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들아, 책 좀 읽어라 책. 안 그러면 박근혜처럼 된다.”
TV 뉴스를 보던 내가 아이들에게 한 말이다. 대통령 박근혜의 형편없는 어법을 조롱삼아 던진 농담이었지만, 사실은 진심도 숨어 있었다. 아이들도 수긍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나 그다음 날아든 회심의 일격.
“아빠. 책 안 읽어도 그 정도는 다 하는데? 박근혜가 특별히 문제가 있는 거지. 책 안 읽는다고 다 저렇게 되는 건 아니잖아.”
“……”
우리 가족의 이런 대화가 꼭 한 나라의 대통령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재미 때문에 벌인 못된 취미기만 한 것일까. 물론 대통령을 왕처럼 떠받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래의 이 말씀을 듣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할 것이 이것이다 하고 정신을 차리고 나아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
2015년 5월 12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하신 말씀이란다.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 일명 메르스가 확산일로에 있는데도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일도 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일자 14일째 되는 날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에서는 아래와 같이 주문했다고 한다.
“그리고 메르스 환자들의 치료, 또 그 환자들이 있는 시설에 대해서 격리시설이 이런 식으로 가서 되느냐, 이 상황에 대해서도 한 번 확실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고, 치료 환자들과 접촉 가족 및 메르스 환자 가능성이 있는 그런 원인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방안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또 3차 감염 환자들에 대한 대책, 그리고 지금의 상황을 그리고 접촉 의료기관 상황과 의료진 접촉 환자 및 그 가족들의 상황에 대해서도 우리가 확실하게 이번에 알아봐야 되겠다.”
보통의 한국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든 말이다. (여기서 굳이 보통이란 범주로 한정짓는 것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다 알아듣는, 예컨데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진 같은 특별한 분도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박근혜의 어법이 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녀의 말을 잘 뜯어보면 이런 용어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런…… 이런…… 이렇게…… 저렇게……
그녀 스스로도 말 한마디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바쁜 벌꿀은 슬퍼할 시간도 없다!”
2012년 1월 새누리당 대통령후보 시절 그녀가 한 이 말은 차라리 애교스럽다. 아마 “바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The busy bee has no time for sorrow - William Blake)”를 암송해 인용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생각이 안 나 벌어진 실수라 짐작한다.
“자질, 능력 이런 것이 있는 분이면 또 이렇게 참고초려해서……”
참고초려도 마찬가지다. 잠깐 당황해서 발음이 샜을 수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게 몇 년 동안에 걸쳐서 매번 벌어지는 실수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무리 말을 못해도 남들의 지적이 계속되면 고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럴 의지가 전혀 없는 듯이 보인다. 모르고 있는 것일까?
“제가 확실하게 드릴 수 있는 것은 그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게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계기로 만들겠다는 그 각오와 그 다음에 여러분들의 그 깊은 마음의 상처는 정말 세월이 해결할 수 없는 정도로 깊은 거지만……”
“그 트라우마나 이런 여러 가지는 그런 진상규명이 확실하게 되고 그것에 대해서 책임이 소재가 이렇게 돼서 그것이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투명하게 처리가 된다. 그런데서부터 여러분들이 조금이라도 뭔가 상처를 그렇게 위로받을 수 있다. 그것은 제가 분명히 알겠다.”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 하신 말씀이다. 나도 정말 무슨 말인지 도통 못 알아듣겠다. 그러더니 급기야 <박근혜 번역기>란 페이스북 페이지가 등장했다. 페이지의 문패는 박 대통령의 지난 대선 슬로건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패러디한 ‘내 말을 알아듣는 나라’이다.
이로써 결론을 내리자.
“이놈들아, 책 좀 읽어라 책. 안 그러면 박근혜처럼 된다.”
“아빠. 책 안 읽어도 그 정도는 다 하는데? 박근혜가 특별히 문제가 있는 거지. 책 안 읽는다고 다 저렇게 되는 건 아니잖아.”
이 질문과 답변이 지극히 상식적이라는 것.
아무튼 대통령이라고 해서 꼭 말을 잘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전직 대통령 김대중이나 노무현 같은 달변가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만큼의 지식을 가지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기본은 해야 되지 않나. 최소한 국민들이 알아듣는 수준의 말은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는 우리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우리는 그녀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듣고, 참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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