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헌이 노망이 들었나? 이규보와 함께 장기를 두던 최충헌이 느닷없이 자기를 속였다며 노발대발합니다. 이 순간 들었던 생각입니다. 저 노인네가 드디어 돌았나? 그러나 곧 그의 깊은 속내를 알 수 있었습니다. 최충헌은 역시 노련한 권력자였습니다.
최충헌은 속으로 최우를 후계자로 지목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최충헌 장남인 최우가 권력을 승계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겠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최충헌처럼 노회한 권력자가 장남이라 하여 권력을 물려주지는 않습니다.
현실에서도 그렇습니다. 김정일은 위의 두 아들을 제치고 삼남인 막내아들(워낙 베일에 싸인 동네라 또 다른 아들이 있는지도 모르지만)에게 권력을 세습했습니다. 삼성그룹의 이병철도 위의 두 아들을 제치고 삼남인 막내아들 이건희에게 경영권을 넘겼지요.
최충헌은 최우가 장남이라서가 아니라 최우가 최고권력자로서 자기가 세운 도방을 가장 이끌 재목이라고 보았던 모양입니다. 차남 최향은 그런 면에선 많이 모자란 인물이라고 여겼던 게지요. 최충헌이 최우에게 마지막일 듯싶은 충고의 말을 합니다.
“너무 맑은 물에서는 고기가 안사는 법이다!”
이는 최충헌의 장남에다 도방의 대리집정자임에도 권력이 사실상 최향에게 넘어간 현실을 직시하라는 말입니다. 최충헌의 가신들 대부분이 최향에게 포섭된 상태입니다. 왜? 너무 맑은 우물인 최우에게선 별로 얻어먹을 게 없다고 여긴 것이지요.
혼탁한 우물이랄 수 있는 최향에게 붙어야 백성들을 착취하고 매관매직도 해서 호의호식하며 잘 살 수 있으니까요. 최충헌은 최우야말로 사심 없이 자기가 세운 도방을 이끌고 나라를 잘 유지할 수 있으리라고 봤지만 이점이 늘 걱정입니다.
맑은 물이 좋기는 하지만 고기들은 흐린 물로만 몰려가니 낭패인 거지요. 최충헌은 마침내 자신도 생을 떠나야할 때가 다가왔음을 압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최우에게 자신의 수결이 된 백지 두루마리를 줍니다. 거기에 네가 원하는 대로 써서 권력을 접수하라, 이런 뜻이지요.
그리고 오늘 어이없는 이유로 이규보를 내쫓습니다. 평소 하던 대로 이규보와 장기를 두던 최충헌이 느닷없이 “나를 속이고 사기장기를 두는 것이냐”면서 불같이 화를 낸 것입니다. 마치 옆자리를 지키는 간신배 김덕명(최향의 하수인)이 들으라는 듯이….
“그동안 내 장기동무라는 것을 빙자하여 부정을 저지른 것을 알고 있다. 목을 베도 시원찮으나 그 동안 인연이 있어 목숨만을 살려주겠다”며 이규보를 쫓아냅니다. 그리고 최우더러 “그래도 옛정이 있으니 죽이지는 말고 살려서 멀리 떠나보내라”고 지시합니다.
실로 최충헌의 앞날을 내다보는 안목과 안배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충헌은 이미 그 전날에도 이규보에게 “네가 나와 친한 것을 빌미로 뇌물을 많이 받아먹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조심하지 않으면 목숨을 보존키 어려울 것이다”라고 경고한 바 있지요.
물론 이때도 김덕명이 옆에 있었습니다. 김덕명은 아주 교활한 자로서 매관매직에 백성들 고혈을 짜는 데 선숩니다. 그래서인지 승병들이 반란을 일으켜 도성으로 쳐들어왔을 때도 최충헌보다 먼저 김덕명을 찾아죽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최충헌은 이런 자를 가장 가까운 곁에다 두고 있었을까? 궁금한 대목이었습니다. 늙으니 총기가 흐려진 것일까?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최충헌이 김덕명을 바로 곁에다 둔 이유 역시 최우에게 권력이 넘어가도록 안배하기 위한 계략이었습니다.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아무튼, 최충헌은 자기가 죽고 난 이후에 닥쳐올 환란으로부터 이규보를 지키기 위하여 거짓으로 내쫓아 그의 목숨을 보존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규보는 최우가 권력을 승계하고 난 이후에도 매우 중요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최충헌이 이규보를 내쫓은 이유는 이규보를 살리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최우가 무난히 권력승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함입니다. 드라마 초반에 최우의 장인 정숙첨을 파면해 멀리 하동으로 귀양 보낸 것도 최우의 권력승계를 위한 준비가 아니었을까요?
물론 정숙첨과 관련해서 역사가 그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에서는 그렇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최충헌은 정말 용의주도한 인물입니다. 이미 전세가 기운 권력판도를 바꾸기 위해 최향의 첩자(김덕명)를 비서실장으로 쓰다니 말입니다. 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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