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좋은 행사에 이렇게 사람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었다. 10월 8일 오후 3시, 경남민예총이 주최하고 주관한 토크콘서트 ‘노래 하나 이야기 하나’는 우리 지역에서는 실로 보기 힘든 기획이었지만 아쉽게도 행사장에는 사람이 별로 모이지 않았다.
대략 30여명이 듬성듬성 앉은 3.15아트센터 국제회의장의 드넓은 객석은 썰렁하다 못해 황량해보였다. 하지만 사회자는 별로 주눅이 들지 않았다. 그는 “객석을 가득 메워준 청중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인사를 보냈다. 사회자는 김갑수였다.
사회자도 말했듯이 오해를 할 것 같아 미리 밝히자면 그는 탤런트 김갑수가 아니다. 그러나 그도 실은 방송인 출신이다. 아마도 기억하는 사람들은 기억하겠지만 그는 마산MBC에서 오랫동안 토크 프로그램 진행을 맡았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전에 그는 DJ(디제이) 출신이었다.
..... ▲ 사회를 맡은 김갑수 씨 @사진. 박영주 지역사연구가
노무현 후보가 대선에 출마했을 때 열린우리당 캠프에 합류했고 그로부터 한동안 서울에서 정치물을 먹던 그는 2008년 영국으로 건너가 유학생활을 하다가 최근에 귀국했다. 꽤나 길다고 할 수 있는 세월 마이크를 놓았던 그는 그러나 디제이 출신답게 여유가 있었다.
이날 김갑수 씨와 대화를 나눌 패널은 김용기 경남대 교수였다. 맨 먼저 김용기 교수가 불려나왔다. 놀랍게도 김용기 교수는 이전에 디제이 출신이었다고 했다. 그것도 잠깐 한 것이 아니라 무려 3년이나 디제이생활을 했다고 고백한 것이다. 젊은 시절의 3년은 노년의 30년과 맞먹는 세월이다.
▲ 김용기 경남대 교수 @사진. 박영주
그러고 보니 역시 김용기 교수의 토크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착 가라앉은 듯이 하면서도 낭랑한 목소리가 제법 디제이 출신답다. 게다가 그의 입술을 타고 술술 흘러내리는 대중음악의 역사는 “아, 이이가 진짜 디제이가 맞구나!” 하고 실감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은 죽이 척척 맞았다.
그리고 이어 불려나온 초청자 김의권 씨. 중간에 소개되어진 바에 의하면 그는 부마항쟁의 전설이라고 불리어지는 최갑순 씨의 남편이라고 했다. 여기서 잠깐 최갑순 씨에 대해 언급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어쨌든 이날 토크콘서트의 바탕에 깔린 주제는 부마민주항쟁이었으니까.
10.18부마민주항쟁 당시에 경남대 학생이었던 그녀는 옥정애 씨와 더불어 부마항쟁에 기름을 부은 사실상 주동자의 한사람이었다. 여러 증언들에 의하면 악바리 같은 그녀들 두 사람 때문에 남학생들이 “우리가 이래서야 되겠느냐” 하면서 결의를 다지고 거리로 뛰쳐나왔다고 한다.
이들 두 여학생은 10월 18일 시위 초반에 체포돼 이후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는 고통을 맛보게 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 두 사람과 더불어 몇몇의 경남대생들이 10.18 이전에 따로 유신반대시위를 모의했었다는 사실이다. 김모 신부의 증언에 의하면 10월 22일이 그날이었으며 이 모의에는 김의권 씨도 한다리 걸쳐있었다 한다.
▲ 김의권 씨 @사진. 박영주
아무튼 김의권 씨는 그런저런 인연으로 82년 최갑순 씨와 결혼했으며 장성한 아들과 딸을 두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이때 김용기 교수가 익살스럽게 끼어들었다. “보통 방송에서는 이 대목에서 전화 연결을 하던데?” 당황한 김갑수 씨 왈, “하 이거 여긴 지금 시스템도 안 돼 있고, 그렇다고 제 휴대폰으로 어떻게 해서 할 수도 없고….”
