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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창원시장 한번 만나기가 하늘에 별따기 같더라

간곡한 문자가 왔다.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힘을 실어주십시오. 어쩌면 앞으로 우리는 바다가 없는 마산에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창원시의 해양신도시 건설 막아야 됩니다. 내일 창원시청에서 기자회견하고 창원시장실 방문 면담 요구할 계획입니다. 참여해주십시오.”

대충 이런 내용이었는데 얼마나 간곡한 사연이 있기에 이렇게 “간곡하게” 부탁한다는 문자까지 보냈을까 싶어 아니 갈 수가 없었다. 아침밥을 먹고 부랴부랴 집을 나서서 100번 버스를 탔다. 창원시청까지 가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차안에서 편안하게 책 한권 펴들고 읽기에 딱 좋을 시간이다.

한창 삼매경을 헤매고 있을 무렵,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뭐야, 왜 이래?” “어머 어머” 하며 놀란 소리들에 화들짝 놀라 얼굴을 들어 앞을 보니 중개 정도의 크기로 보이는 개 한 마리가 꼬리로 똥구멍을 감싼 채 버스 앞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허둥대고 있다.

이런 뒌장, 웬 개를 길바닥에다 풀어 키운단 말인가. 제발 개는 잘 묶어서 집안에서만 키웁시다. 아무리 개에게도 인권(요즘은 개를 사람으로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다)이 있다지만 이건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 이 말입니다. 노인들이 주로 많이 타는 이 버스에 자칫 인사사고라도 났으면 어쩔 뻔 했습니까?

아무튼 아침부터 재수 더럽게 없다는 생각을 하며 시청으로 갔다. 어라? 그런데 문을 다 잠가놓았다. 문 앞에는 양복이나 깔끔한 바지에 흰색 계통의 셔츠를 입은 허연 얼굴의 남자들 여러 명이 떡 버티고 서있다. 공무원들이었다. 그 앞 아스팔트에는 십여 명의 노인네들과 아줌마들이 퍼질러 앉아있다. 민원성 항의방문인 모양이다.

순간 소심한 나는, 말하자면 나름대로의 기지를 발휘해 옆문을 통해 건물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갔다. 나는 저들과 한패가 아니고 매우 선량한 시민일 뿐이라는 듯이 아주 최대한 태연한 척 하면서. 그런데 허어, 1층에도 깔끔한 복장의 공무원들이 곳곳에 뒷짐을 지고 서있다.

이거 이러다 기자회견장에는 접근도 못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기자실이 어디냐고 물어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다시 이런 뒌장. 역시 예의 태연한 자세로 2층으로 올라갔다. 허걱, 시장실이다. 여기는 더 무섭도록 깔끔한 공무원들이 진을 치고 있다. 복도를 따라 반대편으로 가다 어떤 방에 들어가 기자실이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1층 북쪽 끄트머리에 있단다. 3차로 이런 뒌장.

▲ 사진. 강창원(블로그필명 천부인권)씨 제공

다시 1층으로 내려와 간신히 기자실로 가니 이미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임희자 마창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이 상황설명을 하고 차윤재 마산YMCA 사무총장이 성명서를 낭독했다. 그리고 질문이 이어졌다. 그런데 어느 기자의 질문을 듣는 순간 나는 다시 4차로 “이런 뒌장” 하고 말았다.

“이미 사업이 상당부분 진행되고 있는 걸로 아는데 이런 시점에 시장에게 시정정책토론을 청구하는 것이 어떤 실익이 있습니까?”

아니 사회운동 하는 사람이 무슨 실익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안 하나? 기자의 의중은 그런 게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내 귀는 그렇게 들었다. “이미 사업이 시작되었으므로 사업 자체를 반대하는 토론청구 따위는 아무런 실익도 없으므로 불필요한 짓 아니냐?”

아, 그렇군요. 왜, 어떤 내용의 기자회견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빠졌다. 기자회견의 주체는 <마산해양신도시건설사업 반대시민대책위원회>였다. 이름만으로도 기자회견 내용이 어떤 것이었을지는 대략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의 내용은 좀 색다른 면이 있었다.

해양신도시 건설사업에 대한 반대도 반대지만 이 단체가 주도하여 시민 232명의 연서로 제출한 <마산해양신도시 건설사업 시정정책토론 청구>가 기각된 데 대한 항의성명이 그것이었다. 시정정책토론은 창원시의회가 제정한 <시민참여조례>란 법적 조항에 근거한 것이었는데 시장이 정당한 사유 없이 청구를 기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확인해본 결과 창원시의 입장은 달랐다. 청구를 기각할만한 사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감사원에서 감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청구를 기각했다는 것. 그러나 반대대책위이 말은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란다. 대책위가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한 사실은 있지만 아직 감사가 시작되지도 않았단다.

하여튼 양쪽 말을 다 들어본 내 판단으로는 감사를 청구한 사실은 있지만 아직 감사가 시작되지 않았다는 주장에 무게를 두고 <시민참여조례> 규정에 의한 시정정책토론 청구를 기각할 어떤 사유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러고 이유 불문하고 당당하게 시민의 투표로 당선된 박완수 창원시장이 토론을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무엇이 그리도 켕기는가?

