다.
게다가 블로거들은 그가 절대 어리숙하지도 않고 소년처럼 미숙하지도 않으며 날카로운 정치 감각을 호랑이발톱처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편안함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한편 마치 칼을 들지 않은 검투사를 보는 불안한 심정이다.
과연 그에게 권력의지가 있을까? 치열한 헤게모니 투쟁에서 승리로 이끌만한 힘이 있을까? 두 번째 그가 블로거들에게 얼굴을 보인 것은 도지사에 당선된 이후 5개월여가 지나서였다. 창원 대산면의 어느 한적한 농가에서 블로거들과 대면한 그는 도지사가 된 뒤에도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다.
이번엔 완벽한 촌놈 이미지를 블로거들에게 심어주었다. 능숙하게 감을 따는 모습을 연출한 그는 실제로 촌놈이기도 했다. 그의 첫 공직이 남해군 어느 어촌마을의 이장이었으니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는 확실히 언제나 편안한 사람이었다.
경남을 알리기 위한 팸투어에 모인 블로거들과 밤늦게까지 모닥불 연기에 눈물을 흘려가며 술잔을 돌리던 그의 모습은 풋풋한 이웃사람이었다. 그는 왕년에 소주 한 박스가 주량이라며 아쉬워했다. 도지사가 된 그는 이제 어느 한자리에 오래 앉아있을 수 없을 만큼 바빴던 것이다.
역시 이때도 그는 좋은 인상을 남겼지만 강력한 카리스마는 보여주지 않은 채 떠났다. 그리고 어제 다시 그를 만났다. 이번엔 경남도청 도지사실 옆 소회의실이다. 1년만이다. 그는 많이 변해있었다. 이웃집 아저씨 혹은 형님 같은 푸근함은 여전했지만 그는 여유가 있었다. 노련해졌다고나 할까.
가볍게 농담을 던지는 그를 보며 벌써 1년이란 세월이 흘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이제 충분한 자신감을 얻은 듯했다. 취임하자마자 4대강 사업에서 혈전을 치르고 다시 어르신 틀니사업에서 한나라당의 보복공격을 받는 등 김두관 도정 1년은 험난한 여정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이제 그 전투에서 나름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고 생각한 것일까? 하지만 김 지사는 의외의 말을 던졌다. “이게 원래 이래야 되는 겁니다. 과거에 도와 도의회가 아무런 긴장도 없는 밀월이 문제였지요. 이렇게 서로 다투고 경쟁하는 것이 도민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붉게 충혈된 얼굴로 소회의장에 들어선 김 지사는 먼저 양해를 구했다. “오늘도 강행군에 굉장히 피곤합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는데 방금 의회에서 몇 시간 동안 답변하다 오는 길입니다. 여러분들께서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진은 뽀샵을 좀 해주세요. 하하.”
블로거들은 자기가 운영하는 분야에 따라 다양한 관심사의 질문을 던졌다. 생태블로거 크리스탈은 “곤충산업의 육성에 관한 계획이 있는가” 하고 물었고, 공무원블로거 임마는 “낙하산 인사와 도의원 포괄사업비 폐지 또는 개선에 관한 의향”을 물었다.
거다란은 “한미FTA 대책과 복지정책 계획”을, 이윤기는 “청소년 정책과 민주시민교육”에 대해 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가장 관심이 갔던 질문은 서평블로거 흙장난의 “의회 다수파인 한나라당과의 갈등을 잘 해결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 말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제가 도의회 출석률 100%입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전국 어떤 광역단체장도 저처럼 100% 의회 출석한 경우는 없습니다. 저는 이를 위해 일정을 꼼꼼하게 챙깁니다. 의회 출석이 있는 날에 일정 잡는 것을 피하기 위해섭니다. 제 철학은 의회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저는 철저한 의회주의자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서로 다른 정파가) 싸우는 것이 당연하다. 지난 20년 동안 (도의회에서) 공방이 없었던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고 말했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하, 그에게서 알게 모르게 보였던 자신감은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그의 당당함은 그가 세운 원칙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로구나.’
물론 생각만 올바르다고 해서 자신감이 거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감은 능력이 십분 발휘되고 성과가 있을 때 생겨나는 것이다. 그는 아마도 “(다른 정파가 의회에서) 싸우는 것”을 하나의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작업으로 보지 않는 듯했다. 그것은 하나의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통합의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나는 전임자들에 비해 월등히 우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앞서 말했듯이 그런 표를 내는 사람이 아니다. 어리숙하고 순진하며 마음씨 착한 이웃 같은 것이 그의 풍모다. 물론 다시 말하지만 호랑이발톱이 있는 이웃아저씨다.
그러고 보니 그의 카리스마는 ‘갈등과 경쟁을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통합을 이끌어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것은 이장시절부터 다져진 그의 맷집인지도 모른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비상식적인 한나라당 의원들의 공격에도 저렇게 미소를 머금을 수 있다는 것.
아무튼 어제 다시 만난 김두관은 여유가 만만했다. 예의 그 부드러운 이미지에 자신감이 넘쳐나는 모습은 실로 강력한 카리스마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자, 지금까지 이 글이 보여준 것은 순전히 이미지에 관한 것이다. 다음 글들은 다를 것이다.
나는 그에게 “박원순은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듯이 짧은 시간에 엄청나게 많은 일을 이루어냈다. 그에 비해 김두관 도정 1년은 좀 밋밋했던 것이 아닐까. 좀 더 팍팍 튀는 정책을 내고 펼칠 생각은 없는가” 하고 묻고자 했지만 2시간으론 시간이 턱없이 모자랐다.
대신 “자신에게 몇 점을 주고 싶냐?”는 달그리메의 질문에 “65점!”이라고 말한 김 지사의 답변으로부터 “앞으로 기대를 한번 해보십시오”라는 답을 구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지나친 아전인수일까? 그러나 그의 얼굴과 몸짓에서 드러난 자신감은 그걸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 위 글은 11월 14일 경남도민일보가 주최한 <경남도지사와 지역블로거 간담회>에 참여해 쓴 후기다. 간담회는 오후 4시 반부터 6시 반까지 이어졌다. 시간이 많이 모자랐다. 6시 15분쯤 되자 비서실장이 들어와 맨 끝에 앉았다. 다음 일정이 바쁜데다 시간도 다 됐으니 그만 끝내달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비쳐졌다. 간담회를 끝낸 시각은 6시 28분이었다. 이후에 기념사진 찍고 하는데 5분 정도의 시간이 더 투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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