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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김두관, "합법보다 합리가 더 중요하다"

김두관 경남도지사 후보와 인터뷰를 마친 블로거들이 창원 팔용동의 어느 막걸리집에 둘러앉았을 때, TV 자막에서는 각 지역 시도지사 유력후보들의 여론조사 결과과 발표되고 있었다. 서울, 경기에 이어 경남도지사 후보 여론조사가 나오자 모두들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물론 이미 이 결과에 대해선 인터뷰 중간에 김 후보의 언론특보로부터 언질을 받았던 바이기는 했다.

여론조사 결과, 김두관 후보가 이달곤 후보를 5%포인트 이상 앞서

김 후보의 언론특보는 이렇게 말했었다. "동아일보에서 여론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 후보가 5% 이상 앞섰다. 내일 보도에 나올지 모르겠는데,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직 판단을 못하고 있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김두관 후보가 이달곤 후보를 앞선다?" 여론조사는 그저 여론조사일 뿐이다. 그러나 이건 대단한 반전임에 틀림없었다. 지금껏 야당후보가 이토록 근접하게 여당후보와 다툰 예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초단체장 선거와 달리 시ㆍ도지사 선거는, 특히 경남에서는 거의 예외없이 정당지지도와 맞물려 결과과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이번엔 그 예외란 것이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이 진리처럼 들리는 말은 그러나 지금까지 경남에서는 통하지 않았었다. 열어볼 필요도 없이 단지 안에는 늘 한나라당 당선이란 도깨비방망이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그 도깨비방망이도 통하지 않는 것일까?

김두관 후보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를 말할 때, 사람들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이장 출신이란 점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실제 남해에서 이장을 했다. 그리고 남해신문을 창립하여 신문사 사장도 오래 했다. 그리고 남해군수가 되었다. 이장 출신이 군수가 되었다고 해서 세간에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그의 남해군수 경력은 성공적이었다. 그는 마침내 행정자치부 장관이 되었다.

이장, 신문사 사장, 군수, 장관으로 이어지는 그의 경력은 그에겐 장점임에 틀림없다. 그의 이러한 특별한 경력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인터뷰 내내 "좋은 아이디어를 토스해주시면 잘 받아 안을 것이다"와 같은 말을 자주 했다. 말하자면, 그는 "나는 스폰지와 같다"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우는 사람 같았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한 지점인데,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김두관 후보의 장점은 스폰지같은 흡수력

아무튼 그런 그의 장점들은 밑바닥에서부터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을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마도 이것은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가해지던 비판 아닌 비난과 비슷한 것이다. "대학도 안 나온 사람이 대통령이 되다니"와 "이장 출신이 장관을 하다니" 정도가 아니었을까. 물론 이런 단점에 대한 지적들은 허무맹랑하며 터무니없는 것이고 양식있는 사람들의 공분을 자아낼 뿐인 자충수다.  

나는 늘 누가 누구를 이기기 위한 단일화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으나, 이갑영 예비후보와 김 후보의 문답을 들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김두관 후보에 앞선 인터뷰에서 김 후보를 걱정하면서 이런 의미의 말을 했다. "지방연립정부가 되는 것 아니냐!"

그렇다, 그게 바로 진정한 단일화 아니겠는가. 연립 없는 단일화, 묻지마 단일화는 참다운 의미에서의 단일화가 아니란 사실을 아이러니하게도 친박연대의 이갑영 후보가 알려주었다.  그러나 그는 아쉽게도 미리 예견된 것처럼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무소속으로 야권단일화에 성공한 김두관 후보'의 입지야말로 그의 장점인 스폰지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여기에 대해 그의 경험담은 하나의 지표가 될 수도 있겠다. 그는 내가 "수정만을 매립해 STX를 유치하는 것처럼 경남의 임해는 몸살을 앓고 있다. 바다를 메워 공장을 짓는 게 경남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보나?"란 나의 질문 끝에 이런 말을 했다. 

"군수 시절 부군수까지 결재한 서류가 하나 올라왔는데, 그걸 보는 순간 '이거 결재하면 데모대가 바로 쳐들어오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현장 가보고 결재했냐' 하며 직원을 현장으로 보냈다. 그랬더니 결과는 내 생각 그대로였다. 합법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합리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