기자회견을 마치고 시장실로 갔지만 예의 깔끔하고 단정한 복장의 공무원들에 의해 문은 봉쇄당해 있었다. 임희자 환경연합 사무국장이 물었다. “왜 면담을 안 하겠다는 겁니까? 시장한테 한번 물어보세요.” 

▲ 사진. 김숙진 진보신당경남도당 사무국장 제공

대답은 절대 NO! “그럼 비서실장이라도 만나봅시다.” 임 국장의 말에 공무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왜 비서실장을 만납니까?” “비서실장을 만나면 안 되는 이유가 뭡니까? 시장 면담할 사안을 비서실장과 의논하지 누구하고 합니까?” 할 말이 없자 공무원 왈, “아, 안됩니다.”

계속해서 이런 뒌장이다. 아침부터 재수 없게 개가 달리는 버스 앞으로 달려들지를 않나, 힘들게 달려온 시청 문은 잠겨있고 덩치 크고 깔끔하고 단정한 공무원들이 길을 막고 있지를 않나, 정말 뒌장스런 날이다.

일단 나도 할 일을 하러 가야하므로 시장실 앞에 퍼질러 앉아버린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시청을 빠져나왔다. 시청 앞 광장을 가로질러 롯데백화점 쪽으로 걸어가는데, 이런 뒌장, 날씨는 왜 이다지도 좋단 말이냐. 실로 하늘은 푸르고 말은 살찌기에 충분한 계절이다.

아아, 그러나 푸른 마산만만 자꾸 살이 빠져나가니 이게 도대체 누구 탓이란 말인가. 후대에 사람들이 “내 고향 남쪽 바다…” 어쩌고 하는 노래를 들을 때 “거기 도대체 바다가 어디 있단 말이고? 그 노래 시를 썼다는 이은상 그 사람 혹시 살짝 돈 거 아이가?” 한다면 어쩔 것인가.

참고로 해양신도시 건설사업이란 마산만에 흙과 돌을 갖다 부어 돝섬보다 몇 배나 더 큰 대형 인공섬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토건사업자에겐 바다에서 흙 파내 돈 벌고 다시 그 흙을 바다에 갖다 부어 돈 벌고 또 그 땅 팔아 돈 벌 수 있으니 땅 짚고 헤엄치기가 따로 없겠다.

그러나 시민들의 공동자산인 푸른 바다가 없어지는 것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가포해수욕장이 돌덩어리에 묻혀 사라진지 십여 년이 지나서야 사람들은 아쉬움을 토로하며 자신들의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해버린 과거의 시장들을 향해 말로써 돌팔매질을 해댄다.

임희자 국장의 말이 딱 맞는 말이다.

“시민들은 눈에 보여야 (그제야) 인식을 합니다. 시민들이 미래에 변할 마산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행정절차와 상관없이 시민들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이런 기본원칙과는 별도로 왜 시민참여조례로 거듭 규정을 해놓았겠습니까?”

그나저나 시장님 한번 만나기가 와 이리 힘이 듭니까? 진짜로 요즘 도지사 보궐선거 때문에 바쁘시다는 소문이 맞습니까? 

ps1; 아, 토론청구 기각 사유 중에 ‘개인 사생활 침해’가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다른 사유는 해당이 없고 굳이 해당되는 걸 찾으라면 이거밖에는 내세울 게 없을 듯싶다. 그럼 누구의 사생활 침해냐? 박완수 시장의 사생활 침해다.어떤 사생활 침해인가? 도지사 출마 준비하느라 바쁜데 사람 짜증나게 만드니 그게 사생활 침해다.

ps2; 나중에 들으니 시장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며칠 후에 만나기로 하였단다. 아무튼 잘 되기를 바란다. 이왕 시작된 일이라 하더라도(‘이왕’을 만들기 위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혐의가 짙지만) 서로 협의해서 절충안을 찾았으면 좋겠다.

ps3; 시의회에서 제정한 조례에 의한 청구를 시청의 일개 담당공무원 선에서 기각하는 행위에 대해 창원시의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쪽팔리지는 않는지 그것도 궁금하다.  

ps4; 아 그러고 기자도 아니면서 건방지게 질문을 했더니(질문 내용은 ps3과 같은 내용이었음) 담당공무원이 쫓아와서 누구시냐고 묻는다. 그래서 왜요? 했더니 우물쭈물 원래 다 그렇게 확인하는 거라고... 해서 <다음>에서 만들어준 내 블로그 명함을 주었다. 그러고 나도 주었으니 당신 것도 주세요, 했더니 사무실에 가서 한참만에 들고 나와서(내 마음속 시계론 한 5분 걸렸다. 어디 두었는지 몰라 헤매고 있는 중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건네준다. 그런 건 좀 평소에 주머니에 넣고 다니셔야지요. 하하. 아무튼 이참에 한마디 하고 싶은 말은, 거기 시청에 책상 마련된 기자만 기자가 아니고 블로그 기자도 기자라는 사실이요. 가만 보면 꽤 진보연 하는 기자분들도 이런 관 주도의 기자 정의에 동조하는 것 같더라는... 헐, 이런 쓸 데 없는 이야기까지^^

ps5; 10월 5일 오전 10시부터 11시 사이 풍경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