김의권 씨도 디제이 출신이었다. 그는 베테랑이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왕년의 가수들은 우리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도록 만들어주었다. 마치 입안에 구슬이라도 몇 개 집어넣고 굴리는 듯이 미끄러지는 발음들. 옛날 트랜지스터로 초롱초롱하게 ‘별밤’을 들었던 이라면 알 것이다.
마지막 초청자는 이영범 씨. 이날 출연자들 중에서 유일한 현역이다. 그는 현재 마산 창동골목의 ‘청석골’이라는 주점에서 디제이를 하고 있다. 그리고 창동상인회에서 운영하는 음악방송에서도 디제이를 맡고 있다. 현재 이 방송은 인터넷을 타고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필자도 청석골에서 디제이를 하는 그를 본 적이 몇 번 있는데, 마치 이종환을 닮은 그러면서도 이종환보다도 더 매력적인 그의 목소리가 참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예의 미끄러지는 발음. 사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나로 말하자면 외국가수의 그 미끄러지는 이름들이 경이로운 추억이다.
이영범 씨가 들려주는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은 실로 우리를 추억의 세계로 몰고 갔다. 암울했던 시절이었지만 마이클 잭슨의 이 노래는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을 매료시키며 위로를 주었던가. 그 노래를 들으니 아련한 학창시절이 다시금 선명하게 잡힐 듯이 떠오른다. ......▲ 직접 엘피판을 들고와 틀어주는 현역디제이 이영범 씨 @사진. 박영주
추억만큼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70년대와 80년대에 유행했던 노래 한곡을 들으며 나누는 이야기들은 정말 아름다웠다. 청바지, 통기타, 그리고 금지에 관한 이야기들. 70년대는 무수한 금지가 남발되었던 시절이다. 이미자, 김추자, 양희은의 노래들 그리고 젊은이들의 긴 머리와 야간통행이 금지되었던 시절.
그 시절 노래와 함께 되새겨보는 그 시대는 그러나 아름답게 다가왔다. 추억의 힘이었을까. 두 시간 가까운 토크콘서트는 청중들을 충분히 사로잡았다. 여기에 하나 더. 전혀 지루하지 않았던 두 시간은 단 1초의 편집도 필요 없이 방송에 내보낼 수 있을 만큼 기획이 완벽했다.
그리하여 처음에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이렇게 좋은 행사에 이렇게 사람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었다.” 어떻게 하다가 이 콘서트의 주관자로 경남민예총과 함께 이름이 오르게 된 100인닷컴의 운영자로서 실로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인 줄 알았으면 좀 더 노력했을 것을. 이름만 올려놓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다못해 사전 홍보기사 하나 쓰지 못했으니 정말 할 말이 없다. 이 글을 빌어 이 행사의 기획과 진행을 도맡아 한 경남민예총과 ‘노래하는’ 김산 씨에게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그러나 굳이 위로의 말씀을 드리자면 정말이지 지역 문화계로서는 획기적인 기획이었다는 것, 처음이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정말 깔끔한 진행이 돋보였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용이 알차고 재미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습관대로 비판적 견해도 하나 밝히고 가자.
..... ▲ 왼쪽부터 사회자 김갑수 씨, 패널 김용기 씨, 초청자 김의권 씨 @사진. 박영주
서태지까지 나온 것은 너무 과한 욕심 아니었을까. 아무래도 난센스였다는 생각이다. 10.26사태에 이어 12.12사태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이 등장할 무렵 함께 나온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에서 그쳐주었다면 더없이 좋았으리란 생각이다.
아니 좀 더 욕심을 부리더라도 농촌의 젊은이들이 화려한 도시로 몰려들며 겪게 되는 애환을 다룬 1990년 조용필의 노래 ‘꿈’ 정도까지도 좋았겠다. 어떻든 콘서트는 너무 좋았다. 노래와 함께하는 토크콘서트를 보지 못한 우리 경남블로그공동체의 여러 회원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을 정도로.
그리하여 다시 한 번 경남민예총이 이런 행사를 기획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한다. 그때는 여러 시민들과 더불어 많은 블로거들이 꼭 참여해주기를 권하고 싶다. 속된 말로 정말 쓸 게 많다. 블로거들이야 늘 그런 게 고민 아니던가. “오늘은 뭘 쓰지?”
그러나 무엇보다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은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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