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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버려진 삼성맨, 근로자에서 노동자로 다시 태어나다

오늘 뉴스 검색을 하다 삼성테크윈 노조가 파업을 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삼성테크윈 노조 간부들과 간담회를 가졌던 게 벌써 20여일이 흘렀다. 본래 간담회를 할 때는 블로그 기사를 쓰기로 하고 참석하는 것인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6월 5일 오후 삼성테크윈 정문 앞에서 열린 매각반대 결의대회 @사진. 금속노조 경남지부


물론 기사를 안 쓴다고 해서 특별히 부담 가질 이유는 없다. 블로거란 존재가 어디 고용돼 있어서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고, 간담회 주체로부터 무슨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아마 아래와 같은 생각도 있었던 듯하다.

 

삼성 노동자들이? 아니 삼성 근로자들이 노조를 만들었다고? 그동안 배부르다고 자기들끼리 잘 살더니만 이제 어려워지니까 노조를 만들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한다? 너무 이기주의 아냐?’ 그래서 잊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막상 삼성테크윈 노조가 파업을 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나니 아무래도 좀 찜찜하다. 아무리 그래도 삼성에서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었다는데. 그것도 60여명에 이르는 징계대상자를 감수하면서. 그래서 이렇게 모니터 앞에 앉았다.

 

너무 오래 돼서 그런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대체 무얼 쓰지? 그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했더라? 그러고 보니 내가 삼성테크윈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마산과 창원을 가르는 경계에 봉암다리가 있고 그 다리를 건너면 삼성중공업이 있었다. 그리고 공단의 동쪽 지점에 있던 삼성항공. 이 두 개가 합쳐져서 삼성테크윈이 되었다는 것밖에.

 

간담회에 온 노조간부들은 아주 똑똑했다. 처음 노조를 만든 초짜들치고는 너무 프로페셔널하다고 할까. 발음도 정확하고 논리도 정연하게 자신들 입장을 잘 정리해 발표하는 그들을 보면서 역시 삼성 출신이라 뭔가 좀 다르군,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게 뭐 그리 중요할까. 그들은 버려진 존재들이었다.

 

우리는 근로자였지만 이제부터는 노동자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삼성의 일방적 매각에 입은 상처는 생각하는 것보다 깊었다. 근로조건의 하락, 고용승계 등 불안한 장래가 당장 발등에 불이었지만, 그러나 그들은 그보다 배신감이 더 크다고 했다. 삼성의 노사문화에 젖어 눈 감고 귀 막고 입 닫고 살면 그만큼 대우해주겠다는 것이 약속이었는데, 그래서 그렇게 살았는데, 이번에 그게 깨졌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근로자였지만 노동자로 다시 태어났다, 적절한 비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비유 하나로 그들의 진심을 믿기로 했다. 노조를 만든 이유가 삼성에서 이탈되지 않기 위해 매각을 반대한다거나 위로금을 더 많이 받기 위한 일회성 시위라면 그것은 헛된 욕심 아니겠는가.

 

사실 가끔 언론에 나오는 삼성테크윈 노조 설립 관련 기사를 볼 때에는 그런 생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초일류기업 삼성맨이란 자부심, 주변에 다른 노동자들이야 어찌 되든 우리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이기주의. 그런 것을 의식했던지 그들은 그 부분에 대해 단호한 어조로 분명하게 의사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비정규직 문제, 사회적 문제, 이런 거 나 몰라라 했습니다. 잘못된 것 잘 된 것 세상일에 별 관심 안 두었습니다. 그저 고가 잘 받아서 임금 많이 받으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뿐이었죠. 그러나 일방적 매각 사태로 노조를 만들면서 알게 됐습니다. 나보다는 동료, 주위, 사회, 대한민국 전체를 볼 수 있는 노동자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삼성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자, 이게 저희들의 구호입니다.”

 

그들은 애써 위로금 많이 받자고 노조를 만들고 투쟁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나는 그 진심을 믿었으므로 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는 그들에게 그런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노조는 성인군자들의 조직이 아니다. 애국자 단체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집단의 힘으로 관철시키기 위한 조직일 뿐이다. 그걸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물론 경제투쟁의 한계는 명확하며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각성과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성장하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이룰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만. 그건 나중 일이고 우선은 매각 반대와 위로금, 이 두 가지 문제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그들이 원하는 노조 지위도 확보될 것이다. 노조의 지위는 형식적으로는 단체협약을 통해 얻어지지만 실제로는 노동자의 단결에 의해 확보되는 것이니까.

 

매각 되든 매각 안 되든 상관없이 우리는 노조를 지킬 겁니다. 이제 알았으니까요.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일어나도록 해야죠. 노동력 줄여서 순이익 보려는 자본의 습성, 다 알았습니다. 이재용 하는 짓 보면요. 노비도 팔아먹을 때는 밥 먹여 보낸다는데, 이건 예의가 아니죠.”

 

사전에 아무런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매각을 결정하고 통보한데 대한 인간적 배신이 크긴 컸었나보다. 하지만 그들 입에서 스스럼없이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는 소리가 나올 때는 삼성 오너일가의 배신(그들은 이 배신의 원인이 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에 있다고 믿고 있었다)이 그들을 정치적으로 변모시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슬며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5월 12일 오후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열렸던 경남블로그공동체-금속노조 삼성테크윈지회 노조간부 간담회 @사진 김주완 경남블로그공동체 회장

 

아무튼 오늘(6월 5일) 오후 경남 창원시 성산구 성주동 삼성테크윈 창원2사업장 정문 앞에서 금속노조 삼성테크윈지회 조합원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한 일방적 매각을 반대하는 결의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윤종균 지회장 등 노조간부들이 고생이 많다. 간담회 때 듣기로 노조사무실도 없고 전임자도 없다고 했다. 그런 어려운 조건에서도 이처럼 큰 싸움을 이끌고 갈 힘이 어디서 생겼던 것일까. 나는 그들의 최종목표를 모르지만 우선 매각반대 투쟁이 승리하기를 바란다.

 

모쪼록 건투를 빈다.

 

ps; 회사 측의 감시, 이메일 등을 뒤져봐도 좋다는 보안서약서, 가족들에게 보내는 충격, 기업노조와 금속노조지회의 갈등 등 이야기가 많았는데, 기억해서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기억을 더듬어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