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월드컵이 오심으로 얼룩졌습니다. 재미가 반감됐다는 볼 멘 소리도 많이 들립니다. 하지만 반대로 언론들은 신이 났습니다. 이야기 거리가 많이 생겼으니까요. 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마라도나가 창조한 신의 손도 그렇습니다. 경기가 끝난 다음 기자들의 질문에 마라도나가 그렇게 얘기했다지요.
"그건 내 손이 아니라 신의 손이었소!"
그래서 신의 손이란 말이 생겼는데, 언론들에겐 두고두고 우려먹을 수 있는 꺼지지 않는 양식 아니겠어요? 그러나 축구가 여럿이 힘을 합쳐 목표를 이루어내는 단결과 협동심을 배울 수 있는 스포츠라든지 공정한 룰을 통해 합리적인 경쟁을 배우는 장이라든지 하는 말은 이번 월드컵을 얼룩지게 만든 오심으로 인해 무색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튼, 이번 남아공 대회에서 유독 빛이 난 오심 세 개를 고른다면 어떤 것일까요? 많은 빛나는 오심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 꼭 세 개를 고르라고 한다면 저는 다음 세 개를 추천하겠습니다.
2. 아르헨티나 vs 멕시코 경기에서 완벽한 오프사이드 반칙 묵인
3. 브라질 vs 코트디부아르 경기에서 헐리우드 액션에 속아 카카 퇴장
첫 번째, 이건 뭐 논란의 여지가 없는 오심입니다. 공이 골대 안으로 깊이 들어간 것은 수십 억 지구인들이 다 봤거든요. 주심과 선심 두 명, 이 세 사람만 빼고요. 영국으로선 매우 억울하게 됐습니다. 영국 총리와 독일 총리가 의자를 나란히 놓고 함께 경기를 봤다고 하던데요. 독일 총리도 공이 골대 안으로 들어간 것을 봤을 겁니다.
피파의 해명이 웃긴데요. 오심에 대해선 할 말도 없고 말을 해서도 안 된다나요? 그리고 비디오를 자꾸 보여주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비난하더군요. 참 웃기는 일이 아니고 뭡니까? 피파의 말대로라면 이런 거지요.
동네 골목에 CC-TV가 달려 있습니다. 강도가 그 동네를 덮쳤습니다. 집집마다 다 털어서 유유히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CC-TV를 보아선 안 됩니다. 왜냐, 이미 경기는 끝났으니까요. 그리고 CC-TV를 보는 것은 괜히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니까요. 혹시 우리 동네 사람일지도 모르잖아요.
두 번째, 이것도 논란의 여지가 없는 오심입니다. 이런 오프사이드는 사실 보기가 드문 오프사이드입니다. 골을 넣은 테베스 선수가 골키퍼와 수비수도 없는 상대편 골대 안에 혼자 서 있었거든요. 마치 자기가 골키퍼인 것처럼. 물론 그 상황이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고 우연히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오프사이드도 보지 못한다는 것은 심판의 자질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심판으로서 자격이 없는 거죠. 저라도 그 정도의 오프사이드는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니 이 글을 읽는 독자 어떤 분이라도 그 정도의 오프사이드를 보지 못하는 분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피파는 당연히 노코멘트로 일관했습니다. 왜냐? 지나간 일을 거론하는 것은 건강에 안 좋으니까요.
세 번째, 이건 좀 어이없는 오심이었습니다. 코트디부아르의 케이타 선수가 멍청하게 서 있던 브라질의 카카 선수를 향해 힘차게 뛰어와 부딪히고는 저 혼자 벌렁 나자빠졌거든요. 엄격히 말하면 코트디부아르 선수에게 파울을 줘야 하는 상황이었죠. 이 상황을 주심은 보지 못했습니다.
자, 위에 두 개의 오심은 주심이나 선심이 골인과 오프사이드를 보지 못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이 오심은 매우 특이한 오심입니다. 주심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는데 넘어진 케이타 선수를 보고는 무언가 일이 일어났다고 짐작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된 거지요. "케이타, 너 카카에게 맞았니?" "네, 쟤가 저를 밀면서 때렸어요. 엉엉~"
자, 상황을 한 번 재연해 볼까요?
1. 공이 브라질 공격수의 발에 맞고 아웃 됐군요. 주심이 코트디부아르 볼을 선언합니다. 앗, 그런데 저 뒤에서 뭔 일이 벌어졌나 봅니다. 아직 주심은 눈치를 채지 못했어요.
2. 시끌벅적해서 주심이 뒤로 돌아 가고 있습니다. 누군가 쓰러져 있습니다. 코트디부아르 선숩니다. 흥분한 코트디부아르 골키퍼도 뛰어오고, 선수들이 패싸움이라도 하려는 듯이 막 달려가고 엉망입니다.
