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 왜 자꾸 귀신이 나오는 것일까?
참 이해할 수 없다. 줄거리와 특별한 연관성도 없어 보인다. 나이가 60이 다돼가도록(58세다) 이른바 신병에 걸릴만한 특별한 사정도 없었다. 그저 갑자기, 느닷없이 신병 즉 무병에 걸린 것이다.
신병을 일러 빙의가 됐다고도 하는 모양이다. 멀쩡한 사람의 몸에 다른 사람의 영혼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몸과 영혼이 다른 것이다. 이런 현상이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별론이다. 여기서는 그런 것 따질 필요도 여유도 없다.
다만, 이 시점에 왜 귀신이 등장하는가 하는 것이다. 귀신도 하나가 아니고 여러 명이다. 귀신을 ‘명’이라는 셈법으로 표현해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여러 마리 혹은 여러 분이라고도 할 수 없지 않은가. 아무튼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신기생뎐> 이야기다. 할머니 귀신에 임경업 장군님, 아기동자까지 등장했으니 정말 어떤 네티즌의 말처럼 “이제 남은 건 처녀귀신뿐”이다. 보도에 의하면 이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는 SBS측도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드라마 제작사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방송사도 황당하고, 제작사도 이해할 수 없는 드라마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순전히 드라마 감독과 작가의 고집 때문이라는 것인데 이 두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것일까? 시청자 입장에서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귀신이 나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무슨 납량특집극도 아니고….
하긴 이런 황당무계한 일은 드라마 초반부터 간간히 있어왔다. 손자(지금은 금자로 이름이 바뀌었다)의 외할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밤중에 돌연히 죽었다. 왜 죽었는가? 이유도 변명도 없다. 그냥 죽었다. 시청자들은 얼굴도 모르는(왜냐하면 한 번도 출연한 적이 없으니) 손자 할머니의 죽음에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그러다 얼마 안 있어 아다모의 할머니도 죽었다. 역시 갑자기, 느닷없이, 돌연히 죽었다. 아무런 이유도 설명도 없었다. 그저 밥 잘 먹고 조용히 죽은 것이다. ‘허, 그것 참.’ 물론 이 두 사람의 극 전개와 아주 연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로 인해 손자는 단공주의 집에서 함께 기거하며 단공주와 친해졌다. 아다모와 단사란의 애정전선에 위기가 찾아오는 계기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 두 사람의 죽음이 아니더라도 이 두 개의 스토리는 그대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미 아다모는 가난한 집안의 딸인 단사란과 결혼을 해야 한다는 데 회의를 느끼고 관계를 정리하고자 마음을 먹었던 것이고, 할머니가 죽었다고 결혼적령기의 다 큰 청년이 남의 집에 가서 함께 산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무서워서 그랬다고? 그런 변명이야말로 우스꽝스런 이야기다(하지만 실제로 드라마에서는 무서워서 그랬다).
그 이후에도 황당한 소재들은 계속 등장했다. 기생 길들이기란 명목으로 멍석말이도 나왔다. 21세기에 서울 한복판의 기생집(내가 볼 땐 고급 요정 혹은 룸살롱이다)에서 백주에 벌어진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건 약과였다. 기생머리 올리기?
전통문화인 것처럼 포장했지만 누가 보더라도 이것은 명백한 성매매다. 보통의 윤락행위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훨씬 비싼 가격에 독점적으로 성을 접대 받을 수 있다는 차이? 그러더니 이젠 마지막으로(정말 마지막이길 빈다) 귀신이 등장했다. 하나도 아니고 여러 명(혹은 분)이.
막판에 귀신이 나오는 이유가 뭘까? 이것도 전통문화 홍보차원일까? <신기생뎐>의 제작의도가 그런 것이라고 들었다. 우리나라의 전통 기생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한 것. 그러니까 드라마 전체가 우리 전통문화를 발굴하고 홍보하는 것이 이 드라마의 목적이란 것이다.
