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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남아공월드컵' 수아레스, 신의 손 아니라 악마의 손

월드컵, 도대체 뭘 보고 배울까?

월드컵, 올림픽을 능가하는 지구촌 최대 축젭니다. 우리가 어릴 때 교과서에서 배운 축구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단결과 협동을 배울 수 있는 스포츠, 그리고 페어플레이. 페어플레이란 그런 것이겠지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반칙과 편법을 써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오늘 새벽 우루과이가 4강에 진출했습니다. 그런데 우루과이 4강 진출이 바로 페어플레이 정신을 짓밟은 대가로 쟁취한 것이란 점에서 보는 이로 하여금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게 합니다. 연장 후반 15분 몇 초, 가나의 마지막 프리킥을 끝으로 경기는 종료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월드컵 4강 기적 일군 수아레스의 손, 그것도 축구다?

그런데 이 마지막 프리킥이 절묘한 헤딩슛으로 연결되며 골문안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 골키퍼까지 제낀 공 앞에는 골문 안에 서 있던 두명의 수비수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들은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첫 번째 슛은 수아레스가 동물적 감각으로 발로 차냈지만, 재차 이어진 헤딩슛은 발을 쓸 수 있는 높이가 아니었습니다.

공을 손으로 쳐내는 수아레스. 사진=뉴시스


순간 수아레스의 손은 마치 신들린 것처럼 공을 쳐냈습니다. 만약 수아레스가 마라도나였다면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그건 내 손이 아니었어요. 신의 손이었죠!" 마라도나의 신의 손은 경기의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할 수 없었지만, 수아레스의 신의 손은 탈락이 결정된 우루과이의 운명을 뒤집어 4강에 올려놓고 말았습니다.

혹자는 이것도 축구라고 말합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다급한 상황에서 손으로 공을 쳐낸 행위를 아예 이해 못하는 건 아닙니다. 반칙에 이은 퇴장으로 충분히 대가를 치렀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가나가 페널티킥 실축을 한 것도 그저 불운 탓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은 그런 최소한의 이해심마저도 어렵게 했습니다.  

남아공월드컵은 심판들의 어처구니없는 오심 행진으로 오심월드컵이란 오명을 안았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지독한 건 이전에 없이 발달한 할리우드 액션이 유독 많았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할리우드 액션이 거짓으로 파울을 당한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었다면, 이젠 자기가 잘못해놓고 그걸 덮어씌우는 것으로까지 발전했습니다.

브라질전에서 할리우드 액션으로 카카를 퇴장시킨 코트디부아르의 케이타는 압권이었습니다. 카카 선수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을 겁니다. 강도가 집 주인에게 담 넘다가 허리를 다쳤다고 물어내라고 생떼를 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런 경기를 보면서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 어떻게 될까요? 

멍청히 서 있다가 자기에게 달려와 부딪혀 넘어진 선수의 할리우드 액션에 퇴장 당하는 카카


현대축구에선 지능적인 반칙도 실력?

세상에 난무하는 음모와 협잡을 보며 "그래, 그것도 세상이야!" 하고 말한다면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비약이 좀 지나치긴 했습니다만, 아무튼 빨라진 현대축구만큼이나 반칙도 지능적으로 발전했습니다. 현대축구를 압박축구란 말로도 대신합니다. 수비수와 공격수가 동시에 와 하고 올라갔다가 와 하고 내려오는 게 현대축구의 특징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수비수는 하프라인을 넘지 않는 것이 기본 원칙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오버래핑이란 말이 생긴 것도 최근의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이영표 선수가 오버래핑의 대명사였죠. 센터포드, 센터하프, 풀백, 라이트 윙, 레프트 윙 하는 포지션들은 거의 고정된 자기 위치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1970년대를 풍미했던 네덜란드의 압박축구는 세계 축구를 변화시켰습니다. 전원수비 전원공격의 이 독특한 축구 스타일은 오늘날의 빠른 축구를 탄생시켰습니다. 문제는 심판들입니다.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빨라진 현대축구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심판들은 과거에 하던 그대로 느릿느릿 경기장을 걸어 다니며 권위를 뽐내기만 할 뿐입니다.

경기는 빨라지기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빨라진 만큼 경기장은 훨씬 복잡해졌습니다. 과거에 선수들이 자기 자리를 지키며 흩어져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여러 명의 선수들이 뭉쳐 혼전을 벌이는 경우가 다반삽니다. 그만큼 심판들이 시야를 확보하기가 어려워졌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이런 현실은 선수들의 지능적인 반칙을 발전시켰습니다. 이제 마치 심판 몰래 반칙을 잘 하는 것도 실력으로 평가 받는 시대가 된 듯합니다. 우루과이와 한국의 8강전 경기 전에 한국 언론들은 수아레스에 대한 경계령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수아레스의 할리우드 액션을 경계하라!"  

날로 지능화되는 반칙, 이대론 안 된다

수아레스는 이미 그런 선수로 알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수아레스가 정직하고 공정한 페어플레이어였다고 하더라도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공을 손으로 쳐내지 않았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페어플레이를 생각하는 선수였다면 최소한 그렇게 쉽게 손이 나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손보다는 머리가 나갔겠지요.

게다가 이번 월드컵은 축구가 얼마나 반칙으로 오염되어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대회였습니다. 매 경기마다 반칙이 난무하고 심판들의 오심이 줄을 이었습니다.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고 져도 진 것이 아닌 우스꽝스런 대회가 되고 있습니다. 더없이 추악해진 월드컵에서 수아레스의 신의 손이 가벼운 해프닝이나 귀여운 에피소드가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빨간 딱지 레드카드. 이걸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날로 갈수록 지능화되고 야비해지는 반칙들, 지구촌 축제를 추악한 월드컵으로 만드는 그라운드의 범죄행위에 대해 빨간 딱지 한 장으로 만족해야 할까요? 아울러 할리우드 액션으로 심판을 속이고 승패의 운명을 뒤바꾼 행위들에 대해서도 사후에 밝혀내 엄중한 책임을 묻는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물론 수아레스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박주영이 그 자리에서 그런 행동을 했다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박주영도 우리나라에선 영웅 대접을 받았을 겁니다, 수아레스처럼. 다른 모든 지구인들이 손가락질을 해도 우리는 우리의 위대한 범죄자를 향해 기꺼이 기립박수를 치며 찬양하겠지요.

"와우, 최고야. 승리를 위해선 비열한 반칙도 영웅적 행동일 뿐이야."


"무조건 이기면 최고야!" 수아레스, 우루과이선 영웅?

축구에서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바로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일은 수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단결과 협동정신은 매우 훌륭한 것이지만, 한편으로 이처럼 패거리문화, 폭력적 이기주의, 집단적 최면상태 등을 야기하는 역기능도 있다는 것입니다. 내 편이면 어떤 비열한 반칙을 해도 용서를 넘어 고무 찬양해야 한다는….

그래서 축구에서만이라도 최소한 정의가 승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대가 실로 부질없다는 것을 이번 월드컵은 유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아무튼 수아레스는 우루과이에선 영웅 대접 받게 생겼네요. 남아공 월드컵, 마지막까지 정말 재미를 줍니다.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