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바지저고리로 아나, 물어보지도 않고 지들 맘대로다"
지산마을은 진북면소재지로서 아담하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이 마을 뒤로 국도 2호선 산업도로가 나면서 주민들은 소음과 분진에 시달려야 했다. 더 큰 문제는 요란한 발파소리에 뒤이어 따라온 아파트 건물 균열이었다. 불안한 주민들이 공사업체인 한진을 찾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법대로 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바로 이 도로에 인접한 동네 뒷산이 헐리고 있는 것이었다. 제보를 받은 기자가 갔을 때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대책을 논의하는 중이었다. 진북 성원아파트 입주민회의 총무(우정명)를 빼고는 모두 어르신들이었다.
진북 지산마을 너머로 진동과 진동만이 보인다.
"시의원들이 말이야, 허새비라, 허새비"
“시의원이란 사람들이 말이에요, 허새비야. 한나라당 이주영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만났는데 인간들이 아니더라고. 이주영하고는 독대를 한번 했는데, 전화는 한통 해주대요. 국토 무슨 청인가 어디라던데.”
처음 그들을 만났던 <더불사> 고문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매우 격앙돼 있었다. 시의원이든 국회의원이든 별로 쓸모가 없었던 것이다. 주민들을 바지저고리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주민들은 스스로 돈을 모아 5천만 원을 만들어 1년 넘게 도로공사, 공사업체와 싸움을 벌여 공사가 끝난 뒤 정신적 보상과 건물균열 등 물질적 피해를 조사해서 배상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엔 마을 뒷산이 벌겋게 헐리고 그 자리에 골프장이 들어선다는 것이다. 처음에 주민들은 도로공사에서 하는 작업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50년, 100년 된 소나무가 베어져나가고 굴삭기가 올라가 산 정상을 헐어내기시작하자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사업자를 찾아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얼버무리며 제대로 답변을 하지 않아 벌목을 하는 인부에게 물어보니 골프연습장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산꼭대기까지 직접 안내에 나선 주민들은 아주 흥분돼 있었다. “이 산이 어떤 산인 줄 알아? 조상대대로 우리 마을을 지켜온 산이라고. 저 소나무들을 봐, 저걸 다 베어냈어.”
골프연습장이 나는 산 뒤로는 국도 2호선 공사가 한창이다. 맨 아래 사진은 공사장에서 내려다 보이는 소나무들. 이게 어떻게 재선충 걸린 나무로 보이냐는 어르신들. 놔두면 여기까지 잘라낼 판이다.
산은 별로 높지 않은 야산이었다. 그러나 정상에 서자 진동만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한눈에 명당임을 알 수 있었다. 함께 간 경남대 안차수 교수와 기자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와, 이런 곳이 다 있었네요!” 조상대대로 내려온 마을의 영산도 예리한 부동산업자들의 눈은 피해가지 못했다.
재선충 걸렸다고 허가 받아 벌목한 나무들은 다 어디로 반출 됐을까?
우리가 서있는 자리로부터 아래로 마을에 닿는 지점까지 소나무들이 모조리 베어져나갈 판이다. 이미 삼백여 그루를 베어냈다고 한다. “이 놈들이 말이야. 재선충에 걸리지도 않은 걸 걸렸다고 속여 벌목을 하라고 허가를 내줬어. 그게 말이 돼? 산림행정하는 놈들도 다 사기꾼이야, 봐, 저 밑에 소나무들 보라고, 어디 저게 재선충 걸린 나무야.”
실제로 둥치가 100년은 족히 돼 보이는 소나무들은 재선충과는 아무 인연도 없어보였다. “그리고 말이야. 재선충 걸린 나무를 잘랐으면 그걸 반출해도 돼? 여기 봐, 벌목한 소나무 하나도 없잖아. 다 싣고 나갔어. 그리고 백그루 벌목하라고 허가했다는데 삼백그루 베어냈어. 이거 전부 감옥 보낼 일이라고.”
주민들은 말이 나오기 시작하자 그칠 줄을 몰랐다. “시에서도 말이야, 주민들 애로가 뭔지 그런 것도 안 물어보고 지들 맘대로 처리해도 되는 거야? 이게 김일성이 김정일이 하고 똑같은 정치 하는 놈들이지, 책상만 지키고 앉아 있을 줄 알았지 말이야.”
산은 야트막한 야산이다. 산을 깍아 골프연습장을 만들면 아파트 높이와 비슷해진다. 그러나 여기 서서 골프채를 돌리면 진짜 기분은 그만일 듯.
골프장 공사인 것을 확인한 주민들이 공사업자를 찾아가 따졌지만 상상도 못한 황당한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마을과 산 뒤로 도로가 나는데 어차피 병신산 아니냐.” 이 말을 듣고 노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아니 마을 뒤에 산이라도 있으니까 도로가 나도 그나마 소음이라도 줄일 수 있는 거지, 그 산이 병신이 됐다니, 그게 말이 돼? 조상대대로 마을을 지켜온 영산을 모독해도 분수가 있지.”
주민들을 곧 대책위를 만들어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아무 역할도 못하는, 아니 안하는 주민들의 대표였다. 주민들에게 애로가 뭔지 한번 물어보지도 않고 허가를 내준 시도 문제지만, 주민들의 편에서 시정을 감시하고 해결해야할 시의원들이 허새비 소리나 듣고 있다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답은 간단하다. 경운기하고 트랙터 끌어다 막아야 되는 기라"
벌겋게 파헤쳐진 산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진북면 지산마을 너머 진동만은 실로 아름다웠다. 아마 이런 곳에서 골프채를 들고 휘두르는 유한 사람들에겐 이보다 더 좋은 골프연습장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날마다 땅, 땅 하며 총소리처럼 들려오는 골프공 나는 소리는 얼마나 주민들의 귀를 따갑게 할 것인가. 몰려드는 골프장 손님들을 위한 야간 서치라이트 불빛에 주민들은 또 얼마나 잠을 설쳐야 할 것인가.
“도로 건설은 그래도 국책사업이라 우리가 참았는데, 지들 개인이 돈 벌겠다고 저러는 짓을 어떻게 용납한단 말이야. 이런 일을 벌이면서 아무 설명도 의논도 안 하고, 지들 맘대로야. 대체 우리를 얼마나 무시하기에 이런 짓을 하노 말이다. 이건 탕탕 하고 우리한테 선전포고한 거나 마찬가지 아이가.”
여기에 대한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한 어르신은 혀를 차며 이렇게 말했다. “경운기하고 트랙터 끌어다 공사 못하게 막아버려야지. 다 짓고 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거라. 그라고 저래 벗기 놓은 것도 다 다시 원상복구 시켜야 된다. 저게 뭐꼬, 마을의 영산을 할딱 벗겨놓고 말이야. 저게 사람으로 말하면 코고 이마고 그런 건데, 우리 마을을 죽이는 게 아니고 뭐냔 말이다.”
※ 이 글은 마산 삼진/구산마을 더불어사는내고장운동본부(더불사) 소식지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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