그러므로 귀신이 나오는 것이 드라마의 줄거리와 전혀 상관이 없이 느닷없다거나, 그렇다고 특별히 재미있는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니라거나 하는 것들은 우선 참아두자. 어쨌든 이 드라마의 주요한 목적이 전통문화를 알리고 홍보하는 것이라니까.
그런데 귀신하고 우리 전통문화하고 무슨 연관이 있을까? 생각해보니 전혀 없다. ‘에이, 그럼 그것도 아니잖아.’ 그래서 억지로 생각해봤다. 귀신과 우리의 전통문화가 무슨 관련이 있을까? 가만 그러고 보니 신기생뎐에 나오는 귀신들이 보통 귀신이 아니다. 그래, 무당이 있었군.
몽골에서는 무당을 샤먼이라고 한다던가. 아무튼 <신기생뎐>의 작가는 소개하고 싶은 아름다운 전통문화에 기생 멍석말이라든가 머리 올리기 외에 무당을 등장시켜 무속신앙을 소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가만히 살펴보면 과거에 만들었던 작가의 드라마들 중에도 무당이 자주 등장했음을 볼 수 있다.
이다해를 스타덤에 올려준 <왕꽃선녀님>의 소재도 무당과 빙의, 즉 신내림 혹은 신병(무병)이었다. 그때는 이다해에게 신이 내렸었다. 이때는 드라마 전체가 그와 관련한 이야기였으므로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느닷없이 귀신이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니 그게 문제다.
그리고 드라마의 재미에도 아무런 역할을 해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잘 보고 있다가도 귀신 나오는 바람에 기분 잡친다는 게 일반적인 반응인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국도 제작사도 이해하지 못하는 황당한 일을 작가와 감독이 계속 고집하는 이유는?
역시 황당한 답지이긴 하지만, 전통문화에 대한 작가와 감독의 고견 때문이 아닐까. 그것 말고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다. “그럼 무속신앙이 전통문화냐?” 하고 핀잔을 주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다. 거기에 대해선 나도 노코멘트다. 왜냐하면, 아는 게 없으니까.
아마도 이런 나의 판단에 따라 생각해보면, 다음 주엔 틀림없이 무당이 등장할 것으로 생각된다. 씻김굿 이런 것을 할 테지. 그리고 정신이 돌아온 시아버지는 자신을 구해준 며느리에게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할 것이다. 게다가 며느리가 금병원 원장의 외동딸인 것이 밝혀지면 그 감동은 천만배가 될 터이다.
언젠가 인터넷 상에서 이런 얘기를 본 적이 있다. “<신기생뎐> 작가가 무당이라고 하더라.” 당연히 터무니없는 이야기일 것이 분명한 이런 유언비어가 떠도는 것도 사실은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작가의 드라마 이력에서 보듯이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나저나 아수라 역의 임혁 씨, 정말 고생이 많겠다. 사극에서 근엄하고 의기 넘치는 장군 역을 주로 맡았던 임혁 씨가 이 드라마에선 강아지를 안고선 “어이구, 우리 아들 아빠가 보고 싶었져” 하며 푼수를 떨더니 이젠 귀신에 씌어 팔자에도 없는 할머니에 어린아이 행세다.
어쨌거나 이 드라마를 본 많은 사람들로부터 작가와 감독이 원하는 소기의 성과, 곧 기생집과 무당이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문화라는 각성과 찬사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그것이 궁금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내 생각은 그들의 의도와는 반대방향으로 흐를 것 같은 분위기다.
기생문화와 무당문화를 더 웃음거리로 만들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무속신앙을 신앙이 아닌 문화예술 차원으로 승화시키겠다며 무속예술인협회도 만들고 문광부에 등록신청도 하고 하는 걸 보았는데, 그런 분들이 보면 어떻게 평가할지 그것도 궁금하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이 독자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뭐라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하지 마라!”
ps; 드라마에선 아수라란 이름이 귀신들이 들어가기 좋아하는 이름이라 아수라가 신병에 걸렸다고 그러는데, 이 이야기도 참 황당의 극치다. 이름 때문에 귀신에 씌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놈의 이름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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