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예

누나의 3월, 영화보다 재밌는 드라마

4·19혁명 50주년을 앞두고 만든 3·15특집 드라마 '누나의 3월'

3·15 특집드라마 시사회를 한다고 했다. 제목은 누나의 3월. 얼핏 방송에서 광고를 본 듯도 하다. 3·15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3·15 부정선거에 맞서 마산에서 일어났던 대규모 시위, 결국 이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돼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고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마산MBC 드라마 시사회에 참석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의무감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몰랐으면 모를까, 들었고 초대까지 받은 마당에 아니 갈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별 재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주제 자체가 워낙 무거운 이야기인데다가 마산MBC가 자체적으로 만든 드라마라고 하지 않는가.

지방의 방송사가 만들면 얼마나 잘 만들었을라고! 그러나 어쨌든 잘 아는 경남도민일보 김훤주 기자로부터 받은 연락이었으므로 경남블로그공동체(경블공) 회원들에게 따로 전화도 돌렸다. 나까지 포함해서 모두 다섯 사람이 모였다. 마산MBC홀에 가장 먼저 온 사람은 선거운동원들이었다.

황철곤 마산시장도 보였다. 명함을 받았다. 전수식 후보 명함도 받았다. 그는 내 고등학교 선배다. 모두들 통합창원시장 후보로 나선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그 외에 또 누가 왔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일부러 한쪽 구석으로 가 창밖을 바라보며 시사회가 빨리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시사회가 시작되었다. 역시 어설프다. 커다란 극장 스크린에 익숙한 컴퓨터 바탕화면이 그려져 있었다. 아마 빔 프로젝트를 통해 컴퓨터에 저장된 영상자료를 틀어주려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제작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MBC 관계자도 "화질이 별로 안 좋더라도 봐 달라"며 엄살 섞인 양해를 구했다.  

영화보다 재밌는 드라마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화질은 매우 양호했다. 게다가 대형 스크린에 드라마를 보는 기분은 매우 색달랐다. 음향, 이런 걸 뭐라고 하는 거지? 서라운드? 돌비? 하여간 잘 모르겠지만 마치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70분짜리 2부작이니 140분, 2시간 20분짜리 영화다. 그리고 실제로 시사회가 끝난 다음 나는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은 감동을 받았다.

광주항쟁을 소재로 만든 <화려한 휴가>란 영화가 있었다. 이요원과 안성기, 김상경, 이준기 등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했던 영화다. 이 영화도 감동과 함께 매우 재미있는 영화였다. 그런데 <누나의 3월>은 이 <화려한 휴가>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그리고 감동도 컸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스케일이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 이 드라마를 처음부터 보기 시작하게 될 여러분은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1960년의 마산의 모습을 만나게 될 여러분은 너무나 큰 반가움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할 것이다. 내가 그랬다. 카메라가 스르르 돌아가면서 비춰주는 마산극장, 시가지, 구두닦이들, 그리고 사람들, 이걸 전문용어로 무슨 기법이라고 했던가.

어쨌거나 여러분은 3·15라는 엄중한 역사의 현장 앞에서도 아름다운 영상에 도취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사실적이고 정겨운 경상도 사투리에 웃음 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는 2시간 20분 내내 한 순간도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너무나 감동적인 영상과 재미 앞에 눈을 깜박이는 것조차 아깝게 생각될 정도였으니까.

박종표 역의 손현주, 역시 베테랑 연기자

한 가지 불만이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손현주가 악질 경찰 박종표로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불만이 더 있다면 박종표로 분한 손현주가 역시 너무 멋있었다는 거다. 박종표는 일제시대에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던 헌병 아라이 겐베이, 그는 반민특위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이승만에 의해 경찰로 복귀했다.


그런 역할을 손현주에게 맡기다니. 그러나 역시 손현주는 베테랑 연기자다. 그는 악질이면서도 능글맞은 박종표 역을 잘 소화했다. 박종표는 3·15의거 당시 발포를 직접 명령한 마산경찰서 경비주임이었다. 김주열 열사의 발에 돌을 매달아 바다에 버렸던 그는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으나 이후에 그의 행적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4·19혁명 1년 뒤에 등장한 5·16쿠데타는 모든 역사를 거꾸로 돌렸다. 그리고 망각의 늪에 시간을 묻어버렸다. 어쩌면 박종표도 그 늪 언저리 어딘가에서 드라마에서처럼 예의 능글맞은 웃음을 흘리며 다방 여종업원들을 놀리다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실로 부끄럽고 서글픈 역사가 아닐 수 없다.

그 역사를 다시 끄집어낸 <누나의 3월>은 4월 11일 마침내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뜨고 마산시민들이 대대적으로 궐기에 나서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누나는 경찰들이 쏜 실탄에 맞아 영원히 휠체어에 의지해야만 움직일 수 있는 존재가 되고 만다. <누나의 3월>은 불구가 된 바로 그 누나의 인터뷰였던 것이다. 


'누나의 3월' 못 보시면 후회 할 걸요 

드라마가 끝났지만, 아니 영화가 끝났지만 아무도 일어서지 않았다. 너무나 큰 감동 때문이었을까? 함께 시사회에 참석했던 허정도 전 도민일보 사장은 내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재미있게 잘 좀 써서 블로그에 올려줘. 기대할게." "아유~ 사장님, 기대하시면 안 되는데요." "에이, 기대를 해야 잘 쓰지, 허허."

아무튼 여러분, 이 드라마는, 아니 영화 같은 이 드라마는 영화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증한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고 감동 같은 거 받으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감동 받을 것이 있다면, 그리고 그런 것을 받을 만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입으로 말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히 이야기 하고 싶다. 이거 무척 재미있는 드라마다.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드라마다. 스케일도 엄청 크다. 나는 살지도 않았던 50년 전 마산의 모습을 보며 추억 속에 잠기게 해 준 멋진 드라마가 바로 <누나의 3월>이다. 이거 안 보면 여러분, 무척 후회할 것이다. 그러므로 꼭 보시기 바란다.

오늘 저녁에 한다고 했던가? (마산MBC, 전국 방송은 4·19 때 다시 한다 함)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는 꼭 박수 한 번 쳐주는 것도 잊지 마시길 바란다. 손현주야 워낙 연기파 배우니 그렇다치고 처음 본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좋았다. 마산 말씨를 어디서 배웠는지 나보다 훨씬 마산 말을 더 잘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박수치는 것 꼭 잊지 마시기를 바란다. 짝짝짝, 이렇게.


                                                                             제블로그가 맘에 들면 구독+신청 Qook!사이판 총기난사 피해자 박재형 씨에게 희망을 주세요.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