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는 합창이라 하면 성당 성가대밖에 알지 못합니다. 파이프오르간 소리에 맞춰 울려퍼지는 웅장한 미사곡은 그 자체로 사람을 경건한 천상의 세계로 안내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합창에 쓰이는 반주는 반드시 파이프오르간이라야 한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성산아트홀에서 맞이한 합창-미사곡 외에 처음 들은 합창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 다닐 때 교실에서 합창을 하긴 했습니다만, 그것도 합창이라고 해야 할는지는 모르겠고-은 좀 실망스러운 편이었다고 말해야 하겠습니다. 학생들의 피나는 노고와 열정은 이해하지만 소리는 저를 그렇게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물론 저는 이 앞 편의 글에서 청소년합창페스티벌이 매우 감동적인 무대였다고 호들갑을 떨기는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감동의 무대를 만들어준 경남도민일보에 고마움을 은연중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것은 사실입니다. 웅장한 파이프오르간 소리와 장중을 압도하며 몸의 힘을 빼앗아가는 합창에 대한 선입견이 충족되지 못한 것만 빼고는.
▲ 경남도민일보 주최 제12회 청소년합창페스티벌의 마지막 모습
하지만 아무튼 이날 합창페스티벌에 참여한 5개의 고등학교 합창단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부드러운 선율의 혹은 감미롭고 차분한 화음만으로 합창곡을 구성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만약 낭랑18세라든지 티아라의 가요와 같은 격식을 깨는 파격이 없었다면, 힘찬 율동과 비보이의 날렵한 몸짓이 없었다면 저는 정말 졸았을 것입니다.
잘 정렬된 합창단원들의 대오로부터 흘러나오는 가지런하고 통일된 목소리. 거기에 담당 음악교사가 원하는 레퍼토리. 참여한 합창단들이 만들어내는 선율이 비슷했던 이유가 혹시 합창은 이런 것이야 하는 관념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아니면 학생들은 이런 아름답고 가녀린 노래만 불어야 한다는 뭐 그런. 오해일 수도 있겠지만.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파이프오르간과 더불어 장중을 압도하는 웅장한 미사곡에만 제가 익숙한 탓일 수도 있습니다. 저야 뭐 학창시절에 이런 합창페스티벌 같은 것은 구경도 못했습니다. 딱 한번 부산시민회관에서 열린 트럼펫 연주회에 간 적이 있었지만, 제사보다 젯밥에 더 관심이 있었던 터라 기억나는 그날의 트럼펫 소리는 빽빽거리기만 했을 뿐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음악선생님이 한 학기 동안 내내 똑같은 음악만을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1주일에 음악이 1시간인데 음악실로 가서 30분 동안 눈을 감고 이 음악을 듣고는 나머지 20분 동안 콩나물 대가리 수업을 하는 겁니다. 주페의 경기병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지금도 가끔 그 선율이 머리를 맴돕니다.
그렇게 그 선생님께서 음악 감상하는 법을 가르치신 것 같은데 역시 저는 제대로 배운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합창단이 들려주는 선율을 잘 소화해내지 못하니까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곡이라도 관객들이 졸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래서 내년에도 13회가 이어질 텐데, 선곡을 할 때 관객 입장에서 신경 써주시면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선곡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요즘 인기 짱인 ‘나는 가수다’에서도 선곡이 굉장히 중요하더군요. 아무리 실력 있는 가수라도 선곡이 별로면 청중평가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저는 지난주에 바비 킴이 1등 했을 때, 이미 선곡에서 반은 먹고 들어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전문평가단이라 할 매니저들의 분석도 같았고 결과도 그렇게 나왔습니다.
합창곡들이 좀 맥이 없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9워 17일 성산아트홀에서 경남도민일보가 주최한 청소년합창페스티벌은 전체적으로 매우 좋았습니다. 귀에 익숙한 가요와 아이돌 메들리를 합창으로 엮어내는 파격적인 무대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어느 합창단이 불렀던 낭랑18세처럼 가장 좋을 나이의 완연한 꽃들로 가득한 객석도 무지 좋았고, 하하.
하긴 뭐 서클 수준의 합창단을 만들어서 베토벤교향곡 9번인가요? ‘합창’을 부르라고 하면 좀 무리일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어쨌거나 제 감상은 이렇습니다. 모든 것이 다 좋았지만, 선곡이 좀 맥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피아노 소리도 맥없이 들렸고…. 내년에는 조용한 선율의 합창곡과 더불어 힘찬 노래도 섞어서 불러주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뭐 내년에도 저를 초대해 음악을 들려주실 지는 모르겠지만….
ps; 음, 그중에서도 마산고 합창단이 부른 ‘최진사 댁 셋째 딸’은 정말 좋았습니다. 가사가 드라마처럼 계속 관심을 갖게 하는 것도 좋았고요. 남학생들의 힘찬 화음도 좋았고. 남자들끼리만 모아놓아도 노래를 잘하던데요. 아무래도 남녀 화음이 제일 좋을 테지만, 따로 떼놓아도 괜찮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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