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리의 어이없는 착각 이유, 이렇게 제목을 썼다면 좋았겠지만, 보통 그렇게들 쓰지만, 왠지 뒷통수가 가려워 그렇게 쓸 수가 없네요. 그건 그렇고 그렇게도 바라던 격구경기가 마침내 끝났습니다. 사실 재미는 있었지만 너무 길었죠.
하지만 다 길게 끈 이유가 있었겠지요. 격구 시합 중에 최우와 최향, 최충헌의 장남과 차남이 벌이는 권력게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했거든요. 최충헌의 의중은 장남 최우에게 있지만 권력의 향배는 이미 최향에게 기운 듯이 보이는데요.
왜 그렇게 됐을까요? 당연히 최충헌의 장남이며 추밀원부사로 사실상 최충헌을 대신해 도방을 통솔하고 있는 최우가 권력을 쥐어야하는 것 아닐까요? 최충헌의 이 한마디가 권력이 최향에게 기운 이유를 말해주고 있네요.
“너무 맑은 물에서는 고기가 안 산다!”
최충헌은 최우가 모든 면에서 자신의 확실한 후계자이고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현실은 그렇게 굴러가고 있지를 못하지요. 늙어가는 최충헌의 가신들은 최우보다는 최향을 선택한 거지요. 거기가 먹을 게 많거든요. 혼탁한 우물.
자, 아무튼, 재미있었지만 지루했던 격구경기는 곧 전개될 치열한 권력투쟁의 서막이었던 셈입니다. 이제 격구시합이 끝났으니 최충헌의 죽음과 더불어 진짜 본게임이 시작되겠지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최우의 외동딸 최송이는 대체 어떤 착각을 했던 것일까요?
최송이는 아마도 이렇게 생각을 했을 겁니다. “저자가 감히 노예인 주제에 나를 사모하고 있어. 하지만 괜찮아. 저 정도 사내라면 나를 사모할 자격이 있지. 암 그렇고말고, 그래, 나도 왠지 저자가 싫지 않아. 괜찮은 사내야. 노예만 아니었다면 충분히 내 상대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리고 마지막 승리의 순간에 최우가 승자에게 주어지는 소원을 말하라 명하자 김준이 말을 탄 채로 자기를 바라보는 순간(사실은 월아를 바라본 것이었지만) 터질 듯한 심장을 주체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아, 저자가 마침내 소원을 말하려고 해. 분명 나와 관련된 거겠지.”
아마도 최송이는 김준이 자기를 위해서 평생 봉사하며 살도록 해달라고 하거나 자기에게 충성하며 살 수 있도록 호위무사로 삼아달라고 하거나 뭐 이런 소원을 말할 거라고 생각했겠지요. 아니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아씨(송이)를 위해 죽고살 수 있는 영광을 달라고 하거나.
김준이 최송이에게 격구에 나가도록 해달라고 청탁하며 “아씨를 기쁘게 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으니까 그런 착각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게다가 시합 때마다 자기 쪽을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으니까. 하지만 꼭 그런 이유들만 있을까요?
제가 보기엔 그런 이유들만으로 최송이를 착각에 빠지도록 했다는 것은 활달하고 영민한 최송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다.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최송이로 하여금 그토록 어이없는 착각에 빠지도록 한 이유가.
바로 사랑입니다. 최송이는 자기도 모르는 새 김준에게 홀딱 빠져버린 것입니다. 당시에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자기는 고려 권력의 정점에 있는 최우의 하나뿐인 딸이고 김준은 자기네 집 노예일 뿐입니다. 노예는 죽일 수도 있고 팔아버릴 수도 있는 그저 살아있는 물건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눈에 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온갖 정성을 들여 키운 자식들이 어느 순간에 부모의 뜻에 반해 발길을 돌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저도 그랬고 제 아내도 그랬으며 제 자식들도 모르긴 몰라도 그럴 게 틀림없습니다(안 그랬으면 좋겠지만).
최송이의 착각은 바로 사랑 때문이었고 이는 머지않은 장래에 몰고 올 피바람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바로 월아. 사랑의 포로가 된 송이의 질투심은 월아를 죽이고야 말 것입니다. 어쨌든 송이는 당대 최고의 귀족으로 사실상 공주인 것이며 월아는 천한 노예니까요.
요즘 같은 세상에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ps; 사람이 사랑에 눈 멀면 상대도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착각하거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아주 강한 집착증이 생기기도 합니다. 물론 안 그런 훌륭한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저는 어떤 부류에 속할까요? 송이과인 것 같기도 하고…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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