3. 아, 브라질 카카 선수하고 부딪혔나 보군요. 아마 카카 선수가 팔로 때렸나 봅니다. 그런데 카카 선수, 나는 억울하다, 나는 절대 안 그랬다 변명하고 있군요. 표정을 보니 무지 억울해 보입니다. 드록바 선수, 그래그래 괜찮아, 잘못한 게 있으면 벌 받으면 그만이야, 하면서 위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카카 선수, 두 손을 기도하듯 맞잡고 이렇게 말하고 있군요. "아냐, 아냐, 나 절대 안 그랬어. 신에게 맹세할 수 있어. 만약 내 말이 거짓이면 나 지옥가도 좋아."
4. 코트디부아르 18번 케이타 선수. 마치 엄청남 데미지라도 입은 듯 쓰러져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동료 선수들이 주심에게 하소연 합니다. "얘가 얼마나 세게 맞았으면 이렇게 쓰러져 일어나지도 못하겠어요? 주심 선생님, 카카를 혼내주세요. 정의가 살아있다는 걸 반드시 보여주셔야 합니다."
주심, "그래 알았어. 카카 녀석 본때를 보여줄 테다. 정의의 빨간 딱지 맛을 확실히 보여주지. 암, 당연히 그래야하고말고."
5. 카카에게 다가간 주심, "카카 이 나쁜 녀석, 어서 이리 오지 못해? 넌 퇴장이야!"
카카, "나 정말 억울해요. 난 잘못한 게 없다고요."
주심, "웃기지 마. 내가 빨간 딱지를 너에게 붙이면 그게 바로 네가 잘못했다는 증거야. 자, 어서 나가라고."
문제는 이겁니다. 케이타가 헐리우드 액션을 했고요. 그러나 주심은 그 헐리우드 액션조차도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사고가 난 다음에 나타난 거지요. 그리고 넘어진 케이타를 보았어요. 그 다음 주심은 빠르게 판단했지요. 카카 이 녀석이 케이타를 때렸군. 사실은 케이타가 카카를 때린 것이나 마찬가진데요.
남아공 월드컵 오심 챔피언은? 카카 퇴장
아무튼 위 세 개의 오심을 저는 이번 대회 최고의 오심 빅3로 추천합니다. 자, 그럼 이 중에서 어떤 오심이 챔피언일까요? 골인을 노골 선언한 오심? 오프사이드 오심? 아닙니다. 제가 보기엔 마지막 세 번째 카카의 퇴장이 최고의 오심입니다. 다른 오심들은 심판이 보지 못해 생긴 것이잖습니까? 그런데 이 오심은 정말 특이해요.
역시 보지 못한 것은 맞지만, 심판이 선수에게 가서 물어보는 거지요. "야, 너 파울 당했니?" 그러면 선수는 매우 불쌍한 표정으로 말하는 거지요. "네, 심판님. 저 억울하게 파울 당했어요. 쟤 혼내 주세요."
하하,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남아공 월드컵 최고의 오심. 아직 대회가 끝나지 않았으니 더 훌륭하고 멋진 오심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요. 현재로선 헐리우드 액션에 속아 카카 선수에게 내린 퇴장 명령이 최고의 오심이 아닐까 그리 생각하네요. 이번 남아공월드컵 심판들, 하여간 정말 대단해요.
역사상 최고의 심판들이에요. 어쨌든 우리에게 재미를 선사해 줬으니까요. 자, 그럼 우리 모두 사태의 진실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느린 화면으로 살펴보도록 할까요? 지금 보시는 이게 바로 진실이랍니다.
1. 코트디부아르 18번 케이타 선수 공을 빼앗기 위해 달려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을 빼앗지 못했군요. "아, 쪽팔려."
2. 앗, 그런데 케이타 선수 먼산 쳐다보며, 아니 먼공 쳐다보며 카카 선수에게로 뛰어가고 있습니다. 먼공 쳐다보고 있기는 카카 선수도 마찬가지. 이러다 충돌 사고 일어나겠어요. 어이쿠, 사고 났습니다.
3. 어? 그런데 자기가 가서 부딪혀놓고 케이타 선수 마치 한 대 얻어맞았다는 듯이 얼굴을 감싸 쥐며 쓰러지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케이타 선수도 일부러 가서 부딪힌 것은 아니로군요. 물론 카카 선수도 케이타 선수가 자기에게 달려와 부딪힐 줄은 꿈에도 생각 안 하고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이건 그저 단순한 사고였습니다.
그러나 무능한 주심은 케이타 선수의 연기에 속아 이 우연한 충돌을 고의적인 파울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브라질이 이기고 있었고 시간이 다 됐기에 망정이지, 전반전에 이런 장면이 벌어졌다면? 세상 꽤나 시끄럽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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