합법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합리적인 게 더 중요하다

합법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합리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 나는 이 말을 그대로 기록했다. 명언이었다. 이 말을 들으며 3일 전 마산 진북 지산마을에 발생한 민원을 취재하러 갔다가 들었던 말이 기억났다. "골프연습장을 짓기 위해 뒷산을 까뭉개면서 왜 주민들에게 한 번도 의논을 안 하느냐"는 주민들의 반발에 마산시 공무원(고객감동과)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법적으로 설명회를 열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아마 당시 남해군의 부군수를 포함한 공무원들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 불과 며칠 전 법과 규정이란 잣대만으로 주민들의 피해나 불편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는 행정편의주의(이런 것은 편의주의가 아니라 복지부동이다)를 보았던 터라 "합법적인 것보다 합리적인 게 더 중요하다"는 말은 실로 가슴에 닿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미 김두관 후보를 아는 사람들은 위에 내가 질문한 "바다를 메워 공장을 짓는 것이 경남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알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본주의 탐욕이 낳은 이기심이 문제다. 바다를 매립하는 것은 적극 막을 생각이다. 기 조성된 부분에 대해서는 주민들과 의논해서 가능하면 친환경기업이 들어오도록 하겠다. 법조문 속에는 이미 강자의 논리가 들어있다. 국회의원이 법을 만들 때부터 굉장한 로비를 한다. 법은 제정될 때부터 불공정한 게 들어간다. 임해공단 문제도 합법보다는 합리를 중시해야 한다. 남해안같은 좋은 바다가 어디 있나. 엄청난 자산이다. 보존해야 한다."

'합리'를 중시하는 사고는 '민주주의'에 대한 소신으로부터 나온 철학

합법보다는 합리를 중시해야 한다는 그의 소신에는 이처럼 나름 확립된 철학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도가 별로 필요없는 존재 아닌가. STX문제로 마산시와 주민들이 다툴 때도 도의 역할은 전혀 없었다. 도의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도지사가 되면 무얼 할 생각인가?" 라고 질문하자 이렇게 답했다.  

"중요한 질문을 했다. 주민들 입장에선 시ㆍ군이 훨씬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통합창원시를 비롯한 18개 시ㆍ군을 지원하는 쪽으로 도정방향을 잡겠다. 정말 초유의 실험이 될 것이다. '주민통합지원서비스'란 걸 들어봤는가? 참여정부 때 만든 거다. 진주에 잘 돼 있다. 이게 이 정부 들어서 지원이 완전 끊겼다. 이 정부는 이미 글렀다. 경남도 차원에서 복원할 생각이다. 행정은 세금 받아서 민복을 위해 적절히 분배하는 거다. 돈 벌겠다고 환경 파괴하고 주민 피해주는 게 행정 아니다." 

그러면서 그는 시장ㆍ군수들에게도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 "인ㆍ허가권을 잘 써야 한다. 기초단체에서 법해석을 할 때 기계적이 아닌 합목적적인 해석을 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김 후보의 이 말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건 아마도 일선 시장ㆍ군수들도 "합법도 중요하지만 합리가 더 중요하다"거나 "기계적이 아닌 합목적적 법해석"에 대한 철학이 있을까 하는 의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최근 마산 진동이나 진전에 취재차 자주 들러 들었던 시골 민심은 의외로 김두관 후보에게 많이 기울어 있었다. 좀 의외였다. 여촌야도란 말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게 모든 시골사람들의 경향이라고 일반화하긴 어려울 것이다. 아직 '작대기만 꽂아도 된다'는 경남에서의 한나라당 지지 정서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1차 TV토론을 본 많은 사람들의 우려도 있다.

김 후보의 장점은 인후지덕, 그러나 보다 예리해져야

김두관 후보는 밑바닥에서부터 다져진 오랜 경력에도 불구하고 이달곤 후보에게 카리스마에서 밀렸다는 게 내가 들었던 대체적인 평이었다. TV토론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는 잔소리란 것도 맞다. 현직과 전직의 차이였을까? 지득한 정보의 차이? 그러나 어떻든 이달곤 후보가 의외로 논리적인 토론에서 앞섰다는 평이 있는 것이다.

김 후보는 이에 비해 인후지덕한 풍모가 크게 어필했을 것이라고들 말한다. 인후지덕, 앞서 말했던 김 후보의 장점 중 스폰지의 주요한 조건 중 하나다. 옛날로 말하자면 유방과 유비처럼 창업을 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최고 덕목이다. 그러나 현대의 유권자들은 가까이에서 그 인후지덕을 보고 판단할 기회가 없다. 그러므로 TV토론 등에서 보다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김두관 후보가 한나라당 이달곤 후보를 5%포인트 이상 격차로 앞서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김 후보 언론특보의 걱정처럼 이것이 거꾸로 김 후보의 발목을 잡는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전통적 보수층의 대대적인 결집효과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또 반대로 이것은 뭔가 바꿔보자는 신선한 바람으로 긍정적인 작용을 할 수도 있다.

어떤 쪽으로 바람이 불든 그것은 김두관 후보 진영의 앞으로의 행보에 달렸다. 특히 TV토론에 관해선 후보 참모진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달곤 후보가 갖고 있는 정보력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참모들의 뛰어난 상상력과 피땀나는 발품 외에 현재로서 무엇을 더 생각할 수 있을까. 아무튼, 김두관 경남도지사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다는 사실은 초유의 사태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사상 유례 없이 재미있는 선거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